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봄
“올 겨울이 유난히 추웠죠? 35년 만에 가장 추웠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따뜻한 미국 텍사스 주에도 영하 18도까지 떨어지는 한파가 몰아쳤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는 봄은 막을 수가 없네요. 벌써 한국의 남부 지역에는 담장 밑에 난초 새싹이 파랗게 돋아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봄은 오고 있습니다.
‘봄이 왔건만 아직 봄이 오지 않았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계절은 봄이 되었는데, 마음에는 봄이 오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계절의 봄은 해가 점점 길어지면서 어김없이 오지만, 우리 마음의 봄은 수행정진을 해야 맞이할 수 있습니다. 계절의 봄과 함께 마음의 봄을 맞이하기 위해 마음공부를 좀 해보면 좋겠습니다. 그럼 마음공부는 어떻게 할까요?
괴롭지 않게 사는 길
부처님은 인생의 괴로움에 대해 스스로 탐구하신 분입니다.
‘사람은 왜 화내고 짜증내고 미워하고 원망하면서 인생을 괴롭게 살아갈까?’
부처님은 깊은 탐구 끝에 결국 화내지 않고, 미워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근심 걱정하지 않고, 괴롭지 않게 살아가는 길을 찾았습니다. 괴로움 없이 편안한 상태를 인도어로 니르바나(Nirvana, 열반)라고 합니다. 부처님은 본인도 안온하게 사셨고, 또 괴로워하는 사람들에게 괴롭지 않게 살아가는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철학도 아니고, 종교도 아닙니다. ‘괴로워하는 사람이 그 괴로움에서 어떻게 벗어나느냐’를 해결하는 가르침입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이 가르침은 한쪽은 불교라는 종교로 흘러갔고, 다른 한쪽은 불교철학이라는 학문으로 흘러갔어요. 그러나 부처님의 원래 가르침은 어떤 것을 믿는 종교도 아니고, 사유하는 철학도 아니고, 바로 실천하고 체험해서 자기 삶을 괴롭지 않게 살아가는 방법입니다. 이것을 수행이라고 합니다. 즉 마음공부는 내 마음을 다스려 괴롭지 않게 살아가는 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불교가 무엇인지 이론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문제를 어떻게 바라봐야 지금보다 내가 조금 더 가볍게 살아갈 수 있을지 여러분과 함께 이야기 나눠보고자 합니다. 어떤 종교를 믿으라는 것도 아니고, 어떤 철학을 강의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현실의 삶 속에서 좀 더 가볍게 살 수 있는 길을 한 번 같이 찾아보자는 뜻으로 대화를 해봅시다.”
이어서 8명이 질문을 했습니다. 질문하신 분들의 마음의 계절은 다 달랐습니다. 그중 감정 기복이 심한 남편 때문에 괴롭다는 분의 질문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남편이 화가 나면 며칠 동안 말을 안 해요
“제 남편은 감정 기복이 매우 심합니다. 기분이 좋으면 말도 많이 하고 농담도 하지만, 화가 나면 화가 풀릴 때까지 며칠이고 말을 안 합니다. 예전에 화가 나면 너무 오랫동안 말을 안 해서 제가 풀어보려고 말을 걸어봤는데 소용이 없었습니다. 이제는 남편 성격을 알아서 화가 났다 싶으면 반발을 하지 않고 화가 풀릴 때까지 기다립니다. 그런데 그동안 저도 기분이 몹시 가라앉습니다. 며칠 지나서 남편이 화가 풀리면, ‘네가 어떻게 해서 내가 화가 났다’며 다시 말을 합니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서 제 기분이 남편 기분에 따라 좋았다 나빴다 하는 것이 힘듭니다. 어떻게 하면 남편의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질문자도 기분이 좋을 때가 있고 나쁠 때가 있죠?”
“네.”
“질문자도 기분이 좋으면 좀 친절해지고, 기분이 나쁘면 말하기 싫어지잖아요?”
