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 應化非眞分 (응화는 진이 아님)

 

須菩堤, 若有人以滿無量阿僧祈世界七寶 持用布施 若有善男子善女人

수보리, 약유인이만무량아승기세계칠보 지용보시 약유선남자선녀인

 

發菩薩心者 持於此經乃至四句偈等 受持讀誦 爲人 演說其福勝彼 云

발보살심자 지어차경내지사구게등 수지독송 위인 연설기복승피 운

 

何爲人演說. 不取於相 如如不動 何以故, 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하위인연설. 불취어상 여여부동 하이고, 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 佛說是經已 長老須菩堤 及諸比丘 比丘尼優

여로역여전 응작여시관. 불설시경이 장로수보리 급제비구 비구니우

 

婆色 優婆夷 一切世間天人 阿修羅 聞佛所說 皆大歡喜 信受奉行.

바세 우바이 일체세간천인 아수라 문불소설 개대환희 신수봉행.

 

부처님께서는 닦은 공덕으로 때에 따라 몸을 나투시다.

"수보리야, 만약 어떤 사람이 한량없는 아승지 세계에 가득찬 칠보로써 남에게 베풀고, 착한 남자나 착한 여인이 마음 닦는 신심을 내서 이 경 내용 중 '사구게'를 스스로 지니고 읽고 외워서 다른 사람을 위해서 설명한다면 그 복은 앞에서 이야기한 복 보다 매우 많으니라. 이렇게 남을 위하여 설명함도 사람 마음을 밝게 해주기 위해서 그 때 그때에 이경을 읽을 지언정 자기가 경읽는다는 생각이 없으면 상에 집착하지 아니하여 오래오래 움직이지 아니하게 되느니라.

'일체의 모든 형상이 있는 것들은 꿈과같고, 탈춤과 같고, 거품과 같고, 그림자와 같으며 이슬과 같고, 또한 번개와 같으니 이것이 바로 우주의 진리이니라'

부처님이 이 경 설 하시기를 마치시니, 장로 수보리와 모든 비구, 비구니, 청신사, 청신녀, 하늘, 인간, 아수라 들이 부처님 설법을 듣고 몹시 즐거워하며 믿고 가지고 받들어 행하였습니다. "

 

 

여기서 진이란 '참이 아니다'라는 말입니다.

眞身이 아니고...

그냥 진이 아니라해야해요.

수정하면..... 應化非眞分 第三十二(응화는 眞이 아님) 이래야 맞습니다.

應化란 응해준다...원인에 결과를 나타낸다.... 라는 뜻입니다.

불교는 因果法이니까

원인이 있으면 반드시 그 결과가 나타나게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나타나는 것은 다 허망한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인과법은 다 허망하다....

꽃이 피고 열매를 맺고...고생 끝에 성공을 하고....하지만

인생이 한 바탕 꿈과 같은 것이기 때문에 모든 것은 허망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應化非眞이라는 말입니다.

"수보리야 "

금강경 시작할 때부터 나오던 이 부름에 모든 답이 있다고 하였어요.

오늘 끝나는 날인데 모두 그 이유를 아셨습니까?

모든 답이란 인생에 대한 답이요, 철학자의 질문에 대한 답이요,

삶의 의미에 대한 답이고, 화두에 대한 답이고,,,,여러분이 알고 싶은

그 어떤 것에 대한 답이기도 합니다.

전심법요와 완능록을 기록하였던 배휴가 불교 공부를

한참하다가 나중에 禪에 대하여 관심을 가집니다.

그래서 여러 선사들의 법을 들었어요.

기록에는 규봉스님도 모셔서 들었다합니다.

규봉스님은 도서를 지은 스님이고

돈오돈수와 돈오점수에 대한 기록을 남겨놓았던 교학자입니다.

앞으로 禪學者들이 계속 밝히겠으나

돈오돈수, 돈오점수...등의 말은 전통 선가의 말이 아닙니다.

교학자, 즉 원각경을 보고 깨달은 규봉스님의 글에서 나온 것인데

이것도 자기 생각이 아니고 스승 청량스님의 말을 그대로 원각경소초에 옮긴 것입니다.

그래서 이 언어들은 두고두고 선문에 문제를 일으켰던 말인데

원칙적으로 선문의 용어라고 할 수 없어요.

아마 앞으로 언젠가는 학자들이 세밀하게 그 문제점을 밝히리라 믿습니다.

이러한 용어 하나가 선에 끼치는 영향은 대단해요.

그 말이 있으므로 해서 혼동을 주고 있고

옛 선사들의 가르침이 일관되지 못하고 이렇게 저렇게 혼란을 주는 원인이 되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 용어에 대한 고민을 참 많이 한 사람 중에 한 사람이 저입니다.

저도 한 때 과거에는 옛 선배들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만 했기 때문에

책에서 나온 것은 전부 무조건 다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혼란이 왔어요,

아니, 어떤 선사는 단번에 깨달으라 했고 실제로 그렇게 돈오를 얻은 사람이 부지기 수로 많은데

어찌 배반되는 말들을 옛 선배들이 했을까....

항상 궁굼했어요.

그렇게 궁금함을 가지고 수십년 화두 들고 공부하다가...어느날 ...의문이 풀린 끝에

규봉스님의 이 말이 문제가 있는 말임을 알았습니다.

어찌되었든 배휴는 나중에 황벽스님을 모시고 공부를 하게 되었는데 그 입문 동기가 있습니다.

나라의 재상인 배휴가 하루는 어느 절에 갔는데 조사들의 영정이 죽 걸려있는 것을 보고

옆의 주지스님에게 물었습니다. 이 큰 스님들께서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문득 어려운 질문을 받자 주지스님은 답을 못하고...있다가

여기 산 위에 조금만 가면 황벽스님이라는 분이 계시는 곳이 있는데 그분은 아실 것입니다.

했어요. 그래서 그 스님을 모시고 재차 물으니

황벽스님이 배휴? 하고 불렀어요.

그러자 배휴가 네. 하고 답을 했었는데 순간 황벽스님이 한 마디로 답을 해줍니다.

" 바로 거기에 있느니라." 이때에 배휴가 무엇인가 크게 깨달은 바가 있었습니다.

절을 하고 물러나서 선의 요체는 무엇인가 화두를 들고 다니다가

드디어 황벽스님을 도시 사찰로 모시고 조석으로 찾아다니면서

법을 묻고 들은 것입니다. 그것이 전심법요, 완능록입니다.

이 선서들은 일반인을 위하여 설했기 때문에 비교적 자세하고 있는 것 그대로 설해서

다른 선서들과 매우 다릅니다. 그래서 선을 배우는 초심자들에게는 좋은 참고서가 됩니다.

그런데.그러면 그때 황벽스님이 배휴야! 하고 물은 것과

여기 부처님께서 수보리야! 하고 부른 것과 같습니까? 다릅니까?

만약 같다면 도대체 어떤 의미가 있어서 같고

다르다면 어떻게 다른가가 우리가 분석해야할 바입니다.

만약에 저에게 같은가 다른가 묻는다면

산너머 산을 물어서 무얼하시렵니까? 하고 반문하고

수보리야 하고 물은 뜻을 말해보라 하면

연꽃님? 하고 부르겠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한량없는 아승지 세계에 가득찬 칠보를 가지고

보시할지라도

만약 또 어떤 선남자 선여인 중에 보살심을 발한 자가

남에게 보시하는 것 참 좋은 복을 짓는 것입니다.

이보다 더 좋은 것은 없어요,

그러나 남에게 베풀어서 복을 짓는 것도 여러종류가 있어요.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베품은 집착을 여의는 공부입니다.

우리는 가능한 남에게 주는 공부를 잘 해야 합니다.

남에게 줌은 주는 것이 아니고 ....받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에게 주면 많은 사람에게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물질적인 보시와 함께 ....불자들은 또 한가지 더 주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부처님의 말씀입니다.

부처님의 말씀, 이것 참 따분하고 돈생기는 것이 아닌데

왜 자꾸 베풀라고 말하는지 잘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보리심을 발한 자는 깨달음을 얻으려는 자입니다.

깨달음은 '자기를 아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자기를 아는 것이 첫째로 해야할 과제입니다.

그런데 불교는 '너는 부처니라....' 하고 가르칩니다.

이것 대단한 선언입니다.

다른 곳은 다 너는 종이다, 범부이다, 사람이다....이렇게 가르치는데

불교는 너는 부처라고 가르쳐요

물론 처음에는 선듯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이렇게 나 자신을 깨달아가면 정말 편안한 인생을 살수있습니다.

항상 담담하고,,,당당하고....고요하고....기쁨으로 가득한 삶이 됩니다.

그리고 이끌리는 자가 아니고 이끄는 자가 되요.

매사 능동적인 사람과 피동적인 사람은 삶의 질이 달라요.

무엇을 해도 능동적으로 하기 땜에 능률이 오르고 창의성이 발휘됩니다.

이런 삶은 미래에 부처님의 세계를 만드는 지름길입니다.

황우석 교수가 줄기세포를 재생하는 연구를 하니까

우리나라 일부 종교에서도 윤리적인 문제를 들고 나왔어요.

이것은 2백년전의 상황과 매우 흡사합니다.

서양의 코페르니쿠수가 지구는 돈다고 했더니

신성모독이라면서 비판했어요.

또 500년전에는 유럽에 콜레라가 유행하였는데

신은 절대 이러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마녀가 마술을 부려서 그렇다고 하면서

마녀사냥에 나섰습니다.

그래서 여자가 좀 똑똑하고 대가 센 여자들은 다 색출해서 태워죽였어요.

나무아미타불....

몇 백년이 지난 오늘날 사과해보아야 무슨 소용입니까?

당시에는 얼마나 억울한 일이였겠습니까?

그 가족의 억울하고 분통터지는 기분을 누가 알겟어요?

저는 오늘 금강경 강의 마지막날 기독교를 비판하려고 이런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흑사병이 돌 때인 500년 전의 유럽은 기독교의 교리가 큰 지식이었어요.

그것만 알면 최고로 유식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모든 선악의 판단을 기독교식으로 했어요.

그것들이 오늘날 우리가 보면 얼마나 허황된 것들입니까?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여러분이 알고 있는 그 지식...

그 생각의 위험성을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물론 지금은 종교가 뒤로 가고 과학이라는 신지식이 사람들을 많이 객관적으로 서게 하였지만

이 신지식 또한 허망한 단정이라는 것입니다.

이미 물리학에서 물체는 빈 공간에 에너지가 돌고 있는 원소들의 집합이라는 결론을 내렸어요.

그리고 위라는 개념, 아래라는 개념, 이것도 영원한 개념이 아니고 상대적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가끔 밤 하늘의 별을 쳐다봅니다.

그런데 쳐다 보면서 위에 있는 저 별은 사실 위가 아니라 아래일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고 있어요.

아니, 분명 위를 쳐다 보아야 별이 보이는데

어떻게 저것이 아래일수가 있을까...굼금하겠으나

우주는 위라는 개념이 없어요. 오직 지구가 만유인력의 법칙으로

물체를 지구로 잡아당기기 땜에 사람도 땅으로 잡아당기고 있으니까

머리가 있고 발이 있고 그래서 상하가 있어요.

상하는 오직 사람이 통하는 말이지 절대적인 언어가 아닙니다.

우주는 위 아래가 없어요. 그렇다면 진실은 위아래가 없다는 말입니다.

동시에 물체는 공이니 헛된 것이 뭉쳐서 된 것이고 사람도 헛된 것이 뭉쳐서 된 사람일 뿐입니다.

그런데 무엇이 위대하고 천합니까? 오직 평등할 뿐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끝없이 지식에 의존하고 습관에 의존하여

그 지식과 습관이 마치 올바름을 평가하는 잣대인 것처럼

남을 무시하고 ....욕하고....평가합니다.

각종 관습과....지식을 벗어나지 못하고...거기에 노예가 되어서

남을 평가하고 사람을 평가하고 자기를 평가합니다.

부족한 언어....완전하지 못한 의미로 단정하고 그렇다고 확신해요.

이것이 바로 마녀사냥이 있었던 500년전의 상황과 흡사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불교에서는 이미 2천 5백년전부터

붓다가 말에 의존하지 말고 뜻에 따라가지 말라고 하였어요.

모든 것은 물거품이요, 환영과 같다고 햇어요.

이것, 대단한 선언입니다.

모두 물질의 노예가 되어서 부와 빈을 나누어놓고

귀와 천을 나누어놓을 때 부처님은 인간은 평등하다고 했서요.

확신은 참 위험한 것입니다.

특히 철학이나 종교에서 확신은 곧 얼마가지 않아서 파괴되고 맙니다.

기독교는 언제나 뒤에 가서 사죄하고 새로운 이론을 세워서 스스로 존립하려고 합니다. 처세술이 대단해요.

불교와는 달라요. 불교는 무엇도 세우지 마라고 하지만

기독교는 끝없이 새로운 것을 세우고 과거를 비판합니다.

얼마전 휴거라고 하면서 하늘에 올라간다고 날개옷을 입고 산상에서 기도하는 수 많은 사람들이 있었어요.

한때 방송에서 큰 뉴스가 되었었지요.

그때 기독교 분위기는 전 나라가 휴거에 들떠서 안믿는 자는 최후의 심판을 준다면서

연신 사람들을 유혹햇어요.

당시 그런 기독교를 아무도 비판하지 않았고 교인들은 너나할 것 없이 동조했어요.

드디어 심판의 날이 다가오자 하나 둘씩 그 대열에서 벗어나는 교인들이 있었고

미친 듯이 예언을 믿고 산 위에 올라가

데려가 달라고 날아가려고 했으나 그날.....아무일도 안 일어났어요.

그러면 또 반성하고 비판하면서 새로운 기독교가 되어야 한다고 또 새로운 것을 새웁니다.

이렇게 의미에....말에...예언에 쫓아가다보면 항상 그 일에 종사하는 사람은 배부르게 되고

무지한 사람은 어리석게 쫓아다니는 일이 생겨요.

이것이 문제입니다.

지식은 우리가 살아가는데 매우 유용하고 편리한 도구인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지식으로 인하여 사람을 미워하거나 핍박한다면 지식은 불행을 불러오는 도구일뿐입니다.

어떠한 앎도 절대적으로 맞는 앎이 아닙니다.

다만 그렇게 알고 있는 앎일 뿐입니다. 지식은 허망한 것이고 사람은 고귀합니다.

지식으로 사람을 불행하게 해서는 안됩니다. 따라서 지식을 잘 사용해야지 끌려가면 안됩니다.

그래서 불교를 널리 신행하는 것 참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불교를 전파하고 깨달음을 전파하는 일은 너를 찾으라는 선언이요, 진실을 전파하는 운동입니다.

이런 전파는 자신 있게 해야하고 열심히 해야 합니다.

오늘 여러분이 알아야하는 것은

제가 여기서 근 6개월간 열심히 전했듯이 여러분도 전해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 큰 복이 되지 금은 보화를 남에게 준 것이 무슨 그리 큰 복이 되겠습니까?

금은 보화를 남에게 주는 것은 그때만 즐겁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신을 살리는것은 천년 만년동안 위대한 나라, 생각하는 나라, 능동적이고 창의적인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모두 이 땅의 주인이 되어서 내가 한 것을 책임질 줄 알고 사람을 존중하는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무엇보다도 큰 복을 지으려면 부처님의 말씀을 열심히 전파하시기 바랍니다.

쑥스럽다 하지 마시고 언제 어디서나 각자 부처가 되어서 당당하게 전파하세요.

이 경전을 가지되 내지 사구게 등이라도 수지하고 독송하여 남을 위해 연설하면 그 복이 저보다 수승하리라.

부처님의 말은 그냥 여러분이 알고 있는 것을 말하면됩니다.

부처님의 말씀은 따로 없어요. 단 한 마디만 알고 있으면 되요.

네가 부처니라...그러니까 부처의 길을 가라.

여기 금강경에서는 4마디만 외워도 큰 복이 된다고 했어요.

우리가 금강경을 공부하면서 최소한 4마디라도 지니거나 외우거나 남에게 연설해주라는 것은

그만큼 진실을 강조하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불자라면 단 4마디만은 외워야 합니다.

다행히 금강경 전 구절을 외우는 분도 상당히 많습니다만 최소한 4마디는 다 외우도록 하세요.

전파하는 자료가 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남을 위해 연설하는가.

상을 취하지 않고 여여히 동하지 않느니라.

남에게 경을 전할 때는 如如不動의 자세로 하라는 것입니다.

누가 뭐라고 하는데 조금만 다른 이견을 내면 마음이 동해서는 안됩니다.

먼저 여러분이 고요해야 합니다.

금강경의 대의는 척사견 현정법(斥邪見現正法) 입니다.

