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공(空)에는 눈귀코혀몸뜻이 없다.

 

是故 空中無色 無受想行識

시고 공중무색 무수상행식

그러므로, 공 가운데는 물질도 없고.

감각, 표상, 의지, 인식도 없으며,

 

是故 空中 (시고공중)

그러므로 공(空)에는

 

無色        

색이 없고 

無受想行識

느낌 생각작용식별이 없으며

 

空의 모습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먼저 오온이 나옵니다. 

오온은 지난 번에 말씀드린대로 색수상행식인데 크게 보아 

 

1.물질, 2.정신의 세계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공은 비어서 빔이라고도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비어있는 빔입니다. 

그곳을 누가 '빔'이라고 말하면 틀려져요. 

왜냐? 빔이라는 개념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빔은 철저히 비어서 빔이라고 빔의 뜻을 세워도 안되요.

우리가 보통 '빔' 이라고 하면 빔이라고 부르는 사이에 벌써 우리의 의    식은 빔의 형상을

그립니다. 

텅빈 것을 연상해요. 그런데 이렇게 연상이 있으면 빔이 아닙니다. 

그래서 빔이라는 개념도 있으면 안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빔이라고 하면 벌써 어긋나버린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불교공부하는 사람들이 처음에 생기는 병이 바로 이 빔이라는 글자에

집착하는데에 있습니다. 

빔이라고 말하면 벌써 빔이 아닌 줄 몰라요. 

그래서 좀 알면 불교는 빔을 주장하는 종교라고 말합니다. 

그것도 억세게 주장해요. 

그렇게 말하는 것이 바로 병(病)인데 그것을 모르고 빔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억세게 주장하다가 보이까 자기가 틀리고 있는 것도 모르고 있고 혹 '그것이아니다' 하고
 가르쳐주어도 잘 받아들이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갈쳐주는 선생이 잘못되었다 해요. 딴데서는 다 맞다고 하는데 이곳 무불에서만은

왜 틀리다고 말하냐고 따집니다. 

그러니 제대로 갈쳐주어도 받아들이지 않는 것 자체가 바로 깊은 병이 들은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어요. 

이 공부는 절대 자기를 세우면 안됩니다. 

자기 를 세우면 진전이 없어요. 

부처님도 천제(闡提)는 제도하지 못한다고 말씀하였는데 

천제는 지나치게 똑똑하던가 아니면 자기 주장을 강하게 세우는 자를 말합니다. 

자기가 부처님보다도 선생님보다도 스승님보다도 더 많이 아는데 어찌 선생님 말이 귀에  들어가겠습니까? 

오늘날 스승없이 혼자 깨달았다 하는 사람들 보면 전부 아상이라는 깊은 병이 들어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물론 스승이 없이 혼자 깨달아도 圓通하면 겸손하지 않으려고 해도 겸손할 수 밖에 없습니다.

진리가 그래요. 

왜냐면 이 법을 깨우친 자라면 절대 자기를 내세우지 않게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요즘 어떤 사람한테 메일을 받았는데 제가 요즘 강의를 하고 있으니까

회원 한 분이 자유게시판에  완능록 원문을 올려 놓으셨더라고요. 

내용은 쉬우면서도 깊은 내용이라 참 좋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을 어떤 사람이 

타카페....들어보니 그곳에 주인장께서도 깨달았다고 하는 모양인데...거기다 글을 올렸습니다.

주인장이 완능록 글을 읽더니 밑에다가 아직 圓通하지 못한 글이라고 평을 달아놨데요. 

완능록이 누구 글입니까? 

선종의 큰 기둥을 인가하였던 황벽스님 글입니다. 

황벽스님의 인가를 받은 임제스님이 禪의 중흥조잖아요.

그런 황벽스님의 글을 보고 아직 덜 깨달았다고 평가하는 정도이니 

요즘 禪을 안다는 사람들이 얼마나 相病이 깊게 들었는지 알 만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 글을 올리신 우리 회원 분이 

글 내용은 완능록 원문인데 출처를 밝히는 곳에서는 "무불님 강의 중에서" 라고 했어요. 

우리 카페라면 그것이 무불님의 강의 중에 나와 있는 황벽스님 원문인지 다 알겠지만

그 카페 주인장은 그 말이 아마도 제 강의인줄 알았을 겁니다. 

그러니 선서의 기본 서적도 못읽어 보았다는 말이 되잖아요. 

그 사람은 저를 비방했겠지만 사실은 황벽스님 글이니 황벽스님을 비방한 것입니다. 

