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경 강의(4)/해안 스님▒

 

 

妙行無住分 第四

묘행무주분 제4.

 

 

■ 경문.

復次 須菩提 菩薩 於法 應無所住 行於布施

부차 수보리 보살 어법 응무소주 행어보시

 

所謂 不住色 布施 不住聲香 味觸法 布施

소위 부주색 보시 부주성향 미촉법 보시

 

須菩提 菩薩 應如是 布施 不住於相 何以故

수보리 보살 응여시 보시 부주어상 하이고

 

若菩薩 不住相布施 其福德 不可思量

약보살 부주상보시 기복덕 불가사량

 

 

※ 주석.

그리고 또 수보리야

보살은 응당 법에 집착한 바 없이 보시를 행할지니,

이른바 색에 머물지 않고 보시할 것이며

소리나 향기나 냄새나 맛이나 부딪침이

법에 착하지 않고, 보시할 지니라.

수보리야, 보살은 응당 이와같이

보시하여 상에 착하지 말라함은,

어찌한 연고이냐,

만약 보살이 상에 주하지않고 보시하면,

그복덕을 가히 생각으로 헤아리지 못할 지니라.

 

 

● 해설.

이경의 법문이

처음 수보리가 아뇩다라 샴막 삼보리마음을 낸 이는,

그 마음을 어떻게 머므르며 어떻게 항복 받으오리까 하고,

가르침을 청 하였을새,

이 대문에서, 만약 보살이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 있으면,

곧 보살이 아니라고 말씀 하신데 까지는,

그 마음을 항복받는 법을 가르쳐 보이시고,

이 대문에 와서는

그 마음을 머무르는 법을 일러주신 것이다.

수보리야

보살이 법에 집착 함이 없이

보시를 행할 것이니라 하셨다.

예를들면

"빛"이나 "소리"나 "냄새"나 "맛"이나 "부딪침"이나 "법"

이것은 육진을 말한 것인데

눈 귀 코 혀 몸 뜻 육근경계 (眼耳鼻舌身意六根境界)에

주하지 말고 보시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마음의 주처를 일러 주신 말씀이시다.

여기서 여러분의 의심이 생길것이니,

부주不住 를 말한 것으로 어찌하여 주住를 삼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의심이다.

눈을 감고 묵묵히 생각하여 보라,

우리들의 본 마음의 주처가 어디인가?

산인가 들인가, 바다인가 천상인가,

지하인가 전라도 인가 충청도인가,

아니 동양인가 서양인가,

아무리 천상천하 시방세계를 다 돌아 보아도 우리 본심의 주처를 알수 없는 것이다.

육근六根 에도 주하지않고,

육진六塵 에도 주하지 아니하여, 주가 없는 그곳이,

이 우리의 깨끗한 본심本心 의 주처이니 상에 주하지 말고 보시 하라함은

깨끗한 마음으로 보시를 하라는 말씀 이시다.

보시란 무엇인가,

물질로나, 법으로나 남에게 베풀어 주는것을 보시라 하나니,

보살이 피안에 이르는 방편으로 만행을 닦는것이나,

일만가지 행이 육바라밀에 지나지 않는 것이요.

육도문 가운데에도 보시가 머리가 되는 것이니

계를 닦는것과 지혜를 밝히는것은 보시의 다음이다

 

그러므로 보시는 피안에 이르는데 가장 빠른 길이 된다.

어째서 그러한가,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웁고 더러운 죄악의 근본이,

모두 탐욕에서 기인되는 것인데,

보시는 이탐욕의 무서운 병근을 다스리는 선약도 되고,

자비심의 등불도 되기 때문이다.

왜 그러한가,

보시는 내것을 널리 베풀어 준다는 뜻이니,

준다는것은 곧 놓아 버린다는 뜻이된다.

우리는 참으로 잘 살기 위하여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놓아 버려야 한다. 이것이 참으로 보시인 것이다,

눈도 놓아 버리고 귀도 놓아 버리고 코도 혀도 몸도,

알음아리도 놓아 버려야 한다.

이것이 참으로 보시인 것이다.

모두를 놓아 버리고 한 물건도 더 놓을 것이 없이

가난하게 된 때가 바로 잘 살게 될 때요.

기가 도피안이요. 그곳이 극락 세계인 것이다.

여기서 또 이런 생각을 일으키지 말라.

보시라 함은 주고 받는자가 있고 주고 받는 물건이 있을것이니

어떻게 상에 주하지 않고 보시를 행할 것인가,

 

이런생각을 하지 말라.

