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 離相寂滅分 (이상적멸분)

 

爾時 須菩堤 聞說是經 深解義趣 涕淚悲泣 而白佛言 稀有世尊, 佛說如是甚深經典

이시 수보리 문설시경 심해의취 체루비읍 이백불언 희유세존, 불설여시심심경전

我從昔來 所得蕙眼 未曾得 聞 如是經. 世尊, 若復有人 得聞是經 信心淸淨 卽生實相

아종석래 소득혜안 미증득 문 여시경. 세존, 약부유인 득문시경 신심청정 즉생실상

當知是人 成就第一稀有 功德. 世尊, 是實相者 卽是非相 是故如來說名實相. 世尊,

당지시인 성취제일희유 공덕. 세존, 시실상자 즉시비상 시고여래설명실상. 세존,

我今得聞如是 經典 信解受持 不足爲難 若當來世 後五百歲 其有衆生 得聞是經 信解受持 是人

아금득문여시 경전 신해수지 부족위난 약당내세 후오백세 기유중생 득문시경 신해수지 시인

卽 爲第一稀有. 何以故. 此人 無我相無人相 無衆生相

즉 위제일희유. 하이고. 차인 무아상무인상 무중생상

無壽者相. 所以者何. 我相卽是 非相 人相 衆生相 壽者相 卽是非相.

무수자상. 소이자하. 아상즉시 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 즉시비상.

何以故. 離一切諸相 卽名諸佛. 佛告 須菩堤 如是如是. 若復有人 得聞

하이고. 이일체제상 즉명제불. 불고 수보리 여시여시. 약부유인 득문

是經 不驚不怖不畏 當知是人 甚爲稀有. 何以故. 須菩堤, 如來說第一

시경 불경불포불외 당지시인 심위희유. 하이고. 수보리, 여래설제일

波羅蜜 卽非第一波羅蜜 是名第一波羅蜜. 須菩堤, 忍辱波羅蜜 如來

바라밀 즉비제일바라밀 시명제일바라밀. 수보리, 인욕바라밀 여래

說 非忍辱 波羅蜜 是名忍辱波羅蜜, 何以故 須菩堤 如我昔爲歌利王

설 비인욕 바라밀 시명인욕바라밀, 하이고 수보리 여아석위가리왕

割截身體 於我爾時 無我相 無人相 無衆生相 無壽者相. 何以故. 我於

할절신체 어아이시 무아상 무인상 무중생상 무수자상. 하이고. 아어

往昔 節節支解時 若有我相 人相 衆生相 壽者相 應生瞋恨. 須菩堤,

왕석 절절지해시 약유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 응생진한. 수보리,

又念過去 於五百世 作忍辱仙人 於爾所世 無我相 無人相 無衆生相

우념과거 어오백세 작인욕선인 어이소세 무아상 무인상 무중생상

無壽者相. 是故 須菩堤, 菩薩 應離 一切相 發阿耨多羅三藐三菩堤心.

무수자상. 시고 수보리, 보살 응리 일체상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

不應住聲香味觸法生心 應生無所住心, 若心 有住 卽爲非住. 是故,

불응주성향미촉법생심 응생무소주심, 약심 유주 즉위비주. 시고,

佛說菩薩 心不應 住色布施. 須菩堤, 菩薩 爲利益一切衆生 應如是布

불설보살 심불응 주색보시. 수보리, 보살 위리익일체중생 응여시보

施 如來說一切諸相 卽是非相 又說一切衆生 卽非衆生. 須菩堤, 如來

시 여래설일체제상 즉시비상 우설일체중생 즉비중생. 수보리, 여래

是 眞語者 實語者 如語者 不語者 不異語者. 須菩堤, 如來所得法

시 진어자 실어자 여어자 불광어자 불이어자. 수보리, 여래소득법

此法 無實虛 須菩堤, 若菩薩 心住於法 而行布施如人入闇 卽無所見,

차법 무실허 수보리, 약보살 심주어법 이행보시여인입암 즉무소견,

若菩薩 心不住法 而行布施 如人有目 日光明照 見種種色 須菩提當

약보살 심부주법 이행보시 여인유목 일광명조 견종종색 수보리당

來之世 若有善男子善女人能於此經 受持讀誦 卽爲如來 以佛智慧悉

래지세 약유선남자선녀인능어차경 수지독송 즉위여래 이불지혜실

知 是人 悉見是人 皆得成就 無量無邊功德.

지 시인 실견시인 개득성취 무량무변공덕.

 

닦는다는 생각없이 닦아라

 

이 때에 수보리가 이 경의 매우 깊은 뜻을 알고서 훌쩍훌쩍 울면서 부처님께 여쭈되,

 

"존경하옵는 세존이시여! 부처님의 가르침 가운데 이와 같이 뜻이 깊은 경전은 제가 옛날부터 지금까지 얻은 지혜로는 일찍이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세존이시여, 어떤 사람이 이 경을 듣고 '참 그 말이 옳다'하고 신심이 청정하여 '이렇게 닦으면 누구든지 자성이 밝아지겠다.'라고 한다면 이 사람은 제일 값있는 공덕을 성취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 성취한 실상이라고 하는 것은 곧 상이 아니며, 여래께서 실상이라고 이름하셨을 뿐입니다. 세존님 내가 이런 경전을 듣고서 믿고 알고 받아가지는 것은 쉬운 일이나, 부처님이 안 계신 후 오백년에 어떤 중생이 이 경을 듣고서 믿고 알고 받아 지니면, 이 사람은 참으로 귀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이 사람은 나라고 하는 상이나 남이라고 하는 상이나 중생이라는 상이나 수자라는 상이 없기 때문입니다. 나라는 생각이나 남이라는 생각이나 중생수자라는 생각을 여의면 그 사람에게 상이 없으니, 그건 그냥 부처님입니다. "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시되, "옳은 말이다. 어떤 사람이 이 경을 듣고서 놀라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고 무서워하지도 않으면 이 사람은 매우 귀한 사람이니라. 수보리야, 여래가 설하신 제일바라밀(보시바라밀)은 제일바라밀이 아니오, 이름이 제일바라밀이니라. 수보리야, 여래께서 말씀하신 인욕바라밀은 이름이 인욕바라밀뿐이니라. 수보리야, 이름이 인욕바라밀뿐이니라. 수보리야, 내가 옛날에 가리왕한테 육체를 베이고 끊기고 했을 때, 내가 나라는 생각도 없고 남이라는 생각도 없고 중생이란 생각도 없고 수자라는 생각도 없었느니라. 만약 내가 옛날에 마디마디 베이고 끊기고 할 때에, 나라는 생각이나 남이라는 생각이나 중생이라는 생각이나 수자라는 생각만 있었으며 내가 성을 냈을 것이다. 또한 수보리야, 내가 과거 오백생전에 인욕공부를 하고 있을 때 그 때 나라는 생각과 남이라는 생각과 중생이라는 생각과 수자라는 생각이 없었더니라. 수보리야, 보살은 분별없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는 것이니라. 얼굴이 예쁘다고 거기에 의지해서 마음을 내거나, 그 사람 음성이 좋다고 거기에 의지해서 마음을 내거나 냄새라든가 맛 혹은 살이 보드랍다고 마음을 내지 아니하고 어디든지 마음을 두지 말고 그 마음을 낼 것이니라.

 

이런 고로 부처님께서 설하시되 보살은 마음을 형상에 집착하지 말고 모든 중생을 돕기 위하여 보시해야 하느니라.

 

여래께서 말씀하신 일체의 모든 상은 곧 상이 아니며 일체의 중생이라는 것도 마음이 미한 것이 중생이며 깨치고 나면 중생이 아니니라. 수보리야, 여래는 진실한 말을 하는 사람이요, 실체로 있는 말을 하는 사람이요, 같은 말을 하는 사람이요, 속이는 말을 아니 하는 사람이며, 변덕스러운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니라. 수보리야, 여래가 얻은 법은 그 법 자체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고 그 때 그 때의 경우에 따라 필요해서 이야기한 것이니, 실다움도 아니지만 거짓말도 아닐 것이니라. 수보리야, 보살이 법에 집착하여 보시를 행한다면, 사람이 컴컴한데 들어가 있는 것 같아서 컴컴하여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자기 마음도 컴컴해지느니라. 만약 보살이 마음을 어느 곳에 집착하지 않고 보시를 행하면 사람의 눈으로 밝은 햇빛 속에서 가지가지 물질을 볼 수 있는 것과 같으니라. 수보리야, 앞으로 오는 세상에 착한 남자나 착한 여인이 이 경을 스스로 읽고 외우면 여래는 부처님의 지혜로써, 이 사람들은 결국 자성이 밝아질 것이라는 것을 다 아시며 다 보시느니라. "

 

 

▶14.離相寂滅分 (상을 떠나서 적멸함)

 

그 때에 수보리 가 이 경 설하심을 듣고 깊이 그 뜻을 잘 알고

눈물을 흘리고 슬피 울면서 부처님께 사뢰었다.

