괴로움이 생기는 근본 원인
“기도 잘하셨습니까? 요즘 우리는 초기경전인 숫타니파타(Sutta Nipāta)를 독송하고 있습니다. 이번 주에는 주로 분노와 탐욕에 대한 내용이 나옵니다. 우리는 '나'라는 것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에게 집착하고 ‘내 것’에 집착합니다. 또 ‘내 견해’에도 집착합니다. 내 견해가 옳다고 집착하면 분노가 일어나고, 내 것에 집착하면 탐욕이 일어납니다. ‘나’에게 집착하면 어리석음이 생깁니다. 경전에는 이런 나에 대한 집착이 고통이 생기는 근본 원인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보통 자기 견해를 고집할 때 세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첫째, ‘믿음’입니다. '내가 믿는 것이 옳다.'라고 집착하는 거죠. 종교 간 분쟁도 믿음에 대한 집착이 근본 원인입니다. 둘째, ‘생각’입니다. 자기가 사유한 것, 즉 자신이 아는 것이 옳다고 고집하는 거예요. 학문적 논쟁이나 정파적 갈등은 생각에 대한 집착이 근본 원입니다. 셋째, 좋고 싫은 자신의 감정에 집착하는 것입니다.
이런 자기 견해에 집착을 하면 논쟁을 하고, 상대를 비난하고 화를 냅니다. 논쟁에서 이기면 교만해지고, 논쟁에서 지면 기가 죽어요. 자기 견해에 집착을 하면 이렇게 여러 가지 괴로움이 발생합니다.
특히 자기가 경험하고 믿고 아는 것만이 옳다는 집착이 수많은 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부처님 살아계신 당시에도 육사외도, 62견해 등 수많은 사상가들이 자기의 주장은 옳고 다른 사람의 주장은 틀렸다고 논쟁을 했습니다. 심지어 상대를 비난하고 해치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부처님도 모함을 많이 받으셨어요. 부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다른 학파의 사람들이 부처님을 시기 질투해서 음모를 꾸미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잘못된 견해에 대해 법문을 하신 적이 많습니다.
있는 그대로 보기
진리는 스스로 체험해서 검증해야지 과거로부터 내려오는 교리, 경전, 윤리, 도덕, 관습, 습관에 의해서 '옳다, 그르다', '맞다, 틀리다'라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괴로움이 생겼다면, 먼저 현재 일어난 일을 있는 그대로 확인하고, 이런 일이 왜 일어났는지 원인을 찾고, 어떻게 하면 괴로움의 원인을 소멸해서 괴로움에서 벗어나는지 알고, 직접 실천해야 해요. 이것이 사성제입니다. 사물을 이런 관점에서 바라볼 때 괴로움이 없어집니다. 그래서 깨달음을 얻기 위한 여덟 가지 바른 길 중에서 첫 번째가 정견(正見)이에요. 즉, 바르게 보라는 것입니다. 바르게 본다는 말은 바르게 안다는 얘기입니다. 바른 앎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에요. 사실을 사실대로 아는 것이 바른 앎입니다.
'삿된 견해'란 잘못 알고 있는 것뿐만 아니라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을 고집하고 집착하는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우리의 뇌는 어떤 상황을 인지하고, 같은 상황이 두세 번만 반복되면 '아, 이것은 이렇구나' 하고 단정하는 고정적인 관념이 생겨버립니다. 이 고정관념은 일상생활에 편리한 점도 있어요. 그러나 현실이 바뀌면 바뀐 상황을 인식해야 하는데, 먼저 생긴 고정관념이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는데 장애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고정관념을 대승불교에서는 '상을 짓는다'라고 말해요.
사람들이 견해에 집착하고 싶어서 집착하는 건 아닙니다. 자기가 아는 것이 나름대로 객관적 사실이라고 알고 있기 때문에 집착하는 겁니다. 다른 사람 의견을 받아들이고 싶어도 '이게 사실인데 틀린 걸 어떻게 받아들이냐?'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장님 코끼리 만지기라는 말이 있잖아요. 장님에게 코끼리를 만져보게 하고 코끼리가 어떻게 생겼냐고 물어보면 다 달라요. 코를 만져본 사람은 '뱀같이 생겼다'라고 하고, 귀를 만져본 사람은 '부채같이 생겼다', 다리를 만져본 사람은 '기둥같이 생겼다', 꼬리를 만져본 사람은 '빗자루같이 생겼다'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아요. 사람들이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라 자기가 경험한 범위 안에서 '아, 코끼리 이렇게 생겼구나.' 정형화시킨다는 거죠.
