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회는 지난 14일 부처님 출가일을 시작으로 내일 열반일까지 전국 법당에서 8일 동안 용맹정진 기간입니다. 매일 300배 정진을 하고 영상으로 스님의 법문을 듣습니다. 오늘은 출가열반재일 일곱째 날이자 정기 수행법회일입니다. 스님은 오전과 저녁 두 차례 전국 생방송으로 법문을 했습니다. 오전 10시, 수행 법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출가열반재일 기간 동안 우리는 부처님의 일생을 공부하고 정진하고 있습니다. 부처님은 자기 스스로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면서 한평생 많은 사람의 고뇌를 해결하는데 도움을 주는 삶을 사셨습니다.
부처님은 숨넘어가는 마지막 순간까지 사람들의 고뇌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셨습니다. 부처님은 대중과 만났을 때 철학의 논리를 알려주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철학은 생각으로 하는 것이에요. 그렇다고 감정에 호소하는 어떤 믿음을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었어요. 그 생각과 믿음의 뿌리가 되는 마음에 대해 알려주셨습니다. 무거운 마음을 가볍게, 어두운 마음을 밝게, 탁한 마음을 맑게 만드는 가르침을 펴셨습니다.
부처님은 수행을 통해서 고뇌와 속박에서 벗어나는 길, 내 인생의 주인이 되는 길을 제시하신 분이에요. 사람이 살아가는데 돈도 필요하고, 지위도 필요한 건 이해해요. 돈을 벌던지, 출세를 하던지 그건 개인적인 일이에요. 그러나 수행자라면 돈을 벌든 출세를 하던 뭘 하던 그런 걸 할 때 고뇌가 없어야 해요. 이게 핵심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정토행자는 수행자들의 모임인 수행 법회를 꼭 참석해야 하는 겁니다.
적어도 수행자라면 그 사람이 무슨 직업을 가졌든, 혼자든, 결혼을 했든, 한국에 살든, 외국에 살든 이런 게 중요한 것이 아니에요. ‘실패했냐, 성공했냐’도 별로 중요한 게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그가 ‘고뇌 없이 사느냐’ 예요. 수행자는 실패하면 다시 하면 되는 거예요. 내일까지 출가열반재일 정진을 열심히 하셔서 자기 삶이 흔들리지 않도록 중심을 잘 잡아야 합니다.
오늘 이렇게 만났으니까 질문을 몇 분에게 받겠습니다. 정진하면서 생긴 의문이 있거든 물어보세요. 수행자들이라서 물을게 없는 경지에 이르렀습니까?”(모두 웃음)
오늘 수행 법회는 즉문즉설 방식으로 진행했습니다. 갑자기 질문할 기회가 주어진 대중들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손을 들기 시작했습니다.
첫 번째 질문자는 유투브로 즉문즉설을 듣다가 어제 불교대학에 입학한 분이었습니다. 유투브로 법문을 들을 때는 다 아는 것 같았는데 마음공부도 환경실천도 막상 해보니 쉽지 않아 어떻게 하면 좋을지 질문했는데요. 스님은 먼저 좋은 생각을 했다며 대중들과 함께 격려의 박수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좋은 일도 욕심내서 하면 괴로우니 꾸준히 정진하도록 격려했습니다.
두 번째 질문자는 ‘명상’에 관해 질문했습니다. 오늘은 이 즉문즉설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매일 아침 30분씩 명상을 하는데, 숨을 고르는데 몇 년이 걸렸어요. 호흡을 할 때마다 ‘내가 숨 쉬는 게 고르지 않구나’ 하는 걸 인식하게 됩니다. 처음엔 호흡이 잘 안 되니까 10분씩만 명상을 했어요. 차차 5분씩 늘려서 지금은 30분씩 명상을 합니다. 혼미한 상태는 어느 정도 사라졌지만, 호흡은 지금도 중구난방으로 들쭉날쭉해요. 계속 이렇게 호흡이 들어가고 나가는 것만 알아차려야 하는지, 아니면 그다음에 좀 더 발전적인 단계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명상의 목적이 무엇인지 먼저 알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지금 우리의 일상적인 삶이 어떤지 살펴봅시다. 어떤 소리를 듣거나, 어떤 모양을 보면, 감정이 일어납니다. 기분이 나쁘거나 기분이 좋습니다. 그렇게 감정이 일어나면 그에 따라 말을 세게 하거나 어떤 행동을 하게 돼요. 그런데 감정에 따라서 말을 하거나 행동을 했을 때는 반드시 과보가 따릅니다. 내가 기분이 나빠서 욕을 했다면 상대편에게서 비난이 돌아오겠죠. 내가 한 것은 작지만 돌아오는 손실은 매우 커요. 이것은 나에게 손해입니다.
