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당하자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제1구입니까?"
 "3요(三要)의 도장을 찍어내니 붉은 점이 선명하고, 생각을 붙이기도 전에 주객이 분명하다."
오늘은 3구에 대한 것이네요. 
 3구는 한 마디로 체상용(體相用)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체상용(體相用)....

 ▶ 8. 인천(人天)의 공양을 받을 자 


 ▶ 체(體).....몸체, 중심적이고 보다 근원적인 것, 道의 실체 

 ▶ 상(相).....모양, 체는 눈에 잘 보이지 않으나 눈에 보이는 것으로 나타난 모양, 만물, 체의 모양.

 ▶ 용(用).....작용, 체가 모양을 통하여, 혹은 물체를 이용하여 작용하는 것 
그러니까 체는 만물의 근원이라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것인데 그기서 현상계 相이 나왔으므로 
갖가지 작용이 있게 된 것입니다. 
즉, 말하고, 움직이고, 계절이 있고, 꽃이 피고, 낙옆이 지고, 눈이 내리는 것은 다 用이라고 합니다. 
동양철학은 체용(體用)으로 만물을 설명합니다. 
마음은 분명히 있지만 그것은 드러낼 수 있는 것은 아니야요... 
그렇지만 사람의 인생에 있어서는 중요한 본질이고, 중심이 됩니다. 그래서 마음은 體라고 할 수 있어요. 
보이지 않는 마음이 작용하지 않을 때는 고요하나 사람을 만나서 작용할 때는 기쁘고,
슬프고, 괴롭고, 한심하고, 화나고, 우울하고 등의 작용이 있게 됩니다. 이것을 用이라고 합니다. 
마음은 보이지 않지만 없다고 할 수 없는 고로 체이고 
마음이 상을 통하여 자신을 나타낼 때가 있습니다. 그것이 상입니다. 
수행을 오래하고 욕심이 없는 사람은 얼굴이 고요하고 맑을 수 밖에 없어요.
그래서 그 사람의 얼굴이나 행동을 보면 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부부가 중요한 문제로 의견이 맞지 않아서 서로 뒤엉킨 경우에는 마음이 어디에 가도 편하지 않아요. 
게다가 이혼 문제가 나오고 자식의 미래를 생각하고 장차 혼자 살아갈 것을 생각하니까
자기도 모르게 저절로 한숨이 나옵니다. 
그런 사람은 마음이 편하지 않으니까 사람을 만나도 웬지 편안하지 않고 얼굴에 수심이 있습니다. 
기쁜 일이 없고 근심으로 지내다보닐까 얼굴 근육이 경직되어 딱딱하고 여유가 없어보입니다. 
이것이 바로 마음에 있는 것이 밖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이것이 相입니다. 

대자연도 비오려고 하면 날이 찌프리고 기압이 떨어지고...맑음이 없습니다. 이것이 상입니다. 
맑은 날씨도 그 자체가 상입니다. 
이처럼 동양에서는 우주 현상계를 체용으로 설명하고 있고, 거기다 불교는 하나를 더 넣어 체상용으로 설명합니다. 
그러니까 체는 눈으로 보이지 않으나 상은 눈으로 보이는 자연 그 자체이고 
용은 자연이 변화되고 움직이는 것을 말합니다. 
선서에서 체는 '심오한 법문' 입니다. 예를 들어 
조주무자 화두나 뜰앞에 잣나무, 격외구 ...
등은 본질적인 것을 드러낸 것이고 
할이나, 주먹이나 주장자를 들어보이는 것 등은 상을 드러낸 것이고 
불자를 들어서 보이거나, 주장자로 때리거나, 멱살을 잡고 묻거나...등은 용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體를 보임은 격외구를 쓸 수 밖에 없고 
예) 내일 말해주겠다, 서강의 물을 다 마시고 오라
相은 그래도 어렴풋이나마 보여지는 것입니다. 
예) 임제스님의 할, 주먹, 주장자
用은 직접 다가가서 상대에게 느끼도록 하는 것이니까 
예) 멱살을 잡고 묻거나, 불자나 주장자를 들어서 보이는 것, 주장자로 때리는 것 등입니다. 

선은 원래 상등급 문답이기 때문에 체상용도 상등급중에서 이루어져 있으므로 
선의 체상용 자체가 어렵습니다. 
이 체.상.용을 삼요三要라고 합니다. 
체는 보통 제 一句와 통합니다. 
제 일구는 첫 마디라는 말인데 
道의 핵심을 간단히 '한 마디' 로 보이는 것을 제일구라고 합니다. 
군더더기가 빠지고 근원을 통한 골수적인 '한 마디' 입니다. 

제2구도 있는데 
첫 마디로 모르면 약간 설명할 수 밖에 없어요. 그래서 할을 하고 주먹을 보이기도 하는데 
이것은 2단계이고 일종의 禪道의 相(象과 같음;모양상)을 보인 것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한자에서는 相자와 象자는 같이 쓰입니다. 

제 3구는 좀더 설명하는 것입니다. 
삼요가 거의 다 본질을 설명하는 것 같아도 최후의 가르침은 듣는 자가 깨닫는 데에 목적이 있습니다. 
즉 설명하여도 본질은 말하지 않고 듣는자가 깨닫게 할 뿐입니다. 
그러니까 체.상.용. 제 3구까지 다 말하더래도 중요한 본질은 스스로 알아야지 그것까지는 말할 수 없습니다. 
말안하는 것이 아니라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옐들어 마음이 고요한 상태를 설명하는데 
설명하는 사람은 단지 `마음이 고요해` 라고 설명할 수 밖에 없어요.
고요한 것이 무엇이야 하고 물으면 
"허공같아" 
하고 말하거나, "씨끄럽지 않아"
라고 말할 수 있으나 
그래도 모르면...."마음이 복잡하지 않단 말야 "
어디에 가도 움직이지 않고,.....도대체 마음이라고 끄집어 낼 것이 없어... 
하고 가능한 고요한 상태를 설명해주지만 
고요 그 자체는 말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본인이 스스로 체험해야 해요. 
그래서 나중에는 ....최후에 말하길 
"설겆이 끝나고 흔들 의자에 앉아서 멕스웰 커피를 마실 때 스스로 알거야." 
하고 말해줍니다. 
 
그러면 그런 때를 당해보아야 압니다. 
그런데 왜 하필 맥스웰이야? 왜 흔들 의자야? 왜 설겆이 끝 나고야? 하고 물으면 
도대체 끝이 없어져요....
선도 마찬가지입니다. 
때에 따라서 체상용 삼요를 이리 저리 가져다 쓰지만 결국 깨달아 체득하는 것은 여러분이 하는 것이지 선사가 가르치는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선은 가리키(直指)는 것이지 
기르침(敎)이 아냐요. 
선사는 가리키지 가르치지 않습니다. 
사람은 각자가 다 부처입니다. 
누가 누구를 가르치는 것은 없어요. 
기술이나 학문은 가르침이 있을 수 있지만 禪은 가리킬(指)뿐 가르치지 않습니다. 
선은 스스로 가지고 있는 것을 개발시키는 종교이고, 발명하는 종교입니다. 

오늘 임제스님은 친절하게 제 1구와 제2구와 제 3구를 설명합니다. 
선사들은 많은 말로 사람을 깨닫게 하지 않기 때문에 언제나 짧고 간략합니다. 
법문은 흔히 5분이나 10분 정도에 끝내고 법상에서 내려옵니다. 
그렇게 간략하게 하는 이유는 간단 명료해야 사람들이 깊게 각인하고 깨닫기 쉽기 때문입니다. 
말이 자꾸 많아지면 희석되어 본질을 이해는 하게 될지 몰라도 깨닫지는 못해요. 
도는 깨달아야 합니다. 
진리는 깨달아야 자기 것이 되어요. 
깨달아야 진리가 자기 몸과 같아지고 영혼과 같아져요. 
그래서 선불교에서 깨달음을 중시하는 것입니다. 
한마디 듣고 마음이 훤히 열리게 되면 평생 그 진리는 안 잊어버리게 되므로 그 진리와 함께 살아가게 됩니다. 
선사들은 언제나 제 1구를 중시해요. 
전강스님이 수행할 때 만공스님에게 물었습니다. 

어떤 것이 제1구입니까? 
만공스님이 지시하기를 
영신아! 하고 불렀습니다. 
그때 전강스님(속명:영신)이 
네. 
하고 대답하였는데 
만공스님이 재차 지시하시길 
"그것이 바로 제일구니라." 하고 말하셨어요. 
이름을 부르자 네 하고 대답하는 것 그것이 바로 제일구라는 말입니다. 
네....
라는 것에 8만사천 법문이 들어있고 일체 모든 도가 들어있고 
예수님의 도도 있고, 공자님 도도 있고, 하나님도 있고, 브라만도 있다는 것입니다. 
일체 모든 것이 다 포함되어있기 때문에 '네' 가 제일구(핵심)입니다. 
만공스님은 이렇게 쉽게 가리켰지만 
오늘 여기 임제스님은 어떻게 가리켰는지 한번 봅시당... 제자가 묻기를  


 ▶ "무엇이 제1구입니까?"