삿된 견해는 물리치고 바른 진리는 드러내게 한다는 뜻입니다.

무엇이든지 한 생각 세우고 말하면 그것은 삿된 견해인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말하되 내부는 항상 고요해야 해요.

이것을 평상시 자꾸 수행해서 나중에는 전혀 어떤 말에도 흔들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그런 상태에서 고요한 마음으로 전파해야 바르게 합니다.

모르는 사람에게는 한꺼번에 다 말하지 말고

쉽게....상대의 입장에 들어가서 하나 하나 하다가

점점 깊은 것을 드러내세요.

깊은 것, 이것은 아무 것도 드러내지 않는 것입니다.

명심하세요. 아무것도 드러내지 않아야 금강경을 잘 아는 것입니다.

저 또한 강의하면서 아무것도 드러낸 적이 없어요.

잘 살펴보세요.

조금이라도 들러낸 것이 있으면 사도입니다.

저는 아무 것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부처님도 역시 마찬가지였어요.

아무 것도 드러내지 않았어요.

드러냈으면 부처가 아닙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무슨 까닭인가.

一切有爲法

일체의 함이 있는 법은

如夢幻泡影

꿈과 같고 환상과 물거품과 같고

如露亦如電

그림자 같으며 이슬과 같고 또한 번개와도 같으니

應作如是觀

응당 이와 같이 관할지니라.

부처님의 마지막 선언입니다.

모든 것은 꿈과 같고 이슬과 같고 물거품같고, 그림자같고 번개와 같아요.

인생이 길다고 하나 절대 길지 않습니다. 짧아요.

그래서 번개와 같다고 합니다.

이제 얼마 안있으면 우리중에 먼저 가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인생은 크게 가치 있는 삶이 아닙니다.

그렇게 크게 집착하고, 대단한 의미를 둘만큼 가치있는 것이 아닙니다.

인생은 한편의 꿈입니다. 꿈은 깨고보면 허망하잖아요.

그처럼 우리 인생도 큰 가치는 없습니다.

그러하니 어떤 말에도 꿈 속의 말이요, 의미인 줄 아셔야 합니다.////

어떤 행동도 꿈 속의 사건입니다.

생도 죽음도 다 꿈이어요.

항상 매사 고요한 가운데 과일 맛을 보시고

아름다운 꽃을 보시고 웃음을 보고 ....산을 보고....강을 보세요.

그리고 웃어도 무심으로 하시고 전파도 무심으로 하시고

밥도 무심, 일도 무심, 교육도 무심, 이혼도 무심으로 하시고

만나고 헤어짐도 항상 무심 속에서 하세요.

그렇게 연습하시면 항상 고요하고 행복한 자기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때 알게 됩니다.

아, 이놈은 원래 행복하구나....

이놈은 원래 부처구나....

친구들 하고 대화할 때 뭘 생각하고 합니까? 옐들어 승현이 옷대려야하는데....

남편 장봐야하는데....하면서 대화해요?

그러면 유심입니다.

무심은 오직 그것을 하고 있으면 무심이어요.

옐들어 열심히 일하고, 빨래하고 밥하고 청소하면서

오직 그 일만 하면 무심이고 웃을 때는 웃으세요.

웃으면서 슬퍼하지 말아요.

그러면 유심,

대화할 땐 오직 대화

걸을 때는 오직 걸음

책볼 때는 오직 책봄

기도할 때는 오직 기도함

망상이 들면 유심입니다.

무엇을 해도 오직 그 일만 하면 무심이고 붓다의 마음이어요.

그러니까 무심을 허공처럼 생각하지 마세요.

일상사가 무심입니다.

일상속에 공부하세요.

일념이라도 흩어지는 것을 버리고

한 곳으로 모으는 연습을 자꾸 하면

얼마가지 않아서 저절로 잡념은 없고 하는 일만 남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치를 크게 깨달으면 잡념은 없어져요.

잡념할 가치가 없다는 것을 영혼이 알아요.

담 시간은 반야심경을 하겠습니다.

이렇게 해서 금강경 대단의 막을 내립니다.

그동안 찾아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제 강의 마이 사랑해주시고 소개 마이 하시고

모두 붓다의 행을 하시기 바랍니다.

第31. 知見不生分 (지견을 내지 마라)

 

須菩堤 若人言 佛說我見人見衆生見 壽者見 須菩堤 於意云何 是人解我

수보리 약인언 불설아견인견중생견 수자견 수보리 어의운하 시인해아

 

所說義不. 不也世尊 是人不解如來所說義 何以故. 世尊說 我見人見衆

소설의부. 불야세존 시인불해여래소설의 하이고. 세존설 아견인견중

 

生見壽者見 卽非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 是名 我見 人見 衆生見壽者

생견수자견 즉비아견인견중생견수자견 시명 아견 인견 중생견수자

 

見. 須菩堤, 發阿耨多羅三藐三菩堤心者 於一切法 應如是知 如是見如是

견. 수보리,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자 어일체법 응여시지 여시견여시

 

信 解不生法相. 須菩堤, 所言 法相者 如來說 卽非法相 是名法相.

신 해불생법상. 수보리, 소언 법상자 여래설 즉비법상 시명법상.

 

아름아리로 아는 체 하지 마라.

 "수보리야, 만약 어떤 사람이 부처님께서 아견, 인견 중생견, 수자견을 설명했다고 말하면 이 사람은 내가 말한 뜻을 알았다고 생각하느냐?"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이 사람은 여래의 말씀하신 뜻을 몰랐습니다. 왜냐하면 세존이 설하신 아견, 인견, 중생견, 수자견은 아견, 인견, 중생견, 수자견이 아니고 이것이 이름하여 아견, 인견, 중생견, 수자견 일 뿐입니다. "

 "수보리야,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낸 사람은 일체법을 마땅히 이와같이 알것이며 이와같이 볼것이며 이와같이 믿고 해석해서 법이라는 생각을 내지 말 것이니라. 수보리야, 여기서 말하는 법상이라는 것은 여래께서 설하신 법상이 아니며 이것도 이름하여 법상이라 하느니라. "

 

 

수보리야, 만약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부처님이 아견 인견 중생견 수자견을 말하였다 ’한다면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 사람은 나의 말한 바 뜻을 이해하고 있는 것이겠느냐? ”

“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그 사람은 여래께서 말씀하신 뜻을 알지 못한 것입니다.

자, 여기서는 아견 인견 수자견 중생견을 과연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적이 있느냐라는 질문입니다.

과연 부처님께서 말한 적이 있습니까?

부처님은 절대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을 말한 적이 없습니다.

이제 금강경의 후반부에 들어왔는데 아직도 이렇게 말하는 이유를 모르면 안됩니다.

부처님의 본질을 질문한 것입니다.

불교는 일상사 말과 행동을 그대로 합니다.

그러나 그 내부가 완전히 달라요.

이것이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말하고 싶은 점입니다.

그렇게 말은 해도 너의 내부는 항상 고요해라.

논어... 공자님의 책을 주한 것은 집주라고 합니다.

거기에 보면 德에 대한 여러 사람의 설명이 나오는데

中庸이요, 中和가 덕이라고 했어요.

그런데 무엇이 중화인가에서 주희라는 사람이 말하길

희노애락이 일어나지 않는것이라고 했습니다.

즉 감정이 없는 상태가 德이라고 했어요.

감정은 사적인 것이니까 그것을 여읜 자라면 공평정대하고 고요한 자이지요.

그런 사람이 군자라고 했는데 덕을 갖춘자.....군자

그 덕을 갖추려면 내부가 고요해야 합니다.

불교에서는 그런 사람을 깨달은 자라고 했어요.

그 무엇을 말해도 고요한 자, 그 무엇을 들어도 고요한 자

이런 사람이 깨달은 자입니다.

조그마한 말에 삐기고 화를 내고 나가고 하는 자는 소인입니다.

감정에 치우쳤잖아요.

“수보리야,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한 사람은

모든 법을 응당 이와 같이 알며 이와 같이 보며 이와 같이 믿어서

법이란 상을 내지 않아야 하느니라.

이와 같이....... 여지껏 제가 설명했듯이

몇개월전부터 화요일마다 이렇게 말했듯이

사물의 진실을 이렇게 알고 이렇게 깨달아서 말에... 뜻에... 유혹되지 말라는 말 말입니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낸 자=가장 높고 깊은 깨달음을 얻으려는마음을 낸자)

이렇게 보라...... 이렇게 믿으라........ 이렇게 알라........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런 법을 안다는 상도 내지마라....

法相=법을 안다는 상

무엇을 안다는 것도 병입니다. 큰 병이어요.

저 앞에서 말했지요?

모든 것은 자기 마음이 지은 것이기 때문에 그 지은 것은 진실이 아니고 허망한 것입니다.

그런데 무엇을 안다고 이러니 저러니......

없는 것도 없고......없다는 것도 없고.....

허공을 가르는 천등 소리라는 둥....별 별 희안한 말을 다하지만

결국 한 생각에서 나온 것이고 모두 헛된 꿈처럼 헛된 것일 뿐입니다.

그런 것으로 진실을 보고 화두의 뜻을 보려고 해서는 안되요.

화두는 아무것도 몰랐을 때 답이 뛰어나오는 것인데

빈 것에다가 아는 것을 잔득 채웠는데 어떻게 답이 나타나겠습니까?

아직도 경계에 얽매여있고 아는 것을..즉 허망한 것을 붙들고 있는데 어떻게 진실이 보이겠어요?

가당치도 않습니다.

수보리야, 말한 바 법상이란 여래가 설하되 곧 법상이 아니고 그 이름이 법상이니라.

마음이 푹 쉬어져야 해요. 모든 것은 다만 명칭일 뿐입니다.

마음을 쉬지 않고는 아무리 높은 단계를 보여도 결국 한 생각이 일어난 것을 보일 뿐입니다.

더 이상 알 것이 없고 알고 싶지도 않고 나를 내세을 것도 없고 알았다는 것도 없고....

모른다......정말 나는 모른다.... 부처님처럼 나는 하나도 말하지 않았다....

나는 부처가 아니다....평범한 사람이다.... 이렇게 무심으로 시간을 보내야 해요.

그러다 보면 문득 아, 아, 이것이구나.....하고 알아져요.

그때 조사들의 기연언구를 보고 막히는 것이 있는가 없는가 점검하고....

거기서도 막힘이 없으면 그때 내 견해를 점검해줄 스승을 찾아가 물어야 합니다.

물을 스승이 없다는 것은 큰 병이어요. 반드시 물어야 하고 점검을 받아야 해요.

스님들도 수십년 공부하였어도 점검하는데 아직 앎도 버리지 못한 자가 어찌 우리나라에는 스승이 없다하고

나를 인정해줄 선사가 없다고 망말을 합니다.

스스로 눈앞에 망사가 쒸워진 사람이 누가 스승인지 어떻게 제대로 구분한단 말입니까?

깨닫지 못한 자가 어떻게 스승을 가립니까? 이것 큰 병입니다.

짧은 시간에 안 것을 깨달았다고 스스로 내세우면 그것 큰 병인줄 알아야 합니다.

나는 지금 가능한 여러분을 깨닫게 하기 위하여 갖은 수단을 다 보이고 있어요.

오늘도 저는 다른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것까지 보여가면서 인도했어요.

저 높은 산에 붙잡고 올라가서 동굴 입구까지 인도했는데

최후에 들여다 보는 것은 내가 아닌 여러분이 해야 합니다. 두 눈으로 똑똑하게 확인해야 해요.

그래야 자기 것이 됩니다.

제가 다 가르쳐주면 절대 여러분 것이 안되요.

오늘 말한 '사물의 진실!' 이것 잘 명상해보시고 제 말이 그른가 맞는가 잘 생각해보시고

즉시 사물의 진실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해야 합니다.

각성! 깊은 각성! 이것은 어러분 몫입니다.

그리고 마음을 푹 쉬고 조금만 기다리세요.

그러면 안보이던 것도 다 보이고 모든 것의 해답이 줄줄이 나타나게 되어있습니다.

절대 성급하게 맘먹어서.... 오히려 맑은 심성을 흐려놓지 마세요.

다만 일어나는 마음을 쉬고 앉아있으면 봄꽃이 앞에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믿으소서....

그리하여 우리 카페에서 도인들이 우후죽순 나와서 전통 선불교를 살리고 원오, 대혜스님이 전법하였던 재가 선불교를 살려야 합니다.

저는 여러분을 깨닫게 하려고 하지 깨달음을 막으려는 사람이 아님을 명심하세요.

전 가능한 여러분이 들어가라고 등미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밀어도 안들어가는 것은 어쩔수 없어요. 그것은 여러분에게 달려있어요.

다음 시간은 마지막입니다.

마지막 강의를 한번 잘 해봅시당.

끝으로 언젠가도 말했지만 여기 금강경강의에 모든 답을 넣어놓았습니다.

물론 전심법요와 완능록에도 넣어놓았어요.

이제 여러분이 조만간 해답을 얻는 날, 한번 보시면 전부 해답임을 아시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까 멀리 보지 마시고 금강경, 전심법요, 완능록, 무심론을 읽고 깨달음이 일어나도록 하십시오.

물론 앞으로도 제 강의 잘 들으시면 언젠가 답이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믿으셔도 좋습니다. 그럼 오늘 강의 끝냅니다.

第30. 一合理相分 (한 덩어리의 이치)

 

須菩堤 若善男子 善女人以 三千大千世界 碎爲微塵 於意云何. 是微塵衆

수보리 약선남자 선녀인이 삼천대천세계 쇄위미진 어의운하. 시미진중

 

寧爲多不. 甚多世尊 何以故 若是微塵衆 實有者 佛卽不說 是微塵衆 所以

영위다부. 심다세존 하이고 약시미진중 실유자 불즉불설 시미진중 소이

 

者何, 佛說微塵衆 卽非微塵衆 是名微塵衆. 世尊, 如來所說 三千大千世界

자하, 불설미진중 즉비미진중 시명미진중. 세존, 여래소설 삼천대천세계

 

卽非世界 是名世界 何以故 若世界 實有者 卽是一合相 如來說 一合相

즉비세계 시명세계 하이고 약세계 실유자 즉시일합상 여래설 일합상

 

卽非一合相 是名一合相. 須菩堤 一合相者 卽是不可說 但凡夫之人 貪著其事

즉비일합상 시명일합상. 수보리 일합상자 즉시불가설 단범부지인 탐저기사

 

본래는 하나다.

"수보리야, 착한 남자나 착한 여인이 삼천대천세계를 부수어서 가루를 만든다면 이 가루가 많다고 생각하느냐?"

수보리 대답하되,

"매우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이 가루들이 실제로 있다면 부처님은 이 가루들을 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부처님이 설명하신 가루들은 가루라고 할 근거가 없고, 이름이 가루일 따름입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설하신 삼천대천세계는 중생의 업력으로 그렇게 건립된 것이지

중생의 업력이 없이는 건립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어리석은 마음으로 세계가 건립됐으니 세계라 할 수 없으며 이름하여 세계입니다"

"수보리야, 일합상이란 설명할 수 없는 것인데 근거없는 이것을 가지고 보통 사람들이 이 일에 집착하느니라. "

 

 

수보리야,

만약 선남자 선여인이 삼천대천세계를 부수어 작은 먼지로 만든다면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 작은 먼지들이 얼마나 많겠느냐?

“매우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자, 여기서 수보리나 부처님의 언어 표현법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여기서 많다는 말은 없다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많다=없다

없기 때문에 그것을 많다고 할 수있어요.

많다는 말은 표현이고 없다는 말은 질실입니다.

여기 가까운데 도봉산이 있습니다.

얼마나 크냐하면 주봉(자운봉)이 해발 740m 정도 됩니다.

그리고 덩치는 엄청나요. 서울, 의정부, 경기도 송추까지 걸쳐있으니 어마어마하게 넓지요

그런 덩어리를 말할 때 우리는 높다....크다.....넓다 이래요.

그러나 진실은 크지도 않고, 넓지도 않고, 높지도 않는 것입니다.

모두 한 낱 허망한 먼지들의 모임이고 그 실체는 없는 것입니다.

산' 이라고 하나 산의 주체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먼지가 쌓여있어도 실제로는 없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렇게 생각해야 진실을 보는 것이고 부처님처럼 생각하는 것입니다.

나도 없고 타인도 없고 세계도 없다. 텅빈 우주에 먼지알이 떠있으나 언젠가는 없어진다.

그래서 없다가 진실입니다. 내심으로는 그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나 대화를 위해서는 크다, 넓다, 높다 하고 말하는 것입니다.

무슨 까닭인가 하면 만약 이 작은 먼지들이 실로 있는 것이라면

부처님께서 곧 작은 먼지이라고 말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만약 정말로 연원히 존재하는 것이라면 불멸의 원소라면 먼지라고 말하지 않아요.

