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그러므로 알라
故知 般若波羅蜜多 是大神呪 是大明呪 是無上呪 是無等等呪
고지 반야바라밀다 시대신주 시대명주 시무상주 시무등등주
고로 알라. 반야바라밀다의 크게 신비로운 주문
크게 크게 밝은 주문 가장 높은 주문 동등함이 없는 주문은
能除一切苦 眞實不虛
능재일체고 진실불허
능히 모든 괴로움을 없애주나니 진실하며 허망되지 않느니라.
마지막에 들어와서 주문 적인 것에 대하여 설명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오늘은 진언의 역사를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불교 역사를 보면
소승불교, 대승불교, 밀교, 선불교로 나눌 수 있습니다.
소승불교는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직후부터 대략 5백년정도의 불교를 그렇게 부릅니다.
물론 소승 불교에서도 세밀히 분류하면 상좌부와 대중부가 있었어서
처음 약 1백년 정도를 부파 불교라고 부르나 ...
그냥 통틀어 소승불교라고 말해도 됩니다.
이때는 부처님께서 돌아가신지 얼만 되지 않을 때라
불교의 기강을 엄격하게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이미 전 인도가 불교를 믿는 나라가 되었기 때문에 굳이 포교니.세계화니 하는 개념이 없었고
스님들은 전적으로 수행하는 사람으로만 인식되었을 때입니다.
따라서 계율이 엄격했고 전적으로 자기 수행에만 중점을 두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당시 불교를 소승불교라고 하고. 그후 기원전 1세기에 대승불교 운동이 일어나서 대중불교가 되었을 때도 그 신불교운동에 끼어들지 않고 전통을 그대로 고수하면서 불교를 행하던 지역이 있었는데 그 나라들이 지금의 스리랑카, 버마 등의 남방불교입니다.
그러나 B.C.1세기경 부터는 전체 불교의 분위기는 매우 달라있었습니다.
스님들이 주축이 되어 이끌어 나가던 불교는 이제 재가에까지 퍼져서
인반인도 불교를 이끌어 나가는 관례가 보편화 되었어요.
무슨 말이냐 하면 예전에는 스님들이 불교를 수행하였고 스님은 불법승 삼보의 하나로서 공양을 받는 자요, 법을 설하는 당사자이고,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당사자라 스님이 주축이 된 불교였습니다.
주로 인반인들은 절에 와서 스님들의 법문을 듣거나 공양을 올리는 정도가 전부였어요.
다만 스님들에게 공양을 올리면 그 공덕으로 복을 받으므로 일반인들이 할 수 있는 신행은 스님들의 공양을 대는 정도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수많은 백성들에 비하여 절은 얼마 없고 대신 들판에 서있는 부처님의 사리탑은 많았습니다. 그러나 보니 멀리 있는 신도들은 탑에 찾아가서 음식물을 올리고 마음속의 기원을 비는 신행이 전국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부처님의 사리는 8말 8되가 나왔다고 합니다.
온통 사리뿐이고 뼈는 없었다해요.
이때 8나라에서 사이좋게 나누에 분배하였고 8나라의 왕들은 사리 일부는 왕궁에 보관하고 대다수의 사리는 전국에 탑을 조성하여 부처님의 사리를 안치했기 떼문에 전국적으로 불탑이 많았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서민들은 자연히 대도시의 사원을 찾기 보다는 자기 주변에 있는 불탑을 찾아서 ...가정에 무슨 일이 있으면 가서 공양올리고 소원을 비는 기복신앙을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얼마 뒤에 공양물을 관리하는 사람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라의 관리가 나아가서 불탑을 관리하게 되었고 이것이 시간이 오래 지나가고 또 어떤 불탑은 부처님의 영험이 좋아서 가서 기도하고 공양만 올리면 한가지 소원을 꼭 이룬다는 말이 전해지는 데가 있었고 이 소문이 또 전국적으로 전해지면서 사람들이 매일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생각해보세요. 그 불탑에 가려고 며칠 전부터 음식물을 짊어지고 걸으면서 절하면서 기도하면서 전국에서 몰려들었으니 아닌 것이 아니라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이때 절을 관리하는 관리자도 많이 필요하게 되었고 절을 지어야 하는 일이 생겼는데 절을 짓는다고 하니까 시주도 금방 모이고 해서 순식간에 궁궐같은 큰 사원이 지어졌고 이 모든 관리를 일반이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스님이 없으면 사원이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스님들을 모시게 되었고 ...
