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학인이 화두 공부하는법에 대한 경책.. 

 

무릇 수행하는 일이 적은 일이겠는가.

잘 먹고, 잘 입기 위하여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성불(成佛)하여

일대사를 해결 하고자 하는 것이니, 성불하려면 자기(自己)마음을

참구하여 찾아보아야 하는 것이로소이다.

 

자기 마음을 찾으려면 몸뚱이는 송장으로 알고

세상일이 좋으나 좋지 않으나 모두가 꿈임을 알고,

사람 죽는다는 것이 아침이슬과 같아

아침에 있다가 저녁에 가는 줄 알고, 죽으면 지옥에도 가고,

짐승도 되고, 귀신도 되며, 한없는 고통을 받는 줄 생각하여

세상만사 다 잊어버리고 항상 자기 마음을 궁구하되,

 

선지식으로부터 간택 받은 화두를 의심을 내어 참구하되,

읽어버린 물건 찾듯, 고양이가 쥐 잡듯이 하며, 닭이 알을 품듯 하며,

늙은 쥐가 쌀 궤짝 좇듯 하여 항상 마음을 한 군데 두어 궁구하되

행주좌와 어묵동정간에 잊어버리지 말고,

의심하여 나가되 일을 하더라도 의심을 놓지 말고,

 

그저 있을 때라도 의심하여 지성으로 하여가면

필경에는 내 마음인 자성(법계성품)을 몰록 깨달을 때가 있으리니

부디 신심과 분심을 내어 공부(의심) 하여야 하는 것이올시다.

 

무릇 사람되기 어렵고, 사람되어도 수행하기 어렵고, 수행을 하되 부처님의 바른 법 만나기 어려운 것임을 깊이 명심하여야 할 것이올시다.

 

옛날 권선사라는 스님같은 이는 공부를 하다가 해가 질 때면 다리를 뻗고 울며,

"오늘 해도 공연히 지내고 마음을 깨닫지 못하였다”고 탄식하였다

하는 것을 깊이 생각할 줄 알아야 하리다.

 

예전에 동산스님이 글을 지어 이르기를,

"출가 수행이라면 거룩하다는 이름도 구하지 말고, 재물도 구하지 말고

그럭저럭 인연을 따라 지내면서 옷은 떨어지면 거듭거듭 기워 입고,

양식은 없거든 가끔가끔 구하여 먹을지어다.

턱밑에 세 마디 기운이 끊어지면 문득 송장이요,

죽은 뒤에는 헛 이름 뿐이로다 .

항상 허황한 몸이 몇 일이나 살 것인데 쓸데없는 일을 하느라고

내 마음을 캄캄하게 하여 공부하기를 잊어버리랴” 하셨소이다.

 

내 마음을 깨달은 후에

항상 그 마음을 보존하여 깨끗이 하고 고요히 하여

세상에 물들지 않고 나아가면 한없이 좋은 일이 너무도 많을 것이니,

부디 깊이 믿고 닦아나가면 죽을 적에도 죽음에 끄달려 가지 않고,

내 임의대로 할 것이며,

마음대로 극락세계에도 가고 가고싶은 데로 갈 수 있게 되는 것이올시다.

 

오조 홍인대사 말씀에,

"맹세하시되 너희가 내 말을 믿지 않으면 세세생생 호랑이에게

죽을 것이요, 내가 만약 너희를 속인다면 후세에 지옥에 떨어지리라”하시었으니,

공부하는 사람이 마음 움직이지 않기를 산과 같이 하고

마음 넓게 쓰기를 허공과 같이 하고,

지혜로 불법 생각하기를 해와 달 같이 하여

다른 사람이 잘하고, 잘못하는 것을 내 마음으로 분별하여 참견말고,

좋은 일을 당하든지, 좋지 아니한 일을 당하든지 마음을 편안히 하며

무심히 가져서,

화두 들어 의심하기를 남이 볼 때 등신같이 지내고,

바보같이 지내며, 벙어리같이, 소경같이, 어린아이같이 지내면 마음에

절로 망념이 없어 지게 되는 것이올시다.

