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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오스님

 

월인 스님 은사 상연대 출가 후

50이뭣고화두 정진일로

 

거울, 암명·대상 관계없이 비추듯

청정 자성·불성도 여여하게 작용

 

분별시비 떨친 부설거사 열반송

무심·무상·무주 관통했기에 가능

번뇌망상 당장 끊을 수 없다면

집착하지 않는 마음부터 내 보라

 

산길은 있어도 찻길은 없는 월명암. 2Km의 산행을 해야만 다다를 수 있는 월명암을 일러 산상무쟁처(山上無諍處)라 한다.‘ 다툼이 없는 곳이니 적정처(寂靜處). 호남정맥의 첩첩산중과 운해(雲海)가 빚어내는 풍광은 말 그대로 절경이라 한다. 하지만 월명암을 오르는 동안 산은 자신의 자태를 내보이지 않았다. 비 개인 직후 일어나는 산 속의 안개와 바다에서 밀려 온 해무가 합쳐져 지척도 구분하기 힘들었다. 월명암 절경도 3대의 복을 쌓아야만 접할 수 있는 것일까? 후드득! 나뭇잎에 남아있던 빗방울이 떨어지며 목덜미를 적신다. 산의 사자후가 들리는 듯하다.

 

입산을 허락하기에 방금 내리던 비를 멈추게 하지 않았는가!’

 

통일신라의 부설거사는 도반 영조, 영희 스님과 함께 법왕봉(현 쌍선봉) 아래 한 칸의 초가를 지어놓고 묘적(妙寂)이라 이름 했다. 선정의 오묘한 경지에 들어간다는 의미의 묘입선적(妙入禪寂)을 뜻함이다. 부설전(浮雪傳, 전북도 유형문화재 제 140)이 전하는 일화 한 토막을 벗삼아 산을 오른다.

 

어느 날 부설거사는부부 인연을 맺지 않으면 목숨을 끊겠다는 묘화의 간청을 받아들였다. 이를 지켜 본 영조 스님은부질없는 지혜가 헛된 견해를 이루고 편벽된 자비는 애연에 이루고야 말았네라며 안타까워 했고 영희 스님은 수행은 대나무 쪼개듯 해야 하고, 득도는 채찍을 휘갈기듯 해야 하네라며 날을 세웠다. 이별을 고한 두 도반을 위해 부설 거사는 솔잎차를 건네며도란 검은 비단을 입느냐 흰옷을 입느냐에 있지 않다. 모든 부처님들은 생명체들을 이롭게 하려는데 뜻을 두었다며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이후 부설거사는 부인 묘화와 아들 등운, 딸 월명과 함께 정진해 갔다. 그러던 어느 날 영조, 영희 스님이 찾아왔다. 부설 거사는 병 3개에 물을 담아 대들보에 매달고는 각자 하나씩 깨뜨리기로 했다. 공부가 얼마큼 되었는지 점검해 보자는 의도였다. 영조와 영희 스님이 병을 때리자 병이 깨지면서 물이 쏟아져버렸다. 부설 거사가 때린 병도 깨졌지만 물은 보에 매달려 있었다.

부설거사가 일갈했다.

몸에 본성의 진상이 나타나니 생멸에 얽매이지 않는다. 무상(無常)한 환신(幻身)이 삶과 죽음을 따라서 옮겨 흐르는 것은 병이 깨어져 부서지는 것과 같으며, 진성(眞性)은 본래 신령하여 밝음이 항상 머물러 있는 것은 물이 공중에 달려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대들이 두루 높은 지식있는 이를 찾아보았고 오랫동안 총림에서 세월을 보냈는데 어찌하여 생과 멸을 섭수(攝受)하며 진상(眞常)을 삼고 환화(幻化)를 공()으로 하여 법성(法性)을 지키지 못하는가.”

 

부설거사는벌써 열반에 들려 했으나 자네들을 만나려고 여태 미루었다며 이내 게를 지었다.

 

눈으로 보는 바 없으니 분별이 없고/ 귀로 듣는 소리 없으니 시비가 끊어졌다./ 분별 시비를 모두 놓아버리니/ 다만 심불이 스스로 귀의함을 보도다.’

 

부설거사는 일념으로 단정히 앉아 허물을 벗고는 열반에 들었다. 훗날 월명은 온 몸이 보랏빛 구름에 휩싸여 홀연히 서쪽 하늘로 향했다. 이를 지켜 본 등운은반야삼매에 깊이 들어 극락 가는 길이 기쁘다는 시를 짓고는 미소를 머금으며 입적했다. 지금의 월명암은 부설거사의 딸 월명을 기려 이름 한 것이고 사성선원(四聖禪院)은 부설, 묘화, 등운, 월명 네 명의 사성에서 유래 됐다.

 

월명암의 부속 암자인 묘적암은 부설거사가 수행했던 초가 한 칸의묘적터라 추정돼 새롭게 조성한 것이다. 사성선원장 일오 스님은 이 묘적암에 주석하고 있다.

 

일오 스님은 1965년 고향인 함양 상연대에서 월인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월인 스님이라면 6.25한국전쟁 직전 잿더미로 변한 월명암에 법당을 세우며 부설거사의 법을 이은 스님으로서 숨은 도인이라 불렸다. 스승으로부터이 뭣고화두를 받은 일오 스님은 행자시절부터 지금까지 해인사 조사전, 화엄사 탑전, 백장암, 도솔암 등 전국 제방선원에 머물며 정진해 왔다. 대승경전은 물론 초기경전에도 밝아 선교를 겸수한 선승으로 정평 나있다.

일오 스님에게 여쭈어 볼 건 부설 거사가 열반송에서 이른심불(心佛)’이다. 무엇을 심불이라 하는지, 또 그 심불이 스스로 귀의함을 본다는 건 어떤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지 궁금했다.

