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바라밀과 보살이란

摩訶般若波羅蜜多心經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지난 시간에 반야까지 했으니까 이번에는 '바라밀다'를 하겠습니다.

바라밀다(波羅蜜多)나 바라밀(波羅蜜)은 같은 말입니다.

원래 바라밀다라고 발음 해야하는데  줄여서 바라밀이라고도 한다고 합니다.

역시 인도말인데 음사하여 바라밀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뜻은 도피안(度彼岸)입니다. 즉 저 '언덕으로 건너가다' 라는 형용사입니다.

건너간 상태가 아니고 '건너가는 과정'을 말해요.

불교에서 사바세계는 바다로 표현합니다.

고요하다가도 순식간에 파도가 몰려와서 모든 것을 한 순간에 앗아가는 파도와 태풍

이 있는 바다입니다. 배는 지혜를 상징해요.

고해를 건너가려면 지혜가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배와 같고 작은 배는 흔들림이 많고 건너기 어렵습니다.

이것을 소승불교라고 해요. 소승지혜죠. 그러나 큰 배는 파도에 대체로 안전합니다.

여러 사람이 같이 타고 있기 때문에 즐거움과 여유가 있고 서로 서로 은혜를 받는 배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대승불교라고 합니다. 여럿이 가는 배이고 대승지혜입니다.

여기에는 반드시 선장이 있어야 합니다. 이 분이 바로 보살입니다.

“상구보리하화중생”

저 언덕은 이상세계입니다. 불국토(佛國土)이고 부처님이 계신 곳입니다. 그곳의 주인은 부처님입니다.

그 세계를 저피(彼)자, 언덕안(岸) 자를 써서 피안(彼岸)이라고 하고

고통으로 가득한 이곳은 이차자, 언덕안자를 써서 此岸(차안) 이라고 합니다.

차안이라고 발음합니다. 차안에서 피안으로 가려면 반드시 배를 타야되요.

중간에 고해(苦海)의 바다가 있기 때문입니다.

지혜는 배입니다. 우리가 반야지혜를 얻으려고 하는 것은 바로 고통의 바다를 넘어가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고해를 건너려면 배에 탄 모든 선원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다 한가지씩 맡은바 일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배가 안전하게 목적지에 닿습니다.

바로 그 '지혜의 배'를 피안에 닿게 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을 바라밀다라고 합니다.

즉 배가 앞으로 나아가게 노를 젖는 노력이 바라밀다입니다.

좀더 명확한 언어로는 수행, 또는 실천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원전에 바라밀다....즉 '배를 젓는 모양' 이라고 나와 있으니까

일종의 비유적인 언어가 바라밀다입니다.

심경(心經)은 요긴한 경....심장부가 되는 말씀...핵심 말씀이라는 뜻입니다.

정진하세 정진하세 물러남이없는 정~진

그러니까 摩訶般若波羅蜜多心經을 종합하여 번역하자면

'대지혜를 실천하는 방법을 말씀' 하심 이라는 혹은 수행과 실천은 같은 의미이니까

'대지혜를 수행하는 방법을 말씀하심' 이라는 뜻도 됩니다.

그런데 대승불교에서는 원래 6가지를 실천수행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것을 6바라밀이라고 하는데 '여섯 가지 수행' 이라는 뜻이지요.

첫째 보시바라밀  베푸는 것을 실천하라.

둘째 지계바라밀  지켜야 하는 것을 잘 지켜라.

셋째 인욕바라밀  참는 수행을 잘 해라.

넷째 정진바라밀  부지런히 나아가라.

다섯째 선정바라밀  일념을 얻으라.

여섯째 지혜바라밀  지혜로운 생활을 하여라.

이렇게 6가지 수행이 일상사 실천수행입니다.

잘 기억해두었다가 이대로 실천하도록 하세요.

우리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접하다가 갑자기 계율에 들어가면 황당할 정도로

많은 '지켜야 할 것' 을 말씀하심에 놀랍니다.

세부적으로 엄청난 것들의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은 말씀하셨어요.

그런데 반야심경에 더러움도 없다, 깨끗함도 없다.

했는데 계율에서는 왜 그리 많은 것을 금지했는지 아리송해집니다.

그러나 진정 자유로운 사람들은 계율도 자유롭게 지킬줄 아는 사람들입니다.

