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회는 무엇을 하고자 설립되었는지 스님의 자세한 설명이 있었습니다.

 

“1980년대를 지나면서 한국 사회는 많은 변화를 겪게 됩니다. 이렇게 변화된 세상에서 앞으로 우리 사회가 갈 길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많은 연구와 토론을 한 끝에 정토회가 설립되었습니다. 당시에 대안을 얘기했던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수렴했고, 수많은 의견을 검토하고 토론을 거친 결과 저희는 네 가지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첫째, 전지구적으로 가장 중요한 문제는 ‘환경 문제’라고 봤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문명은 결국 환경 문제에 의해서 제동이 걸릴 것이라고 본 것입니다. 생태적 가치를 기반으로 해야 지속가능한 문명이 될 수 있지 생태적 가치를 기반으로 하지 않은 문명은 유한한 문명일 수밖에 없다고 보고 환경운동을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둘째, 세계가 많이 발전했다고 하지만 아직도 지구상에는 인구의 20%가 절대 빈곤 선상에 놓여있는 이 현실을 외면할 수 없다고 봤습니다. 굶어서 죽는다든지, 간단한 질병으로 죽는다든지, 초등교육도 받지 못한다는지, 이런 절대 빈곤 상태에 놓인 사람들의 문제는 내 나라 중심의 사고를 넘어서야 풀 수 있는 문제입니다. 그 때 당시만 해도 다들 우리나라 문제에만 신경을 썼지 남의 나라의 고통에는 신경쓸 형편이 못 되었어요. ‘선진 강대국들이 우리를 착취해서 우리가 못 사는 것이다’ 이런 생각만 가졌는데, 이미 우리나라도 지구 전체로 보면 상위 20%의 기득권층에 속하게 됐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우리나라도 하위 20%에 대해서 나라와 민족을 떠나서 인류적 관점에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빈곤퇴치 운동을 시작하게 된 겁니다.

셋째, 갈등을 해결하는 평화 문제가 중요하다고 봤습니다. 밥 먹고 살만 함에도 불구하고 이념적 충돌, 종교적 충돌로 끊임없이 분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당시만 해도 남한과 북한, 중국과 대만, 중국과 베트남, 필리핀의 민다나오, 스리랑카의 타밀족, 북아일랜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등 전세계 40여 곳에서 끊임없이 충돌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그 중에 1,2위를 다투는 가장 큰 갈등이 우리의 처지이기도 한 남북 분단의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평화운동을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넷째, 그 당시에 제일 잘 사는 나라가 노르웨이, 핀란드, 스웨덴, 덴마크 등 북유럽 국가들이였습니다. 그런데 자살율이 제일 높은 나라가 또한 북유럽이었어요. 세계에서 제일 잘 사는데 자살율은 제일 높은 겁니다. 이런 사실을 접하면서 아무리 환경이 좋더라도 인간이 자기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면 행복해질 수가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대부분 사회를 바꾸는 운동만 했지 인간의 마음을 잘 관리하는 것은 개인의 문제로만 치부되었습니다. 그러나 저희들은 앞으로 마음을 잘 관리하는 것이 인류의 가장 큰 과제가 될 것이라고 봤습니다. 인간의 마음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 재앙이 초래될 수 있다고 본 겁니다. 그래서 수행 운동을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수행에 대한 노하우는 불교가 가장 많이 갖고 있다고 볼 수 있죠. 그러나 기존의 불교는 용어만 수행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실제로는 수행적 관점을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복을 비는 것에만 치우쳐져 있던 불교의 모습은 부처님이 왕위와 재물을 버리고 출가한 정신과는 전혀 맞지가 않습니다. 복을 빈다는 것은 결국 ‘왕위를 달라’, ‘재물을 달라’, ‘인기를 달라’ 하는 얘기 아닙니까. 부처님은 그것을 버렸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부처님의 이름으로 그것을 구하려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은 이름만 불교이지 불교라고 할 수가 없는 겁니다. 또한 이것은 우리나라만 그런 것이 아니라 전세계 불교인들이 대부분이 그렇다고도 볼 수 있어요. 그 중에 개인 몇 명은 수행적 관점을 가진 분들이 우리나라 안에도 다른 나라에도 존재할 수가 있겠죠. 그러나 불교를 믿는 대중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전혀 근접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서 이 수행을 새로운 문명의 한 요소로 받아들이고 이것을 대중화할 필요가 있다고 봤습니다. 특정한 한 사람이 위대한 수행자가 되어서 산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 누구나 일상 속에서 그렇게 수행하자는 것이였습니다.

이렇게 세상을 파악한 것이 정토회가 설립되기 전에 저희가 세상을 바라본 모습이였습니다. 이런 관점을 가지고 출발했는데, 이 때도 ‘불교’란 이름을 쓸거냐 안 쓸거냐의 문제로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불교’란 이름을 쓰는 순간 그 틀에 갇혀 버리기 때문입니다. 기존의 불교가 경전, 교리, 복을 구하는 것, 사회에는 관여하지 않고 개인의 행복만 찾는 이런 이미지가 굳어져 있었기 때문에 불교란 이름을 쓰게 되면 우리가 추구하는 방향과는 전혀 맞지가 않게 된다는 것이였습니다. 그래서 종교로 출발해서는 안 된다는 문제의식이 있었는데, 그렇다면 불교가 아닌 것으로 출발한다면 그것은 또 도대체 무엇이냐는 문제도 제기되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눈으로는 ‘종교 단체냐?’, ‘시민단체냐?’ 하고 물을텐데, 시민단체라고 하기에는 수행이 중심인 곳이고, 종교 단체라고 하기에는 환경운동, 구호활동, 평화운동 같은 사회실천활동들이 담겨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런 문제의식을 갖지만 일단 새로운 불교로 출발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무엇을 하는 곳인가?’ 라는 질문에 대해 길게 설명을 할 수밖에 없게 되고, 말이 길면 오해가 많아질 것이기 때문이였습니다. 그러다보니 종교의 한 형태로 출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금 우리는 새로운 문명으로 전환하는 시기에 놓여 있습니다. 예전에는 종교와 철학, 인문학, 사회학, 자연과학, 정치 등이 각기 다 구분되는 사회였다면, 지금은 종교 안에서도 불교니 기독교니 내가 잘났느니 네가 잘났느니 하고 따지는 것이 더 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됐습니다. 서로 좋아서 결혼한 두 부부가 갈등을 일으켜서 원수가 되고, 자기 몸으로 낳은 아이가 말을 안 들어서 엄마와 아이가 원수가 되는 이런 문제들을 과연 누가 해결해줄 수 있느냐는 겁니다. 우리가 실제로 살아가면서 겪는 구체적인 고통들, 즉 개인적으로는 부부 간의 갈등, 부모 자식 사이의 갈등, 직장 동료 사이의 갈등, 사회적으로는 남북의 충돌, 여야의 충돌, 진보와 보수의 충돌, 노동과 자본의 충돌 등 여러 갈등을 도대체 무엇으로 해결하느냐는 겁니다. 지금 종교에서 가르치는 것들이 과연 이런 개인적 고뇌와 사회적 고뇌들을 해결하는데 얼마나 효용성이 있느냐는 것이죠.