근원이라든가 신이라든가 본질이라고 하죠

그러나 곧 모두 없어질 것들이고 지금도 그 실체는 없는 것들이라

먼지....라고 명칭을 말한다는 것입니다.

먼지라는 명칭 자체도 허망한 마음이 만든 것이니까 ....

먼지라고 한다...라는 말입니다.

먼지의 실체도 허망.....먼지라는 명칭도 허망,,,,,

그래서 먼지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만약 허망한 것이 아니라면 절대 먼지라고 할 수 없어요.

아트만이나 브라만이나,,,,,신등으로 불려져야할 것입니다.

까닭이 무엇인가 하면 부처님께서 설하신 작은 먼지들은

곧 작은 먼지들이 아니고 그 이름이 작은 먼지들입니다.

먼지는 먼지라는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고 다만 먼지라는 명칭만 있는 것이다 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부처님이 이외에도....간혹 무엇을 말씀하셔도

그것의 실체가 정말 있어서 그렇게 말하는 것이 아니고

다만 명칭을 부를 뿐이라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설하신 삼천대천세계는 곧 세계가 아니고 그 이름이 세계입니다.

마무리입니다.

그 어떤 것도... 삼천대천 세계도....

삼천대천세계=거대한 우주

모두 한낱 명칭만 존재할 뿐, 그것의 실체는 없다는 말입니다.

두고 두고 잘 생각해보세요.

만약 실체라는 것이 있다면 변하지 말아야 해요. 영원해야 하고, 절대적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변하고 없어지는 것이라면 그것은 실체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 어떤 것이 변하지 않는 것입니까?

모두 변하고 없어집니다. 진실은 없고 헛된 명칭만 돌아다니는 것입니다.

그 명칭도 사람의 머리에서 나왔고....

그 어떤 것도 알고 보면 다만 이 머리속의 '생각'일 뿐입니다.

이 머리에서 한 생각 일어난 것입니다.

그것이 존재의 실체라면 실체입니다. 머리 속의 사건이...

그런데 생각은 어디까지나 생각일뿐 마음도 실체가 없는데

없는 마음에서 만든 생각인들 어찌 실체이겠습니까

모두 빈 마음에서 공연히 헛된 생각만 일으켰다가 사라졌다가 반복하는 것입니다.

빔! 여기가 근원지입니다.

여기서 공연히 생각이 일어나 기쁘고 슬퍼요.

이왕 살라면 고요하고 괴롭지 않게 살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한 생각 일어난 것에 속지 마세요.

어떤 생각도 헛된 것입니다.

사랑, 미움, 분노, 자존심, 없다.....없다는 것도 없다....

이 모두 생각에서 일어난 또 하나의 헛된 생각일 뿐입니다.

여기에 끄달리지 말고 당당하게 자기 마음을 자기가 쓰고 싶은 데에만 사용할 수 있게 하세요.

붓다여러분! 당신이 주인입니다.

주인답게 일체 의미나 생각에 이끌려다니지 말고

당신이 필요한 것에 마음을 사용하는 자가 되어서 매순간 행복하게 살도록 하십시오.

당신은 주인입니다. 당신이 주인이기 때문에 당신 맘대로 할수있습니다.

나는 주인이다!! 이렇게 외치면서 한번 실천해보세요.

잘 될 것입니다. 그래서 당신이 부처입니다.

世尊 如來所說 三千大千世界 卽非世界 是名世界

세존 여래소설 삼천대천세계 즉비세계 시명세계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설하신 삼천대천세계는 곧 세계가 아니고 그 이름이 세계입니다.

지난번 것입니다.

스스로 주인이니깡.....

그러니까 알지 말고 바꿔져야 하는데 그것이 어렵나봐요....

내가 능력이 부족야요.

한번에 수십명 깨닫게 강의해야하는데....우째하면 그렇게 되노,

옛 선사들의 능력이 부럽당.....

명강의라면....그렇게 될텐데....

다 알려주었는데...

스스로 모다 깨닫지 못했을 뿐....이해하는 각도가 다르고 받아들임이 달라서 그래요.

내용은 다 넘어갔어요. 아직 완능록이 남았으니 좀더 가 봅시당

제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인지 그것을 파악해야 해요.

자유게시판 지원님 글에 돈오법 있잖아요.

모를 때는 미인인줄 알고 상사병이 났었는데

알고 보니 추녀야....괴녀

그것을 안 순간 상사병이 나았어요. 따로 닦아서 나은 것이 아니고....

노력해서....수십년 색정을 이기고 고요를 얻어서 나은 것이 아니고....

진실을 깨닫고 나아버렸어요.

그처럼 돈오법도 사물의 진실을 알고 순식간에 깨닫고

본래 평온한 마음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상사병이 나기 전의 고요한 마음....

사물의 진실이 무엇입니까?

사물의 진실이 무엇이야요?

마음이야요.

唯心所作(유심소작)

오직 마음이 지은 것입니다.

꿈이 사실입니까?

꿈은 실제가 아니어요.

마음이 만든 세계입니다.

왜 꿈이 실제가 아닐까요?

마음은 형체가 없으니까 꿈도 실체가 아닙니다.

마음은 빈 것 알지요?

보여요? 볼수가 없지요

그러니까 그것이 본심이고 마음의 실체입니다.

그러니까 마음이 만든 세계는 다 허망한 것입니다.

왜 그런가요? 마음이....비었으니까....

빈 것이 만든 것이니 뿌리가 비었잖아요.

그렇지요? 마음이 빈 놈이라 이 놈이 만든 것 모다 가짜여요.

허망한 것이지요. 그러니까 꿈이 가짜여요.

꿈은 자동 몽상입니다.

어릴 때 공주가 되어서 백마탄 왕자님과 말타고 가는 몽상들 많이 해봤지요?

나는 큰 도사가 되어서 구름을 타고 날라가서 왜적을 무찌르고

금의환영하는 몽상을 참 잘했어요.

돌 위에 올라가 누워서 하늘에 구름이 지나가는 것을 바라보면서

거기 구름에 타고 있는 나를 몽상했지요.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그 몽상이 없어졌어요.

요즘은 평범한 망상도 안하고 삽니다.

그러니가 꿈도 없어요.

그런데 이 공부를 해두지 않은 사람은 하루 종일 망상을 합니다. 일종의 몽상이어요.

일하면서 걸어가면서....자기도 모르게 해요.

이것이 습관되어서 밤에 자동으로 꿈을 꾸어요.

깨고 보면 헛된 것인데도 계속 꿉니다.

그러니까 꿈은 빈 마음에서 허망하게 생긴 것이니까 실제가 아니어요.

마음은 원래 비었으니까 빈 것이 진짜고 빈 위에서 세워진 망상은 가짜입니다.

헛된 것입니다. 마음은 비었기 때문에 늘상 비어있어야 자기 진짜 맘야요.

한 생각이라도 일어나면 가짜요, 본심이 아냐요.

엘들어 더럽다....이것 가짜입니다. 이런 생각이 일어나면 헛된 생각이야요.

깨끗하다....이것도 가짜야요. 그것도 한 생각일 뿐....

깨끗한 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요.

정말 존재하지 않을까요? 깨끗한 것이 있던가요?

정말 깨끗한 것은 없나요? 없습니다

바로 그거야요. 자기가 본 진실을 믿으세요.

그러면 생은 있습니까? 생도 없습니다

그럼 왜 생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원래비어있으니... 그렇습니다.

나는 없어요. 그러니까 생사도 없지요.

그러면 마음이 비었는데 마음이 지은 무엇인들 헛되지 않겠어요?

마음이 비었으니까 그 마음이 지은 것은 다 헛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꿈도 실체가 아니고 망상도 실체가 아니어요.

뿐만 아니라 유다, 무다, 부귀, 가난 ....어떤 의미도 다 허망한 것입니다.

사실이 아닌 약속일 뿐이고.... 이런 사람을 부자라고 하자...하고

이런 사람을 악인이라고 하자....

그럴 뿐 악인과 선인은 원래 존재하지 않아요.

선악의 개념은 사람이 만든 것입니다.

모든 것은 唯心所作이야요

그런데 그 마음이 지은 것 중에 가치 있는 것이 과연 있을까요?

없습니다.. 맞았어요. 단 반개라도 가치있고 믿을 만한 것은 없습니다.

아주 조그마한 것도 모두 마음이 지은 것이고

그것도 헛된 것이야요.

여기까지 잘 이해했지요?

이것이 진실이란 말야요.

모두 마음이 지은 것이고 그것은 헛된 것이다.

그러니까 사물의 진실을 즉시 깨닫고 자기 맘에서 일어난 것에 끌려가지 마세요.

오직 고요함....적멸(寂滅)..... 이것만이 그대의 진심이요,

사물의 진실이야요. 모다 이름뿐이지, 실체가 없어요.

옛날에 황진이는 님이 보고 싶어서 시를 지었어요.

둥짓달 기나 긴 밤 한 허리를 버혀내어

춘풍 니불 아래 서리 서리 넣었다가

어른님 오시어든 구베구베펴리라.

대단한 여인야요.

님을 보고 싶은 마음이 이렇게 애뜻하게 표현하다니

그 얼마 있다가 또 시를 지엇어요.

설월이 만창한데 바람아 부지마라

예리성 아닌 줄은 판연히 알건마는

행여긴가 하노라

예리성=신끄는 소리

그렇게 님이 보고 싶었고 서화담이 오는 날에는

춤과 그림과 시로서 밤이 가는 줄 모르고 시간을 보냈어요.

그렇게 그리운 님도 죽고.........

추사가 부인에게 보고 싶고 사랑하는 마음을 그렇게 유명한 편지글로 써보내도 죽고......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도 죽고........

양귀비도 죽었어요.

왜 죽었을까요? 모다 왜 죽었을까.....?

이것이 중학교때부터 내 화두였지요.

왜 죽었나?

허망하고 헛된 것은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꿈도 헛된 것이라 없어지듯 인생도 결국 꿈이니까 없어져요.

단번에 진실을 깨닫고 병을 고쳐요.

아울러 중생병도 고쳐서 한 생각이라도 일어나면 그것이 곧 병인 줄 알고

중지시키세요. 그렇게 얼마동안 지나가면 스스로 알게 될 것입니다.

모든 것을....병들은 청년들이 미인의 진실을 깨닫고 상사병을 즉시 고치듯이

세상의 진실을 깨닫는 것이 중요해요.

그러면 평온한 마음이 저절로 찾아옵니다.

미인을 사랑하는 맘을 버릴려고 산 속에 들어가서 호흡을 조절하고 마음을 닦는다고 ...

사랑을 버린다고.... 수십년 보내는 방법은 시간이 많이 걸려요.

즉시 진실을 깨달으면........ 깊이 깨달으면 붓다의 마음은 금방 회복됩니다.

저절로 고요해서 그 무엇에도 끌려가지 않습니다.

단지 내가 필요한 것만 사용하죠.

이것이 돈오법이고 이것을 옛 선사들은 강조햇어요.

사물의 진실을 깨달아라. 그러면 즉시 되돌아오리라.

왜냐하면 저 세계가 실로 있다라는 것은 곧 일합상(一合相)이니,

모든 것은 하나로 모인 상입니다.

一合相=한 덩어리로 뭉친 것

즉, 이런 저런 인연이 모여서 하나의 상을 이룬 것이 세계입니다.

저 세계뿐만 아니라 우주도 많은 먼지가 하나로 뭉쳐진 모습을 보일 뿐....

그것의 진실은 없습니다.

여기 안경이 있습니다.

무엇이 안경인가 분석해보고 해부해봐요.

유리, 철, 뿔, 돋보기....이것이 모여서 안경이라는 이름이 붙었지

실제의 안경은 없어요. 명칭만 있는 것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여요.

地水火風...... 이 네가지로 분리하면 사람은 없어요.

모여서 하나가 되어 상을 이루는 것 ...그리고 거기다가 명칭을 붙인 것 그것이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일합상이라고 부르지만 그것의 실체는 없는 것입니다.

우주의 근원이 공이기 때문에 공에서 만들어진 모든 것은 다 그 실체가 없어요.

뿌리가 공인데 무엇인들 실체있겠습니까?

여래께서 설하신 일합상(一合相)도 일합상(一合相)이 아니고 그 이름이 일합상(一合相)입니다.”

지금 수보리가 부처님께 말씀하고 있어요.

부처님께서 일합상이라고 하시지만

그것도 일합상이라는 실체가 있어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고

다만 말하기 위하여 명칭만 부른다는 말입니다.

금강경은 두 가지를 다 드러내놓고 있어요.

하나는 근원이요, 진실이고 또 하나는 세상을 사는 방법을 설하고 있습니다.

부처님은 평상시 평범하게 대화하고 설법합니다.

그러나 그 내부는 완전히 달라요.

부처님께서 福이라고 말해도 정말 복이 있어서 그렇게 말하는 것이 아니고

다만 명칭을 부를 뿐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부처님의 평범한 인생을 배워야 해요.

부처님은 평범한 말을 하시면서 편안하게 사셨어요.

특별한 말은 없어요. 다만 내부가 항상 고요할 뿐입니다.

산을 말해도 명칭이 산일뿐이고 부처라고 말해도 명칭이 부처이고

중생이라고 말해도 명칭이 중생일 뿐이고 그 무엇을 말해도 집착하거나 그것이 정말 존재한다거나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이것을 배워야 합니다. 부처님은 평범하게 말할 뿐이다.

이것 명심하세요.

여러분은 처음에 자꾸 신비한 것....고상한 것....깊고 깊은 것을 찾아다니나...

시간이 갈수록 평범해지는 자신을 발견할 거예요.

여기는 부처의 길을 가르치고 그것이 누구도 모방하지 않는 자기만의 길을 가는 편범한 인생을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옛날 도인은 길에서 도인을 만나거든 道를 묻지마라 했어요.

그러면 무엇을 묻습니까?

잘 지내셨는교? 이렇게 물으면 되지 이론은 왜 세워요.

어데 갔다 오느냐고 물어도 오해합니다. 어디...이것이 의미심장한 말야요.

조금이라도 도와 관련돤 말은 하시면 안되요.

수보리야, 일합상(一合相)이란 곧 말할 수 없는 것이어늘

다만 범부들이 그 일에 탐착할 뿐이니라.

일합상=산, 나무, 돌, 사람....

일합상은 그 실체가 없기 때문에 원래 산, 나무, 사람, 동물 이렇게 말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사람이란 일합상도 하나의 명칭일 뿐인데 그것에 대단한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어요.

의미를 부여함은 어리석은 짓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름을 부르면서 그것이 진짜라고....실체라고....탐착하게 됩니다.

그래서 중생의 고통이 쉬지 않는 것입니다.

탐착! 이것이 스스로를 괴롭히는 원인입니다.

여러분, 집착하지 마세요. 우리는 받아들여야 합니다.

죽음도 성공도....실패도....어짜피 누구나 받아들일수 밖에 없습니다.

전생 업보가 있으니...

그렇게 받아들여도 그기에 집착하지 말고 항상 고요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第29.威儀寂靜分 (위이가 적정함)

 

須菩堤 若有人言 如來 若來若去 若坐若臥 是人 不解我 所說義. 何以故如

수보리 약유인언 여래 약래약거 약좌약와 시인 불해아 소설의. 하이고여

 

來者無 從來亦 無所去 故名如來.

래자무 종래역 무소거 고명여래.

 

부처님 적정에 드시다

"수보리야, '어떤 사람이 여래께서 오신다. 여래께서 가신다, 여래께서 앉으셨다. 여래께서 누우셨다. '고 하면

이 사람은 내뜻을 모르는 사람이니라. 왜냐하면 부처님은 그냥 우주에 꽉찬 광명인데 어떻게 오며, 어떻게 가며,

또 앉기는 무엇이 앉고, 드러눕기는 무엇이 드러눕느냐. 그러니 여래는 온 곳도 없으며 간 곳도 없으니 곧 여래니라. "

 

위의라는 말은 위세, 풍채, 품위, 위엄이라는 뜻입니다.

부처님의 품위가 고요하다는 것입니다.

언제나 그 모습에 고요함이 깃들어있다....

수보리야,

여기에 모든 것이 들어있다고 하였는데...

어째서 그런지 모두 문제 풀어오셨습니까?

그럼 어디 말해보세요.

수보리야.여기에 모든 것이 들어있다....

답이 없으면 다음으로 넘깁니당...

수보리야, 만약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여래는 오기도 하고 가기도 하며 앉기도 하고 눕기도 한다’

라고 말한다면 이 사람은 나의 설한 바 뜻을 알지 못함이니라.

