持經功德分 第十五

 

 

須菩提(수보리)야 若有善男子善女人(약유선남자선여인)이 初日分(초일분)에 以恒河沙等身(이항하사등신)으로 布施(보시)하고 中日分(중일분)에 復以恒河沙等身(부이항하사등신)으로 布施(보시)하며 後日分(후일분)에 亦以恒河沙等身(역이항하사등신)으로 布施(보시)하여 如是無量百千萬億劫(여시무량백천만억겁)에 以身布施(이신보시)어든 若復有人(약부유인)이 聞此經典(문차경전)하고 信心不逆(신심불역)하면 其福(기복)이 勝彼(승피)하리니 何況書寫受持讀誦(하황서사수지독송)하야 爲人解說(위인해설)이리오 須菩提(수보리)야 以要言之(이요언지)컨댄 是經(시경)이 有不可思議不可稱量無量無邊功德(유불가사의불가칭량무량무변공덕)하니 如來爲發大乘者說(여래위발대승자설)이며 爲發最上乘者說(위발최상승자설)이니라 若有人(약유인)이 能受持讀誦(능수지독송)하야 廣爲人說(광위인설)하면 如來-悉知是人(여래-실지시인)하며 悉見是人(실견시인)하야 皆得成就不可量不可稱無有邊不可思議功德(개득성취불가량불가칭무유변불가사의공덕)하리니 如是人等(여시인등)은 卽爲荷擔如來阿?多羅三?三菩提(즉위하담여래아뇩다라삼먁삼보리)니 何以故(하이고)오 須菩提(수보리)야 若樂所法者(약요소법자)는 着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착아견인견중생견수자견)일새 卽於此經(즉어차경)에 不能聽受讀誦(불능청수독송)하야 爲人解說(위인해설)하리라 須菩提(수보리)야 在在處處(재재처처)에 若有此經(약유차경)하면 一切世間天人阿修羅(일체세간천인아수라)의 所應供養(소응공양)이니 當知此處(당지차처)는 卽爲是塔(즉위시탑)이라 皆應恭敬(개응공양)하야 作禮圍繞(작례위요)하야 以諸華香(이제화향)으로 而山其處(이산기처)하리라.

 

『수보리야! 만일 어떤 선남자 선여인이 아침에 항하 모래와 같이 많은 몸으로 보시하고 한낮에 또 항하 모래와 같은 몸으로 보시하고 저녁때에 또한 항하 모래와 같은 몸으로 보시하여, 이와 같이 한량없는 백천만억겁을 몸으로 보시하더라도, 만일 또 다른 사람이 이 경전을 듣고 신심으로 거슬리지 아니했다면 그 복이 저보다 뛰어나리라. 하물며 이 경을 쓰고 받아 지니고 읽고 외고 남을 위해 해설해 줌이겠느냐?

수보리야! 요긴하게 말하면 이 경이 가히 생각할 수 없고 가히 헤아릴 수 없는 한없는 공덕이 있나니, 여래께서 대승을 일으킨 이를 위하여 설명한 것이요, 최상승을 일으킨 이를 위하여 설명한 것이니라.

만일 어떤 사람이 능히 받아 지니고 읽고 외워서 남을 위해 일러 주면 여래께서 이 사람을 다 알고 이 사람을 다 보시는 바 헤아릴 수 없고 일컬을 수 없고 끝없으며 가히 생각해 볼 수도 없는 공덕을 다 얻어 성취하리니, 이러한 사람들은 여래의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짊어진 것이 되느니라. 왜 그러냐 하면, 수보리야! 소승의 법을 좋아하는 이는 <나라는 생각>·<남이라는 생각>·<중생이라는 생각>·<오래살겠다는 생각>에 집착하여 이 경을 능히 알아듣고 읽고 외운다든지 남을 위해 해설하여 주지 못하기 때문이니라. 수보리야! 어느 곳이나 이 경이 있는 곳이면 일체 세간의 하늘과 사람과 아수라가 응당 공양하리니, 마땅히 알라. 이곳은 곧 탑을 모신 곳이어서 응당 모두 공경하고 예배하고 돌면서 모든 꽃과 향을 그곳에 뿌리느니라.』

 

 

第十五 持經功德分

 

[科 解]

 

제15 <지경공덕분>은 이 금강경을 지니는 공덕을 찬양한 것입니다. 경에 말씀하시기를 「아침결에 항하강의 모래 수와 같은 자기 몸으로 보시하고 한 낮되어 다시 항하강의 모래 수와 같은 자기 몸으로 보시하고 저녁때에 다시 그렇게 보시하되 이렇게 무량겁을 두고 할지라도 다른 어떤 사람이 이 경을 듣고 신심으로 받아들이어 거슬리는 생각이 없다면 그 복이 저보다 더 수승하니라. 하물며 그 경을 쓰고 읽고 외며 사람들을 위해 해설하는 공덕은 더 말할 것도 없다.」고 하셨습니다.

왜 이 경을 지니는 공덕이 그처럼 굉장한가. 이 경은 불가사의하고 헤아릴 수 없는 공덕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모든 부처님의 「아뇩다라삼먁삼보리」가 다 이 경으로 좇아 나오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을 성취하는 최상승공덕은 그 무엇으로 비교할 수 없는 부사의한 공덕이 있으니 그것은 한량없는 몸과 목숨을 보시한 공덕으로도 비교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경은 대승심을 낸 이를 위하여 설하며 최상승심을 낸 이를 위하여 설하신 것이니 곧 금강과 같이 다시 파괴할 수 없는 반야지혜를 성취하여 영원한 이상세계인 열반의 저 쪽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불법에서 가장 소중하고 최상의 값이 있는 것은 <금강반야>입니다. 삼세제불이 이 <금강반야>를 얻음으로써 부처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 <금강반야>를 성취하는 길은 <나라는 생각> <남이라는 생각> <중생살이라는 생각> <오래 산다는 생각>이 없이 저 허공처럼 텅 빈 이치를 체득해야만 그 곳에 <금강반야>가 드러납니다. 금강경은 이러한 진리를 드러낸 경이므로 이 경전을 모셔 둔 곳에는 인간·천상·아수라가 다 공양드리게 되며 이 경이 있는 곳은 곧 부처님의 탑을 모신 것과 같다고 하셨던 것입니다.

 

原 文 : 須菩提 若有善男子善女人 初日分 以恒河沙等身 布施 中日分 復以恒河沙等身 布施 後日分 亦以恒河 沙等身 布施 如是無量百千萬億劫 以身布施

 

[解 義] 그때 수보리가 이 경 말씀하신는 것을 들어 그 뜻을 깊이 알고는 눈물을 흘리면서 부처님께 사뢰었습니다.