그런데 누가 말하든 그 말이 맞으면 좋다고 말해야 하는데 

그런 여유가 없음은 아직 공부가 덜 되었다는 증거인데 

그렇게 남모르는 어떤 앎(식) 하나를 가지고 있으면  그런 아상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앎병!  이것 참 무서운 병입니다. 

수십년을 지나도 그 앎병을 못버리면 절대 깨달았다 할 수 없어요. 

모든 선서를 보세요.  어떤 선사가 공을 공이라고 말하던가요? 

그렇게 말한 선사는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공을 공이라고 말하는 자는 아직 공을 알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공뿐만 아니라 어떤 앎도 그것은 세우면 제대로 뭘 알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어찌 자기 앎에 의지하여 끝없이 남을 평가하고 자기를 자랑하겠습니까?

깨달은 자라면 지식의 주머니를 비워버리고 그 주머니까지 던져버린 자입니다. 

진실을 보임에 지식의 주머니가 드러나면 그는 아는 자이지  깨달은 자라고는 하지 못해요. 

그래서 선가에는 인가하는 제도가 생긴 것입니다. 

오직 깨달은 자만이 깨달은 자를 알아요. 그래서 깨달은 자가 깨달은 자를 인가하는 것입니다. 

대담중에 확인해보고 아직도 앎에 의존하고 있다면 그 앎을 깨부수어주는 일을 스승이 하는것입니다. 

어떤 꼴통이 자기가 깨달았다고  구구절절히 글을 써서 보냈길레 보니까 병으로 꽊 차있어요. 

그래서 '그 나무 말뚝을 빼버려라....'하고 간단히 멜을 보내주었는데 

자기는 틀림없이 깨달았다고 장담하는 이 꼴통이 답장하길 

'언젠가는 스님과 손잡고 큰 일을 도모할 날이 있을 겁니다' 해요. 

그야말로 시건방의 극치입니다. 

나는 바빠서 그런 꼴통들과 말할 시간도 없고 같이 천하를 도모 해보고 싶은 생각 추호도 없어요. 

난 단지 혼자 평범하게 살아갈 뿐입니다. 

그런 꼴통들에게 단지 한마디 한다면 '그 병을 고쳐라' 할 뿐인데도 못 알아들으니

제가 뭘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러니 사이비도 엄청 많다고 봐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꼴통을 부추기는 꼴통들입니다. 

자꾸 눈먼 장님이 장님을 부추기니까 더 신나서 자기 이론을 못부수는 것입니다. 

아! 그래서 옛선사들이 중요한 것을 꼭꼭 숨겨두고 함부러 내 보이지 않았구나 하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만약 드러내면 낼 수록 눈 뜬자가 많아지는 것이 아니고 병든자가 많아지기 때문입니다. 

거두절미하고.... 붓다 여러분은 항상 조심해야 합니다. 

앎을 내 세우면 바로 병인 줄 알아야 해요. 

그러면 적어도 사이비 소리는 듣지 않습니다. 

공은 텅텅 비었기 때문에 거기에는 색이 없어요. 물질이나 색갈도 없습니다.  

또한 느낌도 없고, 생각도 없고, 작용도 없고, 식별도 없으며.... 

만약 누가 어떤 느낌을 받고 이것이 공에 대한 깨달음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큰 병인줄 알아야 해요. 

또한 생각에서 나온 말이나 행동이나  기괴한 언어, 특이한 지식을 내세워도 절대 공을 모른 것입니다. 

공은 이 모든 것이 다 빈 상태인데 어찌 이런 것으로 공을 안다고 하겠습니까? 

공은 할을 하여도, 기이한 몸짓, 행동, 말도 적당하지 않고 그렇다고 가만히 있다고 하여도

공을 제대로 표현한 것이 아닙니다. 

공은 눈도 없으니 눈을 껌벅여도 안되고, 귀도 없으니 기이한 소리를 내어도  안되고,

코도 없으니 냄새로서 알게 하려고 하여도 안되고, 혀도 없으니 맛으로 느끼게 하여도 안되고 

몸이 없으니 감촉으로도 공을 표현할 수도 없고.  정신이 없으니 어떤 뜻으로도 그 공을 제대로

표현 한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이 참선하다가 어느날 갑자기 전후가 끊어져 고요한 정신의 세계를 잠깐 느끼고는 

아~알았다!

바로 이거야 ! 이 정적한 경지가 바로 공이야 그리고 열반이야... 하고는  자기가 깨달았다 하고는

오도송을 짓고 미친 짓을 하길레... 제가... 정신 차려라...