 ▶ "3요(三要)의 도장을 찍어내니 붉은 점이 선명하고, 생각을 붙이기도 전에 주객이 분명하다."
 3요를 찍어낸다는 말은 3요 중에 아무 것이나 사용하니
3요는 아까 체상용이라고 했지요?
체를 쓰거나, 상을 쓰거나, 용을 쓰거나 ....어느 것을 쓰거나 상관없이 
붉은 점은 도장의 색깔에 비유한 것인데 붉은 색이 분명하다는 것은 체가 언제나 분명하다는 것입니다. 
체는 누가 말하거나 드러내거나 상관없이 항상 선명하고 
사람이 한 생각 일으키기 전에 이미 주객이 분명하다는 것입니다. 
주객은 지난 번에 승 2명이 마주치게 되자 동시에 할할 때에도 말한 것인데 
주는 주체자이고 객은 손님입니다. 
주는 주인이고 선사이고 주지이고,,,,,객은 손님이고, 객승이고, 질문하는 자입니다. 
부처님은 주이고 일체 중생은 객입니다. 
그런데 통상 주객은 한 생각 일어나야 주객이 성립됩니다. 
오늘의 주는 강의 하는 사람 저(무불)이고 여러분은 청중이요, 객입니다. 
마음은 주이고 일어나는 생각은 객입니다. 
그런데 생각이 일어나기 전에 이미 주객이 분명하다니....
주객이라는 것은 항상 사람이 생각이 있고 난 뒤에 갈라지는 법인데 
그렇잖아요. 누구는 주이고 누구는 객이구나 하고 분별이 서야 주객이 갈라지는 법이지 
분별하지 않았을 때는 주객이 없습니다. 
모든 것은 사람이 생각하고 난 뒤에야 가치가 있게 되요. 
사람이 생각하지 못하는 무정물과 같다면 그 무정물에게 무슨 좋은 것이 있고 싫은 것이 있겠습니까?
사람이 석상과 같다면 자식이 무슨 소용 있고, 억지로 자식을 준다고 증명식을 한다하여도 
그 자식이 네거리에서 돌로 맞아 죽는다고 하여도 하나도 안 슬퍼요. 
왜냐? 생각이 없는 석상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은 사람이 생각이 돌아와야 가치가 있고 
부자이니, 가난이니, 슬프니, 우울하니 하지 
생각없는 인간이라면 오늘날 이런 문명을 이룩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세상을 만드는 것도 마음이고 
세상을 부수는 것도 마음이고 
온갖 가치를 매기는 것도 마음입니다. 
부처님이 말씀하시길 세상은 한 바탕 꿈이라고 하였어요.
인간의 마음이 만든 허망한 가치의 세계이기 때문에 세상 자체가 마음이 만든 꿈의 세계라는 것입니다. 
본래 그런 가치는 없는 것인데 사람이 스스로 그 가치를 만들어 놓고 그 가치에 도달하면 기뻐하고 
그 가치에 도달하지 못하면 우울해합니다. 
남아라면 한번 대통령이 되어야 해! 
남아가 세상을 움켜쥐지 않으면 누가 움켜쥐겠어!
한번 태어나 가장 높은 자리에 올라가 보는 거야.
라는 삶의 가치를 인간 스스로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행복한 것이라고 허망한 마음이 스스로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그런 허망한 가치에 매이지 말고 네 마음을 네가 스스스로 끌고 가는 자가 되어라. 종이 되지 말고 주인이 되어라. 
가치를 네가 정할 것이지 다른 사람들의 가치를 너의 가치로 여기지 마라
대통령이 되는 것이 남아로서 가장 행복한 것이다라는 가치에 이끌리지 마라
스스로 너는 완벽하고 가장 이상적이다.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원래 너는 행복하고 붓다이다. 
그 붓다의 즐거움이 고요이고 
본래 가지고 있는 것이니 고요한 본성을 흔들지 마라
고요한 본성에 온갖 생각과 가치로 물들이지 마라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고 하지 않아도 너는 완벽하다. 
라는 말을 수없이 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생각이 일어나야 주객이 있게 되요
주객자체가 비록 허망한 가치이지만...불교는 평등을 주장하지만 
그 주객이라는 가치가 서려면 생각이 일단 일어나야 합니다. 
그런데.....임제선사는 한 생각이 일어나기 전에 
아담과 이브가 탄생하기 전에 
지구가 만들어지기 전에 

우주가 설립되기 전에 
이미 주객은 분명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일구라고 하였어요. 
선은 여러분의 사념을 깨고 고정 관념을 깨버리게 해줍니다. 
고정관념은 진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진리는 항상 저변에 있어요. 
그러니까 여러분의 상식으로 알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바로 통해서 알아야 합니다. 
임제스님의 제일구를 다시 한번 정리한다면
'무엇을 쓰거나 말하거나 생각하기 전에 주객과 체용은 이미 분명하다는 것이고 이것이 제일구라' 고 하였어요. 
이것이 이해가 안되는 사람은 만공스님의 제일구를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영신아?
네.
그것이 제일구니라
`네` 라는 말에 일체가 들어있고 또한 일체가 끊어졌으니 여기서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이것을 알았다면 이번에 임제스님의 주객이 이미 완전하다는 것과 통하는지 생각해보세요. 
통하면 제일구를 알은 것입니다. 
제일구는 선불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제일구에서 다 깨달아야 해요. 
제일구가 귀에 들어와야 합니다. 
선에서 표현하는 격외구는 거의 모두가 제일구에 해당합니다. 
상식과 이해를 넘어섰지만 그것이 어떤 중요한 것을 가장 핵심적으로 잘 표현한 것입니다

'공 부 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연기법(緣起法)   (0) 2012.09.12
선시  (0) 2012.08.16
힉스 (발견되지안은 가상의 소립자)  (0) 2011.12.14
佛法/만공  (0) 2010.09.21
참 나를 찿아라 /전강스님  (0) 2010.09.21

 

 

힉스입자 [Higgs boson]과학/기술 | 시사용어사전 

상세내용

입자의 존재를 예언한 물리학자 피터 힉스의 이름을 딴 것으로, 현재까지 물질을 구성하는 기본입자 중에서 유일하게 관측되지 않은 가상의 입자. 입자의 '표준모형'에 의하면 세상은 기본입자 12개와 힘을 전달하는 매개입자 4개, 그리고 힉스입자(Higgs boson)로 구성된 17개의 작은 입자(소립자)로 이뤄져 있다.

표준모형이 만들어진 후 40년 동안 물리학자들에 의해 16가지 입자는 찾아냈지만, 힉스입자만 유일하게 관측되지 않아 가상의 입자로 남아 있다. 또한, 표준모형에서 유일한 스칼라 입자로서 기본입자들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다른 모든 입자들에 질량을 부여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이에 힉스입자를 신이 숨겨 놓은 '신의 입자'라고도 한다. 세계 물리학자들은 2008년 9월 거대강입충돌(LHC) 장치를 완공하여 힉스입자의 존재를 확인함으로써 물리학계에서의 '입자의 표준 모형'을 완성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神의 입자 ‘힉스’ 흔적 발견… 비밀의 門 99.9% 다가갔다
유럽입자물리硏 공개세미나… 137억년전 우주탄생 드디어 베일 벗나

 

뉴스

[과학세상/박인규]神의 입자로 불리는 ‘힉스 입자’
동아일보|
입력 2011.12.14 03:10
|수정 2011.12.14 03:17
폰트크게작게메일인쇄스크랩고객센터
내 블로그로내 카페로[동아일보]

2009년 여름 국내에서도 톰 행크스 주연의 '천사와 악마'라는 영화가 상영됐다. 영화는 스위스 제네바의 유럽핵입자물리연구소와 바티칸시국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갈릴레이 이래 로마 가톨릭교회의 탄압을 받던 한 과학자 집단이 반물질 폭탄을 만들어 바티칸을 위협한다는 내용이다. 주인공 톰 행크스(랭든 교수 역)가 이 과정에서 '신의 입자' 이야기를 듣고 흠칫 놀라며 '천지창조'에 관련된 입자를 만들고 있었느냐는 질문을 던진다.





박인규 서울시립대 물리학과 교수

신의 입자.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힉스 입자'라고 불린다. 이 눈에 보이지 않는 입자 이야기로 지금 전 세계가 떠들썩하다. 힉스 입자를 발견하면 인간은 신이 우주를 창조할 때 썼던 방정식을 알게 된다느니, 그래서 물리학의 끝을 보게 된다느니, 아니면 신의 입자가 애초에 없어서 지금까지의 물리학을 모두 다시 고쳐 써야 한다느니 등의 이야기가 퍼지고 있다.

전 세계 과학계가 왜 천문학적 비용을 들여가면서 수년에 걸쳐 이 힉스 입자를 찾고 있을까. 그리고 이 힉스 입자가 과연 무슨 입자이기에 신의 입자라고 불리는 것일까. 이야기는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00년 전으로 돌아간다. 당시는 멘델레예프의 주기율표가 잘 알려져 있었고, 우리 주변의 모든 물질은 모두 80∼90개의 원자로 다 분류할 수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원자는 모두 깨지지 않는 기본 입자라고 여겨졌다.

이때 역사를 바꾸는 한 실험이 벌어진다. 물리학자 러더퍼드는 영국 캐번디시연구소에서 방사선의 일종인 알파 입자를 얇은 금박에 쏘아 금원자 속에 무엇이 있는지를 알아보는 실험을 진행했다. 그는 알파 입자들이 100% 금원자 속을 뚫고 지나갈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몇몇의 알파 입자는 예상과 전혀 다르게 뒤로 튕겨 나왔다. 원자 속에 양전기를 띤 딱딱한 원자핵이 존재함을 알리는 최초의 발견이었다. 원자핵의 존재가 알려지고, 원자가 마치 태양계와 같이 원자핵과 그 주변을 도는 전자들로 구성돼 있다는 사실에 1910년대 사람들은 그야말로 흥분의 도가니에 빠지게 됐다.