우리가 보통 말할 때에 부처님께서 저기 오신다

부처님께서 법문하고 가셨다 부처님께서 피곤하여 누우셨다

이런 말을 하곤하겠죠? 실제로 같이 생활하다면 말입니다.

▶ 여래=부처님

그런데 그렇게 부처님이 간다, 온다, 앉는다, 눞는다 등등의 말을 한다면

그것을 부처님이 그동안 한 말의 뜻을 아직 못알아 들은 것이라는 말입니다.

간다고 하나 무엇이 갑니까?

갈 것이 없는데 무엇이 가고 올 것이 없는데 무엇이 옵니까?

지난 시간에 부처님께서는 무아(無我)를 알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나는 없다.........이것이 부처님의 중요한 사상중에 하나입니다.

나가 없으니 어찌 무불이 있고 눈송이가 있고 석가불이 있겠습니까?

무두 명칭만 있는 것이지 신제로 무엇이 존재하지는 않습니다.

이름만 존재해요.....이름,,,,,명칭,,,,,

산, 나무, 돌, 물, 과일, 자동차, 우주선,,,,

이 모두를 뜯어서 그 실체를 알려고 해부해보아도 거기에

주인공은 나오지 않습니다.

허망한 것들을 모아놓고 지동차, 비행기, 사람, 선재,,,이렇게

명칭을 붙이는 것입니다. 레고알지요?

레고....애들이 우주선만들었다가 자동차 만들었다가 하는 장난감

그것을 모아 붙여서 각종 모양을 만듭니다.

예를 들어 누가 레고로 비행기를 만들었다고 합시다.

실제 크기의 2명이 들어가는 정도로 약 5m정도의 큰 비행기를 만들었다고 가정합시다.

그것을 어디에서 전시해 봐요. 근사해질거예요.

그것을 마치 진짜 비행기같이 만들었다 해봐요.

아이들이 아닌 어떤 예술가가 그렇게 했다고 가정합시다

의자, 핸들, 기어, 계기판까지 레고로 만들었다면 그 비행기 참 대단하겠죠?

꼬리까지 근사해서......누가 멀리서보면 영판 비행기입니다.

그러나 실제는 뭡니까? 결국은 레고의 집합아닐까요.

알지요? 무이심님? 레고....말야요.

지금 무이심님 들으라고 하는 말야요.

그것 이름이 {레고} 하니던가?

무이심

▶ 네 알지요

무불

▶ 네~~무이심님.

무이심

▶ 이름이 네고지요

무이심

▶ 이름하여...

무불

▶ 네...네고...우리나,모든 것도 그처럼 작은 원소의 집합입니다.

무이심

▶ 우주의 모든 것도 결국 지수화풍

무불

▶ 그렇지요.

눈송이

▶ 레고..입니다..스님..애들 조립 장난감요~~

그처럼 '나'라는 불변의 원소는 없습니다.

지금 나의 육체를 가지고 아무리 분석해도

거기에 나라는 어떤 존재는 없습니다.

원소의 집합이 있을 뿐이고 그 형체를 이름붙혔을 뿐 이지 '나' 는 없어요.

네~~우리가 이렇게 말하는 것도 성대가 이렇게 만들어 있어서 소리가 나요.

악기가 고장나면 소리가 안나듯이 목이 고장나면 이 소리도 안납니다.

고장 나기전까지 이런 소리가 나고 ....이런 말이 나옵니다.

그렇게 인연지어졌다가 흩어지고...모였다가 흩어지고....

그것의 반복이지.....실체라는 것은 없습니다.

옐들어 요즘 헨드폰 누구라도 가지고 다니지요?

그런데 그 헨드폰의 실체가 있겠습니까?

▶ 실체=진실한 주체

그 헨드폰은 원래 그런 주체 같은 것은 없어요.

어느날 사람이 부속품을 모아 만들어 탄생시킨 것입니다.

그 헨드폰 전원이 끊어지면 한낱 쓰레기일 뿐입니다.

그런데 누가 무엇이 헨드폰의 진실인지 알아보자고 헨드폰을 가지고 분석하고

혹시....헨드폰 신이 있는 것인지 몰라...

헨드폰이 나오기전부터 아미 그런 신은 있었을거야.

그 신은 누구인가? 정말 있는가?

헨드폰의 실체란 정말 있는가?

이 헨드폰이 우주가 생기기전부터 있었단 말인가?

신들이 가지고 다니던 것인데....정통부에게 전해준 것인가?

하고 누가 헨드폰의 진실을 알려고 좌선하고.하루에 24시간씩 참선하면서...

헨드폰의 실체를 알면 도가 터진다면서 계룡산에서 헨드폰을 높은 데 모셔놓고

매일 예배하면서... 108배 하면서 ^^* 헨드폰님! 님의 진실을 알려주소서....

한다면 그 사람 정상이겠습니까?

그처럼 세상의 어떤 것도 그 진실을 찾으려고 하는 짓은 다 어리석은 짓입니다

실체는 없어요. 서로 다른 것들이 모여서 하나의 체를 이룬 것입니다.

누군가 이름 붙인 명칭만 있지 그 실체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부처님이 간다....온다....눞는다.....하고 말한다면 바르게 말한 것이겠습니까?

마찬가지 입니다. 저기 사람이 걸어오는 구나...

동물이 가는 구나 해도 틀린 것입니다.

물론 말까지 못할순 없지요.

말은 해도 내심으로는 그렇게 생각하지 마라 라는 말입니다.

부처님의 말씀을 오해하면 안됩니다.

그럼 말도 못하겠네..이러면 안되요. 말은 해야지요.

그러나 실제로 저 분이 온다 간다거나 누가 들렸다거나....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생각하지 말고 실제로 그렇다고 여기지도 마라...

이것이 부처님께서 앉아서 천하를 끊는 방법이었어요.

말은 하나 내심은 전혀 인정하지 않는다.

왜 이런 진리의 말씀을 배우는가 하면 우리 인생과 관련되어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지금 문상하고 온 댁은 저희 절에 다니는 어떤 분의 손자입니다.

현재 30세, 중국에서 한의학 박사 과정 이수중 3개월전부터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갑자기 간이 나빠짐.3개월전에 검사결과 급성 간경화임...

3개월간 모든 검사 치료등을 해도 치료되지 않음...

3일전 3천2백만원짜리 의료전용 헬기타고 중국에서 날아옴

삼성의료원에서 이미 복수가 차서 불치라고 선언...

그러나 부모 얼굴 보고.친구들 보고.형제들 보고.편안하게 오늘 오후 1시경 사망함...

장가도 못가고.박사도 못따고....네~~세상은 이런 일이 비일비재해요.

인생은 한 편의 연극과 같습니다.

지금 연꽃님은 어제 같이 등산 가신 분의 장례식장에 문상갔어요.

어제 같이 관악산 갔다가 쫑파티까지 하고 각자 헤어져 집으로 돌아갔는데

그 분이 옥상에서 담배피다가 떨어져 사망....40 후반 그래서 지금 문상하고 있음다

인생은 마치 한편의 꿈이야요.

언제 갈지 모르나 우리 모두 기어이 한 곳으로 갑니다.

언젠가는 이 강의하던 자리도 없어지고 무성한 풀만 날 날이 올 것입니다.

언제 갈지 모르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런데 젊은 나이에 .... 그렇게 간다면 부모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겠습니까?

그때 그 무슨 말이 위안이 되겠어요.

우리는 그저 가서....참 마음이 아프시겠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빌겠습니다. 하고 인사하고 오면 그만이지요.

저는 가서 그랬어요.

우리는 각자 보따리가 있는데 그 보따리에 남아있는 것이 없어서 부처님께서 데려가셨습니다.

기도하시면 좋은 곳에 태어나오니 기도하시고 울지 마시고 담담히 이겨내십시오.

하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래도 그 어머니는 이리 쓸어지고....저리 쓸어지고....

하나 있는 아들을 잃었으니....부모의 심정이 오죽하겠어요?

그래서 우리가 이런 공부하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말씀은 항상 적용됩니다.

24시간 우리의 삶이 곧 부처님의 말씀대로 야요.

혹시 우리가 죽던지... 가까운 사람이 죽거들랑 울지 말아요.불자는 안웁니다.

우리가 만남도 전생의 인연따라 만났고 헤어짐도 인연따라 헤어집니다.

만났으면 헤어짐도 있는 것이 당연히 이치입니다.

그리고 몸은 여기에 두고 가나 영혼은 다음생에 다른 모습으로 또 만나요.

그러니까 슬퍼하지 말고 담담히 잘 보내야 합니다.

먼저간 사람이 더 좋은 곳에 가서 행복하게 지내는지도 모르는데 왜 울고 슬퍼해야 합니까?

담담해야해요. 그렇게 우리 모두 가고 와야 합니다.

아니 담담하면 간 사람도 없고 온 사람도 없어요.

그렇게 살라고....그 무엇이 다가와도 괴로워하지 말고 살라고 지금 부처님께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담담해야 하는가?

여래란 어디로부터 온 바도 없으며 또한 가는 바도 없으므로 여래라 이름하느니라.

▶여래=如來=...같이 왔다

여래란 ....같이 왔다는 말이어요.

이 말은 '온 듯하다' '안온 듯이 온것 같다' 라는 말입니다.

한 마디로 부처님께서는 오지 않았다는 뜻이 '여래'입니다.

온 바도 없고 간 바도 없다는 뜻이 '여래'라는 말이지요.

부처님은 온 바도 없고 간 바도 없어요.

본래 없어서 무아인데 무엇이 오고 가겠습니까?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본래 오지 않았어요.

지금 여러분이 그렇게 앉아서 제 말을 듣고 있으나 듣는 자는 없는 것입니다.

머리가 기계처럼 내용을 듣고 하드(두뇌)에 기억해놓으나 그 주체는 없어요.

그래서 여러분도 여래입니다. 즉, 온 바도 없고 간 바도 없어요.

그런데 어찌 자기가 있다고 그렇게들 집착하고 욕하고 때리고 존심 상하면서 괴로워합니까?

모두 그렇다고....상한다고 생각만 할 뿐...실제로 상하는 자는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 모두가 머리가 만들어낸 사건이고

집착이고....허망한 개념, 가치, 의미를 세우는 것도 마음이고

본래 없었던 것을 세우고 그것 때문에 희노애락에 빠져사는 것도 다 마음이 하는 것입니다.

마음! 이 자가 모든 것을 만들어내는 당사자입니다.

기쁨도 슬픔도 이 자가 만들어요.

그러니 이 마음이 주인이 되어야지 끌려가면 안됩니다.

아직 마음은 냄새나는 것을 좋아하여 쫓아갑니다.

그 마음에 속고 유혹당하면 안되요.

마음이 좋아하는 것....이것에 끌려가지 말고

싫어하는 것에도 끌려가지 말고 속지 마세요.

오직 부처님의 마음..이것만이 당신의 진심입니다.

부처님의 마음을 쓰세요. 중생의 마음에 끄달려가지 말고 말입니다.

第28.不受不貪分 (받지도않고 탐하지도않음)

 

須菩堤 若菩薩以 滿恒河沙等 世界七寶 持用布施 若復有人 知一切法無

수보리 약보살이 만항하사등 세계칠보 지용보시 약부유인 지일체법무

 

我得成於人 此菩薩 勝前菩薩 所得功德 何以故 須菩堤 以諸菩薩 不受福

아득성어인 차보살 승전보살 소득공덕 하이고 수보리 이제보살 불수복

 

德故. 須菩堤白 佛言 世尊, 云何菩薩 不受福德 須菩堤, 菩薩所作福德

덕고. 수보리백 불언 세존, 운하보살 불수복덕 수보리, 보살소작복덕

 

不應貪著 是故說 不受福德.

불응탐저 시고설 불수복덕.

 

받지도 말고 탐내지도 말라

"수보리야, 보살이 항하 모래수 같은 세계에 가득찬 칠보로 남을 위하여 베풀고

어떤 사람이 내가 없는 일체법의 근본을 알아서 그것이 습관이 될 것 같으면

그 공덕은 앞에서 말한 공덕 보다 매우 많을 것이니라.

왜냐하면 모든 보살은 이러한 복덕을 받지 않기 때문이니라. "

수보리 부처님께 여쭈되

"세존이시여, 어떤 것이 '받지 아니하는 복덕'입니까"

"수보리야, 보살이 자기가 지은 복덕에 집착하지 아니하고,

밝은 분께 바치면 항상 밝은 분을 향하게 되니, 이것을 '받지 아니하는 복덕'이라고 하느니라"

 

수보리야,

오랜만에 부처님께서 불러보는 이름이죠?

그런데 이렇게 이름부르는데 심오한 뜻이 있습니다.

사실 부처님께서 수보리야 하고 이름 불렀을 때 강의 다 끝난 것입니다.

아는 사람은 여기서 부처님의 큰 뜻을 봐 버려야 합니다.

금강경 처음할 때 이렇게 이름을 불렀고 지금도 불렀어요.

처음에도 제가 그런 말을 했는데 지금도 그런 말을 했습니다.

그 뜻이 어디에 있는지 파악한 사람 있습니까?

한 마디로 이를줄 알아야 해요.

그래야 깨끗한 도인의 말이 됩니다.

때뭍지 말아야 하고

생각이 붙어도 안되고

뜻이 붙어도 안됩니다.

이제 금강경강의도 얼마 안남았으니까

연구해보세요.

수보리야!

여기에 모든 답이 들어있습니다.

만약 보살이 항하의 모래수와 같은 세계에 가득찬 칠보를 가지고 보시하더라도

만약 또 어떤 사람은 일체법이 我가 없음을 알아서

인욕忍辱을 얻어 이르면 이 보살은 앞의 보살이 얻은 공덕보다 수승하리라.

번역이 좀 난해해졌는데 한 마디로 인욕이 가장 수승하다는 말입니다.

(수승=뛰어나다)

그동안 금강경은 진리 한 구절을 읽거나 간직한 사람의

복이 위대하고 뛰어나다고 했는데

여기서는 인욕이 그 어떤 복보다도 뛰어난 복이 된다고 했습니다.

왜냐면 진정한 인욕은 我가 없음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我가 없음을 알다.......

이것 대단한 말입니다.

그리고 쉽게 하기 어려운 말이고요.

사람들은 쉽게 부처님의 말씀을 말해요.

그러나 참으로 인욕이 되어서 말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인욕이 된다는 말은 곧

무아를 마음 깊은 곳에서 체득했다는 말입니다.

부처님 말씀이나 선사의 말은 체득함이 중요하지 그냥 아는 것은 아무 소용없습니다.

여기 많은 사람들이 다녀갑니다.

어떤 사람은 20년을 불교한 분도 오고....

2~3년만에 불교의 오의를 깨달은 사람도 오고

남을 가르치는 법사님이나 스님들도 옵니다.

모두 와서 자기가 아는 것은 말해요,

그런데 진정으로 법을 알고 말하는 사람은 보기 드믑니다.

모두 남들도 알고 있는 말을 하거나

기억 속에 있는 지식을 나열합니다.

그러면 제가 한번 툭 건드려봅니다.

아, 참 공부많이 하셨군요.

그런데 그 공부에 약간 흠이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이러이러한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어떻습니까? 하고 건드려봐요.

그러면 즉시 반발을 합니다.

그러면 또 '제가 틀린 것이 아니고 님께서 틀렸습니다' 해봐요.

그러면서 그것을 어찌 그렇게 봅니까 하고 자꾸 건드려요.

그러면 금방 반응이 옵니다.

얼굴이 뻘개서 스님은 깨달았습니까?

누구의 법을 받았습니까? 하고 물어요.

그러면서 말이 거칠어지고

어디서 들은 이야기를 막하다가 남 아랑곳하지 않고 휙 나가버립니다.

그렇게 하면 사람들에게 자기의 찌꺼기를 남기고 떠나는 것인줄 몰라요.

이 법은 많이 아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얼마나 평등해졌나....

남을 얼마나 존중하나....

인욕은 어느 정도 되나.....

부처님의 말씀을 단 1초도 잊지 않고 실천하고 있나...이것이 중요합니다.

아무리 많이 알아도 말씀을 체득하지 않으면

아는 것을 자랑하는 것 밖에 안됩니다.

부처님은 한 마디로 말씀하십니다.

아무리 공덕을 쌓고 금강경을 거꾸로 외우고.... 금은 보화로 복을 지어도

我가 없음을 알고 인욕을 실천하는 것 보다 못하다......

아무리 다녀보아도 부처님의 말씀만큼 합리적이고 효과적인 말씀은 없습니다.

부처님은 먼저 인욕을 실천하라 하지 않아요.

먼저 무아를 알라고 합니다.

너는 없다.....

무엇이 너인가?

온갖 자연의 요소가 모여서 너의 몸이 되었는데 그것은 너가 아니다. 자연이다.