옐들어 사람이 평등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라면

노인을 보면 인사하고 모시고 공경하게 하는 것을 잘 할줄 아는 사람입니다.

평등이란 노소도 없이 같이 말놓고 지내는 것이 아니고

노인은 공경하고 젊은 사람은 겸손한 것이 평등입니다.

나이가 드신 분은 어른이고 젊은 사람은 아랫사람입니다.

이것이 평등입니다. 각자에 맞게 자연스러운 평등입니다.

그렇지 않고 다 똑같다 하면서 아버지 안테도 반말하고

할아버지 한테도 반말하고 아랫사람한데도 반말하고

하는 것은 평등이 아니고 오히려 불평등입니다.

불자는 스님에게는 깍듯하게 3배해야 하고

선생님을 존경하고..... 사장에게는 경어를 쓰고.....

이것이 나름대로 관습법이고 평등을 지키는 법칙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많은 계율을 말씀을 하셨어요.

네가 자유롭다면 이것을 지키는 자유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수행자라면 계율을 근본으로 질서를 지켜나가라.

물론 오래된 것이라 지금은 사장된 것도 있으나

요즘에도 통용되는 계율이라면 당연히 지켜야 하는 것들입니다.

그러므로 이 6수행도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지켜야 하는 실천수행입니다.

이것을 잘 지켰을 때 피안에 당도함이 빨라지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 여섯번째 수행이 지혜바라밀인데 바로 이것이 반야바라밀입니다.

지혜를 실천하는 것..... 나를 버리는 '지혜의 실천' 이 바로 바라밀이어요.

관자재보살은 대승불교에서 큰 수행자입니다.

대승불교에서는 특이한 수행자가 나타나요.

그동안 소승불교에서는 보살이라는 단어가 안나오고

비구나, 비구니....가 주로 부처님께서 부르던 호칭이었는데

대승불교에서는 갑자기 보살이 등장합니다.

원래 보살은 보리살타 라고 불렀어요.

보리=지혜

살타=수행자

본래 '보디삿트바' 라고 발음해야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보리살타라고 하고 줄여서 보살이라고 부릅니다.

본래라면 '보삿' 이라고 불러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학자들은 대승경전이 등장한 시기에 대해서 논란이 많아요.

그러니까 불멸...약 4백년후에 대승불교가 정착되었고

대승경전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빨리 잡아도 대략 300백년경부터일 것입니다.

기원전 1세기가 대승불교이니까?

지금부터 2500년전으로 대략 말하고 있으니까

불멸 4백년후겠지요. 년대는 불분명합니다.

왜냐면 부처님은 지금부터 3000년전의 성인이라는 설도 있어요.

그런까 공인...즉 통일된 년도가 2천5백 몇년입니다.

그 야그하려면.... 복잡해져요.

어찌 되었든 여긴연도를 따지는 시간이 아니니까...각설하고

불멸 몇백년 뒤에 갑자기 대승경전이 나타나고

그것이 불같이 유행하고 읽히더니

모두 대승경전을 신봉하니까 갑자기 대승불교시대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왜 3백년간 보이지 않던 경전이 갑자기 나타났는가? 그것도 한 두권이

아니고 수백권씩이나 말입니다.

지금 강의하고 있는 반야부만해도 600부나 됩니다.

거의 600권이라고 이해해도 됩니다.

누가 위작했다면 불가능해요.

그리고 사상이 소승불교 사상을 그대로 이었습니다.

다만 뜻이 넓고 광활했으며 보살이라는 명칭이 등장하기 시작했다는 것이 다른 점입니다.

그래서 대승불교는 보살도라고 하는데 도대체 어디에서 있다가 나타났을까? 아니면 누가 지었을까?

아직도 풀지 못한 수수께끼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자들은 부처님의 진설로 인정하고

이것이 어디엔가 있다가....동굴같은데... 나중에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즉 이것도 불설인데 부처님께서 돌아가시자 바로 제자들은 소승경전을 중심으로 불

교를 수행했고 그때 멀리 창고에 묻어두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나중에 개방적인 성향을 가진 스님들에 의하여 세상에 나오기 시작했고

점점 모두 전파되었다는 것입니다.

화엄경, 능엄경, 법화경, 원각경, 반야경...등등....

거의 모두 붓다의 사상이라고 해도 좋을 경들은 다 대승경전입니다.