 

설사 세상일을 똑똑히 분별하더라도

비유컨대 똥덩이를 가지고 음식 만들려는 것과 같고,

진흙 가지고 흰옥을 만들려는 것과 같아서

성불하여 마음 닦는데 도무지 쓸데없는 것들이니,

부디 세상일을 가리려고 시비하지 말라.

 

다른 사람 죽는 것을 내 몸과 같이 생각하여

내 몸은 항상 튼튼할 것으로 믿지 말고,

절대로 마음 찾아 깨우치기를 놓지 말라.

 

한결같이 화두를 들어 의심하여 보고, 의심하여 가되,

간절히 생각하기를 배고픈 사람이 밥 생각하듯

잃어버린 물건 찾듯 하여 잊지 말고 간절히하라.

 

부처님이 말씀하시기를

"일체 세상일이 다 허망하다 하시고, 중생의 모든 하는 일이 다 나고,

 죽는 법이라 오직 제 마음을 깨달아야 진실한 법이라” 하셨소이다.

 

부처님 말씀에 “한번 진심을 내면 백만 가지 죄가 생긴다” 하셨으니

 

첫째 화내는 마음을 끊으라.

예전 스님네 말씀에 “화내는 마음은 호랑이와 뱀과 벌과 같이

독한 것이 되고 가벼운 마음은 나비와 새가 되고,

좀스러운 마음은 개미와 모기 같은 것이 되고,

탐심 내는 마음은 배고파 우는 귀신이 되고,

탐심과 화내는 마음이 많고 크면 지옥으로 가고,

일체 마음이 모든 여러 가지 것이 되어가나,

일체 여러 가지 마음이 일지 않으면 부처님이 되리라” 하셨다오.

 

착한 마음도 어리석으면 지옥이나 축생이 되는 것이니,

일체 마음(분별심)을 없애면 다른 데로 갈 것 없고,

마음이 깨끗하여 혼곤하지 아니하면 캄캄한 데로 가지 아니하니,

고요하고 깨끗한 마음이 부처님이 되어 가는 길이올시다.

 

내 마음을 항상 의심하여 궁구하면 자연히

고요하고 깨끗하여 지는 것이니 이 깨끗한 마음이 부처인것니라.

 

화두의심이 간절하여 일체가 끊어질 때 고요하고 깨끗하여

절로 마음을 보아 깨달아서(證悟) 부처를 이룸에

돌아가지 아니하고 곧게 가는 길이니 이렇게 하여 가도록하라 하리다.

 

이 법문을 가끔 보고, 읽어 남에게 일러주면

팔만대장경을 본 덕과 같고, 그대로 공부하면 일생에 성불할 것이로소이다.

 

산은 깊고 물은 흐르고,

각색초목은 휘어져 있어 이상한 새소리는 사면에 울고 적적하여

세상사람은 오지 않는데 고요히 앉아 내 마음을 궁구하니

내게 있는 내 마음이 부처가 아니면 무엇인가?

 

공부를 지어감에 마음을 너무 급히 쓰면

신병(상기병)이 날수 있으므로,

마음을 가라앉혀 머리로 애써 계교하지 말고,

편안하되 간절하게 참구하여 가도록 하라.

 

오로지 간절하게360골절(骨節)과 84,000모공(毛空)의 전신으로

의문을 일으켜 사량분별과 악지악각(惡知惡覺)의 번뇌 망상을

던져 버리고 평생의 기력(氣力)을 다해 오로지 화두을 잡아야 할 것이오.

 

 

화두 하나를 의심하여 부처가 오면 부처를 치고, 보살이 오면 보살을 치며, 밝음이 오면 밝음으로 치고, 어둠이 오면 어둠으로 쳐 의문을 일으키되

의심하는 나와 의심되어지는 화두가 둘이 아닌 큰 의문 덩어리(大疑団)가 현전(現前)하게 되면, 나와 우주 전체가 의문의 덩어리가 되는 것이올시다.