진정 너만의 너는 어디에 있느냐?

무엇을 너의 몸이라고 하겠느냐?

수많은 지식이 모여서 너의 마음이 되었는데

그 지식을 다 돌려주고 나면 무엇이 너의 마음인가?

언어.....말 .....이것도 하나의 요소요,

사람이 정하여놓은 의미의 나열인데....

그 의미가 정말 옳던가....

그런 의미를 다 버리면 무엇을 너의 마음이라 하겠는가?

너는 없도다.....

이렇게 무아를 먼저 알게 해줍니다.

금강경의 상(相)은 모양입니다.

마음에서 한 생각이라도 일어나면 그것이 바로 상입니다.

진실을 아는 사람은 아무 말이 없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말하는 의미란 모두 마음이 만든 허망한 의미인데

어찌 말로서 진실을 보이려고 하겠어요.

말 자체가 진실이 아닌 표현인데 어찌 표현으로 진실을 보이겠습니까?

그래서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고 생각하지 않아요.

한 생각이라도 일어나면 모두 허망한 꿈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런 사상이 금강경 사상입니다.

無相, 이것이 금강경의 핵심입니다.

그런데 이 말은 곧 無我를 말하는 것입니다.

만약 무상을 체득하면 저절로 무아도 체득하게 됩니다.

부처님은 이렇게 먼저 사물의 이치를 설하시고 깨닫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알지 말고 체득하도록 해야 합니다.

마음에 새겨지는 것 깊이 깨닫는 것

그래서..... 그 진리가 곧 사실이 되어서 저절로 실천되는 것....

이것이 되어야 다음 단계로 넘어갑니다.

다음 단계란 바로 인욕입니다. 참음...........

이것은 강제로 참으려하면 안되어요.

억지로 참으려하면 오히려 역작용이 나옵니다.

누루는 것은 한계가 있어요.

무엇인가 있으면 눌러도 없어지지 않습니다.

어딘가 한쪽에 남아있어요. 구석에.....쌓여있어요.

그러다가 못참겠으면 폭발합니다.

그래서 전쟁이 일어나고 .....세상이 어지러워요.

그냥 당연한 것을 세워서 참으라하면 그대로 실천되기 어렵습니다.

학교에서 배우는 윤리 교육이 실패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어요.

학생들은 취업이나 시험에 마음이 가 있어요.

그런데 어떻게 당연한 윤리가 체득되겠습니까?

그렇게 가르치기 때문에 실패하는 것입니다.

먼저 당연한 윤리를 실천하기 위해서

부처님처럼 사물의 진실을 알려주어야 합니다.

너는 없느니라.........

이것을 먼저 깨닫게 해주어야 해요.

그리고 그것을 체득했으면 다음으로

당연한 이런 저런 윤리를 실천하라고 하면

한번에 노력할 것도 없이 들은 즉시 실천됩니다.

공공장소에서는 예의를 지켜라.

남들 앞에서 잘난 채 하지 마라.

항상 겸손해라.

남을 배려해라.

그리고 인욕해라..........

인욕은 동서양의 미덕입니다.

모든 성인들이 한결같이 한 말이 인욕입니다.

이런 것을 넉근이 실천됩니다.

예수님께 제자가 물었어요.

얼마나 참아야 합니까?

왼 쪽 뺨을 때리면 오른 쪽 빰을 내주어라.

몇 번을 참아야 합니까?

7번을 참아라.

제자가 듣고 정말 어떤 일을 7번 참았어요.

그런데 8번째 또 일이 생겼어요.

그래서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얼마나 더 참아야 합니까?

네가 그와 같은 수모를 77번 당한다 하여도 참아라.

유명한 이야깁니다.

이 말은 영원히 참으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과연 영원히 참을 수있을까요. 불가능할 거예요.

요즘 사람들은 단 3번도 참기 힘든데 어떻게 77번을 참습니까?

그런데 불교를 공부하면 가능합니다.

나는 없다.라는 사상이 이것이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어요.

체득! 깨달아야 합니다.

가슴에 깊이 새겨져야 가능해요.

만약 불자가 1000번의 수모도 못참는다면 무아를 모르는 것입니다.

무아가 실천되지 않으면 인욕을 모르는 것입니다.

영가스님은 육조스님의 말 한마디에 깨달았어요.

본래 무상(無常)하지도 않고 신속함도 없는 줄을 왜 모르느냐?

이 말 한 마디에 깨달았어요.

무엇을 안 것이 아니고 깨달은 것입니다.

아~본래 무상도 없고.빠름이라는것도 본래 없는 것이었는데.하고 깨달음 것입니다.

이 법은 하나를 깨달으면 동시에 모든 것을 깨닫습니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세밀하게 다 알듯.....

세상사 일에 대하여 예의에 대하여.아름다움에 대하여.겸손에 대하여. 포용에 대하여.......

사랑에 대하여.깨달음과 동시에 다 꿰뚫어요.

그래서 하나를 알면 모든 것을 안다고 한 것입니다.

무뎌질 것은 무뎌지고 예민할 것은 예민해져요.

영가 스님은 한 마디에 모두 깨달은 것입니다.

그래서 깨달았다고 하지, 알았다고 하지 않습니다.

알면 그 부분만 알아요. 그 앎도 어느 때가 되면 잊어버려요.

누가 날보고 야! 똥, 그렇게 더럽게 굴지 마라.라고 말하면

금방 불구부정을 잊고 마음에서 내내 찜찜해합니다.

물론 불경을 좀 읽었다고 겉으로는 표현을 하지 않으나

내내 찜찜한 것이 있어요.

그러다 드디어 폭발하고 말아요....원초적인 모습이 보여요 ....ㅎㅎ

그래서 알지 말고 깨달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수많은 공덕보다도 수많은 복덕 보다도 더 큰 공덕은 인욕입니다.

인욕은 금방 그 효과가 나타나요.

서산스님은 한번 화를 내면 100년의 공덕이 무너진다고 하였지만

반대로 한번 참으면 100년의 공덕을 쌓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상권에서 온 몸을 갈갈이 찢는 고통도 참아냈어요.

그래서 부처님이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인욕을 실천해야 합니다.

도를 닦음도 중요하지만 복이 수승해야. 하고 싶은 것을 합니다.

복이 없으면 세상에 나아가지 못하고 초야에서 이름도 없이 살다가 갑니다.

무슨 까닭인가.

“수보리야, 모든 보살은 복덕을 받지 않는 까닭이니라.”

자, 여기서 부처님은 전혀 반대의 말로서 복의 수승함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참으면 복이 수승하다고 한 이유는 복덕을 받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어요.

참으면 복이 크다고 해놓고.어찌하여 복을 받지 않는다고 하였습니까?

복이 크다면 복을 받아야 할 것인데 복을 받지 않는다고 하였어요.

모다 생각나는 대로 말해보세요.

무불

▶ 왜 참으면 복을 받지 못한다고 했겠습니까?

눈송이

▶ 받을 자도 없습니다....^*^

혜림수

▶ 오고감이없기때문이지요

해인

▶ 복을받아야 할 곳은 세상 받아야하는 이는 고통속의 중생

혜륜

▶ 보살은 했다는 상도 없기 때문에...

무이심

▶ 참는다..복을 받는다..하면....함이 있으므로...

눈송이

▶ 복이란 짓고도 지은바가 없기때문아닌가요..

무이심

▶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에 걸리므로...

해인

▶ 자아로서 복을받나 그 자아는 세상의 자아이기에 복을준이는 바로 세상의 자아

삥~~혜륜님과 눈송이님이 근사치입니다.

보살은 했다는 상이 없습니다. 참았다는 상도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복을 받을 것도 없습니다.

만약 복을 받으면 윤회합니다. 생사윤회

보살은 무심으로 해요. 진정 참았다면 무아를 성취한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행할 사람도 없고 행을 한 것도 없으므로 복을 받지 않습니다.

조심해요. 그래서 보살은 윤회가 끊어지고 대열반에 듭니다.

그러니까 참음도 열반에 이르기 위한 것이지

다시 꿈 속에서 허망한 부귀를 얻기 위함이 아닙니다.

참음은 단지 하나의 일일 뿐, 밥 먹는 일 화장실 가는 일

자는 일 손님접대하는 일처럼 일상사일뿐 무엇을 짓기 위함이 아닙니다.

만약 복을 원하면.원하는 마음이 있으면 큰 복이 되어 다음에 부귀로 살겠으나........

보살은.무아를 체득한 사람은 .원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그래서 얻어지는 것도 없고 참음도 하나의 일일뿐.다음 생의 고리가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열반에 들어 윤회를 중지하는 것입니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어찌하여 보살이 이 복덕을 받지 않습니까. ”

“수보리야, 보살의 지은 바 복덕은 응당 탐착하지 않음이니

이 까닭에 복덕을 받지 않는다고 말하느니라.

무엇을 해도 원함이 있으면 원하는 대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원함이 없으면 얻어지는 것도 없어요.

얻는 것이 없어야 대평안해집니다.내 몸조차 없어야 평안해요.

몸이 있으면 그것 자체가 불행의 그릇입니다.

경을 읽어도 원함이 있으면 이루어집니다.

집을 팔게 해주소서.....하고 신묘장구대다라니 계속 읽으면

희안하게 집이 팔려요.

살려주소서....하고 단번에 신묘장구대다라니 천독을 하면

쉬지 않고 하면 살려주십니다.

그러나 그런 것을 바라지 않고 모두 버리게 하여주소서.....

하나도 갖지 않게 하소서.기도하게 하소서,,,,제발....()

내 안에 아무것도 세우지 않게 하소서....

한 생각도 일으키지 않고.언제나 겸손하고.고요한 마음.부처님의 마음을 회복하게 하소서.....

하면서 신묘장구대다라니를 외우면 희안하게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아무 마장도 붙지 않고....생각이 비워지고 평안하게 됩니다.

저는 30년간 법당에 들어가 신중단과 각단에 다니면서 예배하면서 발원한 것이 있었어요.

항상....쉬어가고 쉬어가게 하소서....했어요.

희안하게 각단에 앞에 서면 이 발원이 저절로 나와요.

그러더니 기어이 한번 쉬게 되었어요.

수십년 발원이 어느날 이루어진 것입니다.

기도는 여러분의 자유로 합니다.

원하거나 원하지 않거나.그러나 처음에는 원해도 자꾸 시간이 지나면서

나중에는 원함이 없고....오히려 버려져야 정상으로 발전해가는 것입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第27.無斷無滅分 (단멸이 없음)

 

須菩堤 汝若作是念 如來不以具足相 故得 阿耨多羅三藐三菩堤須菩堤

수보리 여약작시염 여래불이구족상 고득 아뇩다라 삼먁삼보리수보리

 

莫作是念 如來不以 具足相 故得阿耨多羅三藐三菩堤. 須菩堤, 汝若作

막작시념 여래불이 구족상 고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수보리, 여약작

 

是念 發 阿耨多羅三藐三菩堤心者 說諸法 斷滅莫作是念 何以故.

시념 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자 설제법 단멸막작시념 하이고.

 

發阿耨多羅三藐三菩堤心者 於法 不說斷滅相.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자 어법 불설단멸상.

 

끊어 버려야지, 없애버려야지, 다시는 안해야지를 하지마라.

"수보리야, 여래께서 구족상을 내지 않으려고 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고 생각해서는 아니 되느니라.

또한 여래가 구족상을 내지 않기 때문에 아뇩다라삼먁삼보시를 얻었다고도 생각하지 말아라.

네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마음을 냈다면 모든 법에 대하여 끊어버려야지 없애버려야지 다시는 안해야지를 하지 말아라. 왜냐하면 모든 법에 근본이 있을 이유도 없고, 없을 이유도 없기 때문이니라.

오직 밝은 것이 원인이 되어 결과 이루면 복이 되고, 컴컴한 마음이 원인이 되어 결과 이루면 재앙이라 할 것이니

근본적으로 재앙이 있는지 또는 없는지가 문제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네 스스로 원을 세워 공부해야 하느니라.

 

수보리야,

네가 생각하되 '여래가 32상을 갖추지 못한 연고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하거나

수보리야,

너는 '여래가 32상을 갖추지 못한 연고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고 생각하지 말라.

상에 떨어지지 마라했더니 이번에는

그럼, 부처님께서 32상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깨달음을 얻었다 하지도 마라...

그런 말도 하지 말고 생각도 하지마라....라는 말입니다.

32상을 갖춘 것이 조건도 아니고 32상을 못갖춘 것이 조건도 아닙니다.

그 어디에게 유혹되지 않아야할 뿐,,,,,,

그것을 깨달음이라고 하는 것이지,,,,

32상을 갖추고 못갖춘 것이 깨달음을 얻은 조건이 아니다

욕해도 칭찬해도 같아야 합니다. 마음이 고요 해야해요. 그래서 부처라고 합니다.

얻어먹어도,,,,왕궁에서 부귀가문이어도...마음이 고요하면 그가 깨달은 성자이지,,,,

한 생각, 한 진리, 한 규율에라도 얽매여 있으면 그는 못 깨달은 것이다.

저는 스님이 되어서 어느 순간 내가 사람답지 못하게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어요.

이것 스님이 되는 것은,,,, 수행자이고 지극히 인간적이요, 평범이고,,,,

편안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조직이,,,,규율이,,,,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만들어 놨어요.

한 10년을 이속에 살면 자꾸 자기가 착각해요. 나는 저들이 아니다.,,,,,

그런데 내부는 항상 사람입니다. 여전히 화나고,,,돈을 보면 좋아하고,,,,

예쁜 여자가 와서 좋다하면서 팔짱이라도 끼면 눈이 휙돌아가고,,,,

그러다 보니까 마음이 고요하라고 스님하는데 더이상 고요해지지는 않고....

그렇다고 남들은 주지해서 성공해서...

그랜저차 타고 기사까지 두면서 사는데 나는 그러지도 못하고...

매일 화두에만 정신이 팔려있지 답도 안나타나고.... 그 놈의 깨달음은 언제나 오려는지....

나는 금생에 틀렸는지,,,, 거참, 고민될 때가 한 두번이 아니었어요.

나는 항상 사람으로 살고 싶은데 신도들은 저보고 인간이기를 포기하라고 해요.

항상 자기들이 찾아가면 웃어주고,,,,절을 잘 지키고,,,,

술도 먹지 말고, 바람피는 것은 더욱 안되고,,,,

맘에 드는 사람과 등산도 하지말고...동네니까 소문나니까...

식당에도 가지말고...오직 절에서 나물에 밥을 먹고....인형처럼 그리 살라해봐요......

지금 이순간에도 스님을 이렇게 살아가야 한다고 하는 사람 있으면

그 사람 사람 죽이는 살인자 인줄 알아야 해요.

그 사람 보고,,,절에서 콕 박혀서 그렇게 1년만 살아보라고 해요.

살수있나...자기가 못사는 것을 왜 날보고 그리 살라하는지 몰라요....

나는 항상 내 친구들에게 말해요. 스님친구...

전화오면 야, 바람많이 피거래이...니는 아직 도인도 아닌데 그렇게 수절할 이유가 없당....

나처럼 허리 디스크 수술한 것도 아닌데 ,,,,뭐 어떻노,,,,

재미있게 살다가 가라....어차피 한 세상인데, 가능한 중노릇도 하지마라,,,

중노릇하면 사람 확 버린다...

사람이 되어야 도가 터지는데 그렇게 각종 상에 꽉 잡혀있으니 언제 도가 터질래....

돈 마이 벌거들랑 좋은 여자 만나서 잘 살아봐라...그라믄 그때 도가 터진당...

사람은 확 터져야제, 그렇게 맹꽁이처럼 신도에 매여살면 인생버린당....

그 신도가 니 인생 책임져주는 것도 아니고,,,,하니께....재미있게 살아랑,,,,

그래요...내가 그런 말하면 모다 한바탕 웃고 말아요.

그런데 나는 진짜를 가르쳐주는 것인데 그것을 모르고 있어요.

그러니까 속인이 도를 알려면 출가해야 되고

스님이 도를 알려면 세속에 나가야 해요.

내가 왜 이런 말하나 깊은 뜻이 있으니 한번 헤아려보십시오.

그래서 저도 확 박차고 에잇 중노릇 안한다 하고 맘 한번 크게 먹었는데....

그것이 제대로 잘 안되데요. 그래서 그렇다면 여기서 벗자하고

그 다음부터 누가 뭐라해도 내가 살고 싶은 대로 살았어요.

속인친구들과 니내하고 반말하고 운동끝나면 시원한 막걸리 한 사발 마시고,,,

기분 좋으면 노래방에 가서 실컷 노래부르고...

친두들이 (속인친구) 모다 춤 노래에 도사라....