『수보리야! 만일 착한 남자 . 여인이 있어서 초일분(初日分)에 항하사의 몸으로 보시한다면』하셨는데, 초일분이라는 건 오전입니다. 아침결 한 열시 전입니다. 초일분에 항하사 모래수와 같은 몸뚱이로서 보시를 한다는 것은 우리경계로는 말이 안되는 소리입니다. 몸뚱이가 하나뿐이고 몸뚱이 하나도 어려운데 한나절 동안에 무슨 항하사 모래와 같은 몸뚱이를 가지고 남을 위해 보시 한다는 것은 말이 안됩니다. 중일분(中日分)이란 점심 한 때를 말하고 또 후일분후일분)은 오후 해질 때를 말합니다. 아침결에 보시했으면 점심때나 저녁때는 보시할 몸뚱이도 없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이것은 우리들 중생의 경계에서는 말이 안 됩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신통(神通)이 있고 공부가 장해서 눈 깜짝할 사이에 이 항하사 모래 수와 같은 그런 분신(分身)으로 나타낼 수 있는 분들을 두고 하는 소리입니다.

이런 신통이 있는 선남자 선여인이 한량 없는 몸을 나투어서 중생들을 위헤 보시를 해 주는데 아들도 돼주고 딸도 돼 주고 영감도 돼 주고 아내도 돼 주고 음식도 돼 주고 눈도 빼 주고 코도 떼 주고 손도 잘라 주는 이런 보시를 말합니다. 그래도 이것은 아무 생각없이 하는 거니까 그런 경지가 되면 활동사진에 사람이 노는 것 처럼 변화신(變化身)으로 하게 됩니다. 온갖 중생을 위해서 관세음보살 32응신(觀世音菩薩三十二應身)을 나투어 아들도 되고 딸도 되고 과부도 되고 국왕도 되고 하늘의 제석천(帝釋天)이 되고 무엇이든지 안 되는 게 없습니다. 어떤 때는 불신(佛身)도 나투고 어떤 때는 천대장군신(天大將軍身)도 나투고 온갖 것이 다 된다고 그랬습니다.

이와 같이 항하사 수의 많은 몸뚱이로 온갖 궁색한 중생을 다 맞추워 주는데 거지가 혼자 얻어 먹기 어려우면 한 수백명 거지떼가 되어서 같이 동무가 되어 주고 이런 식으로 하는 것을 아침에 열시 쯤에 그렇게 하고 한나절 한시 두시에 또 항하사 수 한량없는 몸으로 보시하고 저녁 때 오후 세시쯤해서부터 해가 지도록 항하사 수의 몸뚱이를 또 보시해서 이렇게 하기를 한겁 두겁도 아니고 무량백천만억겁을 두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복이 한량없이 많을 겁니다.

그런데 불교에서는 흔히 겁(劫)이라고 하는 말을 쓰는데 사회에서 많이 쓰는 영겁이란 말도 불교의 겁이란 말에서 온 것입니다. 겁니라는 소리는 그것도 하루다 한 달이다 한 해다 하는 시간 단위입니다.

그리고 겁에도 대겁(大劫)·중겁(中劫)·소겁(小劫)이 있는데 대겁은 지구가 한 번 이루워졌다가 무너져 없어지는 시간을 말하는 시간이므로 굉장히 긴 시간을 뜻합니다. 대겁은 4중겁이고 80소겁이 됩니다. 그러니 무량 백천만겁이라고 하는 것은 한량 없는 세월이 됩니다.

 

原 文 : 若復有人 聞此經典 信心不逆 其福勝彼 何況書寫受 持讀誦 爲人解說

 

[解 義] 그런데 다시 또 어떤사람이 이경전을 듣고서 「아, 그럴 수 있겠다.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의 진리가 확실히 있겠다. 그래서 우리는 필경 생사를 면하고 해탈하여 참 자유한 인간이 한 번 되겠구나.」하여 이 금강경을 듣고서 마음에 하나도 거슬리지 않았다면, 곧 완전히 이해가 되고 납득이 되어서 확실한 신심만 낸다고 하더라도 그 복이 아까 무량백천만겁으로 하루에 삼항하사의 모래 수와 같은 몸으로 중생을 위해서 보시한 복 보다 더 크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물며 이 경전을 쓰기도 하고 또 요새 말로 하면 인쇄도 해서 여러 사람에게 보시하고 번역하고 강의도 하는 경불사(經佛事)도 하고 한다면, 요전에도 어떤 여신도(女信徒) 한 분이 자기 환갑(還甲)에 유마경(維摩經)을 번역만 해 놓고 출판하지 못했던 것을 큰돈을 들여서 천 부를 출판해 가지고 각계 각 학교 도서관에 전부 돌리고 선남·선녀와 불교 안 믿는 사람에게 까지 보시를 했는데 이것도 정말 큰 복입니다. 경을 전부 다 쓰면 말할 것도 없지만 손으로 써 보기도 하고 그렇지 않으면 4구게 한 줄이라도 다 쓰면 좋고 더욱 더 해서 손가락에 피극를 뽑아서 종지에 담아 놓고 흘린 피를 가지고 다 쓰고 짜고 짜다 피가 안 나오면 다른 손가락을 베어서 피를 또 짜 가지고 법화경 7권을 쓰고 화엄경 80권도 씁니다.

이렇게 금강경이나 대승 법문을 듣고 마음에 거슬리지 않으면 총명해서 그랬던지 신심이 지극해서 그랬던지 그 복이 아까 그렇게 한량없이 많은 몸뚱이로 보시해서 지은 복보다도 더 많다고 했는데 하물며 수지독송해서 또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이런 법회산림(法會山林)을 하고 강의(講義)도 하고 경전 간행도 해서 얻어지는 복이야 더군다나 말할 게 있겠느냐고 하신 것입니다.

 

原 文 : 須菩提 以要言之 是經 有不可思議 不可稱量 無邊功 德 如來爲發大乘者說 爲發最上乘者說

 

[解 義] 부처님께서 결론으로 『수보리야! 대강 요긴한 것만 간략히 말한다면 이 경의 공덕이 가히 생각도 못하고 얘기할 수도 없고 이름할 수도 없는 불가사의 불가칭량한 공덕이 있느니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 금강경을 뜻도 모르고 자꾸 읽어도 그런 공덕이 생긴다고 그럽니다. 이 경 자체가 우주 인생의 근원이 여실히 표시된 문서이기 때문이니 구공·아공·법공(俱空 我空 法空)의 진리를 가지고 있어서 과학이니 철학이니 종교니 하지만 이러한 인생의 근본면목, 우주의 본체, 참된 실상(實相)을 다른 곳의 어느 경에서도 들어 볼 수 없는 문서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이 경책이 검은 것은 먹이고 흰 것은 종이지만은 이것이 또 그런 큰 공덕이 들어 있는 글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경전이 그런 불가사의 불가칭량 무변공덕이 있는 것이니, 부처님께서 「대승심(大乘心)을 일으키는 이」·「큰 마음을 깨치고 온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키는 이」를 위해서 또는 「대승심을 일으킬 수 있는 이」를 위해서 설명하신 것이고 성불하신 뒤 40년 만인 이제야 처음으로 설명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대승심(大乘心)이란 제3 대승정종분(大乘正宗分)에서 설명한 것처럼 일체 중생을 모두 다 내가 제도하지만 제도했다는 마음 없이 하는 보살행을 말합니다.

