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나가 없다면 불성도 없는 것 아닌가요?
“지금은 비록 어리석어서 괴로움에 빠져 있지만 미혹과 무명을 타파하고 깨달음을 얻으면 누구나 다 부처가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부처님의 진실한 가르침입니다. 그런데 불성(佛性)이 있어서 그걸 발견하면 부처가 되고, 그런 불성은 영롱한 무언가라고 생각하면 이는 힌두교 사상이 됩니다.
모든 사물에는 작용만 있을 뿐입니다. 가령, 자동차는 움직이기도 하고, 불도 밝히고, 소리도 냅니다. 그런 자동차를 보고 어리석은 사람은 자동차에 어떠한 실체가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차를 분해하고 나면 자동차에는 어떠한 실체도 없습니다.
그런데 부품을 다 모아서 정교하게 조립한 자동차는 움직이기도 하고, 불도 밝히고, 소리도 냅니다. 이런 모습을 보고 마치 그런 작용을 하는 주체가 있는 것처럼 착각하게 되는데, 그것이 무지(無智)입니다. 그렇게 착각해서 이 차는 A차, 저 차는 B차 이렇게 실체가 있는 것처럼 분류하지만, 실제로 분해해보면 거기에는 아무런 실체가 없습니다. 다만 부품들이 정교하게 조립되어서 거기에 움직이는 작용, 불을 밝히는 작용, 소리를 내는 작용이 있을 뿐입니다.
여기서 무아(無我)는 ‘자동차가 없다’ 이런 뜻이 아닙니다. 자동차는 존재합니다. 그런 것처럼 나에게는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감촉하고, 생각하는 작용이 있습니다. 이때 실체가 없으니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단견(斷見)이고, 작용이 있으니까 여기에 실체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상견(常見)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단견도 아니고 상견도 아닌, 다만 작용이 있고 신의 분신인 ‘아’라는 작용의 주체는 없다는 것입니다. 이 원리를 확연히 깨달으면 괴로워할 일이 없습니다.
교리는 부처님의 말씀에 기초해서 후대의 수많은 사람들이 주석을 달고 원리를 풀어놓은 것입니다. 부처님의 설명은 주로 대화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주로 언어를 고정화시키고, 언어로 표현된 것에 실체가 있다는 방식으로 사고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불법(佛法)을 제대로 알기가 어렵습니다.
‘누구나 다 부처가 될 수 있다. 어떻게 부처가 되는가? 불성을 발견하면 된다.’
이렇게 표현을 하면 마치 우리의 마음속에 ‘불성(佛性)’이라고 하는 어떤 불변적 실체 같은 게 있다는 방향으로 사고가 흘러가버립니다. 지금의 나는 허상이고 진짜 나는 따로 있다고 생각하면 그건 힌두교 방식의 믿음입니다.
‘불성’에 대한 질문자의 생각이 잘못된 건 아니에요. 믿음을 강조하는 종교로서의 불교에서는 이러한 해석이 가능하고, 이 역시 하나의 믿음이 될 수 있습니다. 다만 인간 붓다의 근본 가르침에는 그런 뜻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누구나 다 불성이 있다’ 하는 말을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에 견주어서 해석하면 ‘누구나 다 부처가 될 수 있다’ 하는 뜻입니다. 부처가 된다는 것은 열반과 해탈에 이르는 것입니다. 열반은 괴로움이 없는 상태를 뜻하고, 해탈은 자유로운 상태를 뜻합니다. 누구나 열반에 이를 수 있다는 말은 한국 사람도, 일본 사람도, 미국 사람도, 팔이 하나 없는 사람도, 어릴 때 성추행당한 사람도, 어릴 때 가난하게 자란 사람도 지금, 여기, 사실에 깨어 있으면 괴로움 없이 살아갈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누구나 다 부처가 될 수 있다’라는 말의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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