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공과 색은 하나이다

지난 시간에 공과 색에 대하여 충분하게 하지 못한 것이 있는 것 같아

오늘 조금 더 하고 진도 넘어가겠습니다

色不異空 空不異色 色卽是空 空卽是色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

색(色)이 공(空)과 다르지 않고 공이 색과 다르지 않아 색이 곧 공이요, 공이 곧 색이니라.

 

불교의 시각으로 세상을 보는 것은 철저하게 진리를 그대로 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것은 말을 통하기 위한 말이지 그 말이 절대적인 진리를

담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어느 정도는 진실을 담고 있겠으나.....

말이 어떤 진실과 정확하게 부합하지는 않아요.

옐들어 요즘 가을 하늘이 파랗다고 표현하는데

실제의 하늘은 파랗지 않음을 누구나 압니다.

그러나 우리는 파랗다라고 말을 통하고 있어요.

이것은 눈에 그렇게 비쳐지는 가변적인 것을 표현한 것이고 그렇게 통용되는 것이지

하늘은 파랗다가 진리는 아닙니다.

그렇지만 불교는 가능한 진실을 표현하려고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쓰는 언어...그리고 그 언어가

갖는 의미란 것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것은 말을 통하기 위한 것이요, 표현하기 위한 수식어라고 생각하면 될 것인데

우리는 습관적으로 그 말이 진실이라고 생각해요.

엘들어 누가 나의 맘을 상하게 하는 말을 했다면

엘들어 자존심 상하는 말 같은것 말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보면 맘을 상한다.... 상하는 말을 했다....

라는 의미가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듣는 사람은 맘 아파해요.

그런데 사실은 맘은 상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맘이라는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순간 ....퍼득.....6근이 움직여 맘이 만들어져 작용하다가 없어지고....

만들어져서 작용하다가 작용이 없어지면 없어지는 것이 마음인데

무엇이 상하겠어요.

그런데 우리는 상한다고 말해요.

그러니까 이 말은 틀린 말이고 엉뚱한 말입니다.

또한 '상하게 하는 말' 이라는 것도 문제입니다.

우리의 말은 사실 진실은 하나도 제대로 담고 있지 못해요.

다만 수박 겉핥기식으로 겉만 표현하는 것입니다.

엘들어 사탕이 '달다' 라고 누가 표현했다면

이 말 자체가 사탕맛은 아닙니다.

달다라는 이 표현은 다만 표현이지 맞는 말은아닙니다.

우리식의 표현이어요.

만약 달다라는 말이 단 것 그 자체라면 누가 들어도 다 알아들어야 해요.

미국사람에게 달다....해도 알아들어야 해요

그러나 달다라는 말은 우리나라 사람만 알아듣는 약속입니다.

똑같이 먹어보고 이런 맛을 달다라고 표현하자 했어요.

그러자...하고 달다라고 말하기 시작했지 달다라는 말이 사탕 맛 자체는아냐요

정확한 맛은 오직 혀끝에 사탕이 닿아야 알수있어요.

아~~이맛이군....이걸 달다라고 말하는군....하죠

그러니까 단맛은 정확하게 설명하려면 사탕을 혀에 대는 것이 젤 정확해요

달다.이 말은 단맛 자체가 아닙니다.표현이요, 말이어요.....

그러니까 말은 어떤 사실과 정확하게 일치하지 않는 맹점이 있다는 말입니다.

다행히 똑같은 경험을 한 사람은 알아듣고

경험을 하지 못한 사람은 다만 말만 할 뿐야요.

정확한 맛을 모른 채 이런 이야기를 왜 하냐하면 여러분이 불경을 공부할 때도

평상시 말에 쫓아다니면 안된다는 말입니다.

첨엔 우리가 사용하는 말은 맞는 것 같고 부처님 말씀이 틀린 것 같아요.

자기가 생각하는것은 맞고 부처님이나 성현의 말은 틀린 것 같아요.