나쁜 말과 행동을 멈추지 않았을 때 생기는 손실
이 손해를 막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 감정이 올라오더라도 감정에 따라 말하고 행동하는 것을 멈춰야 합니다. 아무리 감정이 올라와도 남을 때리거나 죽이는 건 멈춰야 하고, 남의 물건을 빼앗거나 훔치는 건 멈춰야 하고, 성추행이나 성폭행하는 것은 멈춰야 하고, 욕설이나 거짓말하는 것은 멈춰야 하고, 술 먹고 주정하는 것은 멈춰야 해요. 그렇게 나쁜 행동을 하면 손실이 너무 많이 따르기 때문이에요. 말이나 행동을 멈추려면, 감정이 올라오더라도 그 감정으로부터 내가 자유로워져야 합니다. 이것이 계율이에요. 그래서 먼저 계율을 지켜야 합니다.
그런데 계율만 지키는 것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계율은 나를 이익되게 하고 손실을 방지해 줍니다. 그러나 감정이 올라왔을 때 말하거나 행동으로 표출하지 않으면, 그로 인해 마음속에 스트레스를 받게 됩니다. 감정을 억제해야 하니까요. 이렇게 되면 남한테 손해는 안 끼치니까 과보는 안 받아요. 그러나 스트레스를 받으니까 내가 괴로워지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런데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에요. 감정대로 행동하면 속은 조금 시원하겠죠. 성질이 날 때 욕을 해버리거나 그냥 때려버리면 속은 조금 시원하지만, 그렇게 했을 때 돌아오는 과보는 그것보다 훨씬 더 큽니다. 그런 큰 손실을 막아야 하기 때문에 계율을 지키는 것이 첫 번째 단계입니다.
그러나 계율만 지킨다고 해서 고뇌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니에요.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계율을 어겼다가, 지켰다가, 또 어기는 것을 자꾸 반복하게 돼요. 감정을 터뜨리면 손실이 따르니까 후회를 하게 되고, 감정을 억제하면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세 번 이상 못 참는다고 하잖아요. 계율을 지키느라 감정을 억압하면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는 문제가 생깁니다.
계율도 지키고 스트레스도 안 받는 방법
두 번째 단계는 이 스트레스를 안 받도록 하는 겁니다. 그러려면 감정이 왜 일어나는지를 알아야 해요. 감정이 일어나는 이유는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온 삶의 습관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걸 인도 말로 ‘까르마’라고 해요. 외부에서 자극이 탁 오면 이 까르마가 자동으로 반응하는 거예요. 그때 내가 깨어있지 못하면 휩쓸리게 됩니다. 감정이 확 올라오면 뭐라고들 표현합니까? ‘아이고, 나도 모르게 그랬다’, ‘무의식적으로 그랬다’, ‘습관적으로 그랬다’, 이렇게 세 가지 표현을 많이 쓰죠. 나도 모르게 그랬다는 건 ‘무지(無知)’를 뜻합니다. 무의식적으로 그랬다거나 습관적으로 그랬다는 건 깨어있지 못했다는 것을 뜻해요. 그래서 이런 감정이 안 일어나려면 늘 깨어있어야 합니다. 이 깨어있기가 두 번째 단계예요.
자극이 와서 기분이 팍 일어날 때 ‘알아차림’이 있어야 합니다. 알아차림이란 그냥 뭘 보고 알아차리는 것을 뜻하는 게 아니에요. 의식의 작용이 아니라 무의식의 작용으로 일어나는 것을 알아차리려면 찰나 찰나에 깨어있어야 합니다. 놓칠 때 ‘아, 놓쳤구나’ 하는 것이라도 금방 알아차려야 해요. 이것을 ‘선정(禪定)’이라고 합니다. 첫째, 계율을 지켜야 하고, 둘째, 선정을 닦아야 합니다. 선정의 핵심은 ‘알아차림’이에요.
원래 알아차림의 주된 대상은 감정입니다. 감정이 일어나는 것을 알아차리는 전 단계로 호흡을 알아차리는 연습을 하는 거예요. 호흡을 알아차리는 연습을 해서 호흡이 여실히 알아차려지면, 감정이 일어나는 것을 알아차리기가 매우 쉬워집니다. 물론 호흡에 비해 감정은 알아차리기가 훨씬 더 어렵죠. 그래서 호흡을 알아차리는 게 감정을 알아차리는 전 단계가 되는 겁니다. 호흡을 알아차리는 것을 ‘아나빠나(Anapana)’라고 하고, 감정을 알아차리는 것을 ‘위빠사나(vipassana)’라고 합니다.
