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지혜도없고 얻음도없다

 

 

無智 亦無得

무지 역무득

지혜도 없고 얻음도 없느니라.

 

오늘은 지혜와 얻음에 대한 내용입니다.

다 알다시피 알知 자와 지혜智 자는 다르다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안다는 것은 지식이고 일종의 자료입니다.

그러나 지혜는 지식이 자기화되어

삶의 곳곳에 적용되어 나타나 삶이 편리해지는 것을 지혜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안다는 것은 머리에 저장되는 지식이나

지혜는 그 앎을 적절하게 잘 사용했을 때를 지혜라고 하지요.

보통 학교에서는 지식을 배우나 삶에서는 지혜를 배웁니다.

예전에는 선생님들이 지혜를 가르치려고 했어요.

그래서 서당에서 한문을 배울 때 지혜로운 이야기들을 들어내 보여서

귀감이 되게하였습니다.

그래서 많은 양의 지식을 공부 하기 보다는 적은 양이라 해도

지혜를 기르는데에 중점을 두고 차근히 가르쳤지요.

그러다보니 선생님에 대한 예의 범절이 중요했고 선후배간의 질서가 중요하였습니다.

그런데 현대는 지혜보다는 지식이 중요해졌습니다.

현대는 고대보다 많은 지식이 필요하지 지혜는 개인의 문제로 돌려버렸어요.

현대는 안다는 것이 중요진 것입니다.

누가 더 많이 아는가? 이것이 생존의 법칙이기도 합니다.

대입시험, 입사시험, 승진 등은 모두 앎으로 등수를 매겨서 선택되는 것입니다.

누가 더 똑똑한가? 많이 아는가? 이것이 중요해진 것입니다.

그래서 많이 아는 자는 살아남고 덜 아는 자는 탈락해요.

한마디로 많이 아는 자는 보장되나 적게 아는 자는 보장되지 않아요.

지식! 이것의 현대 생활에서 우열의 기준이 됩니다.

어쩔수 없는 운명같은 것입니다.

남녀가 사귈 때도 옛날에는 인간성이 중요했고 사람이 착하면 선택되었지만

지금은 얼마나 똑똑하고 능력이 있는가가 중요해졌어요.

물론 학벌과 부의 정도가 성공과 실패의 기준이 되었고

그러다보니 이 경쟁시대에 항상 공허한 것은 인간성이요, 지혜로운 성인의 말씀입니다.

예전에는 언제 어디서나 접할수 있었던 성구(聖句)들이

지금은 유행가 가사보다 더 천시되고 외면당하는 현실입니다.

깊은 내면의 지혜를 갖고 세상을 한낱 꿈과 같이 보려고 하여도

부인과 자식과 사회적인 환경이 현실에 부합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지

비현실적인 듯한 도인이 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도인이 되어도 네가 혼자 아는 도인이 되지 말고 사회에서 알아주는 도인이 되어서

부인과 아들이 만족하고 친구들이 만족하는 도인이 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회의 욕구입니다.

큰스님이 되어도 어디 본사의 조실이 되어야 하고 메스컴에 오르내려서 유명인사가 되어야 큰스님이라고 이구동성으로 알아주고 조주스님처럼 저 먼 시골에서 배추심다가...고추 따다가 손이 거칠고 얼굴이 시커먼 스님은 아무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설사 아무리 높은 도안을 가지고 있어도 사회가 인정하지 않으면 인정되지 않아요.

그래서 도인들도 단계를 정해놓고 높이 올라가기를 희망하는 우스깡스런 제도가 도인들 사이에도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바로 내부는 공허하고 겉으로 화려한 현대의 도인입니다.

도인뿐만 아니라 누구나 마찬가지입니다.

학교 선생도 소신을 가지고 학생을 지도하면 안되요.

학교 행정에 맞아야 하고 운영에 적합한 처세도 할 줄 알아야 하고 학부형에게도 잘 대접하여

학교라는 공간에서 살아남기 위한 기본을 갖추어야 살아남습니다.

학생도....선생도....교장도....모두 살아남기 위하여 겉만 치장합니다.

서울대 나온 선생을 영입하여야 하고 학부형과 관계가 좋은 선생을 영입하여야 하고

찬조비 잘 받는 선생을 영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이 현대 사회입니다.

지혜가 무시되고 지식이 중요해진 사회!

개인의 인격보다는 겉으로 화려한 치장이 중요한 현대!

이 사회에 따라가지 못하면 탈락되는 사회!

탈락된 사람에게 아무도 돌아보지 않고 그럴 시간도 없는 현대인!

