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싹이 트기까지 기다려주세요

 

봄에 농사를 지어보면, 지금 씨앗을 심어도 싹이 터서 나오기까지 시간이 아주 오래 걸립니다. 지금처럼 날씨가 조금 쌀쌀할 때는 열흘이 지나도 싹이 안 나오니까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가 없어요. 한 보름이 지나야 겨우 싹이 나옵니다. 물론 날씨가 아주 따뜻하면 씨앗을 뿌리고 난 뒤 일주일 이내에 싹이 트지만, 대부분 첫 씨앗을 뿌린 후 보름이 지나야 싹이 터서 나옵니다. 긴 것은 20일이 넘어야 하고요. 그 후 한 뼘 정도 자라는 데는 시간이 꽤 오래 걸립니다. 농사를 지으면서 이런 걸 보고 있으면 ‘이게 언제 다 자라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이 답답해져요.

 

그런데 7,8월이 넘어가면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빨리 자라기 시작합니다. 고추도 옮겨 심어놓고 한 달이 지나도 그냥 그대로 있는 것 같은데, 7,8월이 되면 사람 키보다 더 자랍니다. 호박도 넝쿨이 어마어마하게 자라요.

 

 

수행도 그와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처음 수행을 시작하면 어느 정도 자기 마음을 알아차리고 관리할 수 있을 때까지 꽤 많은 시간이 걸립니다. 업식대로 살아가고 있는 자기 습관을 알아차리는 데까지도 시간이 많이 걸리고, 내가 이렇게 살아가고 있구나 하는 것을 아는 데까지도 많은 시간이 걸려요. 이것을 변화시키려면 훨씬 더 많은 시간이 걸립니다.

그래서 ‘3년 공부했는데’, ‘5년 공부했는데’, 10년 공부했는데’ 하다가 결국 아무런 진척이 없는 것 같으니까 대부분 공부를 그만둡니다. 처음 출가를 했을 때는 스님만 되면 도를 이룰 것 같았고, 강원만 졸업하면 도를 이룰 것 같았고, 선방에서 세 철만 나면 깨달을 것 같았어요. 그런데 아무런 뜻대로 안 되니까 마음이 조급해지고, ‘까짓것 이럴 바에야 밖에 나가서 사는 게 낫겠다’, ‘세월만 낭비하는 것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어서 결국 포기하게 돼요. 그래서 5년에서 10년 안에 속퇴하는 사람이 거의 70% 이상입니다. 이것은 마치 곡식을 심었는데 싹이 안 난다고 다시 땅을 갈아엎는 것과 같아요.

 

 

과학에서는 ‘임계점’이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임계점을 넘어야 급속도로 자랍니다. 경제 성장에서는 비상한다고 표현하죠. 비행기도 활주로를 달리다가 일정 속도 이상이 되어야 날아오릅니다. 성냥불도 살살 켜면 만 번을 켜도 불이 안 붙지만 300도 이상 마찰력이 생기면 인화가 일어납니다. 이렇게 일정한 임계점을 넘어야 공부에도 속도가 붙습니다. 그런데 대다수가 그전에 공부를 포기해요.

농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 씨앗을 심으면 땅속에 머무는 시간이 많습니다. 땅 위로 올라와도 어릴 때 자라는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그러나 일단 자라게 되면, 그다음에는 특별히 손을 안 봐도 아주 빠른 속도로 쑥쑥 자랍니다.

그리고 마무리가 중요합니다. 쑥쑥 자란다고만 되는 게 아니잖아요. 뭔가 열매가 열리려면, 마무리 단계에서 관리가 필요합니다. 많은 고추와 오이가 달려도 마무리를 제대로 못하게 되면 다 썩혀 버리게 돼요. 수행도 마무리가 잘 안 되고 넘쳐버리면, ‘내가 부처다’, ‘나는 깨달았다’ 이러면서 허황된 쪽으로 흘러가 버립니다. 수행을 하면 마음이 늘 고요해야 되는데, 마무리를 제대로 못해서 흥분이 되거나 정신이상자 같은 현상이 나타납니다.

급속도로 성장한 종교들이 대부분이 나중에 분쟁에 휘말리게 되는데, 그 이유는 나중에 욕망의 충족으로 흘러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다수가 급격하게 성장했다가 1,2대를 못 가서 주저앉게 됩니다.

 

 

부처님의 법이 좋은 이유는 우리들의 마음을 살피도록 해주기 때문입니다. 첫째, 우리가 부지런히 일하더라도 그 가운데 마음은 늘 안정되어 있어야 해요. 둘째, 꾸준히 해야 합니다. 우리가 농사를 지어보면 그런 교훈들을 얻을 수가 있어요. 혼자 앉아서 명상을 하는 것도 수행이지만, 농사일도 수행입니다. 왜냐하면 농사일도 우리의 마음 작용과 거의 동일한 법칙에 의해서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일이 따로 있고 마음공부가 따로 있는 게 아니에요. 일 속에서 마음이 자유로워지는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또 마음의 변화가 일어나면 일할 때 괴롭거나 지루하지 않아요. 그래서 차분하고 꾸준히 일하게 됩니다. 농사일을 하면서 그런 것도 앞으로 함께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정토회가 마지막으로 개발하려는 게 선농일치(禪農一致)예요. 일을 하기 전에 마음 나누기를 하고, 일을 하면서 평정심을 가지고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고, 일이 끝나고 나서 마음이 어떻게 움직였는지 다시 점검하고 알아차리는 겁니다. 이렇게 하면 앉아서 명상하는 것과 밭에서 일하는 것이 서로 다르지 않아요. 이것이 바로 ‘선농일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오전에 농사짓고 오후에 참선하는 게 선농일치가 아니라, 농사짓고 일하는 가운데 자기 마음 관리가 되는 것이 선농일치예요. 이것이 바로 ‘일과 수행의 통일’입니다.

 

 

가만히 앉아서 마음의 안정을 유지하는 것은 명상을 오랫동안 하면 어느 정도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일상 속에서 자기 마음을 관리할 수 있어야 ‘평상심이 도’ 혹은 ‘일상이 곧 수행’이라고 하는 경지로 나아가게 됩니다. 그런 것들을 우리가 앞으로 연습해 나가야 합니다.

수행은 어떤 특정한 모양이나 형식이 아니에요. 잠을 자든 일어나든, 병이 나든 건강하든, 쉬든 일하든, 명상을 하든 노동을 하든, 늘 그 속에 수행이라고 하는 바탕이 안정적으로 있어야 합니다. 다만 그 대상이나 방식은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어요. 한가할 수도 있고, 바쁠 수도 있겠죠. 이런 공부를 해나가야 진정한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된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서울과 문경으로 돌아가면 일상 속에서도 그런 공부를 꾸준히 해나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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