그걸 바로 전도몽상顚倒夢想 이라고 합니다. 뒤바뀐 생각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은 지금 진실과 전도된 생각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고뇌가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진실을 알고 진실대로 살아간다면

매우 편해지고 행복해져요. 그래서 부처님은 진실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반야심경야요.

그런데 문제는 우리는 오랫동안 습관되어 자꾸 전도된 생각이 튀어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경을 알아도 부처님처럼 행복해지지 않고 생활이 매일 똑같아지는 것입니다.

이것을 아는 것 따로 행동 따로라고 해요.

그래서 부처님은 깨달음을 강조한 것입니다.

깨달음은 순간 가슴에 새기는 것입니다.

어떤 사실을 알았을 때 앎과 동시에 깊이 깨우치는 것이 깨달음입니다.

그렇게 되면 행동이 바로 되기 때문야요.

부처의 행동이 바로 나타나요.

깨우침은 곧 체험입니다.

사탕 맛을 아는 것입니다.

달다라는 말을 아는 것이 아니고

달다라는 맛을 아는 것이어요.

그러니까 만이 묵으면 이빨이 썩는다는 사실을 알고 안먹는 것입니다.

단 것이 어떤 것 인줄 확실하게 아니까....

그런데 단 맛을 보지 못하고 그냥 아는 것은 사실은 그 맛을 모르는 것입니다.

몰론 달다라고 말은 했으나 모르고 말한 것이고.....

아무리 다른 말로 그 맛을 정확하게 표현하려고 해도

먹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표현할 수가 없어요.

그런데 이것은 먹어본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말은 달다라고 해도

그것을 먹어보지 않은 사람에게 이해시키는 것은 어려운 일이야요.

그래서 체험! 즉 깨달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진리에 대하여 깨달아야 세상사를 정확하게 알아요.

영가스님이 육조스님을 만나서 삿갓도 벗지 않고

무상이 신속합니다 했어요

이 말은 시간이 빨리 지나가는데 예의를 차리고 뭐할 것 어디있습니까 라는 말입니다.

그렇게 말해서 육조스님이 뭐라고 말하나 보려고 했어요.

그런데 육조스님이 '본래 빠르고 느림이 없는 줄을 왜 모르느냐?' 하고

가볍게 말해줍니다.

시간은 없다...네가 있다고 생각했을 뿐....그런데 어디에 느리고 빠름이 있겠는가

라는 말인데.... 순간 영가스님은 크게 깨달았어요.

아차! 어찌 빠르고 느림이 있을까보냐....내가 또 실수했구나... 하면서 깨달은 것입니다.

기록을 보면 원래 영가스님은 천태학을 열심히 연구한 학승이었습니다.

물론 천태 지관법도 수행했고 불경도 배워서 다 아는 수행자였어요.

초자가 아니고 불경을 많이 공부한 수행자였지만

그래서 반야심경 정도는 넉근히 외우고, 금강경, 아함경, 법화경을 다 외우는 정도

였고 아주 똑똑한 스님이었습니다.

그런데 깨닫지 못하고 알았기 때문에 일상사에서 말할 때 자기도 모르게

더럽다...깨끗하다...빠르다....느리다 하고 분별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스승의 지적이 필요한 것입니다.

배운 것을 평상시에 정확하게 사용하도록 선생은 지적해줍니다.

그런데 스승없이 혼자 배운 영가스님은 그런 지적을 받질 못했어요.

그래서 육조스님 회하에 도착하여 삿갓도 안벗고

정면에 턱 서서 한마디 던져본 것입니다. 무상이 신속합니다

無常도 원래 빠르다는 의미인데 거기다가 신속하다고 더 표현했으니

시간이 빠르고 빠르게 지나갑니다 라는 뜻이죠

그러자 육조스님은 말하는 자의 병(病)이 확 보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본래 빠르고 느림이 없는 줄 왜 모르느냐?

라고 말해주었던 것입니다.

순간......영가스님은 아차! 그렇치..... 하고 깨달았어요.

아....내가 이렇게 실수를 하는 구나....