그로부터 채 반세기도 흐르기 전에 히로시마에 핵폭탄이 떨어졌고, 인간들은 핵발전소를 통해 엄청난 양의 에너지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00년 뒤인 현재 비슷한 흥분의 도가니가 신의 입자라는 이름으로 벌어지고 있다.

힉스 입자의 발견이 왜 그토록 중요할까. 현대물리학의 핵심인 '표준모형'이 사실 한 가지 치명적인 문제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론에 등장하는 물질을 구성하는 기본 입자와 상호작용을 기술하는 기본 입자들이 왜 제각기 서로 다른 질량을 갖고 있는가를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에 물리학계가 내놓은 처방전이 바로 힉스장(場)의 존재다. 입자들이 존재하는 공간인 진공에 융털 카펫과 같은 가상의 힉스장이 펼쳐져 있어, 이 위를 움직이는 입자는 카펫 결의 방향과 입자들의 운동방향에 따라 서로 다른 마찰력을 받게 된다는 것. 그래서 입자들이 힉스장에 의해 서로 다른 질량을 갖는 입자로 나타나게 된다는 설명이다. 그리고 힉스장의 양자화된 모습이 바로 힉스 입자라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입자들이 질량을 갖는다는 것은 힉스장이 존재해야만 가능하다는 논리다. 그래서 만약 이 힉스장의 입자적 표현인 힉스 입자가 없다면 현대물리학의 최고 이론이라는 표준모형은 틀렸다는 의미가 된다. 입자들이 왜 질량을 갖는지에 대한 새로운 이론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얘기다. 반대로 힉스 입자가 발견되면 우리가 상상하기 힘든 완전히 새로운 22세기가 만들어질 것을 확신할 수 있다. 우리가 원자핵 발견 이후 원자핵의 성질을 정밀히 연구해 완전히 새로운 세상을 만들었듯이 말이다.

박인규 서울시립대 물리학과 교수

 

인류가 137억년 전 우주탄생의 신비에 99.9%까지 다가섰다. 늦어도 내년 여름에는 결말을 보게 된다.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는 13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공개세미나를 갖고 “거대강입자가속기(LHC)에서 양성자 충돌실험을 반복한 결과 힉스 입자(Higgs boson)로 추정되는 흔적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롤프 디터 호이어 CERN 소장은 “그러나 아직 힉스 입자의 존재 여부를 확실하게 얘기할 수는 없으며, 추가실험을 통해 입증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발표는 LHC에 설치된 4대의 검출기 중 2개인 CMS와 ATLAS를 연구하는 두 팀의 연구성과가 각각 발표된 후 이를 종합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CMS팀은 128Gev(기가전자볼트) 대역에서 힉스 입자가 존재할 확률을 2~3시그마(95~99.7%), ATLAS팀은 126Gev 대역에서 2.3시그마(96%)로 추정했다. 하지만 이 같은 확률은 과학적 발견으로 인정받기에는 미흡하다.

CERN은 목표 확률을 5시그마(99.99994%)로 잡고 있으며, 170만번에 한 번 정도 틀리는 수준이다. 로이터는 “과학적 발견은 수백만 개의 사과가 예외없이 모두 아래로 떨어지는 것을 보고 나서야 중력이 있다고 주장할 수 있는 수준”이라며 “그중 하나라도 땅으로 떨어지지 않거나 보지 못했다면, 과학적 발견이 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나머지 0.3~5% 포인트를 채우기 위한 실험에서 지금까지의 결과를 모두 부정하는 내용이 나올 수도 있다는 의미다.

다만 원리가 다른 CMS와 ATLAS에서 비슷한 수치와 결과가 나왔다는 점에서 힉스 입자의 존재를 입증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CERN은 “내년 여름 무렵에는 존재 여부가 확실하게 밝혀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물리학자들은 ‘힉스 입자의 발견은 최소한 지난 100년간 최대의 과학적 성과가 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힉스 입자는 137억년 전 빅뱅 직후 1000만분의1초 동안만 존재했으며, 힉스 입자 연구는 곧 우주 탄생 직후 ‘찰나’의 순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연구하는 것과 같다. 특히 힉스 입자는 우주 만물을 구성하는 입자들에 각기 다른 질량과 역할을 부여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래서 ‘신의 입자’ ‘창조의 천사’ ‘우주를 만든 벽돌’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힉스 입자가 발견되면 우주 만물의 분류표인 ‘표준모형’이 옳다는 점이 입증된다. 나아가 힉스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면 이론적으로는 물질 창조나 변환에 접근할 수도 있다. ‘신이 우주를 창조했다.’는 설명 대신 우주 창조를 과학으로만 설명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이 때문에 LHC에만 100억 달러가 넘는 천문학적인 돈이 투자됐다. 하지만 힉스 입자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과학자들은 물리학 교과서를 처음부터 다시 써야 한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문화
  • “우주 탄생 비밀 풀 힉스입자 흔적 발견”<세계일보>

     

    •  

      우주 탄생의 비밀을 풀어줄 ‘힉스’ 입자존재 흔적이 발견됐다. 물리학계에서는 ‘신의 입자’로 불리는 힉스가 질량을 부여, 우주를 탄생시킨 핵심적 존재라고 여겨왔다.

      스위스 제네바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 강입자가속기(LHC) 연구진은 13일(현지시간) 공개 세미나에서 힉스 입자의 흔적을 관찰하는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이번 연구를 담당했던 곳은 아틀라스(ATLAS)와 CMS 2개 팀으로, 이들은 각자 다른 실험을 통해 비슷한 결론을 얻었다.

      아틀라스 실험실 운영 책임자인 파비올라 지아노티는 “저에너지 범주인 126GeV(기가전자볼트) 영역에 힉스 입자의 흔적이 집중돼 있었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최종 결정을 내리기에는 아직 이르지만 추가 자료를 확보하면 내년 중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힉스 입자는 우주가 처음 생겼을 때 물질이 어떻게 질량(물질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양)을 갖게 됐는지 설명하는 입자다. 1964년 영국 물리학자 피터 힉스가 제시했다. 현대 물리학의 ‘표준모형’에 따르면 모든 물질은 12개 기본 입자와 힘을 전달하는 매개 입자 4개, 입자에 질량을 부여하는 힉스 입자로 이뤄져 있다. 이중 힉스 입자만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다.

      과학자들은 이번 연구에서 힉스 입자의 발견 가능성이 제시된 것만으로도 우주의 비밀을 푸는 중대한 진전이 이뤄진 것이라고 평가했다. 입자물리학자 롤프 호이어는 “힉스를 향한 창이 점점 좁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진경 기자 ljin@segye.com

    '공 부 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선시  (0) 2012.08.16
    체.상.용 이란?  (0) 2012.01.25
    佛法/만공  (0) 2010.09.21
    참 나를 찿아라 /전강스님  (0) 2010.09.21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 제상비상 즉견여래  (0) 2010.08.09

    佛法(불법)

    불법(佛法)이라고 할 때, 벌써 불법은 아니니라.

    일체의 것이 그대로 불법인지라 불법이라고

    따로 내세울 때에 벌써 잃어버리는 말이니라.

    물질(物質)은 쓰는 것이요, 정신(精神)은 바탕인데,

     물질과 정신의 일단화(一單化)를 불법이라 하나니라.

    불법엔 완전을 이루지 못하면,

    인생의 영원한 전정(前程)을 보증할 길이 없나니라.

    불법은 어느 시대 어떤 인간의 호흡에도 맞는 것이니라.

    불법을 듣고 생명의 중심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인간의 생명을 잃어 버린 사람이니라.

    불(佛)이라는 것은 마음이요, 법(法)이라는 것은 물질인데,
    불법이라는 명상(名相)이 생기기 전에, 부처가 출현하기 전에,
    나는 이미 존재한 것이니라.

    질그릇 같은 나를 버리면 칠보(七寶)의 그릇인 법신(法身)을 얻나니라.

    입이 말을 하는 것이 아니요,

    손이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니, 말하고 일하는 그 정체(正體)를 알아야
    참된 말과 일을 하는 정작 인간(人間)이 되나니라.

    불법은 육체나 영혼의 책임자이다.

    책임자 없이 살아가는 인생이 그 얼마나 불안한가.

    이것을 알면, 곧 불법에 돌아오게 될 것이니라.

    세간법(世間法)과 불법이 둘이 아니요, 부처와 중생이 하나니,
    이 불이법(不二法)을 증득(證得)해야 참 인간이 되나니라.

    불법을 알면 속인(俗人)이라도 중이요, 중이라도 불법을 모르면
    이는 곧 속인이니라.

    여러가지의 자물쇠를 열려면 여러가지의 열쇠가 필요한 것 같이
    백천삼매(百千三昧)의 무량 묘리(無量妙理)를 해득(解得)하려면
    백천만의 지혜의 열쇠를 얻어야 하나니라.

    불법을 부인(否認)하는 것은 자기가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요,

    불법을 배척(排斥)하는 것은 자기가 자기를 배척하는 것이니,
    이는 곧 자기가 부처이기 때문이니라.

    소리소리가 다 법문(法門)이요,

    두두 물물(頭頭物物)이 다 부처님의 진신(眞身)이건만,

    불법 만나기는 백천만겁(百千萬劫)에 어렵다고 하니,

    그 무슨 불가사의(不可思議)한 도리인지 좀 알아 볼 일이니라.

    <滿空書也.만공서야>

    이송장 끌고다니는 이것이 뭐고?

