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不生不滅(불생불멸)
舍利子 是諸法空相 (사리자 시제법공상 )
사리자여, 이 모든 법은 공한 모양이니
여기서 또 사리자여~ 하고 관세음보살이 이름을 부릅니다.
먼저 번에도 말했듯이 이름을 부르는 데에 모든 것이 다 들어있다고 하였는데...
아직도 그 숙제...모두 못풀었나요?
금강경 강의를 읽고 반야심경...그리고 무심론 전심법요...완능록 선서를 다 읽었는데도
아직도 사리자여! 라는 이 한마디에 모든 것이 다 들어있다는 것을 모르면...안됩니다.
배우긴 배웠는데 자기 것이 되지 않은 것이고...또 알기는 하였으나 깨닫지는 못한것이고....
설사 확신은 하여도 표현할 줄 모르는 것입니다.
여기에 모든 것의 답이 있으니 ....화두, 선문답, 인생의 의미, 반야공사상....
다 들어있으니 척 듣는 순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이 공부가 끝나요.
나무를 아는 사람은 나뭇 잎만 척 보아도
그 나무의 건강 정도를 알고
거지는 굴뚝에 연기가 나기만 해도
누구네서 밥주는지 알고 그리로 걸어가요.
엊그제 방송에서 소금치는 사람에 대하여 나왔다는데
김치에 간하고 고기에 간하는...소금치는 사람인데
척 소금을 한 움큼 짚으면 20g이래요.
그 생선은 소금을 딱 20g만 넣어야 한데요. 넘쳐도 모자라도 안되고 딱 맞아야
맛있다는데 저울에 달지 않아도 척 짚어서 치면 20g이랍니다.
그래서 기자가 가서 한움큼 짚은 것은 저울에 달았보았더니 20g이드래요
한 참 후에 다시 또 달았보았더니 역시 20g이드래요
소금치는 사람은 짚으면 척 척 20g인데....
그동안 그렇게 강의를 듣고도 이 문제를 못풀다니....
여기서 작심하고 7일간 아란존자처럼 용맹정진하여
그 뜻을 알아보세요.
어째서 사리자여! 여기에 다 들었다고 했을까?
여기에 무엇이 들어있기에 화두에 대한 답도 있다는 것일까?
계속 연구해서 낭중에 답을 올리세요.
법法은 불교에서 자주 나오는 말입니다.
진리, 법칙, 만물....등으로 번역할 수 있어요.
법은 만물을 만드는 기준이 됩니다.
그래서 공空에서 법法이 나오고 법에서 만가지가 나왔다고 합니다.
불교에서는 법을 중요하게 생각하여 자주 씁니다.
여기 法은 절대적인 法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더럽다, 깨끗하다, 귀하다....천하다...등은 法이 아닙니다.
주관적인 생각일 뿐입니다.
왜냐면 그런 기준은 때에 따라서 변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불교에서는 더럽고 깨끗한 것은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를 들어 쇠는 나무를 자른다...거나 불은 나무를 태운다...
땅에서 곡식이 나온다....물은 불을 끈다...
이런 것은 法이 될 수있어요.
法이라는 한자를 풀어보면 물이 간다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물이 가려면 반드시 조건이 있어야 합니다.
물은 위에서 낮은 데로 가는 조건에 합해야 흐릅니다.
그러니까 위에서 낮은 데로 가는 것이 물이듯이 이 법은 절대적인 것, 불변,
꼭 그러한 것 등의 의미가 있습니다.
반드시 그러한 것이어야 法이라 할수 있다는 것에 초점을 두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배우는 불법佛法은
각 종 민법이나 상법등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그러한 것, 진리, 법칙등을 말하는 것입니다.
안 먹으면 죽어요. 이것 법입니다.
걸으면 반드시 앞으로 나가요. 이것도 법입니다.
원래 법칙은 만들수는 없어요. 다 발견한 것입니다.
여자는 애를 낳아요, 남자는 못낳습니다. 이것 발견야요.
우주에는 무한한 법칙들이 있어요.
아직 발견하지 못한 법칙도 많아요.
어떤 운명학자는 사람이 들어오면 척 알고 당신 무엇 때문에 왔지요?
하고 말한 답니다. 물론 그거 아는 법 육임이라는 학문이 있기는 하지만
이 사람은 육임을 공부해서 아는 것이 아니고
명리를 한참을 연구하니까 우리 일상사에 모든 것이 전부 음양 오행이
아닌 것이 없다는 것을 터득했어요.
옐들어 사람이 들어오는데 왼쪽으로 기우뚱하고 걸어들어오면 양陽이야요.
오른 쪽으로 기우뚱 거리면서 걸어들어오면 음陰이고...
그런 식으로 전부 음양 오행으로 통해있기 땜에 들어오자 마자....
그 사람의 행동을 보면 자식때문에 왔구나....하고
알고 몇 가지 사항을 파악해서 '부인이 잉태했는데 아들인가 딸인가
그걸 물으러 와구먼...' 한데요....