 

심불 질문에 일오 스님은거울을 들어보였다. “거울은 만상을 비추지만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했지요?”그렇다. 산을 비춘다 해서 거울이 산이 되는 건 아니다. 바위를 비춘다 해도 거울은 틀어지지 않는다. 거울은 대상에 따라 비출뿐 왜곡되지 않는다. 여기까지는 그리 어렵지 않다. 일오 스님은 하택 신회의거울’(明鏡)을 꺼내들었다.

남양화상문답집징의에 나오는 신회 선사와 장연공 사이에 오고 간 선문답 일부분입니다. 신회 선사가 말하지요. ‘형상을 비춘다고 말하는 것은 대상물이 있기 때문에 그 모양이 나타나는 것입니다.’장연공이 다시 묻습니다. ‘만약 대상이 없으면 비춥니까? 비추지 않습니까?’어떻습니까. 대상이 없으면 거울은 아무 것도 비추지 않나요?”

대상이 없다면 비출 게 없으니 거울은 비추지 않는다고 말해야 옳다. 신회 선사는 어떻게 답했을까?

신회 선사가 말합니다. ‘명경은 대상이 있고 없고 관계없이 언제나 비추고 있습니다.”뇌리를 강타하는 그 무언가가 있다. 하지만 잡히지 않는다. “거울은 밝은 곳에서만 비추는 게 아닙니다. 어두운 곳에서도 비춥니다. 항상 여여하게 비추고 있습니다.”

 

그렇다. 어두운 곳에서 거울을 보았을 때, 거울에서 내 모습을 볼 수 없는 건 어둠이라는 조건으로 인해 내 눈의 망막에 확연하게 잡히지 않아서 안 보이는 것일 뿐이다. 따라서 거울을 통해 내가 안 보인다 해서 거울이 나를 비추지 않는 것은 아니다. 바꿔 말하면 어두운 가운데서도 거울은 나를 보고 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말이다.

일오 스님은 월암 스님이 쓴친절한 간화선에 신회의 명경에 대한 해설이 잘 돼 있으니 꼭 한 번 보라며 책에 설명된 자성견(自性見)과 수연견(隨緣見)을 전했다.

 

대상이 있고 없음에 상관없이 거울의 본성이 항상 비추는 것은 중생의 자성이 청정하여 지혜의 광명이 세계를 비추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이를 일러 자성견이라 합니다. 수연견은 대상을 그대로 따르는 것으로 작용적인 면을 말합니다. 방안이 어두울 때 대상을 분명하게 볼 수 없는 것은 자성견이 작용하지만 수연견은 작용하지 않기 때문이라 합니다. 쉽게 말하면 자성견은 밝고 어둠에 관계없이 보는 견이고, 수연견은 주변 환경에 영향을 받아 작용하는 거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자성, 불성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선지식들이 전한 청정자성, 불성, 참나를 신회는명경으로 바꿔 좀 더 확연하게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우리도 시비와 분별을 떨쳐내면 나와 세상을 차별 없이, 왜곡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음을 일오 스님은 강조하고 있다.

그렇다면 부설거사의심불은 신회의명경과 같다는 뜻이다. 그렇다 해도 의구심이 남는다. 어떻게 해야 심불이 될 수 있는가. 어찌해야 거울처럼 항상 여여하게 비추면서도 대상에 따라 왜곡되지 않을 수 있을까?

 

일체 모든 존재가 인연화합으로 생긴 것이므로 고정불변의 실체란 없습니다. 그러기에 무상이라 합니다. ‘라는 존재도 찰나 생멸의 과정 속 연기적 작용에 따라 있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라고 내세울 게 없지요. 그러기에 무아라 합니다. 나와 세상이 다 무상이요 무아인데 집착할게 있겠습니까?”

하지만 시비분별을 떨쳐내기란 녹록치 않다. 연기를 알아도 이를 체득하지 못한 중생으로서는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일체유심조라 했듯이 한 생각을 어떻게 일게 했는가에 따라 언행도, 세계도 달라집니다.”무서운 이야기다. 내 생각 하나에 이 세계는 예토가 될 수도 있고, 정토가 될 수도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금강경에서 이른 것처럼 한 생각조차 마땅히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야 합니다.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내었다는 건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않고 내었다는 것의 의미합니다. 역설적으로 보면한 생각도 낸 바가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를 일러 무심이라 합니다.”

 

단 번에 이러한 무심을 내기란 불가능 하다고 전제하면서도 스님은연기적 세계관을 알았다면 최소한의 노력이라도 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작은 어려움이 놓였다 해서 산이 꺼져라 한 숨 쉴 일은 아니라고 한다. 비록 내 가슴에 비수를 꽂는 말을 들었더라도 뒤돌아서면 훌훌 털어버리려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성선원에서 내려다 본 월명암과 내변산 전경.

 

 

부설 거사도 그랬던 것이다. 연기법 속의 무상을 확연하게 알았기에 무심하려 노력하며 정진 하다가 궁극에는 시비분별을 떨쳐 버렸다. 시비분별을 떠나야만 무심할 수 있다고 하지만, 이를 달리 보면 무심하려 노력하는 중에 시비분별의 굴레도 벗을 수 있을 터이다. 그렇다면 숨통이 트인다. 번뇌와 상이 일어도 그것에 집착하지 않으려는 작은 노력도 정진이기 때문이다. 갈 길이 멀지만 시작은 할 수 있다.

 

밖을 내다보니 어느 새 해무가 걷혔다. 월명암 사성선원에서 내려다 본 내변산은 말 그대로 절경이었다. 일오 스님이 한마디 이른다.

왜 산상무쟁처라 했는지 알겠지요?”

, 참 멋진 풍광입니다.”

무쟁삼매(無諍三昧)를 얻을 수 있는 그 자리를 무쟁처라고 하지요. 풍광은 그저 그림일 뿐입니다.”