여기에 모두 보살이 등장해요.

그런데 보살은 사실 출가승이 아니고 일반인입니다.

모자를 쓴 것으로 보아서 사대부입니다.

즉 귀족이죠. 부처님 당시에는 귀족들이...그것도 남자들이 붓다를 따랐습니다.

그때 모자가 지금 법당에 있는 보살모자입니다.

그리고 머리를 길렀기 때문에 머리카락이 그대로 뒤로 치렁치렁하게 내려져있어요.

이 보살상이 부처님과 나란히 탁자에 올라가 않으면서

불교는 비로소 평등 사상이 실현되었어요.

즉 그동안 비구 비구들만 수행하여 붓다가 되는 것으로 생각하였는데

대승불교에서는 누구나 될수 있는 것으로 평등해졌기 때문입니다.

뒤로 갈수록 인간은 공평해지는 것이 역사입니다.

자, 그정도로 설명하고....

관자재보살은 이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을 설했던 인물입니다.

반야심경은 석가모니불이 설했던 경이 아니고

관자재보살이 설한 경입니다.

물론 이전에 대품반야경에서 여기 반야심경과 같은 구절들이 많이 나옵니다.

대품반야경은 부처님의 진설입니다.

그러니까 거의 같은 내용인데 관자재보살이 정리해서 다시 일반인에게 설한 경이 반야심경입니다.

내용이 짧고 일반인들이 외우기 쉽게 되어있어서 그리고 부처님의 모든 반야경의 핵심을 간추려놓았기 때문에

조석으로 우리가 읽고 신행하는 것일뿐입니다.

관자재보살은 남해 ....인도에서 남해 에 있는 보타낙가산이라는 섬에 살았던 장자입니다. 남자입니다.

그런데 여기 첫 구절은 전달자의 말입니다.

즉,

觀自在菩薩 行深般若波羅蜜多時 照見五蘊皆空 度一切苦厄

관자제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

관자재보살이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때에 오온이 다 공함을 비추어 보고 모든

괴로움을 여의었느니라 입니다. 보통 경전의 전달자의 말이 첫구절에 있는 것이 공통입니다.

금강경도 아란존자가 처음에 전달하는 내용으로 되어있어요.

여기 반야심경도 마찬가지로 처음에 아란존자가 전달하는 말로 시작합니다.

당시 부처님은 삼매에 드셨고, 관자재보살이 일어나서 대중에게 설법하였어요.

즉 지금 법당에서 부처님께서는 조용히 좌정하고 계시고 스님이 그 앞에서 설법하는

것을 연상해보시면 됩니다.

부처님께서는 삼매에 드셨고 관자재보살이 나와서 대중에게 설법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 일반인 불자가 많았는데 왜 보살이라는 말이 튀어나왔을까?

부처님 당시에는 일반인보다 한 단계 높은 정신 세계에 들어갔던 일반인이 있었어요.

이들은 부처님은 보디샸트바....즉 지혜를 얻은 자 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지혜를 얻었다는 말인데 여기서 말하는 지혜는 보리(菩提)입니다.

흔히 보리지혜는 '깨달음을 얻은 자의 지혜' 라고 말합니다.

즉 지난 시간에 말했던 2번째의 지혜입니다.

1. 지식과 경험이 많은 자의 지혜

2. 깨달음을 통하여 얻은 지혜...보리지혜

3. 나와 앎을 버린 자의 지혜...반야지혜

지혜는 이렇게 3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서 깨달음을 통하여 지혜를 성취한 것을 보리라고 해요.

그 '보리' 를 얻은 자.... '보디샤트바'....

보살입니다.

그러니까 일반인 중에서 깨달음을 얻어서 부처님과 똑같은 지혜를 얻은 자를 보살이

라고 하고. 스님중에서 깨달음을 통하여 부처님과 똑같은 지혜를 얻은 자는 아라한이

라고 했어요.

그러니까 세속에 살지만 이미 부처님께 깨달은 붓다로 인정받은 분이 보살입니다.

그러니까 부처님은 중앙에서 조용히 좌정해 계시고

관자재보살이 대중을 위하여 설법하던 때가 있었던 것입니다.

범어 원문에 보면 관자재보살이 설법이 끝나자 부처님께서

삼매에서 깨어나서 대중에게 관자재보살은 인정하십니다.