 

다시 말해 의심하는 나와 의심되어지는 화두가 온전히 하나 되어,

하나 되었다는 것마저 없어지는 가운데서 화두 공부의 묘미와 비결이 있는 것이로소이다.

 

절대 공(空)한 것까지 훌쩍 뛰어넘어 버릴 때

대아(大我: 眞我)의 세계가 열리는 것이니,

마치 죽간(竹間)에 들어간 쥐가 앞으로 나아갈 수도

물러설 수도 없는 곳에 이르는 것같이

화두의단 가운데 은산철벽에 이르러 한번 크게 죽고

다시 크게 되살아나야 하는 것이올시다.

 

화두를 들고 의심하되 좌선(坐禪)할 때뿐만 아니라

행주좌와 어느곳 어느 때나 잊어버린 귀한 물건을 찾듯

끊임없이 집중하여 의심하되,

능동적(能動的)에서 수동적(受動的) 경지가 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사량분별의 사고(思考)의 세계를 벗어나야 하는 것이올시다.

화두를 의심하는 가운데 번뇌 망상이 생기면 그것을 쫓으려 하면

그것 또한 망상이 되는 것이니

세간의 법뿐 아니라 마음을 궁구하는 일 이외에는

불법 안의 온갖 좋은 일 부처님의 말씀 까지도 모두가

딴 생각(別念,잡념, 망념)이기  때문인 것이올시다.

 

參學에는 화두말 가운데서 의심할뿐 어떤 현란한 말씀도 진리도

불필요한 망념이요, 장애가 되는 것들인 것이로소이다.

 

따라서 장황한 설명으로 법리를 내세울것도 없는 것이올시다.

불법은 참으로 간단명료하다는 것을 명심하고

아는것들로써 대비 대입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로소이다.

그저 아무것도 모르는 가운데

화두의 도리를 알려고 의심을 깊이 하도록 하여야 하는 것이올시다.

 

화두의 뜻을 알려고 간절하게 의심하는 思惟(一心으로 그것만을

알려고 의심하면 선定으로 들게됨)가 참선 參究요,

思量 計較(巧)는

아는것으로 맞춰 들어가는것의 큰차이임을 알기를 당부하리다.

이렇게 사량 계교하는 공부는 병든 공부요,

잘못하는 轉到된 공부라 하는것이올시다.


오로지 화두를 들어 반성하고 한가지로 깊이 의심하여

회광반조(廻光返照, 한 생각 일어난 곳을 돌이켜 살피는 것)하면

통발의 밑통이 빠지듯 할 것이올시다,

이때가 오도(悟道)하는 찰나이며 일컬어 大悟見性이라 하는 것이로소이다.

공부를 하다보면 여러가지 경계를 보게 되기도 하는데,

이는 어디까지나 선(禪)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환희경계(歡喜境界)의 증세이며 환마(幻魔)라고도 하는 것이올시다.

 

경에 이르기를 변마(辯魔;幻魔)라 했으니

이에 집착하거나

이를 일대사(一大事)를 마친 결과로 착각하지 않도록 하여야 하리다.()

 

화두는 의심하는 곳에서 깨달음을 얻는 것이올시다.

간절히 참구하노라면  일체가 끊어지는 경계에서 오직 그 화두의단만이 독로되어

定에 이르게 되며 그때 의심이 깨어지고 확철하여 오도견성을 하게 되는 것이니

분명히 명료(明了)하게 화두의 도리가 밝혀지는 것이올시다.

이러할때 밝게 화두의 답이 절로 나게 되는 것이외다.

간절히 닦으셔서 대오견성하시기를 바라겠소이다.

 

화두간택은 아무렇게나 바겐세일 하듯이 받는것이 아니올시다.

요즈음 흔히 자기도 확철히 깨닫지 못한 스님들이 쉽게 화두를 주곤 하는 경향이 있으나 

이것은 우미한 처사인 것이니 숙제를 내어주는 선생이 자신도 알지 못한 문제를 숙제로 준뒤 그다음은 어찌 감당하겟소이까?