하늘이 비와 이슬을 내리고, 땅이 만물을 기르되

내가 보시 한다는 상이 없이 하고 있으며,

햇빛과 공기가 또한 그러하지 않은가,

내 마음이 깨끗하면, 육근이 육근이 아니요,

육진이 육진이 아닌 것이니 주는자가, 받는자가 있고, 주고받고 하는물건이

천만가지가 되기로서 어찌 한 사람인들 볼수 있으며

한 물건 인들 있을수 있으랴.

이것이 상에 머물지않는 보시이니

이와같이 깨끗한 마음으로 보시하면 이 복덕이야 말로,

사량 할수 없이 크다는 말이다.

 

 

■ 경문.

 

須菩提 於意云何 東方虛空 可思量不 不也 世尊

수보리 어의운하 동방허공 가사량부 불야 세존

 

須菩提 南西北方 四維上下虛空 可思量不 不也 世尊

수보리 남서북방 사유상하허공 가사량부 불야 세존

 

 

※ 주석.

수보리야 네 뜻에 어떠하냐,

동방 허공을 가히 사량 하겠는가,못함니다. 세존 이시여

수보리야,

남서북방과 사유 상하 허공을 가히 사량 할수 있는가,

못함니다. 세존이시여.

 

● 해설.

부처님의 설법이, 매양 법 을 먼저 설하시고,

다음에 비유를 들어 보이기도 하시고 먼저 비유를 들어 보이고,

다음에 법을 설하기도 하였으니,

그러한 예로 여기서는, 상에 주하지 않고 보시하는 복덕이,

한량없이 큼을 말씀 하시고저 먼저 허공의 비유를 드신 것이다,

사유는 동서남북의 사이가 되는 것이요,

상하는 위 아래이니,동서남북과 사유와 상하를 합하면,시방 허공이된다.

 

■ 경문.

 

須菩提 菩薩 無住相布施福德 亦復如是 不可思量

수보리 보살 무주상보시복덕 역부여시 불가사량

 

※ 주석.

 

수보리야 보살이 상에 주하지 않고 보시 하는 복덕도,

또한 이와같아, 가히 사량 할수 없나니라.

 

● 해설.

 

먼저 비유를 드시고, 이 대문에서 법을 들어 보이셔,

저 가이없고 위 아래가 없는 것과같이,

상에 머물지 않고 하는 보시복덕(布施福德) 도,

크고 커서, 어떻다고 사량할 수 없나니라 하신 것이다.

 

 

■ 경문.

 

須菩提 菩薩 但應如所敎住.

수보리 보살 단응여소교주.

 

 

※ 주석.

수보리야 보살이 다만 가르친바 대로 주할지니라.

 

 

● 해설.

 

부처님께서는,

수보리의 물음에 따라 마음 주하는 법을 말씀 하시고,

이 대문에서 윗 말들을 매잘라,

내가 위에서 알려준 바와같이

그 마음을 머무르 라고(住) 하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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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경 강의 (3)/해안 스님▒

 

大乘正宗分 第四

대승정종분 제3

 

 

■ 경문

佛告 須菩狸 諸菩薩摩訶薩 應如是 亢伏其心

불고 수보리 제보살마하살 응여시 항복기심

 

 

※ 주석.

부처님 께서 수보리 에게 말씀 하시되,

모든 보살 마하살이,

응당 이와같이 그마음을 항복 받을 지니라.

 

 

 

 

● 해설.

부처님께서 수보리의 물음에 따라,

모든 보살 들에게, 그마음을 항복 받는법을 일러 주시고자,

이렇게 항복 받아야 한다 하셨으니,

다음에 나오는 법문에서"이와같이" 라는뜻을 차차 알게 될것이요,

"보살마하살" 란 말은, 대승보살 (大乘菩薩) 을 이름이니,

일체 중생을 건져, 다 잘살게 하려는 대원大願을 세운보살,

즉 대보살(大菩薩) 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 대문에서 알아야 할것은,

수보리의 말 "물음" 이 어떻게 그 마음이 머므르며,

어떻게 그 마음을 항복 받으오리까 하셨거늘,

부처님의 대답은,

그 마음을 항복받는 말씀만 하시게 되었으니,

먼저 마음을 항복받아야 머무를수가 있기 때문이요,

마음만 항복 받으면 그 자리가 곧 주 住 가 되는 까닭이다.

 

 

■ 경문.

所有一切 衆生之類 若-卵生 若-胎生 若-濕生 若-化生 若-有色 若-無色

소유일체 중생지류 약-난생 약-태생 약-습생 약-화생 약-유색 약-무색

 

若-有想 若-無想 若-非有想 非無想을 我皆令入 無餘涅槃 而滅度之.

약-유상 약-무상 약-비유상 비무상을 아개영입 무여열반 이멸도지

 

 

 

 

※ 주석.