"그리고는 제가 이제 빠르고 느림이 없는 줄을 확실히 알았습니다."

하고 말하자....옳다 옳다 하고 긍정하였고 이때 대중이 모두 놀랐다고 합니다.

웬만해서 그렇다하고 인가하기 어려운 것인데 그렇다고 긍정했으니 놀랐던 것입니다.

그렇게 영가스님은 하룻밤을 자고 나가서 육조스님의 뒤를 이은 제자가 되었는데

하루만에 깨달았다하여 사람들은 '일숙각'이라고 불렀다 합니다.

이 기록을 보면 보통사람들은 무엇을 깨달았는지 잘 몰라요.

영가스님은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을 육조스님을 만나 깨우치고 갔던 것이지

즉, 깊이 새겼단 말입니다. 새로 무엇을 안 것은 따로 없습니다.

그러니까 아는 것과 깨달음은 확연한 차이가 납니다.

그래서 알지 마라고 불입문자라고 했어요.

여기 반야심경도 마찬가지입니다.

공이라던지 색이라는 언어가 뜻하는 일반적인 의미를 알고 있으면

반야심경을 백번 공부해도 부처님의 뜻을 모릅니다.

그러니까 일반적인 뜻

▶ 空=빔

▶ 色=만물, 생각...

이라는 의미에만 갖혀있으면 안됩니다.

그러면 진실을 모르게 되요 그래서 관자재보살은

색(色)이 공과 다르지 않고 공이 색과 다르지 않아 색이 곧 공이요,

공이 곧 색이니라. 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지난 시간에 말했듯이 우주는 공과 색 이 두 가지로 구성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전혀 다른 성질을 가지고 있는 이 두가지 요소가 사실은

한 몸이라는 것을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불자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관문입니다.

어떻게 전혀 다른 두 가지가 하나일 수가 있을까?

그런데 이것을 정확하게 납득해야 해요.

관세음보살은 색이 곧 공이고 공이 곧 색이라고 했어요.

왜냐면 이 두가지는 서로 따로 떼어놓고 존재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우주가 빈 공간이 없이 물체로 꽉 채워질 수 있을까요? 불가능해요.

설사 우주가 꽉 채워진 것이라고 해도 채워질 공간이 있어야 채울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존재가 있으려면 반드시 공간이 있어야 해요.

또한 물질이 없이 공간만 존재할 수 있을까요?

이것도 불가능합니다. 왜냐면 이 우주에 이 공간이 있으려면

이 공간을 가둘 울타리가 필요해요.

만약 공간을 확보할 울타리가 없으면 공간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색이 바로 울타리입니다. 그러니까 공과 색은 전혀 다른 것이면서

손바닥의 양면처럼 붙어있는 하나라는 말입니다.

멀리서 보면 우주라는 하나의 세계가 그렇게 되어있어요.

그러니까 빔은 빔이 아니고 색을 탄생시키는 모체이고

색은 공을 낳는 모체여요. 그러니까 색은 공을 낳고 공은 색을 낳습니다.

그러니가 공은 어머니요, 색은 자식이고 같아요. 공이 곧 색입니다.

또한 색이 어머니요, 공이 자식이니까 색과 공은 같아요. 색이 곧 공입니다.

서로 母가 되고 子가 되는 관계입니다. 그러니까 둘이면서 하나라는 말이어요.

이 기본 사상은 불교에서 아주 중요한 사상으로 자리잡습니다.

존재, 그리고 비존재는 같다...... 그러니까 갖으려고 욕심낼 것 없고 ....

왜냐, 나는 이렇게 가만히 있어도 이미 우주의 근원이니까

주인이요, 부처입니다. 그러니가 이미 다 가지고 있어요.

더이상 가지려고 할 필요없습니다.

가만히 앉아서 우주의 주인임을 깨닫고

갖으려했던.....헐떡이던 마음을 내려놓습니다.

그렇다고 하여 아무것도 하지 않고 무의도식하는 것이 아닙니다.

열심히 일해서 주어진 만큼 얻어서 쓰다가 갑니다.

