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 참된 이치를 바로 봄

 수보리야, 그대는 어찌 생각하느나?

 나의 외모를 가지고 여래라고 할 수 있겠느냐?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외모를 가지고는 여래라고 할 수 없습니다.

 

 오늘은 무엇이 부처인가에 대한 것이 먼저 나옵니다. 

 부처님은 32상의 좋은 상호를 가지고 태어났어요. 

 귀가 크고, 이마에 흰 털이 나있고, 정수리가 상투처럼 살이 돋아나있고....

 손과 발바닥은 비단처럼 고우며....무늬가 희한하게 바퀴처럼 생겼고....

 몸집이 사자의 상처럼 어깨가 우람하고....

 옆구리가 날엽하고,,,, 

 팔이 무룹아래까지 내려오고 

 

 손가락이 유달리 길고...그래서 손가락 사이에 물갈퀴같은 살이 있고

 발꿈치가 넓고 두겁고

 발등이 도톰하게 올라와있고

 팔뼈가 사슴의 왕처럼 굵고 단단하고

 음부가 말의 성기처럼 속에 감추어져있고

 신체가 크고 넓으며 균형을 이루었고

 털은 푸른 색이고 위로 나서 오른 쪽으로 돌아나고

 두 구멍에서 한 털이 나오고 

 몸이 금색을 띠고

 금색빛이 한 길이나 비치고 

 

 양손, 양발, 양어께, 목털미 살이 도톰하고

 겨드랑이 밑에 살이 도톰하고

 신체가 항상 곧바르고

 어깨가 원만상이고...달처럼 둥근...

 치아가 40개이고 

 치아가 고르게 나있고

 어금니는 한쪽이 4개인데 하얗고

 최상의 미각을 가지고 있고 

 부처님을 볼수 있었던 그시절에 태어난 사람들은 복 받았나 봅니다..()

 혀가 유난히 길어서 얼굴을 덮을 정도이고

 천상의 목소리같고 

 눈동자가 감청색이고

 속눈썹이 큰 소와 같이 곧고 길고

 양미간 사이에 흰 털이 나있는데 5자나 되고 이것이 감겨서 뭉쳐있으므로 은보석처럼 빛난다.

 

 이상이 32상이어요. 휴~~

 

 이 상 중에 한 상을 얻으려면 100가지 좋은 일을 해야합니다. 

 저도 몇 백가지는 좋은 일을 했는지 

 이 중에 한 두개는 같습니당~~^^*

 

 그러니까 불상을 금색으로 도금하는 이유가 있어요.

 몸이 금색이고 빛이 나는데 가장 적합한 물질이 금인 것이고 

 금으로 해야 부처님의 몸을 실제에 가장 가깝게 표현할수있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그런데 부처님은 이런 외모를 가지고 부처라고 하지 말라했어요. 

 몸뚱이가 아무리 잘나도 꼳 썩어서 없어질 것들입니다. 

 이런 형상으로는 부처라고 하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물론 부처님의 위대한 점을 깊이 부각시키기 위하여 각종 희한한 불상을 조각하고

 큰 부처님을 조각하는 것도 좋지만 이런 불상만 짓고 

 마음 속에 있는 불상은 찾지 않으면 아무 소용없습니다. 

 오늘날 중동전쟁에 불교의 책임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마호멧이라는 사람이 나오기전 대략 서기 5백년경까지는 

 많은 중동 지역이 불교를 믿는 나라였어요. 

 스님들도 많았고 불자도 많아 불교가 국교인 곳도 많이 있었어요. 

 그런데 불상과 불경과 스님은 있었으나 안타깝게도 소승불교를 하는 나라라 

 자기가 바로 부처인 줄은 몰랐습니다. 