 

原 文 : 若有人 能受持讀誦 廣爲人說 如來悉知是人 悉見是人 皆得成就不可量不可稱 無有邊 不可思議功德 如是人等 卽爲荷擔如來 阿?多羅三?三菩提

 

[解 義] 만일 어떤 사람이 이미 이 경전을 수지독송도 하고 자기가 받아가지고 외우기까지 할 뿐 아니라 또 남을 위해서 좋은 법사가 될 수 있도록 금강경을 잘 알고 공부를 잘 해서 남에게 널리 설명해 주면 그리고 견성까지 하면 더욱 좋고 그러면 여래께서는 이 사람이 다 불가량 불가칭 무유변하여 가장자리가 없이 무한대하고 불가사의한 공덕을 성취하는 것을 다 아시고 다 그렇게 되는 것까지도 가만히 보시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이와 같은 사람들은 곧 부처님의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책임질 수 있어서 중생계의 지도자가 될 수 있고 일체의 도사가 될 수 있으니, 「이 경을 듣고 배워서 받아 가지고 이 금강경의 진리에 의지하여 꼭 그와 같이 하겠다고 마음 속에서 진심으로 감동하여야 하겠습니다.」하고 마음으로 받아가지는 것을 수지(受持)라고 합니다. 또 수지 하면서 읽고 외는 데 하루에도 백독 천독을 하고 그저 잠 안 자고 자꾸 외고 합니다. 그렇게 한 번 읽어 다르고 두 번 읽어 다르고 자꾸 염념(念念)히 달라져서 깊이 들어 갑니다. 또 한 번 두 번 설명을 듣고 나면 자꾸 그 때마다 희유함을 느끼게 되고 몰랐던 것이 알아지고 마음의 골수에 박히고 몸뚱이 이대로가 금강경이 되어 피와 살이 되고 뼈가 되는 것입니다.

전에 법화경 읽는 어떤 스님이 밤에 경을 외우면 불이 꺼져도 방이 환히 밝아서 대중이 다 불을 안 키고 경을 보게 되고 한 이런 법사들이 있습니다. 견성까지는 못한 법사지만 그런 이가 있어서 평생 삼매에 들어서 금강경 또는 법화경이나 화엄경 읽는다고 하면 딴 잡념이라는 건 없어집니다. 그저 불보살님들이 모두 수행하시고 중생제도하시는 걸 보니 모든 잡념이 없어지고 법열(法悅)이 생겨서 중생들이 영화 보는 것보다 더 재미가 난다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들어서면 그렇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그 뜻을 잘 알아 가지고 많은 사람을 위해서 잘 알아들을 수 있게 설명해 준다면 이 사람은 마침내 구경(究竟)의 한량없는 공덕을 성취하는 것을 부처님께서 다 아시고 다 보시게 됩니다. 그것은 이런 사람은 곧 부처님의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짊어지고 다니는 사람이기 때문에 부처님께서 기특하게 여기시고 갸륵하게 보십니다. 부처님의 법을 실천하는 사람이고 보살의 행을 하는 이이기 때문입니다.

 

原 文 : 何以故 須菩提 若樂所法者 着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 卽於此經 不能聽受讀誦 爲人解說

 

[解 義] 부처님께서 다음에 그 이유를 말씀하십니다. 왜 그러냐 하면 수보리야! 만일 저 소승아함경(小乘阿含經)을 배워서 소승불교(小乘佛敎)만 배우고 거기에 마음이 만족해 있는 나한이 되었다고 하면 비유컨대 어디 요양 와서 좀 편히 쉰다고 해서 잠만 자는 것과 같은데 오히려 정신을 차리고 앉아 있으면 그것이 훨씬 건강에 좋은 효과도 가져 오게 되는 것이고 또 아무리 일을 하고 종일 지껄이고 종일 노동하고 돌아다니고 종일 무슨 회담(會談)을 하고 아주 어렵고 까다로운 회의에서 까딱 한마디만 잘 못하면 나라가 망하고 전쟁이 일어날 회담을 하는 가운데도 보통 사람 같으면 여러 달을 연구해서야 대답할 수 있는 어려운 것도 번쩍번쩍 한두 마디 건너면서 다 따져 알고 말 한마디 실수 안 하도록 하여 정신노동이 굉장한 일을 하더라도 무심한 가운데서 하면 피로한 줄을 모릅니다.

그런데 소승불교만 배워 놓은 사람은 홀가분하니 굉장히 좋은 것 같지만 길게 이렇게 하다보면 결국 아견(我見)도 남아 있는 사람입니다. 왜 그런가 하면 현상계는 무상한 거고 생사세계에서 성주괴공(成住壞空) . 생노병사(生老病死)의 나한열반(羅漢涅槃)에 앉아 있는 것이라 하여 그걸 한 없이 좋아하는 것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상대적인 열반이고 미세한 주관·객관 그런 것이 저도 모르게 남아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주관은 아상(我相)이고 아견(我見)이며 그러니까 자기가 증득한 내용을 객관처럼 여기게 됩니다. 그러니 중생견·수자견이 일어나게 되고 그렇기 때문에 이런 사람에게 금강경 경전을 설명해 주면 일체 중생이 중생이 아니기 때문에 이게 중생이고, 또 일체 불법이 불법이 아니니 그래서 그게 불법이라는 소리가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소승불교의 논리로 모든 것을 보고 이런 말을 들으면 논리에 안 맞는 말이라 하여 이해가 안 됩니다. 있는 게 없는 거고 없는 게 있는 거고 이러니까 이걸 싫어합니다.

그래서 이런 법문을 청수(聽受)하지 못하고 듣지도 못하고 더군다나 감당도 못하고 독송도 안 합니다. 그러므로 남한테 해설할 수도 없고, 하기도 싫어하고 보기부터 싫어하고 그런 건 불법이 아니라고 비방만 합니다. 요새 유물본위의 사상을 배운 남녀 청년들이나 노인들이 예비강의(豫備講義) 일주일을 거쳐서 들으시니까 어느 정도 이해하는데 힘이 덜 듭니다. 그래도 지금 상권만 설명하는데 20일(첫번법회) 걸렸는데 만일 이런 강의를 듣지 못하고 처음으로 금강경을 구해 본다면 그 말이 희안하고 군데군데 보면 무주상으로 보시하라는 내용이 있으니, 그러면 이것은 「상에 머무름 없이 주라는 말인가.」 이렇게 저렇게 생각대로 새기면서 좋다고 보기는 볼 겁니다. 그렇지만 바른 뜻은 모릅니다. 구공(俱空)이란 말이 무슨 말인지 그런 문장은 나오지도 않았으니 더구나 모를 것이고 「아라한이 아라한이라는 생각이 없다.」 이런 정도의 말도 알 수가 없는 소리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수보리야! 만일 적은 법을 좋아하는 자는 아견·인견·중생견·수자견에 집착해서 이 경을 들어서 받아 지니지 못하고 독송하지 못하며 남을 위해 해설할 수 없느니라.』고 하신 것입니다.

