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많은 종교가 있습니다. 세상의 관점에서 보면 불교는 많은 종교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러나 불교 안에서 다시 들여다보면 종교로서의 불교, 철학으로서의 불교, 수행으로서의 불교가 있습니다.

나부터 자유롭고 행복해지기

종교로서의 불교는 믿음을 중요시하고, 철학으로서의 불교는 이해를 중요시합니다. 반면 수행으로서의 불교는 실천과 체험을 중요시합니다. 수행으로서의 불교 안에도 종교적인 요소와 철학적인 요소가 조금은 있습니다. 왜냐하면 수행을 하더라도 믿음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또 수행을 하더라도 이론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철학으로서의 불교에 치우치게 되면 실천이 따르지 않고 사변적으로 흘러가기 쉽습니다. 종교적인 불교는 믿음은 있지만 기복적으로 흘러가기 쉽습니다.

수행으로서의 불교는 복(福)을 비는 믿음이 아니라 법에 대한 믿음을 기초로 하고, 사변적인 이해가 아니라 원리에 대한 바른 이해를 기초로 합니다. 그것을 기반으로 자기를 행복하게 만드는 실천을 하고, 나아가 나뿐만 아니라 다른 이에게도 도움이 되는 일을 하는 것이 수행으로서의 불교입니다.

남편이나 아내 또는 아이들을 위해서 헌신만 하려고 하지 말고 일단 나부터 자유롭고 행복하기를 먼저 해야 합니다. 내가 행복해지면 우리 아이도 행복해지고, 내가 행복해지면 남편과 아내도 행복해집니다. 내가 자유로워지면 우리 부모님도 자유로워집니다.


나만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 ‘나부터’ 하면 주위 사람들도 모두 좋은 영향을 받게 됩니다. 가족들이 하지 않더라도 남 탓하지 말고 나부터 행복하기를 해야 합니다. 또 주변에 있는 다른 사람들도 행복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이런 관점을 갖고 앞으로도 꾸준히 정진해나가면 좋겠습니다.

웃으면서 살기에도 너무나 짧은 인생

한 세상을 사는 게 굉장히 긴 것 같은데 지나 놓고 돌아보면 눈 깜짝할 새에 지나온 것 같습니다. 어린 아이들은 지나온 시간이 짧고 남은 시간이 많다 보니 인생이 너무 긴 것 같이 느껴지지만, 연세가 많은 분들은 이미 다 지나가버렸기 때문에 일생이 너무 짧게 느껴집니다.

어쩌면 인생이 많이 남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화내고 짜증내고 미워하고 원망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나 놓고 돌아보면 인생이 너무 짧아요. 인생이 이렇게 짧기 때문에 화목하게만 지내기에도 부족하고, 웃으면서 살기에도 부족해요. 화내고 짜증내고 미워하고 원망하고 괴로워하는 건 인생의 너무 큰 낭비입니다. 짧은 일생 동안 좋은 일만 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해요. 남을 해치고 살만큼 인생이 길지가 않습니다.

이런 관점을 가져서 먹는 것, 입는 것, 자는 것 등 너무 순간순간에 치우쳐서는 안 됩니다. 그 순간에는 좋았던 것이 지나 놓고 보면 오히려 독이 될 때가 많고, 그 순간에는 어려웠지만 이겨내고 나면 오히려 큰 이익이 될 때가 많아요. 화내고 짜증내고 미워하고 원망하는 건 대부분 순간에 치우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늘 지나 놓고 보면 후회하게 됩니다. 그러니 너무 순간에 집착하지 않아야 합니다. 지나 놓고 보면 별 것 아닌 일에 우리는 목숨을 걸 때가 많습니다.

경전을 공부하면서 이 부분에 대해 조금이라도 이해가 생기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이해가 되어도 그 순간이 닥치면 과거의 방식대로 자동으로 돌아가 버립니다. 알고 있어도 행동으로는 잘 안 되죠. 그래서 늘 연습해야 하는 거예요. 평정심을 유지해서 순간에 끌려가지 않도록 자기를 제어해야 합니다. 이를 악물고 참으라는 게 아니라 늘 알아차림을 유지해서 자기를 잘 보존해가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여러분이 경전반을 졸업하면서 해야 할 일입니다.