나는 명함도 못내밀어요. 그냥 노인처럼 흔들다 말아요...

그렇게 몇 년동안을 난 중이 아니다 하고 지내니까,,,,별 일이 다있데요.

뭐 스님들이 별나다 해도 속가는 더 별나요,

남자들 맨 밴뎅이고 말한마디에 생명을 걸고....싸우고....지지고 볶고....

마누라하고 싸우고,,,,연일 지지고 복으면서 말만 하면 안산데요,,,,

그리고는 매일 나한데 와서 자요....

술마시고,,,난 혼자사니까 부담이 없으니까,,,

그렇게 몇 년을 다니다 보니까 뭔가 알았아요.

사람들은 전부 자기 생각에 의존해서 살아요.

그러니까 그놈의 생각이 안나면 답답하고 생각이 나면 주장하고....

생각좀 잘하면 똑똑하고....그런데 아무리 똑똑해도 못난 사람이 부자이고 ....

놀아도 돈 들어오고....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가난하고 사기맞고,,,

세상은 질서가 없어요. 뒤죽 박죽이어요.

그동안 열심히 하면 다 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냐요. 잘해도 업보가 있고,,,,악해도 부자야, 김일성처럼,,,,

그러니까 아무 것도 이것이 옳다고 주장할 수가 없어졌어요. 주장했다하면 틀려져요.

그러다가 뭔가 큰 것을 깨달았어요.

인간의 생각은 짧고 우주는 너무 크다는 것이었어요.

그러니까 나는 아무것도 주장 못하고....바보가 되었는데

그 와중에 화두는 불같이 일어나고

어느날 경을 보니까 경이 전부 세상사에 대한 이야기였어요.

경은 바로 내가 경험한 세상에 대한 돌파구였어요.

그때 크게 깨달았어요.

부처님의 말씀은 승가도 속가도 떠나있구나....

그리고는 마음이 쉬어지기 시작했어요.

참 좋은 경험이었죠...인생을 다시 보는 계기가 되었고....

진짜 인생도 알게 되었고..정해진 틀 속에는 절대 인생의 답이 없습니다.

사람의 영역이 무한히 자유로운데

어찌 사람의 생각에서 나온 규격 속에 인간의 영혼을 가둘 수 있겠습니까?

그 속에서 벗어나야 해요.

32상을 갖추었다는데,,,,,32상을 벗어났다는 데서도 벗어나야 도가 보입니다.

즉 인생의 정답이 보인다는 말입니다.

붓다여러분, 정해진 틀 속에 갇혀서 절대 맹꽁이처럼 생각하고 살지 마시고

생각을 확 터뜨려서 벗어나시기 바랍니다. 도는 저 바깥에 있습니다.

이것 저것에 걸리지 마시고 바로 보세요.

수보리야,

“네가 만약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한 사람은 모든 법이 단멸(斷滅)하다고 말한다.’

라고 생각한다면 그런 생각을 하지 말지니라.

단멸(斷滅)이라는 말은 모두 없다고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는 것입니다.

(끊어질단, 멸할멸자)

(아뇩보리심: 최상의 깨달음을 얻으려는 구도심을 말해요)

즉 수행자인데, 수행자는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말한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이것 참 중요한 가르침입니다.

단멸상은 세상을 무상하다고 보고 거기에 빠져있거나,

허망하게 보거나, 무조건 없다고 보는 시각입니다.

이것 큰 병입니다.

금강경을 공부하다가도 이런 병이 오는 수가 있는데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가 경을 공부하는 것은

세상의 진실을 제대로 살펴보고 잘 살아가기 위한 것인데

무조건 없다는 병에 빠져 있으면 그것은 부처님의 말씀을 제대로 파악한 것이 아니고

없다는 병이 들은 것입니다. 이것을 단멸상이라고 해요.

부처님의 말씀은 어느 곳에도 집착하지 않아야 하는 것입니다.

즉, 유(有)에도 집착하지 말아야 하고 무(無)에도 집착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중생이 지나치게 유에 집착하므로 무를 말하시고

또한 무에 집착하면 유를 말하시는 것이 부처님의 논법이어요.

즉 병을 고치기 위한 것인데 ....병은 '집착'입니다.

그래서 유에 집착하면 무를 말하시고

무에 집착하면 유를 말해서 그 병을 고친 것입니다.

그러면 유도 아니고 무도 아니라는 말인데

세상의 진실은 유도 아니고 무도 아니라면 그럼 뭐겠어요?

세상은 존재하는 것입니까?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까?

저기 꽃이 있다고 하지만 거기 정말 꽃이 있는 것입니까?

꽃이란 무엇입니까? 여러 원소의 집합이 아닐까요?

물, 산소, 빛, 원자들의 집합이 아닐까요?

그것은 꽃이라는 명칭만 있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 모든 원소가 모여서 그러한 현상이 비쳐지는 것을 꽃이라 하지만

그것은 꽃이라는 명칭만 있을뿐. 꽃의 진실(실체)은 없습니다.

그런데 존재 그 자체라고 하면 맞을까요?

그러면 세상의 진실은 유입니까? 무입니까?

왜냐면 없다고 하지만 분명 눈에 무엇인가 보여지 잖아요

그것이 설사 꽃의 실체는 아니나 뭔가 눈 앞에 있잖아요.

꽃이 아니고, 돌이 아니고, 사람이 아니고, 광자가 아니래도....

뭔가 보이는 것은 사실입니다.

(光子...소립자중에 하나 )

그러니 어찌 무라고 말하겠어요?

그러면 세상의 진실은 무입니까? 유입니까?

"有도 아니고 無도 아닙니다." 그러면 무엇입니까?

그것을 도(道)라고 해요.

그럼 도가 유입니까? 무입니까?

그것은 有도 아니고 無도 아닙니다.

그럼 뭡니까?

다만 그러할뿐....말하지 못 하노라.

어찌하여 말하지 못합니까?

말이란 유 아니면 무에 대한 것인데 어찌 그것을 말로 하겠는가?

그러면 중간이라는 말입니까?

중간이라고도 말하지 못 하노라.

어째서 중간도 아닙니까?

말이 진실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니고 뜻이 정확하지 않는데

어찌 중간이라 하리요, 그리고 그것은 중간도 아니니라.

그러면 유도 아니고 무도 아닌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단지 유도 아니고 무도 아닐 뿐이다. 더이상 생각지 마라.

유니 무니 하는 것은 전부 생각에서 나온 것이고

그것은 다 진실을 담지 못한 말이다.

그래서 유도 아니고 무도 아니라고 한 것이다.

그러면 유도 아니고 무도 아닌 따로 무엇이 있습니까?

없다. 단지 그렇게 보라. 유도 아니고 무도 아닌 것이다.

그러니까 한 생각도 붙힐 수 없는 것이 진실이다.

유라고 하나 무이고 무라고 하면 유인데

진실이 어찌 유무에 있겠는가

유무, 색공, 존재와 비존재.... 뭐라고 하여도 그것은 다

좁은 생각에서 나온 것이다.

사람의 생각은 한계가 있다.

알 수 없는 진실, 보이지 않는 진실은 모른다.

그런데 어찌 유무가 맞겠는가.

세상의 진실은 '유도 아니고 무도 아니다' 라는 말이 끝이다.

더이상 생각지 마라. 더 이상은 없다.

그러니까 부처님은 네가 무엇을 말해도 그 말을 쫓아 다니면서 부정할 뿐이다.

네 생각은 전부 유아니면 무를 말하기 때문이다.

유도 아니고 무도 아니라는 말에서 모든 것을 내려놓으라.

이것이 깨달을 수 있는 마지막 말이다.

유도 아니고 무도 아니다.

여기서 또 무슨 생각을 더내고.... 찾아보고 ,,,하겠는가.

단지 생각과 헤아림을 중지하라.

모든 스승들은 단지 이렇게 말한다. '유도 아니고 무도 아니다.....'

이것 뿐이다.

그런데 이 말에서 모두 깨달았다. ....진실을 깨달았다...

수보리는 울었고, 보살과 사리불은 모든 두려움에서 벗어났다.

유니.... 무니....하고 자기가 헤아린 것이었을뿐....

그것은 진실이 아니었다. 그런데 도대체 무엇이 두려웁겠는가....

유도 아니고 무도 아닌데 무엇을 더 알 것이 있단 말인가?

여기서 모두 마음을 쉬었다. 나 또한 여기서 쉬어진 것이다.

더이상 무엇이라고 단정하고 싶고 더 알고 싶은 마음이 들면

아직도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아리송해도 내 말을 아직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진실은 ' 유도 아니고 무도 아니다' 이것이 정답이다.

거기가 끝이다. 최후의 가르침이다. 반야심경의 가르침이고...

대승의 가르침이고 부처님 50대 이후의 가르침이다.

더이상 생각지 말라. 그리고 여기서 바로 마음을 쉬라.

한번에 깨닫고 다시는 어떤 유혹에도 끄달려가지 말라.

아마도 제대로 이해했다면 즉시 유혹되지 않는 자가 될 것이다.

나 또한 이 말에 유혹되지 않는 자가 되었다.

그 누구의 말에도 근사한 포장에도.....명칭에도...욕하는 소리에도 무심일 뿐이었다.

모다 아시겠지요.

그런데 어찌 단멸상에 빠져서 세상을 허망하게 보고

돈벌지 않고 굶으면서 이렇게 사는 것이 도에 가깝다 하리오.

나는 열심히 살아도 생각이 없다.

돈을 벌어도 번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술 살 돈이 있으면 사고 없으면 안산다.

가난해도 가난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떨어져도 올라가도 마음이 항상 똑같다.

매사 도(道)를 실천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유에 대한 집착도 없고 무에 대한 병도 없이

행해도 행함이 없으면 이것이 바로 도를 실천함이고

부처의 길을 가는 것이다.

그러하니 단멸상에 빠진 것을 최상의 깨달음을 얻은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은 병입니다. 병들은 사람이어요.

불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어요.

부처님은 80평생을 열심히 살다가 갔습니다.

무엇때문에 열심히 살았냐고 묻지 마세요.

그냥 몸에서 피가 돌고 있기 때문에 열심히 살았어요.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서라든지.... 중생의 불쌍해서....

진실을 알려주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

행해도 행함이 없이 그렇게 살은 것이 우리 모두의 모범입니다.

무슨 까닭인가 하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한 사람은

법에 있어서 단멸상(斷滅相)을 말하지 않느니라.

만약 단멸상이 있다면.....그 무엇이라도 마음에 있다면....

그 사람은 보리심을 낸 자가 아니어요.

깨달으려고 하는 자가 어찌 머리에 하나라도 두는 것을 허락한단 말입니까?

머리에 아무것도 둔 것이 없어야 깨달음이고 행복인데

이런 작은 것을 가지고 있으면서 어찌 큰 것을 얻으리오.

생각해보세요.내가 아무 것도 가지고 있지 않는데 도대체 무엇이 나를 괴롭히겠어요?

나라는 것..옳다는 것..그르다는것.더럽다는 것..유무.이 모두가 없는데

무엇이 괴롭히겠습니까?

깨달은 즉시 여러분은 편안해지고 행복해질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본래 날 때부터 행복했다고 말한 것입니다.

본래 행복인데 그 놈의 생각이 가로 막아서 그동안 불행이 있었던 것입니다.

만약 한 생각도 내지 않는다면 그때가 곧 행복할 때입니다.

왜 불교를 공부하죠? 마음 편안하려구요.. 그렇습니다.

그러면 그 편한 길이 있으면 해보아야겠지요?

해보아야 행복을 체험할 것이 아닙니까?

행복으로 가는 길이 이보다 더 좋은 것은 없어요.

그렇다면 부처님 말씀대로 해야 합니다.

모두 마음이 만드는 것입니다.

행복도 불행도.어떤 조건도 아닙니다. 마음이 행복하면 다 행복해요.

길에 있는 하찮은 돌도 마음이 보물로 만들 수 있고 쓸데없는 물건을 만들수도 있어요.

그러니까 이왕이면 행복을 만들어야 합니다.

어차피 한 세상 살 것....모두 행복하게 살다가 가십시다....

第26.法身非相分 (법신은상이아님)

 

 

須菩堤 於意云何 可以三十二相觀如來不. 須菩堤言 如是如是 以三十

수보리 어의운하 가이삼십이상관여래부. 수보리언 여시여시 이삼십

 

二相觀如來. 佛言 須菩堤 若以三十二相 觀如來者轉輪 聖王卽是如來.

이상관여래. 불언 수보리 약이삼십이상 관여래자전륜 성왕즉시여래.

 

須菩堤白佛言 世尊如我解 佛所說義 不應以三十二相觀如來. 爾時 世尊

수보리백불언 세존여아해 불소설의 불응이삼십이상관여래. 이시 세존

 

而說偈言. 若以色見我 以音聲求我 是人行邪道 不能見如來.

이설게언. 약이색견아 이음성구아 시인행사도 불능견여래.

 

밝은 광명이 형상이 없다

"수보리야, 부처님을 서른 두 가지 모양으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수보리 대답하되,

"그렇습니다. 서른 두 가지 모양으로 여래를 볼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서른 두 가지 모양으로 여래를 본다면 전륜성왕을 곧 여래라고 하겠느냐. "

 수보리 부처님께서 말씀드리되,

"세존이시여 제가 부처님께서 설명하신 뜻을 이해한 바로는 서른 두가지 모양만 가지고는 여래라고 볼 수 없습니다"

이 때에 세존께서 게송으로 말씀하시되, '만약 형상으로 나를 보려고 하거나, 즉 밝은 광명을 형상으로 보려고 하거나 또 음성으로써 나를 찾는다면 이 사람은 잘못된 길을 가는 것이기에 결코 여래를 보지 못할 것이니라. '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가히 三十二상으로써 여래를 볼 수 있겠느냐”

(32상=부처님의 특이한 32가지 상호)

부처님의 상을 보고 부처라고 하지 마라.

부처님의 상을 보고 2600년전의 붓다의 정신을 보라.

대불(大佛)을 보거든 우주를 집어삼킬 듯한 부처님의 큰 정신을 보아라.

상으로 부처를 보았다 하거나 부처님을 신처럼 본다면

그대는 부처를 보지 못하는 장님일 뿐이다.

수보리가 말씀드리되“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三十二상으로써 여래를 볼 수 있습니다."

만약 수보리처럼 말한다면 불교는 망한다.

이렇게 생각만 해도 인류가 불행해지는 큰 재앙이 닥친 것이다.

불도 없는 암흑의 천지에서 추워떨다가 생을 마치고 말리라.

따듯함도 없고 아는 사람도 없는 삭막한 곳에서 그 고독함을 어떻게 견딜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수보리야, 만약 三十二상으로 여래를 관한다 하면 전륜성왕도 곧 여래이리라.”

(전륜성왕=부처님과 같은 32상호를 갖춘 왕,

세계를 통일할 왕의 상호가 바로 32상을 갖춘 상호이다)

부처님께서 수보리를 구했다

네가 32상을 보고 부처를 보았다고 말한다면 나와 같이 생긴 전륜성왕도 부처겠구나.

법주사 대불도 부처이고

신흥사 대불도 부처이고

동화사 대불도 부처이고

관촉사 대불도 부처이고

천안 대각사 대불도 부처이겠구나.

이 말이 바로 유명한 깨우침을 주는 말입니다.

부처님은 이렇게 간단한 말로 사람을 깨닫게 합니다.

네가 네 눈앞에 부처가 나타나도 부처가 나타났다고 한다면

틀렸느니라 하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살아있습니다. 싱싱해요.

바로 여러분의 마음을 놔두고 따로 부처를 찾는다면

평생 찾아도 얻지 못할 것입니다.

주변에 계신 부처님께 항상 예배하고 가르침을 배워야 합니다.

살인강도를 보고는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나쁜 일하지 말라고 가르치고 있고

분노하는 사람을 보거들랑 저렇게 하면 스스로 괴로울 뿐이라고 배우시고

욕하는 사람을 만나거들랑, 날 보고 유혹되지 말라고 일깨우기 위하여 부처님께서 나타났다고 생각하고 합장하고 예배해야 합니다.

부처의 생활을 해가면서....

일하지 않고 노는 사람을 보면 저렇게 놀면 자식이 불행해지고

부인이 불행해진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부처라고 생각하고

합장하고 예배하세요.

길거리마다...상가마다....어느 단체서든지 부처님은 무한히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개성을 가지고 우리 모두에게 보여주시는 부처님들이라고 생각하세요.

그래야 부처를 제대로 봅니다.

법당의 생명없는 부처에게 매여있으면 불교는 항상 폐쇄적이고

수동적이고 미래지향적이 되지 못합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소질을 잘 활용하세요.

