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체의 모든것이 다 부처다

 

일중일체 다중일

일즉일체 다즉일

 

일미진중 함시방

일체진중 역여시

 

일체만법 개시불법

일체중생 개유불성

 

일념즉시 무량겁

무량원겁 즉일념

 

색즉시공 공즉시색

색불이공 공불이색

 

유즉시무 무즉시유

생즉시멸 멸즉시생

응무소주 이생기심

 

 정견 이란 :바르게본다

양변에 치우치지 않고 있는 그대로본다

 

정견은 곧 중도라고 할수있고 정도라고 할수있고 

팔정도 사성제 삼법인 연기 무아 무상 공과 반야 지혜와 다르지않다,

 

우리는 아니 일체는 텅비워있는 우주공간에 묘하게 존재하고있다, 

있는것도 아니고 없는것도아니다

옳은것도 아니고 그른것도 아니다

좋은것도 아니고 싫은것도 아니다

 

본래 정해져 있는것이 아니고 인연에 따라 정해질수도 있기때문에 진공묘유라고한다,

 

우리가 생활을 중도로 살면은 마음이편하다,

즉 내생각을 정해놓고 고집하지않고 내려놓고 살아간다면 굳이 다툴일이없다,

이렇게 살아갈려면 내가 없음을 알아야한다,

즉 무아 공 연기 중도라고 이해하고 현실에 생가을 적용하면서 실천행을 하면 되는것이다.

이것을 체험을 하면 모든것이 툭 터져서 자동으로 자비사상이 나온다지만 우리수행 중생들은

아직 미혹하기 때문에 목표를 여기에 두고 공부를 해야 할것이다,

 

 

원리를알고 이치를알고 정보를 알고 실천하면 괴로울 일이

없게되여 행복하게 살수있다. (법성 원융 무이상)

 

유즉시무 무즉시유 (有卽是無 無即是有)

있는 것은 곧 없는것이며 없는것은 곧 있는것이다,

 

있는것도아니고 없는것도아니다 즉 있을수도있고 없을수도있다

이것이 바로 중도적으로 표현을 한것이다,

 

 

손벽을치면 소리가 나면서 사라진다     

그러니 있기도하고 없기도 한다

 

있는것도 아니고 없는것도 아니다

이것이 곧 연기 중도라고 한다.

 

인연따라(조건) 이뤄졌다가 인연따라 사라진다,

 

자성이 없기 때문에 모든것은 항상함이 없고 고정된 실체가 없다

즉 시간적 차원에서 무상이라하고 공간적 차원에서 무아라고 한다

진아다 참나다라는 것은 이름일 뿐이지 실체가 없어 있다고 할수도 없고

없다고 할수도 없는 것이다,(진공묘유)

 

 

제상이 비상이다.

제상은 곧 있는것이며 즉 색이며 비상은 있지않는것이다, 즉 공이라고한다,

 

즉견여래 고정된 실체(상)가 없는것을 부처라 하는데 부처를 본다 즉 부처라 한다.

상이 없는것을 부처라 한다 일체 상을 떠나면 그 이름을 부처라한다,

 

일체의 모든 것들은 다 중도로 되여있는데 편견과 변견 그리고 분별과 간택으로 

한편에 치우치기 때문에 정견 곧 중도를 외면하고 있는것이다

 

 

반야심경이나 금강경이 중도를 잘 설명하는 가르침이다. 

즉비 논리로 중생이 중생이 아니고 그 이름이 중생일 뿐이다. 

중생이라면 중생의 모양(실체)이 따로 있기 때문이 아니고 다만 그 이름이 중생일 뿐이다. 

라고 설명하는것이다. 모든상은 허망하기 때문이다, 즉 실체가 없기때문이다,

궁정을 부정해 버리고 다시 궁정과 부정을 닫아 버리는 것이다,

 

사실 중생이라는 것은 중생이라는 실체가 없는 것이기 때문에

중생이다 부처다 양변을 만들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있다 없다. 생이다 사다. 옳다 그르다. 극단적 양극으로 성립되여 있지만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공 처럼 양극이 둘이 아님을 알아야한다,

양변을 떠난것이 쌍차라면 있는것이 없는것이요 없는것이 있는것이다. 

이것이 상호상관 관계로 서로 통하게 되므로 쌍조라 한다

 

 

부분은 곧 전체요 하나는 곧 전부요,전체는 즉 부분이며 전부는 곧 하나이다.

이세계는 원자로 되여있다, 즉 미진으로 되여있다 소립자로 되여있다,

소립자가 덩어리로 모이고 뭉처서 이세계가 되여있기에 의상스님의 법성게에서 볼수있다,

 

일중일체 다중일

일즉일체 다즉일

일미진중 함시방

일체진중 역여시

 

 

어둠이 있으므로 밝음이있다. 이것은 둘이 아니고 다르지않다 이것이 중도다. 

반야심경에 즉(곧) 색즉시공 공즉시색 이나 

금깅경에 여래설 바라밀이 즉비 바라밀 시명 바라밀 이 중도를 설명한것이다

 

이 세계는 부분적으로 보면 각기 다른 모습이지만 전체로보면 다르지않고 둘이 아니다,

왜? 연기 중도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내가 곧 너고 너가 즉 나다 라고 할수있다

 

각각 다른모습 다른 생활을 하고있지만 우리는 실체가 없이 지수화풍의 연기로서 존재하기 때문에 

지수화풍 4대가 곧 나라고 할수있다. 그렇다고 지수화풍이 실체가 있는 것은 아니다,

지수화풍도 연기로서 되여있기 때문에 공이라고 한다 (오온개공)

 

우리의 본질은 색이면서 공으로 공이면서 색으로 동시에 존재하고있다. 

이둘은 땔래야 땔수가 없다 ,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 이기 때문이다,

색은 공이 있으므로 나타낼수있고 공은 색이 있으므로 드러낼수 있기 때문이다,

생과 사도 그렇고 있다 없다도 그렇다, 모든것은 양극이면서 하나의 연기로 존재하기 때문에

둘이 아니라하고 다르지 않다라고 한다, 이것이 연기 중도로 되여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만상은 곧 둘이 아니면서 하나다, 

그러면서 무자성으로 무상 무아로서 영원한 것이 아이므로 그냥 공이라 할 뿐이다,

 

곧 부처가 아닌게 없다. 세게 17억 인류를 넘어서 우주에 있는 일체의 모든것은 그물코처럼

서로 연관되여 있으면서 소립자로 되여있고 연기로 되여있고 같은 공간에 존재하기 때문에

다르지 않고 둘이 아니고 하나라고 할수 있는 것이다,

연기설로 보면 하나님도 부처요. 흰두교도 부처요. 이슬람교도 부처다,  

모든것이 하나 이며 부처라 할수있다. 처처불상 사사불공이다,

 

나는 곧 부처이면서 무명에 의해서 (생각.습관.관념.지식.)중생적으로 삶을 살고있을 뿐이다,

 

완성된 부처로 살기위해서 내가 없고 내것이 업고 아집이 없다는것을 자각하고 실천하면서

중생의 업식 습관과 버릇을 고쳐 나아가기위한 수행을 하고 있을 뿐이다,

 

 

○팔정도

 

1,정견 / 바른견해

2,정사유 / 바른 생각과의지

3,정어 / 바른 말

4,정업 / 바른 해위

5,정명 / 바른생활

6,정정진 / 바른정진노력

7, 정념 / 바른 생각

8,정정 / 바른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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