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경 강의(23)/해안 스님▒

 

 

정심행선분 제23

淨心行善分 第二十三

 

■경문.■

復次須菩提 是法 平等 無有高下 是名 阿耨多羅三藐三菩提

부차수보리 시법 평등 무유고하 시명 아뇩다라삼먁삼보리

 

以 無我無人無衆生無壽者 修一切善法 則得 阿耨多羅三藐三菩提

이 무아무인무중생무수자 수일체선법 즉득 아뇩다라삼먁삼보리

 

須菩提 所言善法者 如來說卽 非善法 是名善法

수보리 소언선법자 여래설즉 비선법 시명선법.

 

※ 주석.

다시또 수보리야, 이 법이 평등하여 높고 낮음이 없을새,

이를 아뇩다라삼먁 삼보리라 이름한것이니,

나도없고 남도없고 중생도없고 수자도, 없음 으로써,

일체 착한 법을 닦으면 곧 아뇩다라 삼먁 삼보리를 얻나니라.

수보리야 말한바 착한 법이란 것은, 여래의 말로는,

곧 착한 법이 아니라,이 이름이 착한법 이니라.

 

● 해설.

위에서 여러번 말한 바와같이 불법은 마음법이다.

그러므로 아뇩다라 삼먁 삼보리도 마음법 이니,

이 법은성현이나, 범부나,더하고 덜함이 없고,

깨친 이나 깨치지 못한 이와, 있고 없음이 없고

사람이나 곤충이나,높고 낮음이 없이,

본래 평등한 것이요,본래 족한 것이다.

그러나 부처와 중생이 다른것은,

부처는 깨끗한 본마음 그대로 일체 거슬리는 경계나,

순한 경계에도 물들어 더럽히지 않고,

중생은 본 마음을 지키지 못하고.

일체 역순(逆順) 경계에 부딪치는 때마다,

부딪치는 곳마다 변하고 변하여,

더러워 지므로,자기 자성이 부처인줄 알면서도,

앎과 행이 일치하지 못하나니, 이것이 걱정인 것이다.

예를들면, 모든 법의 공한 이치를 확실하게 깨달아,

자기 자성이 부처님을 본 사람에게 향하여,

어떤 사람이 와서 머리를 좀 빌려 라고 청하는 이가 있다하면,

주저하지 않고 얼른 허락할수 있겠느냐는 말이다.

이것이 곧 깨침과 행이 일치하지 못한 것이다.

이것이 곧 아뇩보리를 성취하지 못한 것이다.

이것이 곧부처를 이루지 못한, 부처인 중생이다.

이것이 곧 이치로는 사상(四相)이 공한것을 알고,

입으로나 붓으로는 얼마든지 공한것을 말하고,

기록 하지마는,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은 딴판이란 말이다.

이러므로 약간의 공리(空理) 를 알았다고 (내노라) 하지말고,

(선지식이다) 자처를 하지말고, 육도만행의 온갖 선법을 닦아,

역순 경계에 조금도 동요되지 않고, 물들지 않고,

때를 따라,처소를 따라 중생의 근기를 맞추어 자유자재 하여사,

이것을 가히 수행한 사람 이라고 이름할 것이요,

아뇩다라 삼먁 삼보리를 얻었다.

이름할 것이니.선한법을 닦아도 선한 법에 무심 함으로 선법이 아닌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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