 

한 방 맞았다. 내면의 대립과 갈등, 시비와 분별을 떨친 그 자리가 무쟁처 아닌가. 그 자리, 어디 있는가. 서산 대사의 사자후가 들린다. ‘가히 우습다 소를 찾는 사람이여. 소를 타고 다시 소를 찾는구나.’소요 스님은 그 자리서 깨달았다 하는데, 내 눈에는 절경만 가득하다.

그래도 참 좋다! 이런 호사 누려도 되는가!

 

일오 스님은

1965년 월인 스님을 만나 출가. 50년 동안 해인사 조사전, 화엄사 탑전, 백장암, 도솔암, 남해 염불암 등의 제방선원에서 정진했다. 곡성 태안사 선원장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월명암 사성선원장을 맡아 후학을 제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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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가 많은 시대, 지금을 살아가는 방법

기본적으로는 모든 시대에 이런 현상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이런 현상이 특별히 심해지는 시기가 있어요. 바로 사회가 급격하게 변화할 때입니다. 첫째, 기존의 일자리에 적합한 기술과 지식을 익힌 사람은 남아도는데 기존의 일자리가 줄어서 일자리가 부족한 현상이 발생합니다. 둘째,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나는데, 그 새로운 일자리에 맞는 지식과 기술을 가진 사람이 없어요. 그래서 일자리는 있는데 사람이 부족한 경우도 발생합니다. 일의 성격 때문에 사람은 많지만 일자리가 부족한 경우가 있고, 반대로 일자리는 많은데 사람이 부족한 경우도 있어요. 이런 현상은 어느 시대에나 찾아볼 수 있어요. 다만 변화의 시대에는 일자리와 일자리를 찾는 사람 사이에 불균형이 더욱 심해집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변화의 시기입니다. 그렇다고 지금만 변화의 시기인 것은 아니에요. 지금부터 50년 전에도 역시 산업화가 이루어지던 변화의 시기였습니다. 변화의 시기에는 늘 있던 직업이 많이 없어집니다. 모든 직업이 없어지는 게 아니라, 있던 직업이 일부 없어지고 나서 조금 지나면 새로운 직업이 또 생겨납니다. 있던 직업이 없어지니까 기존의 노동자를 위한 일자리가 없어지고, 또 새로운 직업이 생겨나지만 그 직업에 준비된 사람이 아직 없기 때문에 일할 사람이 없어요. 사회가 급격하게 바뀌면 바뀔수록 그 간극이 심해질 뿐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변화의 속도가 더욱 빨라졌습니다. 그래서 이런 혼란을 더 크게 겪을 수밖에 없어요. 다만 그 고통을 줄이려면 사회 안전망을 구축해야 합니다. 즉 복지 정책을 펼쳐서 변화의 시기에 수반되는 일시적인 혼란을 최소화해야 해요. 그리고 변화하는 세상을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도록 교육을 해서 사람들이 심리적으로 안정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미래 사회에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습득할 수 있는 교육과 훈련도 겸해져야 합니다.

미래에는 당연히 인구가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인구 감소 현상을 보고 너무 불안해 하거나 사회가 붕괴되고 있다고 여길 필요는 없어요. 이런 불안감은 과거의 직업관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겁니다. 자동화가 심화될수록 기존의 직업은 빠른 속도로 없어집니다. 아이들이 적게 태어나긴 하지만, 아이들의 수가 줄어드는 것보다 직업이 줄어드는 속도가 더 빠르기 때문에 일자리가 부족한 시기를 거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에요. 그러나 일자리가 없어지는 게 아닙니다. 좀 더 시차를 두고 뒤따라서 새로운 일자리가 계속 생겨납니다. 일정한 혼란기가 지나면 사람들이 훈련과 교육을 받아서 새로운 일자리에 정착하게 돼요. 다만 그 ‘새로운 일자리’라는 게 어떤 일자리인지는 지금으로서는 예측하기가 어렵습니다.

지금은 안정된 직장에서 한 가지 일을 하면서 살고 싶지만 정규직이 못 되거나, 조기 퇴직하거나, 쫓겨나는 것이 사회적인 이슈입니다. 즉, 일하고 싶은데 고용주 측에서 나가라고 하는 것이 큰 문제가 되고 있죠. 그러나 앞으로 10년도 채 지나지 않아서 정반대 상황이 전개될 겁니다. 회사에서 나가겠다는 사람을 잡는 것이 더 큰 사회적 이슈가 될 수도 있어요. 왜 그럴까요?



60세가 넘어서 은퇴하면 뭘 해보려고 해도 너무 늙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5년 정도라도 일찍 회사를 나와야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조기 은퇴하는 사람이 점점 많아질 거예요. 앞으로는 이런 현상이 점점 심해지면 나중에는 회사에 취직한 지 10년도 안 돼서 퇴직하는 사람이 늘어나게 됩니다.

어느 정도 자금만 벌면 자기 나름대로 평생 돈을 벌 수 있는 일을 찾기 위해 직장을 그만두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니까 사람들의 평균 근무 기간이 짧아지는 거예요. 또 앞으로는 많은 사람들이 한 개의 직업만 갖는 게 아니라 재택근무와 온라인 기술 덕분에 두 개 내지 세 개의 일을 파트타임으로 하면서 자기 시간을 자유롭게 쓰는 삶을 살게 될 겁니다. 지금은 정규직 일자리가 없다고들 하지만, 10년만 지나면 정규직 일자리가 없어서 문제가 아니라 그 정규직을 맡아 일할 사람이 오히려 부족해질 거예요.