탈락된 사람은 홀로 고독한 방에서 가족의 관심도 받지 못한 채

우울증으로 시달려야 하는 현대!

이것이 오늘날 우리사회입니다.

먼 미래에는 분명 다시 과거와 같은 인간애와 인격이 중요해진 사회로 되돌아가겠으나

아직 우리는 비 인간적이고 비 인격적인 사회속에서 살아요.

그래서 어두운 곳과 밝은 곳이 함께 존재하는 사회가 된 것입니다.

범죄와 평화로운 마을이 두 세계는 어느 나라 어느 사회에 가도 함께 존재합니다.

잘 살게 되면 범죄가 없어져야 하는데 잘사는 만큼

범죄는 더 심해지는 것이 오늘날 우리사회입니다.

아직까지 티벳에는 법이 없는 마을이 있어요.

문제가 생기면 어른들의 말이 중요하고 촌장의 합리적인 판결에 따라

문제를 해결하고 모두 다 수긍하고 불 만족있어도 받아들입니다.

가난하지만 범죄율 제로인 마을이 부지기수입니다.

치안이 필요하다는 것에 도대체 이해를 못하고 경찰이 왜 있어야 하는지

자기가 부지런히 일해도 모은 돈으로 물건을 사면 되지

도대체 왜 도둑질을 하는지 이해를 못하는 나라가 티벳입니다.

영국의 유명한 어떤 여행가는 인류의 미래는 티벳이라고 했어요.

한편 우리보다 삶의 풍족을 누리고 살던 유럽의 신지식인들은

따로 공동체를 만들어 자기들만의 세계에서 살기를 원합니다.

인간이 인간 대접을 받을 수 있는 사회,

규율과 기계와 제도에 뭍혀 인간성을 잃은 사회를 탈피하려는 신지식인들의 그 그릅입니다.

혹 어떤 사람들은 과감히 아프리카 오지로 떠납니다.

그곳의 순수한 흑인과 결혼하고 흙에 가깝고 자연에 가까운 인간으로 돌아가려고 해요.

사회의 제도보다 자연적인고 인간중심의 사회에서 살고 싶은 것입니다.

틀림없이 미래는 정치와 인간성의 방향을 자연에서 찾을 것입니다.

자연... 그리고 사람 그자체가 중요해질 것입니다.

다행히도 불교는 끝없이...자연으로 돌가길 바라고 인간으로 돌아가길 바랍니다.

불교는 지혜를 존중하고 사람의 마음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획일적인 제도나 신을 향한 신앙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니! 불교는 무신론 종교입니다.

그 누구도...그 무엇도 인간보다 훌륭하지 않아요.

람이 가장 훌륭하고 위대합니다.

위대함.....이 용어조차 사람의 마음이 만든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사람이 부처!

이 선언으로 부처님은 인간을 높이 올려 놓고

스스로 자기 속의 부처를 찾고 믿고 깨달으라고 가르칩니다.

그 누구도 따르지 말 것이고 오직 진리만을 따를 것이고

진리를 가르치는 스승을 따르라 역설합니다.

혹자는 사람을... 스승을 너무 신처럼 떠받드는 것이 아니냐 하겠으나

불교는 사람이 사람을 존중함은 당연하다하고 사람이 사람을 포기하고

신을 존중함은 격이 떨어진 것이라고 봅니다.

오직 진리를 가르쳐주는 스승이 위대하고

나 또한 진리를 깨달으면 위대한 스승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붓다이다.

따라서 사람은 사람을 존중하고 사람에게 절하지 신에게 절하지 마라.

네가 사람을 존중하고 3배하는 습관을 들이고

너 또한 너의 제자에게 3배를 받는 자가 되어라...

철저히 사람이 중심된 종교가 불교입니다.

지혜! 이것은 선도 없고 악도 없다는데서 나와요.

더러움도 없고 깨끗함도 없다는 생각에서 나옵니다.

나에게 해롭게 하고 나를 사기쳐서 길거리에 나앉게 한 자에게 용서하고 무심으로 받아들이게 하려면 불구부정이 철저히 머리 속에 있어야 합니다.

외면이 중요해지고 똑똑한 남자가 중요해진 현대 사회에서 늙도록 장가 못가는 새로운 풍속이 생겨납니다.

또한 있던 남자도 팽개치고 새로운 남자에게 바람도 자연스럽게 피우는 사횝니다

어떤 사람 고민을 들어보니까

부인이 바람이 났는데 이유가 남편이 너무 고압적이고 자기 중심적이라는 데 있었어요.

그러다 남편에게 들켰는데 부인이 그냥 암말 안하고 친정으로 획 가버리 더래요.

