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無明)이란 무엇인가?
12연기법의 첫번째가 바로 무명(無明)이다.
무명(無明)이란 무엇인가?
명(明)은 밝음, 곧 지혜를 뜻하므로
무명(無明)은 어두움, 즉 지혜가 없어 어리석음을 뜻한다.
어리석음이란 곧 치(癡)이다.
탐진치(貪瞋癡)에서의 그 치(癡)다.
탐진치(貪瞋癡)는 모두 마음에서의 일이다.
그러므로 탐심/진심/치심이다.
무명(無明)이 곧 치심(癡心)이다.
그래서 중아함경에 보면,
12연기를 설명할 때 무명(無明)대신에
무명(無明)이란 즉 어리석어서 지혜가 없다는 의미이다.
그러면 밝음, 즉 지혜는 무엇인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제대로 아는 것이 지혜이다.
모든 것들의 존재방식을 제대로 아는게 지혜이며, 잘못 알고 있는게 바로 무명/무지이다.
어리석음이란 단순하게 멍청하다는 뜻이 아니고, 잘못 알고 있다는 의미이다.
중생들은 보여지고 들려지는 그 모든 것들에 고정불변의 실체가 있다고 여긴다.
또한 자신의 몸과 마음에도 영원불변의 "나"라고 하는 것이 있다고 여긴다.
이것이 바로 무명(無明)이다.
모든 것에 실체가 있다고 여기므로 거기에 집착하는 것이다.
집착하기에 애착, 즉 탐심이 생겨나고, 그 탐심이 좌절되거나 방해가 되면 진심이 생겨난다.
이것이 바로 탐진치(貪瞋癡)이다.
탐심과 진심의 뿌리는 바로 치심(癡心)즉 무명이다.
○제법실상(諸法實相)
모든 것들의 존재방식이란 무엇인가?
바로 연기법이다.
"이것으로 인해 저것이 생긴다."
제법실상은 크게 두가지, 즉 <공>과 <인과>이다.
그러므로 무명이란 모든 것들의 본질이 공한 것임을 모르는 것,
그리고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인과로 흘러간다는 걸 모르는 것을 뜻한다.
1. 空
이것으로 인해 저것이 생긴다라는 의미는
저것은 저것 자체로써 즉 스스로 생겨난게 아니라는 의미이다.
딴걸로 말미암아서 생겨났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스스로의 고유한 성품, 즉 자성/실체가 없으므로 <무아>이다.
사람이 나라고 여기는 첫번째 요소는 바로 자신의 몸이다.
이 몸은 스스로 홀로 생겨났는가? 절대 그렇지 않다.
다른 것으로 말미암아서 생겨났다.
부정모혈과 이전의 識이 화합해서 잉태되고 그게 커서 현재의 몸이 된 것이다.
우리 인간세계에서 몸이 스스로 혼자서 생겨난다면 부모는 필요없게 된다.
우리의 몸은 독립적으로 스스로 생겨난 것이 아니기에
몸에는 영원불변의 실체가 없다. 이것이 무아이다.
몸에는 고정불변의 실체/자성이 없기에, 몸은 언제나 변화해간다.
영원불변의 실체가 있다면 변화할 수가 없다.
변화해간다는 그게 바로 실체가 없다는 증거이다.
그럼 몸 그 자체의 존재방식이란 뭔가?
몸은 아주 없는게 아니다.
無가 아니다.
그렇다고 그 몸에 어떤 영원한 실체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몸은 空한 것이다.
몸의 존재방식이 곧 空이다.
이 空이 곧 중도이다.
그러나 어리석은 자들은 空을 無로 여긴다.
空과 無는 전혀 다른 것이다.
몸엔 영원한 실체가 없기에 상주론을 박살내고,
또한 몸은 아주 없는 것도 아니기에 단멸론을 박살낸다.
몸은 있되 거기에 실체가 없기에 空한 것이다.
수상행식 그리고 존재하는 모든 것이 다 이와 같다.
2. 인과(因果)
"이것으로 인해 저것이 생긴다."
이것은 원인이요, 저것은 결과이다.
모든 것은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어떤 원인으로 말미암아서 저런 결과가 발생되어진다.
무명이라는 원인으로 말미암아 행이라는 결과가 생긴다.
지구가 태양에서 멀리 떨어짐으로 인해 겨울이 온다.
존재하는 그 모든 것은 연기적으로 발생되어짐으로 인해 모든 것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다.
