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의 즉문즉설>


요 그릇이 큰 거에요? 작은 거에요? 작은 거. 으음. 요건 큰 거에요? 작은 거에요? 큰 거? 아까 작다더니. 자~ 큰 거에요? 작은 거에요? 큰 거. 큰 거에요? 작은 거에요? 자~ 그러면 요거 자체는 큰 거에요? 작은 거에요? 아니. 금방 얘기해놓고 또 이런다. 커요? 작아요? 커요? 작아요? 자~ 그러면 한번은 크고 한번은 작았죠. 그럼 이건 진짜 어떤 거에요?

 

그러니까 크다 했는데 큰 것도 아니다 라고 할 수 있죠. 크다 했는데 큰 것도 아니다. 그러면 작다 했는데 사실은 뭐도 아니다? 작은 것도 아니다. 크다 하면 이래도 뭐해야 된다? 커야 되는데 이때는 뭐라고 한다? 작다 그러고. 그럼 작다 하면 이래도 작아야 되는데 이땐 또 뭐라고 그런다? 크다 이러잖아. 그러니까, 거는 큰 것도 아니고 작은 것도 아니다. 이렇게 말해요. 크다 하지마는 큰 것도 아니오. 작다 하지만 작은 것도 아니다.

 

그럼 요거 자체는 뭐냐? 크다 할 때 큰 것도 아니다. 작다 할 때 작은 것도 아니다. 이렇게 말하는 거고. 그러면 요런 비교 안 하고 이거 자체는 뭐라고 그러냐? 그것일 뿐이다. 그냥 그것일 뿐이다. 이건 큰 것도 아니고 작은 것도 아니에요. 무거운 것도 아니고 가벼운 것도 아니고, 새것도 아니고 헌것도 아니고, 깨끗한 것도 아니고 더러운 것도 아니고, 좋은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니고 그냥 그것일 뿐이다. 이걸 그냥 한 물건. 이래요. 한 물건이다. 한 물건일 뿐이다.

 

요것은 다만 그것일 뿐이고, 요것도 다만 뭐다? 그것일 뿐이고, 요것도 다만 그것일 뿐이다. 요게 진실이다. 이거야. 진실은 다만 그것일 뿐이에요. 그래서 이것을 큰 거다 하니까 큰 것도 아니다. 작다 하니까 작은 것도 아니다. 그러니까, 요 때 크다 하는 거를 모양 지었다. 크다 하는 상을 지었다. 그래요. 작다 하는 것도 뭐다? 작다 하는 상을 지었다. 이렇게 말해. 상이라 그래. 크다. 작다. 좋다 나쁘다. 깨끗하다. 더럽다. 이건 상이다. 이렇게 불러요. 불교 철학적인 용어로. (모양 상)자를 써서 상이다. 이렇게 말한단 말이오.

 

그러니까 상은 사실은 그 상이 아니다. 이거야. 크다. 하지만 큰 게 아니다. 상을 지었다 하는데 사실은 비상. 상이라 할 것이 없다. 상이 아니다. 무상. 또는 비상. 이렇게 말해요. 으음. 그럼 이 세상에 모든 상이 지어진 것. 크다 작다. 높다 낮다. 길다 짧다. 간다 온다. 깨끗하다 더럽다. 생긴다 사라진다. 옳다 그르다. 이 세상에 상으로 지어진 모든 것. 이걸 갖다가 제상이라 그래. 제, (모두 제)자.

 

모든 상으로 지어진 것의, 상이 아닌 줄을, 비상인 줄을 알면. 즉 깨끗한 것도 아니고 더러운 것도 아니고 옳은 것도 아니고 그른 것도 아닌 줄을 알면 그게 곧 뭐다? 부처다. 부처를 본다. 이 말은 그게 곧 부처다. 그렇게 보면 그게 곧 부처다. 이런 얘기요. 부처다라는 말이 무슨 말일까? 상을 지으면 괴로움이 생겨. 상을 여의면 괴로움이 사라져버려. 상을 지으면 화가 나. 옳다. 하면 화가 나. 내가 옳다 할 때는 그런 놈 보면 화가 나. 그런데 옳다 할 것이 없다 하면 뭐가 사라진다? 화가 사라져.