그러면 깜짝 놀라면서 '아니 선생님, 그걸 어떻게 아십니까?' 한데요.
"다 아는 수가 있지....그런데 딸이야..."한데요.
그러면 정말 나중에 보면 틀림없이 딸이래요.
이 사람이 신이 들려서 아는 것이 아니고 통해서 그런데...
뭘 통했느냐하면 법칙을 알은 것 뿐입니다.
알고 보면 쉬운데 그걸 안가리켜주어서 현재 그걸 배운 제자가 없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발견했으면 우리도 발견할 수 있어요.
누가 7일간만 연구해보세요...당신도 발견할 수있습니다.
하얗튼 그것도 법칙法則을 발견한 것입니다.
황우석씨도 유전자 재생법을 발견한 것이고
우주는 무한한 법칙들이 있는데....발견하기만 하면 되요.
무엇이든지 있어요. 그런데.....
이 법은 빈 곳에서 나오고....절대적인 법조차도
그 근원은 빔이라는 말이 제법공상이라는 말입니다.
이것 번역을 '모든 법은 공한 모양이니라' 이라고 해도 되고
모든 법의 공(法空)의 모양은... 이라고 번역해도 됩니다.
두 번째는 법공法空을 하나의 단어로 보는 것이야요
어쨌거나 뜻은 같습니다.
모든 法의 근원은 공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법은 곧 공인데 ...그러므로 이러하고 이러하니라....
하고 말하려는 것입니다.
▶不生不滅 ( 불생불멸 )
생하지 않고 없어지지 않으며
반야심경은 이 대목과 앞으로 나올 불구부정 부증불감에 대한
뜻만 알면 다 아는 것입니다.
사실은 不生不滅 不垢不淨 不增不減 이 세 마디를 설하기 위하여
반야심경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읽고 예로 부터 많은 스님들이 깨달았던 유명한 내용이지요.
그 첫 번째 대목이 바로 불생불멸인데 생도 없고 죽음도 없느리라.....
정확하게 번역하면 생도 아니고 죽음도 아니니라 이렇게 해야 합니다.
없다는 無이고 아니다는 不인데 물론 같은 의미이지만
無는 아예 첨부터 없다는 말이고
不는 어떤 것이 저기 있기는 한데 '아니다' 하고 부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분명 인생은 生도 있고 死도 있어요.
분명히는 아니고 우리 눈에는 그렇게 보입니다.
그것을 부처님이나 관세음보살은 저것은 生과 死가 아니니라 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번역할 때 아니고....라고 번역해야 하나
사실은 없다는 말뜻입니다. 대체적으로 중국의 선서는 다 없다 (無)로 사용했어요.
▶無生無死!
중국 사람들은 뜻을 보다 정확하게 전달하고 싶었고 본질을 꿰뜷어보는 훤한 눈을원했기 때문에....
또 의미를 확실하게 해두어야 .... 또한 의미를 확실하게 해두려는 중국사람들의 속성상....
▶無生無死
이렇게 표현했던 것입니다.
不대신 無를 대신 넣어도 틀린 말은 아니어요.
그러나 인도 사람들은 현상계를 인정하면서 다른 세계를 말하고 싶어서 不자를 썼고
중국 사람들은 현재 조차도 인정하지 싶지 않고 바로 이상을 높이 세웠던 탓으로
無를 써서 말한것 같습니다.
중국은 신선 사상이 강해서 산으로 아예 들어갔고....
그래서 불교도 산중불교가 됐어요.
그러나 원래 인도에서 불교는 산중의 불교가 아니고 마을에 있는 불교입니다.
인도 불교는 인가와 가까운 곳에 절이 있어요.
매일 걸식해서 먹어야 하기 때문에 인가에서 멀면 안되요
그러니까 현상계를 인정하면서 말하려니 없다는 말보다는 아니다는 말로 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生도 아니고 죽음이 아니다. 라는 의미로 쓴 것입니다.
▶ 不生不滅
이라는 말 하나에도 중국 불교와 인도 불교의 차이를 엿볼수 있고
나라마다 해석도 약간씩 다른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글자에 대한 것은 이쯤하고 ... 그럼 왜 生도 없고 死도 없다고 했을까요?
우리가 생각하는 생사는 겉을 본 것이고 성자들은 속을 들여다 본 것입니다.
우리는 육신과 영혼이 나의 것이라고 생각하나 성자들은 원래 공에다 기반을 두고 설하기 때문에
나는 없고 따라서 죽는 자도 없고 태어난 자도 없는 것입니다.
육신은 자연에서 와서 자연으로 돌아가요.
죽는 것이 아니고 자연으로 회귀이고 오히려 자연으로 태어남인데 무엇이 죽음이겠어요?
생각해 봐요.
딱 죽음의 순간 저쪽에서는 곧 태어남인데 어느 쪽이 진실이라고...