호흡을 알아차리는 것만 열심히 해도 평정심을 유지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됩니다. 감정이 일어날 때 감정은 못 알아차려도 호흡만 여실히 알아차리면 마음이 들뜨지 않아요. 감정이 일어나면 호흡이 가빠지기 때문에 감정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감정은 일어나는데 호흡은 그대로인 경우는 없어요. 감정이 일어나면 에너지가 들기 때문에 호흡이 미세하게 가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감정을 따라가지도 말고, 억누르지도 말고
그래서 감정이 일어날 때 호흡의 미세한 변화를 알아차려야 해요. 호흡이 거칠 때 호흡을 알아차리는 것은 평정심을 갖는데 별다른 영향을 못 줍니다. 호흡의 변화가 미세할 때 알아차려야 평정심을 유지하는데 영향을 줄 수 있어요. 하루에 밥을 세 끼 다 챙겨 먹을 때는 링거를 맞아도 맞았는지 표도 안 나지만, 일주일 정도 단식을 하거나 굶고 있을 때 링거를 한 대 탁 맞으면 맞기 전과 맞은 후에 표가 많이 나요. 누워 있던 사람이 벌떡 일어나질 정도로 표가 납니다. 그것처럼 이미 일상적인 거친 호흡을 하고 있는 중에는 미세한 감정의 변화를 알아차릴 수가 없어요. 반면, 호흡을 고요히 하고 있을 때는 감정의 변화가 일어나면 금방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알아차림의 목표는 감정에 있지, 호흡에 있는 것은 아니에요. 호흡을 통해서 감정을 알아차리는 거예요. 호흡이 가쁘냐, 호흡이 불규칙하냐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에요. 불규칙하면 불규칙한 대로 알아차리면 되고, 가쁘면 가쁜 대로 알아차리면 됩니다. ‘호흡은 고요해야 한다’, ‘호흡은 순조로워야 한다’, 이렇게 목적을 정하면 안 돼요. 그건 내가 의도하는 거잖아요. 몸은 자연스럽게 반응합니다. 감정 또한 내가 의도하는 대로 일어나는 게 아니에요. 몸을 움직이면 호흡이 가빠지는 것처럼, 외부의 자극이 오면 그냥 내 까르마에 의해서 감정이 자동으로 일어나요. 그걸 알아차리면 이 감정으로부터 내가 자유로울 수 있어요. 감정에 끌려가지 않게 됩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 선정을 닦는 거예요.
명상을 하는 목적은 호흡의 고요함이 아니라 마음의 고요함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고요하면 결과적으로 호흡도 고요해집니다. 물론 말하고 행동하면 마음이 약간 들뜨기 마련이지만, 이런 고요함을 비교적 유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누군가가 욕설을 해도 어느 정도 고요함을 유지할 수 있으면, 계율을 지키기가 아주 쉬워져요. 감정이 이미 들떠 버렸을 때 계율을 지키려면 엄청나게 억센 힘으로 눌러야 하니까 스트레스를 굉장히 많이 받게 돼요. 그런데 선정을 닦으면, 남이 볼 때는 ‘아, 저 사람이 감정을 억제하고 있구나’라고 하지만, 본인은 감정을 억제하는 데 힘이 전혀 안 들어요. 평정심을 딱 유지하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선정을 닦는 거예요.”
법문이 끝난 후 대중들은 300배 절을 하며 법문을 마음 깊이 새기고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저녁 7시 30분에는 직장인, 저녁반을 위한 수행 법회가 열렸습니다. 저녁에도 전국 법당에 생중계로 법회가 방송되었습니다.
“수행자는 매일 수행을 해야 합니다. 물론 원칙적으로는 찰나도 놓치지 말고 늘 알아차림을 유지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렇게 할 수 없다면 적어도 하루에 한 시간은 자신을 돌아보며 점검을 해야 합니다.