선재선재로다. 네가 참 잘 설했구나. ....

이 말씀에 의하여 보살경이 부처님의 경으로 인정을 받은 것입니다.

즉 경계가 붓다와 같다는 말이고 그 후 불경으로 인정받아

오늘날도 불경으로 생각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자, 그러하니 지금 여러분은 붓다의 경이지만

사실은 보살의 경을 보고 계시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가능합니다. 깨달음은 한순간 오는 것입니다.

제가 아는 친구는 교회에 나가기 전에 술, 주색, 담배, 도박으로 세월을 보냈어요.

인쇄업을 하면서...가끔 수백만원씩 날리고...먹고 집에 들어옵니다.

부인이 맨날 시동생에게 전화 걸어서 죽겠다고....안 살아야겠다고 해서

동생하고 여러차례 싸우고....윽박 지르고 했으나 개고기 같은 성격이 변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어느날 우연히 교회에 갔다가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단번에 술, 도박, 주색잡기를 다 끊었어요.

그래서 가정이 편해졌고 일도 열심히 하는데 .... 이것이 바로 깨달음입니다.

깨달음은 순간 자기를 변화시킵니다. 누구나 가능해요.

그러나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으면 사람이 원통해져서 모가 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신을 믿으면 편협해집니다. 없는 신을 믿으니까 허망한 것 아닙니까?

그것도 맹신하니까 이런 믿음이 있으면 현실성이 없고 중도를 몰라요.

다 좋았는데 충청도 종갓집 장자가 제사를 안지내요.

죽어도 안한다고 하니까 때만 되면 형제들끼리 싸우고 지지고 볶고 해요.....

그해서 할수없이 지금은 동생이 하고 있는데 ...형제간...사촌간 의가 갈라지고 불화합니다.

이것 또 다른 꼴통 짓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도 술이나 도박 못지않게 중독이고 병적이어요.

깨달음은 사람을 바꾸는 마력이 있어요.

그러나 제대로 잘 깨달아야 합니다.

잘못 깨달으면 엉뚱한 것을 고집합니다. 결국 헤어나지 못하는 마군이가 되고 외도 가 됩니다.

한번 잘못가면 구하기 어려워요.

관자재보살의 말씀을 들으시고 올바른 깨달음이 무엇인지 그것을

확인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자기를 버리는 것.... 그것이 어떤 좋은 점이 있고

삶에 어떤 잇점이 있는지....그리고 그 사상은 무엇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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摩訶般若波羅蜜多心經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무불선원 석우스님 강의)

 

마하摩訶는 크다는 의미입니다.

大=摩訶(마하)

마하는 원래 인도말입니다.

인도말=마하, 중국말로=大, 한국말로 =크다입니다.

영국 사람들이 인도를 지배할 때 마침 음속으로 날아가는 제트기를 발명했어요.

그때 속도를 측정하는데 쓸 용어를 찾다가 마하를 갖다가 썼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비행기가 날아가는 속도를 말할 때 마하 몇 이라고 한데요.

그 당시로서는 가장 빠르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지요.

어찌 되었든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은  대반야바라밀다심경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중국에서 번역할 때 '대반야바라밀다심경'라고 번역하지 않은 이유는 따로 '대반야경'이라는 경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대품반야경'도 있었어요. 그래서 헷갈릴 까봐 인도말을 그대로 썼던 것입니다.

그런데 반야 사상은 부처님의 사상중에서도 큰 사상인데 부처님께서 50세경부터 21년간 설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만년의 설법이 반야경입니다.

초창기, 그러니까 35세 대각후에

바로 설한 것을 소승불교라고 합니다.

소승불교를 8년간 설했고...아함경입니다.

다음 방등경은 8년간 설했고

다음 반야경을 21년간 설했고

다음 법화경 열반경을 5년간 설했고

최초 7일간과 마지막 7일간은 화엄경을 설했다고 합니다.

35세 + 8년하면 43세이니까

43세까지 소승 아함불교를 설하시다가

43 + 8년하면 방등경 51세죠?

51세부터 + 21년하면 .....72세

정확하지는 않지만 ....이것 천태스님이 정리한 것인데 제가

다시 계산해본 것입니다.

