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뭣고?

 

그런데 흔히 화두 허면 ‘이뭣고?’ 시삼마(是甚麼) 화두를 이야기하게 됩니다. 왜 그러냐 하면은 화두 가운데에 최초의 화두고, 가장 근원적인 화두이기 때문에 ‘이뭣고?’를 많이 말씀을 허게 됩니다.
 
화두(話頭)라고 헌 말은 임제(臨濟) 스님 이후로 임제종에서 이 화두라고 하는 말을 쓰게 되었습니다마는, 임제 스님 이전에 육조(六祖) 스님도 화두라고 하는 말은 사용하지 아니했지만 ‘내게 한 물건이 있으니, 위로는 하늘을 기둥하고 아래로는 땅을 떠받치며, 밝기로는 해보다 더 밝고 검기로는 옻칠보다도 더 검은데, 항상 동용(動用)허는 가운데 있으되, 동용허는 가운데서 거두어 얻지 못하니, 이것이 무슨 물건이냐?’ 이렇게 제자들에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 하택신회(荷澤神會)라고 하는 제자가 터억 앞에 나와서, ‘그것은 제불지본원(諸佛之本源)이며 모든 부처님의 근원이며, 신회지불성(神會之佛性)이로소이다. 이 하택신회, 저의 불성(佛性)입니다'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그 육조 스님이 ‘뭐라고 이름 붙일 수도 없고, 모양도 그릴 수도 없다고 내가 그랬거늘, 어찌 불성이니 제불의 본원이니 하고 이름을 붙이는고. 니가 앞으로 공부를 해서 일가(一家)를 이룬다 하드라도 너는 지해종사(知解宗師)밖에는 못되겠다. 불교학자밖에는 못 되겠다’
 
이 불교(佛教)라 하는 것은 이론적으로 교리적으로 공부허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참나’를 깨닫는 것이 목적인데, ‘앞으로 니가 공부를 열심히 해서 일가를 이룬다 해도 지해종자(知解種子) 밖에는 못되겄다’ 이렇게 점검을 허셨습니다.
 
그리자 남악회양(南嶽懷讓)이 왔습니다. 와서 터억 절을 허니까,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고?’ 이렇게 육조 스님이 물으셨습니다.
그 육조 스님이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고?’헌 물음에 대해서 꽉 맥혀서 뭐라고 대답헐 수가 없어, 몸을 둘 바를 몰랐습니다.
 
하택신회는 모든 부처님의 근본이니, 무슨 하택신회의 불성이니 이렇게 즉각 그 대답을 했는데, 남악회양은 육조 스님이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고?’허고 묻는데 대해서, 앞이 꽉 맥혀 가지고 몸 둘 바를 몰라.
그 뒤로 8년 만에사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했습니다.
 
8년 동안을 ‘대관절 이게 무슨 물건인고?’ 앉아서도 그 생각, 서서도 그 생각, 밥을 먹으면서도 그 생각, 일을 허면서도 그 생각, 똥을 누면서도 그 생각, ‘대관절 이 무슨 물건인고?’
이렇게 허기를 8년 만에사 확철대오를 했어.
 
그래 가지고 육조 스님 앞에 가서 ‘설사 한 물건이라 해도 맞지 않습니다.’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육조 스님이 ‘환가수증부(還可修證否)아, 도리어 닦아 증(證)헐 것이 있느냐?’허니,
‘수증(修證)은 즉불무(卽不無)어니와 오렴(汚染)은 즉부득(卽不得)입니다. 닦아 증(證)헐 것이 없지를 않지만은 오렴은 없습니다’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너도 또한 그렇고 나도 또한 그렇다” 이렇게 해서 인가(印可)를 받게 된 것입니다.
 
이 참선법, 활구참선법은 이론적으로 연구허는 분석하고 따지는 것이 아닙니다. 사량(思量)•분별(分別)로 더듬어 찾는 것이 아닙니다. 남악회양 선사처럼 대뜸 처음부터서 꽉 맥혀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캄캄한 밤에 기둥에 이마빡을 부딪친 거와 같은, 갑자기 걸어가다가 기둥이나 벼람박에 이마빡을 부딪쳤을 때 그때 상황이 어떻습니까? 앞뒷이 딱 끊어져 버린 것입니다.
 
다못 꽉 맥혀 가지고, 알 수 없이 ‘이뭣고?’ 그 뿐인 것입니다.
 
이렇게 꽉 맥혀서 앞뒷이 끊어져야 그 공부를 옳게 해 나가는 것이지, 이리 따지고 저리 따지고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과 상식, 이론, 무슨 철학, 불교의 경전에 있는 부처님 말씀, 그것을 갖다가 아는 대로 끌어다가 이렇게 분석을 하고, 종합을 하고, 비교를 하고, 적용을 하고, 이렇게 해서 공부를 허는 것이 아닙니다.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도 그렇고, 마삼근(麻三斤)도 그렇고, 무자(無字) 화두도 그렇고, 시삼마(是甚麼)도 그렇고, 무슨 화두(話頭)를 어느 큰스님한테 탔든지 간에 한번 탔으면,
공부가 잘되거나 못되거나 못될수록에 그 화두 하나에 전력을 쏟을 것이고, 잘된다 하드라도 기쁘다는 생각을 내지 말고, 다못 알 수 없는 의심 ‘이뭣고?', 무자 화두를 하는 분은 ‘어째서 무라 했는고?’ 다못 이렇게 지어갈 따름인 것입니다.
 