예전에는 사회적 리더십을 종교가 다 갖고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우주와 천체에 대한 것은 과학이 다 가져가버렸고,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정치와 사회과학이 다 가져가버렸고, 육체의 아픔을 치료하는 것은 의학이 다 가져가버렸고, 정신적인 아픔을 치료하는 것은 정신분석학과 상담심리가 다 가져가버렸잖아요. 지금 종교가 갖고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오히려 지금 종교에 남은 것이라곤 네 가지 밖에 없어요. 첫째, 권위주의예요. 둘째, 조직이 갖고 있는 힘이예요. 셋째, 신비주의예요. 넷째, 그들이 갖고 있는 돈이예요.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이런 것들을 다 배격하시고, ‘교만하지 말고 겸손해라, 비굴하지 말고 당당해라’ 라고 하셨잖아요.

그런데서 우리는 만 명 중에 한 명 어쩌다가 나타나는 그런 수행자를 지향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모두가 다 붓다처럼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수행에 있어서 ‘대중주체’입니다. 이제는 더이상 스님이나 종교라는 형식과 이름을 갖고 사람을 줄세우는 문화는 없어져야 합니다. 필요에 의해서 역할이 나눠지는 것일 뿐인데, 스님, 법사, 처장, 국장 하는 역할이 지위가 되어 귄위주의로 흘러가서는 안 됩니다. 물론 쉽지는 않겠죠. 우리들의 오랜 습관이 있으니까요. 그래서 수행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역할은 역할대로 하면서 평등성은 평등성대로 보장해 나갈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수행이 부족하면 역할이 차별로 가고, 평등성이 무질서로 갈 소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먼 미래를 보면 한 사람 한 사람이 붓다의 길로 간다는 이런 대중주체의 길이 맞습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 길을 가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그래서 숫제 승려나 종교지도자라는 이름으로 대중을 확 이끌고 가는 것이 사람들을 더 많이 결집시킬 수 있고 파워도 있지 않느냐, 지금의 현실에서는 대중주체를 실현해내기가 굉장히 비효율이지 않느냐, 하는 우려가 많았습니다. 부처님도 처음에는 그렇게 시작했지만 부처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시간이 흐르면서는 다시 종교화 되었고, 이것을 다시 극복하기 위해 ‘보디사트바’란 새로운 이름을 갖고 대승불교 운동을 일으켰지만 다시 또 종교로 돌아갔죠. 대승불교도 처음에는 재가자가 중심이 되어 출발했는데, 대중들로부터 권위가 안 서니까 다시 머리를 깍고 승복을 입게 됩니다. 처음에는 자기 실력을 갖고 지도자가 되었지만, 나중에는 실력만으로는 안 되니까 권위주의로 돌아간 겁니다.

 

 

그러니 여러분들도 종교지도자에 대한 권위의식에서 자유로워져야 합니다. 우리는 직분에 따른 역할분담을 할 뿐입니다. 부처님이 말씀하신 겸손하되 당당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관점을 계속 가져나가려면 우리가 같이 모여서 함께 수행해 나가야지, 함께 하지 않으면 이런 관점을 유지하기가 어렵습니다.

이런 꿈을 갖고 우리가 모인 겁니다. 이런 꿈이 없으면 우리가 무엇 때문에 모였겠습니까. 스님들은 사찰에서 스님 생활을 오래하면 종회 의원도 하고 본사 주지도 하는 그런 꿈이 있을 수가 있는데, 여러분들처럼 이렇게 정토회에서 봉사활동을 하면 그런 게 없잖아요. 그러나 우리는 그런 것과는 다른 이러한 꿈을 갖고 출발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지금 여러분들이 남편이 반대하고, 부모가 반대하는 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겁니다. 주위에서도 자꾸 ‘너가 그런다고 돈이 벌어지냐, 출세를 하냐, 인기가 있어지냐?’ 라고 묻잖아요. 그래서 만약 여러분들이 우리의 행복과 미래 사회에 대한 이런 원을 잃어버리게 되면, 이렇게 주위에서 문제제기하는 것들을 이겨낼 수가 없게 돼요.

그런데서 환경운동, 구호활동, 평화운동, 수행, 이 네가지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꼽으라면 역시 ‘수행’입니다. 수행은 나머지 세 가지와 맞먹는 거예요. 그래서 부처님은 이것을 ‘상구보리’와 ‘하화중생’ 두 가지로만 나누었어요. 즉 ‘하화중생’ 속에는 환경운동, 구호활동, 평화운동이 다 들어가 있는 겁니다. ‘수행을 기초로 한다’, ‘수행을 근본으로 한다’ 하는 얘기가 그래서 나온 겁니다. 그러면 수행만 하면 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 두 가지는 서로 분리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정토회는 불교라는 형식을 빌리고 있기 때문에 사회 실천을 할 때마다 비난을 감수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이 굶주리면 먹을 것을 주고, 아프면 치료를 해주고, 학교에 못가면 아이들에게 학교를 지어주고, 독재를 하면 독재에 저항을 하고, 전쟁을 일으키려고 하면 전쟁을 막고, 이런 실천들은 인연 따라 할 뿐인데, 이런 모습을 보고 대중들은 ‘왜 정치에 관여하느냐’ 라고 시비할 수밖에 없거든요. 세상은 그런 시비를 할 수가 있어요. 그러나 여러분들마저 이런 시비에 마음이 흔들린다면 그것은 정토회의 설립취지를 모르는 겁니다. 우리의 사회 실천은 인연을 따라서 몸을 나투는 것에 불과한 겁니다. 그런데서 개개인이 어떤 상황 속에서도 관점을 잘 잡아서 그 속에서도 행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수행과 전법 활동도 중요하지만, 사람들의 고통이 줄어들 수 있도록 환경을 잘 만들어주는 사회실천활동도 함께 중요한 겁니다.

1차 만일결사를 마무리짓고 2차 만일결사를 시작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2차 만일결사에서는 세계적인 문제를 풀어야 하는데, 우리가 당장 사회적인 변화를 가져오기에는 역량이 안 되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개인 수행 문제에 초점을 두면서 환경운동과 구호활동, 평화운동을 해나가야 할 겁니다.

 

 

그러면 지금 하고 있는 1차 만일결사에서 우리의 과제는 무엇일까요? 1차 만일결사에서는 대한민국 국민들이 겪고 있는 고통을 해결해 나가기로 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성장 국면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정체와 쇠락의 길을 걸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어요. 이 몰락을 조금 더 늦추든지, 상황을 개선해서 성장 국면으로 약간 방향을 전환하든지 해야 하는데 쉽지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통일은 이런 정체 국면을 전환시키는 역할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통일은 지금까지 생각해 온 ‘같은 민족이기 때문에 통일해야 한다’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문제가 됐습니다.