    죽은 뒤에 이 몸뚱이 내버리고
    어디로 갈지 모르는 게 참말로 큰일이다.
    발심해라.
    인간은 늙을수록 천해진다.
    가죽 속에 힘 있을 때 한번 좀 닦아보지 왜 늙기를 기다리는가?
    병들기 전에 늙기 전에 한바탕해라.
    나한테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광음...
    그 옥 같은 광음을 허송하지마라
    금생에 생사해탈 못하면 언제 깨달을 것인가?
    인생답게 살아봐야겠다. 그 무슨 도리냐?
    나를 깨닫는 참선법을 해야 되겠다고 결심해라
    이 뭣고 (화두) 한번 찾아보란말여”
    이 몸뚱이 내버릴 그 시간을 누가 아느냔 말여
    일향간에 있다. 숨 한번 들이 쉬고 내쉬는 가운데 있다.
    이 소소영영한 주인공은 똥을 아무리 묻힐래야 묻지도 않는다.
    이렇게 껌껌해 가지고 오늘 살면 뭣하고 내일 살면 뭣혀.
    내가 나를 깨달아야지.
    우리는 도둑질한 죄수보다 더한 감옥에 갇힌 거여
    죽으러 가는 소가 자욱 자욱 사지인 것과 같다.
    오늘 못하면 내일 하자 이러지 말어.
    광음을 진실로 아껴라.
    오늘 이 목숨을 내버릴런지 내일 죽을런지 알지 못한다.
    어린 손자가 물가에 놀다가 물에 빠질까
    걱정이 돼서 쫓아 들어가 건져내듯이 간절할 절(切)자 뿐이다.
    사람이면 사람다운 진리가 있을 것인데
    본래 생사가 없는 본래면목 근본면목
    내가 나를 반드시 깨달아야 할 것인디
    죄만 퍼짓는 내가 나 깨달을 줄을 모르는 것이
    어리석어 육도윤회에 들어 어리석어
    나를 깨달을 줄 모르는 것을 중생이라고해

    “밤이면 밤마다 부처를 안고 자고
    아침이면 아침마다 부처를 안고 일어난다.
    부처님 가신 곳을 알고자 할진데 이 말과 소리가 이것이니라.“
    내 마음 밖에서 무엇을 구하느냐?
    삼라만상이 내 마음에서 난 것이다.
    두두물물이 다  내 마음에서 지어낸 것이다.
    내가 하늘이고 내가 우주만물을 만들어낸 주인공이여!
    발심을 해가지고 들어오면 어디 가서 남의 시비가 보일 것이냐
    죽을 일을 생각해 보지 어찌 안할 것인가?
    공부에 要한 것이 그 마음을 잘 써라.
    이뭣고를 잘 챙기는 것이다.
    참으로 참다운 신심을 발해라.
    신심을 발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꾸 해태 마구니가 잽히고
    번뇌 마구니가 잽히고 일체 마구니에
    그놈한테 가서 그만 입에 물려가지고서
    밤낮 그만 도로 煩惱妄想 도로 해태심 도로 그런 마음 이렇다.
    한번 신심을 내라
    어찌 안 믿을 수가 있나
    내가 나 찾는 법을 어째 안 믿어?
    밤새도록 자고 있어?
    몇 시간씩 자고 있어?
    잠 안 잔다고 병 안나.
    화두만 없어지면 즐겁다 좋다 망념이 들어올 것이니까.
    숨 내쉴 때에도 알 수 없는 화두요
    숨을 들이쉴 때에도 알 수 없는 화두가 되게 하라.
    넘 안한다고 나도 안할 것인가?

    공부하는데
    의심은 왜 이렇게 안날까 하시겠지만
    그렇게 안되는 법이여 
    그래도 그렇게 안 될수록에 안되는 곳을 보면
    망상이 화두 뿌럭지에 가서 솜 얼키듯이 얽혔어
      전생의 숙습이기 때문에 화두는 겉으로 들어지고
    속에는 망상이 끼었어  그 여러 가지 망상 번뇌가
    뿌럭데기가 없기 때문에 곧 죽어버려
    이뭣고(화두)만 하면 곧 없어져...
    알 수 없는 의심하나 그놈이 본 주인이기 때문에
    천 가지 만 가지 망상이 다 무찔러지는 것이여
    망상 일어나는 것을 두려워 말라.
    싸울수록 더 일어나니 의심하나만 둬라.

    전강스님의 발심 법문중에서

    '공 부 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힉스 (발견되지안은 가상의 소립자)  (0) 2011.12.14
    佛法/만공  (0) 2010.09.21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 제상비상 즉견여래  (0) 2010.08.09
    응무소주이생기심  (0) 2010.08.09
    불교 중요한 용어집  (0) 2010.01.26

     ▶ 5. 참된 이치를 바로 봄

     수보리야, 그대는 어찌 생각하느나?

     나의 외모를 가지고 여래라고 할 수 있겠느냐?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외모를 가지고는 여래라고 할 수 없습니다.

     

     오늘은 무엇이 부처인가에 대한 것이 먼저 나옵니다. 

     부처님은 32상의 좋은 상호를 가지고 태어났어요. 

     귀가 크고, 이마에 흰 털이 나있고, 정수리가 상투처럼 살이 돋아나있고....

     손과 발바닥은 비단처럼 고우며....무늬가 희한하게 바퀴처럼 생겼고....

     몸집이 사자의 상처럼 어깨가 우람하고....

     옆구리가 날엽하고,,,, 

     팔이 무룹아래까지 내려오고 

     

     손가락이 유달리 길고...그래서 손가락 사이에 물갈퀴같은 살이 있고

     발꿈치가 넓고 두겁고

     발등이 도톰하게 올라와있고

     팔뼈가 사슴의 왕처럼 굵고 단단하고

     음부가 말의 성기처럼 속에 감추어져있고

     신체가 크고 넓으며 균형을 이루었고

     털은 푸른 색이고 위로 나서 오른 쪽으로 돌아나고

     두 구멍에서 한 털이 나오고 

     몸이 금색을 띠고

     금색빛이 한 길이나 비치고 

     

     양손, 양발, 양어께, 목털미 살이 도톰하고

     겨드랑이 밑에 살이 도톰하고

     신체가 항상 곧바르고

     어깨가 원만상이고...달처럼 둥근...

     치아가 40개이고 

     치아가 고르게 나있고

     어금니는 한쪽이 4개인데 하얗고

     최상의 미각을 가지고 있고 

     부처님을 볼수 있었던 그시절에 태어난 사람들은 복 받았나 봅니다..()

     혀가 유난히 길어서 얼굴을 덮을 정도이고

     천상의 목소리같고 

     눈동자가 감청색이고

     속눈썹이 큰 소와 같이 곧고 길고

     양미간 사이에 흰 털이 나있는데 5자나 되고 이것이 감겨서 뭉쳐있으므로 은보석처럼 빛난다.

     

     이상이 32상이어요. 휴~~

     

     이 상 중에 한 상을 얻으려면 100가지 좋은 일을 해야합니다. 

     저도 몇 백가지는 좋은 일을 했는지 

     이 중에 한 두개는 같습니당~~^^*

     

     그러니까 불상을 금색으로 도금하는 이유가 있어요.

     몸이 금색이고 빛이 나는데 가장 적합한 물질이 금인 것이고 

     금으로 해야 부처님의 몸을 실제에 가장 가깝게 표현할수있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그런데 부처님은 이런 외모를 가지고 부처라고 하지 말라했어요. 

     몸뚱이가 아무리 잘나도 꼳 썩어서 없어질 것들입니다. 

     이런 형상으로는 부처라고 하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물론 부처님의 위대한 점을 깊이 부각시키기 위하여 각종 희한한 불상을 조각하고

     큰 부처님을 조각하는 것도 좋지만 이런 불상만 짓고 

     마음 속에 있는 불상은 찾지 않으면 아무 소용없습니다. 

     오늘날 중동전쟁에 불교의 책임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마호멧이라는 사람이 나오기전 대략 서기 5백년경까지는 

     많은 중동 지역이 불교를 믿는 나라였어요. 

     스님들도 많았고 불자도 많아 불교가 국교인 곳도 많이 있었어요. 

     그런데 불상과 불경과 스님은 있었으나 안타깝게도 소승불교를 하는 나라라 

     자기가 바로 부처인 줄은 몰랐습니다. 

     부처님은 당신을 존중하고 예배하기를 원하였던 것이 아니고 

     각자 자기 속에 있는 부처님을 발견하여 

     부처의 행을 하기를 바라셨으나 초기 불교는 부처가 되기어렵다고 생각하여 

     감히 누가 선듯 나서서....내가 깨달은 자이고 부처님과 같은 부처이니라 하고 나서는

     사람 이 없는  불교였습니다. 그러니까 오늘날처럼 기복신앙은 강하고 수행 위주여서 

     깨달은 자가 많이 없었던 것입니다. 깨달아야 진정 자기를 발견할 것인데 

     깨닫지를 못하니 점점 마호멧을 전파하는 이슬람주의에 뭍혀지고

     스님들은 처형 당하고, 불경을 없어지고, 불상은 파괴되었어요. 

     알마전에도 파괴했죠? 

     어디드라? 이라크죠?

     하옇튼 거기서 큰 불상 폭파시켜

     

     신문에 크게 났어요. 

     네, 맞아요. 이라크일거야요. 후세인정부였을때

     거의 산 하나가 다 불상인데

     그것을 폭파시켰으니 얼마나 아까운 세계문화유산이 없어진 겁니까? 

     후세인이 그런 정치를 했으니까, 불상을 파괴했으니까 오늘날 수난을 당하는 거야요

     그러니까 이렇게 큰 불상을 세우면 뭘합니까? 이것은 없어져요. 

