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윤회의 수레바퀴를 돌다가 윤회에서 벗어나 해탈과 열반을 나아가기 위한 분기점에 서 있습니다. 부처의 길에 들어서 꾸준히 정진해나가면 나도 부처님처럼 됩니다. 부처님께서는 첫발을 내딛는 사람에게 ‘너의 부처이름은 이러이러하리라’ 하며 미래세에 부처가 되리라는 수기를 주었습니다. 이것이 불명입니다. 그리고 ‘나는 본래 부처이며, 미래세에 부처가 되는 것이 내인생 목표임을 알고, 나는 부처의 길로 가는 수행자임을 잊지 말고 새기라’는 의미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도 과거세 연등부처님으로 있을 때 미래세에 부처를 이루리라는 수기를 받았고, 그 이름이 석가모니 부처가 되리라는 수기를 받았습니다. 수계식에서는 삼귀의와 오계를 수지하겠다고 약속하고 불명을 받게 됩니다. 지금은 아직 부처가 아니므로 성불하기 전까지는 이 부처님의 명호 뒤에 ‘불’이라 이름 붙이지 않고 보살을 붙여서 부릅니다. 보살은 부처로 나아가는 사람입니다. 여성수행자는 보살, 남성수행자는 거사라고 부릅니다. 청년들은 수행하는 법의 도반, 법우라고 합니다.”
“이 세상에는 많은 공부거리가 있습니다. 대다수의 공부거리는 어떻게 하면 지식을 많이 쌓느냐? 어떻게 하면 기술을 많이 익히느냐? 어떻게 하면 돈을 많이 버느냐? 하는 이런 것을 생각합니다. 불교대학을 졸업한다고 해서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아니고 기술이 습득되는 것도 아니고 출세하는 것도 아닙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공부하는 목표는 지금보다 조금 더 행복해지고 자유로워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속에서 배우는 공부도 궁극적으로 자유롭고 행복해지는 것을 추구합니다. 돈이 있으면, 출세를 하면, 인기가 많으면 좀 더 자유롭고 행복하다고 생각합니다. 좀 더 자유롭고 행복하고 싶은 것은 세간과 출세간, 승속을 불문하고 같은 것입니다.
한국에서 재물이 제일 많은 사람은 지금 행복한가요? 전임 대통령은 지금 행복한가요? 인기가 있었던 어떤 연예인은 행복한가요? 지금 행복하다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돈을 많이 벌어야 하는데 많이 못벌어서, 인기가 없어서, 출세를 못해서 괴로운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요행히 이러한 것을 이루었다 해도 행복한가요? 행복하다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사람은 늘 살고 나면 인생이 좀 허무해지는 이유는 이렇게 행복해질 수 없는 길을 따라가기 때문입니다. 돈이 필요없다는 것이 아니라 돈으로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고 출세했다고 행복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돈이 있던 없든, 지위가 높든 낮든, 건강하든 건강하지 않든, 남자건 여자건 바로 행복으로 나아가는 것을 알려줍니다. 진정으로 행복하고 자유로워지고 싶은 사람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그 가르침에 따라 행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 가르침을 1년 동안 공부해보니 입학할 때 보다 좀 행복해졌습니까? (네). 안그러면 졸업의 의미가 없습니다. 졸업장도 사용할 데가 없어요. 진정한 졸업은 입학할 때 보다 좀 더 행복해졌다, 괴로움이 줄어들었다 하면 졸업자격이 있는 것입니다. 입학할 때 보다 좀 더 마음의 여유가 있고, 자유로워졌다면 졸업할 자격이 충분이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마음이 어떻게 작용하느냐 하는 마음의 작용원리를 연구해서 어떻게 하면 자유로워지고 행복해지느냐 하는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불교가 종교화 되면서 신앙으로 많이 바뀌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정토회는 부처님의 원래 가르침으로 돌아가보자 해서 불교의 진리를 바르게 아는 ‘바른 불교’, 대중에게 쉽게 전달될 수 있도록 하는 ‘쉬운 불교’, 일상생활 속에서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생활 불교’를 표방합니다. 이것은 용성스님의 불교의 지성화, 불교의 대중화, 불교의 생활화와 거의 일맥상통합니다.
부처님은 이전의 종교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길을 제시했습니다. 인생에 대한 탐구에 탐구를 거듭한 결과 무지가 괴로움의 원인이고, 알지 못함이 두려움의 원인임을 알아 무지를 깨치게 되면 괴로움이 사라지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리석음을 깨우치게 되면 모든 번뇌와 괴로움이 사라집니다. 부처님은 스스로 깨달아서 붓다라 하고 깨달은 이가 깨닫지 못한 이를 깨닫게 하는 가르침을 담마라 하고, 그 담마를 듣고 깨달음의 길로 나아가는 무리를 상가라 하여 이 3가지를 ‘삼보’라 합니다. 여기서 무리는 수행자 그룹입니다. 불교대학을 졸업하는 여러분은 불교신자가 아니라 이제 불교수행자입니다. 이 불교수행자라는 관점이 잡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