 

原 文 : 須菩提 在在處處 若有此經 一切世間 天人阿修羅 所應供養 當知此處 卽爲是塔 皆應供養 作禮圍繞 以諸華香 而山其處

 

[解 義] 부처님께서 또 말씀하십니다. 『수보리야! 이 경전을 모셔 놓은 데가 있으면 재재처처(在在處處)에 금강경의 문자가 있는 곳마다 일체 세간의 천당 사람이나 인간 사람이나 아수라인등 세계에 사는 중생들이 마땅히 공양을 올려서 지극히 존경하고 꽃이나 향을 갖다가 사루고 뿌리어 공양하느니라.』 또 의복 음식까지 갖다 놓으라 한다고 법화경 같은 데선 그렇게 말합니다. 그건 아주 마지막 존경입니다. 이 금강경에서는 소위 형식적 . 의식적인 불교는 잘 안나옵니다. 근본 발심만 얘기하는데 이걸 지나서서 법화경에 가면 쌀도 갖다 놔라. 돈도 갖다 놔라. 절도 지어라. 이런 소리가 나옵니다. 그게 모두 금강경 사상 지나간 사람들이 법화경 사상을 알아 놓으니까 어쨌든지 모두 신심으로하는 행동이므로 복이 되고 공덕이 됩니다. 일체 행동이 요새 불공한다고 떡과 밥을 갖다 놓는데 그게 모두 복이 됩니다. 다만 이런 도리를 모르고 하는 것은 미신에 가깝지만 그래도 인연이 되는 정도의 복이 되지 죄는 안 될 것입니다. 아무리 등상불(等像佛)에게 했다 하더라도 또 등상불이 부처님 모셔 놓은 것이지 등상불이 따로 있습니까? 전혀 헛일은 아닙니다.

그러니까 같은 값이면 금강경을 알고 법화경을 들어서 그 뜻을 어느 정도 십분의 일이라도 좀 짐작을 하고 불공을 하면 여러 천만 억배의 공덕이 생깁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마땅히 알아라, 이 금강경을 모신 곳은 이것이 곧 부처님 사리를 모신 곳이고 부처님 정신을 모신 탑이라는 것이니, 그래서 꽃을 공양하고 향을 사루고 예경하고 주위를 돌면서 공경하리라.』하셨습니다.

사리를 정골(精骨)이라 그러는데 10계·250계를 잘 지키고 참선 정진 잘해서 정신이 모인 결정(結晶)이라 그 말입니다. 몸뚱이 속에서 정신이 모여 생긴 것이 사리이므로 부처님의 사리는 부처님의 몸에서 부처님의 정신으로 이루어진 것인데 이것을 모신 부처님의 사리는 부처님의 몸에서 부처님의 정신으로 이루어진 것인데 이것을 모신 부처님 탑은 부처님 모신 것이고 부처님 법신을 모신 것과 같습니다. 이런 것이 바로 사리탑인데 이 경전을 모신 곳도 법당에다 모셨든지 그 누가 자기집 어디 깨끗한 곳에 모셨든지 일본 사람들 처럼 부처님 모셔 놓듯이 경전 모시는 곳을 따로 만들어 가지고 경전을 모셔 놓든지 하면 곧 부처님 탑을 모신 거와 한가지 입니다. 그 곳에 향도 올리고 꽃도 올리고 흐트기도 하고 절도 하고 정례(頂禮)도 하고 금강경을 모시고 탑을 쌓고 그걸 돌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절에 가면 신도들이 탑 주위를 돌아가면서 예경하며 좋은 꽃이라는 꽃은 다 갖다 올리고 좋은 향사다 올리고 이래서 그 근방에 흐트기도 하는데 그게 불공이라는 겁니다.

태국에 가 보니까 음식은 물론 과일도 안 놓고 꽃과 향과 촛불의 세가지 밖에 안 놓습니다. 물도 여기처럼 다기(茶器)에 안 떠 놓습니다. 산에 있는 산 꽃을 많이 올리고는, 우리 한국에서도 할 수 있는 것이었는데, 전부 탑이나 법당에 들어가니까 향내가 진동을 했고 향 사르고 그저 생화 갖다 전부 장엄했는데 우리가 떡과 곶감 대추 갖다 놓는 것 보다 신성하고 좋았습니다.

 

 

[說 義]

 

▶하늘도 땅도 몸도 허망한 것

무량백천만억겁(無量百千萬億劫)이니 무량아승지겁(無量阿僧祗劫)이니 하는데 겁에도 소겁(小劫) . 중겁(中劫) . 대겁(大劫)이 있습니다. 소겁을 먼저 말하면, 이 세상이 처음 생겼을 때 천당 사람이 내려와서 사는데 그 때 수명(壽命)이 팔만사천세였고 몸도 날아다니고 그랬지만 차차 의식주를 생각하게 되는 데 따라 아무데나 자도 좋던 태평세월이 몸도 날지 못하게 되고 의식주 세가지가 점차 발달하므로 모든 것이 다 역시 점차 우리의 지식이 열림에 따라서 그렇게 됩니다. 마치 어린애들이 젖만 먹으면 자고 먹고 자고 늘 이러다가 차차 엄마하고 눈을 맞춰 보기 시작하고 그러면서 의식(意識)이 차차 생깁니다. 이것은 무엇인가 이름을 배우고 그 문서(文書)를 배워서 기억해 가지고 말이 한 마디 두 마디 늘어 갑니다. 이렇게 늘어 가는 것이 모두 소위 번뇌가 늘어가는 것이고 망상이 하나씩 늘어 가는 겁니다.

그래서 팔만사천세(八萬四千歲)를 살던 사람들의 수명(壽命)이 백년 동안에 한 살씩 까먹는 정도로 차차 복잡해 집니다. 이렇게 줄어서 수명이 10세가 될 때까지 내려갑니다. 지금 우리가 한 70세 . 80세까지 살 수 있는 것도 나이가 이렇게 줄어서 내려가는 도중에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평균 연령이 통계적으로 위로 올라갑니다만 그것도 팔만사천세까지 올라가는 것이 아니고 얼마동안 어느 정도의 한계를 지나면 결국은 복과 목숨이 감해서 자꾸 내려가게 됩니다. 이것을 복도 감한다고 하여 감겁(減劫)이라 그럽니다. 이렇게 해서 차차 10세까지 내려가면 세 살 먹은 때가 한창 청년입니다. 아주 조숙(早熟)해져서 대여섯 살 먹어 놓으면 벌써 장년이 되고 일곱 여덟살 되면 요새 한 40, 50된 늙은이 턱이 됩니다. 아홉 살 열 살되면 아주 60, 70 노인처럼 됩니다. 이런 식으로 수명이 자꾸 감해 내려갈 때는 복을 감하고 생존경쟁(生存競爭)만 치열(熾烈)해져 가지고 그야말로 사람이 일체 동물 가운데 제일 나쁜 동물이라는걸 우리가 요전에 얘기했습니다만 그 대표적인 현상의 인간사회가 됩니다.

