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바라밀과 보살이란
摩訶般若波羅蜜多心經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지난 시간에 반야까지 했으니까 이번에는 '바라밀다'를 하겠습니다.
바라밀다(波羅蜜多)나 바라밀(波羅蜜)은 같은 말입니다.
원래 바라밀다라고 발음 해야하는데 줄여서 바라밀이라고도 한다고 합니다.
역시 인도말인데 음사하여 바라밀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뜻은 도피안(度彼岸)입니다. 즉 저 '언덕으로 건너가다' 라는 형용사입니다.
건너간 상태가 아니고 '건너가는 과정'을 말해요.
불교에서 사바세계는 바다로 표현합니다.
고요하다가도 순식간에 파도가 몰려와서 모든 것을 한 순간에 앗아가는 파도와 태풍
이 있는 바다입니다. 배는 지혜를 상징해요.
고해를 건너가려면 지혜가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배와 같고 작은 배는 흔들림이 많고 건너기 어렵습니다.
이것을 소승불교라고 해요. 소승지혜죠. 그러나 큰 배는 파도에 대체로 안전합니다.
여러 사람이 같이 타고 있기 때문에 즐거움과 여유가 있고 서로 서로 은혜를 받는 배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대승불교라고 합니다. 여럿이 가는 배이고 대승지혜입니다.
여기에는 반드시 선장이 있어야 합니다. 이 분이 바로 보살입니다.
“상구보리하화중생”
저 언덕은 이상세계입니다. 불국토(佛國土)이고 부처님이 계신 곳입니다. 그곳의 주인은 부처님입니다.
그 세계를 저피(彼)자, 언덕안(岸) 자를 써서 피안(彼岸)이라고 하고
고통으로 가득한 이곳은 이차자, 언덕안자를 써서 此岸(차안) 이라고 합니다.
차안이라고 발음합니다. 차안에서 피안으로 가려면 반드시 배를 타야되요.
중간에 고해(苦海)의 바다가 있기 때문입니다.
지혜는 배입니다. 우리가 반야지혜를 얻으려고 하는 것은 바로 고통의 바다를 넘어가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고해를 건너려면 배에 탄 모든 선원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다 한가지씩 맡은바 일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배가 안전하게 목적지에 닿습니다.
바로 그 '지혜의 배'를 피안에 닿게 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을 바라밀다라고 합니다.
즉 배가 앞으로 나아가게 노를 젖는 노력이 바라밀다입니다.
좀더 명확한 언어로는 수행, 또는 실천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원전에 바라밀다....즉 '배를 젓는 모양' 이라고 나와 있으니까
일종의 비유적인 언어가 바라밀다입니다.
심경(心經)은 요긴한 경....심장부가 되는 말씀...핵심 말씀이라는 뜻입니다.
정진하세 정진하세 물러남이없는 정~진
그러니까 摩訶般若波羅蜜多心經을 종합하여 번역하자면
'대지혜를 실천하는 방법을 말씀' 하심 이라는 혹은 수행과 실천은 같은 의미이니까
'대지혜를 수행하는 방법을 말씀하심' 이라는 뜻도 됩니다.
그런데 대승불교에서는 원래 6가지를 실천수행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것을 6바라밀이라고 하는데 '여섯 가지 수행' 이라는 뜻이지요.
첫째 보시바라밀 베푸는 것을 실천하라.
둘째 지계바라밀 지켜야 하는 것을 잘 지켜라.
셋째 인욕바라밀 참는 수행을 잘 해라.
넷째 정진바라밀 부지런히 나아가라.
다섯째 선정바라밀 일념을 얻으라.
여섯째 지혜바라밀 지혜로운 생활을 하여라.
이렇게 6가지 수행이 일상사 실천수행입니다.
잘 기억해두었다가 이대로 실천하도록 하세요.
우리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접하다가 갑자기 계율에 들어가면 황당할 정도로
많은 '지켜야 할 것' 을 말씀하심에 놀랍니다.
세부적으로 엄청난 것들의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은 말씀하셨어요.
그런데 반야심경에 더러움도 없다, 깨끗함도 없다.
했는데 계율에서는 왜 그리 많은 것을 금지했는지 아리송해집니다.
그러나 진정 자유로운 사람들은 계율도 자유롭게 지킬줄 아는 사람들입니다.
옐들어 사람이 평등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라면
노인을 보면 인사하고 모시고 공경하게 하는 것을 잘 할줄 아는 사람입니다.
평등이란 노소도 없이 같이 말놓고 지내는 것이 아니고
노인은 공경하고 젊은 사람은 겸손한 것이 평등입니다.
나이가 드신 분은 어른이고 젊은 사람은 아랫사람입니다.
이것이 평등입니다. 각자에 맞게 자연스러운 평등입니다.
그렇지 않고 다 똑같다 하면서 아버지 안테도 반말하고
할아버지 한테도 반말하고 아랫사람한데도 반말하고
하는 것은 평등이 아니고 오히려 불평등입니다.
불자는 스님에게는 깍듯하게 3배해야 하고
선생님을 존경하고..... 사장에게는 경어를 쓰고.....