남편은 30년 이상을 같이 살은 여자가 바람피운 것이 괘씸하고 억울하고 화나겠으나

요즘 여자는 자기가 문제 있는 남자라는 것을 모르는 남자에게 일일히 설명하고 분노내는 것

짜증내면서 말하는것 듣기 싫다고 그냥 그래!

바람폈다, 어쩔거냐!

니 맘대로 해라.

난 너와 헤어져도 상관없고 위자료 없어도 좋다...

그러나 나도 살아야 하니까 법정에서 보자...

하면서 친정에 가버렸는데 남자 혼자 전전긍긍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남자는 사실 부인과 이혼하기 싫은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하면 좋겠냐고 묻는데

이혼은 안해주고 자기 체면은 살리려는 사람이드라고요.

그러니 불교 공부해두지 않으면 언제 어느 때 그런 일이 닥칠지 모르고

만약 닥치면 자기 분노에 괴로워해야 하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하여

애들은 저리가라하고 신나통들고 가서 부인도 죽이고 자기도 죽는 비극으로 종말을 내립니다.

불구부정.....더러움도 없고 깨끗함도 없다....

사람은 평등하다

남녀도 평등하고 계급도 평등하다

인간은 누구나 붓다이다

그걸 안다면 어떻게 자기 중심적인 삶을 살겠습니까?

현대는 남도 배려해야하고 자기 생각도 하나의 의견일 뿐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어떤 것도 절대적이라고 생각하면 안되요

며칠전 어떤 사람에게 들으니 자기가 다니던 절의 스님이 장가를 갔데요.

그것을 보고 자기 친구(보살)가 배신감을 느끼고

친구 남편도 거기에 잘 갔는데 불교에 실망을 느껴서 부인보고 절에 가지마라고 했데요.

그러니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하더래요

그래서 제가 그랬습니다.

그 보살 남편은 언젠가는 그 어리석은 생각으로 인하여 고통받을 것이다 했어요.

왜 불교를 자기 식으로 믿으려합니까?

진실의 불교를 믿어야지요. 자기가 세운 불교를 믿으려하면 안되요.

불교는 불구부정不垢不淨 사상을 가지고 있는 종교입니다.

누가 뭘하던....그가 이혼을 하던...범죄를 저지르던...

바람을 피우던 사람을 다 똑같이 보아요.

부처님은 다 똑같이 이해하시고 사랑합니다. 예전의 마음과 변함없어요.

그런데 부처님이 사랑하고 이해하는 사람을 왜 그 남자는 싫어합니까

왜 불교가 그 좁은 남자의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까

불교는 넓어요. 그 어떤 종교보다 크고 넓습니다

무심을 가르치는 종교이기 때문입니다.

무엇이라고 마음에서 하나라도 세우면 바로 때뭍음이 되요.

당신이 온갖 이론과 사상으로 이것이 불교라고 한다면

그 사람은 죽어도 불교를 모른 것입니다.

누가 무엇을 하던 단 반 생각도 일어나면 안되요.

항상 똑같아야 합니다.

왜 스님이 장가가는데 죄진자처럼 가야합니까? 그 스님 당당하게 가야해요.

한 사람의 남자가 당당히 자기의 길을 가는데 부처님이 주신 남자의 기능을 살려서 살아가려는데 왜 축복하고 감사해하고 기뻐하지 않고 욕하고 질시하고 배반당했다고 생각합니까?

그러니까 불교가 발전이 없는 것입니다. 인재를 쫓는것 아닙니까.

장가 안간 것 자체가 중요하면 노총각들한데 다녀서 3배하고 모시지 왜 스님한테 다닙니까

그런 비불교적인 자세부처 버려야 해요.

그리고 부인이 다니는 종교를 부인이 다니게 내버려두지

당신이 무슨 권리로 다녀라 다니지 마라합니까?

불교는 당신보다 백배 천배 높아요.

당신의 잣대로 불교를 평가하지 말아요.

불교가 당신의 종입니까?

부인도 당신의 종이 아닌데 절에 알량한 시주 좀 했다고

당신 맘에 들지 않게 스님이 행동했다고 절을 당신 맘대로 해도 된다는 생각 버리세요.

부인도 인간관계가 있고 그 스님도 인간 관계가 있어요.

그런 좋은 관계가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것인데 당신의 잣대로 가라 가지마라

하고 또 거기에 질질 끌려다니면서 어떻게하면 좋을지 묻는 사람도 한심해요.

불교를 누가 가라 가지마라 해서 갑니까?