지금은 회사와 노조가 타협을 해서 동일 노동임에도 불구하고 비정규직에게 저임금을 주는 방식이기 때문에 비정규직이 문제가 되고 있잖아요. 이런 비정규직은 물론 없어져야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정규직으로 모두 전환하는 것이 해결책은 아니에요. 앞으로는 사회 전체적으로 정규직은 소수가 되고 비정규직과 시간제 노동이 다수가 될 겁니다. 그리고 한 가지 직업에만 종사하는 게 아니라 서너 가지 일을 해서 소위 ‘투 잡’, ‘쓰리 잡’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확률이 높아요.

그런데 이런 사회 변화가 꼭 불안정한 사회일까요? 과거와 비교하면 불안정하다고 할 수 있지만, 막상 비정규직과 시간제 노동이 일상적인 사회가 되면 하나도 불안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상대적으로 비교해서 인식을 하기 때문이에요. 태어났는데 세상이 모두 이런 식이라면 누구나 그 세상에 적응하게 마련입니다. 변화가 심하게 일어날 때 기존의 것과 비교해서 ‘이게 좋다’, ‘저게 나쁘다’ 하는 얘기가 나오는 것이지, 비교할 바가 없어지면 ‘좋다’, ‘나쁘다’ 하고 말할 근거가 없어져요. 좋고 나쁜 건 본래 없기 때문입니다.

기후 위기도 마찬가지예요. 지금은 다들 기후 위기를 말하지만, 과거의 기후에 비해서 나빠졌다고 말할 뿐이지 기후 자체만 보면 그냥 그대로 기후입니다. 다만 기존의 기후에 적응해 살던 인간 종이 기후가 변하면 굉장한 위기에 처하게 되는 건 맞아요. 반면에 변화된 기후에 맞게 진화한 새로운 종의 입장에서는 기후 변화일 뿐이지 기후 위기가 아닙니다. 이렇게 기후가 바뀌면 생태계를 주도하는 종이 바뀌게 되는 거예요.



그것처럼 인간 사회도 급격한 변화에 따라 세상을 주도하는 그룹이 바뀌는 겁니다. 그러니 변화에 너무 불안해할 필요는 없어요. 어느 시대와 비교하느냐가 관건입니다. 작년과 지금을 비교하면 형편이 못 해졌다고 평가할 수 있어요. 그러나 100년 전과 지금을 비교해 보면 사회가 많이 좋아졌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객관적으로 보면 우리 사회는 괜찮은 사회다. 그러나 아직도 부족한 사회인 것도 사실이다. 그러니 다 함께 이 사회를 개선해 나가야 합니다,,

죽음을 생각하면 두려운 마음이 들어요, 어떡하죠?

저는 두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첫째, 반야심경 수업에서 모든 법이 공()한 도리에서는 생()도 아니고 멸()도 아니다라고 하셨는데요. 사람은 태어나서 죽기 마련인 걸 떠올리면 생도 아니고 멸도 아니다는 구절을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이 구절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둘째, 생이 있으면 멸이 있듯이 태어났으니 죽는 것은 당연하지만, 죽음을 경험하지 못하기에 막연한 두려움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누군가 죽으면 슬프고, 나의 죽음에 대해 생각해도 두려움을 느낍니다. 죽음에 대한 관점을 잡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죽은 사람이 죽음을 두려워할까요, 죽지 않은 사람이 죽음을 두려워할까요?”

 

죽지 않은 사람이요.”

 

 

죽지 않은 사람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건 죽음 때문에 두려운 걸까요, 죽음에 대한 생각 때문에 두려운 걸까요?”

 

죽음에 대한 생각 때문에 두려워합니다.”

 

죽음에 대한 생각에서 두려움이 생겨나는 거예요. 그 두려움은 사실 죽음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그러니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으면 두려움이 생기지 않습니다.

 

첫 번째 질문인 생도 아니고 멸도 아니다라는 구절에 대해서는 파도가 치는 바다를 떠올려보세요. 바다를 보면 파도가 일어나고 사라지고를 반복합니다. 파도를 하나씩 관찰을 해보면 일어나고 사라지는 게 맞습니다. 이처럼 파도가 생겨나고 사라진다라고 말을 해도 되지만, 바다 전체를 보면 물이 출렁거린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바다 전체의 관점에서는 다만 물이 출렁거릴 뿐 새롭게 생겨나는 것도 없고 사라지는 것도 없습니다. 좁은 관점에서 파도를 하나씩 관찰을 할 때는 생겨났다가 사라지는 것으로 보이지만, 넓게 전체를 보면 생겨난다고 할 것도 없고 사라진다고 할 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생겨났다’, ‘사라졌다고 말하는 건 표현에 불과해요.

 

지구 전체를 보면 풀이 나고 죽고, 나무가 나고 죽고, 사람이 태어나고 죽는 게 마치 바다 전체에서 파도가 일렁이는 것과 같습니다. 이렇게 넓은 관점에서 보면 다만 출렁거릴 뿐 태어났다, 죽었다고 할 게 없습니다. 따라서 본질의 차원, ()의 차원, 위에서 넓게 내려다보는 차원에서는 생긴다고 할 것도 없고 사라진다고 할 것도 없어요. 그렇다고 아무것도 생겨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게 아닙니다. 좁은 관점에서 보면 개체가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넓게 보면 사실 생겨난다고 할 것도 없고 사라진다고 할 것도 없는 도리입니다. ‘불생불멸(不生不滅)’은 안 생겨나고 안 사라진다는 뜻이 아니라, 우리가 생겨났다, 사라졌다고 말은 하지만 넓게 보면 굳이 생겨난다고 말할 것도 없고 사라진다고 말할 것도 없다는 의미입니다.