"희유하시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이렇게 심히 깊은 경전을 설하심은 제가 예로부터 얻은 바 혜안으로도

일찍이 이와 같은 경은 얻어듣지 못하였습니다."

 

희유하다는 것은 드믄 일이라는 뜻입니다.

금강경도 유명하지만 이것을 듣고 눈물을 흘린 수보리도 참 대단합니다.

진리의 말씀을 듣고 눈물을 흘린 옛 선배들이 종종 있습니다.

이얼마나 가슴에 닿고, 얼마나 감사했으면 눈물을 흘리겠습니까?

얼마나 신중하게 듣고 얼마나 집중해서 들었으면 눈물이 다 나오겠어요?

옛 사람들은 이렇게 자기를 위하여 좋은 말씀을 들려주면 깊이 눈물을 흘리면서 감사해했어요.

그러니까 가슴에 꽂혀서 바로 깨닫고 행하였던 것입니다.

금강경은 무상(無相), 무정(無定), 무위(無爲)를 가르칩니다.

그동안 각종 상(相)에 잡혀있고

자기 정함에 빠져있던 사람들이 그 스스로 만든 굴레에서 벗어나고

행하되 행한다는 생각을 내지 않으니 그렇게 편안하고 행복할 수가 없어요.

원함이 있으면 불행해집니다. 사람은 원래 행복해요.

스스로 원함이 그 행복을 막아서 불행했었는데 금강경 말씀을 듣고 행하되 행하지 않으니

이렇게 편안할 수가 없어요.

래서 수보리는 엉엉 울은 것입니다.

남자가 칠칠맞게 왜 울어? 할지 모르겠지만 진리를 접해보고 그대로 행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그런 기분 모릅니다.

사람마다 다 이유가 있어요.

만약 수보리가 금강경을 듣지 않았다면 전혀 새로운 눈을 뜨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수보리는 대단히 영리한 사람입니다.

처음에 보살은 일체 중생을 제도해도 제도했다는 상이 없어야 한다고 말한 부분에서

벌써 금강경을 다 알았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물으시면 부처님의 뜻을 아시고 정확히 대답하면서 설법을 들으면서 확신을

거듭 얻었습니다.

수보리는 많은 스승을 찾아다니면서 진리를 배웠으므로 지혜가 매우 뛰어난 사람입니다.

그러나 자기가 안 진리와 부처님의 진리를 비교하면 자기의 지혜는 매우 작은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러면서 수보리는 여기서 크게 깨닫고 북받히는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대중이 많은 가운데서도 울음이 터지고 말은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이 부분이 금강경의 핵심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수보리는 여기서 크게 깨달은 것입니다. 사람이 깨달으면 이렇게 됩니다.

그리고 이 경을 만나지 못했다면.... 하고 생각해보니까 정말 끔찍했어요.

아직도 조그마한 알음알이를 위대하다고 생각했을 것이고 잘난 것을 최고로 자랑했을 것이고

부자인 것을 뻐겼을 것이고 일류대학 나온 것을 으시댔을 것이고

깨달음 얻은 것을 자랑했을 것이고 30m 짜리 대형 불상을 보면 기기 죽었을 것이고

불교를 미신이라고 생각했을 것이고 진리는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고

깨달음도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고 32상을 갖춘 부처상이 부처라고 생각했을 것이고

그러니까 자기의 참 모습도 몰랐을 것이고 돈많은 사람 만나면 기죽었을 것이고

동창회에 나가서 잘나가는 친구가 레간자차에 기사두고 타고 다니는 것을 보면 눈골이 사나워 갑자기 술먹고 싶었을 것이고

그래서 술먹고 들어갔더니 마누라가 허구한날 술만 먹고 다닌다고 바가지가 심해서 홧김에 또 나가 포장마차에 가서 또 한잔....

전봇대에 쉬하고...박치기 하고.... 그랬을 것인데.... 이 말씀을 듣고

그런 것이 싹 없어졌으니 이 경을 만난 것이 이렇게 다행하고 감사하고........

그래서 펑펑 눈물을 흘린 것입니다.

가히 진리를 공부해보지 않은 사람은 몰라요.

이런 기분을........

진정한 진리를 듣고 깨달음이 깊으면 이렇게 눈물이 납니다.

경봉스님도 이뭣고를 들고 화두 공부하다가

하루는 툭 터져서 '이 놈이 바로 이 놈이구나' 하고 깨달았어요.

그리고는 으하하하하....하고 웃고는 막 논바닥으로 뛰어가서 뒹굴면서 좋아하다가 곧 눈물을 흘리면서

주인공아......네가 바로 나의 주인공이거늘 내가 이제야 너를 보게 되었으니......흑흑....내가 너를 찾아 그렇게 몇 년을 고생했는데

7일간 잠도 안자고 용맹정진 밥을 먹어도 이뭣고 길을 가도 이뭣고 부모님이 돌아가셔도 이뭣고

길에서 예쁜 아가씨를 만나 사랑하고 싶을 때도, 마음이 흔들릴 때도 이뭣고

눈먹고 귀먹은 자처럼 .....마치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처럼 그렇게 너를 찾아다닌지 수년만에야 이제 너를 보게 되다니 .....흑흑,,,고맙다.

이제라도 너를 보게 되었으니 고맙다.....흑흑....

하는 내용이 경봉스님 설법집에 나옵니다.

진실을 아는 순간은 이렇게 감동하게 되어있어요.

그런데 지금 우리는 허구한날 무엇에 감동하고 있습니까? 한번 되돌이켜 보아야 합니다.

이렇게 옛 사람과 오늘날 사람이 다르기 땜에 오늘날 영리한 자는 많으나

진실로 깨달은 자는 적은 것입니다.

진리를 찾아 목마른 자만이 물 한 잔에 감동해요.

목마르지 않은 자는 물을 주어도 감사한지 모릅니다.

진리는 자기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인데 왜 외면해야 합니까?

붓다 여러분!

언제 어디서러도 진리를 설하는 곳이 있으면 달려가서 들으시고

또 남에게 전하는 일을 생활화하여 이 땅에 엉뚱한 것이 휘날리는 것이 아니고

부처님의 이 진솔한 법이 휘날리게 합시당 ^^*

 

세존이시여, 만일 어떤 사람이 이 경을 듣고 신심이 청정하면

곧 실상(實相)이 나오리니, 마땅히 이 사람은 제일 희유한 공덕을 성취한 사람일 것이옵니다.

 

믿음을 강조한 부분이죠.

아무리 좋은 말씀도 믿지 않으면 소용 없잖아요

그래서 수보리는 오직 믿음만 있다면 실상이 나온다 하였으니

실상이 니온다 함은 진실이 나온단 말이니 진실을 깨닫게 된다,

진실을 알게 된다는 말입니다.

진실은 마음이 쉬었을 때 나옵니다.

사실 진실은 이미 여러분의 내부에 있습니다.

부처님, 참다운 인생, 행복, 진리 등등은 이미 여러분의 가슴에 꽉 차있어요.

다만 마음을 쉬면 그것들이 나타납니다. 물이 혼탁할 때는 자신의 진짜 모습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기의 모습이 상상이 안가요. 그래서 자기를 모르고 진실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은 마음이 쉬어있지 않기 때문에 자기의 진모습을 모르고 있어요.

간혹 커피마실 때.... 그것도 맥스웰 커피라면....

마음이 한순간 쉬어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 한 순간뿐 곧 이런 생각 저런 생각으로 혼탁질거예요.

그래서 마음은 한순간도 고요히 가만히 있지 못하고 계속 움직여요.

그래서 자기의 진 모습이 나타나지 않는 것입니다.

기차를 타고 부산에 가 보면....차창 속에서 밖을 보면....

모든 것이 뒤로 지나가는 것으로 보입니다.

나무가 뒤로 휙 휙 지나가요.

나는 가만히 앉아있는데 토지가....세상이 움직이는 것으로 보일 것입니다.

그래서 나무도 지나가고.....강도 지나가고.....대전도 지나가는구나 하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 사람이 보는 현실이 진실일까요?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실제 기차에 타면 누구나 모든 사물이 지나가는 것으로 보여요.