통일은 첫째, 경제적인 성장과 직결된 문제이고, 둘째, 국제관계의 역학 변화 속에서 우리의 자주성을 확보하는 문제와 직결되어 있습니다. 미국과 중국이 점점 갈등 국면으로 나아가는 형국에서 지금과 같은 분단 상태로는 아무런 전망을 가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일반 국민들은 이런 정세를 읽기가 힘듭니다. 어떤 이유로 전쟁이 안 일어난 것인지, 어떤 이유로 경제적인 붕괴가 안 일어난 것인지, 개인들이 어떻게 알겠어요? 그러나 국민들이 알든 모르든 예견된 위기를 막아내고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 보살이 해야 할 역할입니다.

우리가 장기적으로 보고 멀리 내다보면서 이뤄나가야 할 목표는 ‘문명 전환’이고, 이것은 다른 말로 표현하면 ‘불교중흥’, ‘정토구현’이라고 할 수 있겠죠. 반면에 우리가 대한민국에 태어난 인연으로 단기적으로 해나가야 할 일은 ‘남북의 평화적인 통일’입니다. 이것은 통일만 하면 된다는 뜻이 아니라 통일을 통해서 평화문제도 풀고, 경제성장도 도모하고, 정치 갈등도 풀어나가는 계기를 만들고, 이 기운을 통해서 지금까지 서양을 모방해오던 시스템에서 새로운 창조시스템으로 전환해나가는 기회도 만들어내자는 뜻입니다.

 

 

이것이 1차 만일결사의 목표라면, 2차 만일결사가 되면 이제 우리는 더 이상 대한민국의 문제에만 머물러서만 안 됩니다. 인류 전체를 보고 인류의 행복을 위한 구상을 실천해 나가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세대에서 빨리 대한민국의 문제를 해결해줘서 다음 세대들은 세계의 문제를 갖고 정토회를 발전시켜나갈 수 있는 길을 터줘야 하지 않겠느냐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세대는 통일 문제의 해결에 조금 더 집중해야 하는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주위 상황도 더 이상 방치할 수가 없게 되었고, 기회도 놓쳐서는 안 되는 시기가 된 것 같습니다. 오늘은 이런 문제의식을 갖고 조금 더 깊이 있는 토론을 해봤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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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 순서

 

 

1. 삼 귀 의 (독송하며 한배 한 배 절을 합니다. )

(1) 부처님을 찬탄하고 공경합니다.

부처님께 간절한 마음으로 귀의합니다. (1배)

(2) 부처님 법 만난 것을 기뻐합니다.

모든 것은 나로부터 나아가 나에게

돌아옴을 알아 부지런히

정진하겠습니다.(1배)

(3) 부처님 제자됨이 자랑스럽습니다.

이 땅에 고통받는 모든 중생을 구원하는

보살이 되겠습니다. (1배)

 

2. 수 행 문(마음을 실어 정독한다.)

 

무릎을 꿇고 앉아서 수행문을 독송합니다.

소리 내어 읽으면서 기도의 의미를 새겨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목표를 갖고 기도하더라도 기도의 방향을 잃어버리면 그 목표에 도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수행문>

모든 괴로움과 얽매임은 잘 살펴보면다 내 마음이 일으킨다.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들은 이 괴로움과 얽매임이 밖으로부터 오는 줄 착각하고

이 종교, 저 종교, 이 절, 저 절, 이 사람, 저 사람을 찾아다니며

행복과 자유를 구하지만 끝내 얻지 못한다.

그것은 안심입명의 도는 밖으로 찾아서는 결코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언제 어디에서 일어난 어떤 괴로움일지라도 안으로 살펴보면

그 모든 괴로움의 뿌리가 다 마음 가운데 있고, 그 마음의 실체가 본래 공한 줄 알면

모든 괴로움은 저절로 사라진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신이 일으킨 한 생각에 사로잡혀 옳다 그르다 모양 짓고,

그 모양에 집착해서 온갖 괴로움을 스스로 만든다.

한 생각 돌이켜서 이 사로잡힘에서 벗어나면 모든 괴로움과 얽매임은 즉시 사라진다.

(다 읽으셨으면 앉은 자세에서 반배!!! 을 합니다.)

 

3. 참 회 문

<참회문>을 독송합니다. 108배 참회기도를 하기 전에 다시 한 번 참회의 방향을 점검하고 새깁니다. 무릎을 끓은 채로 독송합니다.

 

화나고 짜증나고, 미워하고, 원망하는 이 모든 것은

밖으로 살피면 상대가 잘못해서 생긴 괴로움인 것 같지만,

안으로 살피면 '내가 옳다'는 자기 생각에 사로잡혀 일어난 것이므로 모든 법에는 본래 옳고 그름이 없음을 깨달아

'내가 옳다'는 한 생각을 내려놓을 때 모든 괴로움은 사라지고 온갖 업장은 녹아나는 것이다. (반배)

 

4. 108배

[관세음보살을 부르면서 자신의 기도문에 따라 깊이 뉘우치는 마음으로 108 절]

수행문 또는 개인에게 주어진 기도문에 집중해 마음을 돌이켜 뉘우치면서 참회의 절을 합니다.

 

넓고깊은 원력세워 보살도를 닦고닦아

고통중생 구하시려 사바세계 몸을 나퉈

크신사랑 연민으로 널리중생 구하시는

관- 세음 보살님께 지정귀의 하옵니다.

관세음보살,......→ (여기서부터 꾸벅 꾸벅 절을 시작하면 됩니다.)

('관세음보살' 명호를 부르면서 108배 정근(절) )

↓(108배가 끝났으면 하던 108절을 멈추고 아래 글을 같이 독송을 합니다.)

이 부분은 직접 하시는 모습을 보면 도움이 됩니다.

멸업장진언 {옴 아르늑게 사바하}(3번)

온갖신통 갖추시고 방편널리 닦고닦아

시방세계 모든국토 그- 몸을 나투시어

고통중생 구하시는 관- 세음 보살님께

지성귀의 하옵니다.

 

<참회게>

원하옵나니

사생육도 법계중생 다겁생래 지은업장

지금내가 참회하니 모두소멸 하여지고

세세생생 보살도를 행하게 하여지이다.(3번 절)

원하옵나니

이와같이 지은공덕 일체중생 회향되어

정토세계 함께가서 부처님을 친견하고

함께성불 하여지이다.

 

5. 명 상(10분)

(호흡을 편안히 하고, 숨을 고르고, 들숨과 날숨을 가만히 지켜보라)

10분 이상 명상을 합니다. 자세를 바르게 하고 마음을 코끝에 모아 어떤 경계에도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숨이 들어가고 나옴을 알아차립니다.

 

6. 경 전 독 송 (정해진 경전을 3번 독송한다.)

정해진 경전을 한 단락 또는 한 쪽씩 독송합니다.

명상을 하는 이유는 번뇌를 내려놓기 위함이고, 경전을 독송하는 것은 무명(無明)을 벗어나 지혜를 억기 위합입니다.

 

7 정토행자의 서원

<정토행자의 서원>을 독송합니다.

