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어릴 때부터 열등감에 쌓여 살았는데 나이 오십이 되어도 열등감에 위축되고 소심한 성격이 고민이라는 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청중들도 큰 감동을 느끼고 질문자를 위해 격려 박수를 쳐주었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열등감으로 살고 있는 저를 항상 봅니다.”

 “무엇 때문에 열등감이 들어요? 못 생겼어요? 키가 너무 작아요? 공부를 못 했어요?”

 “예. (질문자 웃음) 50세가 됐는데 아직도 그런 마음이 안 지워지고 있습니다. 항상 긍정적으로 살려고 노력하지만 잘 안 됩니다.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는 위축되고 소심해지고 자신감도 부족한 걸 느끼거든요. 제가 자신감을 가지고 살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십시오. 부탁드리겠습니다.” (청중 격려의 박수)

 “뒤로 한 번 돌아서보세요.” (모두 웃음)

 “질문자는 이제 저를 보세요. 

"여러분들 보시기에 첫째, 얼굴이 못생겼어요?”

(청중 크게 대답) “아뇨!”

 “두 번째, 신체가 저 정도면 왜소해요, 건강해요?”

 (청중 크게 대답) “건강해요.”

 “질문자한테 물어볼게요. 학교는 어때요? 초등학교 다니다 말았어요?”

 “고등학교 나왔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다니다가 말았어요.” (모두 웃음) 결혼은 했어요, 못 했어요?”

 “했습니다.”

 “자식은 있어요, 없어요?”

 “있습니다.”

 “셋방에 살아요, 자기 집에 살아요?”

 “제 집이 있습니다.” (질문자 웃음)

 “그러면 여러분이 보기에 괜찮아요, 안 괜찮아요?”

 (청중 크게 대답) “괜찮아요.”

 “그래요, 괜찮아요. 질문자는 저보다 늙었어요, 젊어요?”

 “젊습니다.” (모두 웃음)

 “앞에 있는 스님과 비교했을 때 어때요? 질문자는 스님보다 인물도 괜찮고, 학벌도 괜찮고, 결혼도 했고, 자식도 있고, 집도 있고, 나이도 젊잖아요. 질문자보다 못한 저도 이렇게 행복하게 잘 사는데, 질문자가 열등감 때문에 못 살겠다면 저는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해요? (모두 웃음)

 그런데 두 가지 생각을 하셔야 해요.

첫째, 질문자가 어릴 때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충격받은 일이 있어서 그럴 수 있어요. 이건 심리 상담을 해보면 알아요. 경제적으로 너무 힘들었다든지, 공부 못한다고 야단을 맞았다든지, 인물에 대해서 악평을 들었다든지 예를 들면 뚱뚱하다든지, 얼굴이 넓적하다든지, 코가 낮다든지, 이렇게 누가 얘기한 게 있어서 질문자에게 충격이 됐을 거예요. 질문자는 기억도 못할지 모르겠지만 어린 시절에 신체적인 문제나 학업에 관계되는 것이나 집안의 문제와 관계되는 것이나 혹은 일을 하다가 잘 못했다고 핀잔을 듣거나 해서 상처가 된 게 뭔가 있습니다. 이런 상처를 ‘트라우마(trauma)’라고 합니다. 이런 상처가 있는데 계속 치유가 안 되면 늘 열등의식을 갖게 돼요. 트라우마는 치유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몸에 병이 난 건 치유를 하는데 마음의 병은 치유를 잘 안 해요. 이런 게 있어서 열등의식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두 번째, 질문자가 약간 과대망상증이 있어서 그럴 수 있어요. 자기가 굉장히 잘난 사람이라고 지금 착각하고 있는 거예요.

예를 들면 나는 키가 170인데, 나는 180 이 되고 싶은 거예요. 현실에 있는 나는 이런데 다른 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너무 지나치게 되면 상상하는 내가 현실에 있는 나를 볼 때 현실의 내가 너무 초라해 보이는 거예요. 키가 작다, 코가 낮다, 눈이 어떻다, 턱이 어떻다, 그래서 열등의식이 생기는 거예요.

이럴 때 우리는 두 가지 길을 가게 됩니다. 성형을 하든 뭘 하든 현실에 있는 자기를 상상의 자기로 끌어올리려는 노력을 합니다. 그런데 이 간극이 너무 크면 아무리 노력해도 거기에 다다를 수가 없어요. 이게 심해지면 열등감이 심해져서 자학이 되고, 자학이 심해지면 자살로 가는 거예요.