 

학교를 다닐 때는 입학과 졸업이 있습니다. 한 과정을 놓고 보면 입학과 졸업을 하지만,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동시에 중학교에 입학하고, 또 고등학교에 입학을 했다는 건 얼마 전에 중학교를 졸업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크게 보면 이 학교에 다니다가 저 학교에 가고, 또 그 학교에서 다른 학교로 가는 것이지, 사실 입학과 졸업이라고 할 것이 없습니다. 그저 일상적으로 한 과정에 들어갈 때 입학이라고 말하고, 한 과정이 끝날 때 졸업이라고 말할 뿐이에요. 이건 입학을 안 한다, 졸업을 안 한다는 말이 아니라 한 과정을 시작하고 마칠 때 입학과 졸업이라고 이름을 붙이긴 하지만, 크게 보면 이 학교에서 저 학교로 옮기는 것일 뿐 입학이라고 할 것도 없고 졸업이라고 할 것도 없다는 뜻입니다.

 

 

사람이 이 방에 갔다가 저 방에 갔다가 할 때, 방 하나만 놓고 보면 사람 수가 늘어났다가 줄어들었다가 하지만 집 전체를 보면 사람 수에 변화가 없습니다. 집 안에서 이 방에 갔다가 저 방에 갔다가 한 거예요. 그러니 좁게 보는가, 넓게 보는가에 따라 표현이 달라지고, 현상으로 보느냐 본질적으로 보느냐에 따라 표현이 달라집니다. 현상에서 보면 생멸(生滅)이라고 말하지만, 본질에서 보면 생이라고 할 것도 없고 멸이라고 할 것도 없습니다.

 

경전에서 불생불멸이라는 구절 앞에는 시제법공상(是諸法空相)’, ()의 관점에서는이라는 단서가 붙어 있습니다. ‘시제법공상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이라는 말은 모든 법이 공하다는 관점에서 보면 생하다고 할 것도 없고 멸하다고 할 것도 없고, 깨끗하다고 할 것도 없고 더럽다고 할 것도 없고, 늘었다고 할 것도 없고 줄었다고 할 것도 없다라고 표현한 겁니다.

 

이렇게 공()의 차원이 아니라 현상의 차원, ()의 차원에서 보면 생하고 멸하는 게 있습니다. 현실에서는 간다, 온다고도 표현을 하지만 본질의 차원에서 보면 간다고 할 것도 없고 온다고 할 것도 없습니다. 부처의 관점에서 보면 간다고 할 것도 없고 온다고 할 것도 없습니다. 이것이 여래(如來)’ 또는 타타가타(tatha-gata)’라는 말의 의미입니다. ‘간다, 온다고 할 게 없다는 뜻입니다.

 

집에서 가족이 화투를 치다가 형이 동생의 돈을 따면 형과 동생은 서로 누가 돈을 잃고 땄는지를 따지지만 부모의 입장에서는 그 돈이 그 돈입니다. 부모는 집 전체의 입장에서 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어리니까 자기 호주머니에 있는 돈만 봐요. 자기 호주머니만 쳐다보면 따기도 하고 잃기도 하지만, 집안 전체에서 보면 딴 것도 없고 잃은 것도 없습니다. 여기서 ()의 관점은 부모의 입장에서 본다는 말입니다. 아이의 입장에서는 분명히 돈을 잃었고 형이 돈을 땄지만, 부모의 입장에서는 늘어난 것도 없고 줄어든 것도 없습니다.

 

이처럼 넓은 시선에서 보면 괴로울 일이 없습니다.”

 

, 이해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이해하는데도 현실에서 어떤 문제에 부딪히면 적용이 잘 안 됩니다. 왜냐하면 습관적으로 자꾸 좁은 범위로 바라봐지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살면서 좁게 봐 온 습관이 있기 때문에 자꾸 좁게 보는 거예요. 이런 도리를 배울 때는 알 것 같다가도 갑자기 일이 닥치면 자기도 모르게 시야가 탁 좁아집니다. 급할 때는 무의식적으로 늘 지금까지 봐온 관점으로 돌아가는 거예요. 법문을 들을 때는 진정된 마음으로 넓은 눈으로 바라보다가도 현실에 부딪히면 탁 좁아져서 감정에 빠지게 됩니다. 그래서 법문을 듣고 난 다음에 반드시 연습이 필요합니다. 현실 속에서도 자꾸 본질을 보고 넓게 보는 연습을 꾸준히 해나가야 합니다.”

 

 

보리달마(Bodhidharma) 대사는 남인도 향지국의 왕자로 태어나 출가해서 반야다라를 스승으로 법을 계승했습니다. 기록에 따라 정확한 연도는 다르지만 6세기 초에 배를 타고 중국으로 건너왔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달마대사는 중국 남쪽 광주에 도착했는데 그 당시 이 지역은 양나라 땅이었습니다. 양나라를 다스리던 무제는 인도에서 고승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달마대사를 왕궁으로 초대했어요. 양 무제는 불교를 옹호했고 불사를 많이 해서 불교를 부흥시킨 황제였습니다. 그래서 양나라 사람들은 그를 중국의 전륜성왕 또는 중국의 아쇼카왕이라고 칭송했어요. 양 무제는 달마대사를 친견하고 질문을 했습니다.

 

저는 일생동안 수백 개의 절과 탑을 세웠고, 수 천 명의 스님을 양성했으며, 수 만권의 경전을 번역하고 인쇄했습니다. 이렇게 많은 불사를 한 공덕이 얼마나 되겠소?’

 

황제가 이렇게 물었으면, ‘공덕이 한량없습니다라는 대답이 나와야 합니다. 그런데 달마대사는 이렇게 답했어요.

 

공덕이랄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왜 공덕이 없다고 했을까요? 이렇게 지은 공덕은 인연과보로 언젠가는 사라지는 유루복(有漏福)이기 때문입니다. 진짜 공덕은 깨달음의 지혜로 얻는 다함이 없는 무루복(無漏福)이에요. 달마대사는 모양과 형상에 집착한 불사에 대해 비판적이었습니다. 이 말을 듣고 양 무제는 기분이 좀 나빴겠죠. 자신은 불교에 엄청난 지원을 했는데 복이랄 게 없다고 하니까요. 양 무제가 다시 물었습니다.