<정토행자의 서원>은 정토회에서 천일결사를 하는 공동의 서원이 담긴 내용입니다.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어떤 삶을 살며 어떤 원을 세우고 성취할 것인지를 마음에 새깁니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없으면 저것도 없다‘는 존재의 상호연관성이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다.

‘네가 죽으면 나도 죽고 네가 살면 나도 산다.

네가 불행하면 나도 불행하고, 네가 행복하면 나도 행복하다‘는 연기적 세계관에 입각하여 함께 살고 함께 행복해지는 이 길을 추구한다.

여러 가지 꽃들이 모여 하나의 화단을 이루듯이 각자의 다양한 개성이 모여 조화와 균형을 이루게 하여 시기와 질투를 뛰어 넘어 사랑을, 대립과 경쟁을 뛰어 넘어 화합을, 투쟁과 전쟁을 뛰어 넘어 평화를 이루는 새로운 문명을 창조하고자 한다.

평생을 가사 한 벌과 바루 한 개로 걸식하며 살아가신 부처님의 삶을 본받아,

적게 먹고, 적게 입고, 적게 자며, 어디에도 구애받지 않고 살아가는 구도자의 자세를 갖는다.

나아가 중생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여기고 스스로 사바세계와 지옥 속으로 뛰어 들어 중생을 구제하시는 대비 관세음보살님과 대원 지장보살님의 원력을 본받아 일체 중생을 구원하는 대승 보살이 되고자 한다.

정토세계를 이룩하기 위하여 나를 버리고, 내 것을 버리고, 내 고집을 버리고

오직 중생의 요구에 수순하는 보살이 되고자 한다.

그리하여 한 생각 돌이켜 사로잡힘에서 벗어나 괴로움도 없고 얽매임도 없는 대자유인(成佛)이 되고자 한다.

나아가 인류에게 불어 닥친 이 위기를 극복하고 행복한 인생(맑은 마음), 평화로운 사회(좋은 벗), 아름다운 자연(깨끗한 땅)을 일구어 살기 좋은 세상 정토(淨土)를 만들고자 한다.

 

8. 보왕삼매론

<보왕삼매론>을 독송합니다.

1. 몸에 병이 없기를 바라지 말라.

몸에 병이 없으면 탐욕이 생기기 쉽나니,

그래서 부처님게서 말씀하시되

[병고로써 양약을 삼으라.] 하셨느느라.

 

2. 세상살이에 곤란없기를 바라지 말라.

세상살이에 곤란이 없으면 업신여기는 마음과

사치한 마음이 생기게 되나니,

그래서 부처님게서 말씀하시되

[근심과 곤란으로써 세상을 살아가라 ] 하셨느니라.

 

3. 공부하는데 마음에 장애없기를 바라지 말라.

마음에 장애가 없으면 배우는 것이 넘치게 되나니,

그래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장애 속에서 해탈을 얻으라 ] 하셨느리라.

 

4. 수행하는데 마(魔) 없기를 바라지 말라.

수행하는데 마가 없으면 서원이 굳건해지지 못하게 되나니,

그래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 모든 마군으로써 수행을 도와주는 벗을 삼으라.] 하셨느니라.

 

5. 일이 꾀하되 쉽게 되기를 바라지 말라.

일이 쉽게 되면 뜻을 경솔한데 두게 되나니,

그래서 부처님게서 말씀하시되

[여러 겁을 겪어서 일을 성취하라. ] 하셨느니라.

 

6. 친구를 사귀되 내가 이롭기를 바라지 말라.

내가 이롭고자 하면 의리를 상하게 되나니,

그래서 부처님게서 말씀하시되

[순결로써 사귐을 길게 하라. ] 하셨느니라.

 

7. 남이 내 뜻대로 순종해 주기를 바라지 말라.

남이 내 뜻대로 순종해 주면 마음이 스스로 교만해지게 되나니,

그래서 부처님게서 말씀하시되

[내 뜻에 맞지않는 사람들로써 원림(園林)을 삼으라.] 하셨느니라.

 

8. 공덕을 베풀려면 과보를 바라지 말라.

과보를 바라면 도모하는 뜻을 가지게 되나니,

그래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덕 베푼 것을 헌신처럼 버려라. ] 하셨느니라.

 

9. 이익을 분에 넘치게 바라지 말라.

이익이 분에 넘치면 어리석은 마음을 도웁게 되나니,

그래서 부처님께서 말슴하시되

[적은 이익으로써 부자가 되라. ] 하셨느니라.

 

10. 억울함을 당해서 밝히려고 하지 말라.

억울함을 밝히면 원망하는 마음을 도웁게 되나니,

그래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억울함을 당하는 것으로 수행하는 문을 삼으로.] 하셨느니라.

 

이와같이 막히는 데서 도리어 통하는 것이요,

통함을 구하는 것이 오히려 막히는 것이니,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저 장애 가운데에서

보리도를 얻으셨느리라.

세상에 도를 배우는 사람들이 만일 먼저 역경에서 견디어 보지

못하면 장애가 부딪칠 때 능히 이겨내지 못해서 법왕의 큰 보배를 잊어버리게 되나니 역경을 통하여 부처를 이룰지로다.

 

9. 사홍서원

마지막으로 사홍서원을 합니다.

 

(1) 이 땅에 고통받는 중생이 한 사람도 없는

정토세계를 이루겠습니다.(반배)

 

(2) 어떠한 경우에도 괴로움과 번뇌가 일어나지 않도록

수행정진 하겠습니다. (반배)

 

(3) 부처님 법 만난 것을 기뻐하며 모두 배우겠습니다.(반배)

 

(4) 일체중생과 더불어 꼭 성불하겠습니다.(반배)

 

10. 수행일지 작성

기도를 마치면 수행일지를 씁니다. 기도하면서 떠오르는 생각이나 느낌을 그대로 적습니다. 기도하기 싫은 마음이 올라오면 싫은 마음을 그대로 적고, 수행일지를 쓰기 싫으면 그 마음을 그대로 적습니다. 이렇게 수행일지를 쓰면 자신의 변화를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11. 보시와 봉사

탐욕을 끊고 보시를 위한 실천으로 매일 천 원 이상 보시합니다.

보살행을 실천하기 위해 매일 한 가지 이상 선행을 하거나 자원봉사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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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반특강 ( 4.23 ~ 24 / 1박2일 )

묘수법사님 법문

오늘 겡전반의 특강으로서 영상강의중 궁금한 사항이 있으면 묻고 답을 얻어 이해 할수 있는기회를 만들고자 특강 수련을 만들었다.

과거는 현제를 지배 할수없다

불교는 현제를 중요시 한다.

언제어디서 일어난 어떤 괴로움도 안으로 살펴보면 다 내 마음이 일으키고있다

그러나 그마음이 본래 공한줄 알면 모든 괴로움은 스스로 살아진다

내가 나를 사랑 할수 있어야한다.

 

유수스님 법문

일체중생을 제도할 마음을 내라.

한 중생도 남음 없이 다 제도 했어도 한중생도 제도 한바가 없다는 생각을 하라.