이럴 때는 상상의 자기를 버려야 합니다. 현실의 자기를 그냥 받아들여요.

지금 이대로 괜찮아요. 몸도 지금 이대로 괜찮아요.

눈은 어떤 모양으로 얼마나 찢어지느냐가 중요해요, 보이는 게 중요해요?

코는 냄새 맡는 게 중요해요,

콧대가 높은지 낮은지가 중요해요?

이는 가지런한 게 중요해요, 튼튼한 게 중요해요?

몸의 기능을 중심으로 해서 사물을 봐야 하는데 우리는 눈은 동그랗게 찢어져야 하고, 코는 콧대가 높아야 한다고 해요.

그렇게 상상으로 자기를 너무 좋게 생각하는 게 우월의식입니다. 열등의식은 우월의식 때문에 생깁니다. 다람쥐가 자신이 너무 작다고 열등의식을 갖고 자살하는 거 봤어요? 토끼가 자신이 너무 연약하다고 자학해서 자살하는 거 못 봤잖아요. (모두 웃음)

사람만 이러는 거예요. 사람은 너무 잘나고 싶어서 결국은 멀쩡한 자기를 죽입니다. 멀쩡한 자기를 자꾸 못난이 취급을 합니다. 특히 엄마들이 아이들을 자꾸 나무라면 그래요. ‘너는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자립을 못 하냐, 너는 왜 그렇게 늦잠을 자냐’ 이런 식으로 자꾸 잔소리하면 자기 엄마로부터도 인정을 못 받으니까 이것도 열등의식의 한 요소가 됩니다. 어릴 때 부모로부터 계속 잔소리와 나무람을 들으면 애들이 대부분 밖에 나가서 기를 못 폅니다.

그래서 질문자가 지금 해야 할 일은 첫째, 만약 마음에 상처가 있다면 치유의 과정이 필요해요. 둘째, 자기를 지나치게 높게 생각했다면 이 지나치게 높게 생각한 허상을 버려야 해요. 그래서 질문자가 이대로 괜찮다는 걸 자각해야 합니다.

 인간의 의식이라는 게 어떤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여기 컵이 있고, 컵 뚜껑이 있어요. 

여기에는 받침이 있고요. 

컵을 기준으로 해서 물어볼게요. 

 이 컵 뚜껑보다 컵은 커요, 작아요?”

 “큽니다.”

 “이 받침보다는요?”

 “작습니다.”

 “그러면 컵 뚜껑보다는요?”

 “큽니다.”

 “받침보다는요?”

 “작습니다.”

 “그러면 이 컵은 커요, 작아요?”

 “큽니다... 아니...” (질문자 망설임, 모두 웃음)

 “이 컵은 커요, 작아요?”

 “모르겠습니다.” (모두 웃음)

 “우리는 ‘이 컵이 크다, 작다’고 말하지만 ‘크다, 작다’는 이 컵에서 온 게 아니에요. 우리는 이 컵이라고 하는 존재에 크고 작은 게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게 우리의 착각이라는 거예요. 이 컵은 큰 것도 아니고 작은 것도 아니에요. 이 컵이 크다, 작다는 것은 컵에서 오는 게 아니고 인식 상에서 일어나는 거예요. 이 컵을 컵 뚜껑과 비교해서 인식을 할 때는 컵이 크다고 인식하고, 받침하고 비교해서 인식을 할 때는 컵이 작다고 인식하는 거예요. 컵 자체가 크고 작은 건 없어요. 우리는 ‘컵이 큰 거니까 크고, 작은 거니까 작지’ 이렇게 생각하지만 이게 착각이라는 거예요.

크다 작다고 하는 건 존재에 있는 게 아니고 인식 상에서 생겨나는 정신작용이에요. 이걸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고 합니다. 일체유심조라는 말은 ‘내가 임금이다’ 하면 임금이 되고 내가 ‘금이다’ 하면 금이 되는 식의 허황된 얘기가 아니라, ‘크다 작다’ 하는 것이 객관적 물질에 있는 게 아니고 이 인식 상에서 생긴다는 말이에요. 이건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아요.