     그리고 이런 것이 아무리 많아도 인재가 없으면 소용없어요. 

     그러니까 그런 불상을 세울 정도의 열성이 있으면 

     도인을 만들 열정도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많은 깨달은 도인들이 나와서 이리가도 부처, 저리가도 부처,

     돌아가도 부처 등으로 넘쳐나야 

     불교가 오래갈 것아닙니까? 그런데 그런 부처를 발견하게 하는 데는 무관심하고 

     외적인 불상만 크게 하면 무슨 소용이겠어요. 

     인재가 없으니 타종교는 크게 번창하는데 불교는 항상 뒤에 쳐져있습니다. 

     이것 다 부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아서 그래요. 

     다른 사람보고 부처님의 말씀 어겼다고 난리지길 것이 아니라

     불교 자체가 자기가 부처인줄 모르면 다 부처님의 말씀을 어기는 사람이고 

     이렇게 되면 불교가 빨리 망합니다. 

     부처님의 제자 수보리는 정확하게 부처님의 뜻을 안 사람입니다. 

     여래=부처

     여래의 외모는 부처가 아니라고 단언합니다. 

     왜냐하면 여래께서 말씀하신 

     신상(身相)이란 곧 외모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분명히 말합니다. 

     

    이말은 뭐냐하면 

    상은 곧 상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아무리 부처님이 32상의 근사한 모습이 있어도 그것은 물거품같은 것이고 

     지금 이대로 모습이 눈에 보여도 그것은 그림자같은 것이라 상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사람은 지수화풍 4가지 원소로 된 것인데 각자 그 원소가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면 

     자기라고 할 것이 없잖아요.

     그러니까 상은 상이 아니라고 한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다시 수보리에게 말씀하시되

     

     "무릇 형상을 지닌 것은 (凡所有相) 

     모두 다 허망한 것이니 (皆是虛妄)

     만약 모든 상이 상 아님(非相)으로 본다면 (若見諸相非相) 

     곧 여래를 보리라 (卽見如來)" 

     유명한 금강경의 4구게입니다. 

     4구게란 4가지 글귀로 된 게송이라는 말인데 

     이 게송이 참 유명하고 좋은 게송입니다. 

     모두 적어서 수첩에 넣어가지고 다니세요. 

     가지고 다니면 일체 마장이 물러가고 큰 복을 받고 소원을 이룬다고 했습니다. 

     저 뒤에 나와요. 

     

     그러니까 부처를 보려면 상에서 보면 절대로 못본다는 말입니다. 

     모든 상이 비상(非相)으로 보여지면 곧 부처를 본다는 말이어요.

     007 영화에 보면 투시안경이 나옵니다. 

     그것을 쓰면 옷 속의 것이 보여요. 

     누가 권총을 찻는지 속 몸이 어떻게 생겼는지 

     다 나옵니다. 그러니까 옷으로 치장해도 그 속의 것은 못보는데 

     

     이 안경을 쓰면 그 속의 것이 다 보여요.

     

     그처럼 여러분이 진리라는 안경으로 세상을 보고 

     모든 상이 비상으로 보여지게 된다면 

     곧 부처를 보게 되리라는 말씀이어요. 깊은 뜻입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상에 얽매여있습니까?

     

     학력, 이쁜 것, 못난 것, 부자, 가난,,,,, 

     스님, 국회의원, 대통령, 종정, 구청장.....

     45평, 30평, 15평, .....이런 상에 억매여있기 때문에 

     진실를 못봅니다. 

     그러니까 아무리 좋은 것을 보아도 무심이어야 하고....

     아무리 나를 욕해도 무심이고, 칭찬해도 무심,,,,

     무엇이 되어도 담담,,,,,대통령에 당선되어도.....담담

     

     리무진을 끌고 와도 담담....

     그렇게 되어야 바로 부처를 본다는 말입니다. 

     만약 마음이 상에 얽매이는 것이 있으면 그것이 가로 막아 절대 진실을 보지 못해요. 

     중국에 조주스님은 120세를 살았어요. 

     사람들은 모두 살아있는 부처라고 말했습니다. 

     오래 살아서 그런 것이 아니고 마음이 항상 똑같아요. 

     상에 얼매이지 않은 것이죠. 

     한번은 나라의 대왕이 왔어요. 

     그런데 시자가 대왕이 옵니다 하고 알렸는 데도 문밖까지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설법이 끝난 뒤에도 다리가 아파 나아가지 못한다 하고 

     문밖까지 전송하지 않았습니다. 

     이 소문을 들은 장군이 벌컥 화를 내고 다음날 조주스님이 있는 관음암에 갔습니다. 

     그런데 문밖까지 와서 맞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제는 왕을 앉아서 맞더니

     오늘은 장군을 어찌 문 밖까지 와서 맞느냐고 물었어요.

     그랬더니 왕의 심량과 장군의 심량이 다르다고 한마디 던졌습니다. 

     그랬더니 말에서 내려 인사하고 돌아갔습니다. 

     왕은 일국을 다스리는 주인이기 때문에 무엇이든지 받아들일 수있는 그릇이 있으나 

     장군은 일개 군사를 거느리고 있기 때문에 그릇이 작다는 것입니다. 

     최소한 선사라면 이정도는 되어야 합니다.

     뭐 국회의원이 한 사람이 와도 부산을 떨면 안되요. 

     누가 오던지 그 상을 보지 말고 그 속을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누가 와도 똑 같아야되요. 

     부처님으로 생각하려면 전부 부처님으로 생각하고 

     중생으로 보려면 전부 중생으로 보아야지 

     그 상에 걸려있으면 세상도 제대로 못살고 부처도 발견하지 못합니다. 

     높은 직위에 있는 사람이라고 다 훌륭하지 않아요. 

     그 상을 보지 말고 그 속을 보라..스님..참 좋은 말씀입니다..()

     시장에서 장사하는 사람도 훌륭한 사람 많습니다. 

     현대는 사람 그 자체가 중요하지 그 직위나 학력이나 능력은 중요하지 않아요. 

     이런 사상이 그대로 불교 사상에 있습니다. 

     그래서 불교은 항상 현대적이고 미래적이어요. 

     오늘날 불교가 자꾸 현대인에게 인기가 있는 이유는 불교가 시대가 많이 지나도 

     항상 미래적이고 현실에 적합한 종교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불교는 상에 얽매이지 말라해요. 만약 상에 얼매이면 진실를 못보고 

     그 상에 끌려가면 부처를 못본다고 했어요. 

     그러니까 여기있는 모든 불자님들은 앞으로 절대 상에 매이지 말고 

     상을 보고 부처를 보지 말고 자기 마음을 보고 부처를 보아야 합니다. 

     

    상이 없는 것, 무엇입니까? 

     

     상이 없으면서도 무엇이든지 다하고 다 일어나는 신비한 존재가 바로 마음입니다. 

     그렇습니다. 무심이어요. 

     이 마음이 부처입니다. 법당에 불상은 그것을 가르쳐준 분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지....

     그 앞에서 수행하고 법문듣는 장소이지 그 상이 부처는 아닙니다. 

     설사 2천6백년전 부처님이 그대로 여기에 나타났다 하여도 

     깨박 죽어서 부처라고 난리치고 예배하려고 하면 안됩니다. 

     그 살아있는 분도 껍데기는 부처가 아니어요. 그 상 속의 마음이 부처입니다.

     그 부처는 우리 모두에게 있습니다. 

     그런 자심불을 보는 눈이 열려야 부처를 보지 상에 얽매이는 작은 눈으로는 부처를 보지 못합니다. 

     2천 6백년전의 부처를 보려고 하거든 자기를 보세요. 자기 마음을.... 

     그리고 누가 부처를 보았냐고 묻거든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확실히 보았다고 말하세요. 

     그럼 무엇이 부처냐고 묻거든 얼른 합장하고 

     "뿌리없는 뿌리에 걸려 넘어지지 말고 잘 가세요."

     라고 하세요.

     뿌리 없는 뿌리가 뭡니까? 

     

     길에 가다가 돌뿌리에 걸려 넘어지게 되면 돌아보면 다 뿌리가 깊게 박혀있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걸려넘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음은 뿌리가 없어요. 

     형체가 없는데 무슨 뿌리가 있겠어요. 

     

     그런데 사람들은 스스로 뿌리 없는 뿌리를 만들어 놓고 거기에 넘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한마디 근사하게 하면되요. 부처님처럼....

     무엇이 부처입니까 할때 

     마음이요...하고 대답하면 안되요. 왜냐? 그렇게 말하면 

     마음이라는 명자(상)를 세운 것이라 틀려져요. 

     그냥 부처가 되어서 한마디 좋은 말을 일러주면 됩니다. 

     다른 좋은 말을 해도 되요. 

     이렇게 자기가 부처임을 증명하고 설하고 깨닫는 불교가 된다면 

     불교의 혁명이 일어나요. 

     

      마르틴루터는 기독교 구교가 지나치게 형식에 많이 매여있음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혁명을 일으켰어요. 그 주장은 성서주의였습니다. 

     어찌 천당에 가는데 주교의 안수를 받아야 되고, 표를 받고 축복을 받아야 됩니까?

     이것은 지나치게 의식주의이고 형식주의여요. 

     누구든지 성서를 읽을 수 있고 실천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릅으로 모여서 대표가 연설하고 회개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도하면 천당에 간다고 말했어요. 

     이것이 오늘날 신교, 개신교입니다.

     목사는 장가를 가고 주님의 말씀을 전도하면 되었지 굳이 하나님께 수절을 보일 필요가 없다고 했어요. 