생과 사는 연결된 하나의 사건인데 어떻게 딱 죽음이라고 단정하겠습니까?
죽음은 저쪽 세상에서는 탄생이잖아요. 그런데 어찌 죽음이 있고 태어남이 있겠습니까?
영혼도 하나의 형상입니다.
원래 육신도 없었으나 공에서 생겨났듯이 영혼도 원래는 없는 것이나
우리의 정신이 만든 또 다른 세계가 영혼입니다.
영혼은 마치 양파 껍질과 같습니다. 양파는 전부 껍질로 이루어져있어요.
그 껍질을 다 까버리면 알맹이는 없습니다.
그처럼 영혼도 분명 하나의 형상이기는 하나
집착을 다 버리면 영혼 자체도 없어지고 맙니다.
돈에 대한 집착, 명예에 대한 집착,....
부자에 대한 집착....더러움이 있고 깨끗함이 있다는 집착....
이기고 지는 것에 대한 집착.... 슬픔, 외로움,기쁨.....
이런 것에 대한 집착이 덕지덕지 쌓여서 하나의 체를 이룬 것이 영혼입니다.
따라서 사람이 죽으면 분명 윤회합니다.
6세상으로 가는데 천당, 인간, 축생, 아귀, 아수라,지옥입니다.
누구나 이 중에 한 곳으로 가서 다음 세상을 살아가요.
그런데 윤회하지 않는 사람이 있어요. 그 사람은 깨달은 자입니다.
왜냐면 깨달은 자는 깊이 뿌리밖혀있던 모든 개념들을 다 지워버렸어요.
그렇기 때문에 영혼이 비워졌습니다. 이 생에 몸은 마지막 육신입니다.
육신이 다 닿으면 이제 다시는 윤회하지 않고 영원히 고요한
붓다의 세계에 돌아갑니다. 대우주의 근원으로 회귀해요.
우주의 근원....붓다의 세계....空....이것은 같은 의미입니다.
붓다의 세계에 들어간 것을 적멸에 들어갔다하여 '열반'이라고 말합니다.
▶ 열반=니르바나=적멸=고요
적멸이란 다시는 분별이 없는 고요한 세계에 들어갔다는 말입니다.
이것을 고통이 없는 해탈의 세계라고 해요.
그런데 만약 누가 알기만 하고 무의식에 아직도 더럽다 깨끗하다, 옳다 그르다에 대
한 집착과 분별이 남아있으면 그것은 깨달은 자라고 말하지 못합니다.
알 때 정신이 확 바꿔져야 해요.
진리를 들으면서 깊이 새겨지고 사실로 인정이 되면서
그동안 어리석었던....나를 중심으로....얄팍한 지식으로
이해했던 앎이 다 떨어져 나가야 해요.
그렇지 않고 아직도 습관이 남아있고 앎 따로 행 따로이면 절대 깨달은 자라고 말하지 못해요.
선불교에서는 이것을 부처이기는 분명 부처인데 아직 깨어나지는 못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많은 선문답이 있고 화두가 있는데 이것은 깨달았나 를 아는 관문이 됩니다.
깨달았다면 아무리 어려운 화두도 쉽게 납득이 됩니다.
화두를 안다는 것은 맛있는 과일이 나는 곳을 몇 사람만 알고 심심하면 가서 따먹는
것과 같습니다. 다른 사람은 맛을 몰라요.
아는 사람은 그 깊은 의미에 감동하고 혀를 차요.
아~~그렇게 사용하고 말하다니....고수로다.. 고수야 하죠
그러나 모르는 사람은 마치 외국어 서적을 읽는 것처럼 그 뜻이 선명하게 들어오지않습니다.
육도윤회는 분명 깨닫지 못한 사람이 떠돌아다니는 세계입니다.
아무리 안다고 큰소리쳐도 깨닫지 못하면 자기가 지은 대로 다음 세계에 나야 합니다.
불생불멸은 진리입니다. 법이어요.
죽으면 영혼은 다음 생으로 나는데 어찌 죽음을 死라 하겠습니까?
나(我)는 없어서 죽을 자도 없고 설사 영혼이 윤회하여도 죽음은 곧 탄생이니
이 또한 死라고 말하지 못하고 生이라고도 못합니다.
그래서 불생불멸이라고 했어요. 이 도리를 안다면 어찌 生과 死에 연연해서
태어남을 기뻐하고 죽음을 슬퍼하겠습니까?
태어남도 담담하게..... 죽음도 담담하게 보아야 해요.
물론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다 던져버려야 합니다.
나는 죽지 않습니다. 영원히 죽지 않아요. 이것이 진리입니다.
이 강의를 통하여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던 불자님들은 자기의 진불(眞佛)을 깨
닫고 평온해지시기 바랍니다. 마음이 부처....내가 주인이므로 내 길은 내가 간다....
이렇게 매일 아침 크게 외치시고 마음 부처님께 모든 것을 턱 맡기고
편안하게 ....편안하게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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