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5월부터 시작한 택시운전이 금년 딱 32년이 됐다
장사하다 별로 신통치 않아서 노후까지 할수있는게 뭘까 생각하다 친구들이 하고있는 개인택시가 최고인것 같아 당시 8만원짜리겨우굴러만 갈수있는 폐차직전 중고차를 구입해서 아는지인  김재술씨 형님의 안내로시내 주행 연수를 몇달받고 그형님이 다니는 장안동소재 현대 택시회사에 취업을해서 무사고10년으로 서울시 개인택시 사업면허접수를 했었다.
그러나 서울시 정책 혼란으로 발급을한다못한다 버티고 땡기다가 고건시장의 결단으로2004년도 6월 영업용 택시 16년만에 서울시로부터 개인택시 사업면허를 발급받게되였다

오르지 개인택시 사업면허를 취득하기위해서택시를 시작했기에 마지막 면허를 취득하게되여 다행히 나의 소원을 이루게 됐던것이다
건강이 허락한다면 정년이 없으니까  능력이되는날까지 할수 있지만 내 나이가 벌써 만70세이고보니 앞으로 5~7년은 더 할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계획데로 될지 모르겠다,

 

2020년 5월 20일 30년 무사고 운전자 안전장으로 최고의 마지막 증을 받았다,
한세월이 금방지나는것 같다
나이 40세 젊은 나이에 시작하여 반평생을 거리를 누비는 운전자로서 32년을 보내게되였다
손님에게 얻어 맞기도하고 주정뱅이 구토로 골탕을 먹기도하고 돈없다고 뺑소니 치는 사기꾼도 있었고 별의별 인간들 틈에끼어 지금껏 잘 버티어 온것만도 큰 수행이였다고 생각이 든다
하루 적게는 십몇명에서  많게는30여명이 넘는 손님을 매일 태우다보니 얼굴만봐도 그사람 성질이나 성품을 대충 느끼게된다


타면 편안한 사람이 있는가하면 괜시리 서먹하고 뭔가 불편한사람이 있고 위압감 같은것을 느끼는 사람 불쌍하게 여겨지는 사람  콜을 불러놓고 한참을 대기 하도록 하는 몰염치한 사람 애들과 같이타서 온통 차안을 쓰래기로 버려놓은사람 이리가라 저리가라 일일이 자가용 기사처럼 갑질하는 사람 나이도 어린것이 반말 찍찍하며 끈적대는사람 괜히 화풀이라도 하듯이 시비하는 사람 술취해 침 뱉으면서 욕지걸이 하는사람 늦게나와  빨리 빨리 재촉하는사람 돈없다고 집으로 따라 오라고 하는 사람 돈 안내고 슬그머니 뺑소니 치려는사람 이런 얌체족 같은 못된 사람도 있지만 반면에 좋은 사람도 더러 있긴하다.


거스름 돈을 팁이라고 그냥주는 사람 가지고 가던  먹거리를 먹으라고 주는사람 하루 20명씩만해도 한달 20일이면 400명 일년이면 약5000명  경력 30년이니까 150,000명의 손님들과의 인연으로 오늘까지 내 인생을 같이 해온 것이다
택시라는 직업이 사람을 상대하다 보니 순간의 감정에 서로간에 갈등이 심하기 때문에 잣칫 개인의 생각에 집착하여 고집하다보면 분쟁과 다툼이 싸움으로 발전하여 경찰의 도움을 요청할때가 더러있었다
나도좋고 승객도 좋게 하기위해서는 굴욕이나 치욕 같은것은 지혜롭게 잘 비켜가야 된다 

모든 사람들을 분류한다면 좋은 사람 나뿐사람 으로 나눌수 있다, 그러나 좋고 나쁨은 나의 이해타산으로 분별되는 것이지 본래 좋은 사람 나뿐 사람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내가 좋지만 남이 나쁘게 여기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기왕 거리를 누비며 살아가는 운전자라면 앞으로 내생각에 우선하지말고 손님의 편의를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정말 모범적인 운전자가 되자고 마음을 바꿔야겠다,

