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는 모양도 소리도 없다.
우리는 이미 깨달아있다 즉 부처가 되여있다,
우리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다 부처니기 때문에 깨달아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우주의 본원의 원리인 것이다,
왜? 부처님이 깨달은 것이 연기 즉 중도입니다.
이세상 모든것은 중도 연기로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나도 역시나 그렇다 그러므로 나는 지금 곧 부처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를 믿고 이해하고 실천하고 부처로서 살면 되는것이다
내 마음이 분별심이 없이 청정한 마음을 갖고 있으면 내가 있는 곳이 절이요 법당이다,
마음이 청정하면 부처요, 미혹하면 중생다.
정토는 따로 있는것이 아니다
내 마음 내집 내방 내있는 곳이 청정도량 이니 한마음 집착과 분별을 버리고 청정심으로 겸손하고 교만하지않게 살아 간다
면 정토의 수행자로서 가는길 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마음이 부처다 생각도 보는것도 듣는것도 느끼는것도 감정도 모든것이 이 마음이며
마음을보면 연기를보고 법을보고 부처를본다고 했다.
이세상 있는 모든것은 영원한 것이 없고 곧 허망하고. 항상하지 못하다.
늘 수시로 변하고 달라지고 있다. 그래서 고정된 실체의 상이 없으므로
상이 없다. 비상이다. 즉 무상이다. 라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단독적으로 존재 할 수있는 것은 없다.
물론 나라는것도 나라고 할수 있는것도 내것이라 할수 있는 것도 없는 것이다.
왜? 연기적 작용으로 즉 원인과 조건으로 말미암아 결합되여 있기 때문에 딱히 절대적인것은 없다는 것이다.
즉 꿈과 같은 환(幻)으로서 가합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 어디에도 머무를수 있는것도 머무를수 있는 곳도 없기 때문에 무주상 이라 하는 것이다.
고정되여 불변하는 실체의 상은 없다는 것이다.
물질이나 마음 생각 느낌 감정 시비 그 어떤것도 이름뿐이지 실체가 있는것은 없다는 것이다.
금강경에서 이것을 즉비로 상을 부정 하고 이름뿐이다 라고 긍정하는 것이다
대승불교에서는 이것을 한 단어로 공이다 라고 표현 할 뿐이다.
금강경의 핵심이 바로 공이다 정해진 법이 없다는것을 무유정법으로 나타내는 경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불확정성의 원리라고 할수있는 것이다.
이것인가 싶으면 이것도 아니고 있는 가 싶으면 또한 있는 것도 아니면서 또한 없는 것도 아니더라.
양자 물리학에서 빛은 곧 파동인가 싶어 측정을 해보면 입자이고 입자인가싶어 측정해 보면 파동이더라
이중성을 가지고 있어 입자라고 할수도 없고 파동이라고 할수도 없어 입자이면서 파동이다라고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금강경에 무유정법으로 인연따라 이뤄지는 수연성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불교는 지금 즉 이순간을 중심으로 분별하지 말고 집착하지 말고 마음을 내며 그냥 부처로 인연따라 살아가는 것이 수행자
의 자세 즉 면목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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