너는 지금 느낌으로 혹은 정신으로 그 곳을 안다고 하는데 

그렇게 느꼈던 곳을 과거의 모든 사람들도 수없이 느꼈다 

그래도 모두 정신의 한 현상으로 알고 넘어갔는데 너는 유독 그걸... 좀 보고 참을 봤다고

그렇게 부산을 떨고 그러냐  하고 주의를 주어도 아니래요.

자기가 본 것이 진짜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오히려 절보고 모른데요. 

선생님이요, 선생님이 그 경계 못보았지요?

전 보았심더....그러니 제가 깨달은 것이 확실해요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네가 병이 깊이 들었구나' 그 병 고쳐라 라고 말해 주었는데도

아직도 못 깨우치고 여전히 헛소리 하고 다닙니다. 

도대체 뭘 본다는 말입니까? 

근원이 텅 빈 공에서 시작하여 공으로 돌아가는데...공을 느낄수도 없고 볼수도 없는데.... 

참(眞)을 보았다는 사람들이 어찌 느낌을...생각을...뜻을 그렇게 붓잡고서 뭘 깨달았다고

할수있단 말입니까? 

모다 병인줄 모르고 기이한 헛경계에 유혹당하여 거짓을 참으로 알고있을 뿐입니다. 

이런 병에 대한 주의는 안 듣고 제가 깨달아도 미미한 습기는 남아있을 수 있다는

말만 가져다가  견성방에 있는 것을 가져다가 마음에 탁 붙이고는 

자기는 깨달았는데 아직 습기가 남아있을 뿐이라며 그 습기를 제거하는 공부를 하고 있데요....

그렇다면 책을 많이 읽은 사람도 깨닫고, 뭘 특이한 것을 알은 사람도 깨닫고.... 

다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이 땅에 도인이 꽉찼을 것입니다. 


붓다여러분, 오늘 제가 명확하게 말합니다만 

뭘 안 경계와 깨달음의 경계는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분명하게 아셔야 합니다. 

앎은 앎일 뿐입니다. 그 앎을 버려야 깨달음입니다. 진리를 듣는 순간,

진리를 깨닫는 순간  이 앎은 저절로 버려지는 것입니다. 

끝없이 앎을 내세우면서는 절대 깨달은자 라고 말하지 못합니다. 

무의식을 끊어낸 상태가 깨달음입니다. 

진리를 논함에 작은 앎이라도 세우고 자존심을 내세우는 자는 절대 깨달은 자라고 말하지 못해요. 

깨달음은 순간 딱 끊어지는 것입니다. 

노력하는 것이 아냐요. 

깨달아도 아주 미세한 것은 남아있다는 그것은 너무 세밀해서 남은 모르는 정도입니다.

그런데 남이 벌써 턱 아는 경계로 어찌 깨달았다 합니까?

그 미세한 습기를 살아가면서 마저 제한다 하는 것이지  의식이 전혀 변하지 않은 것을 깨달았다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제말은 일목요연합니다. 

원래 붓다이나 여러분은 집착으로 인하여 자신의 참 모습을 잃고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비록 앎을 통하여 자기가 붓다임을 알았으나 그것이 깨달음은 아닌 것입니다.

자기의 정체를 알았을 뿐야요. 

깨달음은 깊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순간 단번에 깊이 들어가요. 들어가는 노력을 훨씬 줄인 상태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스스로 붓다임을 알고 붓다행을 하다가 보면 언젠가 단번에 묵은 때를 벗겨내고

들어가길 바라면서 강의하는 것입니다. 

제가 하라는 대로만 하시면 빨라요. 

무심으로 살아갈 것

한 생각이라도 용납하지 말것

기특한 경계를 이상 경계로 삼지 말것

더러움도 없고 깨끗함도 없으니 마음이 흔들리지 말것


항상 고요하게 고요하게 살아갈 것

그러다 보면 어느날 저절로 그 깊은 맛을 알게 될 날이 옵니다. 

그때 깨달음도 오고 선어구도 다 알게 되요.....

 

선사들과 한마디 법거량도 자연스럽게 하게 되고요.

오늘은 공에는 색 느낌 생각 작용 식별도 없고 

눈 귀 코 혀 몸 뜻도 없다는 것까지 하고 마칩니다. 

붓다여러분! 스스로 붓다의 정신을 잃지 맙시다. 

항상 겸손하시고 편안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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