변화는 혼란이 아니라 아주 좋은 경험입니다


이번 경전반은 코로나 사태로 인해 수업의 절반을 법당에서 하고, 나머지 절반은 온라인으로 했습니다. 즉, 여러분은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모두 경험한 사람들이예요. 앞으로 새로 입학하는 사람들은 온라인으로만 불교대학과 경전반을 하니까 원래부터 온라인인 줄 알 겁니다. 여러분보다 앞서서 경전반을 다녔던 사람들은 오프라인으로만 공부했으니까 계속 그런 줄 알 거예요. 여러분은 법당에서 오프라인으로 수업을 하다가 온라인으로 옮긴 경험까지 있으니 자랑스럽게 생각하셔야 합니다. 여러분은 두 가지 경험을 해서 혼란스럽다고 말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세대를 낀 세대라고 합니다. 나는 시집살이를 다 했는데 막상 며느리는 시집살이를 시키지 못하고, 회사에서도 선배를 하늘같이 모시는 시대에 살았는데 나는 그런 대접을 못 받는 세대예요. 이렇게 낀 세대는 아랫사람일 때는 전통적으로 다 해야 했고, 정작 본인이 어른이 되고 나면 대우를 못 받고 평등하게 지내야 합니다. 이런 것에 대해 불평을 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두 가지 경험을 다해봐서 좋은 세대라고 봅니다. 어른들 모시고 사는 경험도 해보고, 평등하게 사는 경험도 해보았으니까요.

즉문즉설을 하면 많은 사람들이 ‘스님은 어떻게 해서 사람들 사는 모습을 그렇게 잘 압니까?’ 하고 묻는데, 저는 두 가지 경험을 다 해봐서 그렇습니다. 저는 어릴 때 목화를 직접 심는 것도 보고, 거기서 다래 순을 따먹기도 하고, 목화로 물레를 돌려서 실을 뽑고 베를 짜서 옷을 해 입는 경험도 했습니다. 삼을 하나씩 찢어서 무릎에 비비고 실을 만들어서 삼베옷을 해 입기도 했어요. 이런 모습은 거의 신라시대 때 옷을 해 입던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으니 신라시대 삶의 방식을 경험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반면 요즘처럼 온라인으로 회의를 하는 건 최첨단 기술을 경험하고 있는 거예요.


젊은 세대는 앞으로 50년을 살아도 기술이 발달된 이후의 50년만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육체적 나이는 비록 70살이지만 경험으로 치면 천 년을 산 것과 마찬가지예요. 게다가 어릴 때 시골에서 살았으니까 더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주로 인도 불가촉천민 마을이나 필리핀 원주민 마을을 많이 다녔습니다. 거기에 가보면 300년 전 우리가 살았던 모습 그대로 사람들이 살고 있는 걸 경험할 수 있어요.

이런 걸 경험하는 게 힘든 게 아니라 그런 경험을 통해서 인간의 삶에 대해 더 깊은 이해를 할 수 있게 됩니다. 자꾸 쉬운 것을 생각하면 어렵게만 느껴지고, 자꾸 질서를 생각하면 변화가 혼란스럽게만 느껴지기 마련이에요. 그러나 관점을 조금 달리 보면 다양한 경험을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앞으로 진행자가 되면 온라인 수업의 장점과 오프라인 수업의 장점을 모두 수렴해서 수업을 진행할 수 있을 겁니다. 온라인만 경험한 사람은 온라인 수업의 경험만 갖고 있고, 오프라인만 경험한 사람은 오프라인의 경험만 갖고 있는데, 여러분은 두 가지를 모두 다 해봤으니까 경험이 풍부해서 더 좋아요. 이렇게 낀 세대야말로 아주 좋은 세대입니다.