또, 정초에는 한 해를 시작하며 3일간 정진을 하고, 출가열반재일을 맞아서 일주일간 정진을 해야 합니다. 여름 방학 때는 일주일이든 보름이든 휴가를 내서 명상을 하면서 자기를 정화해야 합니다. 연말에도 들뜨기보다는 차분하게 정진을 하면 좋습니다. 일상적으로도 정진을 해야 하지만 일 년 중에 몇 차례 기간을 정해서 꾸준히 정진을 해 나가면 굳이 출가 수행자가 되지 않더라도 자신을 오롯이 지켜나갈 수가 있어요. 정토회는 출가자 중심의 수행자 모임이 아니라, 일상생활을 하면서도 수행자로 살아갈 수 있는 재가자 중심의 수행 공동체입니다. 대중이 주인이 돼서 대중을 위하는 수행 공동체예요. 그러니 여러분 스스로 ‘나는 수행자다’라는 정체성과 자부심을 가지고 꾸준히 정진을 해나가시기 바랍니다.”
스님은 꾸준히 정진할 것을 당부한 후 질문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사람을 고치려고 하면 피곤하다는 생각이 있어서, 인간관계든 일이든 외면할 때가 있습니다.
남자 어른 앞에서는 긴장하고 할 말을 다 못 해요.
원래 할 말을 잘 못하고 참는 성격이었는데, 정진을 시작하고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하기 시작했는데 다른 사람들과 부딪칠 것이 걱정돼요.
정토회 내에 왜 사모임을 만들면 안 되나요?
명상수련을 다녀온 후 일주일간 매일 새벽에 명상을 하는데 너무 졸려요. 잠에 대한 업식을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스님은 5명의 질문을 받은 후 자기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정진을 부지런히 할 것을 당부하며 법회를 마무리하였습니다.
“자기감정을 합리화하면 끝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감정을 무시하면 안 돼요. 지금 가지고 있는 업식은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해요. 화가 나면 화가 나는 자기를, 잔소리하면 잔소리하는 자기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자신을 합리화해도 안 되고, 자신을 외면해도 안 돼요.
우리는 첫째, 자신을 알고 이해해야 하고 둘째, 업식에 놀아나지 않도록 극복해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연습은 안 하고 자꾸 저절로 좋아지기만을 바라고 욕심을 부리니까 자신에게 좌절하는 거예요. 업식을 바꾸는 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닌데도 너무 손쉽게 하려 드니까 자꾸 자기한테 자기가 실망하는 겁니다.
여러분들 다 괜찮아요. 성질 좀 내고 이런저런 부족함이 있긴 해도 다 괜찮은 사람들이에요.(모두 웃음) 부족하다고 하지만 그만큼이라도 하는 게 어디예요? 그래도 여기 나와서 법문이라도 듣고 수행해보겠다고 하는 것만 해도 사실은 가상한 거예요.(모두 웃음)
그러나 자기로부터 자유롭고 싶다면 감정을 살피고 알아차려야 해요. ‘자기감정으로부터 자유롭다’는 건 주변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거예요. 누가 이런 말을 하든 저런 행동을 하든, 이런 사건이 생기든 저런 사건이 생기든 거기에 내 감정이 널뛰기를 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운전으로 비유해보면, 나만 잘한다고 다 되는 게 아니에요. 내가 운전을 못해서 사고를 낼 수도 있어요. 그러니 첫째, 자기가 운전을 잘해야 해요. 그런데 두 번째, 내가 아무리 운전을 잘해도 사고가 나요. 앞차가 갑자기 급브레이크를 밟을 수도 있고, 끼어들어올 수도 있고, 뒤차가 들이받을 수도 있잖아요. 내가 실수해서 그럴 수도 있지만 주위 사람들이 잘못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안전거리를 어느 정도 확보하고 다니는 거예요.
주위에서 이런 말을 하든 저런 말을 하든, 이런 행동을 하든 저런 행동을 하든, 이런 사람을 만나든 저런 사람을 만나든, 이런 일이 생기든 저런 일이 생기든, 거기로부터 자기가 조금 자유로워져야 해요. 감정이 널뛰더라도 금방 가라앉히고, 기분이 조금 상하더라도 금방 회복을 하고, 안되더라도 다시 도전해보고요.
여러분은 완전히 미쳐 날뛰잖아요.(모두 웃음) 어떤 사건이 생기고 나서 이틀, 사흘이 지났는데도 ‘그놈의 자식!’ 이러면서 화를 내고 있어요. 몇 분 정도 미치는 것까지는 이해가 됩니다만, 어떤 사람은 10년씩 독심을 품기도 해요.(모두 웃음)
그러니까 변화를 시도해야 합니다. 변화를 시도할 때는 반드시 힘이 가해져야 합니다. 그것도 꾸준히 힘이 가해져야 변화가 일어나요. 내 업식에 대해서도, 세상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노력은 안 하고 저절로 변하기만을 원해요. 잘 안 되면 방법을 찾아서 되도록 해야 합니다. 안 된다고 괴로워하기만 하는 건 욕심이에요.