“네.”
“본인이 그렇듯 남편도 똑같아요. 남편도 자기가 기분이 좋으면 온갖 이야기를 다 하고, 기분이 나쁘면 며칠간 말을 안 하는 거예요.”
“똑같긴 한데 남편이 너무 오래 동안 말을 안 하고 화를 내면 제가 많이 힘듭니다.”
“오십보백보란 말이 있잖아요. 오십보 가나 백보 가나 비슷비슷하다는 얘기예요. 기분이 좋으면 입 안에 있는 것도 내줄 듯이 하고, 기분이 나쁘면 줬던 것도 도로 뺏는 것이 사람입니다. 질문자 이야기를 들어보니, ‘남편이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개도 아니고 소도 아니고, 나무도 아니고 돌도 아니고 사람이에요. 사람이니까 화를 낼 줄도 알고, 사람이니까 말을 하기도 하고 안 하기도 하는 겁니다. 질문자도 사람이니까 감정이 올라오는 거예요. 질문자가 남편을 볼 때, ‘왜 그만한 일에 화를 내고 말을 안 하지?’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죠?”
“네, 자주 그렇습니다.”
“그런데 저는 또 질문자를 보고, ‘왜 그만한 일에 괴롭다고 그러지?’ 이런 생각이 들 수 있잖아요.”
“네, 알겠습니다. 스님께서 예전에 한 즉문즉설에서 자기를 괴롭히는 상사가 말을 하면 개구리가 운다고 생각하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 제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남편을 개구리라고 생각해도 괜찮을까요?”
“안 괜찮죠.(웃음) 개구리 하고 같이 산다고 하면 질문자가 창피하죠. 질문자가 아무리 못났더라도 개구리 하고 살 수준은 넘지 않아요?”
“네, 넘습니다.”
“질문자가 남편을 개구리라고 하면 남편을 욕하는 게 아니라 질문자 본인을 욕하는 셈이에요. 자기 가치를 좀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남편은 부처님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기분이 어떨까요?”
“네, 기분이 좋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 남편을 볼 때 법륜스님이다 이렇게 생각하겠습니다.”(웃음)
“질문자가 매일 제 법문을 듣는다고 했잖아요. 그러면 남편 말을 제 말처럼 믿고 받아들이면 어떨까요?”
“노력해 보겠습니다.” (웃음)
“노력하면 안 돼요. 항상 이렇게 기도하세요.
‘남편은 부처님입니다’
남편이 감정에 기복이 있는 것은 남편이 사람이라는 증거예요. 그런데 남편이 내가 원하는 수준은 안 되는 거예요. 남편은 특별히 훌륭한 사람도, 나쁜 사람도 아니고 그냥 사람인데, 내가 남편에 대한 기대가 큰 겁니다. 그래서 질문자가 마음이 좀 언짢은 거예요. 남편이 화도 좀 덜 내고, 갈등이 생겨도 빨리 풀고, 먼저 미안하다고 사과도 해 주면 좋겠죠?”
“네.”
“그런데 내 남편이 그만큼은 안 되는 거예요. 그렇다고 남편이 나쁜 사람은 아니에요. 단지 내가 원하는 만큼 안 될 뿐입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이 기분이 좋으면 뭐든지 줄 것처럼 하고, 기분이 나쁘면 토라져요. 토라지는 시간이 조금 긴 사람도 있고 짧은 사람도 있습니다. 오십보백보로 큰 차이가 없어요. 그러니 첫째, ‘우리 남편은 사람입니다’ 이렇게 생각하세요.
둘째, ‘남편은 사람 중에도 부처님이다’ 이렇게 생각해 보세요. 남편의 말을 부처님 말씀을 듣듯이 들으면 남편이 진짜 부처가 됩니다. 그 남자가 부처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내 마음속에 있는 남편은 부처인 거예요. 남편을 부처로 보면 질문자도 덩달아 훌륭해집니다. 기독교인에게 불상은 부처일까요, 우상일까요?”