운전은 나를 상대에 서비스하는 곧 봉사하는 직업이다. 봉사는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베프는 것이지만 나는 대가를 받기 때문에 더더욱 친절하고 편안하고 안전하게 운송을 해 드는 것이 사명이다.
즐겁게 일하며 돈도벌고 손님을 편안하게 모시므로서 내가 즐거울수 있도록 생각을 바꾸고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다
카드결재가 생활에 보편화되면서 요즘은 팁문화가 사라졌다
''기사님 1000원 더 결제 해주세요''라고 하는 손님이 있었으면 더욱더 서로가 서비스 가 향상 될수 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리고 여기저기 단속카메라에 어디다 편안히 차대고 쉴수있는 공간이 없어 아쉽고 화장실 때문에 터질것 같은 소변을 참아야하고 잠시 생리적 해결로 주정차 했다가 범칙금을 내기도하고 이래저래 과태료 범칙금이 부과돼 납부한 것만도 아마도 몇백단위는 되지

않을까 추측을 해본다.  기억을 되살려 적어보면 수많은 사연들이 소설을 한권 쓸수 있지 않을까 싶다 여러가지로 많은 사연을 만들면서 또 많은 신경을 쓰면서 달리는 운전자로서 오늘도 수행자라는 자부심을갖고 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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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를 이해하는 것은 나를 버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편안한 것.

 

여기 컵과 뚜껑이 있습니다. 이 두 개의 물건은 크기가 서로 다릅니다. 그러나 컵이 크다고 말할 수는 없어요. 뚜껑과 비교했을 때 뚜껑보다 컵이 크다고는 말할 수 있습니다. 컵을 이 탁상과 비교하면 컵은 작잖아요. 그래서 존재 자체는 크다고 할 수도 없고, 작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그것일 뿐입니다. 지금 이대로 다 소중해요. 그러나 비교를 하면 크다’, ‘작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크다’, ‘작다하는 것은 인식상의 문제이지 존재의 문제는 아닙니다. 이 컵 자체가 크기 때문에 크다고 말하는 게 아니에요. 뚜껑과 비교할 때 크다고 인식되는 겁니다. 컵보다 큰 것과 비교할 때는 이 컵이 작다고 인식됩니다. 크다, 작다는 것은 객관의 문제가 아니고 주관의 문제입니다.

 

마찬가지로 두 사람의 생각이 다르다는 게 진실이에요. 그런데도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하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나를 기준으로 삼기 때문입니다. 뚜껑을 기준으로 하면 뚜껑보다는 컵이 커요. 컵을 기준으로 하면 컵보다는 뚜껑이 작아요. 기준을 뭘로 하느냐에 따라서 이런 말이 생기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이 말도 인식상의 오류에 해당합니다. 실제로는 둘이 서로 다르다이렇게 말할 수 있어요.

 

나와 다른 것을 인정하는 것이 바로 존중입니다. 존중은 상대를 받든다’, ‘네가 훌륭하다이런 뜻이 아니라 나와 다른 것을 그대로 인정한다는 뜻입니다. 둘이 서로 다른데 기준을 나로 잡아버리면, 이것은 옳은 게 되고, 저것은 그른 게 되고, 이것은 맞는 게 되고, 저것은 틀린 게 되는 겁니다.

 

 

그럴 때 우리는 너가 틀렸다. 고쳐라이렇게 말하는데 상대는 안 고칩니다. ‘고쳐라하는 생각은 결국 내 식대로 하겠다는 겁니다. 그래서 상대가 안 고쳐지면 화가 나는 거예요. 화가 나면 내가 힘들어집니다. 상대를 미워해도 내가 힘들어요. 힘이 드니까 그래! 죽든지 살든지, 틀리든지 옳든지, 네 마음대로 해라이러면서 포기해 버리는 겁니다.

 

상대는 나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생기는 거예요. 다름을 인정하면 내가 스트레스를 받지 않습니다. 화가 나거나 미워지거나 이런 일이 안 생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이서 같이 살려면 갈등이 생깁니다. 예를 들어, 한 방에서 사는데 나는 덥다그러고 상대는 춥다그래요. 나를 기준으로 하면 너의 몸이 문제다이렇게 됩니다. 그런데 서로 다르다는 걸 인정하면 , 저 사람 입장에서는 덥구나하게 되지 누구를 탓하지는 않게 됩니다. 그래서 내 마음에 괴로움이 없습니다.

 

 

그런데 한 방에 둘이 같이 살려면 어쨌든 조정을 해야 됩니다. 누가 옳고, 누가 그른 건 아니지만, 조정은 해야 됩니다. 그래서 여기에는 대화가 필요합니다.