무엇 때문에 이런 착시 현상이 나오는 것일까요?

내가 움직이고 있어서 그래요.

내가 앞으로 가면 사물은 뒤로 지나가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앞으로 가는 것을 중지하지 않으면

절대 진실을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마음을 중지해라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내가 물건을 보고 마음이 흔들리면 세상의 진실을 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죽음이 있고, 더러움이 있고, 깨끗함이 있으며....

늘어남과 줄어듦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실제 이런 것은 없어요.

만약 마음이 흔들리는 것을 중지하면 세상은 제자리에 가만히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혼탁한 물을 가라앉히듯 마음을 고요히 중지시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물이 가라앉게 되고 이전에 자기가 보지 못했던

모든 것의 진실이 명백하게 나타게 되어있어요.

그런데 처음에..마음을 중지하라 하면 잘 안하려고 해요. 잘 안된다고.하면서

그러나 자꾸 하다보면 마음은 중지됩니다.

그것이 마음의 본성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참선할 때 망상으로 빠지는 것을 거두어들여 화두에 몰두하게 하는 것이고

염불하여 집중하게 하는 것이고..... 독경하여 집중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 곳에 집중하면 마음을 자유롭게 조정하게 되고 나중에 마음이 저절로 정지하게 됩니다.

전혀 다른 세상을 보게 되지요. 그때는 사람마다 다 이렇게 말해요.

거참 이상하다.......... 이런 세상이 있었나.......?

아니, 사람들이 다 저렇게 팔을 흔들고 다니네....?

거리가 예전에는 멀었는데 가깝네..저 사람이 내 부인이었어? 새로운 모습이네......

마음이 바뀌면 세상이 전혀 다르게 보이고 새롭게 보여요.

예전에 화를 내던 말에도 화가 안나고....... 짜증날 것도 아니라서 싱겁고.........

그렇게 약간 다르게 보이고 느껴져요.

그런데 이렇게 도인의 심성으로 돌아가려면

마음을 즉시 중지하던지, 수련해서 중지하던지 하여간에

먼저 부처님의 말씀을 믿는 것이 중요합니다.

믿으면 즉시 회복합니다.

그러나 믿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옛 선사들은 스승이 한마디 해주면 즉시 믿었어요.

그래서 빠르게 이 문안에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도 부처님 말씀은 즉시 믿어야 합니다. 의심하지 말고 일단 믿으세요.

자꾸 자기식으로 부처임 말씀을 해석하고 거부하고 하지 마시고 들은 즉시 믿으세요.

여러분은 지금 마음이 가라앉지 않아서........혼탁한 상태라 고요한 상태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이미 그 고요에 들어간 사람이라 고요한 심성으로 만물을 보면 모든 것의

진실이 보인다는 것을 안 분입니다.

그러니까, 부처님은 여러분과 같은 인간이니까, 신이 아니고....

부처님 말씀은 절대 여러분을 어긋나게 인도하지 않아요.

엉뚱한 신들의 세계를 소개하는 공상과학의 세계를 설한 것도 아니고

다만 마음이 중지했을 때 보여지는 세계를 말했을 뿐입니다.

그러니까 신이 아닌 사람, 그중에서도 뛰어난 스승이니까

부처님 말씀은 확 믿어버리세요. 그러면 절반은 얻은 것입니다.

그래서 이 도를 알려면 세 가지가 갖추어져야 한다고 하였는데

▶ 그 첫째가 믿음입니다.

▶ 둘째는 용맹심

▶ 셋째는 탐구심입니다.

알려는 마음이지요.

알려는 마음이 없으면 답도 없어요.

만약 어떤 사람이 이 경을 듣고 믿는 마음이 청정하면

그 사람은 정말 남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희안한 세계를 알게 된다는 말입니다.

믿음이 순수하여 잡되지 않아서 깨끗하면 아주 휘귀한 곳을 보게 된다는 말입니다.

세존이시여, 실상이란 곧 이 상이 아님이니

이런 까닭에 여래께서 실상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 혹은 수보리가, 혹은 여러분 중에 누가 실상이라고 말했다면

그것은 다만 언어를 통용하기 위한 명칭일 뿐이라는 것을 또 설명한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지금 이와 같은 경전을 얻어듣고 믿어 알고 받아 지니기는 족히 어렵지 않겠으나

만약 오는 세상 후 오백세에 그 어떤 중생이 이 경을 얻어듣고 믿고서 믿어 알고 받아 지닌다면,

이 사람은 곧 제일 희유함이 되겠습니다.

부처님 당시에는 당연히 부처님이 계시고 또 부처님은 언어의 변재를 얻은 분이라

들으면 누구나 다 믿었으나 만약 저 말세에, 5백세(60x500=30,000년)가 지난 뒤에도

누군가 이 말씀을 믿는다면 정말 이 사람은 희귀한 사람이 될 것이라는 말이죠.

사실 여러분이 여기 제 금강경강의를 죽 들어본 사람이라면

경이 참 쉽고 그렇게 어렵지 않으면서도 그 깊은 맛이 있다는 것에 대단한 매력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제가 강의하기 때문에 그래요.

제가 강의하면 모든 경들이 다 쉬워져요.

나는 어려운 문자를 써가면서 강의하는 사람들 참 이해가 안되요.

뭣 때문에 그렇게 어렵게 하고, 문자를 나열한다거나, 지나치게 이론적일 필요가 있겠어요?

금강경은 아주 쉬워요. 얼마든지 쉽게 할 수 있어요.

그런데 그렇게 어렵게 하는 것은 강의하는 사람도 금강경의 뜻을 제대로 몰라서 그래요.

자기도 모르니까 어려운 단어로 얼버무리는 것입니다.

확실히 알면 쉽게 한마디면 되요.

아마 여기 금강경강의 듣는 사람들은 경이 참 쉽구나 하는 것을 알거예요.

그리고 다른 곳에서 듣지 못한 독특한 것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될 것입니다.

제가 가끔 제 강의를 봐도 그래요.

이 사람이 누군지 몰라도 참 쉽고 정확하게 하는구나^^*

그 이유는 불경을 관통해서 보기 때문에 그래요.

글을 보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의 마음을 봅니다.

이런 이유로 이렇게 말하셨구나....하고 봐요.

그러니까 쉽게 나오죠. 그런데 이렇게 경을 보는 사람 잘 없습니다.

그러니까 제 강의를 듣는 사람 복받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것도 제가 있을 때는 쉬워요.

그러다가 제가 죽고 누군가가 제 말을 또 해석하게 되면 어렵게 바뀔지도 몰라요.

그래서 나중 사람들은 전혀 제 뜻을 파악못하고 문자들의 해석을 하느라 정신만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이 경을 보는 사람들은 문제가 없는데 저 뒤에도 제 그 글을 보고 제대로 파악하는 사람은 매우 희귀할거에요.

그래서 고전을 볼 때 저는 주석을 잘 안봅니다.

주석이란 주관적인 해석이라 그것을 보면 진짜를 보는데 오히려 걸림돌이 되요.

바로 원문을 봅니다.

여기 금강경도 마찬가지 입니다. 바로 부처님 원문을 보지 주적은 안봐요.

주석 달린 고전도 많아요. 요즘 더욱 그렇죠

그러나 오늘날은 원문을 그대로 보고 강의하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그것이 더 정확하게 부처님의 뜻에 다가가요.

하옇튼 그래서.... 부처님 말씀도 자꾸 주석을 붙여서 한 학기 강의 듣고 난 뒤에도 무엇을 들었는지 남는 것이 없어요.

오늘날도 그러는데 저 3만년 뒤에 어떤 초인이.... 석우스님 같은 초인이.....^^*

이 경을 보고 제대로 이해하고 믿는다면 그것은 매우 드믄 일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사람은 아상이 없으며 인상이 없으며 중생상이 없으며 수자상도 없기 때문입니다.

저 뒷 사람이 이해하려면 먼저 아상과 인상과 중생상 수자상이 없어야 합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이 경을 보면서 아상이 있으면 절대 이 경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합니다.

자기가 병들었고 마음이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꼭 자기 식으로 이해하려고 해요.

어떻게 기차를 탄 사람이 사물의 진실을 이해할 수 있겠어요.

이 경은 자기를 버리고 봐야 해요. 그래야 제대로 보입니다.

마찬가지로 타인이 있다는 생각, 중생이 있다는 생각 영원이 있다는 생각이 있으면

이 경의 뜻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 경을 이해하는 사람은 이런 사상이 없으므로 이해하게 되는 것이라는 말이지요.