어떻게 살고....어떻게 써도 그것은 이미 나도 없는 빔입니다.

그러니가 나 자체가 비인위적인 상태로 필요한 것만 하면서...내가 자연이 되어서

바람이 불면 꽃이 피듯이 움직여서 열매를 맺게 하고

거두어들여서 육체껏 누리다가 가는 자 없이 가는 것입니다.

빔이라고 해도 존재이고 존재라고 해도 빔이어요.

그래서 이 진리를 배우는 사람은 빔에 떨어져도 안되고 존재에 집착해도 안되요.

인연따라 결혼하고 늙어서 인연따라 갑니다

그러니까 무엇이라고 단정하면 틀려요.

공도 공이다....이것 말은 맞을라나 몰라도 단정하면 한정하는 것이 되어요.

그래서 틀립니다. 부처님은 금강경에서 하나라도 정하지 말라고 하였어요.

설사 中道라도.... 단 반개 라도...... 생각을 내지 말아야 해요.

생각을 내면 인위적인 것이 됩니다.

오로지 무심으로 살아가고 무심으로 받아들이고 무심으로 거두어들여야 합니다.

그것이 진실을 아는 자입니다.

무슨 생각이라도 내면 반드시 그 반대가 생겨요 그래서 절대 진리가 아닙니다.

치우친 견해여요 그래서 한 생각도 내면 안됩니다.

지겨운 것은 아직 무심이 안되어서 그래요

무심이 되면 지겨움도 사라져요.

나조차도..... 무엇을 하고 있다는 것도.....잊어요

나도 인식못하고 무엇을 하고 있음도 인식못하는데 어찌 지겨움이 있겠어요.

무엇을 보아도 무엇을 들어도 한 생각도 일으키지 말아야 합니다.

일으키면 사심이고, 치우친 견해이고  편협한 시각입니다.

공과 색은 동시면서 다른 것입니다.

어느 것에 치우치면 하나에도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공에도...... 색에도...... 치우치지 마세요

일어나는 생각을 잘라내세요.

그것이 치우치지 않는 방법입니다.

한 생각이라도 유니 무니 공이니 색이니....일르키면 안되는데

무엇을 들고 주장한다면 이것은 더욱 안됩니다. 이것은 진실을 몰라서 그래요.

자기 생각을 세우는 것이지 결코 진실을 표현하는 것이 아닙니다.

조심하세요. 당신은 색이기도 하고 공이기도 하고 색이 아니고 공도 아닙니다.

당신이 당신의 본질에 대하여 이러니 저러니하고 어떤 생각이라도 일으켰다하면

벌써 어그러져버려요. 배고프면 밥먹고 졸리우면 잘뿐

일할 것이 있으면 일하고 걸어갈 일이 있으면 가고

부모가 아프고 찾아가고 바쁘면 찾아뵙지 못하고.....

할수 있으면 하고 하지 못하면 안합니다.

하지 못해도 전혀 어떤 한 생각도 내지 마세요

언제나 고요하게 무심 속에서 살아가세요.

눈은 빤짝이고 정신을 초롱초롱하게 멍쩡한 상태로

있으면서 무심으로 고요하게.....고요하게....

일어나는 생각 다 죽이고...... 편안하게...... 편안하게......

이것이 반야 공에 들어간 반야의 삶입니다.

참다운... 지혜로운 삶이지요

화두 의심은 망상이 아닙니다. 궁금증이고

자기 의지로 망상을 자르는 것입니다.

망상을 자르려면 화두에 정착하는 훈련이 필요해요

그래서 망상 대신 화두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은 자의적인 의지입니다.

자유인의 의지를 기르는 것입니다.

화두는 자꾸 엉뚱한 데로 가는 마음을 자기 맘대로 이끄는 훈련입니다.

무기는 靜的이고 빠짐이라 활동은 못해요. 비활동적입니다.

무심은 활동하면서 똑똑히 사건이나 물건을 보면서

마음이 고요한 것입니다. 무기와 무심은 전혀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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