년대 숫자는 정확하지 않으나 초년 중년 말년 이렇게 3시로 나눌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오늘 우리가 공부하려고 하는 것은

부처님께서 사상이 무르익은 50세 이후의 가르침인데...그것을 반야경이라

고 하고 21년간 설한 것을 전부 나누어보니까 약 600부나 되었어요.

600부....이것 애매한 표현인데

600권이라는 말도 되고

요즘 말로는 600편이라는 말도 됩니다.

대품반야경에만도 수십편의 장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대충 600번의 조금씩 다른 반야사상을 말씀하셨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중에 하나가 바로 이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입니다.

물론 금경경도 원래는 '금강반야바라밀경'이라고 하는데 이것도 반야경류입니다.

반야(般若)라는 말은 지혜라는 말입니다.

지혜는 지혜인데 ....마음을 비워서 얻은 지혜를 말해요.

반야 = 마음을 비워서 얻은 지혜

지혜는 3종류의 지혜가 있습니다.

1. 책을 마이 보거나 경험으로 얻은 지혜

2. 큰 깨달음음을 통하여 얻은 지헤

3. 아는 것을 버리고 얻은 지혜

이중에서 3번째 지혜가 바로 반야입니다.

반야라는 말도 인도말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지혜라고 번역하지 못하고 원어 그대로 사용하는 것은

비우므로 해서 얻은 지혜라는 말이 중국 한국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중국이나 한국은 1번의 지혜를 지혜라고 해요.

지금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모두 지식과 경험이 풍부한 사람은

지혜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나 자기를 버리고,

아는 것을 버리면 거기서 지혜가 나오는 것을 모르고 모두 바보가 되는 줄 알아요.

그래서 3번의 지혜를 번역할 만한 말이 없었어요.

그래서 인도말 그대로 '반야'라고 했습니다.

고유명사는 어디를 가도 변함없듯이...

그대로 불렀어요.

그런데 인도 사람들은 참 대단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종교는 인도 힌두교입니다.

기록에 있는 것만해도 약 3천년전부터 있었다고 하나

실제로는 그것보다 더 오래되었다고 합니다.

약 4천년이 되었다는 설이 있어요.

그런데 힌두교는 브라만이라는

창조신을 섬겼으나 사람은 그 창조신의 자손이지만

브라만의 정신을 가졌다해서

그 위대한 정신을 명상을 통하여 찾으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수천년을 명상하면서 지냈는데 거기서 부처님이

반야라는 독특한 지혜도 생각해낸 것입니다.

이 말은 깊은 명상이 없으면 찾아내기 어려운 말입니다.

아니, 어떻게 다 버렸을 때 위대한 지혜,

즉 위대한 행복으로 가는 길이 있음을 알았을까요?

다 버리면 행복이라니.....

이 역설적인 가르침이 바로 붓다의 가르침이고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에 금방 받아들이기 어려우나

한번 그 뜻을 알아내면 절대 잊지 못하는 매력적인 단어입니다.

우리는 부부간에, 친구간에, 형제간에,,,,대화를 하고 때론 싸우고 합니다.

오전에 한 신도분이 오셔서 33세딸과 38세 사위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아직 자식이 없다면서...그런데 참 사이가 좋다고 하였습니다.

서로 애기처럼 보아주고 이해한데요.

신도님중에 10년이나 연상인 부인과 사는 분이 있어요.

생전 싸움한번 안하고 살았데요.

아들들이 다 장가가고 손자까지 났는데

참 행복한 가정입니다.

그런데 그 분들의 말이 ... 참 들을 만해요.

서로 상대의 화에 대하여 화가 안난데요.

옐들어 혹 남편이 화나 짜증을 내면서 막 무지막지하게 해대도 하나도 화가 안나고

담담하고 이해되고....고요하데요.

그러니까 싸울 일이 없는 것입니다.

부인이 혹 심하게 해대도 그런가보다....내가 잘못했구나....하니까

대꾸가 안되고 가만있는데요.

불화는 상대방의 분노에 나의 분노가 부딪혔을 때 일어나요.

그런데 상대의 분노에찬 말을 들어도 전혀 반감이 없으니 어찌 불화가 있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반야' 입니다.

상대의 분노를 분노로 받아들이지 않고

담담하게 듣는 것....바람소리를 들을 때 다만 듣기만 하듯이

물소리를 들을 때 듣기만 하듯이

새소리를 들은 때 듣기만 하지 전혀 나의 감정이 일어나지 안듯이

상대의 분노에 찬 말을 들어도, 시비를 들어도, 욕설을 들어도....마음이 고요한 것

이것이 반야입니다.