있는바 일체 중생의 무리인,

알로생긴 것이거나. 태로 생긴 것이거나,

습기로 생긴 것이거나, 화 하여생긴 것이거나,

색이 있는것이거나, 색이 없는 것이거나,

생각이 있는 것이거나, 생각이 없는 것이거나,

생각이 있는것도 아니요 생각이 없는것도 아닌 것들을

남음이 없는 열반 涅槃 에 들게하여 제도할 것이다.

 

 

 

● 해설.

중생들이 살고있는세계를,

욕계 색계 무색계, 셋으로 나누어,

이것을삼계 "三界" 라고 불교에서는 이른다.

그런데 이 삼계에 있는 중생들을,

이홉가지로 나누어 구별 한것이,

난생 태생 습생 화생 유색 무색 유상

무상 비유상 비무상 의 중생 들이니.

이것은 외계 外界 의 중생들을 말함이요,

내계 內界 즉 자심 自心의 중생들도 이러하니,

미혹한 성품, 익힌성품, 침울한 성품,

정치못한 성품, 고집하는마음,

아무것도 비어서 없다는 마음,

생각만 하고 행할줄 모르는 마음,

나무나 돌같이 아무 생각없는 마음,

있고 없는데 떨어 지지는 아니하나,

진리를 구하는 마음등,

이러한 자심 중생이 한량없이 많으니,

이많은 중생들을 하나도 빠짐 없이 제도하여,

저 깨끗하고 고요하고,

즐거운 열반의 세계에서,

하나도 빠짐없이 잘 살도록 하여야 할것이다.

 

■경문.

如是滅度 無量無數 無邊衆生 實無衆生 得滅度者

여시멸도 무량무수 무변중생 실무중생 득멸도자.

 

 

※ 주석.

이와같이 한량이 없고, 수가없고,

가이없는중생들을 제도 하였으되

실로 제도를 얻은 중생이 없다 할 것이니.

 

 

● 해설.

이 대문에서 나는, 불교란 무엇인가를 여러분에게 대강 알리고저 한다.

불교라는 말은 부처의 가르침 이라는 말이니,

부처라는 말은 깨친 이라는 뜻이요, 가르침 이란 말은,

먼저 깨친이가 아직 못깨친 이에게

자기의 깨친바를 가르쳐 준다는 뜻이니,

깨쳤다는 것은 무엇을 깨친 것인가,

이것을 먼저 독자 여러분이 알아야 할것이다.

깨쳤다는 것은 다른것을 깨쳤다는 것이 아니요,

자기에게 있는 본래의 마음을 깨친 것이요,

자기마음을 깨친것은, 부처의 마음을 깨친것이요

일체 중생의 마음을 깨친것이 된다.

부처의 마음이란, 본래 깨끗한 때없는 마음이요,

중생의 마음이란 번뇌에 물들어 때묻은 마음이라 할것이나,

이 마음도 본래는 깨끗한 마음이다.

깨끗 하던지 더러웁든지, 마음은 하나이요, 둘이아닌 것이다.

깨끗하다 하면 곧 더러운것이 되고,

더러웁다 하면 곧 깨끗한 것이니,참으로 깨끗한 것은,

깨끗하고 더러운 것이 없는것이요, 하나라 하면 둘이 있는 것이니,

참으로 하나이면 하나 이니 둘이가 없는 것이다.

마음을 깨쳤다 하나 마음은 마음도 아닌 것이니,

마음이라 이름 함은,

어느 장난꾼들의 군소리 임이 틀림없는 것이다.

그러면 마음은 마음도 아닌것이 마음인가,

이렇게 생각 할지나, 이도 또한 마음이 아닌 것이다.

참 마음에는 마음이니 마음 아니니가 붙지 않는 것이요,

부처니 중생이니가 없는 것이요, 깨치고 못 깨침이 없는 것이요,

참이니 거짓 이니가 없는 것이요,

부처니 중생이니가 없는것이요, 제도 하느니 제도 받느니가 없는것이요,

이언덕 이니 저언덕 이니가 없는 것이요,

선이니 악이니가 없는 것이요,

지옥이니 천당이니가 없는 것이니,

일체 이름과 말과 상과 자취와 냄새가 다 끊어진 것이다.

그러면 이렇게 깨친것이 마음을 깨친 것인가, 아니다.

이도 깨침이 못된다.

한 물건도 취 하지 아니 하나,

한 물건도 버리지 않는 것이 불법임을 알아야 한다.

왜냐 하면 불법은 마음법이니,

마음법이 본래 그러하기 때문이다.

 

■ 경문.

何以故 須菩提 若菩薩 有我相 人相 衆生相 壽者相 卽非菩薩

하이고 수보리 약보살 유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 즉비보살

 

 

※ 주석.

어찌한 연고이냐, 수보리야,만약 보살이 나라는 상이거나,

수자상이 있으면, 곧 보살이 아니니라.