 부처님은 당신을 존중하고 예배하기를 원하였던 것이 아니고 

 각자 자기 속에 있는 부처님을 발견하여 

 부처의 행을 하기를 바라셨으나 초기 불교는 부처가 되기어렵다고 생각하여 

 감히 누가 선듯 나서서....내가 깨달은 자이고 부처님과 같은 부처이니라 하고 나서는

 사람 이 없는  불교였습니다. 그러니까 오늘날처럼 기복신앙은 강하고 수행 위주여서 

 깨달은 자가 많이 없었던 것입니다. 깨달아야 진정 자기를 발견할 것인데 

 깨닫지를 못하니 점점 마호멧을 전파하는 이슬람주의에 뭍혀지고

 스님들은 처형 당하고, 불경을 없어지고, 불상은 파괴되었어요. 

 알마전에도 파괴했죠? 

 어디드라? 이라크죠?

 하옇튼 거기서 큰 불상 폭파시켜

 

 신문에 크게 났어요. 

 네, 맞아요. 이라크일거야요. 후세인정부였을때

 거의 산 하나가 다 불상인데

 그것을 폭파시켰으니 얼마나 아까운 세계문화유산이 없어진 겁니까? 

 후세인이 그런 정치를 했으니까, 불상을 파괴했으니까 오늘날 수난을 당하는 거야요

 그러니까 이렇게 큰 불상을 세우면 뭘합니까? 이것은 없어져요. 

 그리고 이런 것이 아무리 많아도 인재가 없으면 소용없어요. 

 그러니까 그런 불상을 세울 정도의 열성이 있으면 

 도인을 만들 열정도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많은 깨달은 도인들이 나와서 이리가도 부처, 저리가도 부처,

 돌아가도 부처 등으로 넘쳐나야 

 불교가 오래갈 것아닙니까? 그런데 그런 부처를 발견하게 하는 데는 무관심하고 

 외적인 불상만 크게 하면 무슨 소용이겠어요. 

 인재가 없으니 타종교는 크게 번창하는데 불교는 항상 뒤에 쳐져있습니다. 

 이것 다 부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아서 그래요. 

 다른 사람보고 부처님의 말씀 어겼다고 난리지길 것이 아니라

 불교 자체가 자기가 부처인줄 모르면 다 부처님의 말씀을 어기는 사람이고 

 이렇게 되면 불교가 빨리 망합니다. 

 부처님의 제자 수보리는 정확하게 부처님의 뜻을 안 사람입니다. 

 여래=부처

 여래의 외모는 부처가 아니라고 단언합니다. 

 왜냐하면 여래께서 말씀하신 

 신상(身相)이란 곧 외모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분명히 말합니다. 

 

이말은 뭐냐하면 

상은 곧 상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아무리 부처님이 32상의 근사한 모습이 있어도 그것은 물거품같은 것이고 

 지금 이대로 모습이 눈에 보여도 그것은 그림자같은 것이라 상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사람은 지수화풍 4가지 원소로 된 것인데 각자 그 원소가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면 

 자기라고 할 것이 없잖아요.

 그러니까 상은 상이 아니라고 한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다시 수보리에게 말씀하시되

 

 "무릇 형상을 지닌 것은 (凡所有相) 

 모두 다 허망한 것이니 (皆是虛妄)

 만약 모든 상이 상 아님(非相)으로 본다면 (若見諸相非相) 

 곧 여래를 보리라 (卽見如來)" 

 유명한 금강경의 4구게입니다. 

 4구게란 4가지 글귀로 된 게송이라는 말인데 

 이 게송이 참 유명하고 좋은 게송입니다. 

 모두 적어서 수첩에 넣어가지고 다니세요. 

 가지고 다니면 일체 마장이 물러가고 큰 복을 받고 소원을 이룬다고 했습니다. 

 저 뒤에 나와요. 

 

 그러니까 부처를 보려면 상에서 보면 절대로 못본다는 말입니다. 

 모든 상이 비상(非相)으로 보여지면 곧 부처를 본다는 말이어요.

 007 영화에 보면 투시안경이 나옵니다. 

