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금강경 제11분 무위복승분(無為福勝分)에 대해 공부해 보겠습니다. 무위(無為)의 행은 상도 짓지 않고, 집착하지도 않고,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는, 함이 없는 행을 말합니다. 반대로 유위의 행은 기대함이 있는, 함이 있는 행을 말합니다. 무위복승분(無為福勝分)이란 유위의 행으로 짓는 유루복에 비해 무위의 행으로 짓는 무루복이 더 수승하다는 뜻입니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선남자 선여인이 이 경 가운데 내지 사구게 등을 수지하여 다른 사람을 위해 설해 준다면 이 복덕이 앞의 복덕보다 더 뛰어나다.’

이 경 전체를 남을 위해 설해 주지는 못하더라도 이 경의 아주 중요한 핵심을 뽑아놓은 사구게만이라도 남을 위해서 설해 준다면 그 복덕은 강가강의 모래알 수만큼 많은 삼천대천세계를 칠보로 가득히 채워 보시한 공덕보다 더 뛰어나다는 뜻입니다. 함이 없는 무위의 행으로 인해서 지어진 공덕은 함이 있는 유위의 행에 따른 공덕과는 비교가 안 된다는 거예요.

법의 실상을 깨닫는 것이 중요한 이유
비유를 들어 보겠습니다. 내가 꿈속에서 부모님에게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돈을 드렸는데 깨고 나니 꿈이었다는 것과 내가 실제로 부모님께 물 한 그릇을 떠다 드린 것, 둘 중에 어느 공덕이 더 클까요? 후자는 비록 한 그릇의 물을 떠다 드렸다 하더라도 실제로 드린 것이고, 전자는 무수히 많은 공덕을 지었다 하더라도 꿈에서 한 일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크기로 비유할 수가 없다는 거예요.

이것은 깨달음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내용입니다. 제상이 비상인 줄 아는 것, 제법이 공한 줄 아는 것, ‘이것이 진리다’라고 할 법이 없는 줄을 아는 것, 정한 법이 없는 줄을 깨닫는 것이 ‘반야’입니다. 실제의 모습을 아는 깨달음은 우리가 어리석음 속에서 행하는 그 어떤 행위와도 비교가 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법의 실상을 깨닫는 게 이만큼 중요하다는 걸 강조하고 있습니다.

꿈속에서 아무리 좋은 일을 해도 눈을 뜨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꿈속에서 설령 나쁜 짓을 했다 하더라도 눈을 뜨고 꿈에서 깨면 그건 꿈속의 일입니다. 꿈속에서는 좋은 일과 나쁜 일이 있지만, 눈을 뜨면 그것은 다 꿈속의 일이에요. 이런 꿈속에서 벗어나야 세상일을 두고 좋은 일, 나쁜 일을 가리지 않고 항상 웃을 수가 있습니다.

금강경은 내가 금강경을 수지독송하는 것뿐만 아니라 전법에 대한 중요성도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이 경을 수지독송한다는 것은 내가 괴로움이 없는 상태에 이르는 거예요. 그런데 내가 괴로움이 없는 상태에 이르는 것을 넘어서서 다른 사람도 이 법을 만나서 괴로움이 없는 상태에 이르게 한다면 이것은 더더욱 공덕이 크다는 겁니다. 자기가 괴로움이 없는 경지로 나아가는 것을 일러 수행이라 하고, 이 법을 타인도 깨달아서 괴로움이 없도록 도와주는 것을 전법이라고 합니다. 금강경은 전법의 공덕을 말하고 있습니다.

대승은 괴로움이 없는 상태에 이르게 하는 진리를 내가 체험하는 것, 즉 수지독송하는 것을 매우 중요시하고, 또 이 법을 타인에게 전하는 전법을 매우 중요시합니다. 절을 짓고 불상을 조성하는 외형적인 것은 세상일에 불과합니다. 그것이 비록 좋은 일이라 하더라도 또 공덕이 된다 하더라도 깨달음을 통해서 해탈하는 것과는 비교가 안 되는 겁니다. 이런 세속적인 모양과 형상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그것은 잠꼬대와 같은 일이라는 거예요. 우리를 진정으로 해탈과 열반으로 인도하는 건 깨달음입니다.

