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부처님께서 출가하신 날입니다. 출가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부처님의 출가를 내 삶에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야 할까요?
출가의 의미
출가라는 말은 집을 나왔다는 뜻입니다. 초기 경전에는 ‘집 있는 곳에서 집 없는 곳으로 나아가고자 합니다’ 이런 표현이 자주 나옵니다. 여기서 ‘집’이 무엇을 뜻할까요? 집 안에 있으면 안온합니다. 집 밖으로 나가면 보호받을 곳이 없습니다. 그래서 집을 떠난 사람을 나그네라고 부릅니다. 집은 비를 막아주고 햇빛을 막아주고 바람을 막아주고 냉기를 막아주고, 외부의 조건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주는 곳입니다. 집을 떠나면 외롭고 쓸쓸해집니다. 그래서 집은 안온하고 보호받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동시에 집은 ‘굴레’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성장하면 부모로부터 속박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조금만 크면 자꾸 집을 나가려는 겁니다. 집을 나간 사람들은 집이 속박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집은 우리의 자유를 억압하고 고통을 가져오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집 없는 곳으로 나아갔다’ 하는 이 말은 속박에서 벗어났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안온한 집을 추구하지만, 그 집으로 인해서 속박을 받고 있습니다. 그것처럼 여러분들은 부모로부터 보호를 받는 동시에 속박을 받습니다. 결혼을 하면 남편이나 아내로부터 보호를 받는 동시에 속박을 받습니다. 그래서 속박으로부터 벗어나고자 집을 나오게 됩니다.
가출과 출가의 차이
그러면 ‘가출’과 ‘출가’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가출은 이 집이 마음에 안 들어서 더 좋은 집을 찾아 집을 나오는 것을 뜻합니다. 속박이 있는 집을 뛰쳐나와서 속박이 없는 집을 찾아다니는 거죠. 그런데 아무리 찾아봐도 그런 집은 없으니까 다시 되돌아옵니다. 그래서 가출은 반복이 됩니다. 집을 나가면 외롭고, 다시 집에 들어오면 답답하고, 그래서 들락날락하게 돼요.
‘출가’란 집이 안온함도 있지만 속박의 근원임을 직시하는 겁니다. 마치 욕망이 충족되면 즐겁고, 충족되지 않으면 괴롭고, 그래서 즐거움과 괴로움이 반복되는 것과 같습니다. 괴로움과 즐거움이 반복되는 것 자체가 사실은 괴로움입니다. 욕망이 충족되어 즐거운 것도 더 크게 보면 그것조차 괴로움의 다른 모습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바로 출가입니다. 집은 안온함과 속박이라는 두 가지 요소를 갖고 있는데, 어리석은 중생은 속박은 없애고 안온함만 가지려고 합니다. 속박이 싫어서 집을 나갔다가 안온함을 찾아 다시 들어오는 것을 반복합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자는 집이 속박임을 알고 집을 불태워버립니다. 더 나은 집을 찾아 나가는 것이 아니고 집 자체를 버려버립니다. 그래서 모든 굴레에서 벗어납니다.
더 이상 새로운 집을 찾지 않는 것이 ‘출가’입니다. 집에서 뛰쳐나왔다고 해서 무조건 출가가 아니에요. 그건 가출입니다. 출가란 안온함이 곧 속박이라는 것을 꿰뚫어 아는 것입니다. 자석에서 S극을 갖고 싶지 않아서 반으로 자르면, S극이 없어지는 게 아니라 N극에서 다시 S극이 생깁니다. 그것처럼 고와 락을 나누면 락에서 또 고가 생깁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락이 곧 고라는 것을 꿰뚫어 아셨습니다. 괴로움에서 완전히 벗어나려면 즐거움도 함께 버려야 합니다. 안온함과 속박이라는 두 가지 요소를 함께 갖고 있는 집을 완전히 떠난다는 것은, 속박을 버릴 때 안온함도 같이 버린다는 뜻입니다. 지옥에서 완전히 벗어나려면 천당도 같이 버려야 합니다.
모든 속박에서 벗어나는 방법
그래서 집을 버리기 위해서는 집이 굴레라는 것을 정확히 꿰뚫어 알아야 해요. 다른 집을 찾는 것이 아니고 집을 불태워야 합니다. 그러면 이 ‘집’과 같은 것이 무엇일까요?