“우상으로 볼 것 같습니다.”
“불교인에게는 불상이 뭐예요?”
“부처님입니다.”
“그 불상이 부처인지 우상인지는 본래 정해져 있는 거예요, 보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거예요?”
“보는 사람에 따라 달라집니다.”
“그러면 우상으로 보는 것이 나에게 좋을까요, 부처로 보는 것이 나에게 좋을까요?”
“부처로 보겠습니다.”
“불교를 안 믿는 기독교인은 불상을 우상으로 봐도 상관이 없죠. 절에 안 다니니까요. 그런데 매일 절에 다니는 불교인이 불상을 우상이라고 보면 본인이 불행하겠죠. 다른 사람은 질문자 남편을 나쁜 남자라고 해도 괜찮아요. 같이 안 사니까요. 그런데 질문자는 그 남자하고 같이 살잖아요.”
“네. 평생 같이 살 것 같습니다.
“평생 같이 살아야 하는 사람을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누구 손해예요?”
“제 손해입니다.”
“질문자가 남편과 같이 못 살겠다고 했으면 다른 이야기를 해주었을 거예요. 남편 성격이 내 마음에 안 들어도 다른 것이 괜찮으니까 같이 사는 거죠?”
“네. 맞습니다.”
“남편이 건강도 안 좋고, 돈도 못 벌고, 성격도 안 좋고, 애들한테도 잘 못 하고 다방면으로 나쁘다면, 저에게 이런 신세타령을 안 하겠죠. 스님한테 묻지도 않고 벌써 이혼해 버렸을 거예요.”
“네. 벌써 이혼했을 것 같습니다.”
“남편이 성격 빼고는 그래도 괜찮으니까 ‘남편이 이것만 고치면 참 좋겠는데’라는 생각을 하는 거예요. 그런데 빈대 잡다가 초가삼간 태운다는 말이 있잖아요. 한 가지 고치려다가 전부를 잃을 수도 있습니다. 절에 가서 불상을 보고, 부처로 볼 거냐 우상으로 볼 거냐 하는 문제와 같아요. 기독교인들이 우상 숭배라고 할 때, 왜 우상이냐고 논쟁할 필요가 없습니다. ‘불상을 우상이라고 보는 것은 네 자유다. 그래 봐야 네 마음만 허전하지 나는 매일 봐야 되니까 부처님으로 본다’라고 하면 돼요. 그처럼 질문자에게 남편은 내가 매일 같이 살아야 할 사람이고 아이들에게는 아버지잖아요. 아이들 아버지가 훌륭한 사람인 게 좋아요, 나쁜 사람인 게 좋아요?”
“훌륭한 사람이 좋습니다.”
“그러니까 남편에게 ‘당신은 부처님입니다’ 이런 마음을 내어보세요. 설령 아이들이 ‘아빠 성격이 문제야’ 이렇게 얘기를 해도, ‘성격 빼고는 다 훌륭한 분이다’라고 얘기하시면 됩니다.
“네. 명심하겠습니다.”
“그런 관점을 가지면 누구한테 좋다고요? 남편한테 좋아요, 질문자에게 좋아요?”
“저한테 좋습니다.”
“‘훌륭한 남자하고 산다’ 이런 관점을 가지면 자기에게 자긍심이 생기는 거예요. ‘남자가 성격이 나빠서 잘 삐지고 화를 낸다’ 자꾸 이렇게 생각하면 자기 자존심이 상하는 거예요. 그러면 ‘내가 오죽 못났으면 저런 사람하고 평생 살아야 되나’ 이런 생각까지 듭니다. 남편 성격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말고, 그런 성격은 나하고 좀 안 맞지만 다른 건 다 훌륭하다고 생각하세요. 나하고 안 맞는 거지, 그 성격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에요. 내가 원하는 만큼 안 될 뿐입니다. 행복하려면 긍정적으로 보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긍정적인 마음을 내면 질문자에게도 좋고 아이에게도 좋고 남편에게도 좋아요. 나도 좋고 너도 좋고 우리도 좋은 거예요. 이 좋은 길을 함께 가면 좋겠습니다.”