 

● 해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수보리에 말씀 하시기를 ,

보살이 만약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 있으면

보살이 아니라고 하셨으니,

중생을 제도 한다 함은

중생으로 하여금 일체 번뇌를 녹혀라 하고,

청정무구한 자기의 본연 성품을 보게 함이어늘,

만약 중생을 제도 한자가 있고,

제도 받는자가 있으면 이는 번뇌요,

깨끗한 본심이 아닐새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의 번뇌가 있으면,

이것은 중생을 멸도한 보살이 아니라는 말씀 이시다.

이 경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사상" 을 몇번이고 반복하여

중언부언 고구정녕히 밝히셨으니,

이 "사상" 이 우리에게 얼마나

해독이 크고 무서운가를 알것이다.그러면 사상이란 무엇인가,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 이다. 아상은 나라는 상이니,

나 개인을 근본으로 하는 일체 생각과, 일체행동 이요,

인상은 내가아닌 남이라는

일체 생각과 일체 행동이요

중생상은 괴로운 것을 싫어하고

즐거운 것을 탐내는, 일체 생각과 일체 행동이요,

수자상은 청정열반을 즐기어 잊지 못하고,

영원히 거기에 주하려는 상이다.

그러니 이 네가지 상이 나 라는상에서 근본된 것이니,

나라는 상만 없으면 인상 중생상 수자상은,

동시에 없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상만 없으면 곧 부처인 것이다.

부처는 부처도 없는 것이 부처이니,

중생이 어찌 있으며, 부처와 중생이 없으니,

누가 멸도를 하며, 누가 멸도를 받을자이랴,

그러므로 부처님 께서 말씀 하시되,

무량 무수 무변중생을 멸도 하셨으되,

실로 중생이 멸도 받은자가 없다고 하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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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경 강의(02)/해안스님▒

 

善現起請分 第二

선현기청분 제 2

 

 

■ 경문.

時 長老須菩狸 在大衆中 卽從座起 偏袒右肩 右膝着地 合掌恭敬

시 장로수보리 재대중중 즉종좌기 편단우견 우슬착지 합장공경

 

而白佛言 希有世尊 如來 善-護念諸菩薩 善-付囑 諸菩薩

이백불언 희유세존 여래 선-호념제보살 선-부촉 제보살

 

 

※ 주석

그때 장노 수보리가,

대중 가운데서 일어나,

오른쪽 어깨에 옷을 걷어메고

오른 무릎을 땅에 꿇고, 합장하고

공경하여 부처님께 사루어 말씀 하되,

희유 하십니다.

세존 이시여,

여래께서는 모든 보살들을 잘 호념 하시며

모든 보살 들에게 잘 부촉 하시옵니다.

 

 

● 해설

부처님 께서는 도(道)가 행주좌와(行柱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의 평범한데 있음을,

말없이 몸으로서 보이어, 가르치실세,

이뜻을 아는 제자로서,

나이많고 덕이 큰 수보리가 대중 가운데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께 법을 청하고저,

합장 공경하고 사루어 말씀 하되, 거룩 하십니다.

세존이시여,하고 감탄사를 먼저 발한다음,

여래께서는 모든 보살들을 간절히 사랑 하시며,

모든 보살들에게, 간곡히 위촉하시어 법을 전하고,

중생을 제도 하도록 하십니다. 하였다.

합장은 두손을 한데 모으는 것이니

몸과 마음을하나로 뭉치는 성심의 결정이요,

여래는 불명호중(佛名號中) 의 하나이니 여여히 왔다는 뜻이요,

보살이라는 말은 자리(自利)와 이타(利他)의 행이 구비하여,

모든 중생을 깨우칠 만큼 공부가 된 이를 지칭하는 이름이다.

 

 

■ 경문.

世尊 善男子 善女人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

세존 선남자 선여인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

 

應-云何住 云何 降伏其心

응-운하주 운하 항복기심

 

 

※ 주석.

세존 이시여 선남자 선여인이,

아뇩다라삼먁 삼보리의 마음을 발한이는,

응당 어떻게 마음을 머므르며

어떻게 그마음을 항복 받으오리까.

 

 

● 해설

이경의 법문이,

수보리가 이 말씀을 부처님게 물음으로 부터 시작하여,

부처님 께서는 이말씀을 대답 하시므로 금강경 법문을 마치신 것이니,

수보리와 부처님 사이에 여러번 묻고 여러번 대답 하신것이,

말과 다르나 뜻은 다,아뇩다라삼먁 삼보리의 마음과,

이마음의 머므르는 법과, 이마음의 항복받는 법을 가르치시어,

중생들의 무서운 병근(病根)을 고치시기에

고구정녕(苦口丁寧)으로 친절 하시었으니,

이 대문에 착안하여, 이경의 법문을 살펴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면 아뇩다라 삼먁삼보리 의 뜻을 말하면,

한역으로 무상, 정변, 정지, 라고한다.