전체를 보면 틀렸지만, 부분만 보면 일리가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틀린 말을 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이 경험한 범위에서는 모두 진실인 거예요. 이것을 단견(短見) 또는 편견(偏見)이라고 합니다. 자기가 경험한 것만 보고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다른 사람에 대해서도 자기 경험을 가지고 그 사람의 이미지를 정합니다. 처음 만났을 때 이미지 또는 연애할 때 이미지를 가지고 결혼을 했는데 살아보면 내가 생각한 이미지와 전혀 다른 모습도 보이잖아요. 원래 그 사람이 가지고 있었던 모습인데, 사람들은 상대가 '변했다, 배신했다.'라며 갈등하고 괴로워해요.
늙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젊을 때 자기의 모습이 마음속에 정형화되어 있습니다. '원래 내 얼굴은 이렇게 생겼다'든지 '나는 이만큼 일할 수 있다'라는 고정관념이 있어요. 그래서 세월이 흘러 나이가 들었는 데도 자기 얼굴을 보면서 '이건 내 얼굴이 아니다'라고 합니다. 늙는다고 괴로워할 이유가 하나도 없는데, 변한 것을 변한 대로 보지 않고 과거의 생각으로 보니까 늙음이 한탄스럽게 느껴지는 거예요. 일을 할 때도 자기 머릿속 관념과 나이 든 현실이 달라졌기 때문에 여러 가지 괴로움이 생깁니다. 남을 보면서는 '저 사람이 늙었구나' 하는 생각이 잘 들어요. 정작 본인은 늙었다는 말을 들어도 받아들이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늙어도 마음은 다 청춘'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모순이죠. (웃음)
모든 것은 변화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깨달음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초기 경전을 보면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사람들이 깨달았을 때 항상 나오는 구절 있습니다.
'형성된 모든 것은 소멸한다’
어떤 사물이든 사람이든 고정되어 있지 않고 늘 변화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그냥 지식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가슴에 딱 다가오지 않죠. 그런데 깨달으면 자기가 안고 있었던 많은 번뇌와 괴로움이 사라져 버려요. 그래서 항상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깨달은 사람들이 처음으로 하는 말이 '형성된 것은 모두 소멸한다'라고 거예요. 그리고 부처님을 찬탄합니다.
'이것은 마치 덮인 것을 벗겨내어 보여주심과 같다. 넘어진 자를 일으켜 세워주심과 같다. 길을 잃고 헤매는 자에게 길을 가르쳐주심과 같다. 어두운 밤에 등불을 탁 밝혀주심과 같다.’
우리를 둘러싼 세상은 늘 변하고 있는데, 우리의 생각은 어느 한 부분에 딱 고정되어있습니다. 마치 카메라가 움직이는 사물의 한 장면만 딱 포착해서 찍는 것과 같아요. 그래서 우리의 생각이 계속 현실하고 안 맞는 거예요. 그나마 변화가 느리면 덜 혼란스러운데, 변화가 빠르면 굉장히 혼란스럽습니다. 안과 밖이 안 맞으니까요. 그런데 사람들은 '세상이 혼란스럽다'라고 이해합니다. 세상은 혼란스러울 게 없어요. 세상은 늘 변하는데 내 생각이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혼란스러워지는 거예요. 내가 가진 생각의 틀로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식할 수 없습니다. 늘 변화하고 있는 지금 여기에 깨어 있어야 아무런 편견 없이 현실을 자각할 수 있습니다. 있는 그대로 현실에 기초해서 인생을 산다면 괴로울 일이 없어요.
숫타니파타(Sutta Nipāta)는 초기 경전이기 때문에 경전의 형식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습니다. 어떤 사건이 있어서 부처님이 법문을 하셨는데, 그 사건은 없고 법문만 남아있는 경우가 많아요. 저도 즉문즉설을 하면, 그 중에서 몇 구절만 뽑아서 희망편지를 만들어 내보내지 않습니까? 왜 이런 법문을 했는지 배경은 없고 교훈적인 이야기만 있어요. 이런 형식은 법문을 짧게 볼 수 있는 장점도 있지만, 배경이 없으니 의아할 때가 많습니다.
앞으로도 며칠간 경전에 '자기가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해탈할 수 없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다른 종파나 학파에서 계속 부처님을 모함하고 논쟁했던 사건들이 있었던 후에 해주신 법문들이에요. 매일 아침마다 제가 하나하나 해설을 다 못하더라도 그런 배경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독송해보면 좋겠습니다. 그럼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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