세상의 모든 갈등이 일어나는 원인
다음 내용은 바른 가르침을 존중하라는 제12분 존중정교분(尊重正敎分)입니다. 여기서 바른 가르침이 뭘까요? 지금까지 금강경에서 배온 내용들을 뜻합니다.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則見如來)

무주상보시
(無住相布施)

무유정법
(無有定法)

응무소주 이생기심
(應無所主 而生其心)

이 법을 얻은 바도 없고 설할 바도 없는 제법이 공한 도리를 말합니다. 이 법을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고 합니다. 이 세상에서 이보다 더 높은 것이 없는, 가장 높은 최상의 깨달음라는 뜻입니다. 가장 높은 최상의 깨달음이란 상을 짓지 않고 사물의 진실상을 보는 것입니다.

상을 짓지 않으면 집착할 일이 없어집니다. 우리는 집착을 놓아라 해도 집착이 잘 안 놓아집니다. 그 이유는 상을 짓고 있기 때문이에요. 내가 그렇게 듣고 내가 그렇게 알고 내가 그렇게 봤을 뿐이지 그게 진실은 아닙니다. 내가 인식한 것을 사실이라고 착각하는 것이 상을 짓는 것입니다. 사실이라고 생각하니까 당연히 그걸 주장해야 하고 강조해야 할 거 아니에요. 그래서 집착하게 되는 겁니다. 상을 짓기 때문에 세상의 모든 갈등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여러분들이 깨닫게 되면, 부처님이 법당에 계시는 게 아니라 부처님은 이 세상 어디에도 다 있어 처처에 부처님이 계시지 않는 곳이 없게 됩니다. 상을 짓기 때문에 불상이 있는 곳이 법당이고, 법당에 부처님이 계신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상을 여의면 처처에 불상이라 부처님 계시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사사에 불공이요. 하는 일마다 다 부처님께 공양 올리는 일이 됩니다. 과일을 사서 불전 앞에 올리는 것만 공양이 아니라 한 포기 나무를 심는 것도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이요, 죽어가는 생명 하나 살려주는 것도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이요, 병든 사람을 구하는 것도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이요, 모든 게 다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입니다.

어디 가서 중생을 별도로 구제한단 말이오
우리나라에서 제일 유명한 스님이 원효대사죠. 그런데 원효대사는 신라 시대에 한때 잘 나가다가 파계했다 해서 내쳐진 분이에요. 그러다 500년이 지난 고려시대에 와서 화쟁국사란 이름으로 원효대사의 업적이 복권되었습니다. 요즘 말하면 승려 자격이 없어졌다가 500년 뒤에 자격을 다시 얻은 거예요. 10년 있다가 복권한 것도 아니고, 50년 있다가 복권한 것도 아니고, 사후에 곧 복권한 것도 아니고, 500년 뒤에 복권이 된 분이에요. 그런데 지금은 다른 스님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스님이 되었죠. 그분의 수행 과정을 이야기해 드릴게요.

원효대사는 부처님의 경전에 대해서 논문을 쓰는 능력이 탁월해서 신라에서 아주 이름이 쟁쟁했어요. 그분이 쓴 글은 중국에까지 전해지고 일본에도 전해져서 아주 유명했습니다. 중국의 스님들은 원효의 글을 읽고 감동해서 원효 보살이라고 불렀어요. 성인의 칭호를 받은 겁니다. 성인으로 불리면 그가 쓴 글에 ‘논’이라는 칭호를 줍니다. 부처님의 말씀에 버금가는 성인의 글을 ‘논’이라고 합니다. 고려 시대 때 대각국사 의천이 중국에 갔다가 그걸 보고 놀라죠. 원효가 우리나라에서는 이름도 안 알려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려로 돌아와서 원효를 복권시킨 거예요. 원효가 쓴 글들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감동하고, 왕도 감동했는데, 결국 파계를 하게 되면서 그 이름이 묻힌 겁니다.