최고급 호텔같은 곳에 자동 샤워기가 있는 독방을 주고 ....봉급은 얼마고 ...먹는 것은 공짜에다....
하면서 방을 붙여대니..ㅎㅎ
스님들이 기존 사찰을 이탈하여 이 곳으로 오게 되었고 스님들은 여전히 수행만 하면 되고 여기서도 큰스님을 뽑아 법문하여야 되니...큰스님을 선거로 뽑고....해서 격이 갖추어진 큰 사찰이 된 것입니다.
이때 스님들은 법상에 올라가서 사찰 관리자의 공로를 연일 칭찬했습니다.
그 황막한 들판에 첨에 와서 새우잠을 자면서....가족과도 2년을 보지 못하면서
오직 부처님의 집을 지으려고 고생했고....등등
그러면서 경전속에 나오는 보살이 다른 사람이 아니라
이 분들이 바로 보살이라고 하면서 크게 칭찬한 것입니다.
이때 일반인들은 처음으로 보살이라는 말을 알았어요.
이때 불교를 '보살불교'라고 하고 혹은 '탑신앙'이라고도 합니다.
그러니까 오늘날 우리가 절에 가서 보는 보살을 보면 모두 화려한 복장을 하고 ....
문수보살...관세음보살....대세지보살....
등등의 보살상을 보면 모두 귀걸이...팔찌 등, 고급옷을 입고 있는 모양을 하고 있는데
이 보살의 상은 이때 바로 대승불교 때에 정형화된 것입니다.
즉, 경전에 나오는 보살의 복장이나 특징을 이때 사찰관리인의 복장을 그대로 후대 미술가들이 도입되게 되었던 것입니다. 즉, 경전에 나오는 보살의 복장이나 특징을 이때 사찰관리인의 복장을 그대로 후대 미술가들이 도입되게 되었던 것입니다.
머리도 기른 상태라 지금 절에 가서 보살을 보면 전부 일반인의 복장과 머리라는 것을 알수 있어요.
이렇게 사원의 재정이 풍부하게 되자
이제 전국적인 불교 포교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고 경전 결집, 제도변화, 심지어 사원 바깥의 이웃에게도 관심을 보이는등의 그 때의 불교운동은 참으로 대단하였습니다.
이때의 불교운동을 대승불교 운동이라고 하고 불교의 전파가 중국, 프랑스...등의 세계적으로 퍼졌고...
서기가 시작될 무렵부터 서기 6백년까지 인도는 완전히 대승불교국이 되었습니다.
스님들은 여전히 수행에만 몰두하면 되었고 일반인은 살림과 포교, 대사회적인 것을 도맡아
불교가 거의 일반 사회로 내려온 것입니다.
그러던 불교가 서기 6백년경부터 다시 밀교시대로 들어가게 되었어요.
밀교는 보다 인간적인 불교요, 다분히 힌두교적이기도하나 불교의 사상을 그대로 간직한 시대였지요.
밀교는 현재 두 가지가 전합니다.
하나는 진언적인것과 함께 신비주의 불교입니다
오늘날 티벳불교를 대표적인 신비주의 밀교라고 해요.
또 하나는 마을에서 수행하는 '성의 삼매'인데
남녀 성적인 행위를 수행으로 한단게 높혀놓은 것입니다.
오늘은 주문에 대한 말이 나와서 그 역사적인 것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대승불교와 그리고 밀교까지 차분히 들으세요.
이것도 불자들이 중요한 상식이라 들어두어야 해요.
오늘날 우리나라가 왜 진언을 외우게 되었는지 천수경에 보면 많은 주문이 나오잖아요.
우리나라는 대승불교이면서도 밀교를 부분적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다시 돌아가서.....
그러니까 밀교는 불교를 좀더 가정으로 끌여들었어요.
항상 법당에서 신성하게 외우기만 하던 경전이 이제 안방으로 들어온 것입니다.
그것이 '성의 삼매' 여요.
도대체 성의 삼매가 무엇일까?