왜 말세중생이 4상이 없는가? 하면 사상은 본래 없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본래 있는 것이라면 누구나 없애기 어려우나, 본래 없는 것이기 때문에 한순간 없앨수 있어요.

까닭이 무엇인가 하면 아상은 곧 상이 아니며

인상, 중생상, 수자상도 곧 이 상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일체 모든 상을 떠난 것을 이름하여 즉 모든 부처님이라 하기 때문입니다.”

수보리가 정확하게 알았어요.

사상은 본래 없고 다만 이름만 있는데........

그것은 부처님의 본심은 일체 모든 언설이나 모양이나 뜻을 떠나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여러분이 고요했을 때를 생각해보면 되요.

고요할 때 거기에 무엇이 있겠어요?

그 고요함의 연속이 바로 부처님의 마음이고 진실이기 때문에

본래 사상은 없다고 말한 것입니다.

▶ 4상=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

본래 없으니 미래 사람도 이 경을 한번 믿고 즉시 이해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이르시되

“그렇다, 그렇다."

만약 어떤 사람이 이 경을 듣고 놀라지 않고 겁내지 않으며 두려워하지도 않으면

마땅히 알라, 이 사람은 매우 희유함이 되느니라.

주변에 자기 생각 속에 빠져있는 사람들 투성이인데 거기서 어떤 사람이 이 경........

무상(無相), 무정(無定), 무위(無爲)를 설하는 이 경을 듣고 놀라지도 않고 겁내지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는다면 그 사람은 매우 휘귀한 사람이 되겠지요.

뒤로 갈수록 그런 사람이 드물지만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사람은 항상 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이 경을 듣고 깨달아 또 사람들을 일깨우게 될 것입니다.

혹시 이 경대로 살면 사이비가 되는 것이 아니야? 하는 두려움이 있다는 말이죠.

여러분도 제가 이렇게 현재 같이 있으니까 잘 받아들이지

혼자 이 공부를 하게 되면 부처님을 사이비라 할지 몰라요.

모르니까 ........혼탁한 마음에 있으니까

마음이 움직여서 진실을 못보니까, 그런 것이지요.

무슨 까닭인가.

수보리야, 여래가 설한 제일 바라밀이 제일 바라밀이 아님일세, 그 이름이 제일 바라밀이니라.

부처님께서 지금 사상뿐만 아니라 6바라밀도 그 실체는 없고 다만 이름뿐이라고

설명하고 계십니다.

▶ 6바라밀=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

6바라밀뜻은 여섯가지 수행이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수행해야할 6섯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이 정도는 누구나 외워두어야 합니다.

▶ 보시= 베풀다

▶ 지계=계를 지키다

▶ 인욕=참다

▶ 정진=부지런히 살다

▶ 선정=집중, 몰두, 삼매

▶ 지혜=텅 빈 지혜

평상시에 이것을 실천해야 수행자입니다.

다 외우세요.

그런데 이 중에 보시바라밀이라는 것도 한낱 이름뿐 그 실체는 없다는 말이지요.

보시라고 하지만 보시한 것이 어디 흔적이 있습니까?

이미 지나간 것을 생각해보아야 무얼하겠어요?

이미 준 것이라 내 것이 아닌 이상에야 .나도 없는 것인데 거기 무슨 의미있는 행동이 있겠어요.

인생이 꿈인데 꿈 속에서 무얼 했다고 무엇이 한 것이겠어요?

다만 주었다는 명칭만 있을 뿐 그런 것은 없다는 것이지요.

그러니 주고도 준 것에 집착하면 바보죠.

주어도 주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의해야할 것은

그렇다고 그럼 안주어야겠구나 하고 생각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반두시 주어라.......이것이 부처님이 강조한 수행이죠.

그러나 주어도 주었다는 생각이 없으라. 왜냐면 주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주어도 준 것은 없다 이것이 부처님 말씀입니다.

준 것에 집착하면 그 순간부터 준 것 때문에 괴로워지니까

주는 순간 잊어버려라 이것이 부처님 말씀입니다.

이미 내 것이 아니니까, 줄 때 주었다는 집착도 주어라 라는 말입니다.

수보리야, 인욕바라밀도 여래가 설하되 인욕바라밀이 아니고 그 이름이 인욕바라밀이니라.

수보리야, 네가 온갖 수모를 참을 때 참고 있다는 것까지 참아라.

그래서 참고 있다든지, 참았다든지 하는 흔적을 없애라 라는 말입니다.

인욕이란 다만 이름뿐이니까 말입니다.

어찌한 까닭인가.

수보리야, 내가 옛적 가리왕에게 신체를 낱낱이 베임을 당할 때에

나는 그때에 아상이 없었고 인상이 없었으며 중생상도 없었고 수자상도 없었느니라.

왜냐하면 내가 옛적에 마디마디 사지를 베일 때에 만약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 있었으면

응당 성내고 원망을 내었으리라.

옛날에 가리왕이 있었어요. 부처님 전생에

하루는 가리왕이 사냥을 나갔는데

왕이 피곤하여 잠시 낮잠을 자는 사이에 궁녀들이 주변에 유명한 선인이 있다는 말을 듣고

찾아가서 설법을 들었습니다.

왕이 깨어나서 궁녀들을 찾다가 선인이 있는 곳까지 왔는데

선인 앞에서 열심히 설법을 듣는 궁녀들을 보자 질투가 불같이 났어요.

"그대는 누구요?"

"나는 인욕을 수행하는 선인입니다."

"그대가 그렇게 인욕을 수행한다니 어디 한번 봅시다."

하고는 칼을 빼들고 단번에 한 쪽 팔을 잘라버렸습니다.

피는 분수같이 나오고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어요.

그러나 선인은 전혀 성내거나 원망하는 눈빛이 없었어요.

그러자 이번에는 다른 팔을 잘랐어요.

그래도 묵묵부답...........

그래서 또 다리를 자르고....그래도 아무 반응이 없자 미친듯이 전신을 갈갈이 도려냈어요.

그래도 반응이 없다가 죽을 무렵이 되자 하늘의 천왕에게 말합니다

"제석천이시어!

내가 만약 여기서 죽을 운명이라면 내 목숨을 가져가시고

그렇지 않고 더 수행하여 도를 이룰 운명이라면 저의 몸을 회복시켜주소서........"

하고 힘없이 소리칠 뿐이었습니다.

그러자 제석천왕이 놀라서 하늘에서 내려와 "선인이시어!

어찌 그렇게 잘 참습니까?

어찌 제가 이런 선인을 죽게 내버려두겠습니까?" 하고 합장하고 예배하자

즉시 전신이 다시 붙어서 멀쩡한 몸이 되었어요.

이것을 본 가리왕이 감동하여 예배하고 물러갔다는 설화가 있습니다

수보리야, 또 과거 오백세 동안에 인욕선인이었던 일을 생각하니

그때의 세상에서도 아상이 없었으며 인상도 없었고 중생상도 없었으며 수자상도 없었느니라.

또 부처님 전생에 5백세동안 인욕을 닦은 적이 있었는데

부처님은 한때에 왕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때 왕은 남에게 베풀어주는 일을 좋아했는데 하늘에 제석천왕이 내려와서

얼마나 잘 베푸나 보려고 백정의 몸으로 변신하여 왕의 몸을 달라고 했어요.

그러자 왕은 자기 살을 칼로 베어서 주었습니다.

그러면 이것을 팔면 남는 것이 없다하고 더 달라고 했어요.

그러면 또 베어주고.......그렇게 전신을 베어주었어도 성내거나 원망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부처님의 베품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부처님의 베품은 조건이 없는 베품이어요.

달라하면 이유를 묻지 않고 줍니다.

차라리 못줄 망정 그 이유는 뭇지 않는 것이 부처님의 베품이어요.

저도 금강경을 배우고는 남에게 줄때 그 이유를 묻지 않기로 했어요.

거지가 참 자주 와요. 그러면 있으면 줍니다.

아니, 젊은 사람이 왜 할 일이 없어서 얻으러 다녀요? 하고 묻지 않고.......

멀쩡한 사람이 달라해도 묻지 않고 주어요. 다만 없으면 못주어요.

제석천왕은 하늘의 왕입니다.

왕은 시험하기 위해서 살을 달라한 것이지요.

부처님은 달라하니까 이유를 묻지 않고 주었어요.

자기 살이 다 없어지는 데도 주었어요.

부처님은 그렇게 수행했습니다. 그래서 복인이 된 것이고

그런 복이 쌓여서 깨달음을 얻은 것입니다. 부처님 자식인 우리도 본받아야 합니다.