 

그러니까 모든 괴로움이 사라져 버린다. 그걸 갖다 니르바나. 닛바나. 열반이라 그래. 그래서 괴로울 일이 없다. 이런 얘기요. 괴로울 일이 없다. 그래서 범소유상, 무릇 형상이 있는 것. 상이 지어진 것. 상이라는 것은 아까도 얘기했는데. 옳으니 그르니, 맞니 틀리니, 가니 오니. 이런 걸 말해요. 무릇 형상이 지어진 것은 사실은 그것은 다 허망하다 할 때, 허망이란 말이 허무하다는 뜻이 아니에요. 실체가 없다. 크다 하지만 크다고 할 게 없다. 작다하지만 뭐다? 작다할게 없다.

 

이걸 뒤에 가면 사구게에서 뭐라고 그러면 하면 여몽환포영. 꿈같다. 꿈속에서 보면 있어요? 없어요? 있는데 눈떠보면 없어. 꿈같고 환상 같고, 환상도 있는 거 같지만 없죠? 신기루 같다 이 말이오. 먼데 보면 있는데 가보면 없어. 그다음에 물거품 같고 그림자 같다. 그 말은 실체가 없다. 이 말이오. 한마디로 말하면. 아침이슬 같고 번갯불 같다. 여로역여전. 아침 이슬 같고 번갯불 같다. 여섯 가지 비유를 들어서 말했어.

 

비유를 들어서 말했는데 이건 실체가 없다. 이것을 여기서 허망하다. 그래. 그러기 때문에 모든 상이 지어진 것이 상 아님을 알면. 즉 공한 줄을 알면 이 말이오. 상이 지어진 걸 색이라 그래. 그럼 상을 여윈 모습을, 한 물건을 뭐라고 한다? 공이라 그래. 우리는 색이라 하는데 사실은 뭐다? 공이다. 제법이 공한 줄을. 그러니까 반야심경 첫 구절에 뭐요? 조견오온개공. 오온이 모두 공한 줄을 알면, 뭐다? 도일체고액.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난다. 이 말이 금강경에는 뭐라고 돼 있다? 즉견여래. 이렇게 표현해. 구경열반. 똑같은 말이오.

 

그러니까 이런 얘기를 스님께서 물으시니까 얘기하지마는 이런 원리에서 이분의 아까 괴로움이 없어진 거요. 이분은 지금 딸이 방안에 앉아서, 방안에 앉아가지고 쳐 박혀서 아무것도 안 하고 4년이나 들어앉아 있으니까. 딸이 잘한 거요? 잘못한 거요? 잘못했지. 잘못했다. 그러니까 고쳐야 되나? 안 고쳐야 되나? 안 고치지. 잘못했으면 고쳐야 될 거 아니오. 그런데 안 고치니까 내가 괴로운 거요.

 

그러니까 딸이 잘못하기 때문에 내가 괴롭지 딸이 잘하면 괴로울 리가 없잖아. 그지? 그런데 사실은 스님하고 문답하는 과정에 우리 딸이 살아있는 것만 해도 고맙다. 이런 생각을 내면, 딸이 잘못된 놈이다. 잘못된 니은여니은이다. 잘못된 년이다. 하는 게 사실이오? 사실이 아니오? 사실이 아니다. 왜 밥 먹고 설거지도 안 하느냐? 뭐도 안 하느냐? 뭐도 안 하느냐? 뭐도 안 하느냐? 요래 보니 딸이 잘못된 놈이요. 그런데 아이고~ 살아있는 것만 해도 고맙다. 이래 생각하면 딸이 사람이 아니야.

 

그러니까 스님이 공이니 상이니 이런 말 안 쓰고, 우리 딸이 잘못됐어요. 하고 상을 지으니까 스님이 요렇게 요렇게 문답하면서 아~ 우리 딸은 잘못한 게 아무것도 없네. 이게 뭐요? 공으로 돌아간 거요.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그러면 괴로움이 있나? 없어지나? 없어져 버려. 그런데 다시 내가 살아있는 것만 해도 고맙다 하는 거는 어차피 상을 지을 바에야 좋게 짓는 게 좋나? 나쁘게 짓는 게 좋나? 좋게 짓는 게 좋아.