반야경은 空 사상입니다.

앞으로 반야지혜를 터득하게 하기 위하여 저 뒤에 하나 하나 설명하겠지만

본래 우주는 공에서 나와서 다시 공으로 돌아가는 것을 반복해요.

그런데......나도 빈 것에서 나온 것인데 ....

여러분, 고개를 돌려서 지금 시계 소리를 들어보세요.

소리가 안나면 시계바늘이 움직이는 것을 것을 보십시오.

원래 시계는 여러가지 부속이 모여서 약이라는 에너지를 공급해주니까

저렇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렇게 할 조건을 주니까 움직여요.

그처럼 여러분도 자연에 있는 각종 원소들이 뭉쳐서 사람이라는 조건을 주니까

보고 듣고 말하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것 대단하게 생각될지 모르나 이것은 한낱 시계가 돌아가는 것과 같을 뿐입니다.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시계가 그 조건을 해부하여 따로 분리하면 전혀 돌아가지 않듯이

사람도 사람의 원소인 地水火風을 따로 해쳐 놓으면

地=흙, 살, 뼈, 머리카락,...

水=피, 고름,,,,오줌...

火=온기, 에너지 충만...

風=에너지, 힘, 원동력....

이것 각자대로 분리하면 거기에 무슨 사람의 행동이 있겠습니까?

시계를 분리하면 돌아가지 않듯이 사람도 분리하면 없어져요.

그런 것이 사람인데....거기에 무슨 집착을....무슨 의미가....있겠어요.

그래서 본질을 알면 비워진 마음만 있을 뿐...

반응하는 마음은 없습니다.

필요없는 반응이 없어요.

필요한 것만 합니다.

이것이 바로 반야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원래 반야를 가지고 있는데

각종 지식이 반야를 막았어요.

뭔가 있을 거야. 사람은 위대해, 다음생이 있어,

천당에 가고 지옥에 가는 자가 있어, ....

내속에 나가 있어....

이런 지식과 생각이 진실을 막고

그 지식과 생각에 끌려다녀서 불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는 것을 버려라.

생각을 버려라.

놔버려라 하고 버리라고 가르칩니다.

이것이 부처님의 중반기 사상입니다.

지식에 끄달려 다니면은

불확실한 생각에 끌려다니는 것입니다.

지식은 완전하지 않아요.

다만 어느 한계까지만 본 것입니다.

그 지식은 세월이 지나면 바뀌어요.

그런 것이 많습니다.

부처님은 진작에.... 6년간의 명상 끝에 우리가 단정하고 알고 있는 것은

다만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뿐이지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아셧어요.

옐들어 '더럽다.....'이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중에 상세히 분석하겠으나 더럽다는 것은 원래 존재하지 않습니다.

지구상에....아니, 온 우주에 더러운 것은 존재하지 않아요.

다만 사람이 그런 것이 있다고 생각할 뿐입니다.

잘 생각해보세요....이것 냉정하게 부처님처럼 진실을 보아야 합니다. ....

본래 존재하지 않은 것을 가지고

그 때문에 ...그 더럽다는 거짓 생각하나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괴로워합니까?

외도, 욕설, 분노, 야박한 말, 무시하는 말, 이것 다 더러운 범주에 속해요.

이것 때문에 울고 웃고, 괴로워하고 즐거워하잖아요.

만약 진실을 아는 神이라면 인간은 참 불쌍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존재하지 않은 것을 정해놓고 그때문에 괴로워하는 인간.....

이것 뭐라고 표현해야할까요.

더럽다, 깨끗하다....높다, 낮다....이 모두 사람이 만들어놓은 의미입니다.

실제는 존재하지 않아요.

이름만 있을뿐이군요..()

이런 것, 이 허망한 것들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벗어나서 잘 사는 방법은

지식을 버리는 것, 주장을 버리는 것, 생각을 버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버리고 비웠을 때 그때에 바로 세상을 잘 살아갈수 있는 지혜가 나옵니다.

며칠전 친구가 자기 부인말을 해요.

이 사람(부인)이 밤 2시에도 들어오고....낮에 운동하러 나갔다가 돌아와서는 밥만

차려주고 다시 정장을 하고 나가지를 안나.....