그러나, 한문을 모르는 사람이나,

한문을 약간 안다 할지라도,

불교에 초보인 사람은,알기 어려우므로 쉽게 말하여,

최고 최상 의 진리(眞理)라고 생각 하는것이 좋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최고최상 (最高最上)의 진리는,

가장 잘사는 법이므로,

아뇩다라삼먁 삼보리심은 가장 잘사는 마음이라고 알면,

아무나 이해 될것이라고 생각한다.

인생의최고 목적과 최고 희망이,

잘 살려는데있고,잘사는 이것이 최고 진리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 잘살려는 마음을 낸 사람은, 어떻게 이마음을 머므르며,

어떻게 이마음을 항복 받아야 할것인가를 수보리가 물은 것이니,

마음을 주할줄 모르고, 마음을 항복 받을줄 모르는사람은,

잘살수 없기 때문이다.마음을 머무른다는 말은,

마음을 가진다는 말이니,

이 아래 나오는 법문에서 마음 가지는법과,

마음을 항복받는 법을 배워서 알지어다.

 

 

■ 경문.

佛言 善哉善哉 須菩提 如汝所設 如來

불언 선재선재 수보리 여여소설 여래

 

善-護念諸菩薩 善-付囑諸菩薩 汝今諦聽

선-호념제보살 선-부촉제보살 여금제청

 

當爲如說 善男子善女人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

당위여설 선남자선여인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

 

應-如是住 如是 降伏其心

응-여시주 여시 항복기심

 

 

※ 주석

부처님께서 말씀 하시되,

착하고 착하다.수보리야,

네 말과같이,

여래가 모든 보살들을 잘 호념 하며

모든 보살에게 잘 부촉 하나니,

네 이제 자세히 들으라,

마땅히 너를 위하여 일러 주리라,

선남자 선여인이,

아뇩다라삼먁 삼 보리심을 낸이는,

응당히 이와같이 머므르며,

이와같이 그마음을 항복 받을 지니라.

 

 

● 해설.

부처님께서 수보리의 묻는 말씀을 들으시고,

그말을 곱게 생각 하시어,

선재선재라 칭찬 하신다음,

여래께서 말씀 하시기를,

네 말과같이 모든 보살들을 잘 사랑 하시며 모

든 보살 들에게 간절히 부탁 한다.

너를 위하여 마음가지는 법과,

마음을 항복 시키는법을 말 하리니,

자세히 듣고 잊지말며, 말과같이 행하여라.

선남자 선여인이 잘살려는 마음을 낸사람은,

당연히 이와같이 그 마음을 가지고 항복 시켜야 하느니라 하셨으니,

(이와같이) 라는 말씀 속에는,마음을 가지는 법이나,

항복받는 법을 다일러주신 말씀이시다.

앞으로 나오는 법문이,

모두, 이와같이라는(이)속에 속하는 것임을 알아두어야 할것이다.

 

 

■ 경문.

唯然 世尊 願樂欲聞.

유연 세존 원요욕문

 

 

※ 주석.

네, 그렇습니다. 세존 이시여, 원 컨대 즐겨 듣고저 합니다.

 

 

● 해설.

부처님 말씀을 들은 수보리는,

반가운 마음을 금 하지 못하여,

말씀이 떨어지자 마자 네 그렇습니다.

즐겨 듣기를 원 하옵니다.

하였으니, 수보리와 부처님의 문답은

천고(千古)의 지음(知音) 이시다.

물을것 없는 물음과, 대답 할것 없는 대답은,

중생을 위하시는 대자대비의 간절히 일으키신,

노파심 (老婆心)에서 생긴 것임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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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반야바라밀경 해안스님강의