 

살아있는 게 고맙다. 이거는 상을 지었는데 좋게 지은 거요. 그게 이제 색이 공한 도리를 알고, 다시 공이 색한 도리를 알아야 돼. 어차피 공한데 상을 지으려면 어떻게 짓는다? 좋게 짓는다. 그러면 누가 기뻐진다? 내가 기뻐진다. 그런 원리를 가지고 지금 얘기하는 거요. 그런데 이런 원리 얘기하면 바로 머리가 아프잖아. 그런데 문답을 하면서, 문답을 요렇게 조렇게 하면서 그런 것이 체득이 되는 거요. 그러니까 색이 공이니 공이 색이니 이런 말 필요 없고.

 

범소유상이 개시허망이니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니. 이런 말 한마디도 안 하고, 그냥 죽는 게 낫겠소? 살아있는 게 낫겠소? 하니까. 머리로 한참 생각해보더니 성질날 때는 죽었으며 좋겠다. 하는데 정신 차리고 보니 살아있는 게. 그래서 다시 다시 생각하다가 아이고 그래도 살아있는 게 낫겠습니다. 살아있는 게 고맙게 생각하면 어떻겠소? 아이고 우리 딸 살았네. 설거지 안 해도 어때요? 아이고, 살아있어서 고맙다. 방안에 있어도 살아있어서 고맙다. 돈 달라 그래도 아이고 살아있어서 고맙다.

 

이러면 딸의 행동이 나를 괴롭힐 수 있어요? 없어요? 없어. 그러니까 이게 여래의 경지요. 그게 부처의 경지다. 이게 열반의 경지다. 으음. 그러니까 이런 거는 외운다고 되는 게 아니오. 그런 문구를 아무리 외우고 있어도 그건 지식에 불과하고 내 삶에 적용이 안 돼. 불교를 동국대가서 4년 공부해서 2년 석사과정을 거쳐서 3년 다시 박사과정을 거쳐서 불교학 박사를 따서 학생들에게 불교학을 가르치는 박사 교수라고 하더라도 지 마음은 지금 못 다스리고, 마누라하고 싸우는 보통 사람하고 똑같이 싸우고, 애 말 안 들으면 보통 사람하고 똑같이 돼.

 

왜 그럴까? 그것은 하나의 지식에 불과하고, 한 구절이라도 내가 체험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이 서로 다르다. 이런 얘기요. 이게 인생사라는 건 이렇게 물으면 사람이 묻는 거는 괴로움은 어디서 생긴다? 상을 짓는 데서 생긴다. 그러면 문답을 하면서 공한 도리고 돌아간다. 아시겠어요? 그래서 괴로움이 없어지는 거요. 그러면 어차피 공한 도리에서 사람은 살 수가 없어. 사람이 산다는 건 다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고 살아요. 다시 상을 짓고 산다. 이 말이오.

 

그러니까네, 괴로움을 일으키는 상을 지은 것을 허무로서 공으로 갔다가 다시 상을 지을 때는 어떻게 짓는다? 좋은 상을 지으면 내가 행복해요. 어차피 우리는 중생계에 살아야 되니까. 부처의 경지에서는 상이 필요가 없어. 그러나 부처의 경지에서는 즐겁고 괴롭고도 없어야 돼. 그런데 우리 중생계는 즐겁고 괴롭고가 있다. 이 말이오. 괴로움이 사라지고 다시 즐거운 마음으로 살려면 이렇게 다시 좋은 상을 짓는다.

 

그러니까 살아있는 것도 고맙다. 하는 거는 좋은 상을 짓는 거다. 나쁜 상을 허무는 거고 좋은 상을 짓는 도리에요. 이런 식으로 불법을 이해하시면 된다. 그런데 이제 이렇게 내가 법문을 하면 한 구절 설명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잖아요. 그죠? 그래서 용어를 다 빼버리고 지금 얘기하는 거요. 그런 용어 다 필요 없고 그러면 물으며 바로 얘기하는데 그걸 굳이 스님이 물으셔서 얘기하면, 원리는 이런 원리에 의해서 그 사람이 해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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