꽉 맥혀서 답답허고 알 수가 없지만 조금도 조급한 생각을 낼 것이 없고, 또 그렇게 해 가다 보면 화두가 순일하게 들려서 의심(疑心)이 순일(純一)하게 들린다 하드라도, 화두가 독로(獨露)한다 하드라도 기뻐하는 마음을 내서는 안 된다.
기쁜 마음을 내면 이미 화두는 달아나 버리고, 기쁜 마음의 마군(魔軍)이가 벌써 침입해 들어온 것이고, 안된다고 짜증을 내고 번뇌심을 내면 이미 번뇌의 마군이가 내 마음에 침입해 들어온 것이라.
 
그래서 이 공부는 잘된다고 해서 기쁜 마음도 내서는 아니 되고, 잘 안된다고 해서 짜증낼 일도 아닌 것입니다.
 
다못 단전호흡을 허면서 숨을 쑥 들어마시면 아랫배가 볼록해지는데, 볼록해지거든 약 3초 동안 딱 정지했다가, 또 조용하게 내쉬면서 ‘이뭣고?’허면서 숨을 내쉬는 것입니다. 숨이 다 나가면 배가 홀쪽해지죠.
그러면 또 스르르 들어마시면 아랫배가 볼록해지는데, 볼록해지거든 딱 정지헌 상태에서 약 3초 동안 머물렀다가, 또 숨을 내쉬면서 ‘이 무엇고?’ 이렇게 해나가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숨을 들어마셨다 내쉴 때마다 화두를 들고... 허지만, 차츰차츰 익숙해지면 꼭 숨을 내쉴 때마다 화두를 들지 아니해도 됩니다.
들었던 화두 ‘이뭣고?’헌 그 알 수 없는 의심이 있으면 그냥 화두는 더 들지 않고, 그 있는 의심을 묵묵히 반조(返照)를 허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화두는 한번 들고서, 숨은 3번•4번•5번 내지 10번을 쉬어도 그 화두 의심이 고대로 있으면은 덮치기로 화두를 들지 않다가, 화두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없어지거나 딴 생각이 일어났다허면 그때 가서 또 화두를 떠억 한 번씩 챙기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일구월심(日久月深)해 가면, 처음에는 그렇게 들랴고 해도 깜빡한 사이에 달아나 버리고, 들면 또 달아나 버리고 하는데, 나중에는 들지 아니해도 저절로 화두가 항상 들어져 있게 될 때가 반드시 오는 것입니다. 그때는 그것을 갖다가 공부가 많이 익숙해진 증거인 것입니다.
 
힘을 쓰지 아니해도 저절로 공부가 되어가니까 힘을 덜게 된다.
‘힘 덜게 되는 것을 득력(得力)이라, 힘을 얻는 것이라’ 이렇게 고인(古人)네들은 표현을 했습니다.
 
이 공부에 제일 주의헐 것은 사량•분별로 따지지 말 것이며, 설사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순일허게 잘 들리고, 의단이 독로헌다 해도 좋아하는 마음-환희심(歡喜心)을 내지 말 것이다.
 
또 공부가 순일허게 잘되어갈 때, ‘빨리 깨달랐으면, 이럴 때 누가 나로 하여금 탁 깨닫게 해줬으면’ 그러헌 생각도 내지 말 것이다.
 
또 공부가 그렇게 순일하게 잘되어가게 되면은, 여태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어떠한 그 신기한 경계(境界)가-혹 환한 광명을 본다던지, 꿈에 부처님을 친견하고 또는 여러 가지 뭣이 알아진다든지, 그런 신기한 경계가 나타난다 하드라도,
‘이것은 일시적으로 스쳐가는 환상(幻相)이다’ 생각하고,
‘이거 내가 깨달은 것이 아닌가?’ 그러헌 그 외람(猥濫)되고 잘못된 생각을 내지 말고,

 

 

 

 

 

 

어떠한 신기한 불보살이 나타나고 신기한 경계가 나타난다 하드라도, 이것은 허상이오, 환상이라 하는 것을 미리부터 잘 이해를 허시고, 그런데에 현혹되지 말고 집착허지 말고,

 

 

 

일어나거나 말거나 그냥 내버려두고, 정신만 탁 챙겨 가지고 눈을 뜨고서 화두를 챙겨나가면 그러헌 경계는 금방 저절로 없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스승을 바로 만나지 못하고, ‘어떻게 해야 옳게 해나가는 것인가’를 잘 모르는 사람은, 공부허다가 이런 허상(虛想)과 환상(幻相)과 마경(魔境)이 나타나면 이것이 도통(道通)헌 것으로 착각을 하고, 그것에 기쁜 마음을 내고 그것에 집착을 하고 신경을 써 가지고 영영 사도(邪道)에 빠지고, 까딱하면 정신병자가 되고 하는 예도 가끔 있습니다.

 

 

 

그래서 이 공부는 시작할 때부터서 바르게 시작을 해야 하고, 중간에도 바르게 해 나가야, 바른 깨달음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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