힘을 가해서 변화를 시도해도 안 될 수가 있어요. 세상이 어떻게 다 내가 바라는 대로 다 되겠어요? 안 되면 연구를 해서 다시 하면 돼요. 또 안 되면 또 연구를 해서 하고, 또 안 되면 또 연구를 해서 하고요.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뭐 있겠나’라는 생각이 들면 그만둬도 돼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그만두면 미련이 생기고, 안 되면 괴로워요. 온갖 게 다 괴로움의 원인이 돼요. 사람이 태어나서 시간이 흐르면 자라게 마련이에요. 그런데 ‘안 자랐으면 좋겠다’라고 하면 괴로울 수밖에 없죠. 나이가 들면 눈이 잘 안 보이고 머리가 하얗게 세는 게 당연해요. 그런데 ‘안 늙었으면 좋겠다’라고 바라니까 괴롭죠. 늙는 게 괴로움이 아니라, 안 늙으려고 하니까 괴로운 거예요.
순리대로 살면 별로 애쓰지 않아도 되는데, 안 늙으려고 애를 얼마나 많이 씁니까? 젊을 땐 노란 게 좋다고 까만 머리를 노랗게 물들이더니, 이제는 또 하얀 머리를 검게 물들여요.(모두 웃음) 그게 다 껄떡거리는 거예요. 검은 게 뭐가 좋아요? 유럽 사람들은 원래 머리가 노란데요. 머리카락이 곱슬거리면 편다고 난리고, 머리카락이 펴져 있으면 또 곱슬머리를 만든다고 난리예요. 검으면 노랗게 칠하고, 희면 또 검게 칠하고요. 늘 이러니까 바쁘기는 바쁘죠.(모두 웃음) 세월의 흐름을 거스르려는 노력은 잠깐 먹혀들 수 있을지 몰라도 근본적으로는 먹혀들 수가 없어요. 그런 노력은 할 필요가 없어요. 여러분은 그런 데 이리저리 신경을 많이 쓰니까 인생이 피곤한 거예요.
조금만 자기를 알아차리고 자기를 관찰하면 내가 얼마나 독선적인지 알 수 있어요. 남이 이런 말 하면 ‘그런 말 하면 안 돼, 이런 말 해라’라고 하고, 그렇게 행동하면 ‘저렇게 행동해라’라고 하면서 온갖 세상일에 다 간섭하잖아요. 그게 바로 자기감정에 놀아난다는 거예요. 내가 간섭한다지만 ‘나’라고 할 게 없습니다. 내 업식이 그렇게 작동을 하는 거예요. 그것을 알아차려서 마음을 진정시키고 업식으로부터 자유로워지면 사는 게 얼마나 재미있는지 몰라요. 여러분들 다 괜찮은 사람들이어서 같이 살면 참 재미있어요. 그런데 여기 있는 사람들이 다 문제가 있다고 보니까 살기가 힘든 거예요.(모두 웃음)
여러분이 얼마나 까다로운지 한 번 생각해보세요. 이 세상의 그 많은 남자, 그 많은 여자 중에 고르고 골라서 연애를 하거나 결혼했잖아요. 그런데 그 인간 하고도 안 맞춰지잖아요.(모두 웃음) 그러니 얼마나 까다로워요? 내 마음에 딱 드는 사람은 이 세상에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도망 안 가고 한 집에 살아주는 것만 해도 고맙다’, ‘남자면 됐다’, ‘여자면 됐다’, 이런 정도로 요구를 낮추면 아무 하고나 살 수 있어요. 요구가 높아지면 누구 하고도 못 살아요.
조금만 자기를 알아차려 보세요. 거창하게 단식을 하거나 고행을 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자기감정이나 성질대로 하려 들지 말고 조금만 이렇게 자기 조절을 하면 주위 사람들이 다 좋아해요. 자기한테도 남에게도 나쁠 게 없어요.
조금만 정진을 하시면 부처님 법이 얼마나 좋은지 알 수 있을 거예요. 과학과 문명이 발달해도 삶의 기본 원리와 이치를 터득하지 않고는 인간의 고뇌가 끝날 수 없습니다. 그러니 부지런히 정진하시기 바랍니다.”
법문은 따뜻했지만, 무엇보다 수행이 중요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녁에도 법문이 끝난 후 300배 정진이 이어졌습니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절을 하려니 몸은 피곤했지만, 고단한 일상에 묻힌 마음을 돌아볼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내일은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날입니다. 스님은 열반일을 기념하여 법문을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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