봉사가 길안내 한다고 나서는 수작이 아니고 무엇이겠소이까?
자신의 근기를 살펴 그에 맞는 화두를 머리속에 징을 박듯 각인시켜 받아야 할것인즉

반드시 명안종사를 직접 참문하여 받아서 그 지도아래 공부를 지어나가야 할 것임을 아시고, 바른 스승 만나 바르게 닦아 나가시기를 당부하오이다.

 

화두를 단전에 두라, 1m앞에 두라, 머리에 두라는 등으로 가르쳐 주는 이들이라면 그 견처와 수행행각을 가히 알만하겠소이다.
某甲이 일러준다면 "화두는 의심하는데 두라(둘것도 없지만...)"하겠소이다.

화두는 오직 간절히 의심지어 갈뿐 두어야할 처소가 있을수 없는것이 아니겠오?

처소를 둔다하면 의식을 나뉘게 되는 것이니 잘못된 공부가 되는 것이오.

화두의심 외에는 일체 사량분별이 끊어져야 하는것이거늘 어찌 스스로 둘을 짓겠소이까?

되묻겠는데 그럼 행주좌와 가운데 누워서는 그리고 공부가 간절하면 꿈에서도 이어져 하게 되는데 그때는 어디에 화두를 둘것인가요?

 

다만 모르는 그것을 꼭 알겠다는 굳은 각오로 분심을 내어 가고옴에 항상 간절하면 놓으려해도 놓아지지 않을 것이니.
크게 의심하시면 그 의단이 커져 인연이 도래하면 밑둥이 펑!뚤리듯 몰록 깨처들것이올시다.
반드시 화두 가운데 알아야 할 낙처를 살펴서 의심지어 나가야 할 것이며,
어떠한 아는것으로도 그 가운데서 알려고 계교하시면 않될것인즉 모두를 놓으시고

단순히 그 화두의 도리만을 꼭 알겠다는 마음만으로 사유하시기 바라겠소이다.

 

또 상기병 운운들 하는데 이것은 공부를 바르게 하지 못한 병이므로 선지식의 바른 지도를 받는다면 이런 병이 본래 없거늘 어찌 참선공부하는 이에게 생길것이리오.
화두를 순일하게 의심지어 가지 못하고 안간힘을 써서 계교로 알아 맞추려 하는 잘못된 공부가 이름하여 상기병이라는 병을 스스로 만들고 있음이니 이런 걱정하지 말고 처소와 능소를 여의고 다만 화두만을 왜? 또는 어째서? 하고 의심 의심지어 가도록 하오.

 

화두는 실은 화두에 경중이 없소이다.
그러나 의정이 쉽게생하고 않고의 차이는 있을 수 있으며 구경의 깨달음이란 달리있는 화두가 없소이다.
다만 화두 하나로 확철대오 하고 못하는 것은 그 사람의 공부지어가는 근기에 따름이올시다.

 

첫째 화두는 반드시 답이 있는 것임을 알아야 하외다.

잘못들 알고 "화두는 답이 없다"는 말을 하는 이들이 있는데 크게 모르는 소치이외다.

화두가 답(법리)이 없다면 무엇을 의심 하며 무엇을 깨달아 알 것이리오?.

화두를 타파하면 곧 도리를 깨닫게 되는 것이 아니겠소? 깨닫게 되면 자연 그 법리를 알것이요 그 안 도리를 방편으로 이를수 있는 것이로소이다.

둘째 "아픈 것도 잊는다는 말에 대해서 일러주겠소.
아픈 것은 아픈것이요. 어찌 잊고 참을수 있겠소. 잊는다 참는다는 것은 개인에 따라 인욕의 차이가 있을뿐이외다.

공부를 참으로 이룬 선지식의 경계에는 참거나 잊는 것이 아니라 그 아픔과 하나되는 경지인 것이외다. 곧 "불이 불에 들어도 뜨거움을 모르는 것과 같다"한 것이외다.

신심 의심 분심으로 크게 깨치시기를 기원하오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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