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로움을 없애기 위한 세 가지 방법

괴로움이 없는 사람 자유로운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세 가지가 중요합니다. 첫째, 먹는 것, 입는 것, 자는 것에 대한 욕구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합니다. 일상 속에서 우리는 먹는 것, 입는 것, 자는 것에 집착합니다. 만약 이 욕구에 집착을 하지 않는다면 그냥 무엇이든 육신을 유지하기 위해서 조금만 먹으면 됩니다. 추위와 더위를 피하고 몸을 가리기 위해 옷을 입고, 잠시 정신적 휴식을 취하기 위해 잠을 잡니다. 이렇게 가볍게 생각한다면 사실 평생을 헐떡거리면서 살 필요가 없어요.

 

 

그렇다고 '먹지 마라’, ‘입지 마라’, ‘자지 마라' 이런 뜻이 아니에요. 그저 형편 되는 대로 하면 되지 거기에 집착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잘 안 되죠.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아예 다 버려버리라고 하신 거예요. 밥은 얻어먹고, 옷은 얻어 입고, 잠은 나무 밑에서 자는 식으로 아예 탁 끊어버리면 더욱 편안해집니다. 재가에 있으면서도 거기에 집착하지 않으면 굳이 먹고 입고 자는 것을 갖고 시비할 필요가 없어요. 이렇게 욕구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합니다.

 

둘째, '옳다‘, ‘그르다' 하는 시비(是非)를 내려놓아야 합니다. 나는 옳고 네가 그르다 하는 온갖 시비로 인해 미움이 생기고 좌절과 절망이 생깁니다. 이기면 우쭐함과 남을 무시하는 마음이 생기고, 지면 기가 죽습니다. 옳고 그른 것을 너무 따지는 시비로부터 자유로워지면 번뇌의 대부분이 사라지게 됩니다.

 

그러니 오늘부터 직장생활이든 가정생활이든 가족관계든 동료관계든 옳다 그르다하는 시비를 내려놓는 자세를 가져 보세요. 여러분들은 그래도 시비를 따져야 하지 않냐생각하겠지만 한 발 떨어져서 보면 사실 별 거 아니에요. 꼭 그걸 따져서 이긴다고 좋은 게 아닙니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한 발 떨어져서 보면, 옳고 그름이란 그때뿐이지 지나 놓고 보면 별 거 아닙니다. 시비를 내려놓으라고 부처님이 간곡하게 말씀하셨잖아요.

 

셋째, 자기의 감정에 너무 놀아나지 말아야 합니다. 기분이 좋다, 나쁘다, 기쁘다, 슬프다, 괴롭다, 즐겁다 등 감정에 너무 매달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가 가장 중요해요. 이것만 여러분들이 일상에서 잘 관리해 내면 괴로움이 없는 사람 자유로운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어요. 참는 것이 아니라 알아차리고 집착하지 않으면 누구나 이 길을 갈 수 있습니다.

 

매일 아침 정진하는 이유도 일상에서 이 관점을 유지하기 위해서입니다. 아침 정진만 한다고 모든 게 저절로 되는 게 아니에요. 일상에서 직접 연습해보고, 안 되는 것은 돌이키고 살펴서 다시 다짐하는 것이 아침 정진입니다.”

 

오늘은 불기 2565년 부처님이 열반하신 날입니다. 열반하신 날을 맞아 부처님이 열반에 드실 때의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같이 살펴보면 좋겠어요.

 

부처님의 마지막 모습

부처님께서는 사라나무 숲에 들어가셔서 그 숲 속에 자리를 깔고 누우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저녁에 열반에 들리라이렇게 얘기하셨습니다. 경전에는 그때 하늘에서 꽃비가 내리고, 사라나무는 때가 아닌데도 꽃을 피웠다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너무나 신기한 현상이 일어나서 아난존자가 이게 도대체 어떤 일입니까?’ 하고 부처님께 물으니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이것은 저 하늘의 신들이 여래에게 마지막으로 올리는 공양이다. 그러나 아난다여, 이것은 여래에서 올리는 제1의 공양이 아니다. 1의 공양은 여래의 가르침에 따라 수행 정진하는 것이다.’

 

이걸 꼭 우리가 명심해야 됩니다. 어떤 신비한 현상도 수행 정진하는 것에 비교되지 않는다는 얘기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아난다에게 말씀하십니다.

 

오늘 저녁에 여래가 열반에 드니 마을 사람들에게 가서 여래를 마지막으로 친견(親見)할 사람이 있으면 하라고 해라.’

 

여래가 열반에 든 뒤에 아쉬워하지 말고 그전에 보고 싶은 사람은 와서 보라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아난다가 마을에 가서 얘기를 하고 돌아오는데, 아난다는 슬픔을 이길 수가 없었습니다. 자신이 25년이나 모셨고 늘 함께 했던 위대한 스승이 오늘 저녁에 열반에 드신다고 하니 아무리 수행자라 하더라도 슬픔을 가눌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혼자 숲 속에 가서 슬피 울었습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옆에 있는 수행자에게 아난다를 불러오게 합니다. 그리고 아난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난다는 참으로 지난 25년 동안 나를 위해서 시봉(侍奉)을 잘했다. 입안의 혀처럼 잘했다. 잔소리할 것 없이 딱 때를 알아서 가까이 있어야 할 때는 가까이 있고, 떨어져 있어야 할 때는 떨어져 있고, 찾아오는 손님을 맞이해야 할 때는 맞이하게 하고, 여래가 정진을 할 때는 만나지 않을 수 있게 거절을 하고, 그렇게 시봉을 아주 잘했다.