사람을 많이 죽일 수 있는 것을 연구하는 게 사람이지만 그래도 짐승들은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저 일대 일로 싸우다가 하나가 지거나 하나가 이기거나 둘이 다 죽으면 끝날 뿐인데, 어떻게 하면 좋은 무기로 사람을 하나 이상 더 많이 죽일 수 없나 해서 이렇게 경쟁이 심해지고 죄업이 점점 많아집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극악무도(極惡無道)해지는 말겁(末劫)에는 삼재(三災)가 일어납니다. 사람의 나이가 20세 정명(二十歲定命)이 되면 첫째 기근겁(飢饉劫)이 와서 흉년이 자꾸 들어 먹을 것이 없게 되고 둘째는 질병겁(疾病劫)오는데 생전 이름도 내용도 알 수 없는 나쁜 전염병(傳染病)이 돌아다니면서 집집마다 모두 앓는 사람 천지 입니다. 그 다음 세 번째는 도병겁(刀兵劫)인데 산천초목(山川草木)이 모두 칼날같이 보이고 창같이 보이고 모두 죄업(罪業)으로 현상계가 그렇게 되어서 닥치는 곳 마다 몸을 상하게 되고 찔려서 죽기도 하고 모두 이런 것뿐이라는 겁니다.

죄업으로 지옥 같은 그런 무서운 업을 지으니까 인간 세상이 그렇게 점차로 나쁜 상태로 됩니다. 이것을 적은 삼재, 곧 소삼재(小三災)라 그럽니다. 이 소삼재 때에 거기에서 복이 제일 많고 마음씨가 아주 나쁘지 않은 얼마의 사람만이 뒷 세상까지 살아남았다가 그게 차차 번져서 인구가 증가하기 시작하는데 거기서 부터 다시 수명도 길어지고 복도 많아져 올라갑니다. 이것을 증겁(增劫)이라 하는데 100년에 1살씩 더 늘어서 11살씩 살던 세상이 100년이 지나면 12살 먹고 12살씩 살던 세상이 100년이 되면 13살이 되고 자꾸 이렇게 올라가서 팔만 사천세까지 올라갑니다. 이렇게 수복(壽福)이 불어 올라가서 팔만 사천세가 됐다가 다시 또 내려오다가 하는데 한 번 증감하는 걸 소겁(小劫)이라고 하고 일증감겁(一增減劫)이라고 합니다.

이 지구가 하나 생성하는 기간이 얼마동안 되느냐 하면 팔십번 증감을 해서 팔십 증감만 하면 지구덩이가 전자나 원자시대로 돌아가 버리고 현상은 다 흩어져 없어져서 허공으로 됩니다. 그래서 지구가 한 번 생겼다 꺼지는 기간을 팔십 소겁(八十小劫)이라 그럽니다. 이 지구가 없어지는 때가 있을 것이라는 것은 지금 물리학자들이 추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 텅 비어 있는 공간으로 안개처럼 있든지 안개 같은 그런 모양도 없이 아주 맑은 공기로 있게 되는데 그 비어 있는 기간이 20소겁(二十小劫)이라고 그럽니다. 곧 20증감을 할 만한 시간 동안 공간으로 텅 비어 있는데 이것을 비어 있는 시기라고 하여 공겁(空劫)이라 합니다. 20증감 후에 차차 수증기가 모여서 안개가 되고 안개가 차차 모여서 구름처럼 되고 구름이 차차 모여 물이 되고 이렇게 완전히 이루어지듯이 안개처럼 모이기 시작할 때 부터 완전히 이 지구의 형상이 산과 들 육지 바다 등의 형태가 이대로 되기까지 이십소겁이 걸린다고 하는데 이걸 성겁이라고 그럽니다. 지구가 이루어지는 시기라는 말입니다.

이렇게 이십소겁이 걸려서 이 세계가 동물이나 식물이 생길 수 있도록 완전히 형성되는데 그때 천당에서 천복(天福)을 받을 만큼 다 받고 인간으로 내려가게 된 복 있는 인연을 가진 사람이 이 세상으로 내려 옵니다. 그래서 맨 처음에는 팔만 사천세를 살고 사람들도 다 허공으로 날아다닐 줄 알고 옷도 입을 줄 모르고 그냥 완전히 나체시대가 됩니다. 그래 가지고 차차 20증감 동안을 이런 세계가 지나갔는데 이렇게 한 번 사람이 생기면 팔만 사천살에서 10세까지 내려 갔다가 팔만 사천세까지 올라갔다가 또 10세 까지 내려왔다가 올라갔다 하기를 그런 것이 20증감입니다. 이것을 주겁(住劫)이라고 그럽니다.

그러니 지구가 이루어지는 동안의 성겁(成劫)과 허공으로 있는 공겁(空劫)과 완성된 뒤에 이십 증감 동안 현상대로 있는 주겁(住劫)과 그 다음에는 차차 지구가 부서지는 시기가 있는데 이것도 역시 20소겁 동안 걸려서 다 무너지게 되는 이것을 괴겁(壞劫)이라 그럽니다. 이 지구가 형성된 채로 20소겁동안 머물러 있다고 해도 엄격히 따지면 변화가 없을 수도 없지만 전체로 봐서 지구의 형상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시기이므로 이렇게 이름합니다. 무너지는 시기인 20소겁 동안의 괴겁 때에도 역시 태양이 폭파되어 큰 변동이 생기듯이 그런 변화도 있겠지만 차차 무너지게 되는 것입니다.

아까 소겁을 설명할 때 소삼재(小三災)를 말했는데 지구가 무너지기 시작했을 때인 괴겁이 다하면 수화풍삼재(水火風三災)가 일어나서 지구가 다 없어집니다. 큰 폭풍 바람이 일어나서 땅을 부수고 돌을 날려버립니다. 지금 태풍 같은 것 몇 억배로 불면 돌 흙 낱낱이 날려서 없어질 겁니다. 이 대삼재(大三災)가 일어날때는 화재(火災)가 먼저 7번 일어나고 그 뒤에 수재(水災)가 1번 있고 다시 화재가 7번 일어난 뒤에 수재가 1번 있고 하여 이렇게 7번 수재와 49번의 화재가 있고나서는 다시 7번의 화재가 있고 풍재가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대 삼재(大三災)가 1번 있기에는 화재가 56번, 수재가 7번, 풍재가 1번 있게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64번의 대재(大災)를 거쳐서 이 지구는 완전히 허공으로 돌아갑니다. 화재(火災)가 일어날 때에는 태양이 10개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인도 적도 같은 데는 뜨거울 때 사람이 나서면 머리가 막 벗겨질 지경인데 해가 10개가 나와 쪼이면 지구가 몽땅 불덩어리가 되어 다 타고 맙니다. 이렇게 하기를 화재가 7번이나 하고 나면 그 뒤에 상대적으로 수재가 1번 오는데 온 지구가 물로 뒤덮이어서 모든 물체는 다 썩어 무너집니다. 그리고 나면 다시 화재가 나서 태양이 10개나 나타나 가지고 태워서 온 천지가 뜨겁게 탑니다. 이렇게 하기를 7번 하면 수재가 1번 있고 이렇게 하기를 7번 하면 화재가 49번이 되고 수재가 7번이 되는데 그리고 다시 7번 화재가 있은 뒤에 풍재가 옵니다. 이렇게 하고 나면 모든 동물, 식물 다 없어지고 지구도 다 부서집니다. 이것을 대겁의 삼재(三災)라고 하여 대삼재(大三災)라고 합니다. 그러다가 마지막에는 지구가 다 없어지고 허공으로 되는데 이렇게 부서지는 동안이 20소겁이 걸립니다. 그러므로 일대겁(一大劫)은 80소겁이 되는데 20소겁을 1중겁(一中劫)이라고도 합니다. 그래서 지구가 이루어지는 성겁(成劫)의 20소겁이 1중겁이고 지구가 머물러 있는 주겁(住劫)의 20소겁이 1중겁, 부서지는 동안의 괴겁(壞劫)이 20소겁이 1중겁, 다 부서져서 허공으로 있는 공겁(空劫)의 20소겁이 1중겁 이렇게 해서 1대겁은 4중겁이 됩니다.