 

그럼 부처님 가르침에서 가장 성스러운 진리는 무엇입니까?’

 

부처님 가르침의 요지가 뭐냐는 질문입니다. 달마대사가 말했습니다.

 

성스럽다고 할 것이 없습니다.’

 

양 무제가 기가 차서 다시 물었어요.

 

그렇게 말하는 너는 누구냐?’

 

그러자 달마대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르겠습니다.’ (不識, 불식)

 

우리말로는 모르겠다라고 번역하지만 생각으로 헤아리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러자 양무제가 화가 나서 대사를 죽이려고 칼을 빼들었어요. 대신들은 외국의 고승을 해치면 황제의 명예에 흠이 된다며 겨우 황제를 말렸습니다.

 

양 무제와 달마대사가 나눈 대화가 역사적 사실이냐 아니냐를 떠나서, 이런 대화 속에 선의 요지가 들어있어요. 선불교는 국왕의 지원으로 불사를 중심으로 융성했던 불교에 대해 굉장히 비판적이었다는 얘기죠.

 

달마대사는 양 무제를 만나고 이곳에는 불법이 없구나!’라고 탄식하며 양자강을 건너 북쪽으로 갔다고 합니다. 북쪽에는 북위라는 나라가 있었어요. 달마대사는 소림사로 가서 침묵하고 있었습니다. 늘 벽만 보고 있었다고 해서 면벽 9년이라고도 해요. 그렇게 침묵하고 있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달마대사를 찾아왔습니다. ‘달마 권법을 가르쳐 달라’, ‘범어를 가르쳐 달라’, ‘경전을 가르쳐 달라이런 식으로 뭔가 얻으려고 찾아온 사람들이 전부였어요.

 

 

그러나 이 법은 구할래야 구할 수 없고 얻을래야 얻을 수 없습니다. 달마대사가 9년 동안 침묵하고 있으니까 얻으려고 왔던 수많은 사람들이 다 떠나버렸어요. 얻으려고 왔는데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니까 다 가버린 거죠. 그런데 오직 혜가라는 승려가 9년을 말없이 같이 살기만 했습니다. 대사가 참선을 하면 같이 참선을 하고, 일을 하면 같이 일하고, 밥을 먹으면 같이 밥을 먹으면서 아무 얘기도 안 했어요. 그래서 어느 날 대사가 입을 열었습니다.

 

너는 왜 왔느냐? 무엇을 얻으러 온 것이냐?’

 

저는 안심입명(安身立命)의 도를 얻으러 왔습니다.’

 

얻는다라고 표현했지만 다른 게 아니라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싶어서 왔다는 거예요. 대사가 다시 물었습니다.

 

네 마음이 어떤데?’

 

제 마음이 심히 불안합니다.’

 

그래? 그럼 불안한 마음을 이리 내놔라. 내가 편안하게 해 줄게.’

 

불안한 마음을 내놓으려면 우선 찾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 마음이 경전을 뒤진다고 찾아지는 것도 아니고, 인도에 간다고 찾아지는 것도 아니잖아요. 자기 마음을 살펴야죠. 한참 뒤에 혜가 스님이 말했습니다.

 

내놓을래야 내놓을 것이 없습니다.’

 

내 이미 네 마음을 편안하게 했도다.’

 

 

이 문답에서 우리는 ‘눈을 밖으로 돌리지 말라’라는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법은 마음밖에 있는 게 아니에요. 직지인심(直指人心)이란 자기 마음을 직시하라는 뜻입니다. 불안한 걸 내놓으라고 해서 살펴보니 불안하다고 할 실체가 없었어요. 달마 대사가 ‘내가 네 마음을 편안하게 했도다’라고 해서 혜가 스님이 편안해진 게 아닙니다. 자기 마음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렸을 때 이미 마음이 편해진 거예요. 이것을 견성성불(見性成佛)이라고 합니다.

 

수행이란 생각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꾸 뭔가 지식을 쌓아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어요. 수행은 학문이 아니라 체험의 영역입니다. 그러나 역사 속에서 수행을 중시했던 부처님의 가르침은 복을 빌고 선행을 닦는 종교로 발전했습니다. 또 학문적으로 탐구하는 철학으로도 발전했어요. 그러나 아무리 종교적 믿음을 가지고, 철학적 지식을 많이 알아도 괴로움이 없어지는 체험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교리에 치우친 교종을 비판하며 등장한 선()마저도 시간이 지나면서 학문적이고 이론적인 쪽으로 기울었어요.

 

그래서 정토회는 불교의 본래 가르침인 수행으로 돌아가자라는 종지를 새롭게 세웠습니다. 부처님의 원래 가르침으로, 대승의 원래 정신인 보살도로, 선의 원래 정신인 수행으로 돌아가자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엇보다 수행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종교를 믿으라는 것도 아니고, 철학을 공부하자는 것도 아니에요. 내가 직접 괴로움에서 벗어나고 번뇌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수행을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하루 일 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

인도에서는 걸식이 보편적 문화입니다. 수행자들은 한 곳에 정착하지 않고 늘 옮겨 다니는 유행(遊行)을 했어요. 불교가 중국에 전파된 이후 선종 제4대 도신대사에 이르러서 한 곳에 머무르면서 수행하는 문화가 형성됐습니다. 원래 부처님의 가르침이나 인도 문화에 따르면 수행자는 집착을 놓아야 하기 때문에 어떤 일도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숲 속이나 산속에 머무르면서 수행을 하려면 음식을 자체적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그래서 농사짓는 것과 마음을 닦는 선이 둘이 아니라는 선농일치(禪農一致)의 가르침이 나올 수밖에 없었어요. 이렇게 선불교에는 하루 일 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一日不作 一日不食)’라는 노동과 수행이 일치하는 전통이 생겼고, 한국 불교에도 그런 전통이 전해졌습니다. 오늘날 절에서 하는 발우공양은 절 안에서 밥을 지어먹는 대신 얻어먹는 걸식의 형식을 빌려서 하는 공양 방법이에요.