그것은 보살이 아상이 있으면 보살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남의 허물을 알고 잘 못된거라고 고치려 하지말고 내 자신을 돌아보라

나를 고집하는것이 아닌가.

살아가는데 쉽게 잘되며 이익만이 있기를 바라지마라

어려운 장애속에세 수행정진하여 깨달음을

얻더록 하라

지금현제 구함이없는 자유료운 사람이 되라

(수처작주 )

모든일의 난관은 다 내 문제로보고 나의

허물로 보고 내가 잘못 한것이다 라고

생각하고 참회하고 뉘우쳐라.

 

법륜스님 법문

천상천하유아독존 삼계개고 아당안지

후대 제자들의 믿음으로 발심게 하기위한 상징적 표현이다.

 

정토란

보다더 많은사람들이 함께 행복하고 자유롭게 살기좋은 세상을 만드는것이다.

그러기위해서 환경을 살리고 가난한자를 돕고 병든자를 치료하고 못 배운자들을

배우게 하는것이 정토로 가는길이다.

평등을 유지하게 하는것이다.

평등이란 각자의 개성과 소질로서 잘 살아갈수 있도록 하는것이 평등니다.

 

상이란

주관을 객관화 시키는것이다.

나를 고집하는것 이것이 상니다.

 

무주상보시

본래 본질적으로 내것은 없다.

연기 일 뿐이다 .

그러므로 주어도 보상 기대 심리가 없는 것이다. 곧 바라는것이 없어야한다.

나라는 실체가 없다는을 알면 실망이 없다

나라는 상을 놓아야한다.

상호관계 거래가 있어도 이익과 손해를

따지지 않는다 .따지면 간택이며 분별심이다 이것이 상이다

언어를 절대화 하면 안된다. (무유정법)

진리다 (법상) 내가 옳다 (아상)

 

논장

부처님말씀을 현제에 조건에 맟취서

합리적으로 설명하는 것을 말한다.

부처님 법문을 듣고 캐우쳐야지 계속 의지하면 안된다 .법을 땜목으로알라.

상구보리 하화중생 하라.

 

참회

회광반조 돌이켜 보며 자신을 내려놓고

고집하지 않고 상대를 이해하는것이다.

 

절대적 인식은 없다. 상대적 인식이다.

인연따라 조건지어져서 크기도하고

작기도 한것이다.

상대적 언어를 빌어서 다를 뿐이다.

선적으로 오르지 그것일 뿐이다.

철학적으로 공 이다.

인연을 따라서 불러지고 있을뿐이다.

그 어떤것도 나라고 할 것이 없다.

현제의 나라는 작용만 있을뿐이다.

인식의 상을 나라고 여기고 있을뿐이다.

절대적으로 단정하지 말고 합리적 사고로 보자. 연기로서 영구적 인것이없고 늘

변화 하기 때문에 절대적인 것은 없다.

 

선악의 개념은 우리의 의식이 만든것이다.

자연의 상태는 선악이 아니다.

자연 상태를 비교해서 의식이 선과 악이라 개념을 짓는다. 나를 중심으로 착취는 악이요.베풀면 선이라 규정할 뿐이다.

오계는

남을 괴롭히거나 해치지 말라는 것이다.

 

불교와 부처님의 가르침은 일치하지 않는다. 붉교는 불멸후 만든 교리이기 때문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들의 마음을 깨우치게 하는데 있다.

본질적차원에서는 죽음 자체가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것이다.

우리의 육신은 가합상이다

그러므로 두려움을 벗어나게 해주는것이다.

지금 우리는 종교화된 불법을 믿고있다.

전생이란

흰두교의 교리를 인용한것이다

인도의 풍습을 교리에 적용하여 종교화

한것이 오늘닐 우리가 믿고 있을뿐이다.

삼계 (색계 욕계 무색계)

삼세 ( 과거세 현제세 미례세) 를 말한다.

석가모니 사바세계 ᆞ 미륵 용하세계

부처님의 가르침은 나에게 적용하면 약이되고 남에게 적용하면 독이된다.

상대를 이해하면 내가 편하다.

헐떽 거리지 말고 최선을 다 해되 결과에 연연 하지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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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相)을 짓지 않는 것과 뜻을 세우는 것이 양립할 수 있나요? 스님의 금강경 강의에서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가 무엇을 뜻하는지 잘 들었습니다. 분별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 마음에 평온을 가져다줄 수 있다는 것이 어렴풋이나마 이해가 되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통일을 염원하거나 정토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 상을 짓지 않는 것과 배치되는 것이 아닌지 의문이 듭니다. 만일 정토세상을 염원하게 되면 정토세상과 배치되는 사람들 또는 그들의 행동에 대해 분별심이 날 것 같습니다. 통일을 방해하는 사람들과 그들의 행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고요. 상을 짓지 않고도 뜻을 세워 추구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번뇌 없이 인생을 의미 있게 살 수 있어 제일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질문자가 약간 오해하고 있는 것 같아요. 상을 짓는 것과 뜻을 세우는 것은 상반되는 문제가 아닐 뿐만 아니라 양립할 수가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 지금 전쟁이 일어난다면 죽는 사람이 수십만 명 생기겠죠. 수십만 명이 죽으면 그 가족들은 아마 백만 명이 될 것이고, 이 사람들은 굉장히 심적으로 괴롭겠죠. 또 난민이 많이 생기게 되겠죠. 그럼 여러분들도 집과 재산을 다 두고 도망을 다녀야 하고, 다른 나라에 가서 천막을 치고 산다든지, 학교 같은 데에 임시로 수용돼서 살아야 하니까 생활도 굉장히 불편하고, 마음도 굉장히 괴롭겠죠. 이 때의 괴로움은 지금 여러분들이 아이가 말을 안 들어서 괴롭다고 하는 것과는 비교가 안 됩니다. 남편이 술 먹고 들어와서 못 살겠다 하는 것과도 비교가 안 됩니다. 회사에서 부하가 말을 안 듣는다, 상사가 잔소리를 해서 괴롭다 하는 것과도 비교가 안 됩니다.

물론 그런 상황 속에서도 수행자는 남을 도우면서 싱글벙글하고 살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러나 대다수의 국민들은 그 고통이 이루 말할 수가 없을 겁니다. 그럴 때 제가 지금처럼 한 사람 한 사람을 상담해 줘서 인생이 행복해지게 하는 것도 물론 필요한 일이긴 합니다만, 그것보다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환경을 조성해주는 일이야 말로 절대 다수 국민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일이 되겠죠. 그러니까 우리가 인간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목표라면, 같은 조건하에서는 개개인들이 노력해서 행복도를 더 높이도록 하는 것이 과제가 될 테지만, 개개인들을 둘러싼 이 환경이 조금 더 나빠지는 것을 방지하거나 조금 더 나은 쪽으로 만들 수 있다면 우리는 더 행복해질 수가 있겠죠. 즉, 같은 조건에서 개인이 마음을 어떻게 갖느냐에 따라서 괴로움이 줄어들고 행복이 늘어나도록 하는 것을 ‘수행’이라 말하고, 주어진 환경이 나빠지는 것을 방지하거나 조금 더 나은 쪽으로 개선함으로 해서 사람들의 행복들을 높이는 것을 ‘정토세상 만들기’라고 말합니다. 이해가 되세요?”

