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정토회에서 봉사를 좀 오래 하다 보니 소임이 점점 다양해지고 많아졌는데요. 그러다 보니까 이제는 저랑 좀 껄끄러운 관계가 되는 도반도 생기는 거예요. 제 수준으로는 한 도반이랑 잘 지내는 게 생각보다 어려워서 안 좋은 상황이 됐습니다. 그 도반이랑 최대한 잘해보고 싶었는데 잘 안 되다 보니까 그다음부터는 그 도반을 보면 가슴이 두근두근하고, 만나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피하게 됩니다. 이런 경우가 생기니 참 당황스럽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앞으로도 계속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될 텐데요. 그때마다 이렇게 어려운 상황이 생기면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하고, 어떤 관점을 가지면서 수행해야 할까요?”
“누군가를 봤을 때 호감이 가는 사람이 있고, 약간 거부 반응이 일어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마다 카르마가 다르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조금씩은 이런 반응들이 생겨납니다. 거북한 감정이 일어난다고 해서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거북한 감정이 일어난다고 그 사람을 피하거나, 그 사람과 갈등을 일으키는 것은 수행적 관점에서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수행자는 불편한 마음을 알아차리고 이렇게 자각을 해야 합니다.
‘이것은 내 카르마에서 일어나는 하나의 느낌일 뿐이다.’
느낌은 믿을 만한 것이 못 되거든요. 저 사람에 대해선 나는 약간 부정적 느낌이 있구나, 저 사람에 대해서는 약간 호의적 느낌이 있구나, 이렇게 그저 느낌이 일어나는 것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호의적 느낌이 있다고 해서 그 사람에게 ‘사랑해, 나하고 같이 살자’ 이런 말을 할 수는 없잖아요, 자제를 해야 됩니다. 그것처럼 부정적인 느낌이 있다고 해서 다 거부할 수도 없습니다. 부정적인 느낌은 느낌대로 알아차리면서 그 사람과 함께 해나가야 하는 일은 그대로 하는 겁니다. 반대로 호의적인 느낌이 있다고 해서 그 사람 하고만 밀착해서 일할 수가 없어요. 일정한 거리를 두고 그 사람과의 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오는 사람 막지 말고, 가는 사람 잡지 마라’ 이런 말이 있어요. 오는 사람에 대해 부정적인 느낌이 있다고 배척하지 말고, 가는 사람에 대해 호의적인 느낌이 있다고 해서 붙잡지 말라는 겁니다. ’느낌에 너무 집착하지 마라‘, ‘주어진 조건을 더 중요시해라’ 이것이 주어진 조건에서 자유롭게 살아가는 방법입니다. 이것이 수행적 관점이에요. 지금 제가 하는 얘기는 부정적 느낌이 일어나는 도반과 친해져라 또는 호의적인 느낌을 가지라는 것이 아니에요. 부정적인 느낌이 일어나더라도 필요하면 관계를 가지라는 뜻입니다.
‘부정적인 느낌이 있더라도 그 사람과 해야 할 일은 거부하지 말고 행해라.’
이것이 수행적 관점입니다. 수행적 관점을 가져야 하지만 지금 내 수준에서 그렇게 안 되는 것 또한 현실입니다. 내 수준에서 안 되면 나를 반성해야지, 그 사람을 탓하면 안 됩니다. ‘정토회가 왜 저런 사람을 나한테 붙여주나’ 이렇게 말하면 그것은 수행자의 관점을 놓친 것입니다.
물론 현실에서는 잘 안 됩니다. 아무리 잘 알고 있어도 실제로 안 될 때가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그 도반에게나 지도부에 건의를 해야죠.
‘저는 저분에 대해서는 약간 부정적인 거부 반응이 늘 일어납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극복이 잘 안 되니까 당분간 그분 하고는 접촉이 적도록 좀 조정해 주십시오.’
이렇게 요청하면 됩니다. 중요한 것은 솔직하게 인정하는 거예요. ‘제 수행이 아직 부족하니까 이 문제는 좀 조정해 주십시오’ 이렇게 요청하고 나서 1년이든 2년이든 지나서 이제는 극복할 수 있겠다 싶으면 다시 요청하면 됩니다.
‘제가 이제는 누구라도 함께 할 수가 있습니다. 일부러 불편한 사람을 붙여줄 필요는 없지만 필요하면 함께 해도 좋겠습니다.’
이렇게 또 얘기를 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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