     하나님은 인간을 만들때 누구나 공평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인간이 장가가는 것은 권리였고 천리였어요. 

     그런데 이 새로운 혁신적 연설에 뜻밖에 수많은 군중이 지지를 한 것입니다. 

     그래서 개신교가 나와서 오늘날 세계사를 바꿔놓았어요. 

     불교도 이젠 지나치게 의식주의, 형식주의에서 벗어나 누구나 참 자기를 발견할 수 있고 

     당당히 진정한 부처를 표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무불선원 강의중에서

     

    상이 상이 아니다.

    어떠한 모양을 가추거나 언어로서 애기하는 상은 부처가 말하는 진실한 무상이 아니기 때문에 .......

     

    '공 부 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佛法/만공  (0) 2010.09.21
    참 나를 찿아라 /전강스님  (0) 2010.09.21
    응무소주이생기심  (0) 2010.08.09
    불교 중요한 용어집  (0) 2010.01.26
    임제어록강의-무비  (0) 2009.03.02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已生起心)

    응당히 색에 머물러서 마음을 내지 말며 

    응당히 성 향 미 촉 법에 머물러 마음을 내지 말아야 하느니라.



    보살이 마음을 써야 할 바를 계속 설하고 계십니다. 

    보살은 이 국토를 장엄한다 하여도  장엄한다는 생각이 없어야 한다 하였고 

    한다는 생각이 없는 것이 바로 청정이라고 하였습니다. 

    무슨 좋은 일을 하고도 했다는 생각이 없는 마음 

    현재 하고 있어도 하고 있다는 생각이 없는 마음

    이것이 청정이라고 했어요. 

    만약 조금이라도 좋은 일을 했다는 생각이나 

    그런 말을 한다면 그것이 바로 더러움이라고 하였습니다. 

    무엇을 해도 고요한 마음을 유지하고 있으면 그것이 원래 깨끗한 마음을 지키는 것이나 

    한 생각이라도 일어나면 일어난 그것이 바로 더러움인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수많은 말을 하고 살아가지요. 

    그런데 평상시 말은 다 무심에서 나온 말이라 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간다, 온다, 밥 먹어라, 학교에 가라, 잘 다녀오세요,,,,,등등 

    일상사 필요한 말은 그 자체가 무심입니다. 


    그러나 높다, 낮다, 옳다, 그르다, 더럽다 깨끗하다, 부자다, 가난하다 등등 

    은 다 더러운 말입니다. 고요한 마음에서 파문을 일으킨 말입니다. 


    저기 높은 사람이 오고 있다......라고 누가 말한다면 그 사람은 더러운 냄새를 풍기고 있는 것입니다. 

    야! 저기 깨끗한 도인이 지나가고 있다...... 라고 말한다 하여도 그 사람 역시 더러운 냄새를 풍기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야! 이 더러운 놈아......하고 소리를 친다고 하여도 역시 말하는 자 역시 더러운 사람   입니다. 

     왜냐하면 원래 더럽고 깨끗함은 없는데......스스로 한생각 더럽다는 생각을 내었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낸 사람이 오히려 청정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모든 물질에 집착하여 마음을 내면 안됩니다. 

     좋은 집에 살고 있다, 좋은 차를 끌고 다닌다, 좋은 옷을 입었다. 

     이렇게 물질에 집착하면 아직 존재에 집착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물질은 허망한 것입니다. 아침 이슬과 같아요. 

     영원한 것은 아무 것도 없고 언젠가 허망한 공으로 돌아갑니다. 

     그래서 반야심경에 '색은 곧 공이니라' 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시간이 지나서 공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현재 존재하는 것 자체가 곧 공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불교의 수행중에 '관법' 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관(觀)이란 마음으로 본다는 말인데 

     어떤 것을 외적인 것을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고 그 내부를 보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사람을 보되 대부분 사람들은 그 외적인 것을 봅니다. 

     그래서 아, 참 이쁘다! 하고 스스로 냄새를 풍깁니다. 

     그러나 진실은 정말 이쁠까요?

     수행자는 그 사람 속을 들여다 봅니다. 

     그것은 낭중에 결론이고.....우선은 피부 속을 봐요. 마음으로 봅니다. 

     그러면 시뻘건 피가 흐르고 있는 살덩이만 보일 것입니다. 

     그 살을 뚫고 들여다 보면 창자 속이 나오는데 음식물이 쉬어서 냄새가 지독하게 나고 

     음식물은 녹아서 마치 오물통을 들여다 보는 것처럼 더럽고 축축한 것으로 꽉 차 있어요. 

     뿐만 아니라, 비장(취장)을 들여다 보면 독한 액체가 흐르고 있고.....

     대장을 들여다 보면 찌꺼기 들이 미쳐 나가지 못하여

     냄새나는 오물이 되어 막혀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식으로 머리속이나 발, 손 들을 들여다 보고..... 

     나중에는 그 뼈를 들여다 보아야 합니다. 

     사람이 살이 없어지고 뼈만 남아서 앙상한 것이 이리 저리 왔다 갔다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관법이라고 합니다. 

     마음으로 내부를 보는 방법입니다. 

     그렇게 자꾸 보다보면 나중에 사람을 보아도 외부만 보지 않고 내부를 보게 되어요. 

     그러니 허망한 것이 인간이고 더러운 오물로 꽉 차있는 인간이요, 

     뼈만 앙상한 인간으로 보이게 되요. 


     뼈조차도 부서지고 나면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는 공을 보는 것입니다. 

     이렇게 매일 사람의 속을 들여다보다가 나중에는 공으로 돌리는 수행을 백일간 하면

     참 좋습니다. 이것이 관법입니다. 

     나중에는 사람의 몸뚱이에 현혹되지 않아요. 

     지나치게 예쁜 것 좋아하는 사람은 이 관법을 공부해야 합니다. 

     아직 미혼들은 특히 해두어야 해요. 그래서 얼굴 보지 않고

     마음을 보고 결혼하도록 해야 합니다. 

     허망한 몸뚱이, 냄새나는 몸뚱이인데 거기다가 겉만 요란하게 치장하면 무얼합니까? 

     그것은 마치 얼은 똥으로 깍은 인형에다 좋은 옷을 입혀놓은 것과 같아요. 

     똥깍 인형에다 옷을 입혀놓으면 의미가 있어요?

     똥깍 인형에다 아무리 좋은 옷을 입혀놓는다고 냄새가 안나겠어요?

     마찬가지로 사람이 분별심을 제거하지 못하고 있으면서

     아무리 좋은 옷을 입혀 놓아 보아야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입에서 냄새만 날뿐입니다. 


     옛날 큰 스님들은 사람을 제분기(製糞機)로 보았어요. 

     즉 똥만드는 기계라는 말입니다. 

     입으로 음식을 넣으면 하루종일 몸이 하는 일은 똥만드는 것 외에는 없습니다. 

     누구나 다 똥깍인형이요,

     제분기인데 어찌 이 몸뚱이가 위대하고 좋은 것이라고 집착하겠어요. 

     이 몸은 적당히 춥지 않게 입으면 되고 남에게 실례되지 않으면 되지

     몸에다 크게 치장할 가치는 없습니다. 

     이런 식으로 모든 물질적인 것에 집착을 떠나야 보살입니다. 

     양나라 무제가 불교의 귀의하여 수많은 절과 법당과 불상을 조성했습니다. 

     기록에 수백건에 달한다고 하였는데 중국 역사상 절과 불상 짓는데 그렇게 열성적으로

     헌신한 왕이 없었어요. 

     나중에는 절에서 허드렛일을 하고 왕궁에 돌아가지 않아요. 

     신하들이 자꾸 절에 찾아와서....결재를 맞고....왕궁으로 돌아가자고 하여도 안갑니다. 

     나중에 하도 간청하면 나를 돈을 주고 사가라고 하여 신하들이 품삵을 주지스님이게

     주고 왕을 모셔갔어요.

     

     그런 왕이 하루는 달마라는 고승이 있다는 말을 듣고 찾아가서 물었습니다. 

     "제가 이와같이 수많은 불사를 하였으니 그 공덕이 얼마나 됩니까?" 


     달마스님이 왈   "무無!" 라고 외쳤어요.

     

     그러자 왕이 얼굴 색을 바꾸며, 아니 경에는 수없는 복이 된다고 하였는데

     어째서 무냐고 반문하자......


     더이상 아무말도 않고 산 속으로 떠나가버렸습니다. 

     아직 중국은 불법이 제대로 펴지지 않았구나....생각하고


     9년을 굴 속에서 참선하면서 지냈는데 하루는 혜가라는 청년이 와서 불법을 묻기에

    "이 법은 몸을 아끼지 않는 사람을 위하여만 전해줄 수있다. 네가 증표를 바쳐라" 하자 

     두 말 않고 팔을 끊어 바쳤습니다. 

     이것을 보고 제자로 받아주어 나중에 법을 전했으니 

     중국은 이 선불교를 얻기 위하여 자기 팔을 끊어바쳐서 산 것입니다. 

     그렇게 얻은 것이기 때문에 고귀하고 아름답고....

     깊어서 남에게 함부로 전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일을 많이 해도 했다는 한 생각, 이것이 바로 물질에 집착한 생각입니다. 

     아무리 했어도 한 것이 없는 줄 알아야 깨끗하고 큰 공덕이 되는 것입니다. 

     물질이나 소리나 냄새나 맛이나 촉감이나 각종 지식에도 마음이 머무르면 병이 됩니다. 

     이런 것에 머무르면 중생이라 하고 세상이 시끄러워집니다. 