여러분은 돈에 의지하면서 돈에 속박을 받습니다. 권력에 의지하면서 권력에 속박받습니다. 명예에 의지하면 명예에 속박받습니다. 남편과 아내에게 의지하면서 남편과 아내에게 속박받습니다. 부모에게 의지하면서 부모에게 속박받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늘 속박을 받고 살아갑니다. 이런 속박에서 벗어나려면 의지처를 버려야 합니다. 오직 의지할 만한 것은 해탈과 열반으로 나아가는 부처님의 법입니다. 나머지는 그 어떤 것도 의지할만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법에 의지해야지 법이 아닌 것에는 의지하지 말아라’
금강경에서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설령 법이라 해도 그것은 마치 뗏목과 같다. 강을 건널 때는 뗏목을 이용하지만, 강을 건넜으면 뗏목을 버리고 가야지 뗏목을 메고 가서는 안 된다.’
이 말은 비록 부처님의 말씀이라 하더라도 본질적 의미를 꿰뚫어 알았으면 그 말에 대한 집착은 버려야 한다는 뜻입니다. 하물며 법이 아닌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때로는 법도 버려야 할지언정 법이 아닌 것은 말할 것도 없다는 것이 금강경의 요지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속박의 근원이 되는 것에 늘 의지하고 살아갑니다. 순간적인 안온함을 찾지만 결국 속박을 받게 됩니다. 그 속박에서 벗어나는 길이 바로 출가입니다. 비단 물질적인 것뿐만 아니라 과거의 관습, 윤리, 도덕, 계율, 이런 정신적인 것들도 모두 우리를 속박하는 요인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 속박으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부정하고 내 마음대로 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속박의 뿌리는 욕망입니다
왜 집이 속박이 될까요? 집이라는 건물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니잖아요. 더 깊이 들어가면 속박의 뿌리는 욕망입니다. 속박의 뿌리는 부모도 아니고, 아내도 아니고, 남편도 아니고, 재물도 아니고, 권력도 아니고, 거기에 묶여 있게 만드는 나의 욕망입니다. 돈에 대한 욕망, 권력에 대한 욕망, 인기에 대한 욕망, 음식에 대한 욕망, 그런 욕망들에 묶여 있기 때문에 속박을 받게 되는 거예요.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지면, 집에 있어도 구애받지 않게 되고, 가족이 있어도 구애받지 않게 되고, 재물이 있어도 구애받지 않게 되고, 권력이 있어도 구애받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출가는 해탈로 나아가는 첫출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오늘 법문을 듣고 탁 깨쳐서 돈과 명예, 직장을 다 던져버리고, 먹는 것, 입는 것, 자는 것에 연연하지 않는 사람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나 부처님의 가르침은 그런 결단을 하는 사람만 수행자라고 규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결단을 한 사람을 ‘출가수행자’라고 말했고, 그중에 남자는 ‘비구’, 여자는 ‘비구니’라고 불렀습니다. 또한 세속에 몸을 두고, 장사도 하고, 가족과 함께 살면서도 욕망을 버린 사람을 ‘재가 수행자’라고 말했습니다. 그중에 남자는 ‘우바새’, 여자는 ‘우바이’라고 불렀습니다. 우바새와 우바이 중에서도 성인의 길에 들어선 사람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모두 다 그 길을 갈 수가 있습니다. 다만 전제 조건이 있습니다. 집을 안 나오더라도 집에 대한 집착은 버려야 합니다. 자식을 두더라도 자식에 대한 집착은 버려야 합니다. 직장에 다니더라도 직장에 대한 집착은 버려야 합니다.
진정으로 출가일을 기념하는 방법
집착을 버리는 방법은 뒤도 돌아보지 말고 이 법문을 듣는 즉시 조용히 집 없는 곳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드시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지면, 집이 있고 없고, 가족이 있고 없고, 이런 것이 아무런 문제가 안 됩니다. 내가 앉은 이 자리가 바로 법당이라고 깨달으면 그 자리에서 정진을 하셔도 됩니다. 지금까지는 온갖 욕망과 집착의 공간이 집이었다면, 앞으로는 집이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수행도량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더 이상 괴로울 일이 없어집니다. 남편이 갈등의 대상이 아니라 교화의 대상이 되고, 부모도, 자식도, 직장동료들도 모두 갈등의 대상이 아니라 교화의 대상이 됩니다. 그런 결단을 오늘 출가일을 맞이해 한 번 내려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그 정도의 결단은 내려야 출가일을 기념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제가 너무 많은 요구를 하나요? 아닙니다. 우리는 수행자가 되기 위해서 정토회에 모였지 다른 목적으로 모인 건 아니잖아요. 그런 관점에서 출가일부터 열반일까지 8일 동안 용맹정진을 해봅니다. 8일 동안 완전히 환골탈태해서 열반일에는 제가 법문 할 것이 없어서 죽비만 세 번 치고 법회를 끝낼 수 있도록 그렇게 정진해 보시기 바랍니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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