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已生起心)
응당히 색에 머물러서 마음을 내지 말며
응당히 성 향 미 촉 법에 머물러 마음을 내지 말아야 하느니라.
보살이 마음을 써야 할 바를 계속 설하고 계십니다.
보살은 이 국토를 장엄한다 하여도 장엄한다는 생각이 없어야 한다 하였고
한다는 생각이 없는 것이 바로 청정이라고 하였습니다.
무슨 좋은 일을 하고도 했다는 생각이 없는 마음
현재 하고 있어도 하고 있다는 생각이 없는 마음
이것이 청정이라고 했어요.
만약 조금이라도 좋은 일을 했다는 생각이나
그런 말을 한다면 그것이 바로 더러움이라고 하였습니다.
무엇을 해도 고요한 마음을 유지하고 있으면 그것이 원래 깨끗한 마음을 지키는 것이나
한 생각이라도 일어나면 일어난 그것이 바로 더러움인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수많은 말을 하고 살아가지요.
그런데 평상시 말은 다 무심에서 나온 말이라 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간다, 온다, 밥 먹어라, 학교에 가라, 잘 다녀오세요,,,,,등등
일상사 필요한 말은 그 자체가 무심입니다.
그러나 높다, 낮다, 옳다, 그르다, 더럽다 깨끗하다, 부자다, 가난하다 등등
은 다 더러운 말입니다. 고요한 마음에서 파문을 일으킨 말입니다.
저기 높은 사람이 오고 있다......라고 누가 말한다면 그 사람은 더러운 냄새를 풍기고 있는 것입니다.
야! 저기 깨끗한 도인이 지나가고 있다...... 라고 말한다 하여도 그 사람 역시 더러운 냄새를 풍기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야! 이 더러운 놈아......하고 소리를 친다고 하여도 역시 말하는 자 역시 더러운 사람 입니다.
왜냐하면 원래 더럽고 깨끗함은 없는데......스스로 한생각 더럽다는 생각을 내었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낸 사람이 오히려 청정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모든 물질에 집착하여 마음을 내면 안됩니다.
좋은 집에 살고 있다, 좋은 차를 끌고 다닌다, 좋은 옷을 입었다.
이렇게 물질에 집착하면 아직 존재에 집착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물질은 허망한 것입니다. 아침 이슬과 같아요.
영원한 것은 아무 것도 없고 언젠가 허망한 공으로 돌아갑니다.
그래서 반야심경에 '색은 곧 공이니라' 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시간이 지나서 공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현재 존재하는 것 자체가 곧 공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불교의 수행중에 '관법' 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관(觀)이란 마음으로 본다는 말인데
어떤 것을 외적인 것을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고 그 내부를 보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사람을 보되 대부분 사람들은 그 외적인 것을 봅니다.
그래서 아, 참 이쁘다! 하고 스스로 냄새를 풍깁니다.
그러나 진실은 정말 이쁠까요?
수행자는 그 사람 속을 들여다 봅니다.
그것은 낭중에 결론이고.....우선은 피부 속을 봐요. 마음으로 봅니다.
그러면 시뻘건 피가 흐르고 있는 살덩이만 보일 것입니다.
그 살을 뚫고 들여다 보면 창자 속이 나오는데 음식물이 쉬어서 냄새가 지독하게 나고
음식물은 녹아서 마치 오물통을 들여다 보는 것처럼 더럽고 축축한 것으로 꽉 차 있어요.
뿐만 아니라, 비장(취장)을 들여다 보면 독한 액체가 흐르고 있고.....
대장을 들여다 보면 찌꺼기 들이 미쳐 나가지 못하여
냄새나는 오물이 되어 막혀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식으로 머리속이나 발, 손 들을 들여다 보고.....
나중에는 그 뼈를 들여다 보아야 합니다.
사람이 살이 없어지고 뼈만 남아서 앙상한 것이 이리 저리 왔다 갔다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관법이라고 합니다.
마음으로 내부를 보는 방법입니다.
그렇게 자꾸 보다보면 나중에 사람을 보아도 외부만 보지 않고 내부를 보게 되어요.