부처님의 위대한 그 능력으로 많은 사람에게 이익을 주고 살아있는 불교가 되게 하세요.

사람이 있는 곳에 부처님이 있지 사람이 없는 고요한 곳에는 절대 부처가 없습니다.

여러분이 바로 부처의 분신들이오니 부처가 되어서 인생을 잘 살아가세요.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충분하면 충분한 대로 노력하다가...

웃다가.....쉬다가....그렇게 평안히 살다 가세요....

수보리가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제가 부처님의 설하신 뜻을 이해하기로는 응당 三十二상으로써 여래를 관할 수 없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수보리가 잘못을 교정하고 바로잡았습니다.

32상을 갖춘 사람이 절대 여래일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말을 잘하고, 상호가 특이해도 그 사람은 부처가 아니고 평범한 사람입니다.

원래 부처는 없습니다.

우리 모두가 부처이기에 따로 부처가 없어요.

부처의 능력을 보려면 사람을 잘 살펴보세요.

목성에도 가고....화성에도 가고....

3차원 그래픽디자인도 창안해내고 하늘을 나르고...

조그마한 기계만 있으면 어디서나 안부를 알수있습니다.

붓다는 여러분입니다.

단지 자기가 부처인지 모르고 사는 것이 하나 흠이기는 하나

그 본성이 부처이기에 몰라도 크게 흠이 되지 않고 대체로 역사는 바른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남녀평등법....부인 폭행방지법....

사회보장법....점점 극락세계 이상세계를 실현하면서 바른 곳을 찾아서 갑니다.

이렇게 얼마 지나지 않는다면 누구나 설법 3번만 들으면 다 성불하는 시기가 곧 도래할 것입니다.

바로 미래 미륵불의 세계입니다.

극락세계도 우리가 이룩하고 미래 부처의 세계도 우리가 이룩합니다.

여러분이 부처이오니 더이상 찾는 것을 쉬시고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에 수보리처럼 즉시 고치고 바로 부처의 행을 하시면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따로 부처의 행이라고 할 것도 없습니다.

그것은 사람의 길입니다.

굳이 그것을 부처의 행이라고할 것도 없고

그냥 사람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若以色見我 (약이색견아)

以音聲求我 (이음성구아)

是人行邪道 (시인행사도)

不能見如來 (불능견여래)

만약 몸을 보고 나를 보았다 하거나 음성으로써 나를 구한다 하면

이 사람은 사도를 행하는 사람이다 여래를 보지 못하리라.

지난번 내용 끝에 있는 것인데 금강경의 사구게라고 해요. 좋은 말입니다.

사람들이 이것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깨달았던 유명한 게송입니다.

(게송=옛 노래가사)

이속에 선문답의 답이 있어요.

아울러 인생의 진실에 대한 답이 있고 불교의 핵심이 있습니다.

항상 말하지만 우리는 겉에 나타난 물체를 보고 그 것의 진위를 판별하려는 경향이 있어요.

그런데 물건은 어디까지나 허망한 것입니다.

그 물건이 어떻게 생겼든....그것에 의미를 부여한 것은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의미가 진실은 아닙니다.

부처님의 색신은 32상의 특이한 상호를 가지고 있어요.

하나의 상호를 얻으려면 전생에 100가지 좋은 일을 해야 그 상호 하나를 얻습니다.

그렇다하여도 역시 허망한 육신입니다.

여기에.양귀비같은 예쁜 미인이 있다고 합시다

그런 미인이라고 늙지 않고 죽으면 썩지 않을까요?

썩으면 추한 모습은 다 같습니다.

좀 이쁘게 생겼다고 그것이 뭐 대수입니까?

혹성탈출 영화를 보면 원숭이들의 도시가 나옵니다.

그런데 거기의 인간들은 반대로 원숭이보다 모두 아둔해서

우리에 가두고 일을 시키든지 연구 대상이 되는 인간으로 전락했어요.

거기에도 원숭끼리 결혼하는데 원숭이가 사람을 보고 징그럽다고 해요....

우리가 털없는 뱀을 보면 기분이 어떻습니까?

약간 느끼하죠? 뱀이 혀를 내밀면 섬득하고....

그처럼 원숭이가 볼 때 사람은 원숭이과에 속하기는 한데 사람이 털이 없으니....

원숭이가 볼 때는 사람이 징그러워요....

그리구는 자기들끼리 털나고 턱이 길게 빠진 원숭이들을 보면서 그중에서

예쁜 원숭이, 보기 싫은 원숭이라고 하면서.거기서도 맘에 드느니 안드느니해요.

실제로 우리 지구에도 원숭이들이 사람을 볼 때 털도 없는 것이

참 희안하게 생겼다고 구경하고 있을 겁니다.

우리는 원숭이를 구경한다고 하지만 게내들은 자기들이 사람들을 구경해요.

그렇게 미인도 상대적인데 사람 잘생긴 것이 뭐 그리 대수입니까?

좀 희안하게 생겼으면 특이한 것은 사실이나

그것만 가지고 부처라고 본다면 사도를 행하는 사람일 뿐입니다.

혹은 그윽한 목소리를 어디서 듣고서는 부처님의 말씀을 들었다 하면

이 사람도 사도를 행하는 사람입니다.

부처님 당시에도 그런 일이 있었어요.

무당은 신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그 목소리를 듣고 병을 고치고 과거를 맞히고 미래를 예언합니다.

그런 예언이 맞건 틀리건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물론 맞을 수도 있지요.

그런 목소를 듣고 부처님의 목소리를 들었다던지 위대한 신의 소리를 들었다 하면

이 사람은 상에 얽매이는 것이고 존재에 얽매이는 것이기 때문에 다 사도를 숭배하는 자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원칙적으로 불상을 모시고 부처라고 예배하면 문제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살아있는 부처도 그 몸을 보고 부처라고 한다면 사도라고 하였는데

죽은 뒤에 그 상을 조성하고 부처라고 한다면 이것은 더 사도가 되는 것입니다.

원래 불상은 절에서 조성한 것이 아니고

한 임금이 부처님께서 멀리 계시므로 자주 설법을 들을 수 없어서

대신 부처님의 상호를 조성하여놓고 거기서 부처님의 말씀을 되새기면 어떻겠습니까 하고

부처님께 여쭈었더니 그렇게 하라고 허락하여

임금이 한 쪽 방에 부처님의 상호를 조성하고 거기다 예배하고 부처님의 말씀을 읽었는데

부처님 돌아가시고 500년동안도 절에서 불상을 안 모셨고 부처님 말씀도 있고 해서...

사리탑에다 신도들이 기도하였는데 기원전 1세기경 대승불교가 크게 확산되면서

궁중에서 모시던 불상을 불당에도 모시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전세계로 퍼졌는데 그 상을 볼 때는 상을 보고 부처라 하면 안됩니다.

상을 통하여 부처님의 마음을 보아야 하고 법을 보아야 하고 정신을 보아야 해요.

그러니까 이런 상을 보고 부처라고 하지 말라라는 것을 가르쳐주는

현장 설법이라고 생각하고 예배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만약 그 상에 지나치게 집착하면 사도가 됩니다.

금강경을 보면 부천님께서 얼마나 상에 얽매이는 것을 경계하셨는가 잘 알 수 있습니다.

유신론 종교에서는 불교를 보고 불상을 모신다고 우상이라고 하죠.

원래 예수님이 고향에 돌아오니까 우상을 섬기는 사조가 팽배했어요.

소형상,,,,,말형상,,,,,이런 것을 크게 모시고는

신이라 하고 섬기니까 다 때려부순 것입니다.

그러고는 우상을 섬기지 마라고 했어요.

그래서 불교의 불상을 보고는 우상이라고 하는데

만약 불자들이 그 상에 현혹되면 그야말로 우상에 매인 것밖에 안되요.

그러나 그 사람들이 자세히 금강경을 읽어본다면 생각이 달라질 것입니다.

왜냐면 상을 섬기지 말아야 되는 범위가 깊어요.

부처님도 결국 우상을 섬기지 말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 우상을 섬기지 말라는 내용이 가혹할 정도로 분명해요.

그러니까 네가 신이라고 누구를 섬겨도 그것이 바로 우상이라는 말입니다.

겉으로는 상이 없으나 속으로 누구를 섬기면 그것이 우상이라는 말입니다.

너는 너 자신을 제외하고 그 누구도 섬기지 말라.

아니, 너 자신도 섬기지 말라. 너는 없다.

그 누구도.....그 무엇도 섬기지 말라.....설사 어떤 진리라고 하여도....

어떤 사상이라고 하여도.....섬기지 말라....했으니

부처님만큼 우상숭배를 싫어한 사람도 없어요.

그 사람들 불교에 와서 배워야 해요.

그 사람들 속으로는 엄청난 우상을 숭배해요.

겉으로 상을 세우지 않았다 뿐이지

속으로 섬기는 그 상덩어리보다 큰 그 어느 단체도 없을 것입니다.

신은 진리요, 아버지요, 주인이며, 창조주이십니다...

이 주에게 우리는 복종합니다.

아버지, 아버지시여....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소서....

건강을 주시고,,,,영광을 주시고,,,,승리의 힘을 주소서....

하는.... 이런 엄청난 믿음을 가지고 상에 잡혀있어요.

만약 예수님이 부활하신다면 이것부터 야단했을 것입니다.

너희같은 자들에게는 영광을 주지 않으리라.

내가 언제 나의 아버지를 너희의 아버지라 했으냐......?

너희의 아버지는 백성이로다.

내가 언제 너희에게 복을 준다고 했느냐?

네가 너의 부모를 잘 섬기고 형제자매를 기쁘게 했을 때

내가 나의 아버지에게 너의 선행을 칭찬한다 하였지...

언제 너희에게 복을 주는 너희의 아버지라 하였느냐?

너희가 백성을 아버지처럼 모시고 너의 지식을 세우지 않았을 때 나의 아버지가 기뻐하리라.

너희가 너희의 부모에게 제사하고 불교믿는 친척과 사이좋게 지냈을 때

그때 너에게 복이 돌아가리라....무물복음 1장 1절....

만약 예수님이 오랫동안 살았다면....너무 일찍 죽었어요. 33세에 사망....

생각해보세요. 33세 이전에 무슨 깊은 말이 나왔겠습니까?

그 이전에 누구죠? 구약에 나오는 사람

누구야요? 구약의 주인공

왜 사람을 때려죽이고 멀리 도망간 사람

그 사람 히브리 사람인데... 누가 사람이 히브리사람을 죽이자 때려서 죽이고 도망간 사람...

거 왜 만화에도 나오잖아요.

애굽의 왕이 히브리 애들을 다 죽이라 명하였는데 그때 히브리 사람 하나가 애를 죽이지 않고

강에다 띄워서 보냈는데 애굽의 왕비가 발견하고 애굽인으로 키웠는데 나중에 자기 신분을 알았는데...

애굽 사람이 히브리 사람을 때리자 가서 애굽인을 때렸는데 죽었잖아요.....

그래서 멀리 도망갔는데 하느님을 섬기는 제사장의 딸과 결혼하고 신의 목소리를 듣고

나중에 큰 선지자되잖아요.... 갈라진 홍해를 건넜던 선지자...

네, 모세입니다.... 그분은

예수님 이전에 나온 선지자인데 산상에서 제사를 지냈어요. 신이 시킨대로 한 것입니다.

세상을 넓게 보았지요.

스님 모세 아닌가요? 맞아요, 모세...우리가 볼 때는 기도하기 위하여

천막을 쳐놓고 양의 피를 뿌리고 기도하는 것이 참 어리숙해보여도 좀 여유롭고....

당시의 관습을 이해하고 따랐어요.

나이가 있으니....생각이 깊죠...

33세전의 예수님은 너무 젊어요.

혈기 왕성하고 .... 그래서 타협을 모릅니다.

오직 하나....신.....

이것이 바로 불교에서 보면 병입니다.

자기 믿음,,,,이것 위험해요.

사실보다는 믿음....이것으로 뭉친다는 것이 얼마나 맹종이고 위험한 일입니까?

증명되지 않고 찾아도 없는 신을...믿음 속의 신을 현실의 부모형제보다 더 섬기니

그것이 바로 우상입니다. 어리석은 상입니다.

유신론의 종교는 신 그 자체가 우상입니다.

그런데 불교보고 우상이라하면 이것을 일러 적반하장이라해요.

불자는 누구의 머리에서 나온 생각도 말씀도 정신도 섬기지 않습니다.

그래야 사도가 아니라 해요.

형체나 목소리....그리고 단 반개의 생각이라도 쫓아가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야 부처를 만납니다. 그 부처는 바로 당신입니다.

당신이 그렇게 아무에게도 쫓아가지 않았을 때 완벽한 부처입니다.

어떻게 남에게 끌려가지 않을 수 있냐고 물을 지 모르겠으나

진실을 안다면 끌려가지 않아요.

모두 허망하다는 진실....진실은 없다는 진실,,,,진리도 없다는 진실....

그런데 누구를,,,,무슨 생각을 쫓아가겠어요?

쫓아가면 당신은 낮은 데로 떨어진 것입니다.

선재(개)에게 뭘 던지면 그 것을 막 쫓아가요. 혹시 먹을 것인가하고....

그래서 도둑들이 소고기에다 청산가리를 섞어서 던지면 개들이 그것을 먹고 조용해진데요.

먹을 것을 던지면 스스로 쫓아가는 자들은 언젠가 그 쫓아감을 이용하는 자에게 크게 당하여

생명도, 재산도, 행복도, 형제지간의 평화도 뺏어갈 것입니다. 조심하세요.

당신 생각을 쫓아가지 말아요. 그 생각이 바로 우상입니다.

사구게 외워두세요 한자로 해야 좋습니다.

 

若以色見我 以音聲求我 是人行邪道 不能見如來

약이색견아 이음성구아 시인행사도 불능견여래

第25.化無所化分(교화하되 교화하는 바가 없음)

 

須菩堤, 於意云何 汝等勿爲如來 作是念 我當度衆生 須菩堤 莫作是

수보리, 어의운하 여등물위여래 작시념 아당도중생 수보리 막작시

 

念 何以故 實無有 衆生如來度者 若有衆生如來度者 如來卽有我人衆生

념 하이고 실무유 중생여래도자 약유중생여래도자 여래즉유아인중생

 

壽者 須菩堤, 如來說 有我者 卽非有我 而凡夫之人 以爲有我 須菩堤

수자 수보리, 여래설 유아자 즉비유아 이범부지인 이위유아 수보리

 

凡夫者 如來說 卽非 凡夫 是名凡夫.

범부자 여래설 즉비 범부 시명범부.

 

누구를 가르친다해도 가르칠 근거가 없다.

 

"수보리야, 너희들은 여래가 중생을 제도한다고 하지 말아라.

왜냐하면 실제로 여래가 제도할 중생이 없기 때문이니라.

어떤 중생을 여래께서 제도했다면 여래도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 있게 되느니라.

수보리야, 여래께서 '나'라 그러한 것은 곧 내가 아니언마는 보통 사람이 참 '나'인줄 아느니라.

수보리야 범부라는 것은 아직 밝지 못한 사람이며,

그 사람도 밝으면 곧 부처니까 범부가 아니고 그때 그 이름이 범부니라. "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너희들은 여래가 '내가 마땅히 중생을 제도한다’라고 말한다고 말하지 말라.

수보리야, 이런 생각도 하지 말지니라.

너희들은 여래가‘내가 마땅히 중생을 제도한다’라고 말한다고 말하지 말라...

이것은 여러분에게 부처님께서 부탁하시는 것입니다.

여래는 '중생을 제도한다' 라고 말하지 말고 그런 생각도 하지 마라....

이것이 금강경의 핵심중에서도 핵심입니다.

왜냐? 여래는 아무것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중생도 없고 부처도 없고 설할 법도 없다

그러므로 나는 아무 일도 한 것이 없고

지금도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다...라는 말입니다.

마치 지금 제가 여러분을 위해서 강의를 하지만

저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고 있고

한 것도 없고 하고 있지도 않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부처님은 수많은 말을 하고 계시지만 전혀 하고 있다거나 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무심행이고, 진실에 맞는 말이고, 사실입니다.

이 말을 이해하는 사람은 진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지만

이 말을 아직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금강경 처음부터 차근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실제로는 여래가 제도할 중생이 없음이니,

누가 중생이고 누가 부처입니까? 같은 사람을 다르게 부름이로다.

만약 여래가 제도할 중생이 있다 하면 여래는 곧 아와 인과 중생과 수자가 있음이니라.

한 생각이라도 일어난다면 그것이 바로 심병(心病)이요, 불행해지는 원인입니다.

모래를 쪄서 밥을 구함이니 어느 세월에 밥맛을 볼 것입니까.