 그것을 쓰면 옷 속의 것이 보여요. 

 누가 권총을 찻는지 속 몸이 어떻게 생겼는지 

 다 나옵니다. 그러니까 옷으로 치장해도 그 속의 것은 못보는데 

 

 이 안경을 쓰면 그 속의 것이 다 보여요.

 

 그처럼 여러분이 진리라는 안경으로 세상을 보고 

 모든 상이 비상으로 보여지게 된다면 

 곧 부처를 보게 되리라는 말씀이어요. 깊은 뜻입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상에 얽매여있습니까?

 

 학력, 이쁜 것, 못난 것, 부자, 가난,,,,, 

 스님, 국회의원, 대통령, 종정, 구청장.....

 45평, 30평, 15평, .....이런 상에 억매여있기 때문에 

 진실를 못봅니다. 

 그러니까 아무리 좋은 것을 보아도 무심이어야 하고....

 아무리 나를 욕해도 무심이고, 칭찬해도 무심,,,,

 무엇이 되어도 담담,,,,,대통령에 당선되어도.....담담

 

 리무진을 끌고 와도 담담....

 그렇게 되어야 바로 부처를 본다는 말입니다. 

 만약 마음이 상에 얽매이는 것이 있으면 그것이 가로 막아 절대 진실을 보지 못해요. 

 중국에 조주스님은 120세를 살았어요. 

 사람들은 모두 살아있는 부처라고 말했습니다. 

 오래 살아서 그런 것이 아니고 마음이 항상 똑같아요. 

 상에 얼매이지 않은 것이죠. 

 한번은 나라의 대왕이 왔어요. 

 그런데 시자가 대왕이 옵니다 하고 알렸는 데도 문밖까지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설법이 끝난 뒤에도 다리가 아파 나아가지 못한다 하고 

 문밖까지 전송하지 않았습니다. 

 이 소문을 들은 장군이 벌컥 화를 내고 다음날 조주스님이 있는 관음암에 갔습니다. 

 그런데 문밖까지 와서 맞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제는 왕을 앉아서 맞더니

 오늘은 장군을 어찌 문 밖까지 와서 맞느냐고 물었어요.

 그랬더니 왕의 심량과 장군의 심량이 다르다고 한마디 던졌습니다. 

 그랬더니 말에서 내려 인사하고 돌아갔습니다. 

 왕은 일국을 다스리는 주인이기 때문에 무엇이든지 받아들일 수있는 그릇이 있으나 

 장군은 일개 군사를 거느리고 있기 때문에 그릇이 작다는 것입니다. 

 최소한 선사라면 이정도는 되어야 합니다.

 뭐 국회의원이 한 사람이 와도 부산을 떨면 안되요. 

 누가 오던지 그 상을 보지 말고 그 속을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누가 와도 똑 같아야되요. 

 부처님으로 생각하려면 전부 부처님으로 생각하고 

 중생으로 보려면 전부 중생으로 보아야지 

 그 상에 걸려있으면 세상도 제대로 못살고 부처도 발견하지 못합니다. 

 높은 직위에 있는 사람이라고 다 훌륭하지 않아요. 

 그 상을 보지 말고 그 속을 보라..스님..참 좋은 말씀입니다..()

 시장에서 장사하는 사람도 훌륭한 사람 많습니다. 

 현대는 사람 그 자체가 중요하지 그 직위나 학력이나 능력은 중요하지 않아요. 

 이런 사상이 그대로 불교 사상에 있습니다. 

 그래서 불교은 항상 현대적이고 미래적이어요. 

 오늘날 불교가 자꾸 현대인에게 인기가 있는 이유는 불교가 시대가 많이 지나도 

 항상 미래적이고 현실에 적합한 종교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불교는 상에 얽매이지 말라해요. 만약 상에 얼매이면 진실를 못보고 

 그 상에 끌려가면 부처를 못본다고 했어요. 