당시 신라에는 세속에 묻혀 사는 스님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그중에 대안 스님이라는 분이 계셨습니다. 그 스님은 늘 다니면서 ‘대안, 대안, 대안이로다’ 이렇게 말했어요. 대안은 ‘크게 편안하여지이다’ 이런 뜻입니다. 원효대사가 초야에 묻혀 사는 대안 스님을 길에서 만났습니다. 이 분이 ‘대사, 최근에 쓴 글을 봤는데 너무 감동했소. 그래서 내가 물어볼 게 좀 있으니까 나하고 얘기를 좀 합시다’라고 하니, 보통사람이면 초라하게 입은 거지 같은 스님을 무시할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원효대사도 이미 해골바가지 물을 먹고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에 안목이 있는 분이잖아요. 그래서 존중하는 마음을 내서 ‘예, 그러겠습니다’ 하고 따라갔습니다. 대안대사가 간 곳은 천민촌이었어요. 분황사 뒤에 북천이 있고 북천을 건너가면 ‘부곡’이라고 천민들이 사는 집성촌이 있었어요. 귀족이었던 원효대사는 사람들이 더럽다 여기는 천민촌은 간 적도 없고 갈 일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천민촌까지 따라갔어요. 그런데 대안대사가 그 천민촌 안에 있는 주막으로 들어가는 거예요. 주막으로 들어가면서 ‘주모, 여기 귀한 손님 왔소. 술 한 상 차려내시오’ 했습니다. 원효대사는 신라에서 유명한 스님이고 귀족이었습니다. 천민촌이면 평생 오지 않을 곳에 온 것이었지요. 도저히 주막까지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발길을 돌렸습니다. 대안대사가 ‘원효대사’ 하고 불러도 그냥 가버리니까 대안 대사가 이렇게 말했어요.

‘대사! 여기 마땅히 구제받아야 할 중생을 두고 어디 가서 별도의 중생을 구제한단 말이오.’

모든 대승 경전에 보살은 중생을 구제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서는 자기 몸도 버린다고 되어 있어요. 그런 경의 글을 읽고 해설을 해서 일장 논문을 쓴 게 원효의 글이잖아요. 그런데 막상 실제로 천민촌에 들어가는 게 꺼려졌고, 특히 주모가 있는 주막에 간다니까 더 꺼려져서 돌아온 겁니다. 대안대사가 그 뒤에 대고 큰 소리로 말한 거예요. 보통사람 같았으면 중이 헛소리한다며 무시했겠죠. 그런데 원효대사는 곰곰이 생각해보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수도 없이 중생 구제를 얘기하고 글을 쓰고 설법을 했는데 정말 구제받아야 할 중생을 두고 도망친 거잖아요. 자기를 돌아보니 아는 건 있지만 체험된 건 아니었어요. 그래서 ‘내가 수행을 잘못했구나’ 하고 깨닫고 분황사 주지 자리를 내려놓고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리고는 머리를 기르고 속복을 입고 학승들이 많은 절에 가서 부목으로 일을 했습니다. 복을 쌓아야겠다는 생각이었죠. 그 당시 신분제 사회에서 부목은 종의 신분이었습니다. 신라 시대만 하더라도 절을 유지하는 방식이 절에 훌륭한 스님이 계시면 왕이 그 절에 땅을 주고 그 땅을 경작할 종을 주었습니다.

부목이 된 원효대사는 스님들을 상전으로 모시고 부엌에서 밥하고 청소하고 빨래하는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같이 일하는 하인 중에 한 사람이 원효를 아주 심하게 구박을 했어요. 그래도 원효는 ‘나를 구박하는 그 하인도 보살이다’ 하면서 구박에도 개의치 않고 잘 견뎠습니다.