만약 한 생각이라도 일어난다면 4상에 걸림은 물론이거니와 8만4천 마귀가 즉시 달려와서

머리와 다리를 쇠뭉치로 쳐서 고통을 극심하게 하리니 조심하고 조심해야 합니다.

수보리야, 여래가 설하되 아가 있다는 것은 곧 아가 있음이 아니라 했거늘

범부들은 아(我:나)가 있다고 여기느니라.

말에 쫓아가지 마라.

창고에 돈이 있어도 주머니에 없으면 없다고 한다.

허공에 세상이 가득 들어있어도 눈앞에 아무것도 안보이면 없다고 말한다.

그러니 어찌 있음과 없음이 다르겠는가?

나를 칭찬함도 욕이고 나를 꾸짖음도 욕이다.

그런데 어찌 칭찬은 좋아하고 꾸짖음에는 화를 내는가.

한 손에 떡을 들고 배고프다 하고, 한 손에 빈 주먹을 쥐고 천하를 얻었다하네.

수보리야, 범부라는 것도 여래가 설하되 곧 범부가 아니고 그 이름이 범부니라.

명칭에 끌려가지 마라.

오늘은 시어머니라고 하나 내일은 며느리가 되고

오늘은 종이라고 하나 내일은 주인이 된다.

천번 변하고 만번 변하는데 어찌 한가지 명칭에 혼을 파는가.

명칭을 끌려가는 사람은 아무리 지식을 자랑하고 점잔음으로 포장을 해도

한낱 어린 아이 보다 못한 어린 사람일뿐이다.

무엇을 얻었다 하여도 헛것이고 무엇을 들었다하여도 헛것이니 마음을 움직이지 말라.

공연히 본심을 잃어서 남보기 수치스러울 뿐이다.

第24.福智無比分 (복덕과 지혜는 비교할 수 없음)

 

 

須菩堤, 若三千大千世界中 所有諸 須彌山王 如是等七寶聚 有人持

수보리, 약삼천대천세계중 소유제 수미산왕 여시등칠보취 유인지

 

用 布施 若人以此般若波羅蜜經 乃至 四句偈等 受持讀誦 爲他人

용 보시 약인이차반야파라밀경 내지 사구게등 수지독송 위타인

 

說 於前福德 百分不及一 百千萬億分 乃至 算數比喩 所不能及.

설 어전복덕 백분불급일 백천만억분 내지 산수비유 소불능급.

 

지혜를 복과 비교하지 마라

 

"수보리야, 삼천대천세계에 있는 모든 수미산왕 같은 칠보 덩어리로 남에게 베푸시는 것은 이 반야바라밀경의 내용 중 '사구게'를 스스로 지니고 읽고 외우며 다른 사람을 위해서 설하는 것 보다 복덕이 백분의 일도 되지 않으며 백천만억분 내지 수치로 비교도 안될 만큼 미치지 못하느니라. 다시 말하면 아무리 좋은 물건이 산더미 같이 쌓였어도 지혜 있는 것만 같지 못하느니라. "

 

수보리야,

만약 삼천대천세계 가운데 있는 모든 수미산왕과 같은 칠보 무더기들을

어떤 사람이 보시 하더라도...

(수미산은 인도에 있는 상상의 산입니다)

그러니까 인도 사람들의 상상 속에 있는 산이어요.

우리나라 표현으로 하자면 젤 높고 아름다운 산....

금강산에 비교될 정도라고나 할까....

수미산왕이면 산 중의 왕을 말해요.

빼어난 산 중에서도 산이라는 의미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이 반야바라밀경이나 내지 사구게등을 수지 독송하여 남을 위해 말해주면

앞의 복덕으로는 백분의 일도 미치지 못하며 백천만억분과 내지 산수나 비유로도 능히 미치지

못하느니라.

4구게는 금강경의 네 마디라는 표현이니까...

특별히 무엇이 4구게라고 정할 필요는 없겠으나

금강경에는 몇 가지 싯구적인 내용으로된 4마디 게송이 나오는데 그것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금강경중에 단 네 마디라도 매일 읽는다던지

남을 위하여 일러 주면 그 복이 수미산만큼이나 되는 7보를 남에게 전해준 공덕보다

더 큰 복덕이 된다는 말입니다.

상권에서와 마찬가지로 진리의 위대함을 표현한 것인데

그럴 정도로 이 경을 읽거나 외우거나 남을 위하여 전해주는 공덕이 크다는 것을 강조한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진리를 높이 숭상하는 공덕이 이렇게 크다고 하시는 바람에

마치 경을 읽는 것이 하나의 종교의 신행생활처럼 된 것입니다.

그래서 불자들은 경을 읽는 것이 곧 수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집안에 축하할 일이 있거나 누가 사망하였을 때도 읽고..평상시 사업 번창을 위해서도 읽고

진리를 탐구하는 수행자들은 깨달음으로 얻기위하여 읽기도 하고

다음 생의 복을 닦기 위해서도 읽고 멀리 타지에 간 아들이 걱정스러울 때도 읽고

남편의 출장이 걱정될 때도 읽고

잠이 안와도 읽고 병이 들어서 신음할 때도 읽으면 신효한 영험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가히 불교는 진리를 숭배하고 믿습니다.

그것이 모든 것의 문제를 푸는 열쇠라고 생각해요.

심지어 4구게만을 써서 품에 지니기도 합니다.

이것이 불교의 부적의 효시입니다.

좋은 글을 품에 지니고 다니면 선신(善神)이 돕는다고 해요.

그러니까 평상시 집에서 기도하고 싶은 사람은 금강경을 읽도록 하세요.

처음에는 한글로 번역된 것을 읽도록 하세요.

그리고 뜻은 여기 인터넷 금강경 강의를 참고하셔서 알도록 하시고요.

완전히 이해가 되었으면 이제 한문으로 된 것을 읽도록 하세요.

그런데 이렇게 진리를 높이 숭상하더래도 만약 그 뜻을 모른다면

사과를 만져보기만 하고 맛은 모르는 것과 같습니다.

진리를 깨달아야 병도 빠르게 완쾌하고 미래에 좋은 복이 될 것인데

뜻을 모르고 깨닫지 못했으면 부처님의 의도와 많이 빗나간 것입니다.

수없이 읽으라고 하는 것은 가슴에 새기고 또 새겨서

부처님의 행을 하라고 하는 것인데

금강경을 천독을 했다면 천번을 새겼다는 말인데

그러면 골수에 박혀서 부처님보다 나아야 할 것인데 전혀 부처님을 추월하지 못했다면....

불교는 스승을 추월해야 합니다.

스승이 거기까지 발견하고 말했으면 여러분은 더 나가야 해요. 그래야 발전합니다.

그런데 더 발견은 고사하고 부처행 근처에도 못갔다면....

물론 뜻을 모르고 읽어도 복이 되고 죄업이 녹아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부처님의 본 뜻과는 어그러진 것일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까 가능한 뜻을 알아야 하고 그리고 오래 읽었으면 박사가 되어서.....

나중에 강의하는 강사가 되어야 하고....그러다가 기어이 깨달아야 합니다.

복도 중요하나 깨달음을 목표로 읽고 또 읽어서 다 외우시고....

나중에는 금강경 내용을 외우면서 설명에도 박사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금강경 강의 서적을 얼마나 읽었는지 몰라도

저도 가끔 누가 금강경 강의서를 냈다 하면 사봅니다.

한번 죽 읽어보지만 항상 미진한 부분을 발견하곤 하였습니다.

그래서 언젠가는 꼭 금강경강의 책을 내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동안 강의한 이것이 초고가 되어서 앞으로 책이 나올 것입니다.

금강경강의는 현재 두 종류가 있어요.

하나는 박학다식하지만 그 깊이까지는 들어가지 못한 것이고

하나는 깊이 들어가려고 하지만 깊은 곳을 드러내지도 못하였고

여러 다른 지식체계도 세우지 못한 경우입니다.

제 강의는 들어보신 여러분들은 대충 알겠지만

제 강의는 깊이에 중점을 두고 강의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누구든지 이 책을 보면 아~ 금강경이 이 뜻이구나 하고

정확하게 알도록 하는데 중점을 두었습니다.

그러니까 깊이에 있어서는 더이상 알아볼 것이 없습니다.

이거만 해도 충분합니다. 단지 타종교와 비교라든가 다른 내용을 인용해서

설득하는 지식적은 것은 시간과 강의와 준비 미숙으로

부족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런 것은 이미 나와 있는 것으로도 충분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금강경강의를 여러번 읽으면 깊은 곳을 알게 해놓았습니다.

불교와 선과 선문답의 해답, 그리고 도와 종교와 인생의 의미에 대하여 다 삽입해놓았습니다.

한번으로 해득이 안되는 사람은 여러번 읽어서 그 깊은 오의를 터득하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육조혜능스님이 보았던 곳, 깨달았던 핵심도 강조해놓았으니까

육조스님처럼 읽으시면 저절로 터득이 될 것입니다.

부디 깊은 곳까지 터득하여 일견에 큰 뜻을 얻어 한평생 행복하게 사시기를 빕니다.

第23. 淨心行善分 (깨끗한 마음으로 선을 행함)

 

 

復次須菩堤, 是法平等 無有高下 是名 阿耨多羅三藐三菩堤. 以無我

부차수보리, 시법평등 무유고하 시명 아뇩다라 삼먁삼보리. 이무아

 

無人無衆生 無壽者 修一切善法 卽得阿耨多羅三藐三菩堤. 須菩堤,

무인무중생 무수자 수일체선법 즉득아뇩다라 삼먁삼보리. 수보리,

 

所言善法者 如來說 卽非善法 是名善法.

소언선법자 여래설 즉비선법 시명선법.

 

청정한 마음으로 착한 일하라

다시 "수보리야, 이 법은 평등해서 높은 것도 없고 낮은 것도 없으니 이것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니라.

내가 없고 남이 없고 중생도 없고 수자가 없이 일체의 좋은 법을 닦으니 그것이 곧 아뇩다라삼먁삼보리니라.

수보리야, 선법이라는 그 명사를 떼어버린 행동을 선법이라 하면 매우 좋을 것이니라. "

 

 

수보리야,

이 법은 평등하여 높고 낮음이 없으므로

이를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 이름하느니라.

누가 이 법을 스님들만 깨닫는다고 했습니까?

누가 부처가 높다고 했습니까?

먹고 살기 힘들어 사는데 연연하다 보니까

이렇게 법문들을 시간이 없어서 못깨달았지

스님이라고 계를 잘 지킨다고 깨닫고

바람둥이는 못깨닫는 것이 아닙니다.

바람둥이도 한번 제대로 알아들으면 즉시 깨닫습니다.

배휴는 당시에 재상이고 학벌이 있고 불교에 관심이 많으니까

황벽스님에게 법문을 들어서 알았어요.

그런데 요즘은 전부 배휴입니다.

여러분은 전부 배휴입니다. 그럴 정도로 학벌있고 글을 볼 줄 알고 이해할 줄 알아요.

더군다나 운이 좋아 쉽게 선(禪)을 전달하는 스님도 만났어요.

누구보다 확실하게 전달해요.

그런데 여기서 깨달은 배휴가 수도 없이 많이 안나오면 그것은 문제가 있어요.

그러면 여러분은 지금 뭘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즉시 한 마디에 알았는데

여러분은 수많은 말을 들었는데 아직 모른다면 이것 큰 문제입니다.

이렇게 되면 선불교가 위태롭습니다.

이것은 지위 고하가 없다는 부처님의 이 말을 잘 새겨보세요.

아도 없고 인도 없고 중생도 없고 수자도 없이 일체 선법(善法)을 닦으면

곧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느니라.

그동안 수차말했습니다.

이것은 원래 나가 없고 타인도 없고 중생도 없고 영원이라는 것도 없어요.

그러니까 원래 없는 것임을 알면 되었지

닦아서 아상을 없애는 것이 아닙니다.

너는 없느니라 하면,,,,,, 네! 하고 대답하면 끝입니다.

그러니까 돈오법이라고 합니다.

너는 장남이다 하면 '네' 면 되지 또 뭐가 필요합니까?

여러분하고 내가 뭔가 교류가 안되는 것이 바로 이점입니다.

저는 원래 네가 부처이니까 그런 줄 알고 즉시 부처의 행을 실천해라 해요.

그런데 여러분은 자꾸 비우려고 하고 닦으려고 하고 하니까

그렇게 생각하니까 들어오지 못해요. 뭔가 방향이 어긋났어요. 이것은....

마치 마당에 선을 그어놓고 이리 건너오라 여기는 행복의 세계이다 한 발만 들여놓아라.

하고 내가 손을 내밀어도 여러분은 자꾸 닦아야 한다거나

이렇게 망상이 버글대는데 그리로 건너간다고 없어지나요....하거나

믿지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무엇이 따로 될 것은 없고 용기를 내어 믿음을 가지고

"마음이 부처!" 하고 크게 소리치고 .한 발 들여놓으면 되요.

"나는 이제부처 부처이다!" 하고 대빵 크게 한번 소리치고

즉시 부처의 행을 하면 되요.

그러면 서서히 자기도 놀라게 됩니다.

아니, 이것 저절로 되잖어.......닦아서 되는 것이 아니잖어....

이래서 옛 스님들이 돈오라고 하였군....

아니, 화두의 뜻이 이것이었어..... 하고 즉시 알게 되요.

믿음과 용기와 실천만 필요해요.

한발만 들여놓고 부처의 세계에서 살아보면 세상이 전부 자기 손안에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가 닦아서 부처되려고 하지 마시고 바로 부처의 행을 하면서

조금만 나가보면 다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천하장부의 길을 지금 즉시 갑시다.

수보리야, 말한 바 착한 법(善法)이란 것은 여래가 설하되 곧 착한 법이 아니고 그 이름이 착한 법이니라.

지금 부처님께서 말하고 계시잖아요.

일체 착한 법을 실천하는 것이 바로 최상의 깨달음을 얻는 길이라고....

그러려면 즉시 붓다의 행을 해야합니다.

붓다의 행은 한 생각도 일으키지 않고 일하는 것입니다.

무심행, 무위행, 이것이 붓다의 행입니다.

착한 일을 해도 했다는 생각이 없어야 하고

금방 제한데 질투가 일어나거들랑 즉시 고요한 마음으로 거두어들이세요. 이것이 선행입니다.

화가 나도 고요해야 하고 시기심이 일어나도 즉시 거두고

잘났니....못났니.....하는 생각이 일어나도 즉시 거두고.할일 있으면 하면 됩니다.

무심으로 일만 하세요. 망상이 일어나는 것은 그냥 놔두세요.

따로 없에려하지 말고 그냥 관세음보살만 부르려고 하세요.

똑같습니다. 그것도 절하다가 망상이 생기면 즉시 거두어들여야 합니다.

관세음보살을 하려고 하세요. 그러면 없어집니다.

그러면 점점 없어져요.

6000만년이나 된 습관인데 빨리 없어지겠어요. 망상은 그냥 내버려 두고 무시하세요.

망상 습관이 아무리 오래되어도 그 바탕이 부처이기 때문에 곧 없어집니다.

하옇튼 한 마음 일어나는 것을 가만 두면 안됩니다.

즉시 거두어 들이는 습관을 들이세요.

그러면 점점 시간이 짧아져서 나중에는 아예 일어나지 않습니다.

고요해요.

24시간 고요해 질 때가 옵니다.

그러니까 지금 잡념이 일어나는 것을 걱정하지 말고

그것을 차단시키지 못하는 것을 걱정해야 합니다.

그렇게 조금만 습관 들이면 그리 어렵지 않게 극복됩니다.

점점 부처의 행복을 체험하게 되고 고요한 행복은 가속도가 붙어서

더 빠르게 가고 결국 자기 본심을 회복합니다.

평상시 저절로 일어나는 망상에는 신경쓰지 말아요.

일어나는 망상은 문제가 없고 그 허망한 것에 집착하는 것이 병입니다.

그러나 일이나 대인관계에 영향을 주는 생각이나

기도나 참선할 때에는 망상을 용납하면 안됩니다.

자꾸 극복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깨달아도 이 공부는 계속 되어야 합니다.

깨달음이 빠르면 좋으나 빨라도 결국 망상을 제거하는 공부가 되어있지 않으면 자기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부처임은 즉시 깨달으시고

부처의 행을 하면서 부처를 즐기되 완전한 부처는 시간이 걸립니다. 일명 보림이라고 해요.

선사들은 그가 오매일여를 얻었는지 못얻었는지가 중요하지 않고 조사의 뜻을 아는 데까지만 인도합니다.

그러니까 공부 도중에라도 조사의 뜻을 깨달으면 더이상 유혹되지 않습니다.

혹시 남아있는 잔재 제거는 살아가면서 하면 됩니당....

오늘 모두 수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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