 

나는 약간 더운 것 같은데, 당신이 춥다니까 어떻게 할까?’

 

이럴 때 제일 쉬운 조정 방법이 상대를 기준으로 나를 맞추는 겁니다. 이 방법이 제일 쉽습니다. 나만 바꾸면 되기 때문입니다. 나는 더운데 상대는 춥다고 하면 내가 옷 하나 더 벗으면 되고, 상대는 더운데 내가 추우면 내가 옷 하나 더 입으면 됩니다. 그래서 나를 버리는 게 인생살이에서 제일 쉬워요. 그런데 우리는 이 쉬운 길을 안 갑니다. 어쨌든 힘든 길을 가려고 해요. (모두 웃음)

 

 

제일 힘든 길은 상대를 고치는 겁니다. 이 방법이 제일 힘듭니다. 상대가 내 마음대로 고쳐지나요? 그런데도 그 어려운 길을 선택하니까 인생살이가 피곤한 겁니다.

 

제일 어려운 길은 상대를 고쳐서 나한테 맞추는 거예요. 제일 쉬운 길은 나를 고쳐서 상대에게 맞추는 거예요. ‘나도 좀 고치고 너도 좀 고치자. 중간에서 타협하자이런 세 번째 길도 있습니다. 대부분은 제일 어려운 길을 가려고 하다가 도저히 안 되면 자기가 대단히 양보한 것처럼 반반씩 타협하자는 길을 선택합니다. 그래서 인생이 피곤한 거예요.

 

제일 쉬운 길은 나를 버리는 거예요. 그것보다 조금 어려운 길은 중간을 선택하는 거예요. 그러나 상대가 쉽게 양보를 안 하려고 하기 때문에 이 길도 쉽지는 않아요. 만약 내가 힘이 더 세든지, 키가 더 크든지, 아이와 상대하는 엄마라든지 이런 상황이라면, 힘으로 제압해서 그냥 밀고 나가면 돼요. 상대를 고치려면 자기가 힘이 더 세야 합니다. 물론 힘이 세도 상대를 고치는 건 쉽지 않습니다. 대부분은 저항을 하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엄마한테 덤비고, 남편이 아내한테, 아내가 남편한테 덤빕니다. 이런 저항을 밀고 나가려면 힘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서로 다르다는 걸 인정하고 나를 기준으로 상대를 고치는 걸 한번 시도해 보는 거예요. 그래서 상대가 고쳐지면 다행입니다. 나를 기준으로 상대를 고치는 것을 나쁘다이렇게 생각하면 안 돼요. 서로 다르기 때문에 어떻게 조정할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첫째, 나를 기준으로 상대를 한번 조정해보는 겁니다. 그래서 밀어붙였더니 상대가 흔쾌히 받아들인다면 아무 문제가 없어요. 나쁜 것도 아니에요. 둘째, 내 의견을 밀어붙였는데 안 받아들여진다면 중간에서 타협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셋째, 그런데 그것도 안 되면 나를 버리면 해결이 돼요. 다른 방법은 나 혼자서 결정을 못 하지만, 나를 버리는 건 언제든지 내가 결정할 수 있는 사안입니다. 그래서 자기를 버릴 수 있는 사람은 인생의 주인이 되는 거예요. 언제든지 자기가 결정권을 쥐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디를 가도 , 그거 내가 하지이렇게 자기가 결정을 내려버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을 고치는 건 내가 결정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늘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세 가지 방법만 있는 건 아니에요. 세 가지 모두 하나의 방에서 잔다는 걸 전제로 할 때 조정하는 방법입니다. 만약 방이 두 개라면 조정 방법이 또 있어요. 나는 이 방에 자고 너는 저 방에 자고, 너는 에어컨 켜고, 나는 그냥 자고, 너는 보일러 틀고, 나는 그냥 자고, 이런 조정 방법도 있습니다.

 

틀린 게 아니라 서로 다를 뿐입니다. 서로 다르다는 것을 확인해가면서 조금씩 조정해 가면 됩니다. 자기를 버리는 사람은 무조건 포기만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시면 안 돼요. 자기를 내려놓을 수 있는 사람은 괴롭지가 않습니다.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요.