깨달음은 복이 없으면 얻지 못합니다.

그래서 선방스님들은 일부러 3개월 해제기간에 복을 짓기 위하여

낙도에 가서 봉사하기도 하고.논을 갈아 농부를 돕고,공장에 가서 돈을 벌어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주기도 합니다

그래야 마장이 안끼고 복을 만난다고 모두들 생각하죠.

여러분도 빨리 깨달으려면 복을 지어야 합니다.

그래야 좋은 도량, 좋은 스승을 만나서 한마디에 즉시 깨닫습니다

생각해보세요. 전생에 지은 업장이 많은데 .......

그 업장대로 살기도 바쁜데, 진리가 들어갈 틈이 어디 있겠어요?

이 법은 아무래도 좀 시간이 나야하고

자기를 돌아볼 기회가 있어야 결국 얻습니다.

그런 기회조차도 없이 평생 절에 가보지도 못한 사람은 깨달음은 커녕

부처님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 많아요.

스스로 붓다이면서도 자기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평생 살아가다니.......

이렇게 안타까울 데가 어디 있겠어요?

이때 고통스러울 때, 부처님은 성내거나 원망하는 아상이 없었습니다.

부처님은 고통을 받아들일뿐 그 누구도 원망하지 않습니다.

사방의 산이 몰려오면 어떻게 합니까?

사방의 산이 몰려오는데 어떻게 한단 말이냐?

조주선사의 선문답니다.

사방의 산은 생노병사입니다.

이것은 피일 수없는 운명이지요. 고요해야합니다^^~~

이때는 할 일이 없어요. 받아들이는 일만 있을 뿐........

부처님도 고통을 받아들여요. 단지 아풀뿐....에쿠~ㅇ허리양~~하고......

아무도 원망하거나 성내거나 하지 않아요.

여러분이 아풀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고 무지 아프다~~~..그래도..어쩌랴..내가 참지...^^;

절대 남원망하거나 괴롭히지 말고 병으로 병원에 있을 때도 그냥 아프세요.

이것이 도인의 행동입니다.

안 아픈 척할 필요도 없고 아픈 것을 받아들이뿐 남 괴롭히지는 말아요.

인상 쓸 것도 없고.죽을 때라 하면 그냥 죽음을 받아들이세요. 본래 죽음은 없습니다.

죽는 꿈을 꿀뿐.... 유언을 남길 것이 있으면 담담히 남기고.........

죽을 때 비참하게.........구차하게.............흉하게 남을 괴롭히면

부처님이 아닙니다.

이렇게 인욕을 실천한다 하여도 이것은 어디까지나 인욕이라는 이름만 있을 뿐입니다.

아무리 고통스러운 인욕을 한다 하여도 그것도 한갖 꿈과 같이 허망한 것일 뿐 실체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인욕을 실천한다 하여도 자랑할 것도 없고 대단하다 할 것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수보리야, 보살은 응당 일체상을 떠나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낼지니

응당 색에 머물러서 마음을 내지 말며,

응당 성, 향, 미, 촉, 법에 머물러서 마음을 내지 말고

응당 머문 바 없는 마음을 낼지니라.

지난 번에 6바라밀하다가 보시 인욕까지 했는데 원문에는 생략되었지만 나머지가 더 있습니다.

잠깐 보충하겠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보시, 인욕하듯이 나머지 4가지도 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

인욕 다음에는 지계입니다.

지계(持戒)는 계를 지키다는 뜻인데

부처님은 공을 기반으로 모든 것을 설하시지만

그렇다고 공에 매여있지도 않았습니다.

만약 공에 빠지면 그것도 병입니다.

가금 인터넷에 보면 사람들이 공(空)에 빠진 듯한 발언을 하시는데

이것은 공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고 공에 집착한 것입니다.

그 사람은 곧 병(病)들은 것입니다.

부처님은 색에도 머물지 않지만 공에도 머물지 않아요.

색이니 공이니 주장하는 것은 다 병입니다. 둘다 떠나야 합니다.

색에 집착하여 존재가 영원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위하여 공을 설하시고

공에 집착하여 모든 것은 공이라고 거기에 집착하여 아무 일도 안하는 사람을 위하여

계율을 설하셨고 각종 수행 종류를 설하셨어요.

색과 공을 잘 이해 하려면 살아있는 이대로 곧 공이라고 이해하면 됩니다.

이대로 색이면서 동시에 공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꿈 속에서 모든 일은 사실처럼 여겨지나 사실은 꿈입니다.

공이지요. 공에서 만든 세계여요.

그러나 꿈 속의 사람은 실제로 고통이 있고 어떤 모습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공이면서 동시에 색입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여요.

공이 변하여 만물이 되었으나 만물은 생주이멸하고 있는 어떤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몸을 가지고 있으면서 움직이지 않고 일하지 않고 있는 사람은

공에 떨어진 병자입니다.

그러면서 밥은 왜 먹나 몰라요?

몸을 가지고 있으니 몸은 부지런히 일하고

마음은 항상 무심을 유지하는 것이 바로 바르게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6섯가지 수행을 하되 했다거나 한다는 생각 없이 하라고 말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 중에서 수행자라면 계를 지켜야 되는데 계는 근본 4계가 중요합니다.

바로 살.도.음.망입니다. 살생, 도적질, 사음, 망어지요.

도의 입장에서는 필요없는 것이지만 사회는 이러한 질서가 없으면 매우 혼란하니까

깨달은 자라도 이 계를 지키라고 질서유지 차원에서 설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계를 보아도 부처님은 철저히 사람들과의 윤리지 어떤 신을 섬기라는 계가 아닙니다.

부처님은 철저히 객관적인 진리를 설하셨고, 사람들에게 맞는 말씀을 설하셨으며

사람을 가장 존경하였고 사람이 가장 귀하면서 사람은 스스로 행복한 존재라고 설하셨습니다.

계도 순전히 사람을 위하여 설하셨지, 어떤 다른 자를 위하여 설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이 계를 지킨다고 굳히 손해되거나 잡신에 매이는 것이 아니니까

꼭 지키도록 해야 합니다.

마음을 닦는 사람이라면 이정도는 지켜야 해요.

살생, 이것은 남의 생명을 죽이는 것 아닙니까? 비록 힘없는 생명이라도 함부러 죽이지 마세요.

도적질, 이것 왜 합니까?

남은 힘들게 벌어놓은 것 왜 몰래 훔칩니까? 다음 생에 그 몇 배를 갚으니까 절대 훔치지 마세요.

오히려 베풀어 주어야지 왜 훔칩니까? 훔치면 가난해집니다.

그리고 여기 제 금강경 수강하는 수강생들도 조심해야 합니다.

수강료 있다고 분명히 말했는데도 수강료 안내고 다니는 사람 있어요.

다 알지만 누구라고는 말 안합니당^^*

옛날에 선생님은 기성회비 안내면 매로 맞았어요.

그것은 받았으면 응당의 댓가를 내라, 공짜를 바라지 마라 라는 교육입니다.

그런 교육을 받고 자랐는데 성인이 되어서 공짜 좋아하면 안되잖아요.

강의하는 스님은 이 강의를 하기 위해서 30년간을 고생해서 공부했어요.

그리고 여기서 2시간을 봉사합니다.

아무리 인터넷이 공짜라고 해도 분명히 수강료있다고 했는데도 안내면 훔치는 것 밖에 안되잖아요.

내가 죄지으면서 남보고 큰 소리 치고 다닐 수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께 이제부터라도 꼭 수강료 내세요.

공연히 왜 빚을 집니까?

이것 하기 위해서 각 운영자님들은 얼마나 수고가 많으시겠어요.

앞으로 살아가시면서 두고 두고 아시겠지만 어디 가서 이런 강의 못듣습니다.

이렇게 강의하는 사람 없어요.

다음은 정진(精進)입니다.

정은 정미롭다는 뜻이고 진은 나간다는 뜻입니다. 정미롭게 나간다 라는 뜻인데

작은 계단을 올라가는 것 처럼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한 마디로 부지런히 살아라.

그것이 기도가 되었든 일이 되었든 개미처럼 한발 한발 딛어서 나아가라 라는 말입니다.

한꺼번에 단숨에 뛰어서 가지말고 하나 하나 딛으면서 나아가라라는 말입니다.

부처님은 욕심을 내지 마라고 하였어요.

실제로 사는데 욕심은 필요없습니다.

욕심은 몰라서 내는 것입니다.