 

대중의 보시에 의하지 않고 자기가 먹을 걸 자기가 생산하니까 선불교는 자립할 수 있었습니다. 정토회에서도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가능하면 스스로 자립하는 선의 전통을 지키려고 해요. 이런 선의 전통은 테라밧다 불교의 전통과는 많이 다릅니다. 테라밧다 스님들은 일체 손도 까딱 안 합니다. 게으르기 때문이 아니라 문화 때문이에요. 본래 부처님께서는 집착하지 않기 위해 걸식을 하라고 가르쳤는데 지금은 마치 양반처럼 어떤 일도 안 하려고 합니다. 반대로 자급자족을 하기 위해 일을 하다 보면 세속살이가 되기 쉬운 위험이 있어요.

 

선종과 달리 교종은 국왕이나 부자들의 보시를 받아 화려하게 융성했어요. 그러나 국가가 불교를 탄압하자 교종은 일순간에 무너졌습니다. 반면 선사들은 크게 지장을 받지 않았어요. 원래 숲 속이나 지방에서 자급자족하고 살았으니까 불교를 탄압하든 하지 않든 크게 구애받을 일이 없었습니다. 그렇다 보니 나중에는 오히려 선종이 불교의 주류가 됐어요.”

 

강의는 두 시간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스님은 다음 시간에는 달마 대사 이후 육조 혜능대사가 어떻게 출가해서 깨달음을 얻고 법을 전했는지, 후대에 선불교가 어떻게 전해졌는지 강의할 예정이라고 소개한 후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점심 이후에는 손님들이 연이어 두북 수련원을 찾아왔습니다. 오후 내내 미팅을 계속해서 가졌습니다.

 

해가 지고 저녁 730분부터는 육조단경 2강 수업이 이어졌습니다. 정토경전대학 학생들이 모두 화상회의 방에 입장한 가운데 스님의 강의가 시작되었습니다.

 

스님은 선불교의 핵심 가르침이 담긴 육조단경의 법문을 한 혜능 대사가 어떻게 출가를 했고, 어떻게 법을 증득했고, 어떻게 법을 전했는지, 전 과정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펼쳐졌습니다.

 

 

그런 후 육조단경에 있는 문구들을 읽고 스님이 직접 그 뜻을 해설해 주었습니다.

 

사념(邪念)일 때 번뇌가 이는 것이며

정념(正念)이면 번뇌가 가시는지라.

()와 정() 모두 여의어 쓰지 않을 때

생멸 없는 청정지에 이르렀더라.”

 

이어서 그 뜻을 해설해 주었습니다.

 

“육조단경은 무념의 종지(宗旨)를 가르칩니다. 삿된 생각이나 바른 생각이나 다 생각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생각을 탁 놓고 무념(無念)이 되도록 하는 가르침이에요. 삿된 생각은 말할 것도 없고, 바른 생각도 번뇌일 뿐입니다. 우리가 그동안 일반적으로 배워온 내용은 나쁜 생각을 버리고 좋은 생각을 갖고, 나쁜 행동은 하지 말고 좋은 행동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깨달음의 세계에서는 나쁘고 좋은 것이 어젯밤에 꾼 꿈과 같아요. ‘나쁘다’, ‘좋다’ 하는 생각 자체를 넘어서 버려야 됩니다. 이것이 무념의 가르침입니다.”

 

계속해서 다음 구절을 읽었습니다.

 

보리는 본래로 이 자성이니

 

스님의 해설이 이어졌습니다.

 

 

“보리란 본래 자기의 성품인데 한 생각 일으키면 그건 벌써 망념에 불과하다는 뜻입니다. 이 말은 명상을 할 때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명상을 할 때 제가 늘 강조하잖아요. 몸도 멈추고, 생각도 멈춰라. 일으키는 생각이 다 망상이니 거기에 의미를 두지 마라. 망상이 끊임없이 일어나면 일어나는 대로 내버려 둬라. 망상은 꿈같고 안개 같고 아지랑이 같은 것이니 오직 호흡에만 깨어 있어라. 호흡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호흡을 느껴라. 모든 생각을 여의여야 한다. 이 구절은 그런 뜻입니다.”

 

그냥 읽으면 무슨 뜻이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스님의 설명을 듣고 나면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육조단경의 마지막 문구는 후대에 법을 전하는 이야기입니다. 스님은 부처님의 가르침이 동시대에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수평적으로도 널리 전해져야 하지만 수직적으로 후대 사람들에게도 잘 전해지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하다고 다시 한번 강조했습니다.

 

먼 미래를 향해서 법을 이어가려면

전법은 수평적으로 주위 모든 사람들에게 법을 전하는 것과 수직적으로 먼 미래를 향해서 법을 이어가는 것이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것은 수평적 전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수평적으로 널리 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수직적으로 저 미래를 향해 법을 전하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명예에 집착하거나 서로 이익을 다퉈서 근본 법이 훼손되면 대부분 법이 유지되지 않고 얼마 못 가서 대가 끊어져 버립니다. 정토회가 아무리 불사를 많이 하고, 많은 사람들이 정토회 회원이 되고, 정토회의 사회적 영향력이 아무리 커져도, 근본을 놓쳐버리게 되면 이 법을 먼 미래로 전하지 못하고 30년도 못 가서 흐지부지 끊어져 버립니다.