     너 했니,,,안했니,,,하고 싸우고,,,,잘했다 못했다 싸우고,,,,,,

     모두 허망한 것에 사로잡혀 헤매는 것일 뿐입니다. 

     응당 머문바 없이 그 마음을 낼지니라. 應無所住 而生其心

     금강경의 백미라고 하면 바로 이 대목입니다. 

     여기가 가장 아름답다고 모두 한결같이 찬탄을 아끼지 않고 노래를 불렀어요. 

     머문 바 없이 그 마음을 내라. 

     색성향미촉법에 머물지 말고 마음을 써라.

     색 소리 냄새 맛 촉감 법에 집착하지 말고 마음을 내라. 

     거친 옷을 (색:물질)을 입어도 입었다 생각하지 말고 마음을 낼 것이며

     아름다운 노래(소리)를 부른다 하여도 자랑하지 말고 마음을 낼 것이며

     아름다운 향기가 나더라도 난다고 생각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마음을 낼 것이며 

     아름다운 맛을 내는 요리를 만든다 하여도 자랑하지 말고 그냥 평범하게 마음을 낼 것이며 

     아름다운 천을 짜는 직물박사라고 하여도 박사라는 생각을 내지 말고 마음을 쓸 것이며

     수많은 지식(法)을 가지고 있다 하여도 안다는 생각이 조금도 없이 그 마음을 낼지니라. 

     이것이 바로 '응무소주이생기심'이라는 유명한 금강경 구절입니다. 

     금강경은 기본적으로 샛소리냄새맛촉감법을 버리라고 하지 않고 

     거기에 머물지 말라고 하였어요. 

     집착하지 마라라는 말이지요. 

     이것이 불교의 핵심입니다. 6진이 이 세상에 없을 수는 없어요. 

     그러므로 내가 없엘수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멀리 산으로 피하거나 접촉을 꺼려하는 것이 아니고 

     항상 그 속에 살되 '머물지 말라' 라는 가르침입니다. 

     이것이 불교의 묘미입니다. 

     도교는 도피하여 산으로 들어가는 종교이지만 

     불교는 더 깊이 마을 속으로 들어가되 물들지 말라는 멧세지가 담겨있어요. 

     어떻게 물들지 않는가? 

     초월하라. 

     어떻게 초월하는가?

     6진 속에 있되 마음이 머물지 말라. 


     이것이 붓다의 가르침입니다. 

     이 말에 육조혜능스님도 깨달았고, 많은 선사들도 여기서 다 깨달았어요. 

     6진을 도피하는 것이 아니고 6진 속에 있되 마음이 머물지 마라. 

     사심주(思心住)

     담담히 보라

     이것이 불교의 도의 극치점인 것입니다. 

     이것이 부처님께서 말하고자 했던 핵심입니다. 

     여기서 깊이 깨달으세요. 

     그 어디에고 머물지 않으면 공부 끝입니다. 

     그대가 바로 붓다입니다. 

     몸이 이 세상에 있되 마음은 머물지 않는다면 그대가 바로 청정한 붓다요,

     깨달은 자입니다. 

     그 어떤 사상이나, 이념이나, 개념에도 마음이 머물지 않는다면

     당신은 평안한 성인이 된 것입니다. 

     여기서 여러분이 큰 것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불교는 아무것도 주장하지 않고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종교입니다. 

     그저 주어지는 대로 일하고, 쉬고, 문제가 있으면 그것을 해결하고,

     자기의 능력대로 과학자는 미래를 연구하고, 정치인은 정치를 하고, 선생님은 가르치되..


     자연스럽게 살아가되.....항상 무심속에서 할 것..... 

     마치 꿀벌처럼,,,,,,,여왕벌처럼,,,,,,,,군사벌처럼,,,,,,,, 

     자기의 직분에 충실할 뿐,,,,,,,,,생각은 항상 비울 것,,,,,,,,

     비우다 : 별난 생각을 일으키지 않는 것

     

       ※無佛禪院  금강경 강의중에서....

     

     

    '공 부 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참 나를 찿아라 /전강스님  (0) 2010.09.21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 제상비상 즉견여래  (0) 2010.08.09
    불교 중요한 용어집  (0) 2010.01.26
    임제어록강의-무비  (0) 2009.03.02
    반야심경  (0) 2009.02.06

     

     

    *** 불교교리 참고자료 ***


    ■사성제(四聖諦): 네가지 성스러운 진리.

    1) 고(苦): 인간의 현실적 존재는 괴로움

    2) 집(集): 괴로움의 원인인 집착

    3) 멸(滅): 번뇌와 고통이 모두 없어진 해탈 , 열반의 세계

    4) 도(道): 괴로움을  없애는 방법


    육바라밀(六波羅密)

    생사고해를 넘어 피안(彼岸)에 이르기 위한 보살의 여섯가지 수행법.

    1) 보시(布施)- 남을 위해 조건없이 베품.

    2) 지계(持戒)- 부처님 계율을 잘 지키고 바르고 청정하게 생활 하는것.

    3) 인욕(忍辱)- 치욕등 참기 어려운것을 참음.

    4) 정진(精進)-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히 노력함

    5) 선정(禪定)- 어지러운 번뇌 덩어리를 잠재우고 마음을 고요히 가라앉히는것

    6) 지혜(智慧)- 반야라고도 한다. 법의 실다운 이치에 계합하는 최상의 지혜



    팔정도(八正道)- 滅에 이르기 위한 8가지의 바른 길

    1) 정견(正見)- 편견없이 바로 보는것

    2) 정사유(正思惟) - 바른 생각

    3) 정어(正語)- 바른 말

    4) 정업(正業)-바른 행동

    5) 정명(正命)-바른 생활

    6) 정정진(正精進)-바른 노력

    7) 정념(正念)- 바른 마음의 수행

    8) 정정(正定)-바른 집중



    십이연기(十二緣起)

    ▶①무명(無明) ▶②행(行)  ▶③식(識) ▶④명색(命色)

    ▶⑤육입(六入) ▶⑥촉(觸)  ▶⑦수(受) ▶⑧8)애(愛)

    ▶⑨취(取)     ▶⑩유(有)  ▶⑪생(生) ▶⑫노사(老死).   

     


    삼법인(三法印): 세가지 진실한 가르침

    1) 제행무상(諦行無常)- 모든것은 항상함이 없고 변화한다.

    2) 제법무아(諦法無我)- 모든 변화하는것에는<나>라는 고정된 실체가 없다.

    3) 열반적정(涅槃寂靜)- 모든 괴로움의 불을 끈 상태



    오온(五蘊)

     인연에 의해 생긴 5가지 물질세계(색)와 정신세계(수.상.행.식)

                   

    1)색(色): 우리몸을 구성화는 지,수,화,풍 인 사대를 포함한 물질 세계

    2)수(受): 외부의 자극에 대하여 감각등을 받아들이는 작용

    3)상(想 : 대상을 인식하는 표상작용

    4)행(行): 스스로의 의지에 의하여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작용

    5)식(識): 판단이나 추리에 의한 식별작용.



    십이처(十二處) 

    육근(六根) + 육경(六境)

     

    육근(六根)

    안(眼), 이(耳), 비(鼻), 설(舌),신(身),의(意)

     

    육경(六境)

     색(色), 성(聲), 향(香), 미(味), 촉(觸),법(法)


    십팔계(十八界)

      육근(六根)+ 육경(六境)+ 육식(六識)

     

    육식(六識)

      안식(眼識), 이식(耳識), 비식(鼻識), 설식(舌識), 신식(身識), 의식(意識)


     

    '공 부 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 제상비상 즉견여래  (0) 2010.08.09
    응무소주이생기심  (0) 2010.08.09
    임제어록강의-무비  (0) 2009.03.02
    반야심경  (0) 2009.02.06
    망상을 버리라   (0) 2009.01.07

    33 無比 스님 임제록 강의(경전연구회) 녹취록 32---행록(行錄) 끝 맺음 [24] 一輪月 275 07.11.21
    32 無比 스님 임제록 강의(경전연구회) 녹취록 31---행록(行錄) [12] 一輪月 158 07.11.20
    31 無比 스님 임제록 강의(경전연구회) 녹취록 30---행록(行錄) [16] 一輪月 144 07.11.19
    30 無比 스님 임제록 강의(경전연구회) 녹취록 29---행록(行錄) [9] 一輪月 135 07.11.17
    29 無比 스님 임제록 강의(경전연구회) 녹취록 28---감변(勘辨) [9] 一輪月 141 07.11.14
    28 無比 스님 임제록 강의(경전연구회) 녹취록 27---시중(示衆) - 감변(勘辨) [8] 一輪月 158 07.11.09
    27 無比 스님 임제록 강의(경전연구회) 녹취록 26---시중(示衆) [9] 一輪月 154 07.11.03
    26 無比 스님 임제록 강의(경전연구회) 녹취록 25---시중(示衆) [14] 一輪月 168 07.10.31
    25 無比 스님 임제록 강의(경전연구회) 녹취록 24---시중(示衆) [12] 一輪月 165 07.10.27
    24 無比 스님 임제록 강의(경전연구회) 녹취록 23---시중(示衆) [11] 一輪月 176 07.10.23
    23 無比 스님 임제록 강의(경전연구회) 녹취록 22---시중(示衆) [12] 一輪月 191 07.10.17
    22 無比 스님 임제록 강의(경전연구회) 녹취록 21---시중(示衆) [15] 一輪月 191 07.10.02
    21 無比 스님 임제록 강의(경전연구회) 녹취록 20---시중(示衆) [12] 一輪月 191 07.09.28
    20 無比 스님 임제록 강의(경전연구회) 녹취록 19---시중(示衆) [16] 一輪月 178 07.09.21
    19 無比 스님 임제록 강의(경전연구회) 녹취록 18---시중(示衆) [12] 一輪月 172 07.09.17
    18 無比 스님 임제록 강의(경전연구회) 녹취록 17---시중(示衆) [13] 一輪月 196 07.09.13
    17 無比 스님 임제록 강의(경전연구회) 녹취록 16---시중(示衆) [14] 一輪月 194 07.09.08
    16 無比 스님 임제록 강의(경전연구회) 녹취록 15---시중(示衆) [13] 一輪月 194 07.09.01
    15 無比 스님 임제록 강의(경전연구회) 녹취록 14---시중(示衆) [15] 一輪月 214 07.08.29
    14 無比 스님 임제록 강의(경전연구회) 녹취록 13---시중(示衆) [15] 一輪月 259 07.08.24