그러니 허망한 것이 인간이고 더러운 오물로 꽉 차있는 인간이요,
뼈만 앙상한 인간으로 보이게 되요.
뼈조차도 부서지고 나면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는 공을 보는 것입니다.
이렇게 매일 사람의 속을 들여다보다가 나중에는 공으로 돌리는 수행을 백일간 하면
참 좋습니다. 이것이 관법입니다.
나중에는 사람의 몸뚱이에 현혹되지 않아요.
지나치게 예쁜 것 좋아하는 사람은 이 관법을 공부해야 합니다.
아직 미혼들은 특히 해두어야 해요. 그래서 얼굴 보지 않고
마음을 보고 결혼하도록 해야 합니다.
허망한 몸뚱이, 냄새나는 몸뚱이인데 거기다가 겉만 요란하게 치장하면 무얼합니까?
그것은 마치 얼은 똥으로 깍은 인형에다 좋은 옷을 입혀놓은 것과 같아요.
똥깍 인형에다 옷을 입혀놓으면 의미가 있어요?
똥깍 인형에다 아무리 좋은 옷을 입혀놓는다고 냄새가 안나겠어요?
마찬가지로 사람이 분별심을 제거하지 못하고 있으면서
아무리 좋은 옷을 입혀 놓아 보아야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입에서 냄새만 날뿐입니다.
옛날 큰 스님들은 사람을 제분기(製糞機)로 보았어요.
즉 똥만드는 기계라는 말입니다.
입으로 음식을 넣으면 하루종일 몸이 하는 일은 똥만드는 것 외에는 없습니다.
누구나 다 똥깍인형이요,
제분기인데 어찌 이 몸뚱이가 위대하고 좋은 것이라고 집착하겠어요.
이 몸은 적당히 춥지 않게 입으면 되고 남에게 실례되지 않으면 되지
몸에다 크게 치장할 가치는 없습니다.
이런 식으로 모든 물질적인 것에 집착을 떠나야 보살입니다.
양나라 무제가 불교의 귀의하여 수많은 절과 법당과 불상을 조성했습니다.
기록에 수백건에 달한다고 하였는데 중국 역사상 절과 불상 짓는데 그렇게 열성적으로
헌신한 왕이 없었어요.
나중에는 절에서 허드렛일을 하고 왕궁에 돌아가지 않아요.
신하들이 자꾸 절에 찾아와서....결재를 맞고....왕궁으로 돌아가자고 하여도 안갑니다.
나중에 하도 간청하면 나를 돈을 주고 사가라고 하여 신하들이 품삵을 주지스님이게
주고 왕을 모셔갔어요.
그런 왕이 하루는 달마라는 고승이 있다는 말을 듣고 찾아가서 물었습니다.
"제가 이와같이 수많은 불사를 하였으니 그 공덕이 얼마나 됩니까?"
달마스님이 왈 "무無!" 라고 외쳤어요.
그러자 왕이 얼굴 색을 바꾸며, 아니 경에는 수없는 복이 된다고 하였는데
어째서 무냐고 반문하자......
더이상 아무말도 않고 산 속으로 떠나가버렸습니다.
아직 중국은 불법이 제대로 펴지지 않았구나....생각하고
9년을 굴 속에서 참선하면서 지냈는데 하루는 혜가라는 청년이 와서 불법을 묻기에
"이 법은 몸을 아끼지 않는 사람을 위하여만 전해줄 수있다. 네가 증표를 바쳐라" 하자
두 말 않고 팔을 끊어 바쳤습니다.
이것을 보고 제자로 받아주어 나중에 법을 전했으니
중국은 이 선불교를 얻기 위하여 자기 팔을 끊어바쳐서 산 것입니다.
그렇게 얻은 것이기 때문에 고귀하고 아름답고....
깊어서 남에게 함부로 전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일을 많이 해도 했다는 한 생각, 이것이 바로 물질에 집착한 생각입니다.
아무리 했어도 한 것이 없는 줄 알아야 깨끗하고 큰 공덕이 되는 것입니다.