어디 세상사가 욕심대로 되든가요?

욕심이 있던 없던 결론은 항상 똑같아요.

전생에 지은 복만큼만 들어옵니다.

그런데 분에 넘치는 욕심, 즉 자기가 전생에 지은 복보다 더한 것을 얻으려고 하니

그것이 얻어지겠습니까?

그러니까 단지 부지런히 일해라.

그러다 보면 전생이 업이 나타나는데 큰 복이면 자연히 거부가 될 것이고

작은 복이면 굶지않고 사니 부지런히 할 뿐이어라 이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자기의 복에 대하여 더 할 말이 많으나 여기는 금강경강의 시간이라

충분히 못하지만 하옇튼 자기가 전생에 지은 것 + 부지런함이 자기 삶입니다.

그러니까 부지런히 살아라 라는 말이 정진입니다.

선정(禪定)은 집중력을 기르는 것입니다.

만약 이 훈련을 해두지 않으면 다음 생에도 머리가 나빠져요. 산만해지고

염불, 기도, 참선을 통해서 잡념없이 하나에 몰두하는 수련을 자꾸 해야 합니다.

그래야 나중에 부처님의 마음을 완전히 회복합니다.

지혜(智慧)는 반야지혜입니다.

자기를 버리고 사용하는 것은 다 반야지혜이고

자기를 중심으로 한 이기적인 지혜는 반야지혜가 아닙니다.

그러니까 남에게 해를 주지 않는 범위내에서 지혜를 쓰면 반야지혜지요.

겸손하고, 나를 버리고 남을 존중하고.......죄진 자를 용서하고.....

그러면 반야지혜를 쓰는 것입니다.

이렇게 여섯가지를 항상 닦고 실천해야 합니다.

이렇게 6수행을 하더라도 했다던지 하고 있다는 생각이 조금도 없어야 합니다.

그냥 살아가듯이 하는 것입니다.

중요하기는 종요하나 이것도 결국 화장실에서 똥누는 것과 같습니다.

화장실 가는 것 중요합니다. 안갈 수없어요.

그러나 갔다 와서 자랑하는 사람 봤습니까?

큰 소리로 나 화장실 갔다 왔다고 말하는 사람있던가요?

그처럼 6바라밀을 분명히 하되 했다는 생각은 내지 마라는 말이지요.

결국 6바라밀도 사람으로 있기 때문에 필요한 수행이지요.

사람노릇을 하려면 필요하다는 말인데 누가 설사 제대로 못해도 미워하면 안되요.

이것도 꿈 속의 일과 같아서 해도 한 것이 없고 남 미워할만큼 그리 중요하지도 않습니다.

사람들은 뭘 정해놓으면 꼭 거기에 집착을 해요.

그것 하지마라 하는 데는 그런 이유가 있어요.

옐들어 발우를 너무 크게 하지말라는 계율이 있습니다.

▶ 발우=스님들 걸식 밥그릇

이유는 부처님 당시에 어떤 비구니가 걸식갔다가 웬 장수와 눈이 마주쳐서

어찌 하다가 애를 뱄어요.

실수로 애를 낳았지만 애를 어디다 둘 데가 없어서 자기 밥그릇에다 놓고 키웠어요.

낭중에 애 머리가 자꾸 삐져나오니까

스님들이 다 알게 되었는데 부처님께서

그것을 듣고 좋게 애를 키우러 세속에 가서 살면서 수행하라 했어요.

그리고는 발우의 일정한 크기를 정했습니다.

애가 들어가지 못하는 싸이즈죠.

그 법이 지금까지 있는데 누가 혹시 발우를 너무 크게 하면

벌받고 큰 일나는 줄 알고 막 죽일 듯이 대드는 사람있어요.

이것이 바로 병입니다.

지키되 못지켰다고 그 사람 미워할 만큼의 큰 일은 아닙니다.

만약 지키지 못한 사람 미워하면 자기가 오히려 더큰 죄를 짓는 줄 알아야 해요.

무엇보다도 부처님을 미워하는 죄가 젤 커요.

남 미워하고 시기하고 싫어하는 것이 곧 부처님을 미워하는 것입니다.

인생이 꿈인데 도적질했다고,,,,,,,사음했다고,,,,,,,살생했다고 무엇이 그리 대단하겠어요.

죄는 본래 없는 것입니다.

꼭 지켜야하는 법일뿐이지 그것이 생명을 내걸고 남 미워할 정도의 큰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해도 했다는 생각이 없으라는 말입니다.

6바라밀도 결국 허망한 것이니까........수행하되 했다는 상을 내면 안됩니다.

불자라면 응당 색에 머물러서 마음을 내지 말아야 합니다.

▶ 색은 만물, 개념, 생각, 의미, 뜻 등을 말해요.

▶ 물건, 그리고 마음에서 나온 어떤 생각이라도 일어나면 상이요,

그것을 색이라고 합니다.

일체의 상을 떠나서 마음을 내야합니다.

무심으로 말하라라는 말이지요.

무슨 뜻에 집착하지 말고 마음을 내라...

옐들어 부인이 쓸어졌으면 아무 생각없이 병원으로 옮겨라.

그리고 의사가 뭐라고 생각하기 전까지 아무 생각도 단정도 하지마라

설사 의사가 뇌졸증에다 회복하기 어여운 중증이라고 하여도

한 생각도 일으키지 마라

불쌍하다, 에잇 돈들게 생겼네, 차라리 죽었으면.....

아니면, "흑흑 불쌍한 사람, 이 못난 남자를 위하여

평생 좋은 옷도 못 입어보고,,,,,,,

지난 번에 보너스라고 당신 좋은 것 하나 사입으라고 주었는데도 안사입고.......

오히려 나를 위하여 보약 한제 지어오더니.......

그렇게 자기는 안 돌보다가 쓸어지나니......."

"선생님! 제발 살려주세요......"

"제 아내 죽으면 안됩니다........엉엉........"

이렇게 마음이 흔들리지도 말고.......

담담히 받아들이고, 지혜로운 선택이 무엇인지 그것을 생각하고

단지 법당에 가서 최선을 다하여 기도하되

부처님의 뜻에 맡길 뿐..... 일찍 죽어도 매달 월급 다 써가면서 7년을 병원에 누워있어도

항상 무심으로 받아들이고 그 어디에고 머물지 말고 마음을 내라 라는 말입니다.

그렇게 큰 깨달음의 마음을 내고

응당 소리, 향기, 맛, 촉감, 지식에 머물러서 마음을 내지 말고,

응당 머문 바 없는 그 마음을 내라는 말입니다.

어디에고 집착하여 한 생각이라도 일으키지 마라.......

동요없이 마음을 쓰라 항상 고요하고 담담하라 라는 말입니다.

왜냐? 알고 보면 인생은 꿈과 같이 내가 만든 세상이고

그 본질은 고요한 세상이기 때문에 마음이 흔들리면 본질과 멀어진 삶이 되기 때문입니다.

본래 고요하고 본래 죽음도 삶도 병도 없으니 그런 것에 동요하지 마라

항상 고요하라 고요하되 그 고요 속에서 마음을 사용하라 고요한 마음을 유지하고 마음을 쓰라

마음을 항상 사용하라, 그러나 내부는 고요하라 라는 부처님의 말씀입니다.

만약 마음에 머뭄이 있으면 곧 머뭄이 아님이 되느니라.

사실은 네가 아무리 머물려해도 머물어지는 것도 아니다

마음이 비어있는 것인데 어디에 머물 것인가?

기억이라는 두뇌 한 쪽에 저장했던 것들을 순간 사용하는 것이지

마음이 순간 사용하는 것이지 마음의 저편에 여원히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니다 라는 말이지요.

아니, 그것은 아예 머물 수 없다는 말이어요.

본래 너의 성품은 항상 비어있는 것이다.

그것을 깨닫고 스스로 성품에 맞는 행동을 하라는 말이지요.

성품에 그 무엇도 아무리 머물게 하려고 해도 머물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 빈 성품이 주인이 되어서 빔 속에서 일체를 사용하라

끌려가지 마라. 그것은 실제로 너의 망념일 뿐이다

불쌍함은 없다

여우털 코트 못입어도........외국 여행 한 번 안가도.......비싼 음식 한번 먹어보지 못해도

죽을 때까지 나 장애인 남편을 만나서 매일 5시에 일어나

애들 학교에 보내고 자기 파출부하러 가다가 그렇게 젊은 나이에 뇌졸증으로 쓸어져도

그것은 슬퍼할 일이 아니다, 그대의 부인은 자기가 불행하다고 한번도 생각하지 않았다.