이것이 나름대로 관습법이고 평등을 지키는 법칙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많은 계율을 말씀을 하셨어요.
네가 자유롭다면 이것을 지키는 자유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수행자라면 계율을 근본으로 질서를 지켜나가라.
물론 오래된 것이라 지금은 사장된 것도 있으나
요즘에도 통용되는 계율이라면 당연히 지켜야 하는 것들입니다.
그러므로 이 6수행도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지켜야 하는 실천수행입니다.
이것을 잘 지켰을 때 피안에 당도함이 빨라지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 여섯번째 수행이 지혜바라밀인데 바로 이것이 반야바라밀입니다.
지혜를 실천하는 것..... 나를 버리는 '지혜의 실천' 이 바로 바라밀이어요.
관자재보살은 대승불교에서 큰 수행자입니다.
대승불교에서는 특이한 수행자가 나타나요.
그동안 소승불교에서는 보살이라는 단어가 안나오고
비구나, 비구니....가 주로 부처님께서 부르던 호칭이었는데
대승불교에서는 갑자기 보살이 등장합니다.
원래 보살은 보리살타 라고 불렀어요.
보리=지혜
살타=수행자
본래 '보디삿트바' 라고 발음해야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보리살타라고 하고 줄여서 보살이라고 부릅니다.
본래라면 '보삿' 이라고 불러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학자들은 대승경전이 등장한 시기에 대해서 논란이 많아요.
그러니까 불멸...약 4백년후에 대승불교가 정착되었고
대승경전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빨리 잡아도 대략 300백년경부터일 것입니다.
기원전 1세기가 대승불교이니까?
지금부터 2500년전으로 대략 말하고 있으니까
불멸 4백년후겠지요. 년대는 불분명합니다.
왜냐면 부처님은 지금부터 3000년전의 성인이라는 설도 있어요.
그런까 공인...즉 통일된 년도가 2천5백 몇년입니다.
그 야그하려면.... 복잡해져요.
어찌 되었든 여긴연도를 따지는 시간이 아니니까...각설하고
불멸 몇백년 뒤에 갑자기 대승경전이 나타나고
그것이 불같이 유행하고 읽히더니
모두 대승경전을 신봉하니까 갑자기 대승불교시대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왜 3백년간 보이지 않던 경전이 갑자기 나타났는가? 그것도 한 두권이
아니고 수백권씩이나 말입니다.
지금 강의하고 있는 반야부만해도 600부나 됩니다.
거의 600권이라고 이해해도 됩니다.
누가 위작했다면 불가능해요.
그리고 사상이 소승불교 사상을 그대로 이었습니다.
다만 뜻이 넓고 광활했으며 보살이라는 명칭이 등장하기 시작했다는 것이 다른 점입니다.
그래서 대승불교는 보살도라고 하는데 도대체 어디에서 있다가 나타났을까? 아니면 누가 지었을까?
아직도 풀지 못한 수수께끼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자들은 부처님의 진설로 인정하고
이것이 어디엔가 있다가....동굴같은데... 나중에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즉 이것도 불설인데 부처님께서 돌아가시자 바로 제자들은 소승경전을 중심으로 불
교를 수행했고 그때 멀리 창고에 묻어두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나중에 개방적인 성향을 가진 스님들에 의하여 세상에 나오기 시작했고
점점 모두 전파되었다는 것입니다.
화엄경, 능엄경, 법화경, 원각경, 반야경...등등....
거의 모두 붓다의 사상이라고 해도 좋을 경들은 다 대승경전입니다.
여기에 모두 보살이 등장해요.
그런데 보살은 사실 출가승이 아니고 일반인입니다.
모자를 쓴 것으로 보아서 사대부입니다.
즉 귀족이죠. 부처님 당시에는 귀족들이...그것도 남자들이 붓다를 따랐습니다.
그때 모자가 지금 법당에 있는 보살모자입니다.
그리고 머리를 길렀기 때문에 머리카락이 그대로 뒤로 치렁치렁하게 내려져있어요.
이 보살상이 부처님과 나란히 탁자에 올라가 않으면서
불교는 비로소 평등 사상이 실현되었어요.
즉 그동안 비구 비구들만 수행하여 붓다가 되는 것으로 생각하였는데
대승불교에서는 누구나 될수 있는 것으로 평등해졌기 때문입니다.
뒤로 갈수록 인간은 공평해지는 것이 역사입니다.
자, 그정도로 설명하고....
관자재보살은 이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을 설했던 인물입니다.
반야심경은 석가모니불이 설했던 경이 아니고
관자재보살이 설한 경입니다.
물론 이전에 대품반야경에서 여기 반야심경과 같은 구절들이 많이 나옵니다.
대품반야경은 부처님의 진설입니다.
그러니까 거의 같은 내용인데 관자재보살이 정리해서 다시 일반인에게 설한 경이 반야심경입니다.
내용이 짧고 일반인들이 외우기 쉽게 되어있어서 그리고 부처님의 모든 반야경의 핵심을 간추려놓았기 때문에
조석으로 우리가 읽고 신행하는 것일뿐입니다.