불교의 많은 수행이 결국 하나 삼매를 이루는 데에 초점이 맞추어져있어요.
정신이 하나로 통일되면 세상의 이치를 모두 깨닫게 된다...
따라서 삼매를 통하여 붓다가 되는 것은 가능하다
그래서 경전을 읽는 데 주력하는 독경삼매가 있고 성인의 명호를 읽는데 주력하는 염불삼매가 있고 '관세음보살'이나 '지장보살' 같은 칭명 기도지요.
또한 오늘날 참선 삼매도 같은 목적입니다.
그런데 삼매는 하나로 통일되어 나가는 것인데 망상없이 하나로 집중된다
이것 참 힘들어요.
그런데 한번 어떤 방식이든지 한 방법대로 집중하여 일단 삼매를 얻으면 그 뒤에 수행은 쉬워집니다.
즉, 이 삼매는 한번 얻으면 계속 그 삼매를 유지하게 되고 발전해가요.
무슨 말이냐 하면 예를 들어 염불삼매...즉 1시간을 '관세음보살' 불러서 망상없이 마음이 관세음보살에게만 집중되어있다면 그것을 삼매라고 하는데 그렇게 1시간을 집중하게 되면 점점 자동으로 그 시간은 늘어나고 나중에 24시간을 하나에 물두하는 신비로움을 맛보게 됩니다.
다른 것을 재미 없어지고 오직 관세음보살하는 것에만 마음이 자동으로 가서 계속하게 됩니다.
마음은 시간도 잊고 망상도 잊은 채 7일이고....열흘이고 1달이고 그렇게 흘러가게 되는데
바로 이때가 모든 망상을 씻어내고 자기 본래 자리에 들어가는 순간입니다.
어느날 저절로 세상의 이치를 알게 되고 기어이 위대한 붓다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금도 스님들이 7일간 잠안자고 용맹정진하는 관습이 내려오고 있어요.
하옇튼 어떤 방법으로든 마음이 중지하고 하나에 모으면 결국 모든 이치를 알아지는데
밀교에서는 그것을 성의 삼매로 개발한 것입니다
즉, 남녀가 합궁할 때 보통 얼마의 시간이 지나면 그만두게 되는데 밀교에서는 그 시간을 길게 늘이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감각을 잊어야 하고 감각을 잊는 것은 삼매에 들어가야 가능해요
그래서 여러 가지 체위가 나오고...하옇튼 요즘의 도색잡지같은 체위를 그려놓은 책이 있는데
이것이 좌도 밀교경전입니다.
아마도 성을 종교에 삽입시켰던 경우는 힌두교와 불교뿐일 것입니다.
그만큼 불교는 사상적으로 개방적이고 성을 오염된 행동으로 보지 않고 오히려 공부와 수행으로 승화시켰어요.
그런데 그것은 아마도 인도인들의 특징이라고도 생각해야할 것입니다.
인도의 힌두교 사원에 가면 자연스럽게 신들이 성행위를 하는 조각그림이 있어요.
인도인들은 성을 평범한 일상의 일로 보는 관점이 있었어요.
그것을 부끄러워하거나 숨길일이 아니고 드러내고 이용하여 수행으로 까지 끌어 올렸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필 불교에서, 밀교에서 성의 행위를 삼매로 끌어올렸던 것은 다 그런 이유가 있었어요.
하루종일 일하던 일반인들은 수행할 여가가 없습니다
그런데 유일하게 잊지않고 있는 것은 부부생활이잖아요
그러니가 거기다가 공부를 접합하면 참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원래 밀교 경전은 부처님께서 몇몇의 제자에게만 전수하던 부처님의 진설이이라고 합니다.
부처님은 출가전에 이미 성의 경험이 풍부한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경전을 설할 수 있었다는데 만약 그 말이 사실이라면 부처님은 대단히 현명하게 가르쳤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볼 때는 대단히 현대적이고 사실적인 가르침이어요.
무엇을 하던지 삼매를 얻으면 좋으니까...성생활을 좀 바꿔서 수행으로 여기고 들어가게 하자....