○머리글


내가 지금 이 붓을 잡고 있는 곳은 불대산 하청산방이다. 
이곳은 옛날 고려조, 공민왕의 왕사이신 나옹스님이 깃드신 암자이다. 사람들의 왕래가 적어 매우 고요한 처소이다. 그리고 이 절 주인이 되시는 장효스님과는 사십여 년 전부터 인연이 깊은 도반이어서 한여름을 이 스님에게 도움을 받아 『금강경』 강의에 착수하였다. 내가 『금강경』을 독송하기는 십여 년 전에 금산사 서래선림에서 비롯하였다. 젊은 수좌들을 데리고 있으면서, 참선시간 외에 『금강경』을 독송토록 하였다. 수좌들 외에도 선남선녀들을 대하면 『금강경』 독송을 권하였던 것이다. 
이리하여 음으로 독송만 할 뿐 아니라, 경의 뜻을 다소라도 알리고자 한글로 번역하여 서래선림과 군산 불교청년회의 주선으로 천여 부를 간행하게 되었던 바 때마침 불행하게도 6·25동란으로 인하여 소각되어 재로 화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나 『금강경』 독송은 지금까지 일과로 삼아, 아무리 바쁠지라도 하루 한 번만은 독송하기를 마지아니 하였으며, 내가 권하여 『금강경』을 독송하는 스님네나 선남선녀도 수십 명에 달하고 있다. 
나는 욕심이 많은 사람이다. 이 경만은 온 천하 사람에게 꼭 한 번만이라도 읽히고 싶다. 읽히고 싶은 이유는 이러하다. 
사람들이 무엇 때문에 사는지, 무엇을 하기 위하여 살고 있는지, 그저 막연히 생겨났으니까 살 때까지 살아가는지, 나는 이것에 대해서는 모른다. 그러나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잘살려는 욕망은 전 세계 인류, 누구 할 것 없이 공통된 생각일 줄 안다. 농사짓는 사람이나 고기 잡는 사람이나, 장사꾼, 공장 직공, 학자, 정치인, 종교인, 또한 석가나 예수나 공자에게 물어 볼지라도 잘살려는 이 한 생각만은 누구나 동일할 것이다. 이 붓을 잡은 나도 그러하고 이 글을 읽는 사람이나 읽지 않는 사람도 다 그러할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사는 것이 잘사는 것인지. 어떻게 살아야 잘살 것인가. 사람이 누구나 잘살려는 동일한 욕망을 가졌을진데, 이 동일한 욕망을 달성시킬 동일한 발견점이 있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누구나 잘살려면 이 법을 의지하지 않고는 안 된다는 이 법을 발견해야 할 것이다. 잘살려면 잘사는 법이 필요할 것은 정한 이치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나는 잘사는 법을 말하기 전에, 먼저 어떤 것을 일러 잘사는 것이라고 하는가를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금은옥백이 산과 같이 쌓이고, 처자 권속이 너룬장 하면 이것을 일러 잘사는 것이라 할까, 몸이 만승의 위에 있어 문무백관이 조석으로 굽신굽신하고, 한 번 웃고 한 번 성냄에 위엄이 사해에 떨치며, 천하의 백성이 두려워하면 이것을 일러 사는 것이라 할까? 소진 장의와 같은 변재로서 능히 육국을 달라며, 사자후의 웅변을 토하여 듣는 이로 하여금 가슴이 서늘하게 만들고, 붓을 들매 글귀마다 광채가 나고, 책장마다 살활자재의 문장을 이루어 천하의 독자를 놀라게 하며 귀신도 곡할 만한 큰 문호가 된다면 이것을 일러 잘사는 것이라 할까. 부귀와 명예를 헌신짝같이 던져버리고 뜬구름 흐르는 물로 살림을 삼아, 강산을 주유하며 천하의 영웅과 만나고 호걸을 비웃으며 천상천하에 유아독존인양 하는 이가 있다면, 이것을 일러 잘사는 것이라 할까, 아니다. 아니다. 모두가 잘사는 것이 되지 못한다고 나는 주저하지않겠다. 
그러면 어떤 것이 잘사는 것일까? 잘사는 것이란 부족이 없는 것이 잘사는 것이요, 써도 다하지 않는 것이 잘사는 것이요, 구할 것 없는 것이 잘사는 것이요, 근심과 고통이 없는 것이 잘사는 것이요, 원망과 분함이 없는 것이 잘사는 것이요, 공포와 비애가 없는 것이 잘사는 것이요, 미움과 질투가 없는 것이 잘사는 것이요, 성쇠의 변함이 없는 것이 잘사는 것이요, 강제와 구속이 없는 것이 잘사는 것이요, 해탈과 자유가 있는 것이 잘사는 것이요, 늙지 않고 병들지 않고 죽지 않는 것이 잘사는 것이요, 보다 위없는 것이 잘사는 것이요, 마음에 흡족한 것이 잘사는 것이다. 
보라! 이렇게 잘살아 본 사람이 누구이며, 잘살고 있는 사람은 누구이며, 잘살아 보려고 애써 몸소 행하고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이제 나는 독자 여러분에게 가장 잘사는 법으로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蜜經)을 말하고자 한다. 이 경은 부처님께서 49년간 설법하신 중에, 21년이나 이 경을 설하셨다 한다. 왜 이 경을 다른 경보다 오래오래 두고두고 설하셨는가. 이것은 부처님께서도 그 까닭이 있으신 것이다. 
병도 큰 병은 하루 이틀, 한 달 두 달, 한 해 두 해에 낫기가 어려운 것이다. 약도 오래오래 먹어야 하고, 조섭도 오래오래 하여야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위병이 가장 많으므로 위약이 가장 많이 복용되듯이, 세계 중생들의 가장 많은 병은 상병(相病)이다. 내라는 상병에 걸리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상병은 모든 병의 근원이 된다. 
이러할새, 부처님께서 이 병을 다스리는 데는 오직 금강반야바라밀경의 약이 가장 필요적절하기 때문에 이십일년이나 긴 세월을 두고 설하신 것이다. 이 병만 떼면 누구나 건강하던 본래 그 사람이다. 본래 그 사람만 되면 잘사는 것은 따로 물을 것이 없다. 
이리하여 나는, 이 경을 나 아는 대로나마 감히 강술하여 독자 여러분에게 바치게 된다. 
병 없는 사람에게는 구태여 이 약이 필요하지 않다. 그러나 가만히 눈을 감고 자기를 진찰하여 보아, 어딘가가 부족한 생각이 들고 마음에 걸리는 데가 있거든, 조금도 주저하지 말고 이 『금강경』 약을 복용하시라. 이 경은 세계 평화의 초석이며, 전 인류가 잘살게 되는 행복의 터전임을 실다이 고백하여 마지않는다. 


