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을 위한 일이 아무리 대단해도
자기가 할 일을 소홀히 하지 말라.
자기를 위해 해야 할 일을 완전히 알고서
자기가 할 일에 전념해야 한다.”
스님이 이 구절의 의미에 대해 법문을 해주었습니다.
“여기서 ‘남을 위한 일’이란 남을 돕거나 남을 칭찬하는 일을 말합니다. 그런 일이 아무리 대단해도 자기가 할 일을 소홀히 하지 말라는 겁니다. ‘자기가 할 일’이란 일상적인 일을 말하는 게 아니라 수행을 뜻합니다. 즉, 자신의 수행을 소홀히 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아무리 대단한 일을 해도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할 것
수행자에게는 자기의 번뇌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남을 돕지 말라거나 칭찬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에요. 그런 이유로 자기 정진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입니다.
‘수행자로서 봉사활동을 해야 하고, 수행자로서 남을 도와야 한다’
제가 평소에도 늘 이렇게 강조하잖아요. 수행자로서가 아니라 그냥 남을 돕기만 하는 사람이 되면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좋은 사람일 뿐입니다. 그 과정에서 자기가 괴롭다면 수행자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수행자는 그런 일을 괴로움 없이 해나가는 사람입니다. 괴롭더라도 자기를 돌이켜가며 괴로움을 줄여나가는 자세를 갖추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는 남을 돕지 않지만 자기 일로 인해 괴로워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자기 일로 인해 괴로워하는 사람은 범부중생입니다. 범부중생은 남에게 도움을 바라는 사람입니다. 남을 돕는 사람은 이보다는 나은 사람인데, 남을 도우면서 괴로워하거나 남에게 의지한다면 좋은 사람이라 불릴지는 몰라도 수행자는 아닙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을 항상 잘 단속하는 가운데 남을 위한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소승(小乘)은 남이 수행을 안 하더라도 자기 수행을 해나가는 사람이고, 대승(大乘)은 자기 수행에만 그치지 않고 남도 구제하는 사람입니다. 남을 구제하는 정성이 얼마나 큰 지를 설명할 때 ‘내 수행을 못하는 한이 있더라도 남을 돕는다’라고 표현합니다. 이는 내 수행을 안 하면서 남을 돕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남을 돕는 것이 내 수행에 지장을 주는 한이 있더라도 그들을 돕겠다는 뜻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대승이 갖는 의미를 잘못 이해하고 남을 돕는 일을 하면서 정작 자기 자신은 괴로워한다면 수행자의 자세를 제대로 갖고 있지 않는 것입니다. 장사를 하면서 괴로워하거나, 결혼생활을 하면서 괴로워하거나, 도를 닦으면서 괴로워하는 것은 모두 매한가지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밖으로 백만의 대군을 이기는 것보다 자기가 자기를 이기는 자가 진정한 장부이다.’
그러니 남을 위하는 일이 아무리 대단해도 자기 일을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합니다. 여기서 ‘자기 일’은 집안일이나 일상적인 업무를 말하는 게 아니라 ‘수행’을 의미합니다. 괴로워하고, 슬퍼하고, 외로워하고, 힘들어하고,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면 수행의 관점을 놓친 것입니다. 항상 어떤 일을 할 때는 그 일을 하는 목표의식이 분명해야 합니다. 수행자의 목표는 괴로움이 없는 사람 자유로운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즉, 해탈과 열반이 목표이기 때문에 이 목표를 놓쳐가면서까지 무언가를 한다면 주객이 바뀐 겁니다. 즉 목적과 수단이 바뀐 상황입니다.
수행이란 절하고, 참선하고, 명상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게 아닙니다. 마음이 괴롭지 않도록, 헐떡거리지 않도록, 들뜨지 않도록, 미움이 일어나지 않도록, 자기 마음을 잘 관리하는 것이 수행입니다. 수행자에게는 이 수행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렇게 마음 관리가 되는 전제 위에서 다른 활동으로 폭을 점차 넓혀가는 것이 좋습니다.
자유와 행복으로 나아가는 세 단계
오늘 읽은 경전에 나온 표현인 ‘자기를 위해 해야 할 일’은 바로 자기 마음을 아름답게 가꾸는 일을 의미합니다. 먼저 자기를 자유롭고 행복하게 해야 합니다. 이 행복은 마음의 들뜸이나 즐거움이 아니라 괴로움이 없는 상태를 뜻합니다. 즉, 자기를 괴롭히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자기 마음을 가꾸는 일에 가장 큰 중심을 두고, 그런 후 다른 일에 의미 부여를 해야 합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세 가지 단계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첫째, 지금이 좋아야 합니다. 밥을 굶는 것보다는 밥을 먹는 게 낫고, 집이 없는 것보다는 집이 있는 게 낫고, 옷이 없는 것보다는 옷이 있는 게 낫고, 가족에게 되도록 사고가 안 나는 게 낫고, 몸은 되도록 건강한 게 낫습니다. 이렇게 안정된 생활이 불안정한 생활보다 낫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 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둘째, 지금 내가 밥 먹고, 잠자고, 옷 입고, 건강하고, 사람들과 원만하게 살아간다고 끝이 아니라 지금 이렇게 하는 것이 원인이 되어 나중에 밥을 굶는 일이 생기거나, 옷이 없는 일이 생기거나, 집이 없는 일이 생기거나, 건강을 해치는 일이 생기도록 해서는 안 됩니다. 지금은 좋은데 오히려 지금이 원인이 되어 미래에 나쁜 일이 생긴다면 그건 잘못된 삶입니다. 지금의 좋음이 다음에도 좋음을 가져오는 삶이 되어야지, 지금의 좋음이 다음에 불이익을 가져오는 좋음이라면 이 좋음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우선 지금이 좋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로 인해 다음에 지옥 가는 일이 생겨서도 안 됩니다. 즉, 나중도 좋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는 모두 유루복(有漏福)에 해당됩니다. 유루복은 언젠가 복이 다해서 바닥이 드러나고 맙니다. 이 두 가지만으로는 부족합니다. 하나 더 충족되어야 합니다.
셋째, 해탈과 열반으로 가는 지고한 복이어야 합니다. 먹을 것이 없어도 끄덕 없고, 입을 것이 없어도 끄덕 없고, 잘 집이 없어도 끄덕 없고, 설령 건강이 안 좋아도 끄덕 없고, 가족 중 누군가 죽는다고 해도 끄덕 없는 그런 경지로 나아가야 합니다.
앞에 있는 1단계와 2단계는 이 세상에서 두루 원만한 삶입니다. 속세에서의 편안한 삶입니다. 지금이 좋은 줄 알고, 또 지금의 좋음이 다음에도 좋음으로 연결되도록 하는 삶을 사는 사람은 세상에서의 현명한 자입니다. 3단계는 출세간(出世間)의 삶입니다. 이건 꼭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되는 삶을 말하는 게 아니라 세상을 뛰어넘는 삶을 말합니다. 이처럼 세상을 뛰어넘는 길을 가는 지혜로운 자가 바로 수행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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