 그러니까 여기있는 모든 불자님들은 앞으로 절대 상에 매이지 말고 

 상을 보고 부처를 보지 말고 자기 마음을 보고 부처를 보아야 합니다. 

 

상이 없는 것, 무엇입니까? 

 

 상이 없으면서도 무엇이든지 다하고 다 일어나는 신비한 존재가 바로 마음입니다. 

 그렇습니다. 무심이어요. 

 이 마음이 부처입니다. 법당에 불상은 그것을 가르쳐준 분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지....

 그 앞에서 수행하고 법문듣는 장소이지 그 상이 부처는 아닙니다. 

 설사 2천6백년전 부처님이 그대로 여기에 나타났다 하여도 

 깨박 죽어서 부처라고 난리치고 예배하려고 하면 안됩니다. 

 그 살아있는 분도 껍데기는 부처가 아니어요. 그 상 속의 마음이 부처입니다.

 그 부처는 우리 모두에게 있습니다. 

 그런 자심불을 보는 눈이 열려야 부처를 보지 상에 얽매이는 작은 눈으로는 부처를 보지 못합니다. 

 2천 6백년전의 부처를 보려고 하거든 자기를 보세요. 자기 마음을.... 

 그리고 누가 부처를 보았냐고 묻거든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확실히 보았다고 말하세요. 

 그럼 무엇이 부처냐고 묻거든 얼른 합장하고 

 "뿌리없는 뿌리에 걸려 넘어지지 말고 잘 가세요."

 라고 하세요.

 뿌리 없는 뿌리가 뭡니까? 

 

 길에 가다가 돌뿌리에 걸려 넘어지게 되면 돌아보면 다 뿌리가 깊게 박혀있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걸려넘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음은 뿌리가 없어요. 

 형체가 없는데 무슨 뿌리가 있겠어요. 

 

 그런데 사람들은 스스로 뿌리 없는 뿌리를 만들어 놓고 거기에 넘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한마디 근사하게 하면되요. 부처님처럼....

 무엇이 부처입니까 할때 

 마음이요...하고 대답하면 안되요. 왜냐? 그렇게 말하면 

 마음이라는 명자(상)를 세운 것이라 틀려져요. 

 그냥 부처가 되어서 한마디 좋은 말을 일러주면 됩니다. 

 다른 좋은 말을 해도 되요. 

 이렇게 자기가 부처임을 증명하고 설하고 깨닫는 불교가 된다면 

 불교의 혁명이 일어나요. 

 

  마르틴루터는 기독교 구교가 지나치게 형식에 많이 매여있음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혁명을 일으켰어요. 그 주장은 성서주의였습니다. 

 어찌 천당에 가는데 주교의 안수를 받아야 되고, 표를 받고 축복을 받아야 됩니까?

 이것은 지나치게 의식주의이고 형식주의여요. 

 누구든지 성서를 읽을 수 있고 실천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릅으로 모여서 대표가 연설하고 회개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도하면 천당에 간다고 말했어요. 

 이것이 오늘날 신교, 개신교입니다.

 목사는 장가를 가고 주님의 말씀을 전도하면 되었지 굳이 하나님께 수절을 보일 필요가 없다고 했어요. 

 하나님은 인간을 만들때 누구나 공평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인간이 장가가는 것은 권리였고 천리였어요. 

 그런데 이 새로운 혁신적 연설에 뜻밖에 수많은 군중이 지지를 한 것입니다. 

 그래서 개신교가 나와서 오늘날 세계사를 바꿔놓았어요. 

 불교도 이젠 지나치게 의식주의, 형식주의에서 벗어나 누구나 참 자기를 발견할 수 있고 

 당당히 진정한 부처를 표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무불선원 강의중에서

 

상이 상이 아니다.

어떠한 모양을 가추거나 언어로서 애기하는 상은 부처가 말하는 진실한 무상이 아니기 때문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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