그러므로 이 지구는 성주괴공(成住壞空)이 네 개의 과정을 통과하게 마련입니다. 어떤 별이든지 해든지 달이든지 다 한가지 이치로 성겁이 있고 주겁이 있고 괴겁·공겁이 있습니다.

이 세계에는 성·주·괴·공의 무상이 있고 이 사람의 몸뚱이에는 생노병사가 있고 마음에는 생·주·이·멸(生住異滅)이 있습니다. 그 사람 잘 생겼다고 좋다고 엎어질 듯 야단이더니 나중에는 슬그머니 권태증이 나 가지고 보기 싫어집니다. 날마다 한 시간도 안 빠지고 가더니 이제 이틀에 한 번씩 가기 시작하고 차차차차 나중에는 찾아 와도 보기 싫을 지경으로 됩니다. 그렇게 그 사람 좋아하던 마음이 딱 없어지고 그래 가지고 나중에는 미운 생각이 앞서 있게 됩니다. 그러다가 미운 생각이 차차차차 없어져 가지고 또 좋아하는 생각이 납니다. 「아이고 불쌍해라 너무했다.」 이렇게 변합니다. 그러니 마음에 한 생각이 생겨 가지고 무엇이든지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벼락같이 꼭 그대로 내가 죽어도 해야지 하고 글씨를 배운다, 문장을 배운다, 소설가가 된다 하고 죽어도 한다고 이렇게 서둘다가도 슬그머니 하기 싫어지는 때가 옵니다. 남녀간에 연애하는 경우에도 이렇게 처음에는 서로 좋아하는 생각이 일어나는 것을 생(生)이라 하고 그 좋아하는 마음이 계속해서 남아 있는 동안을 주(住)라 하고 좋아하는 도수가 자꾸 식어지고 마음이 달라지는 때를 이(異)라 하고 차차 서로 지조가 없어져 쳐다봐도 인사도 제대로 안 하고 좋다는 마음이 하나도 없어진 때를 멸(滅)이라고 합니다.

중생의 마음에 생·주·이·멸 이것이 있기 때문에 몸에 생노병사의 그림자가 나타나고 이지구와 세계의 성주괴공(成住壞空)의 모양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니, 이것이 다 순전히 마음에 원인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경에서 겁이라 할 때는 흔히 대겁(大劫)으로 칩니다. 그리고 지구가 성겁(成劫)·괴겁(壞劫) 때에만 변하는 것이 아니라, 지구가 가만히 있는 20증감 동안의 주겁(住劫) 때에도 현상이 변화하고 수륙(水陸)이 갈리고 그럽니다. 지축(地軸)의 방향이 바뀌어 바다가 육지가 되고 육지가 바다가 되는 것이 다 그것입니다. 산꼭대기 높은 데 가서 조개껍질 같은 게 붙어 있는데가 더러 있습니다. 육지와 바다가 갈린다는 걸 부처님께서 늘 말씀을 해 놓으셨는데 그런 예로 봐서 이 지구가 항상 안전하게 있는 그대로만 있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자주 있는 것도 아닙니다. 사람도 얘기하다가 갑자기 사망하듯이 지구도 역시 그런 변동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현상계인 이 땅덩어리도 그렇게 믿을 수 없는 무상한 존재이고 몸뚱이도 믿을 수 없는 허망한 것입니다.

 

▶호법징계에서 포기된 중생

예전에 묘향산(妙香山)에 법사가 한 분 있었는데, 그 분이 다른 건 다 중노릇 잘하는데 한 가지 곡차(穀茶), 곧 술을 자십니다. 가끔 술집에 나가서 곡차를 한 잔씩 먹고 들어오고 그랬는데 한 번은 그 스님이 화엄경 강의를 하게 됐습니다. 그 곡차 팔던 노인도 법회에 참석했는데 평소에 자주 만나니까 서로 허물없이 농도 하는 그런 처지인 모양입니다. 그 노인이 한 번은 농으로 ‘곡차를 먹으러 왔을 때는 술주정꾼이더니 그 법상에 딱 올라가니 제법 부처 같네.’ 이러면서 놀려 줍니다. 그래 그 노장님이 그러지 말라고 그랬지만 노파는 계속해서 자꾸 농을 하므로 그러면 신상에 좋지 않다고 그랬는데 그만 사흘 만에 술장사하는 보살이 피를 토하고 죽었습니다. 이것은 신장(神將)들이 호법(護法)한다고 그러지, 그 스님 마음이 나쁘거나 불보살님이 그러지는 않습니다.

해방 전 한일 합방한 그 당시까지만 해도 도량에서 가사를 만드는 불사를 한다든지 탑을 조성(造成)한다든지 이런 경전을 인쇄해서 만든다든지 이런 도중에 승려나 신도 간에 개고기 먹고 모르고 들어갔다면 그 자리에서 즉시 피를 토하고 엎어져서 죽습니다. 또 승려도 일주일 이상 밖에서 목욕재계(沐浴齋戒)하고 양치질하고 기도하고 들어와야지 그렇지 않으면 그냥 중이고 무엇이고 벌을 받습니다. 그렇던 건데 요사이 같아서는 다 때려 없애야 할 판이니 절에 남아 있을 사람도 없을 정도이므로 이제는 안 그럽니다. 그러나 언제 또 완전한 도량으로 되면 다시 그렇게 됩니다.

경상도 금천군 김장이라고 하는 데가 옛날 성주군(星州郡)인데 산꼭대기 올라가면 해인사 가야산(海印寺 伽倻山)이 앞으로 다 보이는 높은 곳입니다. 이곳에 있는 한 절에서 아무렇게나 막행막식(莫行莫食)하는 사탄 중들이 술 고기 먹고 이런 사람들이 들어가면 또 산신(山神)이 옹호(擁護)를 안 해서 감자든지 무 배추 갈아 놓으면 돼지가 와서 다 뜯어 먹고 밭곡식 해 놓으면 다 헤쳐 버리고 안 됩니다. 수행을 어렵게 하고 공부를 잘하고 중노릇 제대로 하는 이가 거기 있으면 산돼지가 옆에 새끼를 수십 마리씩 낳아 가지고 절 밭 옆으로 지나가면서도 밭에 들어올 생각도 안 합니다. 그 밑에 마을로 내려가서 무 감자 밭을 자꾸 뒤지고 일 년을 한결같이 그러다가 그 스님 떠나고 다른 사람이 들어오면 그때에는 또 뒤져서 먹어 버립니다. 이것은 순전히 산신이 옹호하기 때문입니다.