“네.”

 

“그러면 ‘수행’과 ‘정토세상 만들기’, 이 두 가지가 다 필요해요, 그냥 개인이 수행만 하면 될 것 같아요?”

“두 가지가 모두 필요합니다.”

 

“예. 그렇다면 ‘불교를 믿는 사람이 개인 수행만 하면 되지 왜 세상 문제에 관심을 갖느냐?’ 이렇게 말하는 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얘기가 됩니다. 그렇게 말하는 불교는 잘못된 불교입니다. 인간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불교잖아요.

그래서 부처님의 원래 가르침은 두 가지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첫째, 환경이 어떻든 자기 수행을 해서 그 주어진 환경 안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 이런 환경 자체가 악화되는 것을 막고 개선되는 쪽으로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부처님이 계급 제도를 부정하거나 남녀 차별을 부정하는 얘기를 하실 필요가 없었겠죠. 지금도 인도는 계급 차별이 얼마나 심합니까? 그런데 부처님은 그런 것들을 다 부정하셨습니다.

 

 

그것처럼 지금 남북이 분단되어 있으니까 서로 미워하고 군비 경쟁을 하는데, 평화적으로 통일하는 것이 이렇게 싸우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고 보고 그런 통일을 추구함으로 해서 그 안에서 살고 있는 중생들이 조금이라도 더 행복해지도록 도와주는 것이 바로 수행자가 해야 할 일인 것입니다. 전쟁을 해서라도 통일만 되면 된다는 그런 뜻이 아닙니다. 사람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서 통일을 하자는 것인데, 전쟁을 해서라도 통일하자는 것은 사람들이 괴롭든지 말든지 통일만 하면 된다는 통일 지상주의에 사로잡힌 생각입니다.

이렇게 ‘통일만 하면 된다’고 고집하는 것을 ‘상을 짓는다’라고 말하는 겁니다. 이와 달리 분단된 상태보다는 통일된 상태가 그래도 사람들에게 고통을 조금이라도 줄여주고 행복도를 높여준다고 보고 그것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바로 통일에 대한 원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상을 짓는 것과 원을 세우는 것은 차원이 다릅니다.

우리가 일본에 대해서 무조건 ‘우리 나라가 옳고, 일본은 틀렸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분별심에 해당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옳다고 하는 상을 가진 것입니다. 그런데 일본이 우리를 억압하고 한국 사람들을 차별하기 때문에 우리가 이 차별에서 벗어나는 것은 한국 사람들의 행복도를 높이는데 도움이 된다고 보고 독립운동을 펼치는 것은 상을 짓는 것과는 성격이 다릅니다. 여성이 만약 차별을 받는다면 이 차별을 없애는 것은 바로 정토세상을 만드는 일에 해당합니다. ‘남자들은 나쁜 놈들이다’ 이렇게 주장하는 것과는 성격이 다릅니다.

상이 무엇인지 쉽게 비유하면 이렇습니다. 만약 제 안경에 파란 색깔이 입혀져 있다고 칩시다. 그러면 이 흰색 벽이 제 눈에는 파랗게 보이겠죠. 이 때 진실은 저 벽은 흰색인데 내 눈에는 파랗게 보인다는 것이죠. 그런데 제가 안경을 끼고 있는 상태에서는 그렇게 인식이 안 되고 ‘저 벽이 파랗다’ 이렇게 인식이 됩니다. 여기서 안경에 입힌 색깔과 같은 것이 바로 ‘업식’입니다. 여러분들은 다 자기 나름대로의 업식을 갖고 있습니다. 이런 자기의 업식으로 사물을 보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사물을 본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나에게 그렇게 인식이 될 뿐인 겁니다. ‘저 인간은 나쁜 놈이다’라고 말할 때 그 사람이 본래 나쁜 사람이 아니라 내 업식에 비춰진 인상이 나쁜 놈으로 인식되는 겁니다. 똑같은 행위라 하더라도 누가 보느냐에 따라 달리 인식된다는 얘기입니다. 어떤 행동은 본래 좋은 행동도 아니고 나쁜 행동도 아닌데 그것을 인식하는 과정에서는 그 행동을 나쁜 행동으로 인식하는 사람도 있고, 좋은 행동으로 인식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죠.

 

 

그런데 우리는 나에게 나쁜 행동이라고 인식이 될 때 ‘그 사람이 진짜 객관적으로 나쁜 행동을 했다’라고 착각한다는 겁니다. ‘저 벽은 내 눈에는 파랗게 보이는구나’ 이렇게 알고 있지 않고 ‘저 벽은 본래 파란색이야’ 이렇게 알고 있다는 겁니다. 이렇게 주관을 객관화시키는 것을 ‘상을 짓는다’라고 말합니다. 상을 짓는다는 것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셨어요?”

“네.”

 

“상을 안 짓는다는 것은 저 벽을 곧바로 하얗게 보는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저 벽이 파랗게 보일 때 ‘내 눈에는 저 벽이 파랗게 보이는구나’ 이렇게 아는 것도 또한 상을 안 짓는 것이 된다는 겁니다. ‘내 눈에는 저 행동이 나쁘게 보이네’ 이렇게 자각하는 것은 상을 짓는 것이 아닙니다. 그 행동이 잘된 것인지 잘못된 것인지는 나도 몰라요. 그러나 ‘내 눈에는 나쁘게 보이네’라고 아는 겁니다. 그러니까 누군가가 저 벽을 보고 ‘빨갛다’라고 주장해도 ‘눈이 삐었나?’ 이렇게 화내지 않는다는 겁니다.(모두 웃음)

 

 

상을 짓기 때문에 시비가 일어나는 겁니다. 상을 짓지 않으면 시비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네 눈에는 저 벽이 빨갛게 보이는구나’ 이렇게 될 뿐입니다. 상을 짓지 않으면 이렇게 서로 다르게 봐도 시비가 일어나지 않게 됩니다. 저 벽이 빨갛게 보인다고 해서 무조건 상을 지은 것이 아닙니다. ‘내 눈에는 저렇게 보이는구나’ 하고 자각하는 것이 상을 짓지 않는 겁니다. 그러면 ‘다시 한번 살펴보자’ 이렇게 나오게 되고 서로 소통을 할 수 있게 되죠. 한 사람은 빨갛다고 하고 한 사람은 파랗다고 해도 서로 소통이 가능해지고 갈등이 생기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저 벽은 파랗다’ 이렇게 객관적으로 여기니까 상대가 빨갛다고 하면 ‘저 사람이 미쳤나?’ 이렇게 시비하게 되는 겁니다.