지금이 가장 좋은 줄 알기


저는 어릴 때 농사의 경험도 해보고, 젊을 때 산업화 시기도 살아보고, 늙어서는 서비스업이 팽창하는 시기도 살아보고, 지금은 서비스업조차 사라지는 온라인 시대도 살아보고 있습니다. 이렇게 살아보면 인생이라는 게 그때그때의 변화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에 농사만 짓고 살던 사람이 갑자기 오늘 같은 시대를 살아야 한다면 혼란스러울 거예요. 그러나 다양한 경험을 한 사람은 이렇게도 살 수 있고, 저렇게도 살 수 있고, 혼자가 되면 혼자서도 살 수 있고, 둘이 되면 둘이서도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혼자서 살 때의 습관 때문에 둘이서 같이 살면 힘들어합니다. 둘이서 같이 사는 게 연습이 안 되어서 그래요. 그래서 지지고 볶다가 결국 못 살겠다고 하면서 헤어집니다. 또 다른 한 사람이 먼저 죽게 되면 외로워서 못 살겠다고 합니다. 둘이서 같이 사는 것에 익숙해져서 이제는 혼자서 못 살겠다고 하는 겁니다.

수행이란 혼자서 살아도 좋고, 둘이서 살아도 좋고, 걸어 다녀도 좋고, 차를 타고 다녀도 좋고, 오프라인으로 해도 좋고, 온라인으로 해도 좋고, 농사를 짓고 살아도 좋고, 공장에 가서 제품을 만들고 살아도 좋고, 장사하고 살아도 좋은 삶을 사는 것입니다. 봄도 좋고, 여름도 좋고, 가을도 좋고, 겨울도 좋은 삶이에요. 그것이 해탈입니다. 그것이 자유로움입니다.

여러분은 남편하고 못살겠다고 하다가 남편이 갑자기 병들거나 교통사고로 죽으면 ‘그래도 그때가 좋았다’라고 하죠. 아이들이 말을 안 듣는다고 어쩌고저쩌고 하지만 또 시간이 흐르고 나면 마음이 달라집니다. 그러니까 항상 지금이 좋은 줄 알아야 합니다.

내가 행복해진 만큼 저절로 하게 되는 전법


이런 공부를 하면 자연스럽게 삶이 이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그렇게 인생이 행복해지고 나면 주위 사람들에게 이 법을 전하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듭니다.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 전법하는 게 아니에요. ‘이 법을 알아서 눈 한 번 뜨고 나면 저렇게 아웅다웅 안 하고 살아갈 수 있을 텐데’ 하는 마음이 들기 때문에 저절로 전법을 하게 되는 겁니다. 배가 아프다가 약을 먹고 나으면, 다른 사람이 배 아픈 모습을 볼 때 ‘이 약만 먹으면 다 나을 텐데’ 하는 마음에 그 약을 주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전법에 너무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내가 먼저 공부를 해보았기 때문에 자기가 느낀 좋음을 편안하게 이야기하면 됩니다. 불교를 믿으라고 말할 필요가 없어요. 자비심과 연민의 마음으로 내가 경험한 것을 편안하게 이야기하면, 상대방이 응해도 좋고 응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다만 그를 위해서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꼭 응해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편안하게 이야기한 후에 이번에 안 하면 다음에 기회가 될 때 또 이야기를 해보면 됩니다. 만약 나를 위해서 전법을 한다면 상대가 응하지 않을 때 기분이 나쁘지만, 그를 위해서 전법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응하는 것은 그의 문제이지 나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렇게 편한 마음으로 전법을 해나가면 좋겠습니다.

수행도 그렇게 편한 마음으로 하는 거예요. 여러분들은 수행도 마치 돈을 벌 듯이 열심히 하려고 하는데, 그런 모습을 보면 마음에 부담을 갖고 하는 것 같거든요. 전법도 ‘아, 전법을 못해서 어쩌나’ 이러면서 하는데, 그러지 말고 항상 가벼운 마음으로 해보시기 바랍니다. 다른 사람에게 불교대학을 권유할 때도 너무 눈치 보지 말고 가볍게 이야기하는 게 좋습니다.

경전반 졸업이 수행의 끝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이제 법을 조금 이해하기 시작한 것이기 때문에 앞으로 더 깊은 이해가 남았습니다. 이해한 것을 경험하고 체험하는 것도 남았어요. 내가 받은 이익을 세상과 나누어 갖는 과정도 남았습니다. 그렇게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가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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