그러면 이건 무거운가, 가벼운가? 무거운 것도 아니고 가벼운 것도 아니에요. 이건 새것인가, 헌것인가? 새것도 아니고 헌것도 아니에요. 이건 비싼가, 싼가? 이건 비싼 것도 아니고 값싼 것도 아니에요. 이건 다만 그것일 뿐입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존재는 다만 그것일 뿐이다. 이걸 철학적인 용어로 ‘공(空)’이라고 해요. ‘모든 존재는 다 공하다’ 할 때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 아니에요. 이런 걸 ‘공’이라고 해요. 선(禪)의 용어로는 ‘다만 그것일 뿐이다’라고 하고, 대승불교적인 용어로는 ‘공’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질문자는 열등한 것도 아니고 우월한 것도 아니고, 키가 큰 것도 아니고 작은 것도 아니고, 부자도 아니고 가난한 사람도 아니고, 늙은 것도 아니고 젊은 것도 아니고, 뚱뚱한 것도 아니고 홀쭉한 것도 아니에요. 다만 나는 나일 뿐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나보다 키 큰 사람하고 비교하면 나는 작다고 인식이 돼요. 나보다 작은 사람하고 있으면 크다고 인식이 되고, 나이가 적은 사람하고 있으면 내가 늙었다고 인식이 되고,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하고 있으면 젊다고 인식이 됩니다.

그런데 나보다 키 큰 사람하고 오래 있다 보면 내가 작다는 인식이 계속되다 보니 그대로 굳어버려요. 그래서 자기 존재 자체가 작은 걸로 착각하게 됩니다. 이걸 철학적 용어로 ‘상을 짓는다’라고 해요. 작다는 건 주관인데, 작다는 게 객관이라고 생각해버리는 걸 ‘상을 짓는다’라고 합니다. 객관이라고 생각하니까 작다는 열등의식이 생기는 거예요. 질문자는 지금 열등한 것이 아니에요. 열등한 것도 아닐 뿐더러 우등한 것도 아니에요. 이해하셨어요?”

“네.”

 “그러니 질문자는 이제 다만 그것으로서 살아가세요. 모든 존재는 다만 그것입니다. 이걸 다른 말로 옮기면 모든 존재는 다 완전한 거예요. 부족함이 없어요. 다만 그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 있는 여러분들 다 그래요. 늙었든 젊든, 남자든 여자든, 지위가 높든 낮든, 부자든 가난하든, 다 완전한 존재입니다.

누가 낫다, 못하다 하는 것도 누구와 비교하느냐의 문제예요. 제가 얼마 전에 남북 정상회담 관련 브리핑을 받는 자리에 갔어요. 전직 국무총리나 국회의장 같은 국가 원로들이 참석했는데 대부분 80세가 넘어요. 그분들이 저를 보고 그래요.

‘법륜 스님은 올해 나이가 얼마나 돼요?’

‘66세입니다.’

‘아이고, 아직 한창이네!’ (모두 웃음)

 그 사람들이 볼 때는 66세면 한창인 거예요. 여러분들도 80세가 돼보면 그럴 거예요. 50세일 때는 50세가 늦다고 하지만 60세가 되어보면 50세가 한창이고, 자기가 70세가 되면 60세가 한창이고, 80세가 돼보면 또 70세도 한창이에요. 이게 전부 다 상대적인 거예요.

질문자는 지금까지 허상에 집착하고 있었어요. 이제 진실을 알게 되었으니 ‘아, 별 거 아니네’ 하면 됩니다. 질문자가 어디 가서 잘난 체하고 목에 힘 줄 것도 없고, 못난 척하고 비굴할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이 수행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나의 제자 수행자들아, 교만하지 말고 겸손해라.’

목에 힘줄 게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에요.

또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비굴하지 말고 당당해라.’

비굴할 것도 하나도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수행자는 당당하되 겸손해야 합니다. 질문자도 어디 가서든 비굴하지 말고 당당하세요. 질문자가 뭐가 부족한데요? 아무 문제가 없어요. 질문자는 풀보다 나아요, 안 나아요?”

 “낫습니다.” (질문자 웃음)

 “그래요, 다람쥐하고 비교해도 다람쥐보다 나아요. 풀보다도 낫고, 다람쥐보다도 낫고, 나은 게 얼마나 많은데요. 그런 관점을 가지고 앞으로는 당당하게 사세요. 또 겸손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한테 목에 힘줄 일이 아무것도 없어요. 알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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