물질이나 소리나 냄새나 맛이나 촉감이나 각종 지식에도 마음이 머무르면 병이 됩니다.
이런 것에 머무르면 중생이라 하고 세상이 시끄러워집니다.
너 했니,,,안했니,,,하고 싸우고,,,,잘했다 못했다 싸우고,,,,,,
모두 허망한 것에 사로잡혀 헤매는 것일 뿐입니다.
응당 머문바 없이 그 마음을 낼지니라. 應無所住 而生其心
금강경의 백미라고 하면 바로 이 대목입니다.
여기가 가장 아름답다고 모두 한결같이 찬탄을 아끼지 않고 노래를 불렀어요.
머문 바 없이 그 마음을 내라.
색성향미촉법에 머물지 말고 마음을 써라.
색 소리 냄새 맛 촉감 법에 집착하지 말고 마음을 내라.
거친 옷을 (색:물질)을 입어도 입었다 생각하지 말고 마음을 낼 것이며
아름다운 노래(소리)를 부른다 하여도 자랑하지 말고 마음을 낼 것이며
아름다운 향기가 나더라도 난다고 생각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마음을 낼 것이며
아름다운 맛을 내는 요리를 만든다 하여도 자랑하지 말고 그냥 평범하게 마음을 낼 것이며
아름다운 천을 짜는 직물박사라고 하여도 박사라는 생각을 내지 말고 마음을 쓸 것이며
수많은 지식(法)을 가지고 있다 하여도 안다는 생각이 조금도 없이 그 마음을 낼지니라.
이것이 바로 '응무소주이생기심'이라는 유명한 금강경 구절입니다.
금강경은 기본적으로 샛소리냄새맛촉감법을 버리라고 하지 않고
거기에 머물지 말라고 하였어요.
집착하지 마라라는 말이지요.
이것이 불교의 핵심입니다. 6진이 이 세상에 없을 수는 없어요.
그러므로 내가 없엘수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멀리 산으로 피하거나 접촉을 꺼려하는 것이 아니고
항상 그 속에 살되 '머물지 말라' 라는 가르침입니다.
이것이 불교의 묘미입니다.
도교는 도피하여 산으로 들어가는 종교이지만
불교는 더 깊이 마을 속으로 들어가되 물들지 말라는 멧세지가 담겨있어요.
어떻게 물들지 않는가?
초월하라.
어떻게 초월하는가?
6진 속에 있되 마음이 머물지 말라.
이것이 붓다의 가르침입니다.
이 말에 육조혜능스님도 깨달았고, 많은 선사들도 여기서 다 깨달았어요.
6진을 도피하는 것이 아니고 6진 속에 있되 마음이 머물지 마라.
사심주(思心住)
담담히 보라
이것이 불교의 도의 극치점인 것입니다.
이것이 부처님께서 말하고자 했던 핵심입니다.
여기서 깊이 깨달으세요.
그 어디에고 머물지 않으면 공부 끝입니다.
그대가 바로 붓다입니다.
몸이 이 세상에 있되 마음은 머물지 않는다면 그대가 바로 청정한 붓다요,
깨달은 자입니다.
그 어떤 사상이나, 이념이나, 개념에도 마음이 머물지 않는다면
당신은 평안한 성인이 된 것입니다.
여기서 여러분이 큰 것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불교는 아무것도 주장하지 않고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종교입니다.
그저 주어지는 대로 일하고, 쉬고, 문제가 있으면 그것을 해결하고,
자기의 능력대로 과학자는 미래를 연구하고, 정치인은 정치를 하고, 선생님은 가르치되..
자연스럽게 살아가되.....항상 무심속에서 할 것.....
마치 꿀벌처럼,,,,,,,여왕벌처럼,,,,,,,,군사벌처럼,,,,,,,,
자기의 직분에 충실할 뿐,,,,,,,,,생각은 항상 비울 것,,,,,,,,
비우다 : 별난 생각을 일으키지 않는 것
※無佛禪院 금강경 강의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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