관자재보살은 남해 ....인도에서 남해 에 있는 보타낙가산이라는 섬에 살았던 장자입니다. 남자입니다.
그런데 여기 첫 구절은 전달자의 말입니다.
즉,
觀自在菩薩 行深般若波羅蜜多時 照見五蘊皆空 度一切苦厄
관자제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
관자재보살이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때에 오온이 다 공함을 비추어 보고 모든
괴로움을 여의었느니라 입니다. 보통 경전의 전달자의 말이 첫구절에 있는 것이 공통입니다.
금강경도 아란존자가 처음에 전달하는 내용으로 되어있어요.
여기 반야심경도 마찬가지로 처음에 아란존자가 전달하는 말로 시작합니다.
당시 부처님은 삼매에 드셨고, 관자재보살이 일어나서 대중에게 설법하였어요.
즉 지금 법당에서 부처님께서는 조용히 좌정하고 계시고 스님이 그 앞에서 설법하는
것을 연상해보시면 됩니다.
부처님께서는 삼매에 드셨고 관자재보살이 나와서 대중에게 설법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 일반인 불자가 많았는데 왜 보살이라는 말이 튀어나왔을까?
부처님 당시에는 일반인보다 한 단계 높은 정신 세계에 들어갔던 일반인이 있었어요.
이들은 부처님은 보디샸트바....즉 지혜를 얻은 자 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지혜를 얻었다는 말인데 여기서 말하는 지혜는 보리(菩提)입니다.
흔히 보리지혜는 '깨달음을 얻은 자의 지혜' 라고 말합니다.
즉 지난 시간에 말했던 2번째의 지혜입니다.
1. 지식과 경험이 많은 자의 지혜
2. 깨달음을 통하여 얻은 지혜...보리지혜
3. 나와 앎을 버린 자의 지혜...반야지혜
지혜는 이렇게 3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서 깨달음을 통하여 지혜를 성취한 것을 보리라고 해요.
그 '보리' 를 얻은 자.... '보디샤트바'....
보살입니다.
그러니까 일반인 중에서 깨달음을 얻어서 부처님과 똑같은 지혜를 얻은 자를 보살이
라고 하고. 스님중에서 깨달음을 통하여 부처님과 똑같은 지혜를 얻은 자는 아라한이
라고 했어요.
그러니까 세속에 살지만 이미 부처님께 깨달은 붓다로 인정받은 분이 보살입니다.
그러니까 부처님은 중앙에서 조용히 좌정해 계시고
관자재보살이 대중을 위하여 설법하던 때가 있었던 것입니다.
범어 원문에 보면 관자재보살이 설법이 끝나자 부처님께서
삼매에서 깨어나서 대중에게 관자재보살은 인정하십니다.
선재선재로다. 네가 참 잘 설했구나. ....
이 말씀에 의하여 보살경이 부처님의 경으로 인정을 받은 것입니다.
즉 경계가 붓다와 같다는 말이고 그 후 불경으로 인정받아
오늘날도 불경으로 생각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자, 그러하니 지금 여러분은 붓다의 경이지만
사실은 보살의 경을 보고 계시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가능합니다. 깨달음은 한순간 오는 것입니다.
제가 아는 친구는 교회에 나가기 전에 술, 주색, 담배, 도박으로 세월을 보냈어요.
인쇄업을 하면서...가끔 수백만원씩 날리고...먹고 집에 들어옵니다.
부인이 맨날 시동생에게 전화 걸어서 죽겠다고....안 살아야겠다고 해서
동생하고 여러차례 싸우고....윽박 지르고 했으나 개고기 같은 성격이 변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어느날 우연히 교회에 갔다가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단번에 술, 도박, 주색잡기를 다 끊었어요.
그래서 가정이 편해졌고 일도 열심히 하는데 .... 이것이 바로 깨달음입니다.
깨달음은 순간 자기를 변화시킵니다. 누구나 가능해요.
그러나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으면 사람이 원통해져서 모가 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신을 믿으면 편협해집니다. 없는 신을 믿으니까 허망한 것 아닙니까?
그것도 맹신하니까 이런 믿음이 있으면 현실성이 없고 중도를 몰라요.
다 좋았는데 충청도 종갓집 장자가 제사를 안지내요.
죽어도 안한다고 하니까 때만 되면 형제들끼리 싸우고 지지고 볶고 해요.....
그해서 할수없이 지금은 동생이 하고 있는데 ...형제간...사촌간 의가 갈라지고 불화합니다.
이것 또 다른 꼴통 짓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도 술이나 도박 못지않게 중독이고 병적이어요.
깨달음은 사람을 바꾸는 마력이 있어요.
그러나 제대로 잘 깨달아야 합니다.
잘못 깨달으면 엉뚱한 것을 고집합니다. 결국 헤어나지 못하는 마군이가 되고 외도 가 됩니다.
한번 잘못가면 구하기 어려워요.
관자재보살의 말씀을 들으시고 올바른 깨달음이 무엇인지 그것을
확인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자기를 버리는 것.... 그것이 어떤 좋은 점이 있고
삶에 어떤 잇점이 있는지....그리고 그 사상은 무엇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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