설악산 봉정(雪嶽山 峰頂) 같은데도 6·25 사변에 부서져서 새로 지었는데 거기에 한 동냥중 땡추가 와서 주인이 되어 있을 적인데, 한 늙은 영감 신도가 백일기도한다고 가서 드러눕지 않고 백일 동안 잠을 안자고 아랫목에 딱 앉아서 정 고단하면 조금 졸고 백일 계속해서 기도를 한 사람이 경험한 이야기입니다. 그때 봉정암의 이 중이 땡추가 되어 그저 동량해다가 술 고기 먹고 바람피우고 그럽니다. 냉면집에 가면 엎어 놔달라하여 밑에다 고기를 놓으라는 뜻입니다. 이 중이 어디를 가서 한 보름 있다가 들어오더니 저녁에 누워서 잠을 한잠 곤하게 자다가 깜짝 놀라 일어나면서 「에이! 꿈도 고약하다, 고약하다.」 중얼거립니다. 그래서 노인이 「무슨 꿈을 꾸었느냐?」 「아, 수염이 허연 영감이 오더니 나를 보고 대단히 나무라고 날더러 이제 네가 버릇을 안 고치면 우리 집 개를 보내겠다고 하며 대단히 꾸중을 했습니다.」 영감이 가만히 앉아서 들어보니까 이 이놈의 중이 어디 가서 나쁜 짓하고 온 것으로 짐작을 했습니다. 설악산 산신이 본래 참 영감하다는 말이 있는데 그 이튿날 아침을 먹고 앉아서 젊은 중에게 「당신이 암만해도 어디 가서 좋지 못한 짓을 한 모양이니 이제 아주 끊어야지 여기 설악산 산신을 그렇게 봐서 안 됩니다, 요다음에 또 그러면 정말 개를 보낼 것이니 조심하시오.」 그러니까 땡추중 말이 「꿈이라는 건 다 헛 건데 뭐 별 것 아닙니다.」 그러면서 인과도 모르고 그런 것이 있는 줄도 모릅니다. 한 달쯤 지난 뒤에 또 동량을 나간다고 하더니 한 보름 있다가 또 들어왔는데 저녁을 해 먹고 이러고 영감은 아랫목에 앉아 있고 그 중은 옆에 누워 자는데 밤 12시쯤 해서 문 밖에서 큰 벼락 치는 소리가 납니다. 산중의 절 문은 미닫이문 닫고 그 안에 보통 살문 닫고 그러고 방에 들어오면 또 살문이 있습니다. 산중이니까 문이 튼튼하게 짜서 대개 세겹인데 와지끈 소리가 나더니 방문이 탁 열리면서 그 중을 데꺽 집어 내 버렸습니다. 그리고 영감님도 혼이 나가서 기도하던 정신도 없어져 가지고 가만히 앉아 멍청해졌다는 것입니다. 설악산이 음력 칠월 그믐께 팔월 초승만 되어도 상당히 춥습니다. 아무리 삼복중이라도 문을 안 닫고는 못 자고 햇볕이 잘 나는 날이 아니면 물을 따뜻하게 데우지 않고는 목욕을 못할 정도로 기후가 찹니다. 이 영감도 날이 새도록 문을 못 닫고 가만히 앉아서 기도하는 것도 다 잊어버리고 해가 높이 뜨고서도 다리가 안 펴져서 나갈 생각도 못 했다는 겁니다. 자기가 손부터 움직여 가지고 전신만신을 주물러 가지고 살살 다리도 뻗어 보고 한 나절 그런 뒤에야 나가서 식은 밥 있는 것 좀 데워 먹고 그랬는데도 겁이 나서 나갈 수가 없더라는 겁니다. 한참 뒤에야 보니까 마당 한쪽에서 위 탑으로 올라가는데 큰 바윗돌이 삐딱하게 누워 있는데 거기다가 턱을 탁 부딪쳤는지 피가 묻어 있고 대소변을 본 것이 있더랍니다. 그래서 오세암이라는 큰 절로 수족(手足)을 벌벌 떨며 내려가는데 한 시오리쯤 내려가면 수석(水石)이 좋은 데가 있습니다. 거기를 내려오니까 땡추중의 목은 목대로 떼어서 바윗돌 위에 조각품 모양으로 얹혀 놓고 사지를 찢어서 팔은 팔대로 다리는 다리대로 창자는 창자대로 여기 저기 나무에 걸어 놨더라는 겁니다. 하나도 먹지는 않았는데 그걸 본 이 영감은 그만 탁 주저앉아 정신을 못 차린 채 얼마를 있다가 정신을 가다듬고 그대로 오세암을 내려가는데 하루 종일 걸려 가지고야 사람들을 데리고 와서 화장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 청봉에서 산을 넘어 한 오십 리쯤 내려가면 들 복판에 외딴 집 하나가 있습니다. 지금도 그 집이 있고 한 백석 하는 집인데 그 집 며느리와 동량중이 눈이 맞았던 모양입니다. 그날 저녁에 그 호랑이는 동냥중을 발기발기 찢어서 나무에 걸어 놓고는 그길로 그 집으로 가서 그 집 며느리가 누에고치로 실을 뽑는다고 앉아 있는데 뒤 창문으로 발을 집어넣어 머리채를 확 잡아채서 끌어내는 바람에 창에 걸려서 머리만 쏙 빠져 버렸습니다. 20년 전까지 그 노인이 80노인이 되어 살아 있었습니다. 그런 얘기를 내가 청봉에 있을 때 그 곳을 지나가다 어느 정자나무 밑에서 쉬는데 웬 영감이 내가 청봉에 있다고 그러니까 저 집이 외딴 집으로 있던 거라 하면서 그런 얘기를 해 주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나무꾼이나 채벌꾼들이 거기 가서 명태를 사다 먹든지 산돼지를 잡아서 솥에다 삶아 먹든지 하는 것은 그것은 또 속인이니까 내 버려둡니다. 그러니까 중노릇하기란 이렇게 어려운데 법을 차차 세워서 사찰정화가 되어 참으로 계행을 지키는 이런 이들이 있는 그때는 모두 호법신장(護法神將)들이 모여 온다고 그럽니다. 천당에서도 오고 산에서도 오고 시방(十方)에서 와서 날마다 순시하고 그래서 잘못하는 게 있으면 일벌천계(一罰千戒)로 나쁜 한 사람 벌해 가지고 다른 천명이나 만 명 대중이 정신 차리도록 하느라고 특별히 그런 짓을 합니다.