 

 

당시에는 혜능을 따르는 사람이 소수였고, 신수를 따르는 사람은 백 배도 넘었습니다. 그런데 100년을 못 가서 혜능의 문하에는 기라성 같은 제자의 제자가 나왔고, 신수의 문하에는 오히려 대가 끊어져 버렸습니다. 결과적으로는 혜능이 더 훌륭한 사람이 돼버린 거예요. 당시에 혜능과 신수는 비교가 안 될 수준이었습니다. 혜능은 스승으로부터 계도받지 못하고 밤에 도망을 가야 했어요.

 

여러분들이 집중해야 할 일은 옆으로 전법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옆으로 전법하는 것뿐만 아니라 이 법을 미래로 이어갈 수 있도록 법의 종지를 지키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세상과 어느 정도 타협해서 가도 되지만, 저는 그렇게만 가서는 안 됩니다. 세상이 어떻든 이 법의 종지를 지켜서 미래로 이어가도록 하는 것이 저에게는 더 중요하기 때문이에요. 이것이 선종의 가르침입니다.

 

2600년 전 아주 오래된 새길

선종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도 있고, 비판적으로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은 법은 모양과 형체가 없는 것이니까 가장 근본 알맹이는 유지하되 그 나라에 맞게 잘 포장해서 전법을 했다이렇게 생각합니다. 이런 입장에서 보면 선불교는 인도적인 문화를 걷어내고 동아시아적인 문화를 잘 수용해서 토착화했다는 장점을 갖고 있습니다.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은 선불교가 부처님을 중심으로 하기보다 조사를 중심으로 하기 때문에 불법의 근본을 오히려 잃어버린 게 아니냐고 비판합니다. 부처님은 세상의 평화를 말씀하시고, 계급의 차별을 부정하고, 여성의 출가를 허용하고, 많은 중생을 교화하는 일을 했는데, 선불교는 너무 자신들의 깨달음에만 치우쳐서 세상의 리더십과 중생의 교화력을 잃어버렸다는 거죠. 한마디로 오늘날 환경 문제, 평화 문제, 불평등 문제, 인권침해 문제 등에 대해 무관심하고, 사회적인 실천력을 갖고 있지 않다는 지적입니다. 그러나 붓다는 힘으로 투쟁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런 사회문제의 모순을 꿰뚫어 보고 구체적인 실천을 했습니다. 그에 반해 선불교는 마음에 대해서는 굉장히 꿰뚫어 보는 눈이 있는데, 세상을 보는 눈은 거의 없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선불교의 장점은 살리고, 부족한 점은 보완해 나가야 합니다. 그러려면 부처님의 일생이 어떠했는지에 대해 깊이 공부해야 해요. 부처님의 인격 속에서 우리가 가야 할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일생을 기록한 사람들이 인도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그 속에는 인도의 문화가 너무 많이 들어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부처님은 굉장히 심플하게 법을 가르쳤지만, 그것을 기록한 사람들이 인도 전통의 윤회 사상과 인과응보 사상을 그 속에 담아서 너무나 신비주의적으로 부처님을 묘사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선불교가 이런 신비주의적인 요소들을 과감하게 걷어내 버렸다는 것은 코페르니쿠스적인 파격적 발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정토회도 가능한 갈등을 안 일으키고 가려고 종교의식도 조금 수용하는 등 현실과 타협한 측면들이 있는데, 선불교는 적당하게 타협해서 가는 그런 수준이 아니었어요.

 

멀리 가려면 법에 맞게 근본적으로 가야 합니다. 그러나 대중에게 널리 전하려면 현실을 좀 수용하면서 가야 해요. 이 두 가지를 중도적으로 통합하는 것이 과제입니다. 너무 근본적으로만 가면 세상에서 고립이 되고, 너무 세상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다 보면 세속화되어 근본을 놓쳐버립니다. 이 두 가지를 적절히 조화시켜 나가야 해요.

 

 

그래서 가능하면 세상에 법을 전하는 일은 스님이 하지 말고 여러분들이 해야 돼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그것도 다 스님한테 맡기려고 하잖아요. 세상 속에 사는 여러분들이 전법을 해야 대중의 눈높이에 맞는 전법을 할 수 있습니다. 저는 가능하면 먼 미래에도 이 법이 꽃피울 수 있도록 해나가는 역할에 더 중점을 두어야 해요. 이렇게 서로 역할 분담을 좀 해야 합니다.

 

한 마디를 하더라도 네 소리를 해봐라

불교의 역사를 살펴보면 지금까지 두 번의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1의 불교 혁명은 대승불교의 혁명입니다. 대승불교의 혁명이 담긴 경전이 바로 금강경과 반야심경입니다. 그런데 대승불교가 중국에 전해지고 나서 또다시 학문화되고 철학화되니까 새로운 혁명이 또 일어났습니다. 그것이 바로 제2의 불교 혁명인 선불교입니다. 지금 시대는 제3의 불교 혁명이 일어날 시기인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는 혼란의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혼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과학기술 문명까지 다 감안해서 인간이 가야 할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제시해야 합니다. 그것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경전의 내용을 듣고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자기화하고 경험하는 것은 더욱더 중요합니다. 선불교는 특히 이것을 더 강조했습니다. 스승의 물음에 경전을 읽고 대답하면 그건 책에 있는 얘기다. 한 마디를 하더라도 네 소리를 해봐라이렇게 얘기하는 것이 선불교의 요지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명상하고 나서 다리가 아팠어요’, ‘졸렸어요이렇게 얘기하는 것은 책에 있는 소리가 아니고 모두 자기가 경험한 소리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아무리 그런 얘기를 해도 스님은 잘했다고 칭찬하는 거예요. 자기가 경험한 소리를 하니까요. 그런데 어디 가서 들은 소리를 하면 망상 피웠네이럽니다. 선불교는 특히 자신이 직접 체험하는 것을 중요시한다는 것을 한 번 더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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