    13 無比 스님 임제록 강의(경전연구회) 녹취록 12---시중(示衆) [14] 一輪月 216 07.08.21
    12 無比 스님 임제록 강의(경전연구회) 녹취록 11---시중(示衆) [13] 一輪月 220 07.08.17
    11 無比 스님 임제록 강의(경전연구회) 녹취록 10---시중(示衆) [19] 一輪月 241 07.08.13
    10 無比 스님 임제록 강의(경전연구회) 녹취록 9---시중(示衆) [20] 一輪月 241 07.08.09
    9 無比 스님 임제록 강의(경전연구회) 녹취록 8---시중(示衆) [17] 一輪月 284 07.08.05
    8 無比 스님 임제록 강의(경전연구회) 녹취록 7---상당(上堂) [19] 一輪月 260 07.07.31
    7 無比 스님 임제록 강의(경전연구회) 녹취록 6---상당(上堂) [20] 一輪月 282 07.07.25
    6 無比 스님 임제록 강의(경전연구회) 녹취록 5---상당(上堂) [17] 一輪月 290 07.07.20
    5 無比 스님 임제록 강의(경전연구회) 녹취록 4---상당(上堂) [20] 一輪月 311 07.07.17
    4 無比 스님 임제록 강의(경전연구회) 녹취록 3---서문(序文) [19] 一輪月 351 07.07.13
    2 無比 스님 임제록 강의(경전연구회) 녹취록 2---행록(行錄) [22] 一輪月 439 07.07.09
    1 無比 스님 임제록 강의(경전연구회) 녹취록 1---전등계보(傳燈系譜:法脈) [25]

    '공 부 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응무소주이생기심  (0) 2010.08.09
    불교 중요한 용어집  (0) 2010.01.26
    반야심경  (0) 2009.02.06
    망상을 버리라   (0) 2009.01.07
    마음은 결코 그대의 것이 아니다  (0) 2009.01.07

     

     

     

     

     

    반야심경(般若心經)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摩訶般若波羅蜜多心經


    큰 지혜의 언덕에 도달하는 핵심이 되는 가르침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

    觀自在菩薩 行深般若波羅蜜多時 照見五蘊皆空 度一切苦厄


    관자재보살이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때 오온이 모두

    공한 것임을 비추어 보시고 온갖 괴로움과 재앙을 건너셨느니라.


    사리자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 수상행식

    舍利子 色不異空 空不異色 色卽是空 空卽是色 受想行識


    사리자여, 물질이 공과 다르지 않고 공이 물질과 다르지 않아

    물질이 곧 공이요, 공이 곧 물질이니, 감각, 표상, 의지, 인식도


    역부여시 사리자 시제법공상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

    亦復如是 舍利子 是諸法空相 不生不滅 不垢不淨 不增不減


    또한 그러하니라. 사리자여, 이 모든 법의 공한 모양은

    생기는 것도 아니고 없어지는 것도 아니며, 더러운 것도 아니고

    깨끗한 것도 아니며, 늘어나는 것도 아니고 줄어드는 것도 아니니라.


    시고 공중무색 무수상행식 무안이비설신의 무색성향미촉법

    是故 空中無色 無受想行識 無眼耳鼻舌身意 無色聲香味觸法


    그러므로, 공 가운데는 물질도 없고 감각, 표상, 의지,

    인식도 없으며, 눈, 귀. 코, 혀, 몸, 뜻도 없고 모양, 소리,

    냄새, 맛, 감촉, 의식의 대상도 없으며,


    무안계 내지 무의식계 무무명 역무무명진 내지 무노사

    無眼界 乃至 無意識界 無無明 亦無無明盡 乃至 無老死


    눈의 세계도 없고 나아가 의식의 세계도 없으며,어리석음도 없고

    어리석음이 다함도 없으며, 늙고 죽음도 없고


    역무노사진 무고집멸도 무지역무득 이무소득고

    亦無老死盡 無苦集滅道 無智亦無得 以無所得故


    늙고 죽음이 다함도 없으며, 괴로움, 괴로움의 원인,

    괴로움의 없어짐, 괴로움을 없애는 길도 없으며, 지혜도 없고

    지혜를 얻음도 없느니라. 얻는 바가 없으므로


    보리살타 의반야바라밀다 고심무가애 무가애고 무유공포

    菩提薩陀 依般若波羅蜜多故 心無圭碍 無圭碍故 無有恐怖


    보살은 반야바라밀다에 의지하는 까닭에 마음에 걸림이 없으며,

    걸림이 없는 까닭에 두려움이 없으며,


    원리전도몽상 구경열반 삼세제불 의반야바라밀다고

    遠離顚倒夢想 究竟涅槃 三世諸佛 依般若波羅蜜多故


    뒤바뀐 몽상을 멀리 떠나 마침내 열반을 얻느니라.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부처님께서도 반야바라밀다에 의지하여


    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고지반야바라밀다 시대신주

    得阿누多羅三막三菩提 故知般若波羅蜜多 是大神呪


    위없는 바르고 바른 깨달음을 얻느니라. 그러므로 알아라.

    반야바라밀다는 가장 신비한 주문이며,


    시대명주 시무상주 시무등등주 능제일체고 진실불허

    是大明呪 是無上呪 是無等等呪 倬띠旭롓 眞實不虛


    가장 밝은 주문이며, 위없는 주문이며,

    이 주문과 같은 것이 없는 주문이니,

    능히 일체의 괴로움을 없애고 진실하여 헛되지 않느니라.


    고설반야바라밀다주 즉설주왈

    故說般若波羅蜜多呪 卽說呪曰


    그러므로 반야바라밀다주문을 설하노니, 곧 이러하니라.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揭諦揭諦 波羅揭諦 波羅僧揭諦 菩提 薩婆訶 (3번)


    가세 가세. 저 언덕으로 가세. 저 언덕으로 함께 가세.

    깨달음이여! 이루어지이다

     

     

     

     

     

    '공 부 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불교 중요한 용어집  (0) 2010.01.26
    임제어록강의-무비  (0) 2009.03.02
    망상을 버리라   (0) 2009.01.07
    마음은 결코 그대의 것이 아니다  (0) 2009.01.07
    올바른 참선 잘 하는법(진제스님)  (0) 2008.12.28

     

     
    ◈ 망상을 버리라 
    이미 일어난 생각은 더 이상 지속하지 말고 
    아직 일어나지 않은 생각은 일으키지 말라. 
    巳起者莫續     未起者不要放起 
    사기자막득     미기자불요방기 
    - 임제록- 
    인생을 살다보면 내가 스스로 만들어서 하는 일도 있지만, 
    대개가 이미 만들어진 환경에서 
    피동적으로 살아가게 되는 경우가 훨씬 많다. 
    더욱이 우리들의 생각은 내 의지로 지어내는 것이 아니라 
    거의가 다 저절로 일어나는 것들이다. 
    공부를 하는 입장에서 소위 불필요한 망상이라는 
    범주 속에 드는 것들은, 모두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저절로 일어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일어난 망상들을 붙들고 늘어지는 데 있다. 
    공부를 열심히 지어가는 과정에서도 망상인 줄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지속해 가고 있는 경우를 본다. 
    어떤 때는 망상인 줄 아는 순간 곧바로 버리고 공부로 돌아오지만, 
    또 어떤 경우에는 조금만 망상을 부리고 말아야지 하면서도 
    어느 사이 훌쩍 한 시간을 보내버리기가 일쑤다. 
    망상이란 그야말로 망상이지 아무런 이익이 없는데도 말이다. 
    공부하는 사람들이 성공하지 못하는 
    큰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이 점이다. 
    그래서 경계하기를 
    “이미 일어난 생각은 더 이상 지속하지 말고, 
    아직 일어나지 않은 생각은 일으키지 말라.”
    고 한 것이다.  
    이런 일이 단지 공부하는 일에만 해당되겠는가. 
    보통의 인생을 살아가는 데도 꼭 필요한 명언이다. 
    내 주변에 불필요한 일들과 인간관계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제 그만 마무리 짓고 더 이상 지속하지 않아도 좋다. 
    그렇다면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일과 관계들을 
    새롭게 시작할 것은 더욱 아님을 깨달을 것이다. 
    굳이 공부인이 아니더라도 일상 속의 이런 자세가 
    곧 선심(禪心)을 배워가는 일이다. 
    선심으로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고 소박하고 
    멋있게 사는 첫걸음이다. 
    

    '공 부 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임제어록강의-무비  (0) 2009.03.02
    반야심경  (0) 2009.02.06
    마음은 결코 그대의 것이 아니다  (0) 2009.01.07
    올바른 참선 잘 하는법(진제스님)  (0) 2008.12.28
    무심론  (0) 2008.11.09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