불쌍하고 불행하다는 것은 그대의 생각이 일어난 것일 뿐이다.

죽어도 죽음은 없다 무엇이 죽나? 죽을 자가 있어야 죽을 것이 아닌가?

항상 고요한 가운데 네가 해야할 일을 살피고 조용히 기도하면서 깨어나길 기다려라.

새 장가갈 생각도 일으키지 말고, 한심한 인생이라고 자학하지도 말고,

애들하고 살아갈 것 걱정하지도 말고 무심히 현실을 받아들여라.

그 속에서 마음을 일체에 끄갈려 가지도 말고 필요한 것이 있으면 사용하라 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부처님이

"보살은 마땅히 마음을 색에 머물지 말고 보시하라” 라고 설하느니라.

물질과 생각에 머물지 말고 베풀고 행하고 말하라는 말입니다.

'나는 얼마를 주었다' 이렇게 생각하면 이것도 없는 데서 자기가 세운 병이고

'나는 주었다는 생각이 없다' 는 말을 해도 역시 병이고

'나는 주었다는 생각도 없이 주어!' 라고 말해도 병입니다.

일체 선이던지 악이던지 한 마음도 일으키지 말고 베풀어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참다운 베품입니다.

구산스님은 아무리 귀중한 것을 남에게 주어도 헌 걸레를 주었다고 생각하라고 했어요.

걸레주고 남에게 주었다고 자랑하지 않잖아요.

그러나 걸레같은 것을 주었다고도 생각하지 마세요.

그냥 주세요. 항상 주는 삶을 살되 주었다는 생각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여기서 조심해야 해요. 그럼 안주면 되겠네 하고 안주는 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고

부처님은 "주어라! 베풀어라!" 꼭 주어라, 주는 생활을 습관들여라,

그러나 주어도 준 행위는 잊어버려라 라고 말합니다.

물건을 줄 때 주었다는 생각도 함께 주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부처님의 행은 아무 것도 안하는 삶이 아니고

적극적으로 하되 했다는 생각은 필요없다는 말입니다.

수보리야, 보살은 일체중생을 이익되게 하기 위하여 응당 이와 같이 보시하느니라.

이렇게 마음에 두지 않고 보시하고 일체를 행해야 나도 이익되고 모든 사람도 이익됩니다.

이렇게 행하는 사람이 진리를 아는 사람이고 도인이요, 보살입니다.

이렇게 수행하면 이것이 바로 부처행입니다.

여래가 설한 일체의 모든 상은 곧 상이 상이 아니며

또한 일체의 중생이라고 설함도 곧 중생이 아니니라.

부처님의 결벽증이 또 나왔어요.

내가 상이라고 말하고, 중생이라고 말한다고 정말 모양이 있고 중생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것은 말을 통하기 위한 명칭일 뿐이니라라는 말이죠.

저 위에서부터 계속 이런 식으로 반복해서 말하십니다.

수보리야, 여래는 참다운 말만 하는 자며 실다운 말을 하는 자며 사실과 같이 말하는 자며

거짓이 아닌 말을 하는 자며 다른 말을 하지 않는 자이니라.

그렇습니다. 여래(부처님)는 거짓말을 안해요. 있는 그대로 말합니다.

사람들은 부처님의 말이 이상하게 느껴질지 몰라도

사실은 부처님의 말씀이 다 맞는 말이고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거짓입니다.

지난 번에 말했듯이 우리 마음이 움직이고 있는 이상 진실은 보이지 않아요.

내가 앞으로 나아가기 때문에 세상이 변하고 움직이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부처님은 마음을 중지한 분입니다.

선사도 그렇고 저 또한 중지한 세계를 보고 있어요.

그러나 여러분은 움직이고 있으면서 보기 땜에

부처님의 말씀이 허공에 구름잡는 말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가끔 사람들이 부처님을 뜬 구름 잡는 말씀을 하신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자기가 병들은 것을 모르고 병자가 병나은 사람을 진단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부처님 말씀이 맞고 그렇게 사는 것이 가장 현명하고 행복한 삶이 됩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그 불타는 집에서 벗어나 이리 건너오라고 손짓하고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옛 선배들 즉 부처님 이후로 계속 나왔던 부처님들이 모두 바보는 아니었잖아요.

여러분만큼 똑똑하고 훌륭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분들도 믿어서 들어갔습니다.

우리도 부처님 말씀이 진실임을 믿어서 들어가야 합니다.

지나간 제 강의 잘 읽어보세요. 전부 맞는 말만 합니다.

부처님께서 그렇게 생각하셨던 이유들이 다 설명되어 있어요.

그리고 생각해봐요. 부처님의 시각으로 세상을 한번 보세요.

그러면 틀림없이 부처님의 말씀이 맞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수보리야, 여래가 얻은 바 법은 이 법은 실다움도 없고 헛됨도 없느니라.

오늘 첫구절, 물론 지난 번하고 연결된 말이지만 아주 중요한 말부터 합니다.

이 말씀에 부처님의 금강경 사상, 그리고 모든 경에서 설하신 뜻,

그리고 선사들의 오의까지 다 들어있는 말입니다.

이 말을 잘 보아야 합니다. 여기서 마음을 쉬어야 합니다.

부처님의 법은 실다움이란 없어요.

다른 성인들은 다 한결같이 내 법은 최고의 법이요, 진리요,

실다움이다 라고 말하는데 부처님은 그 반대를 말합니다.

"내 법은 실다움이라고는 없느니라. "

실다움이란 실체요, 진실이요, 열매요, 알맹이인데

부처님께서는 지금 여기서 나는 그런 것은 없다고 말하셨어요.

간혹 초심자들이 여기서 번역을 잘못했는가보다 하고 원문을 살펴보기도 하고

이리 저리 궁리도 내보기도 하는데 글자 그대로 입니다. 틀린 말이 아닙니다

부처님은 절대 이것이 '나의 진리니라' 하고 설하신 것이 없습니다.

만약 그런 것이 있으면 그것은 상을 세우는 것이므로 허망해지고 언젠가는 없어질 때가 있게 됩니다.

옐들어 유신론의 종교중 회교도 코란에 보면 알라(신)가 말씀하시길

"내가 사막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만드리라"

라는 내용이 나온다고 합니다.

그 옛날에 사막에서 젖과 꿀이 나온다 하니까 희안한 말이 되었지요.

그러니까 절대신이 말했다하니까 모두 믿고 기다렸어요.

이 말을 거의 1500년간을 기다렸습니다.

언젠가는 그런 날이 오리라, 그래서 내 자손이라도 번창하리라......

그러던 중 사막에서 기름이 나오기 시작했어요.

그러니까 신이 더 위대해졌어요.

오늘날 이슬람은 순전히 그 기름 때문에 영광을 누리면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것이 문제가 되어 서로 끊임없이 없이 싸워요.

만약 이라크에서 기름이 나오지 않는다면 부시는 전쟁하려고 하지도 않고

오늘날 그렇게 거기서 수많은 사람이 죽지 않을 것입니다.

결국은 꿀이 아니라 피를 불러왔어요. 서로 차지하려고....

그런데 이것도 언젠가 없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알라의 말은 틀리게 되는 것입니다.

영원해야 신의 능력일텐데 한정이 있다면 신의 능력이 아니라 자연의 능력입니다.

얼마후에 틀림없이 환경문제를 고려하여 대체에너지가 보급될 것입니다.

하늘에 있는 무공해 태양에너지를 이용하여 살 날이 올거에요.

그러면 또 알라의 말이 틀린 것입니다.

내가 하늘에 젖과 꿀이 내려오게 하리라. 해야하는데 그러지 못했으니

오늘날 연탄이 안팔리듯이 기름이 안팔리면 도대체 그때는 뭐라하겟어요?

이렇게 물체를 가지고 진리를 설한다든지 또한 어떤 윤리를 하나 세워 그것으로 진리라 하면

남자는 하늘이고 여자는 땅이로다 같은 그것도 무너질 때가 있고

오늘날은 여자가 하늘이고 남자가 땅이 되었잖아요.

남자는 작업장에서 하루 종일 고생하면서 사는데

여자는 아파트 높은 곳에서 보일로 좋은 곳에서 편안하게 사니까 말입니다.

또한 내가 7일동안 세상을 창조했으니라 라는 말도 요즘은 조의 기원같은 진화론에 밀리고 있잖아요.

종 .무엇이든지 세우면 그것은 영원하지 않고 진리일 수가 없어요.

그래서 부처님은 아무것도 세우지 않았습니다.