이 세상은 인과로 흘러가고 있다.
그러나 중생들은 이걸 전혀 모른다.
그래서 행복과 불행이 저절로 그냥 생겨난 줄 알기에,
사주팔자/운명 또는 신에게 매달리는 것이다.
불행에는 원인이 있다.
악행이라는 원인으로 말미암아 불행을 겪는다. 이것이 고성제/집성제이다.
행복에도 또한 원인이 있다.
고통의 원인을 끊어버리는게 바로 원인이다.
고통의 원인을 모두 없애버리면 그 결과로써 영원한 행복인 열반을 얻게 된다.
고통의 원인을 모두 제거하는 그 길이 바로 팔정도이다.
불교에서의 행복은 세속적인 일시적인 그런 행복이 아니라, 영원한 행복을 뜻한다.
이러한 인과를 알게 되면,
내 행동, 즉 내 업이 내 행복을 좌우하게 되므로 선량하게 살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중생들은 이러한 인과의 흐름을 모르기에
악하게 살면서도 복을 받고 행복하기만을 바란다. 이것이 무명이다.
이러한 인과를 못 믿는 이유는 시간의 흐름 때문인데,
결과가 바로 그 즉시 나타나지 않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왜 도둑질할까?
왜냐면 도둑질해도 바로 그 즉시 안잡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둑질을 하고도 행복하기를 바라면서 남에게 피해를 준다.
그러나 대부분이 잡힌다.
설사 잡히지 않게 되더라도, 언젠가 반드시 그 과보를 받게 된다.
또한 잡혀서 감옥에 갇히면 몸만 괴롭지 마음은 괴롭지 않지만,
안잡히면 언제 잡힐까 하는 두려움에 언제나 불안하게 된다. 그 역시도 과보이다.
그러므로 과보를 받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과보는 몸과 마음으로 받는다.
무명(無明)이란 모든 것들의 존재방식을 잘못알고 있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제법실상이란 무엇인가?
바로 <공>과 <인과>이다.
본질은 실체가 없어서 공하지만,
겉으로 드러난 현실에서는 인과로 흘러간다. 콩심으면 콩나고 팥심으면 팥난다.
무명(無明)이란
진제의 <공>과 속제의 <인과>, 이 둘을 모르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불교의 핵심이 연기법이고,
연기법의 핵심이 바로 <공>과 <인과>이다.
<공>가 <인과>를 담고 있는 것이 바로 사성제이다.
고집멸도 사성제
고성제(과-결과)
집성제(인-원인)
집성제로 말미암아 고성제가 있다.
고통의 원인으로 말미암아 괴로움을 당하는 것이다.
고성제와 집성제는 인과관계이다.
멸성제와 도성제도 역시 마찬가지다.
멸성제(과-결과)
도성제(인-원인)
도성제(팔정도)를 닦아서 멸성제를 성취한다.
도성제는 길이요, 멸성제는 도착, 즉 결과이다.
그러나 잘 살펴보면 알겠지만,
사성제는 결과부터 먼저 배치시키셨다.
<인과> 순서가 아니고 <과인>의 순서이다.
이렇게 결과부터 배치시킨 이유는
먼저 고통을 알아야만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기 때문이다.
마치 병명을 알아야만 병을 고치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과 같다.
멸성제는 곧 해탈과 열반을 의미하는데,
해탈과 열반은 <공>으로써 성취된다.
그래서 대승이나 소승이나 해탈의 문은 <공>이다.
통상적으로 삼해탈문을 말씀하셨는데, 다 같은 의미이다.
해탈은 오로지 <공>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딴 방법은 있을 수 없다.
타 종교인들, 그리고 외도들과 몇몇 어리석은 불자들이
이 空을 비방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는데,
아함경이나 니까야/청정도론에도 역시나 이 空이 명확히 나오고 있고,
또한 해탈/열반의 가장 뿌리이자 핵심이 바로 空이라고 정확히 나오니 찾아보라.
괜히 어설프게 이 해탈의 유일한 문인 空을 비방하여,
해탈의 문을 닫는 가장 지독한 죄를 짓는 그런 어리석은 불자들이 없길 바랍니다.
본질적으로 해탈의 문은 그 누구도 닫을 수 없으나,
공을 비방하는 그런 글을 보고 초보자가 공을 부처님 법이 아니라고 믿는 경우가 있는데 바로 이게 해탈문을 닫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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