그 절에는 행색도 초라하고 키도 작고 약간 모자라는 사람처럼 보이는 방울 스님이라는 분이 있었는데 항상 방울을 갖고 다니면서 딸랑딸랑 소리를 내고 다녔어요. 이름도 없이 그냥 방울 스님이라고 불리는 분이었습니다. 방울스님은 항상 스님들이 밥을 먹을 때 와서 밥을 안 먹고 나중에 부엌에 와서 ‘행자님, 어디 누룽지 좀 없나요?’ 하고 누룽지를 얻어가서 먹었습니다. 그러면 부목들이 ‘왜 밥 먹을 때 안 먹고 지금 와요!’ 하고 구박을 했는데, 원효는 방울 스님을 불쌍히 여겨서 누룽지를 남겨놨다가 드렸어요. 그렇게 부목이 되어 하심을 하고 살고 있었습니다.

본래 중생이라고 할 게 없구나
그런데 어느 날 그 절에 스님들이 ‘대승기신론’ 이라는 책을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스승이 제자들에게 유명한 불경을 주면서 공부하라고 한 거예요. 요즘으로 말하면 박사 과정에 있는 사람들이었는데 아무리 읽어도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어서 자기들끼리 둘러앉아서 이런저런 해석을 각자 내놓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원효가 옆에서 마루를 닦으면서 듣자니 말도 안 되는 엉터리 해석을 하는 거예요.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스님, 그건 그렇지 않습니다. 이건 이렇고 저건 저런 거요’ 이렇게 말을 해버렸습니다. 안 그래도 잘 몰라서 헤매고 있었는데 옆에 있는 종이 개입을 하니까 스님들이 ‘종놈 주제에 네가 뭘 아냐’ 하고 막 성질을 내고 난리를 폈어요. 그러자 원효가 ‘아이고, 죄송합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입에서 헛소리가 나왔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도망을 가버렸습니다. 판이 다 깨지니 제자들이 스승한테 찾아가서 ‘아무리 읽어도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니까 스승이 원효대사가 쓴 ‘대승기신론소’라는 책을 한 권 턱 주는 거예요. 그걸 딱 읽어보니까 조목조목 쉽게 정리가 되어 있었습니다. ‘역시 원효대사야!’ 하고 감동을 하면서 그 글을 읽어보니 조금 전에 청소하던 부목이 하던 얘기하고 비슷한 거예요. 그 부목이 지금까지는 그냥 종으로만 보였는데 다들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겁니다. 원효대사는 자신의 신분이 노출될 위기에 처한 것을 알고 밤에 아무도 몰래 절을 빠져나가기로 했어요. 그래서 모두 잠든 후에 문을 열고 나오는데, 문간방에 사는 방울 스님이 방문을 탁 열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원효, 잘 가!’

그때 원효가 확 깨달았어요. 원효는 방울 스님을 불쌍히 여겨서 도와준 거예요. 방울 스님을 부처나 도인이라고는 한 번도 생각을 못 했습니다. 항상 방울 스님이 불쌍해서 도와줬는데, 오히려 방울 스님은 원효가 보살행을 한 번 해보겠다고 나름대로 수행하는 모습을 다 지켜보고 있었던 거예요. 그러니까 방울 스님의 눈에는 원효의 수행하는 모습이 다 보였는데, 원효에게는 방울 스님이 안 보였죠. 마치 원효의 눈에는 그 절에서 공부하는 스님들의 수준이 다 보였는데, 그 스님들은 원효가 안 보였던 것과 같았습니다. 그 스님들은 원효를 공경한다고 하면서 실제로 존재하는 원효에 대해서는 막 구박을 했잖아요. 이때 원효대사는 ‘여기 마땅히 구제해야 할 중생을 두고 어디 가서 별도의 중생을 구제한단 말인고’ 하는 대안대사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깨달았습니다. 그전까지는 천민촌에 불쌍한 중생이 있는데 자신이 외면했다고 생각한 겁니다. 그래서 자신이 언젠가 천민촌으로 가서 그들을 도와야겠다고 생각을 했는데, 본래 중생이라고 할 게 없었던 거예요. 중생이라는 것 또한 어리석은 마음이 짓는 상에 불과한 것이지요.