 

 

○상권 강의


금강반야바라밀경은 금강은 단단하다는 뜻이요,

반야는 지혜라는 뜻이요.경는 길이라는 뜻이다.

단단한 것을 말하면 바위나 강철을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바위도 부셔져 없어지는 것이요,

강철도 녹일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금강은 단단한 것으로 든것은 모든 것은 다부셔질수 있으되

이것많은 절대로 부셔질수 없는 단단한것을 비유로 들은 것이요.

반야는 지혜이나 지혜도 여러 가지가 있다.

우리들이 보통 말하는 지혜는모두가 분별하는데서 생기는 지혜이지만

여기서 말하는 지혜는 분별을 여인 지혜 맑고 깨끗한 참지혜를 이름이요

바라밀은 저 언덕에 이른다는 말이니 저언덕이란 어떤것인가

저 언덕이 있으면이언덕이 있기 때문이니 이언덕을 먼저 알아야 할것이다.

이언덕이란 중생들이 사는 세계이니

어둡고 괴롭고 부자유하고 더러운 세계이다.

어찌하여 중생의 세계는 이러한가?

중생은 맑고 깨끗한 지혜가 없음으로 바른 진리를 얻지못하여

암흑속에서 혜메이는 것이요.

중생은 생사심을 쉬지 못하여 하루 동안에도 만번 낳고 만번 죽기 때문에 괴로운 것이요.

중생은 애욕의 줄로 자기의 몸과 환경을 꼭꼭 얽어묶기 때문에 부자유한 것이요.

중생은 육근의 종이되여 항상 육진경계에 빠지기 때문에 더러운 것이다.

그러면 저 언덕은 어떠한 세계인가.

저언덕은 곧 부처의 세계이니

고요히 밝고 즐겁고 자유롭고 깨끗한 세계이다.

어찌하여 불세계는 이러한가, 부처는 시방국토에 두루하여

고요히 비치므로 사물에통하여 밝은 것이요.

부처는 낳고 죽고하는 생사심이 없음으로 적멸의 즐거움만 있는 것이요.

부처는 아무도 구족할 자가 없는고로 언제나 자유인 것이요.

부처는 빛과 상에 물들지 않으므로 언제나 깨끗할 뿐이다.

그러면 이언덕과 저 언덕을 알것이니 저언덕에 이른다는 말은

중생의 세계에서 부처의 세계로 도달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여기서 중생의 세게와 부처의 세계가 얼마만한 거리인가.

일아야한다. 부처가 중생이요 중생이 곧 부처이니

똑같은 손바닥을 쥐고펴는 차이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 생각의 차이이니 마음만 깨끗하면

촌보를 옮기지 않고 이언덕이 저언덕인 것이다.

경란 말은 쉽게 말하여 길이라는 말이다.

목적지를 행하고 나아감에는 반듯이 길이 필요한 것이다.

산에를 가던 들에를 가던 바다를 가던 걸어가던 타고가던

반듯이 길을 의지하지 않으면 자기의 목적지를 가기가 어려운 것이다.

설사 어찌하여 목적지를 간다 하여도 천신만고 어려운 고비가 혜아릴수 없이 많은 것이요,

시간으로도 하루 갈길을 몇십년 헤매게 되는 것이니

무엇을 목적하던지 반듯이 그 길을 의지하지 않고는 안되는 것이다.

그러면 이 경의 제목은 금강같이 견고한 지혜로 즐거운 저 언덕에 도달하는 길이라는 뜻이다.

 

 

▒금강경 강의 (01)/해안 스님▒

 

法會因由分 제一

법회인유분 제1.

 

■경문.