눈빛이 이상하고....암튼 이상해.....

그래요.  그래서 제가 그랬습니다.

그냥 놔 두어라....사람이 살면서 어찌 꼭 너는 그 이유를 들어야 되고

네가 알아야 되고...단속해야 하고...

이해해야 하느냐....그만큼 같이 살았으면 이제는 모르는 체도 해라....

사람마다 다 이유가 있겠지....헤어지고 만남은 필연이야...

네가 가라해도 인연이면 안간다...

그런데 인연이 아니면 아무리 잘해주고..해도간다....

그리고 우리는 반드시 언젠가 헤어져....운명이야....받아들여야해. ... 그랬습니다.

우리는 인위적으로 무엇을 조정하려고 해요,

그런데 사실은 내 맘대로 되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인연의 법대로 흘러갈 뿐입니다.

앞으로 반야경을 공부할 때는 바로 이점에 주목하세요.

그래서 가능한 잡은 것을 다 놔버리세요,

그리고 강제하지 말고 놔 버리고 살아보세요,

돈에 대한 집착도,,,명예도,,,, 자식도,,,,대학합격도....다 놔버리세요.

함 해보세요. 그래도 올 것은 오고 갈 것은 갑니다. 우선 이것을 체험 해야해요.

그래야 내가 내는 짜증도....분노도,,,,슬픔도 ,,,,걱정도 ,,,,

할 필요가 없는 것임을 압니다.  때가 되면 올 것은 오고 갈 것은 가요.

무엇이든지....그러합니다. 반야는 인위적이지 않아요.

죽음도 받아들이고, 병도 받아들이고, 부자도 받아들이고, 부도도 받아 들이면서

편해지는 공부입니다. 물론 헤어짐도 받아 들여야해요.

만남은 그 순간 반드시 헤어짐을 약속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운명이고 법칙이어요.  슬퍼할 필요없는 법칙이죠.

더크게 보면 만남도 헤어짐도 없는 것입니다.

원래 나는 없었으니까....빨리 이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원래 비었음을(공)....

원래 혼자가 아니고....그러면 쓸쓸해져요.

원래 없었으니 슬픔도 필요없습니다. 고요해야합니다.

슬픔은 슬퍼하는 자가 있다는 말이잖아요.

그런데 슬퍼하는 자는 없는 것입니다.

바로 당신은 그러한 존재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반야지혜를 터득한 것입니다.

빔(空)........이것을 잘 알아야 하고 체험되어야 해요.

빔(空)........이것은 고요한 것입니다.

슬픔이 아니고 쓸쓸함이 아니고...고독함이 아니어요.

이런 것이 있으면 빔(空)이 아닙니다.

빔(空)은 말도 없어요. 침묵......물론 침묵도 꼭 빔은 아니나.... 침묵을 오래 하다보면 빔을 이해합니다.

그래서 스님들이 묵언을 하는 것입니다.

묵언은 생각도 끊어져야 해요. 감정도.....느낌도,,,,,,앎도,,,,,,

이 강의 약 2달이나 3달 걸릴 것입니다.

그때까지 일어나는 생각을 끊고 늘 고요한 마음으로 생활하는 습관을 길러보세요.

말을 줄여야 합니다.  가능한 침묵하세요.  필요한 말만 하세요. 물론 생각도 잘라야 합니다.

일하는데 필요한 생각만 남겨놓고... 그리고 즉각적인 반응은 하지 않도록 습관들이세요.

옐들어 누가 욕해도, 못들은 척 하세요.

즉각 반응을 자제하고... 그리고 가능한 아예 반응하지 마세요.

고요하게........고요하게......... 그 무엇이 일어나도.... 생각도 일으키지 말고............

옐 들어 방송에서 누가 떼로 죽었다고 보도해도 무심하게...고요하게......받아들이세요.

부모가 죽어도, 친구가 죽어도, 부인이 죽어도....고요하게......

생각도 일으키지 말고.....고요하게 지내는 습관을 들이세요.

제 강의 들으면서 그렇게 습관들이면 전혀 다른 것이 보입니다.  다른 세계가 보여요.

그동안 보지 못 했던 것이 보일 것입니다.

마음이 헐떡거림으로 가려졌었던 세계가 새롭게 보여요.  그리고 고요한 속에서 기쁨이 넘칩니다.