그동안 소승불교에서는 금기시하던 성생활이 밀교에서는 오히려 이용하여 일반인도 수행하게 하려했던 것이 좌도밀교....즉 성의 삼매법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 밀교가 인도에서 서기 1300년까지 번성하다가 유일신교도들인 이슬람주의자들이 처들어와서 약 120년간 인도를 정복하고 있는 바람에 사원을 폐지되고 불상을 깨졌으며 스님들은 환속시켰어요.
밀교시대 불교는 완전히 사람은 평등해진 것이고 누구나 깨달음에 들어가는 법으로 개방되고
자연스러워진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스님들도 성의 삼매를 수행하는 풍토가 생겼어요.
일본은 백제를 통해서 대승불교를 점차 유입하다가 인도 본국에 가서 불교를 배우고 싶어서 몇몇 스님들이 뒤늦게 인도에 도착했어요.
도착하니까 인도는 밀교시대인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이미 대승불교를 받아들여서 밀교를 안받아들였어요.
그런데 일본승들이 인도에 가서 보니까 스님들이 부인같은 보살을 두고 성의 삼매를 닦아요.
불교는 중국, 한국에 전해지면서 신비주의 도교와 합쳐져서
금욕주의가 되었던 것이고 인도는 안 그렇다 하고 귀국승들이 주장하기 시작했고
그 중의 유명한 어떤 고승이 일본에서 크게 전법하였는데 그 스님이 결혼하였고 그 스님을 따라서 스님들이 결혼하는 풍속으로 바뀌면서 스님들도 육식대처할 수 있다는 말이 지금부터 700년전에 공포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일본은 80%가 결혼하고 그 불교가 한일합방때에 우리나라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한편 일본 총독부는 한일불교합병정책으로 스님들을 정책적으로 강제 결혼시키기 시작했고 그렇게 36년간 결혼이 가능한 불교로 바뀌게 되었어요
해방후 독신승과 대처승은 갈라지고 오늘날 우리나라는 결혼과 독신이 함께 있는 불교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부처님은 어느 편이냐 하는 것입니다.
최근에 사람들은 말합니다. 오히려 천태종이나 기독교는 번성하는데 다 결혼하는 종파아닙니까
그런데 유독 조계종은 그대로라고 합니다. 시간적으로 사회는 엄청나게 변화를 겪었습니다.
그러나 조계종이 그대로 있음은 오히려 후퇴한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앞으로 가니까 가만 있으면 뒤로간 것이자나요.
다행이 우리 무불은 인터넷 강의도하여 겨우 체면을 유지시키고 있으나
부처님은 이런 저런 종파를 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보는가
사람의 마음을 봅니다.
이것이 대승불교의 특징입니다.
이 법은 이미 스님들만 아니고 누구나 깨달을 수 있는 법임이 만천하에 공개된 마당입니다.
따라서 그가 결혼했던 안했던 속가에 살던 승가에 살던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어디에 살던 성실하게 종교생활하여 부처님의 법을 행하고 전파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부처님은 복을 주십니다. 따라서 밀교를 무시하고 대승법을 우위에 둔다던지
소승법을 하위에 두고 대승법을 상위에 둔다던지 하면서 편을 가르는 방법은 이미 캐캐묵은 방법이고 구시대 사고 방식입니다.
시간이 없어서 오늘은 밀교까지 간단히 흝어보았는데 담시간에는 중국 우리나라까지 전파되었던 선불교도 간단하게 하겠습니다.
오늘은 주문이 발생된 역사에 대하여 하였습니다.
밀교시대에 북방으로 전파된 수행법이 있었는데 바로 진언을 수행하는 법이었어요.
그러니까 밀교시대에는 대승경전에 나오는 이런 진언만 모아서 외우고 신행하였던 것이지 따로 진언학은 없습니다. 이런 진언을 외우면 가정이 달라짐을 확신하였던 것입니다.
진언의 효과나 진언을 통한 깨달음에 대한 것은 다음 시간에 하도록 하고 오늘은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반야심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22. 아제아제 바라아제 (0) | 2015.01.09 |
---|---|
20. 正覺에 대하여 (0) | 2015.01.09 |
19. 삼먁(正等=中道)에 대하여 (0) | 2015.01.09 |
18. 마침내 열반에 이르니라 (0) | 2015.01.09 |
17. 걸림이 없는 까닭으로 두려움이 없고 (0) | 2015.01.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