 

질문자가 자꾸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자기 방식대로 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게 너무 힘드니까 결국은 에이, 안 간다이렇게 되는 거예요. 욕심을 내서 너무 높은 산을 오른다고 정해놓고 가다가 힘드니까 에이, 산에 가면 뭐해? 집에서 자는 게 낫지이러는 겁니다. 이렇게 우리는 늘 양 극단에 치우칩니다. 내 식대로 하는 것이면서 다 너를 위해서 그러지 누굴 위해서 그러겠어?’ 이렇게 말하고, 안 되면 그래, 네가 죽든지 살든지 모르겠다하면서 외면합니다.

 

 

집착과 외면은 같은 거예요. ‘사랑과 미움은 같다이렇게 말하듯이 내 식대로 하려고 하는데 잘 안 되니까 미움이 생기는 겁니다. 내 식대로 하려는 게 사랑이 아니에요. 그건 욕망입니다.”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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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연기

중도란 양변에 치우치지안고 중간에도 머무르지안고 전체를 하나로 화합하는 것이다.

중도는 곧 연기이며 진여라고한다, 사성제 팔정도도 중도를 설명한 것이다,

12연기도 중도를 설명한 것이다, 상의성 서로 의지해있는 성품이다,

연기를 알면 정견을 갖추었다고 볼수 있다,

 

생멸연기 태어나면 반듯이 생노병사의 법칙에 따라 죽는 것이다.

생도 연기요 사도 연기이므로 생과 사는 다르지안다,하나다

생이 있으려면 암수가 인연이 되어 정자와 난자가 합쳐저서 하나의 생명이

만들어져서 태어나듯이 연기적 인연으로 작용이 되는 것이다,

 

 

진여연기를 이해하면 연기중도를 이해하게 된다,

연기란 인연으로 인하여 결과가 있다.

연기란 서로 상의 관계를 말한다.

연기는 있음과 없음을 보지 아니하면 바로 부처의 참모습을 본다.

있다는 것도 연기요 없다는 것도 연기이므로 연기는 실체가 없는 것이기 때문에

무상이며 무아이기 때문에 부처를 본다.

부처란 모양도 소리도 없는것이기 때문이다,

연기법은 인연법 또는 인과법이라고도 한다.

중생도 연기 불성도 연기이므로 차별이 있을수 없으므로 둘이 아니다,

그러므로 내가 바로 진여 불성을 지닌 부처라는 것이다,

 

모든 것은 독자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상호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는 진리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바로 이런 연기의 법칙,

즉 서로 원인과 결과가 되어 서로 의존하며 생겨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산 너머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는 홀로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라,

섶에 붙은 불 때문이며 불은 타는 물질과 공기와 산소가 있으므로 생겨난다는 것이다.

 

연기란 모든 것은 원인과 조건이 있어서 생겨나고

원인과 조건이 없어지면 소멸한다는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이를 아래의 시로 간명히 표현하신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此有故彼有

이것이 생기므로 저것이 생긴다. 此生故彼生

이것이 없으면 저것도 없고 此無故彼無

이것이 사라지면 저것도 사라진다. 此滅故彼滅

잡아함경30335제일의공경

 

모든 것은 홀로 존재하지 않고 상호관계 속에서 존재한다는 것이 진리이다.

존재의 상황이 어떻게 바뀌더라도 이것과 저 것의 의존관계와 상관관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이것이 생기므로 저것이 생긴다라는 구절로써

존재의 발생을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이 없으면 저것도 없고이것이 사라 지면 저것도 사라진다.’라는 구절로써

존재의 소멸을 설명하고 있다.

모든 존재는 그것을 형성시키는 원인과 조건에 의해서만이, 그리고 상호관계에 의해서만이

생성되기도 하고 소멸되기도 한다는 것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결국 연기법이란 존재의 생성과 소멸의 관계성(關係性)’을 뜻한다.

생성과 소멸의 과정에서 항상 서로 의지하여 관계를 맺고 있다 하여

연기법을 상의성(相依性)의 법칙이라 말하기도 한다.

모든 존재는 그 존재를 성립시키는 여러 가지 원인이나 조건에 의해서 생겨나게 된다.

서로는 서로에게 원인이 되기도 하고 조건이 되기도 하면서 함께 존재 하게 되는 것이다.

즉 모든 것은 전적으로 상대적이고 상호의존적인 존재라는 것이다.

 

12연기설(十二緣起說)

무명 · · · 명색 · 6· · · · · · · 노사 (12)

12요소로 된 연기설(緣起說)이다.