 

如是我聞 一時佛 在舍衛國 祇樹給

여시아문 일시불 재사위국 기수급

 

孤獨園 與大比丘衆 千二百五十 人俱

고독원 여대비구중 천이백오십 인구

 

※ 주석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한때 부처님이 '사위국 기원정사'에서

제자 천이오백오십 인과 함께 계셨다.

이 때 세존이 진지 드실 때가 되어

가사를 입고 바리때를 들고

'사위' 성에 들어가서 집집마다 차례로 걸식하시고

자리에 다시 돌아와서 진지를 드시고

가사를 고쳐 입으시고 발을 씻으시고

위엄을 갖추고 앉으셨다

 

● 해설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는 말은

부처님 당시에 부처님의 제자이신

아란존자가 석가모니 부처님에게 친히 들었다는 말이니

부처님이 열반하신 후에

그 제자들이 불경을 편찬하게 될세

아란존자가 편집 주필이 되었기 때문에

부처님 생존 당시에 부처님에게 친히 본바

들은바를 기록 하므로서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한것이다.

이와같이 [이]는 이경 법문의 전부를 총칭하는 대명사가 된다.

한때라 함은 비롯함이 없는 옛날부터 다함이 없는

미래제 과거 현제 미래가없기 때문에 한때라 한것이요.

부처라는 말은 깨쳤다는 뜻이니

여기서는 석가모니불을 지칭하는 말이요

사위국은 이경을 설하시던 인도에 있는 나라 이름이요,

기수는 기타 태자가 심은 나무라하여 기수라 하고

급고독은 그때 자선가로서

고독한 사람들을 많이 구해주던 사위국의 재상인 수달의 별명이니,

이제상이 기타 태자에게 동산을 빌어서 절을 세웠으므로 절이름을

급고독원 이라하고 비구라는 말은 비는 선비라는 뜻이니

마음으로는 법을빌고 몸으로는 밥을 빈다는 뜻이다.

그러면 이 대문에서는 부처님께서 설법하사던

때와 장소와 법주와 청중을 밝힌것이다.

 

■ 경문.

爾時 世尊食時 着衣持鉢 入舍衛大城 乞食 於其城中

이시 세존식시 착의지발 입사위대성 걸식 어기성중

 

次第 乞已 環至 本處 飯食訖 收衣鉢 洗足已 敷座而坐

차제 걸이 환지 본처 반식흘 수의발 세족이 부좌이좌

 

 

※ 주석

그때에 세존께서 공양 하실때가 된지라 가사를 메고 바루를들고

사위대성에 들으셔 그 성중에서 밥을 빌으시되 차례로 빌어 마치시고

다시 본처로 오시여 공양을 다하시고 의바을 거두시고 발을 씻으신 후

자리를 펴고 앉으시다.

 

 

● 해설

세존이라는 말은 부처님의 열가지 이름가운데 하나이니

세상에서 제일 높으시다는 뜻이다.

부처님 께서는 하루 한끼를 잡수시는데

사시에 공양을 하신다.때마침 사시가되여

부처님 께서는 대중과 다름없이

차림새를 같이 하시고성중에서

빈부의 차별없이 밥을 빌으셨다.

이 대문에서 알아야 할것은 부처님은 세간에 있어서는

인도 정반왕의 태자로서 장차 만승의 위에 오를 어른이요,

출세간 적으로는 삼계(욕계.색계.무색계)에 큰 스승이시고

사생(태생.난생.습생.화생.)의 자부이시어

그 지존 지귀하심이 말할수 없거는,

어찌하여 그러한가,중생들응 너나없이

모두 [나]라는 [상] 때문에 깨끗한

마음을 보지 못하여, 부처가 되지 못하고

항상 중생계에서 윤회하며

만반의 고통을 받을세 부처가 되기위하여는

먼저[나]라는 [상]을 떼어야 하고

[나]라는 [상]을 떼기 위하여서는

먼저[내]다하는 마음을 조복 받아야하고

[내]라는 마음을 조복받기 위하여는 걸식을 하는공부가

한 방편이 될것이다.

어찌하여 그러한고 남에게 무엇을 달라고 비는자가

[내]다하는 거만한 마음이 있다던지

뒤로 자빠듬한 거동을 보인다 던지 하면

상대방이 주지 아니 할것은 정한 이치이다.

그러므로 남에게 무엇을 청하는 자는 반듯이

내머리를 숙여야 하는 것이니

내 마음을 조복받도록 하는 것이 이 걸식의 요지이다.

그리고 빈부를 가리지 않고 평등하게 빈것은 부자도

항상 부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복이 다하면 다시 타락하여 간난하개 됨으로

부자도 또한 복을 짛어야 할것이요,

간난한 자는 더욱 복을 심지 못하여 간난하기 때문에

복을 짛어주기 위한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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