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경 강의 (07) / 해안 스님▒

 

無得無說分 第七

무득무설분 제7

 

 

■경문.

須菩提 於意云何 如來得 阿耨多羅三藐三菩提耶

수보리 어의운하 여래득 아뇩다라삼먁삼보리야

 

如來有 所說法耶 須菩提言 如我解佛所說義 無有定法 名

여래유 소설법야 수보리언 여아해불소설의 무유정법 명

 

阿耨多羅三藐三菩提 亦無有定法 如來可說.

아뇩다라삼먁삼보리 역무유정법 여래가설

 

※ 주석.

수보리야 네 뜻에 어떠하냐,

여래가 아뇩다라 삼먁 삼보리를 얻었다 하느냐,

또 여래가 설한바 법이 있느냐,

수보리 말씀 여쭈되,

내가 부처님의 말씀 하신바 뜻을 아는바 같아서는,

정한 법이 없는 것을 이름하여 아뇩다라 삼먁삼보리라 하옵고,

역시 정한법 없는 것을 여래께서 가히 설 하셨나이다.

 

● 해설.

나는저 위에서, 아뇩다라 삼먁삼보리를,

최고 진리인 가장 잘 사는 법 이라고 말 하였다.

잘 살고저 하는 사람은 먼저 잘사는 법을 배워 얻어야 할것이니,

잘사는 법이란 무엇인가,

이마음을 모든 상에 착 하지 아니 함이 가장 잘사는 법이다.

어째서 그러하냐,

상에 착하면 자유가 없기 때문이니,

자유가 없는것은 잘 사는것이 못 된다.

그러므로 윗 대문에서 법과 비법을 다 버리라고 말씀 하셨는데,

그러면, 중생들이 생각 하기를 여래가 얻은 법은 법이 아니고

무엇일까 하고, 의심할가 염려되어,

이대문에 와서는 수보리를 불러,

(너는 여래가 아뇩다라 삼먁삼보리심을 얻었다고 생각하느냐,

그리고 여래가 설한법이 있느냐) 고 물으신 것이니,

 

수보리의 대답은 이러하다.

(제가 부처님의 말씀하신 뜻을 아는바 같아서는,

무엇이 잘사는 법이라고 이름지을 정해진 법도 없고,

또, 부처님 께서 무슨 법을 설하신 일정한 법도 없읍니다) 이렇게 말하였다.

이에 이르러 절망 하지말라.

잘 사는법 이라고 지정할 무슨 법이 없으며,

또 어떠한 법을정하여 말씀 하신것이 없다하니,

잘 살기를 구하는자, 무엇을 의지하며 무엇을 배워야 할것인가,

이러한 생각을 내지말라. 아뇩다라 삼먁삼보리는 곧 마음법 이다.

 

마음법은 본래 정해진 것이 아니다.

비유컨대, 어떤 그림 그리는 화공이 무색 종이 위에다 그림을 그리는 것과같이,

범을 그리면 범이 되고,

토끼를 그리면 토끼

개를그리면개,

사람을 그리면 사람,

부처를 그리면 부처,

지옥을 그리면 지옥,

천당을 그리면 천당,

푸른색을 칠하면 푸르게,

누런색을 칠하면 누렇게,

붉은색을 칠하면 붉게,

흰색을 칠하면 희게,

검정색을 칠하면

검정색이 되는 것과같이,

모두가 실다운 것이 아니다.

이와같이 아무 티하나 없는 우리 본심위에,

한 생각이 일어나면,

동이니 서이니, 남이니 북이니, 선이니 악이니,

괴로우니 즐거우니, 죄니 복이니,

하는등 천차만별의 종종 상 이 생기게 되나,

한 생각만 쉬고보면,

이러한 것들이 모두 물거품인 것이니,

본래 청정무구한 열반 경지에 돌아가는 것이다.

이 자리는 한물건도 없는 지라

얻을 것이 없고 설할것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얻을것 없는것을 얻는것이 아뇩보리요,

설할것 없는것을 설하신 것이 아뇩 보리인 것이다.

 

 

■ 경문.

何以故 如來所說法 皆不可取 不可說 非法 非非法

하이고 여래소설법 개불가취 불가설 비법 비비법

 

所以者何 一切賢聖 皆以無爲法 而有差別

소이자하 일체현성 개위무위법 이유차별

 

 

※ 주석.

어찌한 연고이냐 하면,

여래께서 설하신 법은 다 가히 취할수도 없으며,

가히 말할수도 없으며,법도 아니며, 법 아님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째서 그러하냐,

일체 현성이 다

무위법 (함이 없는법) 하나로써 차별이 있는 까닭 입니다.

 

● 해설.

여래의 설하신 법은 일정한 법이 없다.

어째서 그러냐 하면 마음법 이기 때문이다.

한가지 법을 가지고

어느때는 크다고 말씀 하시고,

어느때는 작다고 말씀 하시고

어느때는 아무것도 없다 하시고,

어느때는 우주에 가득차 있다 하시고,

어느때는 법이라 하시고,

어느때는 법이 아니라 하시고,

어느때는 하나도 취하지 말라 하시고,

어느때는 하나도 버리지 말라 하시고

어느때는 상에 착하지 말라 하시고

어느때는 상이 아니라 하시고

어느때는 바라밀 (저언덕에이른다) 을 설하시고,

어느때는 바라밀이 아니라 말씀 하셨으므로,

어느 일정한 법이 없으니,

어떻게 취할수가 없고,

어떻게 말할수도 없으며,

법도 아니고 법 아닌것도 아니니,

 

어찌한 소이 인가 하면,

일체 성현들이 다 이법(무위법)

하나로써 중생을 제도하게 되므로,

소승을 대하면 소승법을 설하고

대승을 대하면 대승법을 설하고,

외도를 만나면 외도법을 설하고,

아귀를 만나면 아귀도 를 설하고

축생을 만나면 축생도를 설하게 되나니,

때에 따라 장소에 따라,

무량 무수한 중생의 근기에 따라,

각각차별이 있게 설하신 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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