 

쌍차 즉 양변을 막는 것은 양변을 떠난는 것이요 쌍조는 양변을 비추며 융합하는 것을

말한다 양변이란 변견인데 변견을 버리는 것을 중도라한다,

비유하자면 하늘에 구름이 걷이면 해가 그대로 들어나고 해가 완전히 들어나 있으면

구름이 완전히 걷힌 것이다,

쌍차란 양변을 완전히 떠난 것이니 구름이 걷혔다는 것이고

쌍조란 양변이 서로 융합한다는 것이니 해가 드러나 비친다는 것이다,

구름이(번뇌) 사라졌다는 것은 해(지혜)가 비친다는 것이며

해가 비친다는 것은 구름이 사라졌다는 것이므로 쌍차 쌍조는 둘이 아니다

번뇌와 지혜도 둘이 아니다, 쌍차하면 쌍조의 뜻이 내포되여 있고 쌍조하면 쌍차가

내포되여 있듯리 번뇌라하면 지혜가 지혜하면 번뇌가 내포되여 있다.

색하면 공이있고 공하면 색이 있듯이 일체의 모든 것은 양극()이면서 하나다 라는 뜻이

내포되여 있는 것이다, 왜 연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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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차도를 지나는데 차가 몹시 정체 되였다

앞에서 공사를 하고 있어 2차선 차로가 1차선으로 좁혀지고 있었다

2차선을 가던 차들은 1차선으로 차로를 바꿔야 하기 때문에 서서히 한대 한대 손 깍지 끼듯이

끼어들어 가기때문에 1차선을 가던 차들이 양보를 해주어야만 하는 상황 이였다.

앞 차들이 한대한대 끼어어들어 차선을 바꾸어 나가고 내 차례가 되여 왼쪽 깜박이를 켜고

끼어드는데 1차선에 있는 차가 양보를 하지 않고 그대로 달려 온다.

양쪽 비상 깜박이를 캄박거리며 조심스래 들어가면서 빽미러를 바라보는데 여전히 양보할 생각을 하지 않고 밀어 붙힌다,

이러다가는 사고가 발생 할것 같아 멈추어 그차를 보내고 다음 차의 양보를 받아 빠져 나갔다,

도대체 매너가 없는 놈이라는 생각이 들어 화가 났다.

그차 옆으로 가면서 왼쪽 창문을 내리고 도대체 어떤 놈이길래 그랬나 싶어 쏘아 보았더니

"뭐가 어떼서" 라듯이  창문을 내리고 상대도 나를 뻔뻔스런 얼굴로 쏘아본다,

30대 후반 쯤으로 보이는 나이지만 나만 생각하는 요즘 신세대들의 이기적인 그런 인상이였다.

그럼 그렇지 그래서 양보를 안해주고 밀어 댔구나 싶은 생각이 들어 아무런 말도 없이 창문을 올렸다,

어쨌던 상대는 해주기 싫어서 그렀겠지만 그렇다고 왜 상대를 얄밉다고 미워하고 원망하면서 내가 스스로

짜증을 내며 화를 낸단 말인가?  그것은 당연히 양보를 해주기를 바랜는데 안해줘서 그랬던 것이다,

바라는 것은 내 생각이였고 안해준것은 상대의 생각인것이다,

이렇게 바램이 있어 안 되면 화가 난는 것이다,

화를 내고 있는 내 자신이 어리섞다는 생각이 들었다.

양보는 상대의 선택일 뿐이고. 난 상황에 따라 해결하면 되는데 내 욕구데로 안됐다고 상대를 원망하면서

화를 내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하를 내면 상대가 괴로운것이 아니고 내가 괴로운 것이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상을 취하지 말고 괴로움이 없이 여여부동 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수행자의 자세다.

열반은(행복한 마음) 즉 상이 없는 마음이다. 

분별심이나 차별심 간택심을 버리고 이타심[利他心]을 갖는 것이 보살의 정신이다,

이럴때 그래 바쁜 모양이다, 내가 양보를 받아야 하지만 이럴 땐 내가 양보를 해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괴로운게 아니고 행복할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일체 유심조다.

한생각 바꾸면은 괴로움이 편안함으로 전도 되는 것이다.

나로부터 나아가 나에게 돌아오는 인과의 법칙은 좋지 않은 나뿐 생각은 해가 되지만 좋은 생각은 득이된다,

남을 탓하기전 먼저 자신을 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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