요새 우리는 이런 호법징계(護法懲戒)에서 포기(抛棄)된 불쌍한 대중입니다. 그러니까 「길가에 앉아서 똥 누는 사람은 시비를 해야 하고 길 한복판에 궁둥이 내 놓고 앉아서 똥 누는 사람한테는 시비를 못한다.」고 그런 말과 같습니다. 길 가에 똥 누는 사람은 한쪽 어디에 조금 양심이 남아 있으니까, 꾸중하면 그 마음이 부끄러워할 줄 아는 사람이어서 나무라면 그만 옷을 올려 입고 도망갈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한복판에 똥을 누는 사람은 각오(覺悟)가 있는 사람이고 양심이 없는 사람이어서 듣지 않을 사람입니다. 그런 것 같이 영 그만 세상이 혼란해져서 마구잡이로 되면 다 지옥으로 떨어질 판이어서 응징해 봐야 별수가 없고 제 발로 걸어서 지옥 갈 판이니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천신들의 서원

진주에 가면 송보살이라고 내가 어려서 봤는데 길가에 다니다가 만나서 우리가 「어디가십니까?」 인사를 하면 「응」하고 사람은 쳐다보지도 않고 그대로 가기만 하는 그런 여자가 한 분 있었습니다. 내가 중이 된 뒤 그이가 거진 구십살이나 살다가 돌아가셨는데 그 집이 가난한 살림인데 절에 불공이 있으면 와서 거들어 주고 떡 부수러기나 얻어다 아이들 먹이는 이런 형편입니다. 그렇게 가난하게 살면서도 염불을 자나깨나 하고 있는 그런 보살입니다. 그 분이 돌아가신 뒤에 내가 진주에 가보니까 시내 연화사(蓮華寺) 포교당(布敎堂)에 낮설은 탑이 하나 생긴 것을 보고 「이게 무슨 탑이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애기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 송보살이 자기가 죽기 나흘 전에 진주 신도 다 찾아보면서 「내가 나흘 뒤 아무일 저녁을 먹고서 어둑해질 때 가겠으니 부디 염불 잘하십시오. 나는 먼저 극락세계 가니까 같이 거기 가서 만납니다.」 이런 인사를 하고 다니는데, 사람들은 아마 나이가 하도 많은 노인이라 망령이 들어서 정신이 좀 이상해진 것 같다고 모두 곧이듣지를 않고 지나쳐 버렸습니다. 그런데 그날 아침 먹고 나서 손자고 누구고 식구들을 아무데도 못 가게 하고는 불러 앉혀 놓더니 「내가 오늘 저녁때 해질 무렵에 간다. 너희들은 부디 딴 짓 하지마라, 극락도 있는 거고 천당도 있고 지옥도 있는 줄 알고 또 사람이 부처가 되는 법이 있으니 잘 명심(銘心)하고 신심으로 살아야 한다.」고 당부를 하더라는 겁니다. 일념으로 마음이 통일이 되어 놓으니까 그 무식한 노인이지마는 밝은 마음의 혜가 열려서 무얼 알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오후가 되니까 가서 물 데워 오라고 해서 목욕을 하고 그리고 새 옷으로 갈아입고는 「너희들 밥 먹고 나서 아무데도 가지 마라. 저녁 일찍 해 먹으라」는 겁니다. 그래서 식구들은 할머니가 뭐 정신이 돌았거나 망령이 든 것 같지도 않게 태연하고 엄숙하니까 행여나 싶어서 식구들이 모두 시키는 대로 저녁 일찍 해 먹고 모두 아이들도 못나가게 하고 그랬는데 어두워지기 시작하니 요를 펴라고 해서 요를 펴니까 요 위에 앉아서 또 얘기를 합니다.

「이 세상이 다 무상하고 여기는 고해고 불붙은 집이고 그러니 아예 방심하지 말고 네 일 좀 해야지 만날 육체, 몸뚱이 그렇게 가꾸어 줘 봐야 갈 때는 헛수고했다고 인사도 안하고 나를 배반하고 가는 놈이며 몸뚱이라는건 그런 무정한 놈이니 그 놈만 위해서 그렇게 살지 말아라. 나도 평생에 염불해서 이런 좋은 수가 있지 않느냐? 90장수(九十長壽)도 하고 병 안 앓고 꼬부라지지도 안하고 그리고 가는 날짜 알고 내가 지금 말만 떨어지면 간다. 곧 갈 시간이 되었어. 이러니 너희들도 그랬으면 좀 좋겠느냐? 두 달이고 일 년이고 드러누워 똥을 받아 내고 이래 놓으면 그 무슨 꼴이냐? 너희한테도 빌어먹을 것도 못 빌어먹고 모자간에 서로 정도 떨어지고 얼마나 나쁘냐? 부디 신심으로 염불도 하고 부디 그렇게 해라.」

이렇게 말한 뒤 살며시 눕더니 사르르 잠든 것처럼 가 버렸는데 그리고 얼마 있다가 그만 그 집에서 굉장히 좋은 향내가 나고 또 조금 있으니 서쪽을 향해서 환히 서기방광을 해서 소방대가 불났다고 동원이 되기까지 했다는 겁니다. 불교 신도들이 이 소문을 듣고 송보살이 예언 한 대로 돌아갔다, 열반을 했다, 이래 가지고 진주 신도라는 신도는 수천명이 모여 와서 송장에 대해서도 부처님같이 생각하고 무수배례(無數拜禮)하고 마당에서 길에서 뜰에서 신도들이 꽉 차게 모여 가지고 절도 하고 돈도 내고 이래서 장사를 아주 굉장하게 화장으로 지내는데 사리가 나와서 사리탑을 지어 모셔 놓은 것이 연화사에 있는 낯선 저 탑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그것만 불러도 이렇게 됩니다. 아무 뜻도 모르고 극락세계 갈 거라고 그것만 해도 공덕이 되고 정신통일이 되어 혜(慧)도 열립니다. 그런데 더군다나 상하권 되는 이 금강경을 죽 한 번 읽는데 좀 빠르면 30분 걸리고 남이 듣기 좋게 외우면 한 시간은 걸립니다. 그러니까 이것을 하루에 한 번씩 외도 처음에 외울 적에는 조금 힘을 들여야 하겠지마는 하루에 한 장 외고 그 다음에 또 한 장쯤 외고 그 다음에 연속해서 외우면 됩니다. 처음 배울 때부터 여시아문(如是我聞)에서부터 자꾸 줄줄 따라 외기 시작하면 되는데 80노인들도 석달을 공부하고 반년이 걸려서 다 외운 이도 많이 있습니다. 이런 법문 듣고 나면 좀 읽어 보고 싶고 외고 싶어집니다. 그러니까 먹칠해 놓은 종이부수러기지마는 그 내용이 이렇게 굉장한 것이기 때문에 천룡팔부(天龍八部)라든지 저 위에 28천(二十八天)·무색계천(無色界天)의 사람까지도 부처님 열반하실 때 전부 와서 부처님 법 옹호할 것을 서원(誓願)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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