무한한 행복으로 가득해져요. 충만한 지복으로 가득해집니다. 그러면서 깨닫게 됩니다.

진실을.....삶의 진실을.....그래서 더 성숙해집니다.

오늘은 첫날, 반야에 대해서....그리고 강의 듣는 자세에 대해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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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심경(般若心經) (무불강의)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摩訶般若波羅蜜多心經

 

큰 지혜의 언덕에 도달하는 핵심이 되는 가르침

 

관자제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

觀自在菩薩 行深般若波羅蜜多時 照見五蘊皆空 度一切苦厄

 

   관자재보살이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때 오온이 모두

공한 것임을 비추어 보시고 온갖 괴로움과 재앙을 건너셨느니라.

 

사리자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 수상행식

舍利子 色不異空 空不異色 色卽是空 空卽是色 受想行識

 

사리자여, 물질이 공과 다르지 않고 공이 물질과 다르지 않아

물질이 곧 공이요, 공이 곧 물질이니, 감각, 표상, 의지, 인식도

 

역부여시 사리자 시제법공상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

亦復如是 舍利子 是諸法空相 不生不滅 不垢不淨 不增不減

 

또한 그러하니라. 사리자여, 이 모든 법의 공한 모양은

생기는 것도 아니고 없어지는 것도 아니며, 더러운 것도 아니고

깨끗한 것도 아니며, 늘어나는 것도 아니고 줄어드는 것도 아니니라.

 

시고 공중무색 무수상행식 무안이비설신의 무색성향미촉법

是故 空中無色 無受想行識 無眼耳鼻舌身意 無色聲香味觸法

 

그러므로, 공 가운데는 물질도 없고 감각, 표상, 의지,

인식도 없으며, 눈, 귀. 코, 혀, 몸, 뜻도 없고 모양, 소리,

   냄새, 맛, 감촉, 의식의 대상도 없으며,

 

무안계 내지 무의식계 무무명 역무무명진 내지 무노사

無眼界 乃至 無意識界 無無明 亦無無明盡 乃至 無老死

 

눈의 세계도 없고 나아가 의식의 세계도 없으며, 어리석음도 없고

어리석음이 다함도 없으며, 늙고 죽음도 없고

 

역무노사진 무고집멸도 무지역무득 이무소득고

亦無老死盡 無苦集滅道 無智亦無得 以無所得故

 

늙고 죽음이 다함도 없으며, 괴로움, 괴로움의 원인,

괴로움의 없어짐, 괴로움을 없애는 길도 없으며, 지혜도 없고

지혜를 얻음도 없느니라. 얻는 바가 없으므로

 

보리살타 의반야바라밀다 고심무가애 무가애고 무유공포

菩提薩陀 依般若波羅蜜多 故心無圭碍 無圭碍故 無有恐怖

 

보살은 반야바라밀다에 의지하는 까닭에 마음에 걸림이 없으며,

걸림이 없는 까닭에 두려움이 없으며,

 

원리전도몽상 구경열반 삼세제불 의반야바라밀다고

遠離顚倒夢想 究竟涅槃 三世諸佛 依般若波羅蜜多故

 

뒤바뀐 몽상을 멀리 떠나 마침내 열반을 얻느니라.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부처님께서도 반야바라밀다에 의지하여

 

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고지반야바라밀다 시대신주

得阿누多羅三막三菩提 故知般若波羅蜜多 是大神呪

 

위없는 바르고 바른 깨달음을 얻느니라. 그러므로 알아라.

반야바라밀다는 가장 신비한 주문이며,

 

시대명주 시무상주 시무등등주 능제일체고 진실불허

是大明呪 是無上呪 是無等等呪 能倬一切苦 眞實不虛

 

가장 밝은 주문이며, 위없는 주문이며,

이 주문과 같은 것이 없는 주문이니,

능히 일체의 괴로움을 없애고 진실하여 헛되지 않느니라.

 

고설반야바라밀다주 즉설주왈

故說般若波羅蜜多呪 卽說呪曰

 

그러므로 반야바라밀다주문을 설하노니, 곧 이러하니라.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揭諦揭諦 波羅揭諦 波羅僧揭諦 菩提 薩婆訶 (3번)

 

가세 가세. 저 언덕으로 가세. 저 언덕으로 함께 가세.

깨달음이여! 이루어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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