원효는 방울 스님을 불쌍하다고 여겼는데, 정말로 방울 스님이 불쌍한 거였어요? 원효가 보기에 불쌍한 거였어요? 원효가 보기에 불쌍한 것이었습니다. 모양과 형색을 보고 불쌍하다는 상을 지었고, 또 그걸 구제한다고 노력했던 겁니다. 눈을 뜨고 보니 방울 스님은 불쌍하지도 않고 구제할 것도 없었던 거예요. 그것처럼 부곡에 사는 천민들은 불쌍한 중생이 아니었습니다. 원효는 크게 깨닫고 나서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다시 천민촌으로 들어간 게 아니라 그들과 친구가 되기 위해 그곳으로 들어갔습니다.

유명한 원효를 버리고 친구가 되기 위해
그런데 새로운 난관에 부딪혔어요. 부곡에 사는 천민들이 원효대사 오셨다고 박수치고 떠받들어 버리니까 아무리 친구가 되려고 해도 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럼 이건 누구 책임일까요? 내가 그들을 불쌍하게 본 건 내 눈이 어리석어서 그렇다 하더라도 내가 이제 눈을 뜨고 너와 친구가 되겠다고 갔는데 그들이 성인이 오셨다고 떠받들어서 친구가 안 되는 건 그들의 책임이라 할 수 있잖아요. 내 눈이 어두워서 부딪힌 건 내 책임이지만, 상대의 눈이 어두워서 나한테 와 부딪힌 건 상대의 책임이듯이요. 그러나 원효는 이것도 자기 책임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 유명한 원효라는 허상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다고 본 겁니다. 그래서 원효는 그 유명한 원효를 버려버렸어요. 즉, 요석공주와 물의를 일으키고 파계를 한 겁니다.

그러자 지금까지 원효대사를 추앙하던 모든 사람이 ‘훌륭한 줄 알았는데 순 엉터리였구나’ 하고 원효를 무시해 버렸어요. 세상에서 매장이 된 거죠. 그런데 부곡에 사는 천민들은 원효가 자기들과 비슷한 처지가 되어 버리니까 원효와 금방 친구가 될 수 있었습니다. 원효는 뽕따는 아낙네, 술 파는 사람, 천민, 뱀 잡는 땅꾼, 이런 사람들과 노래하고 춤추면서 그 노래와 춤 속에 걸림 없는 도리를 넣어서 그들을 깨우쳤습니다. 원효라는 모양과 형상이 없어지고 그들과 하나가 된 겁니다. 동시에 역사 기록에는 온 천지에 원효가 나타납니다. 우리나라에 어디를 가도 원효가 창건했다는 절이 있고, 동굴마다 원효의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원효는 없어져 버렸고, 누가 원효인지도 몰라요. 그러나 원효는 곳곳에 나타나는 대승보살의 화현이 되었습니다.

원효대사의 이런 모습에서 우리는 상을 짓지 않는 길이 무엇인지 볼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도무지 꿈에서 깨어나 본 적이 없이 살아가거나, 설령 꿈에서 깨어나 본 적이 있다 하더라도 다시 꿈속에 빠질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늘 깨어있어야 해요. 그래서 부처님께서도 지금 여기 깨어있으라고 말씀하신 거예요.

이렇게 금강경에서는 깨달음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을 계속 반복해서 하고 있습니다. 제법이 공한 도리, 무유정법, 무주상보시,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중도의 원리, 연기법, 이런 법을 받아 지녀야 깨달음에 이를 수 있습니다. 복을 구하거나 상에 집착하게 되면 해탈과 열반에 이를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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