그러나 상을 짓지 않으면 서로 다른 견해를 갖고도 서로 소통을 할 수 있습니다. ‘상을 어떻게 안 지어요’라고 반문하겠죠. 예, 맞습니다. 우리는 상을 지을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주관적으로 인식된 것을 객관화시킬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수행자라면 ‘파랗다’라고 할 때 얼른 자각을 해서 ‘아, 내 눈에는 파랗게 보이는거지’ 이렇게 사실대로 돌아올 수 있어야 합니다. 저 벽은 하얗다고 인식하는 것만이 사실이 아니라 ‘내 눈에는 파랗게 보인다’라고 인식하는 것도 사실인 거에요. 이렇게 상을 짓지 않으면 우리의 삶이 더 행복해지고, 인간관계가 더 좋아지고, 세상이 더 평화로워질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 이렇게 상을 짓는 것과 ‘지구 환경을 보존해야겠다’, ‘저 가난한 사람들을 좀 도와야겠다’ 하고 원을 세우는 것과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그런데 남을 도와주어야겠다는 것도 상을 지으면 본질에서 어긋나게 됩니다. 남을 도와야 한다는 상을 지으면 상대가 도움이 필요없다고 하는데도 돕겠다고 고집하게 됩니다. 도움이라는 것은 상대가 필요로 하는 것을 도와주는 것이잖아요. 상대가 필요하지 않는 것을 돕겠다고 하는 것은 내 기분에 불과한 것이지 실제로는 아무런 도움이 안 됩니다. 상대에게는 고통이 되는데도 자기는 돕는다고 난리인 경우가 있잖아요. 그런 행동은 사실 다 자기가 좋아서 하는 행동에 불과한 겁니다. 그래서 상을 짓는 것은 그것이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다 일을 그릇되게 만듭니다.

 

 

예를 들어 ‘깨달아야 되겠다’ 하는 것도 상을 짓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깨달음이라는 것을 객관화시키는 순간 깨달음이라고 하는 허상에 매이게 됩니다. 그래서 깨달았느니 못 깨달았느니 하는 것으로 상대를 시비하게 됩니다. 이것은 깨달음이라는 것으로 또 하나의 상을 만든 것입니다. 질문자는 의문이 좀 해소가 되었어요?”

“아니요. 아직 해소가 안 되었습니다. 뜻을 세워서 그것이 이뤄지기를 간절히 염원하게 되면, 그것이 안 될 때 실망을 하게 되잖아요.”

 

“실망을 하게 되면 그것은 상을 지은 것이 됩니다. 안 되었다고 왜 실망을 해요? 안 되면 될 수 있게 다시 하면 되죠.”

“그럼 ‘안 되어도 좋다’ 이렇게 생각해야 하나요?”

 

“안 되어도 좋다고 생각하라는 것이 아니라 노력을 했지만 어쩔 수 없이 안 된 것이잖아요. 안 되는 것이 뭐가 좋긴 좋아요?”(모두 웃음)

“그렇게 안 이루어졌을 때 어떻게 하면 다시 에너지가 생길 수 있을까 궁금하거든요.”

 

“뜻을 세우는 것은 좋은데 상을 짓게 되면 그것이 안 되었을 때 괴로워집니다. 그러나 상을 짓지 않게 되면, 안 되었을 때 괴로워하지 않고 다시 노력하게 됩니다. 괴로워하고 있을 시간에 한번 더 노력하지 왜 괴로워하고 있어요? 기분이 나쁘면 ‘아, 내가 집착을 했구나’ 하고 알아차려서 탁 놓고 다시 시작해야죠.

 

 

어떤 결과를 보고 기분 나빠하면 내가 상을 지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집착을 했다는 것을 반증합니다. 결과가 좋도록 최선을 다하되 결과가 주어지면 받아들이고 다시 개선을 위해서 노력해야죠. 부족하다 싶으면 ‘다음에 또 잘해야지’ 이렇게 다짐하고요.

그래서 ‘보살은 다만 할 뿐이다’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지장보살도 상을 지으면 성질이 나서 지옥에 오래 못 있습니다. 중생을 구제하는 것이 힘든 것이 아니네요. 지옥에 떨어진 것은 자기가 잘못해서 떨어진 건데 너무 힘들어하니까 구제를 해줬단 말이에요. 그렇게 한 번 구해줬으면 정신차리고 다시는 지옥에 안 와야 하잖아요. 그런데 조금 있으면 또 지옥에 떨어진단 말입니다. 구제해주면 또 떨어지고, 구제해주면 또 떨어지고를 반복합니다. 저 같으면 세 번만 반복하면 그냥 포기해버릴 겁니다. 그 이유는 ‘내가 구제했다’ 하는 상을 짓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장보살은 ‘지옥에 떨어지는 것은 그 사람의 일이고, 그것을 구하는 것은 나의 일이기 때문에 나는 구하기만 할 뿐이다’라고 하면서 ‘저 사람은 두 번 떨어졌다, 세 번 떨어졌다’ 하고 따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대원본존 지장보살이라고 부르는 겁니다. 그 원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대원’이라고 표현하는 겁니다.

상대가 실수를 하더라도 보통 세 번까지는 봐주는데 그 이상이 되면 여러분들도 도저히 못 봐주잖아요. 지장보살을 염한다는 것은 우리도 그렇게 될 수 있도록 그 폭을 점점 넓혀간다는 것을 말합니다. 억울하게 고통받는 사람들을 구제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벌받을 짓을 한 사람들까지도 불쌍하게 여겨서 돕고자 하는 것이니까 그 원이 얼마나 큽니까. 그러니까 남편이 바람을 피워놓고 그 상대 여자와 관계가 안 풀려서 너무 너무 괴로워하고 있는데, 그것을 도와주는 것이 지장보살이다 이 말입니다.(모두 웃음)

 

왜 지장보살을 ‘대원’이라고 부르는지 이해가 좀 되세요? 그러니 상을 짓게 되면 원이 그렇게 커질 수가 없습니다. 처음에 마음을 내었다가 자기 뜻대로 안 되면 성질이 나서 금방 집어치워 버리게 됩니다. 여러분들도 그동안 통일운동을 열심히 했는데 지금 돌아가는 상황은 오히려 거꾸로 가는 것 같으니까 절망감이 들지요? 이 때 절망감이 드는 이유는 ‘내가 노력했다’ 하는 상을 짓기 때문이에요. 뒤로 밀리게 되면 물러나서 다시 밀면 되거든요. 우리가 차를 밀다보면 밀고 있는데도 뒤로 밀릴 때가 있잖아요. 그러면 우리가 바보 같은 짓을 한 것이냐. 아니에요. 내가 밀지 않았다면 뒤로 밀릴 때 더 멀리 밀려나가게 되었을 겁니다. 내가 밀어서 앞으로 간 것도 성과이지만, 가만히 내버려두면 뒤로 10m 밀려날 것을 그래도 내가 열심히 밀어서 5m만 밀리게 했다면 이것도 큰 성과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이것을 성과라고 생각하지 않잖아요. 죽어라고 노력했는데 오히려 안 좋아졌다고 여깁니다.