실다움이란 없다는 말이 그말입니다

모두 잠깐 굼처럼 존재하는 실체요, 윤리요, 진리인데 무엇이 영원하다고 주장하겟어요.

그래서 부처님은 아무것도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조심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부처님께서 허망을 주장한 것도 아니니다.

꼭 사람들은 이것 아니면 저것을 판단하려고 해요.

이것이 아니니라 하니까 그러면 당연히 저것인줄 알아요.

이것이 병들기 쉬운 함정입니다.

선사(禪師) 자격시험에서도 꼭 여기서 다들 떨어져요.

"그러니까 인생이 허망하고 꿈이고 아침 이슬같습니다. 그것을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해요.

이렇게 답안지에 써내면 다 떨어집니다.

그렇게 불교를 알아서는 밥도 얻어먹지 못해요.

부처님은 허(虛)도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그것도 버려야 합니다.

허(虛)를 주장하면 유(有)를 주장하는 것과 똑같은 병이 들어있는 것입니다.

존재와 비존재를 다 버려야 되요.

이것을 양변을 다 버린다 하지요.

이것을 불교의 중도(中道)라고 합니다.

그러면 유도 버리고 무도 버리면 무엇이 있습니까? 하고 또 뭘 찾는 사람이 있어요.

이것도 병이니다. 이런 병이 있어서 불교를 제대로 못보고 꼭 뭘 세우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찾지 말고, 정하지 말아야 해요. 그래야 도(道)가 나타납니다.

마음에서 찾지 말고 정하지 말고 살아봐요.

그러면 부처님의 행이 되고 곧 도인의 행이됩니다.

남이 장군이 아침에 출근하려고 집에서 나오는데 웬 여자가 휙 지나가더래요.

순간 남이 장군은 기분이 상했어요. 아침부터 여자가 남자의 길을 가로 지르다니.......

요즘도 그런 넘들 있으니까 여자님들 조심해요^^*

건방진년 같으니라구.하더니 칼을 뽑아 뒤에서 목을 쳐서 죽여버렸어요.

서슬퍼런 장군이니까 아무도 말 못해요.

그런데 이것이 화근이 되어 그 뒤로 하는 것마다 안되어요.

결국 남이가 20대 초에 장군이 된 것을 시기라는 무리들에 의하여

연일 남이를 비방하고, 트집 잡고, 시기하는 상소가 오라가더니 나중에 주살을 당하고 말았어요.

여러분에게 묻노니 말해보세요. 정말 아침에 남자를 가로지른 것이 나쁜 징조였습니까?

그러면 무엇이 문제였나요? 마음! 그렇습니다.

한 마음 일어나서 사람을 죽인 것이 문제가 된 것이지

여자가 지나간 것은 아무 문제도 아니였어요.

어떤 사람, 1년간 씻지 않은 양아치가 있어요. 여기 동네에....

수염 지저분하게 기르고 얼굴은 시커멍스인데 가끔 오는데 꼭 여자 신발을 메고 와요.

그래서 내가 왜 그것 메고 다니요? 하고 물었더니 여자 신발 줍는 날은 돈생기는 날이래요

그래서 꼭 어깨에 메고 다니면 그말은 재수가 좋데요.

내가 웃겨서 허허 웃으면서 엿다 가져가시오 하고 천원을 주었어요.

그랬더니 고맙다고 넙죽 절하면서 거봐요. 진짜잖아요.

하고 눈을 흘기면서 가는데 그 모양이 얼마나 우습던지 한참 웃었는데 돈이 안아깝 더라고요.

다 사람이 자기 마음이 만드는구나 하고 생각했죠.

이것은 실화인데 어떤 권투선수가 자기 처녀 팬티 입고 싸우면 꼭 이긴대요.

그래서 시합만 되면 그 처녀팬티 구하는라 아우성이라데요.

모두 자기 맘이 짓는 것이지. 그렇게 정하면 정하는대로 되는 것이 마음의 힘이어요.

그런데 불교는 그런 것을 정하지 마라했어요.

그 정함이 결국 너를 불행하게 한다는 말이지요.

이것도 실례인데 어떤 사람이 자기 부인이 맘에 안들어 이혼하려고 했어요.

이유는 한번도 자기에게 편하게 해준 적이 없데요.

그런데 사업에 망해서 가난하게 되었는데

부인이 그동안 저축해놓은 돈으로 어디 땅을 투자했데요.

마침 거기에 큰 건물이 들어오는 바람에 큰 부자가 되었어요.

그러니 자기에게 문제 부인이 아니고 노년을 행복하게 해주는 부인아닙니까?

무엇이든지 정하지 말아요.

그러면 그순간 불행의 여신이 따라다닙니다.

정함이 없으면 당신이 곧 부처요. 도인이어요.

배고프면 일하고 좋다 나쁘다, 정함이 없이.....

주어진 공간에서 최선을 다하면서 살아가세요.

작다고 불만족이라고 정하지 말고 그렇다고 평수가 작은 것이 행복이라고 정하지도 마세요.

어떤 정함도 그대를 불행하게 해요.

그저 산위에서 살게 되면 면 그런대로 살고

팔이 없으면 없는 대로 살뿐 불행하다고 정하지 마세요.

양팔이 있다고 행복한 것은 절대 아닙니다.

팔이 있으나 없으나 같아요. 이것이 진리입니다.

부처님의 모든 진리는 이것 아니면 저것을 찾는 양변을 여의는 것이 핵심입니다.

열심히 살되 무심으로 사는 것 이것만큼 행복한 것은 없어요. 굳이 말하자면 말입니다.

“수보리야, 어떤 보살이 마음을 법에 머물러 보시하는 것은

마치 어두운 곳에 들어가매 아무 것도 보지 못하는 것과 같고,

어떤 보살이 마음을 법에 머물지 않고 보시하면

눈도 있고 햇빛도 밝게 비쳐서 여러 가지 물건을 보는 것과 같느니라.”

법에 머물다는 말은 인과에 연연한다는 말입니다.

좋은 일 했으면 과보가 있으니라

인과응보 이것을 기대하는 것이 법에 매이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절대 댓가를 바라지 않습니다.

주어도 절대 준 적이 없다고 해요.

그러므로 댓가를 바라지도 않지요.

이렇게 살아가면 이것은 밝은 곳에서 사는 것과 같다고 했어요.

모든 윤리가 그렇게 되어있어요.

네가 좋은 일해라. 그러면 복이 오리라.

이렇게 가르쳤어요. 어려서부터말입니다.

그래서 불행해진 것입니다.

내가 해주었으니까 너는 나를 위하여 해주어야 해 하고 생각하죠.

그런데 그가 내가 답을 안해주자 시기하고 미워하고 싸우고 상대도 안하고 합니다.

이것은 불행의 징조입니다. 당신이 무엇인가 세운 것입니다.

그렇게 가르치면 안되요.

앞으로 자식들에게 부처님처럼 가르쳐야해요. 그래야 행복해져요.

너는 항상 주어라. 그러나 댓다를 바라지도 말고, 주었다고 생각도 하지 마라. 영원히 잊어버려라.

그래야 죄를 짓지 않느니라.

좋은 일하고 보답이 없다고 욕하면 더큰 죄를 짓는 것입니다.

그러니 보답을 바라는 것은 곧 죄를 짓는 것이요, 불행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왕 살라면 밝은 데서 행복하게 살아야 하잖아요.

그럴려면 일체 세상의 법을 버리고 주고 또 주도록 하십시오.

“수보리야, 오는 세상에 선남자나 선녀인 들이 이 경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면 여래가 부처의 지혜로써 이 사람들을 다 아시고 다 보시 나니

모두가 한량없고 끝없는 공덕을 이루느니라.”

부처님은 다 알고 다 보십니다.

다 속여도 부처님은 속일 수 없어요.

부처님은 천안이 있고 누진통을 얻었어요.

천안(天眼)은 하늘 눈입니다.

하늘이 없는 곳이 어디 있습니까?

바로 땅 위가 하늘이어요. 1mm 위도 하늘이고

그러니까 거기에, 하늘이 곧 부처님의 눈이니까 부처님은 숨길수 없어요.

그리고 누진통은 모르는 것이 없이 다아는 지혜입니다.

하늘이 곧 부처님의 눈이니까 다봅니다.

그리고 모르는 것이 없으니까 다 알죠.

이런 눈으로 보고 알아서 말인데 이 경을 지니거나 읽거나 외우면 한량없는 공덕을 받습니다.

믿는 자에게 이익이 있습니다. 믿고 실천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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