남편이라 해도 정당하지 못하면 안 따라가는 세상에 왜 남편에 의하여 종교가 좌지우지됩니까

제가 남편을 버리고 박차고 일어나서 당신의 길을 가라했어요.

남편이 도둑질하면 당신도 할거예요?

남편이 잘못가면 같이 고민하고 토론하고 정당함을 주장해서 이끌고 와야지

왜 아무것도 모르는 남편에게 따라 가야합니까

누그든 상관없어요

그가 불교를 이해하지 못하면 이해시키고 이끌어야지 그를 따라가면 안됩니다.

그러면 영영 지식에 이끌려가고 사회적 제도에 이끌려가고 옳고 그른 분별에 이끌려가는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미국을 보세요. 밤 8시면 맘대로 나다니지 못합니다.

범죄인을 다스리는데 경찰은 총을 쏘고 곤봉으로 마구 때려서 끌고 갑니다

죄를 미워하는 것입니다. 죄! 아담과 이브의 죄!

그 죄는 시대에 따라 달라지고 죄가 아닌 죄도 있음을 인정하지 않고

죄앞에서는 인간을 무지하게 대합니다. 법....

이것은 이간성을 살리려는 것이 우선되어야 법이 됩니다.

만약 법 아래 사람을 놓으면 그 사회는 얼어버린 사회가 되요.

동양의 성자는 한결같이 인간의 성품을 곧 하늘의 성품이라고 했어요.

그래서 기본적으로 인간 존중의 정신이 있습니다.

그러나 서양은 그런 정신이 없어요.

인간은 신의 피조물이고 그래서 신의 이름 아래 마음대로 처단해도 된다는 정신이 있습니다.

그래서 부시는 폭탄도 막 퍼붓고....

아랍권은 그런 부시에게 또 알라의 이름으로 자살 폭발물로 보답합니다.

도대체 끝없이 인간이 빠진 이 전쟁 얼마나 더해야 합니까

불교가 전파되어야 없어져요

인간존중의 종교가 대륙을 지배해야 합니다.

우리는 뒤 쳐지지 말고 앞장서서 가야합니다.

불교를 공부하면 창의적이고 선진으로 나갑니다.

정신은 저 앞에 있게 되요.

인간 앞에 겸손하고 누구에게도 아무 것도 주장하지 않는 무심설사

그것이 위대한 지혜라해도 사람을 불행하게 하면 따르지 않아요.

불교는 아무 얻음도 없는 종교입니다.

만약 무엇 하나라도 얻음이 있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불교를 모르는 것입니다.

당연히 깨달을 것도 없고 설사 누가 깨달았다고 해도 깨달았다고도 말하지 못해요.

허망한 세상에....도대체 무엇인들 영원한 것이 있다고 합니까

어떤 법이 위대하다고 그것을 주장하겠어요.

만약 하나라도 얻은 것이 있고 그것을 주장한다면 당신은 불교를 잘못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불교를 하면 영원히 불교를 모르는 것입니다.

불교는 버리는 종교입니다.

얻는 종교가 아니어요

당신의 생각을 버리고 남편의 생각을 버리게 하세요.

무엇이라도 불교에 대하여 선입견이나 오해가 있으면 안되요.

불교는 지금 당신 그대로가 부처님이라고 소리치면서 시작하는 종교입니다.

그렇다면 당신이 어떠한 일을 해도 부처이듯이 스님도 어떠한 일을 해도 부처여야해요.

스님이 장가가도 더도 덜도 말고 그대로 부처로 보고

존중 하여야 하고 더 잘 모셔야 불교가 살아나고 이 땅에 평화가 와요.

그것에 대해 조금이라도 무엇이라고 비방하거나

다른 주장을 하는 사람들의 말은 들을 필요가 없습니다.

일도양단!

한번 내리쳐서 잘라버린다.

무엇이라도 주장하고 얻으려하고 들으려하고 ....

알려하고 비방하려고 하면 불교와 멀리 달아나는 줄을 알아야 해요.

공에서 와서 공으로 돌아가는 자들이 무엇이 옳고 그르다고 그렇게 주장할 것이 있겠습니까?

모두 어리석은 마음이 만든 경계요,

이상이요, 환상임을 잊지 마세요.

그 누구의 말에도 흔들리지 말아요.

그래야 당신이 부처입니다.

종국에도 스승의 말에도 넘어가지 않아야 당신이 위대한 스승이 되어 남을 가르칠수 있어요.

그때서야 진정 남을 사랑하고 용서하고 포용할 수 있어요.

비워져서....

텅비워져야.....

새로 시작합니다. 아름다운 시작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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