 

그러나 아난다여, 생겨난 것은 다 소멸하게 되어 있다. 이것이 이 세상의 이치이다. 이것은 누구도 바꿀 수가 없는 것이다. 내가 늘 그것을 너에게 가르치지 않았느냐? 여래는 육신이 아니라 깨달음의 지혜이다. 육신은 지금 너희 곁을 떠나지만 깨달음의 지혜는 영원히 너희 곁에 남아 있으리라. 내가 없다고 슬퍼하지 마라. 내가 없는 동안에 나의 가르침인 경과 율이 너희들의 스승이 될 것이다.’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대중을 모두 불러 모아 말씀하십니다.

 

내가 오늘 열반에 들 텐데 지금 물을 게 있으면 물어라. 여래가 열반에 든 뒤에 '그때 물어볼 걸' 하고 후회해봐야 아무 소용없다. 그러니 물을 게 있으면 지금 물어라.’

 

아무도 대답이 없었습니다.

 

벗이 벗에게 묻 듯이 부담 갖지 말고 물어라.’

 

또 대답이 없었습니다. 이렇게 세 번을 얘기해도 아무도 묻지 않으니 아난다가 말합니다.

 

우리는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아무런 의문이 없습니다. 그러니 편안하게 열반에 드십시오.’

 

이렇게 해서 대중들이 밖으로 나오자 부처님께서는 선정(禪定)에 들어서 편안하게 열반에 드셨습니다.

 

위대한 스승이 남기고 간 것 세 가지

위대한 스승 부처님의 육신은 그 명을 다했지만, 이 세상에는 그분의 말씀이 경()으로 남았고, 행은 율()로 남았고, 마음은 선()으로 남았습니다. 선불교는 이심전심이라 해서 말과 행동보다는 마음을 중요시합니다. 남방불교는 부처님의 말씀을 기록해 놓은 경을 중요시합니다. 율종은 부처님의 행을 중요시합니다. , 부처님이 살아가신 모습, 실천을 중요시합니다.

 

 

그러나 사실 이것들은 각각 나눌 수가 없습니다. 부처님의 마음, 부처님의 말씀, 부처님의 행위 이 세 가지 모두 우리에게는 매우 중요합니다. 장님이 코끼리의 한 부분만 만지고 이렇다주장하듯이 부처님이 살아가신 삶의 흔적을 한 부분만 갖고 주장하기보다는 그분의 마음, 말씀, 행위를 총체적으로 본받아서 행해 나가야 합니다. 선정만 닦을 것이 아니라 계행(戒行)도 철저히 지켜야 하고, 계행만 닦을 것이 아니라 말씀도 잘 알아서 지혜를 증득해야 됩니다. 계정혜 삼학을 다 함께 닦아 나가야 합니다. 불법승 삼보에 귀의하고 계정혜 삼학을 닦는 자가 수행자입니다.”

 

법문을 끝마칠 무렵 스님은 8일 동안 꾸준히 정진을 한 사람은 손을 들어보라고 했습니다. 온라인 정토회로 전환하고 나서 이제 8일 출가열반 특별정진도 법당이 아닌 각자 자기 방에서 하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한결같이 하는 것이 수행임을 다시 한번 강조했습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한결같이

수행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말고 한결같이 해야 합니다. 법당이 있으면 법당에서 하고, 법당이 없으면 집에서 하고, 집도 없으면 밖에서 하고, 숲에 가면 숲에서 하고, 나무 밑에 가면 나무 밑에서 하고, 교회에 가게 되면 교회에서 하고, 외국에 나가 있으면 성당에서 하면 됩니다.

 

 

'마음이 청정하면 수행자요. 수행자가 머무르는 곳이 도량이요. 이것이 불교다.'

 

이것이 정토회의 모토입니다. 그러니 각자 자신의 개인 법당에서도 부지런히 정진하시기 바랍니다. 이게 딱 정착이 돼야 정토회가 확산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게 흐지부지 되면 정토회는 축소되는 쪽으로 갈 수밖에 없어요. 그동안 그렇게 수행을 강조했는데도 이렇게 평가가 될 겁니다.

 

결국 정토회도 신앙에 불과했구나. 법당이 있고 불상이 있을 때는 수행을 좀 하는 것 같더니 집에서 수행하라고 하니까 흐지부지 되는구나

 

정진을 안 하게 되는 이유가 뭘까요? ‘집에서 무언가를 빈다고 해서 복이 오나이런 마음이 들어서 정진을 안 하는 거예요? 우리는 복을 비는 자가 아니라 어리석음을 깨우쳐 지속 가능한 행복을 향해 나아가는 수행자입니다. 열반의 마지막 모습에서 부처님이 시종일관 뭐라고 말씀하셨는지 다시 한번 되새겨 보는 오늘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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