無斷無滅分 第二十七

 

 

須菩提(수보리)야 汝若作是念(여약작시념)하되 如來(여래)-不以具足相故(불이구족상고)로 得阿耨多羅三藐三菩堤(아뇩다라삼먁삼보리)면 須菩提(수보리)야 莫作是念(막작시념)하라 如來不以具足相故(여래불이구족상고)로 得阿耨多羅三藐三菩堤(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니라 須菩提(수보리)야 汝若作是念(여약작시념)하되 發阿耨多羅三藐三菩堤 心者(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자)는 說諸法斷滅(설제법단멸)가 莫作是念(막작시념)이니 何以故(하이고)오 發阿耨多羅三藐三菩堤心者(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자)는 於法(어법)이 不說斷滅相(불설단멸상)이니라

 

『수보리야! 네가 만일 생각하기를, 「여래는 구족상을 쓰지 않음으로써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셨도다.」하겠느냐, 그런 생각을 하지 말라. 「여래께서 구족상을 쓰지 않음으로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고 하지 말라』

『수보리야! 네가 만일 생각하기를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낸 이는 모든 법이 단멸하는 것으로 말하는구나.」한다면 그런 생각을 하지 말라. 왜 그러냐 하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낸 이는 모든 법에 대해 단멸상을 말하지 않기 때문이니라.』

 

 

第二十七 無斷無滅分--단멸이 아니다

 

[科 解]

앞에서 제26 법신은 상이 아니란 법신비상분(法身非相分)을 말씀하실 적에 여래는 32상·80종호(種好)로 볼 수 없다고 하셨고, 또한 모양이나 소리로 부처님을 찾는다면 이것은 곧 사도라고까지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부처님은 32상·80종호 같은 복된 상에는 아무 생각도 없고 일체의 법에 대해서 모든 진리는 아주 다 없어지는 것이란 단멸상(斷滅相)을 가지기 때문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얻으시는 것인가 보다.」하고 잘못 생각할까봐 염려해서 이 잘못된 생각을 미리 막으시려는 말씀입니다.

 

原 文 : 須菩提 汝若作是念 如來不以具足相故 得阿耨多羅三藐三菩堤 須菩堤 須菩提 若作是念 如來不以具足相故 得阿耨多羅三藐三菩堤 

 

[解 義] 『수보리야! 네가 혹 이런 생각을 했다면 그것은 큰 잘못이다. 「부처님께서 구족한 상을 쓰지 않음으로써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셨다. 여래께서 구족상에 마음을 두지 않으므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셨다.」고 생각하느냐? 수보리야! 너는 아예 그런 생각을 하지 말라. 여래께서 구족한 상에 집착하지 않음으로 해서, 곧 상에 아무 상이 없기 때문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신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여래께서 처음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일으켜 가지고 오랜 세월 무량겁을 두고 육바라밀을 닦으셨습니다. 보시(布施)도 하고 지계도 하고 인욕도 하고 정진, 선정도 하고 그래서 마지막에는 지혜바라밀을 얻으셨습니다. 이렇게 해서 세세생생에 인격이 점점 향상해 왔고 일체 현상계에 이(理)로나 사(事)로나 두루 다 원만하게 통하셨습니다.』

그래서 무량중생을 제도해서 많은 복을 지으므로 32상·80종호(種好)를 비롯한 구족상(具足相)을 갖추셨지만 이런 구족상에는 아무런 관심도 가지지 않기 때문에 그래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셨구나하는 생각을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사실 우리는 금강경을 배워서 응무소주(應無所住)해라, 여하한 경우 여하한 조건에도 집착하지 말라는 글귀의 뜻도 수없이 들어 잘 알고 있는 것 같지만, 그러나 여기서 지금 말씀하시는 것처럼 「상에 치우치지 않았기 때문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셨구나.」하고 생각하기도 쉽습니다. 등상불(等像佛)이나 실제 부처님 생존당시의 32상을 갖춘 부처님을 친견(親見)하더라도 「그게 다 상인데 볼 게 무엇이 있느냐?」하는 그런 소견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은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말라는 말씀이었습니다.

 

原 文 : 須菩提 汝若作是念 發阿?多羅三?三菩提心者 說 諸法斷滅 莫作是念 何以故 發阿耨多羅三藐三菩堤須菩堤 心者 於法 不說斷滅相

 

[解 義] 『수보리야! 네가 만일 이런 생각을 하되,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일으킨 자는 모든 법이 단멸했다.」고 한다면, 그런 생각을 아예 하지 말라.』 가령 여기 이 등상 위에 켜 놓은 이 초를 두고 말하는 경우에도 처음에는 새것이었던 것이 자꾸 달아서 더 있으면 다 달아 없어질 것인데 그러면 초는 다 달아서 단멸했다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늙어서 죽든지 병으로 죽든지 교통사고 같은 참변을 당해서 죽든지 한번 죽으면 그만이다. 육체적으로는 물론 생명의 본질, 영혼 같은 것이 있어서 내생(來生)이 영속(永續)된다든지 하는 것을 부인하고 한번 죽으면 그만이다. 아주 죽고 마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그것은 사람 생명에 대한 단멸상(斷滅相)입니다. 또 반대로 사람이 죽으면 지옥에 가든지 천당에 가든지 영혼이 계속해서 존재한다고 보는 것은 상견(常見)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항상하다고 하여 보리·열반의 참다운 진리를 체득할 줄 모르면 이것도 구경법(究竟法)이 되지 못하는 때문에 불교에서는 제법을 단멸상으로 보는 단견이나 항상하다고 보고 마는 상견을 다 정견으로 보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여래께서 구족상에 대해 아무 관심이 없어서 모든 것을 끊었기 때문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은 것이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는 것은 모든 법에 대해 말도 없고 생각도 없는 다 끊어 없어진 단멸이라고 생각하겠느냐? 그렇게 생각하지 말라. 왜냐하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낸 이는 일체 만법에 아주 없어져서 아무 것도 없다는 단멸상을 말하지도 않고 생각하지도 않기 때문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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