“명심하겠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결혼할 때 왜 상대의 성격이나 생활습관은 안 보는지 모르겠어요. 여러분은 결혼할 때 주로 무엇부터 봅니까? 첫째, 인물을 보죠. 그런데 막상 결혼해서 살면 인물은 더 이상 안 봐요. 아침에 눈 떠서 남편이나 아내를 딱 보니 인물 때문에 진짜 구역질이 나서 같이 못 살겠다는 사람은 없습니다. 둘째, 능력을 보죠. 어느 대학을 나왔냐, 월급은 얼마냐, 재산이 얼마냐, 집안은 어떠냐, 이런 것들을 따지는 게 능력을 보는 겁니다. 물론 연애를 좀 오래 하면 성격을 보긴 합니다. 그런데 생활 습관은 아예 안 봐요.
그런데 같이 살아 보면 서로 제일 많이 부딪히는 것이 생활 습관입니다. 두 번째로 많이 부딪히는 것이 성격이고 세 번째가 능력입니다. 인물은 아예 해당도 안 돼요. 그러니까 결혼을 선택할 때 중요하게 보는 조건과 살면서 부딪히는 조건이 정 반대입니다. 같이 살기 좋은 사람보다 보기에 좋은 사람을 골라서 결혼을 하니까 어려운 거예요. 같이 살려면 생활 습관이 잘 맞는지가 중요한데 다른 조건만 맞춰보고 결혼을 하니까요.
우리 일상도 그렇습니다. 경치 좋은 바닷가나 계곡에 가면 여기 집 하나 지어 살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잖아요. 한 번 살아봐요. 습기도 많고 바람도 많고 소리도 시끄럽고 여러 가지가 안 좋습니다. 그래서 보기에 좋다고 반드시 생활에 좋은 것이 아니에요. 빛 좋은 개살구라는 속담이 있잖아요. 물론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을 때도 있습니다.
결혼 생활의 갈등은 대부분 내가 선택한 조건이 아닌 다른 것을 자꾸 문제 삼기 때문에 생깁니다. 상대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에요. 내가 상대를 선택했을 때 인물을 봤다면 평생 인물만 논하고, 능력을 봤으면 평생 능력만 논해야지, 정작 같이 못 살겠다고 불평할 때는 성격이나 생활 습관을 논하기 때문에 갈등이 생기는 겁니다. 그러니 질문자도 남편의 성격을 자꾸 논하지 말고, 남편의 그런 성격을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해요. 남편은 그렇게 생긴 걸 어떡합니까. 남편의 성격을 받아들일 수만 있으면 사실 큰 문제는 아닙니다.
남편에게 장점보다 단점이 더 많아서 정 못 살겠다면 저한테 이런 질문을 안 합니다. 묻기 전에 알아서 결정을 해버리죠. 저한테 물었다는 것은 ‘남편에게 좋은 점이 많지만 내 마음에 안 드는 이런 점이 있는데, 이걸 어떻게 하면 내 마음에 들도록 할까요?’ 이것이 고민이 되어서 묻거든요. 자기 힘으로 안 고쳐지니까 저에게 묻는데, 남을 고치기는 쉽지 않습니다. 자기 관점을 조금만 바꿔보세요. 산에 가면 나무가 많지만 기둥하기에 좋은 나무는 드뭅니다. 목수가 가져와서 필요에 맞게 조금 다듬어야 됩니다. 결혼생활도 서로 맞춰가면서 사는 것이지, 딱 내 마음에 드는 사람은 구하기 어렵습니다. 결혼뿐만 아니라 룸메이트나 친구도 마찬가지예요. 그렇기 때문에 상대를 긍정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고 맞춰가며 살아보면 좋겠습니다.”