 

 

이런 어려운 시기에도 포기하지 않고 통일운동을 계속 해나가는 것은 앞으로 못 간다 하더라도 뒤로 덜 밀리도록 막는 효과는 있는 겁니다. 즉 5000원 손해 날 것을 3000원만 손해나게 하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이 상황에서는 이렇게라도 해야 역사를 발전시킬 수가 있는 겁니다.”

“이제 이해가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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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불교대학졸업 -

일년전 정토 불대에 인터넷 입학을하고 문을열고 들어가기가 나이많은 나로선 민망스러위서 우리집 보살을 꼬들겨 같이 오리엔트션에 갔다가 참석한 주위의 권유로 같이 입학하게 됐다. 근데 벌써 일년이 지나 오늘 충주 호암 체육관에서 졸업장및 수계를

받았다. 입학 초기엔 15명이였는데 졸업은6명이였으며 그중 개근은 3명이였는데우리 부부도 그 가운데 끼였다.

작년 전국 불대 입학생이 약5,000여명 이였는데 오늘 졸업자는2,379명 이였다

그 중개근상을 수여한 사람은 237명 이였다

개근 덕분에 스승님 법륜스님과 악수까지 할수 있는 영광을 받았다.

수계식에 이여 난 [大德] 보살님은[喜明心]이라는 법명을 받았다. 그리고 경전반 담당소임까지 맏게되였다.

어깨가 무겁지만나를 쓰여질수있는 기회라 생각하고 열심히해보려고 한다.

제 29기 졸업생 여러분들과 함께해서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우리 일년동안 담당소임 해준 종미보살님께도 합장 인사드립니다.

 

<체험수기>

분당 정토회 김경자님의 사례발표

엄한 아버지 밑에서 성장 학교를 못다녀 배우지 못하여 기를 펴지 못하고 지내다 지금 남편과 결혼하여 병고에 시달리며 어렵게 살았다 .

정토불대에 입학하여 봉사도하고 깨장도 다녀오고 jts 거리 모금도하며 나를 알게되고 나를 내려 놓을줄 알게 됐다며

소임도 맡고 나를 쓰여지기 시작하고 .경전반에 입학 통일의병도 가입하고 지금껏 열등감에서 벗어나서 떳떳하고 자유롭게 살아가고 있다는

 체험사례였다

 

 

<스님법문>

보통사람들은 투자한 많큼 효과를 바라고 살지만 불대는 경제적 도움이 되지않는데도 졸업을 하게됐다

왜? 그럴까

행복하고 자유롭게 살기위해서그렇다

보통사람들은 돈. 지위. 명예로 자유와 행복을 추구한다. 옛날 못 살때와 지금 풍족 할때를 뒤돌아보면서 비교해 볼때 과연

발전한 만큼 행복도가 높아졌는가 ?

그렇지 않다 짧게보면 부를 누리는자들이

행복한것 같은데 깊이 들여다보면그렇지않다

인도순례시 그곳 아이들이 "박시시 박시시" 자꾸 달라고해서 계속줘 밨더니 37번을 달라하더라 . 그래서 꺼꾸로 내가 그들을 향해 "박시시" 했더니 그들이 나에게 한 푼씩 주더라 그런데 모기업 회장은 유산상속 부모의 재산으로 형제간에 법정에 서게되자 한푼도 줄수 없다고 기자에게 말 하던데 왜 그럴까?

돈 명예 지위가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

부처님께서는 왕자의 직위도 버리고 행복을 찿아 수행의 길을 가셨습니다

아무것도 가지지 않았지만 최고의 대자유와 행복을 누리며 사셨다. 우린 대학생이다

행복과 자유를 배울수있는 대학이 세상에서 제일가는 진짜대학이다

불교대학은 이런 대학입니다. 1년동안에 내가 나의 주인이되여 행복과 자유를 배우는 곳입니다 . 

불교란 내가 부처가 되는것입니다

부처님은 고뇌를 소멸하고 타파하고 부처의길 해탈의 길로가는 길을 안내 해주는 대스승 이십니다 .

소승불교 대승불고 선불교 내려오면서

불법이 세속화 되여가서 정토는 본래의 가르침으로 돌아가자는 뜻으로 설립이 됐습니다

새로운 불교가 아니고 생활불교 바른불교가 되여 누구나 수행 보시 봉사로서 모두가 수행자로서 

자유롭게 살아가자는 곳입니다 

여기는 월급을 주는곳이 아니고 모두 버리라고 가르치는곳입니다. 

나를버리고 애착과 집착을 버리고 행복하게 살아가자는 곳입니다

입학금 보시금은 정토를 운영해 나가는데 꼭 필요한 만큼만 보시로 받고있습니다

정토는 여러분들의 수행처다 (수행

정토는 여러분이 운영을 해야 한다(보시

정토는 여러분들이 가꿔야 한다 (봉사

그래서 정토회원은 삼보수호비를 스스로 내는 것입니다.

불교대학은 2년제 입니다.

1년차는 기초.근본. 생활불교를 배우고 2년차는 경전공부 부처님의 말씀을 배읍니다

대충 이런 요약 이였다

다음은 수계식이 있었다

 

<수계식>

오늘 총1,812여명이 수계를 받았다

고타마 싯다르타는 카빌라바스투국의 왕자였다 

어느날 농경제 행사에 참가했다가 새가 벌래를 잡아먹는 것을보고 의문을 갖었다

왜 잡아먹고 먹혀야 하는가 ?

하나 는 죽고 하나는 살고 같이 살수 있는 길은 없을까 ?

고민을 하다 사문을 만나 해답의 길을얻고 출가를 결심했다

스승을 만나 답을 얻지 못하여 6년간 고행을 했다 결국 중도의 길을 발견하고 

수행을하여 모든 고뇌를 타파하고 해탈의길 을 증득했다

중생들이 고뇌속에서 혜어나지 못함을 안타깝게 여겨 가르침을 펴기 시작했다

그래서 붓다 담마 상가가 성립됐다.는요지

 

<오계>

1.생명을소중히 여겨라 (살생

2.남의물건을 훔치지마라 (투도

3.삿된짓을 하지마라 (음행

4.속된말을 하지마라 (망어

5.술을 취하도록 마시지마라 (불음

 

삼보에 귀의하고 오계를 받다

수행 전법을 하기로 다짐한다

 

<수계자의 맹세>

●산목슴을죽이지말라

●도둑질을하지말라

●삿된음행을하지말라

●거짓말을하지말라

●술을먹지말라

 

五械는스스로자신을 지키는 해동 강령 이다

이것이 자기를 발견하는 길이며 해탈의 문이다.

오늘 행사는 수계식을 마치고 법당별로기념사진을 촬영하고 16시쯤 끝났다 . 오는길 차창밖에는 흰눈이 축하라도

해주듯 내리고 있었다.오늘은 수행자로서 지키면서 살아가야 할 계를받고 이름을 받았으니 

늘 깨여있는 맘으로 남은여생을 살아가야 겠다고 스스로 다짐을 해보며

점심먹은것이 어째 속이 답답해서 소주 한병 따서 딱 반만 먹고 뚜껑을 닫았다.

 

                                                                                   2016년 2월 14일 대덕(大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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